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5 / 0093 ----------------------------------------------
[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75
수다를 떨다가 아침이 돼서야 잠이 든 그녀들은 오후 네 시가 지나서야 잠에서 깰 수 있었다. 8시에 예정 돼 있는 그 남자와의 약속으로 나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한 까닭에 세 자매는 약속 시간까지 숙소에서 쉬기로 하였다. 룸서비스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휴식을 취한 그녀들은 오후 6시부터 슬슬 씻고 화장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약속 시간이 되어 숙소를 나선 그녀들은 호텔 정문 앞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새벽의 그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남자는 회사에서 퇴근하고 바로 온 듯 깔끔한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새벽에는 경황이 없어서 잘 보지 못 했는데 다시 본 남자의 모습은 짧은 헤어 스타일에 짙은 눈썹, 날카로운 눈매와 콧날, 구릿빛 피부가 어우러져 잘 생기진 않았지만 마초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호남형의 얼굴이었다. 거기다 180 정도 돼 보이는 큰 키에 어깨가 딱 벌어져 입고 있는 슬림핏 정장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안녕하세요.”
그녀들은 남자를 보고 인사를 하였고, 남자도 웃으며 그녀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좀 쉬셨어요?”
“네, 덕분에요.”
“호텔에서 나오시는 거 보니 계속 방에 계셨나 봐요.”
“네, 너무 피곤해서요.”
“저런, 내일 올라가신다면서 제대로 놀지도 못 하셨겠네요. 어디 가고 싶으신 데라도 있나요?”
“아뇨, 저희 부산이 처음이라 아는 데가 없어요. 좋은데 있으면 데려가 주세요.”
“음, 그럼 일단 밥부터 먹죠. 저 따라 오세요.”
세 자매는 호텔 근처에 주차해 놓은 남자의 차를 타고 식사를 하러 이동하였다. 차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어느 큰 고깃집 앞에서 멈춰섰고, 차에서 먼저 내린 남자는 가게 직원에게 차키를 넘겨주며 파킹을 부탁하였다. 남자는 차의 뒷문을 열어 그녀들을 내리게 한 후 가게 안의 미리 예약해 놓은 2층 창가 쪽 자리까지 정중히 에스코트 하였다. 세 자매는 처음 겪어 보는 남자의 데이트 매너에 새벽에 겪은 기분 나쁜 기억은 모두 날려버릴 만큼 들떠 있었다. 가게 안은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1층과 2층 모두 만석이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예약한 자리에 앉은 네 사람은 미리 셋팅 되어 있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고, 남자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언니 저 남자 진짜 멋있다. 어쩜 저렇게 예의 바를 수가 있을까.”
민정이가 남자의 매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언니, 진정해요. 지금 눈이 하트 모양이야.”
영숙이가 호들갑을 떠는 민정이를 보며 웃었다.
“그래? 나 저 남자한테 반했나 봐. 꺅, 어떡해.”
세란이 웃으며 민정이에게 말하였다.
“훗, 한 번 잘 해보든가. 저 남자도 민정이 너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라.”
“정말? 나만 잘 되면 미안한데.”
“됐어요 언니. 정 관심 있으면 한 번 잘해 봐. 셋 중에 누구 한 명은 잘 되는게 좋지.”
“그래? 그럼 오늘 그냥 확 자빠져 버릴까 나?”
민정이의 말에 세란이와 영숙이가 민정이의 등짝을 때리며 웃었다.
“으이그 으이그, 하여간 얘는.”
“언니, 왜 이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호호호, 재밌다.”
세란이는 남자 얘기에 잔뜩 들뜬 민정이를 보며 쓴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사실 세란이는 새벽에 호텔에 도착하고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남자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남자의 사내다운 모습과 매너 있는 행동, 외모까지 모든 것이 세란이의 이상형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끼는 동생인 민정이가, 특히 최근까지 마음 고생을 해 온 민정이가 남자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자 그녀는 동생을 위해 미련 없이 자신의 이상형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는지, 세란은 씁쓸한 표정을 숨기고 창 밖을 보며 애꿎은 물만 들이켜고 있었다.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 사이 남자가 자리에 돌아왔다.
“회는 벌써 드셨을 것 같아서 일부러 고깃집으로 모셨는데 어때요? 괜찮으시죠?”
남자가 묻자 민정이와 영숙이가 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네에! 저희 고기 엄청 좋아해요.”
남자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웃었고, 대답이 없는 세란에게 다시 물었다.
“이쪽 분은 여기 마음에 안 드세요? 불편하시면 장소를 옮길까요? 다른 좋은 데도 많습니다.”
그 때까지 물을 홀짝 거리던 세란이는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 오자 사래가 들린 듯 켁켁 거리기 시작하였다. 옆에 앉은 영숙이가 세란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언니, 왜 그래 갑자기.”
세란은 얼굴을 붉히며 남자에게 대답하였다.
“아니에요. 좋아요 저도.”
“네, 그럼 주문할게요. 한우 갈비 괜찮으시죠? 여기 갈비가 괜찮거든요.”
“네. 좋아요.”
남자는 직원을 불러 한우 갈비 6인분과 맥주를 세 병 주문하였다.
“여기 가끔 회사 회식이나 접대 때문에 오는데 괜찮더라구요. 드셔 보시면 아마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런데 실례가 안 되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남자의 물음에 영숙이가 차례대로 자신들을 소개하였다.
“제 옆에 이 언니는 오세란, 스물 두 살이구요 법대 다녀요. 이 언니는 한민정, 스물 한 살이구요 무용과생이구요. 저는 이영숙이고 스무살이에요. 국문과 반이구요. 저희 다 같은 학교에요.”
