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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타는 천화장 (1/56)

(1) 불타는 천화장

휘이익....휘이익....

11월의 매서운 바람이 천지를 몰아치는 밤...

대지를 훤히 비추던 달도 시커먼 먹장구름에 몸을 숨기고, 

대지위에는 그 해의 마지막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쏴아아...

하늘을 찌를 듯한 태산준봉들에 둘러싸인 곳에 자리한 넒은 평지...

족히 수천평은 되보일것같았다. 

그분지 한가운데는 고루거각이 즐비한 한체의 장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두두둑...두둑...두두둑...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는 11월의 얼어붙은 대지를 때리기 시작했고...

사람의 숨소리도 삼켜버릴듯한 어둠에 휩싸인 장원도 훔뻑 비에 젖어갔다.

잠시 시커먼 먹구름사이로 환한 달이 장원을 비추다, 

곧 자취를 감추었다.

그순간 땅에 뿌리를 박고 웅장하게 서 있는 거대한 대문앞에 걸린 현판이 보였다 사라졌다.

'천화장'

거센 비를 뚫고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착각을 주게 만드는 힘차고 거센 힘이 느껴지는 필체로 쓰여진 현판.

한데,

정말 이곳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4장중 한곳인 천화장이란 말인가...!

현재 중원대륙은 십여개의 초거세들이 광대한 지역을 분할하여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수천년 무림사에 언제나 변함없이 우뚝 솟아있는 구파일방,

정사마를 대표하며 세력을 넓혀가는 3개의 문,

강남북의 패자로 자청하는 2개의 부,

그리고 아무곳에도 속하지 않으며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4개의 장이 있었다.

거의 3백년간 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4개의 장.

천화장, 지수장, 현죽장, 황석장.

천하무림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4개의 장중 하나인 천화장이 지금 어둠에 묻혀 있는것이었다. 

장원이 온통 아름다운 꽃으로 둘러싸여 있어 천화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그 꽃의 종류도 바뀐다고 했다.

현재 장주인 호연수는 천화장에 대대로 내려오는 화무십일홍이란 절기로 천하무림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스륵...스르륵...사삭...

그런데 이 소리는 무엇인가...

그 넓은 천화장의 주위 여기저기서 은밀하게 사람의 인기척이 나타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는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고...

자정이 되기전에 천화장의 주변은 사람으로 물샘틈이 없이 꽉 들어찼다.

비줄기가 세차게 퍼붓는 와중에도 꼼짝안고 서 있는 무리들...

아마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되는 듯 한결같이 얼굴에 시커먼 두건을 걸쳐쓰고 있었다.

등에 메거나 손에 쥔 검, 도, 철퇴등의 여러가지 병장기를 보아 하나의 집단이 아닌 여러집단이 모인 것같았다. 

하지만, 두건사이로 드러난 사람들의 눈에 하나같이 시퍼런 안광을 내뿜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반 하류잡배들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럼 이 많은 무림고수들이 무엇하러 천하장에 몰려들었는가, 

그것도 이 어두운 밤중에 두건을 쓰고...

천화장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리는듯 숨쉬는 소리도 내지 않은체 나무 목상처럼 묵묵히 서 있었다.

그때,

화르르르...화르르르...

넓은 천화장의 동편 한구석에서 어둠을 밝히려는듯 화광이 솟구쳐올랐다.

곧,

"불이야...불이야..."

"불을 꺼라...물을 가져와..."

천화장의 동편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천화장밖에 있는 사람들은 병장기를 움켜잡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누구하나 앞으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불이 났지만 천하무림에 3백년동안 우뚝 서 있는 천화장이 아니었던가...

여기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탐욕에 물든 빛이 번져갔지만, 

감히 천화장에 먼저 뛰어드는 무모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빨리, 빨리 물을 가져와...

"이쪽에서 불이 붙은거 같다...물을 가져와..."

천화장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얻은게 아닌듯,

처음에 무질서하게 움직이던 발걸음소리가 어느덧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자,

복면 괴인들의 눈에는 초조함이 깃들기 시작하다,

"들어가자..."

"쳐라..."

성질급한 몇사람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천화장의 높은 담을 넘어 갔다.

"와...들어가자..."

"와...우리가 먼저다..."

그것이 신호탄이 된듯,

천화장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천화장의 담을 넘어 들어갔다.

창창...차차창...

"침입자다...막아라...하악..."

"으윽...분하다, 여기에서..."

"아앗...누구냐..."

"침입자다...빨리가서 장주님을 보호하자..."

