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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92
이명훈 실장은 요 근래 이 회장과 황 실장에 대하여 여기저기 알아보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의 팀이 갑자기 해체되어야만 했던 이유와 영숙이의 부탁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난 번 황실장의 위협이 있고난 후, 이 실장은 집요하리만치 은밀하고 깊숙이 이 회장의 숨겨진 속내와 황 실장의 정체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이 실장은 창고에서 일을 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네, 이명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사장님. 장 사장입니다. 통화 가능 하십니까?”
“네, 잠시 자리 좀 옮기겠습니다.”
이 실장은 창고 뒤편 외진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네, 장 사장님. 말씀하시죠.”
“부탁하신 것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 황명구 실장이라는 사람, 뒤가 많이 구린 사람이더군요.”
이 실장은 저번 황 실장의 방문 이후로, 혼자서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흥신소에 몇 가지 일을 부탁해 놓았었다. 지금 이 실장이 통화하고 있는 장 사장이라는 사람은 그 흥신소의 대표로, 이 실장이 부탁한 일 중에 한 가지인 황 실장의 정체에 대해 알아낸 사실을 보고하기 위하여 이 실장에 전화를 건 참이었다.
‘알아냈나보군. 영숙이가 준 3천 만원이 꽤 요긴하게 쓰이는구만.’
이 실장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들이마신 후 연기를 내뿜으며 말하였다.
“휘우우, 네 말씀하세요.”
“일단 이 황명구 밑에 오른팔 격인 곽충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한테 미행을 붙였구요. 그런데 이 곽충재라는 사람이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하는 얘기를 직원이 녹취를 했는데, 그 황명구라는 사람 목포 소재 군소 조직의 조폭 두목 출신이더군요.”
‘역시 그랬었군. 내 짐작이 틀리지가 않았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이 실장은 담담하게 보고를 계속 들었다.
“녹취한 내용 중에 딱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더 없었고, 활동했던 구역만 간신히 입수를 해서 저희 직원들이 현장에 내려가서 황명구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습니다. 이 황명구라는 사람 목포 유흥가에서 나이트하고 룸 몇 개 관리하면서 삥이나 뜯어먹고 살던 친구인데, 10여 년 전 쯤에 이정수 회장하고 인연이 닿으면서 조폭생활 청산하고 밑에 있던 조직원들 10여 명 정도를 이끌고 서울로 상경해서 이 회장의 일을 봐주고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시는 것처럼 2년쯤 전부터는 이 회장의 공식 비서실장으로 활동 중이구요. 지금 그 친구가 이끄는 비서팀 전원이 그 때 데리고 올라온 조직원들이랍니다.”
“그 인연이라는 건 뭡니까?”
“황명구가 관리했던 가게의 웨이터의 소개로 황명구가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그의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을 만나서 사정을 물어봤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이 회장이 룸살롱에서 아가씨 문제로 옆방 손님들과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 시비 붙은 상대방이 그 지역 건달들이었다더군요. 그래서 이 회장이 이래저래 낭패를 당할 처지에 놓여있었는데, 그 때 그 일을 깔끔하게 해결해 준 사람이 황명구였답니다. 그 때의 신세도 있고, 황명구의 솜씨가 마음에 들었던 이 회장이 1년 쯤인가 지나서 황명구에게 서울로 올라와서 자기 일을 도와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더군요. 제안을 받은 황명구는 망설임 없이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반을 모두 정리하고 지금 밑에 있는 조직원들을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고 하구요.”
“그렇군요.”
이 실장은 자신이 비서팀의 막내 시절이던 10여년 전 쯤, 당시 선배에게서 이 회장의 목포 현지 공장 시찰 수행 중에 한 술집에서 잦은 소란이 있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그 일과 연관이 있나보군.’
장 사장이 황명구에 대한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 친구가 이 회장의 비서실장 노릇 외에도 서울 쪽에서 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자세하게 좀 말씀해 주시죠.”
처음 황 실장의 얼굴을 봤을 때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총수의 비서실장이 폭력조직을 결성하려 한다니, 얘기를 들은 이 실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 황명구를 미행하던 직원이 차량에 설치해놓은 도청장치에 황명구의 통화내역이 녹음이 되어서 확인을 해 봤는데, 상대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서울 쪽에 조직을 재건할 테니까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내용이 있더군요. 자금은 자기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면서요.”
‘흠, 거 참 이상하군.’
이 실장은 황명구의 조직 재건 움직임에 의구심이 들었다. 서울에 아무 연고도 없는 그가 조직을 재건하고 다른 조직들과 세력 다툼을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텐데 과연 그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을까 의문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실장의 느낌으로 황 실장이 누군가의 통화에서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다면 필시 이 회장이라는 배경을 믿고서 일을 추진하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상식적으로 그룹의 총수가 언제고 자신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는 폭력조직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 실장이 들은 정보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장 사장의 보고가 계속 되었다.
“일단 통화내역을 분석하고 황명구의 동태를 예의주시 하고 있는데,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 쪽 계통의 사람이더군요.”
“혹시 황명구의 움직임 뒤에 이 회장이 연관되어 있는 겁니까?”
“네, 그것도 저희가 알아보려고 했는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쉽지가 않더군요. 제일 확실한 방법은 황명구의 계좌를 털어보면 자금이 어디서 흘러들어오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것만 짚어보면 이 회장의 연루 가능성을 바로 알 수 있을텐데 아시다시피 저희가 은행 직원도 아니고, 경찰은 더더욱 아니고 말입니다 허허허. 아, 물론 약간의 추가비용을 부담하신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이게 워낙 전문적인 일이라서 해커 섭외해야지, 단속 해야지 이래저래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이 실장은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의 짐작에 이 회장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에 자금을 대줄리는 만무하고, 필시 황명구가 이 회장 모르게 뭔가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자신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훗날 이 회장에게서 황명구를 쳐낼 때 이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가 될 것임이 확실하였다.
“네, 알아봐 주시죠. 비용은 얼마면 되겠습니까.”
“3백 쯤이면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내일까지 전에 말씀하셨던 그 계좌로 입금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착수해서 결과 나오는 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아달라고 부탁드렸던 여자에 대해서는 무슨 소식이라도 좀 있습니까?”
“아 네, 그게 워낙 오래전 일이고 주신 정보가 사진 한 장 뿐이라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이게 찾아내기가 영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뭐 아직까지 이 조선땅에 발 붙이고 살아있다면 저희가 사람 찾는데는 전문가니까 조만간 무슨 소식이든 있을 겁니다. 우선 주신 사진을 토대로 20여년 전 쯤에 이 회장을 모셨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탐문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그 때 당시 이 회장의 수행비서로 근무했던 사람이 사진 속의 여자를 기억하고 있더군요. 얘기를 듣자니, 사진 속의 여자가 당시 강남에 있는 모 와인바에서 직원으로 근무를 했었는데, 우연히 거기를 찾은 이 회장이 여자에게 한 눈에 반해서 밀회가 시작됐다더군요. 해서 그 때 그 와인바를 운영했던 사장을 수소문해서 사진을 보여주고 여자의 간단한 신상명세를 알아내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네, 우선 거기까지라도 말씀해 주시죠.”
“음 보자, 우선 서울 출생이고 당시 나이가 스물 셋, 지금 살아있다면 나이가 마흔 여섯이겠군요. 이름이 조현경, 조현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