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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76
민정이는 상추에 고기와 나물 쌈장을 얹어 쌈을 싸서 광남에게 주었다.
“오빠, 이거 드세요. 아아.”
민정이 자신의 입에 쌈을 넣어주려고 하자 어색해 하던 광남은 못 이기는 척 쌈을 받아먹었다.
“음, 맛있다. 민정 씨는 쌈을 맛있게 쌀 줄 아네요. 정말 맛있네 허허허.”
광남이 자신이 싸 준 쌈을 맛있게 먹자 민정이는 자기도 쌈을 싸달라고 졸랐다.
“오빠, 저도 싸 주세요. 아아”
민정이가 광남을 향해 귀엽게 입을 벌리고 있자, 광남은 쑥쓰러운 듯이 웃었다.
“그럴까요? 그럼.”
광남은 한 손에 상추를 올리고 고기와 나물을 차례대로 얹기 시작하였다.
“아잉, 그거 말고요. 네, 그거 그거 김치도. 아아.”
광남은 민정의 주문에 따라 쌈을 싸서 그 녀의 입에 넣어주었고, 민정이는 예쁘게 쌈을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음, 진짜 맛있다. 오빠가 싸 주니까 훨씬 맛있는 거 같아요.”
광남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깨가 쏟아지는 민정을 보고 영숙이 샘이 나는 듯 웃었다.
“언니, 두 사람 너무 붙어 있는 거 아냐? 그러다 정분 나시겠어.”
“왜? 정분 나면 안 돼? 오빠, 우리 썸이나 탈까요?”
민정이의 말에 광남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러면 내가 너무 호강인데. 세란 씨. 이제 좀 괜찮아요? 굽지만 말고 좀 먹어 봐요. 이거 잘 익었다. 자.”
광남이 잘 익은 두툼한 갈비 한 점을 세란 앞에 놓아주었고, 세란은 광남에게 미소를 지었다. 민정은 세란이를 챙기는 광남을 보며 한 소리 하였다.
“오빠, 옆에 앉은 사람 나거든요? 아까부터 은근히 세란 언니만 챙기시는 거 같아요. 이거 샘 나는데 어쩌지?”
그러자 광남이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에이 아냐 아냐, 그냥 몸이 안 좋아 보여서 걱정이 돼서 그런 거지, 내가 누구를 챙기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잖아요. 민정 씨 너무 오버한다.”
당황하는 광남의 반응이 재미 있는 민정이와 영숙이는 광남을 놀리기 시작하였다.
“어머, 정색하시는 거 보니까 더 의심스러운걸? 오빠 우리 언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말야. 민정 언니 이리로 와. 세란 언니 그 쪽에 앉히게.”
“싫어. 내가 찍었단 말야. 오빠 나 옆에 계속 앉아 있어도 되죠?”
광남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 없이 웃기만 하였고, 세란이는 동생들에게 그만 하라고 말하였다.
“얘들아, 그만 해. 광남 씨 곤란하시겠다. 미안해요. 얘들이 좀 짓궂어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세란이의 사과에 광남은 손을 저으며 웃었다.
“아니에요. 장난인데 뭐. 재미있고 좋기만 하네요. 하하하.”
광남이 웃으며 말하자 민정이 옆에서 정색을 하는 척 하며 말하였다.
“어머 오빠. 나 진짜 오빠 찍은 거 맞다니까요? 오빠는 나 마음에 안 들어요?”
민정의 질문에 난감한 광남은 말없이 웃으며 이마를 물수건으로 연신 닦았고, 세란이는 민정이가 광남에게 관심을 보이자 속은 쓰렸지만 그녀를 띄워주기 시작하였다.
“민정이 진짜 괜찮은 애에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고, 인기도 진짜 많아요. 한 번 잘 해 보세요. 민정이 너 남자친구 없는 게 꽤 되지 않았니?”
세란의 물음에 민정이 손가락을 꼽으며 대답하였다.
“가만 보자, 하나 둘, 우와 벌써 2년이 다 돼가네. 언니 나 대학교 들어와서 제대로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잖아. 오빠 우리 사귈까요? 호호호.”
민정의 적극적인 대시에 광남은 계속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요. 한 번 잘 해 보세요. 둘이 잘 어울리는데.”
세란이의 말을 들은 광남이 세란에게 물었다.
“그런데 세란 씨는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에요?”
뜬금 없는 광남의 물음에 세란은 당황하였다.
‘지금 제 앞에 있잖아요.’
세란이는 속으로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광남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민정이의 얼굴이 실망감에 젖어 드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요? 생각을 안 해 봤는데. 갑자기 물으시니까 좀. 그냥 저는 피부가 하얗고 날씬하고 좀 부드럽게 생긴 남자가 좋아요.”
세란이는 민정이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고, 세란이의 이상형을 들은 광남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서 왠지 모르게 서운한 기운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영숙이는 놓치지 않았다.
“이거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 왠지 삼각관계 같은걸? 오빠 혹시 세란 언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에요?”
