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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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90

은애는 방에 들어간 후, 겉옷을 벗고 자신의 속옷을 체크하였다. 검은색 브래지어와 티 팬티, 그리고 가터벨트와 커피색 스타킹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은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흡사 야동에서 보았던 포르노 배우들의 섹시하고 음란한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은애는 몸을 요리조리 몸을 돌려가며 자신의 온 몸을 구석구석 살폈고, 손으로 브래지어의 끈과 팬티 끈, 가터벨트의 밴드를 가지런하게 정리하였다. 난생 처음 입어보는 티 팬티가 하루 종일 불편하였던 은애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곧 있으면 받게 될 하루 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감이 충만한 은애는 방에 불을 끄고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기왕이면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선물을 창식이가 직접 뜯어보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창식이가 더 흥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은애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정장을 입은 채로 가지런히 침대에 누워 창식이가 얼른 들어와서 자신을 안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창식이는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던 진영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애 쓰고 있었다. 그 동안 은애와의 행복한 만남에 깔끔하게 잊은 줄만 알고 있었던 진영이에 대한 감정이 사실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었음을 최근의 일들을 겪으면서 깨닫게 된 창식이는 오늘 은애와 함께 하는 시간 내내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영 좋지가 않았다.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과 배려, 웃음을 보내주는 은애를 보며 이제는 정말 진영이에 대한 감정을 말끔하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창식이는 다시는 진영이의 안부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우연히라도 그녀를 떠올리지도 않겠노라고 스스로 굳게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속죄의 차원에서 은애에게 작은 이벤트라도 해 줘야겠다 싶어 그에 대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뭘 해 주면 은애가 기분이 좋을까. 아, 그런 쪽으로는 해 본 적이 없어서 영 생각이 안 나네. 흠, 선물을 해 줄까. 마트에서 알바비 받은 걸로?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는 거 같긴 한데. 내가 처음으로 알바해서 번 돈이니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던 창식이는 스르르 눈이 감기고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는 은애는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창식이가 전처럼 방문을 열고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얘 도대체 왜 이렇게 안 오지? 설마 자는 거야?”

은애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 이미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은애는 궁금한 마음에 창식이가 있는 방으로 직접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하였으나,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식이게 갖은 서비스를 다 해주겠노라고 스스로 누차 다짐을 하긴 하였지만, 자신이 직접 찾아가기에는 아직 너무나 쑥스러웠고, 혹시라도 창식이의 방에 들어가다가 우연히 부모님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이면 민망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다시는 창식이 집에 놀러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은애는 자리에 누워 창식이가 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은애는 졸음을 참느라 연신 하품을 하였고, 결국 창식이에게 전화를 하기로 하였다. 창식이는 자다가 머리 맡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위이잉, 위이잉.’

“아, 이 시간에 누구냐. 잠도 없나?”

창식이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발신번호를 확인하였다. 

“우리자기?”

은애였다. 무심코 전화를 받을 뻔한 창식이는 다시 핸드폰을 손에 쥐고 고민을 하였다.

‘왜 안 자고 전화를 하지? 설마.’

창식이는 지금 자기가 머릿 속에 그리고 있는 상황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찝찝한 것이 왠지 전화를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은애가 에이. 그래도 혹시?’

잠시 진동을 멈췄던 창식이의 핸드폰이 깜깜한 적막을 뚫고 또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하였다. 

‘위이잉, 위이잉,’

창식이는 순간 중년의 남성들이 아내의 샤워하는 소리만 들어도 집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세 번이나 실패를 하고 난 후라, 창식이는 은애와의 잠자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 그러면 이젠 변명할 꺼리도 없다. 꺼리도 없어.’

그 동안 낯선 여자들과의 섹스를 통해 자신의 발기부전이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자가진단한 창식이는 그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은애와의 잠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새벽에 은애의 전화가 오는 것을 보고 혹시 은애가 자신과이 스킨십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창식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일단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까? 그러다 내가 생각한 게 맞으면 어쩌지? 아, 저번에 은에 자고 있을 때 내가 찾아간 게 은애도 기분이 좋았던 건가? 이거 어떡해야 되냐, 진짜 미치겠네.”

이후로도 창식이의 전화기는 몇 분 동안이나 요란스럽게 ‘위이잉’ 소리를 내며 울려댔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창식이는 결국 자는 척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은애는 불편한 옷차림새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만 하였다. 

은애가 새벽을 하얗게 지샌 날 아침, 창식이네 식구와 은애는 식탁에 마주앉아 식사를 하였다. 

“은애 양, 많이 먹어요? 부족한 거 있으면 얘기하고.”

어머니가 은애에게 국을 떠주며 말하였다. 

“네,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은애 학생 잠자리가 불편했나?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네.”

“네? 아, 아니에요.”

