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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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70

창식이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맥주를 사오라고 하고는 창식이와 은애를 거실 탁자에 나란히 앉혔다. 

“음, 니가 얼마 전부터 창식이하고 사귀기로 했다는 친구구나? 이름이 은애라고 했던가?”

“네.”

덕승의 물음에 은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모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 모습을 본 덕승은 화통하게 웃으며 겁을 잔뜩 집어먹은 은애를 안심시켜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뭐 남자친구 집에 놀러올 수도 있지. 얘 엄마나 나나 꽉 막힌 사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고 겁 먹고 그러지 말아요.”

“그래, 긴장하지 마.”

창식이가 고개 숙이고 있는 은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간지럼을 잘 타는 은애는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흘리며 창식이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긴장이 되어 죽겠는데 창식이가 자꾸 장난을 치자 은애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울상이 되어 버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덕승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 친구 참 편하게 있으라니까. 그런데 집이 어디라고 했지? 먼데 산다고 들은 것 같은데.”

“예, 부산입니다.”

은애가 자세를 가다듬고 덕승의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하였다. 

“음, 부산. 어이구, 남자친구 만나려고 멀리서도 왔네. 근처에 친지분들이나 아는 친구는 있어요?”

“아뇨. 없습니다.”

은애의 목소리는 다시 모기만해져 있었다. 행여 덕승이 자신을 이상한 여자아이로 보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덕승의 눈에는 아들 때문에 먼 데서 찾아온 은애가 귀엽게만 보였다.

“그래? 그럼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야겠네. 빈 방 있으니까 창식이는 거기서 자고 친구는 창식이 방에서 자면 되겠다. 오랫동안 안 써서 좀 너저분하거든.”

“진짜요 아버지? 진짜 그래도 되요? 우와, 안 그래도 말씀 드렸는데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진짜 잘 됐다. 맞지 은애야?”

“아, 아니에요 아버님. 어떻게 처음 뵙는데 집에서 자고 가요. 괜찮아요.”

은애는 손사래를 치며 그럴 수 없다고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덕승은 괜찮으니 마음 편하게 먹고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말하였다. 

“아니, 멀리서 온 손님을 여관방에서 재우면 쓰나. 그것도 다 큰 처녀를. 우린 괜찮으니까 집에서 자고 가요.”

그 때 마침 맥주를 사 온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이 양반은 얘들 벌써 술 한 잔 걸치고 온 모양인데 무슨 또 술이에요.”

“이 사람아,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술 한 잔은 대접해야지. 안 그래? 거 술 여기다 놓고 과일이라도 좀 갖고 와봐.”

“하여간 애들은 핑계지. 당신이 술 마시고 싶어서 그러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하여간 내가 못 살아.”

어머니는 검은 봉투에서 캔맥주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는. 안주를 가져 오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창식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티격태격 하자 은애는 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 한 잔 하지. 창식아 뭐 하냐. 여자친구 캔 뚜껑 따줘야지.”

“네, 네.”

창식이는 맥주캔을 따서 은애의 손에 쥐어 주었다. 

“자 그럼 우리 건배 할까. 창식이와 은애의 건전한 연애를 위하여 건배!”

“건배!”

은애는 맥주를 두 손으로 붙잡고 고개를 살짝 돌려 한 모금 마시고는 맥주를 자기 앞에 내려놓았고, 그 모습을 본 덕승은 은애가 교육을 잘 받은 아이인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하였다. 

“크, 시원하다. 내가 창식이하고 창식이 여자친구하고 이렇게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이 아버지가 늙긴 늙었나보다 허허허. 그런데 은애는 술을 잘 마시나?”

“아뇨, 그냥 쪼금밖에 못 마셔요.”

“음, 그렇구나. 술은 누구한테 배웠니? 요새 애들은 친구들끼리 어려서부터 마시고 그러던데.”

“아버지께서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된다고 하셔서 고등학교 때 처음 아버지께 배웠어요.”

“그래? 어쩐지, 예의가 바르더라니. 어, 여보. 당신도 앉아.”