천화장의 내부는 순신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고,

여기저기서 병장기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어둠에 휩싸여있던 천화장의 곳곳에서는 화광이 솟구쳐 훤한 대낮같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

멀리 높이 솟구친 봉우리사이에 보이는 동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고...

밤새도록 퍼붇던 빗줄기도 거의 멈추어 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뚝 솟아 있던 고루거각들은 여기저기 부셔져 있고,

천화장 내부에는 곳곳에서 파아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제밤의 싸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여기저기에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었고,

깨어진 가재도구들이 방방마다 수북히 쌓여 있었다.

땅에 쓰러진 시체들은 대부분 잠옷바람이었고 간간히 복면을 한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차...차장...

"저기 한놈이 있다...잡아라..."

"크윽...분하다, 하지만 너놈들은 반드시 벌을..."

밤새동안 숨어있던 젊은 하인이 집안을 샅샅히 뒤지던 복면 괴한에게 들켜 도망치다,

앞에서 다가오던 다른 복면괴한의 철퇴에 머리를 맞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장원 깊숙한 곳...

여기는 다른 곳에 비해 깨끗했다.

하지만 한쪽편에 있던 비단이불에는 수많은 칼자국이 찍혀 있었고, 

벽에는 많은 병장기자국이 널려 있는것으로 보아 극심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었다.

한쪽 벽에는 오색 병풍이 한쪽으로 쓰러져 있었고,

바닦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주위에 네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복면을 한 사람들의 눈에서는 쇠라도 녹일 정도의 날카로운 안광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극고수들인것을 

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짐작할수 있을 정도였다.

"으음...호연수를 비롯한 식구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다니..."

"제길, 이런 비밀통로가 있울 줄이야..."

네명중 오른쪽 두명이 쇠가 갈라지는 것같은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며 신음했다.

일부러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 변성을 한 게 틀림없었다.

"할수없지...얼마 못갔을 것이니 함께 힘을 모아 찾아봅시다..."

"좋소...우리 모두가 천라지망을 친다면 제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호연수라도 어쩔수 없을거요...천수검의 비법이 적힌 양피지 비급은 

누가 가지던 하늘의 뜻이 아니겠소..."

"그럼, 한사람이 한방향씩 맡기로 하고 흩어집시다..."

"내가...동쪽을 맡겠소..."

휘익...휙...

네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바람처럼 사라졌고,

천화장의 내실에는 쥐한마리 기어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데, 천수검이라니...

천하 5대절기중 하나인 천수검을 말하는 것이란 말인가! 

천하 5대절기.

일향도, 천수검, 수라각, 일월수, 무풍지.

수쳔년 무림사를 통해 현제까지 나타난 무공중 가장 강하다는 5가지 무공...

일향도.

심신을 맑게 해주는 향기를 맡으면 무조건 도망가라,

그래야 한가닥 살아날 확률이라도 있으니까...

폐부를 시원하게 해주는 향기를 내뿜은 한줄기 도광, 

하지만 그 향기를 맡으면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천수검.

차라리 그 자리에 서 있어라,

그래야 온전한 시신이라도 남기니까...

한줄기 빛도 빠져나올수 없는 수천수만의 검강,

제아무리 빠른 경공이나 보법을 지닌자도 빠져나오기에 불가능했다.

수라각.

아수라의 현세인가,

차라리 웃는것이 낳을것이다...

아수라의 울음소리를 내며 힘차게 뻗치는 각력,

혼은 이미 저승에 가서 구천지옥을 헤매고 있을 것이었다.

일월수.

낮에는 해를 피하고, 밤에는 달을 보지마라,

어짜피 영원히 어둠만을 볼것이니...

햇빛과 달빛에 숨어 접근하는 수도, 

빛의 혜택을 받는 자는 영원히 피할수없다.

무풍지.

바람이 없다고 안심하지 마라,

이마에 바람구멍이 뚫렸으니까...

소리도 기척도 없이 다가드는 지풍,

아무리 초절정의 감각을 가져도 결코 느낄수 없다.

인간의 무술로는 더이상 이룰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5가지의 초절기,

이름은 있으나 직접 보기는 불가능한 절기들...

왜냐하면 5대절기를 본 사람중 여태까지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5대절기중 천수검이 복면인들의 말에 의하면,

천화장주 호연수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인데...

4명의 복면인들이 떠난후 얼마되지 않아 천화장에는 개미새끼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함에 휩싸였고,

어느새 여기저기 쓰러져 있던 복면인들의 시체는 말끔히 치워졌다.

오직 천화장의 식솔들과 무사들의 시신만이 널부러져 있고, 

시체썩는 냄새와 피비린내만이 넓은 평지를 가득 메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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