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천우신조
호천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하자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뒤로 질끈 묶은 희끗희끗한 머리가락.
붉은 대추색의 얼굴색.
주름이 가득한 이마.
가늘게 찢어진 눈.
가슴까지 늘어진 수염.
헐었지만 단정한 노란 장삼.
약간 날카로운 인상의 건강한 노인이었다.
완전히 정신을 차린 호천웅은 어리둥절했다.
"하, 할아버지는 누구예요...그리고 여기는..."
사정없이 터져나오는 호천웅의 질문들...
평소의 호천웅이면 염라대왕이 온다해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 호천웅은 현재 상황이 믿기지 않아 허둥대고 있었다.
"하하...천천히 한가지씩 물러보렴...시간은 많으니까..."
잠시전까지 근심이 어린 얼굴을 하고 있던 노인.
입이 귀까지 찢어지도록 파안대소를 하며 말했다.
마치 죽은 아들이 살아나기라도 한듯...
"미안해요, 할아버지...여기가 하늘나라인가요?"
자신의 성급함을 깨달은 호천웅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무리 천고의 기재지만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못했으니...
호천웅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하하...여기는 천국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너는 죽지 않았느니라..."
노인은 호천웅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제 10살도 않되보이는 소년.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즉시 의연한 자세로 돌아가는데...
말이 쉽지 이런 상황이라면 어른이라도 소년과 같이 행동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나 소년은 자연스러운듯 행동을 하고 있으니...
노인은 소년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며 부드럽게 말을 해주었다.
"그럼 이곳은 어디지요..."
"무영림안이란다...내가 무영림을 돌아보다 나무위에 걸린 너를 보고 구해주었느니라..."
호천웅은 노인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았다.
안개만이 가득한 무영림...
이모 염향림이 무영림안에 기인이 살고 있다고 말은 했지만 반신반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진짜 사람이 살고 있으니...
노인은 호천웅의 얼굴표정을 재미있게 바라보며 자세히 이야기해 주는데...
무영림.
말 그대로 사시사철 안개가 자욱한 숲...
사실 그 안개는 자연적인 안개가 아니고 인공적인 안개였다.
천무혼세진...
천하오대절진중 하나.
창안자가 누군인지는 모른다.
하나,
사방 수천리에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지는데...
진안에는 천변만변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간직하고 있지만,
밖에서는 오직 자욱한 안개만이 보일뿐이었다.
만약 살아있는 생명이 그 진안에 빠진 다면...
곳곳에 도사린 함정에 뼈도 추리지 못할것이었다.
비록 그 사람이 초절정고수라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 것이니...
도저히 살아나올수 없는 절진...
그것이 바로 천무혼세진이었다.
그런 무서운 천무혼세진도 한군데만은 어쩔수 없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늘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위한 창안자의 배려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정설은 아니었다.
땅에는 온통 사문뿐이고 오직 하늘에만 생문이 존재했는데...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중 한그루의 나무만 잘못 밟아도...
아아, 생각하기 조차 끔찍했다.
호천웅이 천무혼세진에서 살아난것은 기적이 아니고는 설명할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염향림이 무영림밖에서 호천웅을 집어던졌을때,
호천웅은 나무위에 걸렸다.
한데 그 나무가 천무혼세진의 생문이었기에 다행이지,
만약 호천웅이 땅에 떨어졌거나 다른 나무위에 떨어졌다면...
호천웅의 혼은 저승을 헤매는 고혼으로 변했을 것이었다.
호천웅의 기적은 그것뿐이 아니었으니...
노인이 나타난 시간도 절묘했다.
이모 염향림이 윤간을 당하는 소리를 듣고 너무 화가 치밀어 혼절을 한
호천웅.
그 여파로 전신의 혈맥이 거꾸로 뒤집히고 울화가 뇌에 치밀어 생사를
헤매고 있었는데...
천운이랄까...
마침 그때 노인이 무영림주위를 돌아다닌 것이었다.
처음 노인이 호천웅을 보았을때,
호천웅을 죽은 시체로 착각해 스쳐지나 갈려고 했다.
하지만,
호천웅의 나이가 너무 어린지라 노인의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이었다.
노인이 호천웅의 늘어진 몸 가까이 간 순간,
호천웅의 심장이 미약하게 뛰는 것을 간파할수 있었다.
해서 노인은 호천웅을 무영림안으로 재빨리 옮긴 것인데...
만약 노인이 그 시간에 순찰을 하지 않았거나,
시체인줄 알고 그냥 지나쳤다면...
호천웅의 몸은 지나가는 까마귀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 뻔했다.
연이은 호천웅의 천운은 계속되었으니...
비록 노인이 호천웅을 무영림안으로 옮겼다지만 그것으로 살아날순 없었다.
허약한 호천웅의 몸에 기혈이 뒤집힐 정도로 분노를 한 호천웅.
이미 심맥은 회복할수 없을 정도로 상했고,
뇌도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따라서,
호천웅을 살리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했는데...
화타나 편작과 같은 명의.
죽은 사람도 살릴수 있을 정도의 명약.
그 두가지가 없으면 호천웅이 살아날 확률도 없었다.
그러나,
하늘이 호천웅을 버리지 않았음인가!
무영림안에는 그 두가지가 다 존재했다.
사실,
무영림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노인한명만이 아니었은데...
정확히 세명.
즉 남자 두명과 여자 한명이 살고 있었다.
중원삼괴...
20년전,
무림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인물들...
독심마의 사마춘,
황금충 황보중,
무심천녀 장은설
바로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