창식이의 어머니가 탁자로 과일을 깎아서 내오자 덕승이 옆자리에 앉기를 권하였다. 자리에 앉은 창식이의 어머니가 은애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은 집이 어디야? 부모님께서 여기 온 거 아셔?”

살가운 덕승의 환대에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어졌던 은애는 창식이 어머니의 질문에 다시 바짝 주눅이 들었다. 

“네? 네, 부산입니다. 부모님께 친구랑 놀고 하룻밤 자고 간다고 허락 받고 왔어요.”

“남자친구네 집에서 자는 건 모르실 거 아니니? 이 사실을 알면 부모님께서 얼마나 걱정 하시겠니. 창식이 너는 다짜고짜 여자친구를 집에 끌고 오면 어떡해. 여자랑 남자가 같은 줄 알아? 하여간 이 녀석은 누굴 닮았는지 원.”

정곡을 찌르는 어머니의 말에 은애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얼굴에 긴장한 빛이 역력한 은애를 본 덕승은 은애를 두둔하고 나섰다. 

“아니 이 사람은 아들놈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뭘 그리 까칠하게 굴어? 몰래 만나는 것보다 이렇게 인사도 오고 떳떳하게 만나는 게 좋지 뭘 그래?”

“아니 내가 뭘 까칠하게 굴었다고 그래요? 그냥 이 학생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한 거지.”

덕승은 은애를 도와주려고 하였지만, 괜히 가만 있는 어머니를 건드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덕분에 분위기는 일순 어색해져 버렸다. 

“아, 엄마 왜 그래. 은애가 고개를 못 들잖아요. 엄마도 한 잔 해요. 자자.”

창식이가 어머니 옆으로 다가가 맥주를 한 캔 따서 억지로 어머니의 입에 들이댔다. 

“아이구, 얘가 왜 이래. 엄마는 안 마셔 이것아. 저리 치워.”

뻘쭘해진 창식이는 제 자리로 돌아왔고, 어머니는 은애의 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래, 창식이랑 같은 학교라고? 과는 무슨 과니?”

“네, 지금 국문과 반인데요, 전공 선택도 그 쪽으로 할 생각이에요.”

“아 맞다. 학부제였지 참. 그럼 부모님은 무슨 일 하시는지 물어 봐도 되니?”

“네, 아버지는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시구요, 어머니는 전업 주부세요.”

“그래?”

어머니는 은애의 아버지가 시청 공무원이라는 얘기를 듣자 언짢았던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남자를 만나려고 부산에서 이 먼 곳까지 와서는 늦은 시간에 갑자기 쳐들어 온 은애가 혹시나 되바라진 아이는 아닐까 하고 걱정했던 창식이의 어머니는 은애의 가정 환경이 생각보다 좋은 편에 속하자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 잘 곳은 정했니?”

거짓말이 서툰데다 잔뜩 긴장을 한 은애는 솔직하게 대답을 하였다. 

“네, 근처 모텔에서 자고...”

“엄마 엄마, 은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되지? 아버지가 허락했어. 응? 엄마아.”

창식이가 황급하게 은애의 말을 막아서며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뭐? 모텔? 어머, 얘는 다 큰 여자아이가 겁도 없네. 빈 방 정리해 줄테니까 창식이 너 거기서 자고 여자친구는 니 방에서 재워.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쯧쯧. 괜찮으니까 자고 가. 알았니? 내일 집에 가면 부모님 걱정 안 하시게 잘 하고.”

“네, 네. 감사합니다.”

“엄마 땡큐. 사랑해요.”

창식이가 고맙다며 어머니를 끌어안자, 어머니는 징그럽다며 아들을 밀쳐냈다.

“아유, 징그러워 이 녀석아. 얼른 저리 가지 못해. 니들 엉뚱한 짓 하면 안 돼. 알았지? 창식이 너 은애 잘 때 저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마. 엄마가 볼거야.”

“오줌 마려우면?”

“이 녀석이!”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빈 방을 정리하러 들어갔고, 남은 술을 마신 덕승과 두 아이는 어머니가 빈 방의 정리를 끝마치자 인사를 하고 잠을 자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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