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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77
세란은 잔뜩 수줍은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창밖을 바라보던 광남은 세란이 자리에 앉자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동생들이 뭐라던가요?
“네?”
광남의 말에 세란은 순간 당황하였다.
“알고 계셨어요?”
세란이 묻자 광남은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말하였다.
“네. 착한 동생들이에요 참.”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민정이와 영숙이, 착하고 눈치 빠른 두 동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상황은 이랬다. 세란이 화장실로 떠난 사이 민정과 영숙은 광남에게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하여 물었다.
“오빠, 좋아하는 스타일이 어떤 스타일이에요?”
“말해 봐요. 네?”
두 사람의 물음에 광남은 쑥쓰러운 나머지 얘기를 어물쩡 넘기려고 하였다.
“그냥 뭐, 뭐 남들처럼 그냥 쪼금 예뻤으면 좋겠고, 좀 착하면 좋을 거 같고, 음...”
광남의 답답한 태도를 본 영숙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아유, 답답해. 오빠, 세란 언니 어때요? 괜찮죠?”
영숙이의 돌직구를 받은 광남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눈을 살짝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남의 대답을 들은 영숙이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 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까부터 자꾸 세란 언니 쳐다보시구, 은근히 챙기시더라니.”
민정이는 광남의 대답에 아쉬운 표정을 잔뜩 지었다.
“하아, 그럼 난 헛물만 켠 건가. 나 너무 불쌍하다. 기껏 놀러 온 부산에서 양아치들한테 봉변 당해, 마음에 드는 남자한테는 까이질 않나.”
민정이의 대답을 들은 광남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아냐 민정 씨, 까이긴 누가 까였다고 그래.”
민정의 장난을 보다 못한 영숙이 민정의 옆자리로 다가와 민정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아얏! 아퍼.”
“언니! 장난 좀 그만 쳐. 이 오빠 또 진짠 줄 알잖아.”
“그럴까? 알았으니까 말로 해. 기지배야 호호.”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광남은 한편으론 어리둥절 하면서도, 아까 전에 세란이 말했던 이상형이 신경 쓰여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이 있는 게 중요한가요. 세란 씨 이상형은 나하고 완전히 반대던데.”
광남의 말을 들은 민정과 영숙이 깔깔 대며 웃었고,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본 광남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거 세란 언니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 거에요. 처음에 광남 오빠 자리 비웠을 때 민정 언니가 자기가 오빠 찍었다고 말했더니, 세란 언니가 민정 언니랑 엮어줄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 거라니깐요.”
영숙이의 말을 듣자 광남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 보였다. 티를 안 내려고 하였지만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음, 그런데 그걸 두 사람이 어떻게 알아. 셋이 얘기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광남의 물음에 민정이 걱정도 팔자라는 듯 광남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말하였다.
“속고만 사셨나. 우리 언니가 그래요. 자기가 좀 손해 봐도 가까운 사람 먼저 챙기거든요. 우리가 세란 언니 성격을 모르겠어요? 우리 언니 딱히 좋아하는 스타일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좋은 사람 좋아하지. 영숙아 너 아까 봤어? 자기 스타일 말 하고 나 막 띄워 주는데 얼굴은 완전 굳은 거?”
“맞어 맞어. 하여간 거짓말이 서툴다니까. 얼굴에 표가 다 나요 하하하. 하여간 세란 언니 완전 귀여워. 지금 화장실에서 막 울고 있는 거 아냐?”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세란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광남은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오빠, 오빠도 정말 우리 언니한테 관심 있는 거 맞죠?”
민정이 다시 한 번 광남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민정의 물음에 광남은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네, 처음 봤을 때부터 세란 씨만 눈에 들어왔네요.”
“아우 어떡해.”
민정과 영숙이는 광남의 말에 자기들이 더 신나서 서로 부둥켜안고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고, 닭살이 돋은 듯 자기의 양팔을 막 비비던 영숙이가 민정이에게 나가자고 말하였다.
“언니, 나가자 우리.”
“그럴까? 그럼, 언니 들어오면 우리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나가자.”
“오케이.”
두 사람이 나간다고 하자 광남은 미안한 마음에 같이 놀자며 말렸다.
“에이, 그러지 마요. 부산 잘 모르잖아. 내가 좋은 데로 데려갈 테니까 같이 놀아요. 난 넷이 같이 있는 것도 좋아요.”
광남의 말을 들은 민정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오빠, 우린 좀 이따가 나갈 거니까 우리 언니 재밌게 해 주세요. 언니 왔는데 재미 없었다고 하면 우리 둘이 오빠 회사 쫓아갈 거에요. 아셨죠?”
광남은 민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니에 대해 부탁하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마치 혈육의 정마저 느낄 수가 있었고, 그런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광남은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광남은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고마워요 두 사람.”
