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죽음을 초월한 희생
산서사흉중 첫째의 눈빛을 읽은 염향림...
그녀는 위급함을 느꼈다.
이미 자신은 깊은 내상을 입어 산서사흉의 공격을 받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린 조카는 살려야 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난관을 뚫고 여기가지 온것이 어린 조카때문이지 않은가..
순간,
염향림의 눈에 안개 자욱한 무영림이 들어왔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소년을 향해 나지막히 속삭였다.
"천웅아...이모의 말을 잘들어라...이제 우리는 위기를 빠져나갈 가망이 없다. 너 아버지가 말하기를 무영림에는 기인이 살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너에게 설명해줄 시간이 없고, 내가 너를 무영림안으로 던지겠다. 너가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길수밖에...흐윽..."
염향림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감정에 복바쳐 눈물을 흘렸다.
사실 염향림은 조카에게 몸을 줄때부터 죽을 결심을 하지 않았던가...
하나,
자신의 한순간 실수로 조카를 생사도 불분명한 장소에 떨어뜨려야만 한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펐다.
"이, 이모...나도 여기서 이모랑 있을거야..."
나이는 어리지만 너무나 똑똑한 소년.
그가 이 상황을 모를리 있겠는가...
소년은 어리지만 염향림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염향림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최후의 노력을 한다는 걸...
무영림안에서 살아날 확률이 거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기 있는것보단 조금 더 희망을 가질수 있기에 소년을 무영림으로 밀어넣으려는 염향림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염향림의 곁으로 다가가는 소년의 눈.
거기서는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후후...무슨 꽁수를 피우려고 하는 것이냐..둘째, 세째 나랑 같이 저 년놈들에게 가 단칼에 도륙을 내자..."
"그러지요..."
"후후...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산서사흉의 삼흉은 무기를 움켜쥐고 염향림과 소년에게 다가갔다.
중산을 입은 염향림이 동귀어진의 수법을 펼친다면...
자신들의 생명도 보장할수 없기 때문이었다.
염향림과 소년이 있는곳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산서사흉중 삼인의 얼굴은 긴장의 표정이 역력했다.
"천웅아...이제는 더 시간이 없어...부디 살아야 한다. 이 이모를 위해서라도..."
소년을 쳐다보는 염향림의 눈빛...
그곳에는 조카에 대한 애정과 우려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염향림은 얼굴에 미소를 띠려고 노력했다.
조카와 헤어지며 울음을 보이면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처럼...
"이, 이모..."
소년은 염향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웃는 염향림의 얼굴.
비록 먼지와 피에 더러워졌지만,
관음보살의 얼굴보다 더 자애롭고 아름다웠다.
소년은 염향림의 눈을 보고 더 이상 거절할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푹 숙인체 보일듯 말듯 끄덕였다.
염향림은 조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죽기 전에 마음속에 세기려는듯...
그리고,
염향림은 모든 내공을 손에 모아 조카를 무영림을 향해 힘껏 던졌다.
"잘가라, 천웅아...에잇..."
휘익...쎄애액...
"아아...이, 이모...살아야 해요..."
비척 마른 소년의 몸은 순식간에 위로 떠올라 무영림의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고목나무 쓰러지듯 고꾸라지는 염향림의 몸...
무영림의 밖에는 소년의 애처로운 메아리만이 울려퍼졌다.
"어어...너 년이 무슨짓을...!"
"어엇...잡아라..."
한순간 산서사흉은 세명은 기겁을 했다.
염향림이 조카를 무영림안으로 던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기 못한 일이기에...
곧 무영림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산서사흉중 셋째.
그의 몸이 붕 퍼오르더니 소년을 잡으러 무영림안으로 손살같이 들어갔다.
"않돼...셋째, 거기는..."
"아아악..."
산서삼흉의 첫째는 다급히 셋째를 불렀다.
하나 이미 셋째는 몸은 무영림안으로 사라진 후였고...
얼마되지 않아 처절한 단발마가 무영림안에서 들려왔다.
"이, 이 찢어 죽일년...내가 당장..."
셋째를 잃은 산서삼흉의 첫째.
그의 얼굴은 분노로 울그락불그락거렸고,
분노로 꽉 움켜진 철퇴가 부들부들 떨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염향림...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조카를 던지는데에 마지막 힘을 썼기 때문에 개미새끼 한마리 죽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염향림은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조카를 무영림안에 던지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듯...
현죽장에서 호연기를 만나서부터 사랑하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결국 소년을 위해 자신의 몸까지 희생하며 여기까지 온 모든 생활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쳐감을 느끼며 염향림은 혼절했다.
"뿌드득...이, 이...지독한 년...한 칼에..."
기절한 염향림의 곁에 도착한 산서사흉중 첫째.