은애의 푸석한 얼굴을 본 아버지가 잠을 잘 못 잤냐고 묻자 은애는 웃으며 잘 잤다고 대답하였다. 창식이는 옆에 앉은 은애의 얼굴을 슬쩍 쳐다본 후, 묵묵히 밥 먹는데 열중하였다. 아침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창식이 방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이른 시간에 나가봐야 마땅히 할 게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창식이의 졸업앨범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은애가 새벽에 왜 전화를 안 받았는지 창식이에게 물었다. 

“맞다, 피곤해서 자느라고 전화 못 받았어. 미안해 은애야. 그런데 왜 전화 했어?”

“응? 어, 그냥. 우리 자기 많이 피곤했구나. 전화도 못 받고.”

“전화 안 받으면 와서 얘기하지 그랬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름의 꿍꿍이가 있었던 은애는 창식이가 자고 있는 방에 갈 수가 없었다. 이유를 차마 말 할 수가 없는 은애는 대충 얼버무리며 웃어넘기고 말았다. 

“창식이 너는 고등학교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네. 아유 이 머리 짧은 거 봐. 똥글똥글 하니 진짜 귀엽다. 호호호.”

“귀여워? 그럼 나 다시 머리 짧게 깎을까?”

“됐거든요. 머리는 군대 갈 때 깎으세요. 아셨죠 우리 낭군님?”

“귀엽다는 것도 뻥인가 보네.”

“아냐 아냐, 우리 창식이는 두상이 이뻐서 머리 깎아도 귀여워.”

은애는 창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은애의 얼굴을 바라보던 창식이는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해주었다. 창식이의 키스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은애도 창식이의 입술에 키스를 해주었고, 두 사람은 몇 번이고 키스를 주고 받았다. 오붓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점심 무렵에 집을 나선 창식이와 은애는 김밥집에서 도시락을 사서 인근 공원의 놀러갔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도시락을 먹고 난 후, 창식이는 은애의 무릎에 머리를 뉘이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세상 걱정 없이 둘만의 시간이 마냥 좋기만한 창식이와 은애는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창식이 너는 군대 언제 갈거야?”

“글세, 내년 쯤엔 가야 되지 않을까.”

“그럼 우리 이렇게 같이 있는 것도 1년밖에 안 남은거네.”

“하하, 아직 한참 남은 일을 갖고 뭘 벌써부터 걱정을 해.”

“걱정은 누가 했다고. 그냥 하는 말이지.”

“은애 너는 어학연수 같은 거 안 가?”

“안 그래도 엄마가 보내준다고 다녀오라고 하셔. 울 엄마가 나한테 거는 기대가 좀 크시거든.”

“야 은애야, 혹시 너희 어머니 나 보시고 까무러치시는 거 아냐? 우리 귀한 딸내미 남자친구 너무 허접하다고.”

“니가 뭐가 허접해? 내 눈엔 왕자님인데.”

웃으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은애의 얼굴이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처럼 눈이 부신 창식이었다. 창식이는 은애의 뺨을 손으로 어루만져 주었다. 

“은애야, 내가 그렇게 좋아? 응?”

창식이의 물음에 쑥스러워진 은애가 창식이의 코를 비틀었다. 

“으이그, 하여간 짓궂지 짓궂어.”

“아얏, 아퍼 하하하.”

"나 어학연수 너 군대 가는 거에 맞춰서 갔다 올까 생각 중이야."

"오오, 나 기다려 주게?"

"왜, 싫어?"

"아니 그냥 뭐."

"뭐죠? 이 거만한 반응은? 다시 말해 봐. 다시."

은애가 창식이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웃었다. 

"아냐 아냐, 영광이야. 엄청 고마워 하하하."

공원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 두 사람은 오후 네 시쯤에 서울역에서 작별을 하였다. 조금이라도 은애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창식이가 서울역까지 따라나선 것이었다. 

“피곤할텐데 그냥 들어가지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

은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창식이에게 그냥 인천에서 헤어졌으면 좋았을 것을 왜 따라왔냐고 타박을 하였다. 하지만 잔뜩 기분이 좋은 얼굴 표정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벌써 왔는데 뭐, 그나저나 이제 개강할 때까진 못 보겠다.”

창식이의 말에 은애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야. 대학교 처음 왔을 때는 첫 여름방학을 엄청 기대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개강이 기다려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치?”

“그러게 하하하. 은애야, 기차 시간 다 됐어. 어서 가.”

“그러네. 그럼 나 갈게. 창식이 너도 조심해서 가. 가자마자 푹 쉬고.”

“알았어. 기차 타면 전화해. 집에 가면서 전화하자.”

“그래, 맞다. 창식아 잠깐만 얼굴 좀 대 봐.”

“응? 왜?”

창식이 은애 쪽으로 얼굴을 가져가자 은애가 창식이의 뺨에 쪽하고 입술을 맞추었다. 

“나 간다. 안뇽.”

은애가 뛰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창식이고 그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전철을 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면서 창식이는 은애에게 정말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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