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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밝혀지는 신체의 비밀 (17/56)

(17) 밝혀지는 신체의 비밀

대지를 비쳐주던 보름달이 청천을 지나 서서히 서쪽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시간.

호수가에 있는 조그만 집.

깨끗하게 정리된 내부에 몇개의 가구들이 단아하게 놓여있고,

한쪽은 침실인듯 분홍빛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방안에서 풍기는 은은한 방향은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그런 집안의 중앙.

두명의 노인과 한명의 중년미부, 그리고 한명의 청년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무림삼괴와 호천웅...

무심천녀 장은설이 차 한잔을 대접하려 집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호건아! 너의 무공성취는 얼마나 되었느냐?"

독심마의 사마춘이 호천웅에게 질문을 던지자 화기애애하던 주위의 분위기가 갑자기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무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무림삼괴.

이미 호천웅의 신체가 어떤 것인줄 짐작하고 있었으니...

사마춘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모두가 궁금하면서도 감히 입밖에 내놓기를 꺼려했던 것이었다.

호천웅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입을 떼었다.

"제가 우둔하여 아직 완전히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녀석아! 누가 그것을 말하라고 했느냐! 태극 양의심법을 몇성까지 익혔는지나 말해라?"

"예, 예... 오늘 천년빙어의 즙으로 인해 이제 겨우 사성을 넘겼습니다..."

"사, 사성..."

"어머... 그럼 벌써 오갑자의 내공을..."

호천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림삼괴는 입을 쩍 벌렸다.

호천웅의 나이가 몇인가?

이제 겨우 12세...

한데 태극양의심법을 사성까지 터득하고 오갑자의 내공이라니...

아무리 호천웅이 천재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지만,

상상도 못할 정도의 진도였다.

만약 일반 무인이 호천웅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몇번이나 까무라쳤을 것이었다.

아니 자신의 천령개를 쳐 자진을 했을지도 몰랐다.

우매한 자질을 한탄하며...

하지만,

무림삼괴는 잠시후 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호천웅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너무나 잘알고 있지 않은가...

한데,

무림삼괴중 독심마의 사마춘의 안색은 다른 두 사람과 몹시 달랐으니...

황금충 황보중과 무심천녀 장은설의 입가에 가득 미소가 어린 반면,

사마춘의 얼굴에는 짙은 근심이 서려있었다.

"사마사부님... 미천한 제자를 꾸짖어 주십시요..."

사마춘의 모습을 본 호천웅.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릅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마춘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이 자신의 더딘 무공진도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인가?

호천웅의 갑작스런 행동에 황금충과 장은설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천강혼성지체.

그 하늘의 천형은 20세가 되기전까지 태극양의심법을 팔성이상 익히면 되지 않던가?

이제 12세인 호천웅이 사성에 다달았으니 천강혼성지체의 굴레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은데...

황금충과 장은설은 의문이 가득한 눈초리로 바뀌며 사마춘을 쳐다보았다.

"사마늙은이... 뭐가 잘못되었나?"

"휴으~ 나도 확실치 않다네..."

"무, 무슨 뜻이예요. 오라버니?"

황보중과 사마춘의 이야기를 듣던 무심천녀 장은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호천웅의 일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을 느낀것이었으니...

독심마의 사마춘이 누구인가?

당대에 손꼽히는 의술의 대가가 아닌가...

그런 사마춘의 얼굴에 어린 수심을 간단히 생각할수는 없었다.

사마춘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조용히 호천웅을 쳐다보았다.

"천웅아! 너의 신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사, 사부님... 천강혼성..."

"머, 멍청한 놈!"

호천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호통을 치는 사마춘.

호천웅은 가득 노기를 띤 사마춘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숙였다.

그리고,

곁에 있던 황보중과 장은설의 눈가에 가득 이채가 떠올랐다.

이게 왠 개뼉다귀같은 소리람...

호천웅의 신체가 천강혼성지체가 아니란 말일가...

독심마의 사마춘은 노기를 못이기고 계속 씩씩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너는 나의 의학서적을 읽기나 한것이냐?"

"예... 하지만 제가 우매하여 다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사부님..."

