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무영림
짹짹...짹짹짹...
사방이 온통 아름드리 나무로 우진 울창한 숲.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온갖 새소리.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한낮인데도,
너무나 울창한 숲이라 어두스름해 마치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을 연상시켰다.
그런 숲의 동쪽 편...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었다.
울창하게 둘러싸여 있던 나무가 한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새벽녁의 호수가처럼,
짙은 안개가 가려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짐작되지 않는 지역이 있었다.
그리고,
안개가 시작되는 앞에 아주 낡고 조그만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입자필사(들어오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 무영림주 -
아...
짧지만 너무나 광오한 문귀였다.
무영림주가 누구이길래 이런 말을 함부로 할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무림인이라면 절대 그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 팻말을 보고 오금이 떨려 바지에 오줌을 질근 싼후,
삼십육계 줄행량을 쳤을 것이다.
무영림...
이 울창한 숲에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안에 누가 머물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근처에 사는 나무꾼들이 제일 먼저 이 곳을 발견했다.
몇명의 나무꾼이 아무것도 모르고 안개속에 발을 내딪었을때,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후...
일반사람들은 이 안개지역에 접근도 하지 않았고,
무영림은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무림에 전해졌다.
호기심이 많은 몇명의 하류무사들이 무영림을 찾아와,
팻말에 쓰여진 광오한 글귀를 읽고 코웃음을 쳤다.
용기있는 한두명의 무사들이 안개안으로 뛰어들어간후,
곧바로 처절한 단발마가 들리고 정적을 되찾았다.
남은 무사들은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혼비백산하여 줄행량을 쳤다.
그러나,
그깟 하류무사 몇명이 죽었다고 무영림이 무림에 공포의 장소가 된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5년전...
동쪽 무림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떨게 만든 마인이 있었다.
고독신마...
홀로 무림을 떠돌아 다니며 온갖 나쁜짓은 모두 하고 다녔다.
살인, 겁간, 약탈등등...
의협심이 많은 정파 무림인들이 고독신마의 만행을 참지 못해 자리를 떨치고 분분히 일어났지만,
고독신마의 일신절학은 너무나 높았다.
정파에서 무명을 날리던 기인들을 비롯하여 의협심으로 똘똘뭉친 신진고수들이 고독신마의 일초반식도 못받아내고 추풍낙엽처럼
사라져 갔으니...
고독신마는 더욱 오만해져 날로 악행이 늘어갔다.
마침내,
30년간 은거해 있던 홍인선자가 고독신마의 악행을 보다못해 먼지낀 선장을 꺼내들었다.
처음 고독신마가 홍인선자와 대면했을때,
평소와 같이 홍인선자의 고운 자태를 보고 입에 침을 질질 흘렸으니...
홍인선자는 불같이 노해 삼십여근이나 나가는 선장을 치켜들고 아미파의 절기를 쏟아내었다.
50년전,
천하의 구파일방중 한곳인 아미파의 속가제자중 일이위를 다투었던 홍인선자가 아니었던가...
그제서야 심상치 않음을 느낀 고독신마...
자신의 독문절학을 펼치며 대항했지만,
한번 빼앗긴 기선을 만회하기엔 홍인선자의 무공수위가 너무 높았다.
고독신마는 홍인선자와 수천초를 겨룬끝에 더이상 버티지 못한체,
만만치 않은 부상을 입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홍인선자는 악의 뿌리를 뽑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독신마를 쫓기 시작했다.
고독신마는 악전고투를 치루며 무영림까지 도망을 왔다.
그리고,
팻말을 읽은 고독신마는 불같이 노했다.
비록 홍인선자에게 패해 도망을 치고 있지만 자신의 무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고독신마가 아닌가...
고독신마는 쫓기는 자신의 신세도 잊어버린체 안개속으로 뛰어들었다.
하나 일각도 지나지 않은 시각,
안개속에서 하나의 물체가 빛살보다 빠르게 튕겨져 나왔다.
