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흔들리는 장은설
무림삼괴...
독심마의 사마춘,
황금충 황보중,
무심천녀 장은설
그들은 무술을 익히는 호천웅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얼굴에 처연한 슬픔과 만족의 미소가 동시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무심천녀 장은설...
그녀의 표정은 아주 복잡했다.
호천웅의 노력에 대한 만족,
어린 호천웅의 어려워하는 모습에서의 애처로움,
장족의 발전을 하는 호천웅의 무예에 대한 감탄,
거기다,
위의 모든 것에 우선하여 장은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몰고올수 있는 것이기에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장은설은 어린티를 벗고 한명의 멋진 사내로 변해가는 호천웅에 대한 야릇한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어찌해볼수 없을 정도로 해일처럼 밀려들어 정신을 못차리게 만드는 흥분과 설레임.
장은설은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자신의 상태에 대해 몹시 불안했다.
40을 훨씬 넘긴 나이에 남자는 벌레보듯 하던 자신이었는데...
이제 막 어린티를 벗는 호천웅에게 남녀의 정을 느끼다니...
장은설은 애써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려 노력했다.
호천웅은 장은설사부에게 어머니로부터 느끼는 포근한 사랑을 감지할수 있었다.
언제나 따듯한 미소,
의문사항에 대해 알기쉽게 해석해주는 섬세한 배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조금도 불평없이 묵묵히 처리해주는 보살핌...
그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베풀기만 하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과 다를바가 없었다.
그리고,
무성무적지체라는 천형의 신체.
그것을 알고도 좌절에 빠지지 않은체 무공에만 전념할수 있는 것도 장은설의 따듯한 배려때문이란걸 부인할수 없었으니...
비록 말은 하지 않지만,
언제나 옆에서 돌봐주는 장은설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못했다.
세월유수.
물같이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호천웅의 무공은 날로 높아져갔다.
천년빙어.
음한지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천고의 영물이라는 그 빙어의 효능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
태극양의심법을 익히며 열기로 인해 느끼던 고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내공이 증진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육개월이 지난 지금 천년빙어의 효능이 다했음인가?
호천웅은 예전과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비록 태극양의심법은 오성이 되어 칠갑자의 내공에 다달았고 음공과 양공을 동시에 펼칠수 있게 되었지만,
내공의 증진에 따라 고통도 더욱 커져 전과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점은 태극양의심법을 익히는 중에만 고통이 찾아올뿐...
평상시에 무공을 익힐때는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따스한 봄날의 오후.
"하앗! 무흔천보~"
호천웅의 입에서 맑은 기합을 터저나왔다.
그러자,
호천웅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곧 처음의 자리에 내려섰다.
한데,
보라...
호천웅의 십여장 주위,
수천 아니 수만개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아아...
그 찰나의 순간에 언제 그토록 수많은 방위를 옮겨다녔다는 말인데...
호천웅은 조금도 쉬지 않고 다시 장소성을 터뜨렸다.
"비마영공!"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천웅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깜짝할 시간이 지났을까?
호천웅의 모습이 원래의 자리에 나타났다.
한데,
호천웅의 손...
하나의 꽃이 들려있었다.
활짝 핀 목련화...
목련화,
그것은 호수 맞은편에만 자라고 있는 꽃이 아닌가?
호천웅이 날개가 달려있단 말인가?
어불성설...
어찌 사람의 몸에 날개가 달려있을수는 없는일...
그럼,
어떻게 호천웅의 손에 목련화가 들려있단 말,
하지만,
믿어야했다.
호천웅은 분명 호수건너편에 있는 목련화를 그 짧은 순간에 가져온 것이었으니...
호천웅의 신발.
아주 미미하나마 물기가 묻어있었다.
"소옥수! 염라제마장~"
잠시 숨을 돌리던 호천웅의 입에서 다시 소성이 터져나왔다.
호천웅이 무예를 익히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호천웅과 십장 떨어진곳
이남일녀가 호천웅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림삼괴...
그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찌그러져있고 입은 함지막하게 별려진체 다물어질줄 몰랐다.
호천웅이 보여준 신위,,,
그것은 무림삼괴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독수마의와 황금충이 십년이상을 고심하면서도 겨우 구성밖에 터득하지 못한 무공들...
한데 호천웅은 그것을 단 오년만에 십성가까이 익혔으니...
청출어람.
사마춘과 황보중은 그 말이 새삼 되새기며 희망에 부풀었다.
어쩌면 호천웅이 16세이전에 태극양의심법을 십이성까지 대성할수 있을지 모른다는...
무림천녀 장은설.
그녀의 눈에는 놀람과 더불어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비록 40이 넘도록 남자를 접해보지도 않고 아기도 낳아보지 않았지만,
호천웅을 처음 보았을때 마음깊은 곳에서 남다른 정을 느꼈던 장은설.
호천웅을 위해 하는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다.
그리고,
일취월장하는 호천웅의 모습을 본 순간,
혼자 살아온 자신의 과거가 후회스러워졌다.
이 순간,
호천웅과 같은 아들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솟구쳤으니...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장은설의 눈에 슬픔이 가득 배어나왔다.
"흐, 흐윽... 흑흑... 이를 어째..."
마침내 장은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자, 장누이! 갑지가 왜 그래...?"
"장누이..."
장은설의 옆에 서 있던 사마춘과 황보중.
청천벼락도 아니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장은설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장은설의 울음은 결코 기뻐서 우는 것이 아닌게 분명했으니...
두 사람은 가슴이 철꺽 내려앉았다.
평소 장은설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라,
큰 일이 아니면 장은설이 이 기쁜 순간 저런 모습을 보일리가 결코 없었던 것이었으니...
"사부님!"
호천웅은 낮에 흘린 땀을 깨끗히 씻은후 저녘식사를 하기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무림삼괴와 호천웅은 무영림에 있는 호수를 가운데 두고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따라서 식사를 위해 사마춘과 장은설의 집사이게 한체의 집을 지어 함께 식사를 했다.
물론 식사준비는 항상 장은설의 몫이었다.
호천웅이 사부들을 위해 식사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장은설이 얼마나 반대를 하던지...
막 방안에 들어서던 호천웅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
방안에는 사마춘과 황보중만이 무겁게 앉아있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맞아주던 장은설의 모습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은 장사부가 너와 저녘을 함께 하겠다는구나... 그러니 가 보거라. 할 말도 있는 모양이니..."
"사부님들은?"
"먼저 먹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마춘은 말을 한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옆에 앉은 황보중은 안따까운 눈빛을 한체 호천웅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그럼, 장사부님집에 다녀오겠습니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호천웅은 굳은 얼굴로 두 사부에게 인사를 한후 뒤로 돌아섰다.
더이상 여기에 있어보았자 들을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는걸 너무나 잘알고 있기에...
방을 나서는 호천웅은 가슴을 짖누르는 불길한 기운에 너무나 답답했다.
아직까지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지 않는가?
호천웅의 신체가 무성무적지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에도 이렇게 무겁지는 않았는데...
호천웅은 발걸음을 빨리해 장은설의 집을 향해 걸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