호천웅은 연신 머리를 조아릴수 밖에 없었다.

"의술이란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천강혼성지체에 대해서 말해보거라..."

"천강혼성지체란 몇백년만에 한명 날까말까한 특이 신체로 ...... 10세이후에 음양의 조화가 깨지면 피골이 상접되어 죽게된다."

천강혼성지체에 대해 대답하다 호천웅은 흠칫 놀라 멈추었다.

동시에,

황보중과 장은설도 입을 떡 벌렸다.

천강혼성지체의 무서운 점.

호천웅은 그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현재 호천웅의 나이 12세.

강력한 양기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독심마의 사마춘은 서서히 노기를 가라앉히며 말을 했다.

"이제야 알겠느냐... 너가 만약 천강혼성지체였다면 벌써 이승을 하직했을것이니라..."

"사마오라버니. 그럼 천웅이가 그 천형의 신체가 아니란 말입니까?"

사마춘을 향해 말을 하는 장은설.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가득 번지고 있었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태극양의십법을 팔성이상으로 익히지 않으면 20세밖에 살지 못하는 굴레를 벗어던졌는데...

하지만,

호천웅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사부님... 그럼 저의 신체는 무엇입니까? 천강혼성지체만이 음양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태극양의심법을 연마할수 있는데..."

"휴으... 나도 정확히는 알수 없다. 하지만..."

"사마늙은이! 답답하네... 도대체 무엇인가?"

"의학책 어디에서도 그런 신체에 대해서는 찾을수 없네. 다만, 몇몇 의원들한테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신체가 있지. 무성무적지체하고..."

사마춘이 지긋히 눈을 감고 느릿느릿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점점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눈에는 경악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무성무적지체.

인간이 세상에 나온이래,

몇명이나 태어났는지 정확히 알수 없는 천형의 신체.

무릇 세상의 모든 만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기에는 고유의 성을 가지고 있다.

양과 음.

그리고 매우 희귀하지만 양과 음을 동시에 가진 중성도 존재한다.

하나,

무성무적지체.

이 신체는 아예 양과 음같은 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무슨 성이든 받아들일수 있고 한계란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무인이라면 고금제일인이 될수있고,

문인이라면 만세에 이름을 떨칠 석학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하늘의 시샘인가? 

무성무적지체를 타고난 사람은 16세를 넘기지 못했다.

무성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 그자체...

그것에 비하면 양과 음이란 불순물과 같은것이었으니...

정확히 16세되는날.

무성무적지체를 지닌 사람은 몸에 쌓인 음양의 기로 인해 모든 혈도가 폐쇄되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사마춘.

경악의 표정으로 넋을 잃고 있는 황보중과 장은설.

그리고,

무릅을 꿇은체 고개를 푹 숙인 호천웅.

네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체 돌처럼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음! 사마늙은이. 그럼 무성무적지체의 천형을 벗어날 방법이 없는가?"

"휴으~ 미안하지만 나도 아직까지 그것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들어본 일이 없다네."

"하, 하면 왜 천웅이에게 태극양의심법을 익히게 했는가?"

"실날같은 희망때문이지... 전설로 내려오는 태극양의심법의 십이성 단계... 음양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면 혹시 무성무적지체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있지 않을까하는...히으~~"

사마춘은 고개를 위로 쳐들어 천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무릅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호천웅.

사마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자신을 돌보아준 사람들의 영상이 머리속에 스쳐지나가고,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그러나 곧 호천웅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직 끝난것은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 4년...

비록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한가닥 희망은 있으니...

호천웅은 피가 나도록 주먹을 꼭 쥐었다.

주어진 시간내에 태극양의십법을 극성으로 연마할것을...

호천웅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마춘과 황보중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좌절을 해야할 사람은 호천웅이었는데...

찰나간에 새로운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란...

12살의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늠름한 호천웅의 태도에 사부로써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장은설의 모습은 두 사람과 너무 달랐다.

아름다운 얼굴에 떠오른 표정.

그것은 안타까운 빛으로 가득했으니...

"흐윽... 불쌍한 아이... 흑흑...."

후다닥...

꽝~ 

장은설은 결국 얼굴을 손으로 가린체 울며 방안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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