홍인선자는 고독신마를 뒤쫓아 막 무영림에 도착한 순간,
무영림에서 튀어나온 물체를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잠시후,
홍인선자는 물체를 보고 기겁을 해 한발짝 뒤로 물러설수 밖에 없었다.
그 물체는 얼굴이며 몸이 온통 짖이겨져 형상을 알아볼수조차 없었고,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홍인선자도 처음보는 끔찍한 형상이었다.
몸서리쳐지는 경악의 순간이 지나간후,
시신의 옷을 보던 홍인선자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체,
뒤로 물러가다 엉덩방아를 찌었다.
그 물채는 다름아닌 고독신마의 시신이었던 것이었으니...
고독신마가 누구인가?
홍인선자는 자신이 천하에서 백손가락안에 든다고 항상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 자신과 수천초를 겨룬후 겨우 반초를 져 패한 인물이 고독신마가 아니던가...
천하에서 한순간에 고독신마를 저렇게 만들수 있는 인물은 열손가락안으로 꼽을 정도였다.
홍인선자는 제정신을 차렸다.
무영림을 벗어난후,
천하무림인을 향해 경고했다.
"염라대왕을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무영림에 가지 말라"
그후,
무림인들은 무영림을 금역으로 정하고,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헌데,
아주 평화롭던 숲속에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다.
무림의 금지인 이 무영림을 찾아올 간덩이가 부은 사람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휘이익..탁...탁...
한명의 어린 소년을 업은 여인이 나타났다 싶은 순간,
아름드리 나무들을 발로 차며 순식간에 무영림앞에 내려섰다.
절세의 고수가 아니면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의 경공을 발휘한 여인...
젖가슴과 아랫배등 중요한 곳만을 겨우 가릴정도로 여기저기 찢겨진 누런옷.
크고 작은 상혼으로 뒤덮힌 매끄럽고 흰 피부.
듬성듬성 잘려나간체 헝크러진 머리카락.
며칠동안 씻지 못한듯 더러워진 얼굴.
하나 여인의 눈은 달랐다.
전쟁에서 임무를 완수한 전령처럼 자신의 일을 끝마친 안도감으로 아주 평온하고 고요한 빛을 띠고 있었다.
여인은 숨이 차는지 헉헉거리며 소년을 내려놓았다.
"헉헉...드디어 형부가 말한 무영림에 도착했구나!"
"그럼, 아빠가 천화장에서 이모에게 이야기한게 나를 무영림에 데려가라는 것이었구나"
여인의 등에서 내린 소년...
여인과 마찬가지로 아주 더러웠다.
하나 앞에 있는 여인을 쳐다보는 눈은 지혜가 가득담겨 있었다.
그런데 소년의 모습이 아주 낮에 익었다.
천화장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쫓기던 그 소년이었다.
그럼 여인은...
조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희생한 염향림이 분명했다.
사실 여인의 몸으로,
그것도 소년을 업은체로 무수한 강적을 피해 수천리을 달려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은 염향림이 아니라 누구였다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년을 위한 희생...
사랑하는 정인이며 형부인 호연수의 일점혈육,
친언니 염향운의 독자,
자신의 조카이면서 거의 아들같은 소년을 위한 희생정신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한것이었다.
실제 염향림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조카에 대해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중간에 어쩔수없는 상황에 소년과 몸을 섞었지만,
그것또한 모성애에 따른 희생이기 때문에 가능했었는지도...
염향림과 소년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순간,
휘익...탁...탁...
"저, 저기 년놈들이 있다."
"흐흐...독안에 든 쥐다. 꼼짝마라..."
"그렇게 도망치다니...결국 여기에서..."
"히히히...순순히 우리에게 잡혀라..."
험상궂은 네명의 괴한이 나무를 발로 차며 순식간에 염향림과 소년앞에 내려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