“아 그래요? 대학생끼리 휴가 오신 거구나. 아 참, 제 소개를 먼저 할 걸 그랬네요. 저는 스물 여덟이구요 이름은 조광남입니다. 평범한 직딩이구요, 앞으로는 편하게 광남씨라고 부르세요. 아저씨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시구요.”
세 자매는 남자의 자기 소개에 환하게 웃었다. 네 사람이 자기 소개를 하는 사이 직원이 주문한 고기와 술을 갖고 와 테이블에 차린 후, 고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자, 우리 술부터 한 잔 씩 할까요? 술 잘 마셔요?”
“네, 없어서 못 먹어요. 호호호.”
민정이가 오프너를 가져가더니 맥주를 따서 광남에게 술을 따라 주었고, 영숙이는 편하게 말을 놓으라고 말하였다.
“에이, 그럴 수 있나요. 초면에 말을 놓는 건 예의가 아니지.”
“괜찮아요. 한참 오빠신데요 뭐. 편하게 말씀 놓으세요. 저희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민정이의 말에 광남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다음에, 다음에. 말은 혹시라도 인연이 돼서 다음에 또 만나면 그 때 놓을게요. 그래도 오빠라고 부르는 건 좋네요. 영광입니다. 하하하.”
앞에 놓인 잔에 모두 술을 채운 네 사람은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신 네 사람은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세란 씨는 법대생이면 고시 준비하는 분인가요?”
세란이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대답하였다.
“네.”
영숙이가 세란이에 대해 거들고 나섰다.
"우리 언니 장난 아니에요. 벌써 사시 1차 합격하고 이번에 2차 봤어요. 어쩌면 한 번에 붙을지도 몰라요 헤헤."
영숙이의 말을 들은 광남이 깜짝 놀란 듯이 말하였다.
"그래요? 우와, 세란 씨는 진짜 머리가 좋은가보다. 혹시 천재 아니에요."
광남의 말에 세란은 수줍게 손을 저었다.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운이 좋았어요."
옆에서 세란이를 보고 있던 민정이가 세란의 어색한 행동에 왜 그러냐며 물었다.
“언니, 이상하다. 어디 아퍼? 얼굴은 빨개가지고 평소의 언니답지 않게 너무 조용한데?”
“맞어. 진짜 언니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처음 만나는 사람과 별로 낯을 가리지 않는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인 세란의 어색한 행동에 민정이와 영숙이가 이상하다며 물어보았다.
“아냐, 괜찮아.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조금 더워서 그런거야.”
“더우세요? 여기요 이모, 에어컨 좀 더 세게 틀어주세요.”
“네.”
“아, 안 그러셔도 돼요. 이모 괜찮아요. 놔두세요.”
“네.”
에어컨을 더 세게 틀어주려던 직원이 세란이의 말을 듣고 자리로 돌아갔다. 광남이 세란이의 빈컵에 물을 따라주며 말하였다.
“어쩌면 새벽에 너무 놀라셔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이럴 때 몸이 너무 차면 몸살 올 수도 있으니까 조금 더워도 물을 좀 많이 드세요. 술은 드시지 마시고. 아셨죠?”
광남의 배려 깊은 행동에 세란은 안 그래도 빨간 얼굴이 더욱 새빨개지며 수줍게 대답을 하였다.
“네, 감사합니다.”
민정이와 영숙이는 그런 세란이를 보며 뭔가 눈치를 챈 듯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소근대며 키득키득 웃었다.
“오빠는 무슨 회사 다니세요?”
민정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그냥 부산에 있는 작은 무역회사에 다녀요. 이름 말해도 모를 거에요.”
“그러시구나. 서울은 안 오세요?”
“아, 서울은 아니고 인천에 지점이 있어서 한 달에 한 두 번정도 출장을 가죠.”
광남의 말을 들은 영숙이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우와, 잘 됐다. 그럼 오빠 인천으로 출장 오시면 우리가 인천 내려가면 또 볼 수도 있겠네요.”
영숙이의 말을 들은 광남이 웃었다.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내가 서울로 가야지 왜 세 사람이 인처으로 와요 힘들게.”
“진짜 오빠 너무 매너 있으시다. 오빠 여자친구 있으세요?”
민정이의 물음에 광남이 고개를 흔들었다.
“노노, 헤어진지 꽤 됐어요. 벌써 한 3년 됐나. 세 사람은 남자친구 당연히 있죠?”
광남의 물음에 민정이와 영숙이가 손을 내저으며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광남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아니 이렇게 예쁜 친구들이 남자 친구가 없어요. 서울남자들 완전히 호구구나. 이렇게 예쁜 친구들을 놔두고 어디에 한 눈을 파는거지.”
광남의 말에 민정이와 영숙이가 깔깔대며 웃었다. 세란이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 없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오빠 오빠, 우리 중에 누가 제일 예뻐요? 등수 한 번 매겨봐요.”
영숙이의 제안에 민정이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래 재밌겠다. 한 번 해봐요 오빠.”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세란이 말리고 나섰다.
“에이, 부담스러우시게 왜들 그래. 고기 익었으니까 먹기나 해.”
세란이의 말에 민정이가 그냥 재미로 하는건데 왜 그러냐며 광남에게 한 번 말해보라고 보챘다. 그러자 광남이 웃으며 세 사람을 차례대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음, 다 예뻐서 도무지 순위를 매길 수가 없겠는데? 세란 씨는 지적인 분위기에 얼굴도 예쁘고 큰 키가 매력적이시고, 민정씨는 무용과답게 몸매가 너무 날씬하시고, 영숙씨는 소녀 같기도 하고 성숙한 아가씨 같기도 한 게 진짜 베이글녀네. 아, 숙제가 너무 어렵다. 우리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자자, 건배!”
“건배!”
세란을 제외한 세 사람은 잔을 들어 건배를 하였고, 다 익은 고기를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