영숙이의 질문에 광남이 또 정색을 하며 대답하였다.
“아냐 아냐, 그냥 술자리에서 남자 여자끼리 이상형 같은 거 많이 물어보잖아요. 차례대로 물어 보려고 했지. 민정 씨는 이상형이 어때요?”
광남의 질문을 들은 민정이 간단하게 한 마디 하였다.
“오빠요.”
민정의 대답을 들은 광남은 얼굴이 빨개지며 영숙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음, 이거 이거 나는 왠지 페인트로 껴 넣으시는 거 같은데? 뭐 어쨌든 물으시니까, 저는 얼굴은 많이 안 따지구요. 그냥 나만 좋아해 주고, 내 말 잘 듣는 남자가 좋아요.”
영숙이의 이상형을 들은 민정이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말하였다.
“하이구, 니가? 니가 얼굴을 안 따진다고? 말도 안 돼. 얘는요, 원빈이 와도 얼굴 갖고 꼬투리 잡을 애에요. 얼마나 따지는게 많은 지 원.”
“웃기시네. 언니보다 안 따지거든요?”
“됐거든? 니가 더 따지거든?”
민정이와 영숙이가 티격태격 하기 시작하자 세란이 이들을 말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니들도 같이 갈래?”
“아냐. 괜찮아.”
“나도 괜찮아요. 언니 다녀와요.”
민정은 화장실로 가서 가볍게 얼굴에 물을 적시고 거울을 쳐다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튀어 나왔다.
“휴우, 그래 니 꺼 아니다 세란아. 정신 차리자.”
세란이는 휴지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세란이 자리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민정이와 영숙이가 화장실에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니들 방금 전까지는 안 간다더니. 니들 나 왕따 시키니?”
세란의 핀잔에 두 사람은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미안해 언니, 술을 많이 마셨는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네. 우리 금방 갔다 올게요.”
민정과 영숙이는 옷가지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얘, 화장실 가는데 뭘 그리 다 챙겨서 일어나.”
세란이의 물음에 영숙이가 밖으로 나가며 대답하였다.
“그냥!”
광남과 단 둘이 남은 세란은 어색해서 죽을 것 같았다. 잠시 손에 쥔 물컵만 만지작 만지작 거리던 그녀가 광남에게 말하였다.
“동생들이 좀 짓궂죠? 죄송해요.”
세란이의 사과에 광남이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였다.
“전혀요. 저도 동생들 덕분에 간만에 재미있게 노네요.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어디 흔한가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하.”
세란이는 광남의 넓은 마음 씀씀이에 다시 한 번 마음 속에서 잔잔한 파도를 느끼고 있었다. 또 다시 어색해진 사람은 말없이 창밖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 10분 쯤 됐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동생들이 궁금한 세란이 광남이 들리도록 혼잣말을 하였다.
“이상하다. 얘들이 왜 이렇게 안 오지.”
그 때 마침 세란의 핸드폰에서 카톡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민정이의 카톡이었다.
“언니, 좋은 시간 보내고 와요. 우린 우리끼리 놀다가 호텔로 갈게. 오늘 호텔방은 영숙이랑 내가 접수할 거니까 언니는 다른 데서 자기!”
민정이의 카톡을 받은 세란은 광남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와 민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니들 어떻게 된 거야.”
“응, 언니. 데이트에나 집중하시지 왜 전화를 하고 그래 호호호.”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야. 빨리 와. 같이 놀게.”
“됐거든요. 언니나 광남 오빠랑 즈을거운 시간 보내고 오세용. 시험도 끝났는데 스트레스 좀 푸셔야지. 치마 밑에 거미줄도 좀 걷어내고. 하하하”
민정이의 옆에서 깔깔 대며 웃는 영숙이의 목소리도 들려 왔다.
“얘, 민정아. 너 광남씨 마음에 든다며. 보니까 괜찮은 사람 같은데 한 번 잘해 봐. 저 사람 언니 스타일 아냐.”
세란이의 말을 들은 민정이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흥, 거짓말 하시기는. 언니, 지금 언니만 모르지 언니 얼굴에 ‘나 반했어요’ 하고 써 있거든요? 오빠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재밌게 노십쇼.”
민정이의 말을 들은 세란은 당황스러워서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 거렸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언니 그냥 끊어. 택시 왔단 말야.”
영숙이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민정이가 전화를 끊었다.
“언니, 우리 바쁘니까 내일 봐요. 안뇽.”
세란이는 전화를 끊고 잠시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출입문으로 걸어가서 혼자 앉아 있는 광남을 눈치 못채게 훔쳐 보았다. 그는 말 없이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란이는 화장실로 가서 얼굴에 물을 묻히고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세란이는 아까의 모습과는 달리 붉은 장미처럼 빨갛게 물든 두 뺨에 입가에는 잔뜩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세란이는 휴지를 꺼내 얼굴의 물기를 닦고 옷매무새와 헤어를 가다듬은 다음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