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새로운 생활의 시작
"아아...그랬군요, 할아버지가 제 생명을...제가 이렇게 누워 있어서는
않되고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의 절이라도...으, 으윽..."
호천웅은 노인 즉 독심마의의 말을 듣고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자신이 이렇게 살아있게된 마지막 천운이 바로 독심마의의 의술과
영약덕분이었다는 것을...
호천웅은 독심마의의 너무나 커다란 은덕에 어찌할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생명을 구해주신 어른앞에서 누워 있을수만은 없었다.
호천웅은 침대에서 막 일어나려다 순간,
머리가 핑 도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침대위로 쓰러졌다.
"움직이지 마라...아직은 좀더 요양을 해야돼...너가 이렇게 살아난것은
정말 기적이야...나도 치료를 하며 살아날 확률을 4할정도밖에 보지
않았는데..."
독심마의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호천웅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터질것같은 감격을 느낌 호천웅...
초췌한 두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기까지 온 자신의 지나간 행로가 머리속에 스쳐지나 갔고,
무영림밖에 스러져 있을 이모 염향림의 일이 떠올랐다.
"할아버지...혹시 무영림밖에서 여자는 보지 못했나요..."
호천웅은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 독심마의에게 물어보았다.
"휴으...모르겠다...현재 우리는 무영림밖으로 나가지 못한단다..."
한숨과 함께 수심이 가득 떠오르는 독심마의의 눈...
영특한 호천웅은 독심의마의 표정을 보고, 뭔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군요...제가 괜한 것을 질문해 할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나 모르겠군요..."
호천웅은 독심의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모의 일을 생각하면 당장 무영림밖으로 뛰어나가 알아보고 싶지만
현재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걸 호천웅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괜찮다, 아가야...흐음...두 사람 거의 올때가 되었는데..."
빠르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독심의...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띠며 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꽈다당...
"여가야! 아이는 깨어났느냐..."
문이 열리고 한명의 노인이 방안으로 쏜살같이 들어왔다.
공처럼 동그란 얼굴에 몸에는 살이 쪄 뚱뚱했고,
한손에는 주판을 다른손에는 손수건을 들고있었다.
그 노인은 호천웅이 누운 침대에 다가와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호천웅은 그 노인이 황금충 황보중인것을 눈치챘다.
"할아버지의 존함이 황보중이신가요?"
호천웅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여가가 우리 이야기를 했구나...몸은 어떠냐?"
황금충은 몸집에 걸맞지 않게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호천웅이 막 대답을 하려는 순간,
"호호...두 오라버니가 언제부터 사람에게 그렇게 다정했어요..."
문쪽에서 둘려오는 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
호천웅은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고 문쪽을 쳐다보았다.
치렁치렁하게 허리까지 늘어진 검고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타원형의 얼굴에 만지면 묻어날것 같은 뽀얀 피부,
쌍꺼풀이 선명한 눈과 수정같이 맑은눈동자,
오똑솟은 코와 끝이 약간 올라간 앙증맞은 입술,
전체적으로 약간 거만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눈가와 입가에 맺힌 잔주름으로 인해 포근한
느낌도 풍겨나오는 아름다운 여인이 문가에 서 있었다.
호천웅은 잠시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렸을때부터 호천웅의 주의에는 미인이 많았고,
엄마인 염향운과 이모의 염향림이 천하육미중 두명이었으니...
웬만한 미인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문가에 서 있는 여인...
호천웅이 보아오던 여자들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었다.
호천웅은 여자의 외모뿐이 아니라,
엄청나게 뜨거운 정열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느꼈는데...
자신이 여자에게서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창피한 줄도 모르고...남자란 늙으나 젊으나 모두 같아..."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호천웅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여자의 눈동자에는 야릇한 빛을 포함하고 있었으니...
"미, 미안합니다...아주머님의 성암이 장은설..."
호천웅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새빨개졌고,
말을 하는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흥...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아주머니인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가득찬 장은설...
잘익은 복숭아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하...장누이가 부끄러워 할때도 다 있네..."
"허허허...얼굴 빨개진것 봐...마치 새색시같은데..."
장은설의 행동을 보고 있던 독심마의와 황금충...
집안이 떠나갈듯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뭐, 뭐라구요, 오라버니들...지금 어린아이 앞에서 나, 나를...흐흥,
앞으로 일주일은 내 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요..."
이제는 새빨간 피빛처럼 더욱 빨개진 장은설.
자신도 왜 이렇게 흥분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장은설은 애궂은 두 남자에게 크게 화를 내며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장누이...내가 잘못했어...그것만은..."
"않돼...너무 심하잖아, 장누이..."
우당탕...꽈앙...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독심의와 황금충...
허겁지겁 장은설의 뒤를 따라 눈깜짝할 사이에 문밖으로 사라졌다.
"후후...어린아이들 같으시기는..."
호천웅은 세사람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띠었다.
중원삼괴의 종잡을수 없는 행동에서 끈끈한 정이 느껴졌고,
호천웅은 그런 느낌을 참으로 오래간만에 접해 본 것이었다.
한데,
만약 중원삼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았으면...
자신의 눈을 후벼파며 믿지 못래 까무라쳤을 것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두남자와 장은설이 오라버니와 누이로 호칭할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