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 뜻밖의 기연 (16/56)

16) 뜻밖의 기연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 막 천공의 하늘에 걸쳐지는 시간.

저벅저벅...

호천웅이 인상을 찡그리며 호숫가에 나타났다. 

"휴으... 오늘밤도 몸이 타는 듯한 열기에 괴롭겠지..."

잠시 생각에 잠기다 몸을 진저리친 호천웅은 옷을 입은체 차가운 호수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쏴악~ 쏴악~

달빛을 받으며 호수의 물살을 가르는 호천웅.

언제부터인가...

호수에서 차가운 물에 수영을 하면 운공도중에 생기는 열기가 줄어들까하여 시작한 것인데...

지금은 마치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있었다.

"아~ 시원해..."

후두둑, 툭툭...

수영을 끝마친 호천웅은 물기젖은 옷을 대충 털고 하늘을 보았다.

둥근 달은 이제 하늘 한가운데 우뚝 서기까지 일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호천웅이 태극양의십법을 운공할 자세를 잡지 위해 바위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천웅아, 잠깐만..."

호수에 울려퍼지는 청아한 목소리.

호천웅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너무 잘아는지 활짝 미소를 띤체 고개를 돌리다 깜짝 놀랐다.

바위위에 앉은 호천웅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총 삼인이었다.

무림삼괴.

한데 그들의 표정은 호천웅이 앉은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으니...

호천웅에게 다가간 무림삼괴중 한명이 앞으로 나왔다.

손에는 시커먼 물이 담긴 종기를 바쳐든체 사쁜사쁜 걸음을 내딛는 여인.

천공에 떠있는 달마저 고개를 숙일듯이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

다름아닌 무심천녀 장은설이었다.

"아~"

눈을 뜨곤 쳐다볼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은설의 모습에 탄성의 신음을 내밷는 호천웅...

제자의 모습에 수줍음을 느낀것인가?

장은설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어렸다.

"천웅아! 이 것을 먹고 운공을 해 보거라..."

"그 것이 무엇입니까? 장사부님!"

"시간이 없다. 나중에 이야기할테니 우선 보약부터 복용하거라..."

장은설은 손에 든 사발을 호천웅에게 내밀었다.

얼굴가득 의아함을 떠올린 호천웅은 주저없이 사발을 받아 쭉 들이켰다.

"크윽~"

단숨에 보약을 들이킨 호천웅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그리고,

따끔하게 뱃속에 들어가자 느껴지는 한기...

가슴한가운데부터 시작해 점점 사지백배로 퍼저나가며 호천웅은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딱딱딱...

연신 부팆치는 이빨.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경련하는 팔다리.

거기다 호천웅의 몸에 서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한 빛을 품어 내던 달이 천공에 걸리는 순간.

"천웅아! 지금이야. 태극양의심법을 운공해라!"

독심마의 사마춘이 벼락치듯 고함을 질렀다.

호천웅은 정신을 차리고 태극양의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처음,

뼈속까지 열려버릴 한기는 호천웅의 제어를 벗어나 내부에서 이리저리 날뛰었다.

하지만,

태극양의심법을 운공하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열기와 섞이기 시작하며 기세가 누그러졌다.

한데 호천웅의 내부에 있던 양기와 한기가 완전히 합해질때,

하마터면 호천웅은 혼절할뻔했다.

성난 노도처럼 밀려드는 엄청난 진기의 흐름...

각각 따로 있을때와 비교할때 몇배가 강해졌고,

호천웅은 사력을 다해 진기를 십이주천시켰다.

그러자,

온몸이 날아갈것처럼 가벼워지며 힘이 넘쳐 흘렀다.

또한,

태극양의심법을 마칠때 느껴지던 뜨거운 열기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히으~!"

호천웅이 진기를 갈무리하고 눈을 떴을때,

독심마의 사마춘이 얼굴에 미소를 띠운체 다가왔다.

"천웅아! 어떠냐?"

"아주 상쾌합니다. 도대체 어떤 약입니까?"

"후후~ 오천년된 천년빙어를 고아 즙을 낸 것이다..."

"예옛! 천년빙어..."

호천웅은 사마춘의 말을 듣고 까무라칠듯이 놀랬다.

천년빙어...

얼음처럼 차가운 물속에서 수천년을 산다는 전설상의 영물.

천년을 지나면 뼈와 내장이 다 들여다 보이고,

오천년이 지나면 온몸이 투명해지며 오직 눈만보인다고 전해져 오는 빙어였다.

따라서 그 효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니...

여성이 복용하면 죽을때가지 젊음을 유지하고,

음공을 익힌 무인이라면 단숨에 이갑자의 내공을 얻을수 있었다.

물론 천년빙어가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으니...

양공을 익힌 무림인에게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천년빙어의 음기로 인해 주화입마를 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극양의심법을 익힌 호천웅에게 천년빙어는 무엇보다도 커다란 복이었다.

특히 양기가 음기를 억누르고 있는 시점에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으니...

"황보사부가 천년빙어를 잡느냐고 무척 고생을 했느니라..."

"사부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감격에 겨운 호천웅은 제자리에 넙죽 엎으렸다.

황보중이 호수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던 이유가 자신에게 천년빙어를 잠아주기 위해서였다니...

오직 자신만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부들의 노력에 형언할수 없는 감격이 복바쳐올랐다.

"허허... 일어나거라. 겨우 그만한 일가지고... 내가 부끄럽구나."

황금충 황보중은 만면가득 미소를 띠우고 호천웅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는 장은설의 눈에 맑은 이슬이 맺히고...

심금을 울릴만한 너무나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