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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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78

세란이는 가슴이 콩당콩당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다. 행여나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광남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은 세란이는 광남의 짙은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랑에 떨리는 가슴을 숨기지 못하는, 언제부턴가 잊고 지냈던 또 다른 모습의 세란이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마주보고 있었다. 

“주문하신 깔루아밀크, 그리고 항상 드시던 애플마티니 나왔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매니저는 칵테일을 각자의 앞에 놓고 자리를 떠났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며 예쁜 잔에 담겨 있는 녹색과 하얀색의 칵테일은 보고 있는 세란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광남은 애플마티니를 손에 들고 세란에게 건배 제의를 하였다. 

“세란씨, 우리 짠 한 번 할까요? 자, 건배!”

“건배!”

세란이는 처음 접해보는 깔루아밀크의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하며 한 모금 입속에 머금었다. 달짝지근한 그 맛은 마치 머드쉐이크를 마시는 것 같았고, 혀와 목을 타고 내려가는 부드러운 넘김이 세란이의 마음에 쏙 들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네요? 제 맘에 쏙 들어요.”

세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광남이 다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래요? 마음에 드신다니 참 다행이네요. 머드쉐이크랑 비슷하니 맛이 괜찮죠?”

“네, 정말 맛있네요. 왜 이런 걸 이제 알았을까.”

깔루아밀크가 마음에 든 세란이는 몇 모금을 더 삼켰고, 술잔은 금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술이 마음에 많이 드셨나보네요 하하하. 그래도 너무 급하게 드시지는 마세요. 그래 봬도 도수가 한 20도 정도는 할 거에요. 급하게 마시면 취합니다.”

광남의 말에 깜짝 놀란 세란이는 입술에 손을 대며 말하였다. 

“어머, 이게 그렇게 쌔요? 웬만한 소주보다 더 쌘거구나.”

“네, 천천히 드세요. 원하시면 또 주문할게요.”

“에이, 뭐 어때요. 취하면 광남씨가 잘 데려다 주시겠죠. 그쵸? 호호호.”

술이 몇 모금 들어가자 세란이는 슬슬 긴장이 풀리면서 예의 그 털털한 성격(다소 푼수끼가 있는)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계속 수줍어하는 세란이를 보며 조심스러웠던 광남은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였다. 

“그거야 그렇죠. 하하하.”

두 사람은 칵테일을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서로가 사는 곳, 하는 일, 가정 환경, 장래의 희망 등 마치 선 보는 자리처럼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물었고, 그렇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둘 사이의 허물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서 좋은 술을 마신 세란이는 어느새 칵테일을 네 잔이나 비우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광남이 세란이를 어떻게 하려고 억지로 술을 먹이는 것이라고 비춰질 정도였다. 네 번째 칵테일을 비운 세란이는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오버페이스를 한 탓에 순간 몸이 비틀거렸다. 

“괜찮아요 세란 씨?”

광남이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세란이를 부축하였다. 

“아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시험 때문에 한 동안 안 마시다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갑자기 많이 마셨더니 바로 오네요 호호호. 저 화장실 좀.”

“저랑 같이 가요 세란 씨.”

광남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을 다녀온 세란이는 답답하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계산을 마친 두 사람은 호텔 근처 분수대에 마련된 벤치에 나란히 앉아 바람을 쐬었다. 

“하아, 시원하다. 술 기운이 슬슬 올라왔었는데 이렇게 시원한 물줄기 보면서 바람을 쐬니까 정신도 돌아오는 것 같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세란이는 술을 깨려는 듯 두 팔을 넓게 벌려 깊은 숨을 들이 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하였고, 광남은 그런 그녀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좀 괜찮아요? 어쩐지 너무 급하게 마시더라.”

“아니에요. 나 술 다 깼어요. 보실래요?”

세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두 팔을 양쪽으로 뻗으며 앞에 깔려 있는 보도블럭의 경계선을 따라 일자로 걷기 시작하였다. 

“어때요? 나 멀쩡하죠?”

광남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세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광남의 옆으로 뛰어와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것이 마치 검은색 페인트를 엎어버린 것처럼 어두컴컴하였고, 군데군데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작은 별들과 휘영청 둥글게 떠 있는 보름달은, 이제 막 시작하려 하는 이 커플을 축복할 자격이 있는지를 누가 더 밝게 빛나는가 로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광남은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세란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바라보며 감탄해 마지않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광남은 그녀의 볼에 키스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함박웃음이 절로 피어났고, 그런 광남의 표정을 본 세란은 헤벌쭉한 그의 표정이 재밌다는 듯 깔깔대며 웃었다. 

“하하하, 광남씨 그 표정은 뭐에요. 정말 재밌다.”

“네? 아 네,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하하하.”

지금 나란히 앉아 있는 이 두 사람은 더 이상의 어떠한 말이나 행동 표현이 없어도, 이렇게 함께 앉아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세란이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 하고 광남의 이름을 불렀다.

“저, 광남 씨.”

“네, 세란 씨.”

“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요?”

“네, 물어보세요.”

세란이의 시선은 온통 광남의 입술로 향해 있었다. 남자답게 적당히 두툼하고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굳게 일자로 다물어져 있는 광남의 입술은 세란으로 하여금 뜨겁게 키스를 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은 입 안에서만 뱅뱅 맴돌 뿐, 세란이는 수줍음에 광남과 시선도 마주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저기, 그러니까요. 광남씨 입술을 보면요. 뭐랄까,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저기... 읍.”

세란이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광남의 두툼한 입술이 세란이의 도톰하고 작은 입술을 덮어버렸다. 세란이는 놀라서 두 눈이 똥그래졌으나, 이내 두 눈을 감고 광남의 체온을 입술로 느끼기 시작하였고, 광남은 세란의 입술을 부드럽게 훔치며 손으로 그녀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세란이 고등학교 때 경험했던 첫 키스도 지금처럼 떨리지는 않았으리라. 세란이의 마음은 사춘기 소녀처럼 요동치기 시작하였고, 광남에게서 입술을 뗀 세란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어제 새벽 호텔 로비에서 택시를 타고 떠나는 광남의 뒷모습을 보며 느꼈던 그 설렘의 감정을 두근거리는 목소리에 실어 보냈다.  

“날 사랑하나요?”

세란이의 갑작스러운 고백에도 광남은 전혀 놀라는 빛 없이 따스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였다. 그리고 진심을 가득 담은 한 마디로 떨리는 그녀의 마음을 포근하게 적셔주었다.  

“나만 할까요?”

광남의 말을 들은 세란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광남은 세란의 사랑스러운 돌발행동에 응해주며, 그녀를 단단한 두 팔로 꼬옥 안아 주었다. 두 사람의 뜨거운 키스는 멈출 줄을 몰랐다. 세란이 입술을 떼려하면 광남의 입술이 그녀에게 다가갔고, 광남이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세란이 입술로 그의 말을 막아버렸다. 뜨거운 키스 후에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어색함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둘은 알고 있었다.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의 물줄기 사이로 아침 햇살이 고개를 내밀 때 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를 뜨겁게 원하는 조광남과 오세란이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세란이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광남의 품에 얼굴을 묻었고, 광남은 자신의 품에 안기는 그녀를 넓은 가슴으로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내버스가 모습을 드러낼 무렵까지 벤치에 머물며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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