민정이는 영숙이에게 빨리 나갈 수 있게 미리 짐을 챙겨 놓으라고 말하였고, 두 사람이 물건을 정리하는 사이 세란이 자리로 돌아왔다.
“식사 다 하셨으면 우리 나갈까요?”
“네.”
“잠시만요, 먼저 대리 운전 좀 부를게요.”
“네 그러세요.”
전화를 걸어 대리 기사를 부른 광남은 세란이에게 칵테일 좋아하냐고 물었다.
“네, 좋아해요.”
“제가 가끔 찾는 호텔 스카이라운지가 있는데 거기 칵테일이 괜찮거든요. 분위기도 좋고. 우리 거기로 갈까요?”
“네.”
잠시 후 대리 기사가 도착하여 차에 오른 두 사람은 고깃집에서 1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호텔 스카이라운지를 찾았다. 부산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창가에 자리 잡은 두 사람에게 주문을 받기 위해 매니저가 걸어왔다.
“세란 씨 즐겨 드시는 칵테일 있으신가요?”
“아뇨, 저 칵테일은 많이 안 마셔봐서 잘 몰라요. 좋은 거 추천 좀 해주세요.”
“그러시구나. 음, 그럼 깔루아밀크 어떠신가요? 밀크커피에 알콜을 섞은 거라서 맛도 달콤한 것이 젊은 여성분들 드시기에 깔끔하고 부담이 없거든요.”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세란이 메뉴를 정하자 광남은 매니저에게 주문을 하였다.
“여기 깔루아밀크하고 저는 항상 마시던 거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매니저가 자리를 떠나자 세란이 웃으며 물었다.
“단골이신가 봐요. 말 안 해도 매니저가 즐겨 드시는 칵테일을 아는걸 보니.”
“네, 좋은 사람들 만나면 꼭 여기를 찾거든요. 분위기가 좋아서.”
“어머, 여자들이랑 많이 오셨었나보다. 칫, 광남 씨는 바람둥이신가 보다.”
세란이 삐진 척 살짝 입술을 삐죽거리자 광남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노노, 절대 아니에요. 연애를 해 본 지가 벌써 3년도 넘었는걸요. 여기는 친구들이나 거래처 사람들하고 어쩌다 한 번 오는 거에요. 하하하 땀 나네 갑자기.”
광남의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귀여운 세란은 금새 표정을 풀고 웃어보였고, 세란의 표정을 본 광남도 웃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애인 만나신 게 3년이나 되셨어요? 제법 오래 되셨다.”
“네, 그냥 어쩌다 보니 헤어졌는데 일 하느라 바쁘다보니 벌써 그렇게 됐네요. 세란 씨는? 이런 거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저도 뭐 특별할 것도 없는데요 뭐. 마지막으로 남자 친구 사귄지는 1년 좀 더 됐어요. 1학년 여름방학 지나고 과 1년 선배하고 몇 개월 사귀었는데, 저 2학년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사시준비 시작하고 그 오빠 군대 가면서 자연스럽게 깨졌어요.”
“아, 그렇구나. 이번에 사시 2차시험 보셨다면서요?”
“네, 올 10월에 발표 나요.”
“잘 됐으면 좋겠네요. 시험 준비가 사람 피 말린다던데.”
“네, 힘들긴 힘들죠. 아, 진짜 작년까진 쓸만했는데 사시 준비하면서 폭삭 삭았다니깐요.”
세란이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엄살을 부리자 광남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지금 세란 씨 얼굴이 삭은거면 옛날엔 얼마나 이뻤다는 거에요? 정말 믿겨지지가 않네 하하하.”
“어머, 진짜에요. 그래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엔 피부도 좋고 몸도 제법 날씬 했는데 맨날 책상 앞에 앉아 있다보니 흑흑.”
세란의 징징거림에 광남이 테이블에 두 팔을 기대어 얼굴을 들이밀며 세란의 얼굴을 쳐다 봤다. 광남의 얼굴이 자신에게 바짝 다가오자 세란은 얼굴을 붉히며 똥그래진 눈으로 광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광남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웃으며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눈 꼬리엔 주름도 자글자글 한 거 같고, 눈 가엔 기미도 좀 있고, 피부도 좀 푸석푸석해 뵈고, 음 목에도 주름 있는 거 같은데요?”
광남의 말에 세란이는 당황하며 백에서 손거울을 꺼내어 자기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하였으나, 이어지는 광남의 말에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시가 더 어려워져서 판검사 되기가 대통령 되는 거 만큼 어려웠으면 좋겠네요. 우리 세란 씨 얼굴이 정말로 미워져서 내 눈에만 예뻐 보이게. 그럼 언제고 우리 다시 만나더라도 나는 항상 세란 씨를 예쁘게 바라봐주는 유일한 남자일 테니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