그는 지독한 염향림의 정신력에 두려움을 느끼며 치를 떨었다.
막 첫째의 철퇴를 들어올려지고,
영향림의 가녀린 여체가 산산조각나려는 순간,
"자, 잠깐 첫째형...기다려요..."
산서삼흉중 둘째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첫째의 손을 잡았다.
"왜 말리는 거지...이년때문에 셋째가 불귀의 객이 되었고...넷째는 한쪽팔을 잃어 버렸는데..."
"후후...나도 알아요...하지만 모든 것이 지나간 일이잖아요...이 년을 죽인다고 셋째가 살아오겠어요. 넷째의 팔이 원상태로 되겠어요...
그리고 이 년이 누군줄 알잖아요...현죽장의 두 딸중 한명이고...흐흐흐...천하육미중 한명인 염향림이라구요...쓰러져 있는 몸을 봐요.
얼굴은 더럽지만 몸하나는...흐흐흐, 그러니 우리가 한번씩 맛을 보고...그런후...첫째형 마음대로..."
"허허허...들어보니 좋은 생각이구나...우리가 어떻게 천하육미중 한명을 품에 안아 볼수 있겠느냐...흐흐흐...너가 여자를 너무 밝혀
못마땅했는데 이번에는 그럴둣한 생각을 했구나...좋아...처음은 이 형님이 맛보겠는데, 이의없지..."
"예...지당한 말이지요...장이유서라고 했는데..."
산서사흉,
아니 지금은 산서삼흉이 된 첫째와 둘째...
그들은 발정난 수컷처럼 입에 침을 질질 흘렸다.
팔이 잘린 산서삼흉중 막내...
그도 어느새 잘린 팔의 혈도를 막아 피를 멈추게 하고,
욕정에 물든 얼굴로 힘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정말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
비록 아빠가 다르지만 형제간아닌가.
한명의 형제가 죽었으면 슬퍼해야 하는것이 인지상정인데,
혼절한 여자를 범할생각을 하며 희희덕거리는 모습이란...
모전자전이라고나 할까.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할 행동을 하면서도 너무나 태연했다.
무영림의 자욱한 안개속...
소년은 커다란 나무위에 걸려있었다.
안개속의 무영림안은 바깥과 같이 나무로 울창했고,
염향림에 의해 던져진 소년은 커다란 나무에 걸려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소년은 염향림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슬픔이 복바쳐 한동안 멍해 있다 서서히 제 정신을 차렸다.
"흑흑...이, 이모는 어떻게 되었지..."
슬픔에 잠겨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소년...
하지만,
안개에 자욱한 무영림안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흐흐...염동한이 딸은 기가 막히게 낳았구나...천하육미란 말이 허언이 아닌것을 이제야 알겠다...이 부드러운 살격과 투실투실한
젖가슴하고..."
"꿀꺽...형님, 그만 뜸들이고 빨리 해치워요...기다리는 우리들이 숨넘어가겠어요..."
"흐흐...알었어, 잠시만 기다려..."
무영림밖에서 들려오는 음침하고 희희덕거리는 소리...
소년의 얼굴이 대번에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 나쁜놈들...않돼, 이모에게 그러지 마...않돼..."
이미 이모에 의해 성에 눈을 뜬 소년.
밖네서 들려오는 소리가 의미하는지 깨닫고 분노에 휩싸였다.
그것은 , 그것은 바로 염향림의 몸을 범하려는 사내들의 소리였기에...
하지만,
소년의 울부짖는 소리는 입속에서 맴돌았다.
이미 기운이 다 빠져 손가락하나 까닥할 힘도 소년은 가지지 않은 것이었다.
소년은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꼈다.
염향림이 자신의 몸을 줄때도,
소년을 구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무영림안으로 던졌을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염향림이 밖에서 산서사흉에게 겁탈을 당하는 소리를 듣자,
어찌해볼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분노마저 느꼈다.
사실,
소년은 천고의 기재였다.
호천웅...
무림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유림에서는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미 3살때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6살에 천하의 3대석학이 더 이상 가르칠게 없다며 짐을 싸들고 나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달리 몸이 허약해 호연기가 온갖 명약은 다 먹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또한 호천웅도 무예에 흥미가 없었다.
무림명가중 한곳인 천화장.
호천웅이 천하제일의 무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없는 이상,
무예를 몰라도 아무 불편이 없었다.
그런 호천웅이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하고 있으니...
자신을 위해 몸까지 희생한 이모가 겁탈을 당하려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은 도움을 줄수가 없었다.
자신의 무능함을 통탄하던 소년,
호천웅은 자신과 주위의 일에 너무나 화가 치민 나머지 정신을 잃어갔다.
만약 다시 자신이 살아난다면,
천하제일의 무인이 되어 자신과 식구들은 괴롭힌 놈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