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 밝혀지는 이부의 흉계 (32/56)

(32) 밝혀지는 이부의 흉계

이야기를 마친 조미련은 어두운 얼굴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된 일이군요. 하면 노호법이 준 서찰에 모든 의문이 들어있겠네요?"

"휴으~ 그렇네... 이제 우리 북도부의 비밀을 모두 알았으니 한번 읽어 보겠나?"

"괜찮으시다면요..."

호천웅은 조미련이 준 서찰을 받았다.

조미련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호천웅은 천천히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그와 함께 너무나 엄청난 서찰의 내용에 경악을 금하지 못했으니...

황산에 가완중일행이 도착했을때에는 늦은 밤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여관이 있어 들어갔을때 이미 상당한 손님이 들어와 있었다.

가완중일행이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상의를 하고 있을때,

복면을 한 괴한들이 침입해들어왔으니...

가완중일행은 급히 전열을 가다듬고 괴한들에 맞섰다.

하지만,

선제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수적으로 열세를 보인 가완중일행은 너무 불리했다.

또한 엎친데 덮친격일까?

싸움을 벌이는 도중 가완중일행은 자신들이 독에 중독된 것을 깨달은 것이니...

자꾸 공력이 모이지 않고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마침내,

가완중일행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황산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파의 인물로써 죽는것보다 더한 치욕이었으니...

한데,

산으로 끊임없이 도주하던 가완중일행과 마주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손을 검을 들고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흔적이 역력한 무인들.

바로 남검부의 부주인 진상필과 수하들이었다.

그리고,

남검부의 무인들을 따라 뒤이어 나타난 무리들 또한 복면을 한 괴인들이었으니...

북도부를 쫒는 괴한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손에 검을 쥐고 있을뿐...

가완중과 진상필은 자신들이 함정에 빠진것을 직감하고 힘을 합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부를 쫒는 복면괴한들도 힘을 합해 공격해왔으니...

또다시 이부의 무리들은 퇴각을 할수밖에 없었고,

복면괴한들은 천라지망을 펼치며 집요하게 추격해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부의 사람들은 독과 끊임없는 추격에 서서히 탈진해갔다.

가완중과 진상필은 자신들의 한계를 깨닫고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심전심이랄까!

동시에 이부에 드리워진 이 음모을 알려야 된다는 생각을 했으니...

가완중은 북도십이공의 상태를 점검해보고 선택된 사람이 바로 십이공이었다.

독에 중독되지도 않았으며 하루동안의 악전고투속에서도 가벼운 외상만을 입은 단 한명의 수하...

평소의 가완중이라면 한번쯤 의심을 해보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갑기 그지없었으니...

남검부의 사람중에서도 십이공과 비슷한 상태를 한 인영이 딱 한명있었다.

두 사람을 떠나보낸 이부의 무인들은 최후의 힘을 다해 복면괴한들과 맞섰다.

자신들이 오래동안 막아야지만 두사람이 살아돌아갈 확률도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명,

두명...

이부의 무인들이 복면괴한들의 손에 차례로 쓰러지고 마지막으로 가완중과 진상필만이 남았을때는 다시 하루가 지난후였다.

그리고,

싸울 기운도 다 떨어졌고 더 이상 물러설곳도 없었다.

황산의 거친 산세에 따라 뒤로는 천길 낭떨어지였으니...

가완중과 진상필앞에 선 복면괴한들.

그들의 수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제 십여명남짓.

그러나 하나같이 안광을 무섭게 뿜어내는 초절정고수들이었다.

가완중과 진상필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어차피 무인에게 죽음은 일상과 같은 일.

거기에 이 음모를 밝혀줄 두 사람을 이부에 보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그순간 벌어졌으니...

복면괴한들 뒤로 모습을 드러낸 두명의 인영.

바로 이부에 소식을 보내기로 했던 바로 두명이 아니던가?

가완중과 진상필은 그제서야 모든 사실을 깨닫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너무나 완벽한 함정.

그토록 믿었던 수하들이 복면괴한들과 한패였다니...

한데,

그런 절박한 상황중에 가완중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한명의 여인이 있었으니...

너무나 아름답고 현명한 자신의 부인.

조미련이었다.

그 순간,

가완중은 더 이상 망설일수 없었다.

진상필과 전음을 주고받으며 불가능에 가까운 한가닥 희망에 몸을 던지기로 했으니...

가완중과 진상필은 몸속에 남아있던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자신의 애병을 복면괴한들에게 던졌다.

어검술과 어도술.

이부의 부주들이 최후로 펼쳐낸 그 무공은 경천동지할 위력을 나타냈다.

십여명의 복면괴한들이 자신들이 가진 최강의 무공을 펼쳐 막았지만 과반수가 이승을 떠났으니...

주위를 자욱하게 덮었던 먼지과 돌들이 가라안고 난후,

가완중과 진상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천길낭떨어지로 몸을 던진 것이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가완중은 온몸이 끊어질것같은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의 몸아래 깔려있는 진상필을 보곤 모든 상황을 파악할수 있었으니...

아아~

너무나 숭고한 희생이었다.

사파의 무리들은 결코 꿈도 꾸지못할 행위.

자신의 가족들과 문파를 위해 목숨도 초개같이 버리는 진정한 무인정신.

가완중은 피눈물을 흘리며 몽롱해지는 정신속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글을 써내려갔다.

마지막 문구까지 다 적은후에야 가완중은 이제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는 것은 오직 아내인 조미련뿐...

그는 자신들의 한을 아내가 풀어줄것을 믿어의심치 않으며 눈을 감았다.

북도부와 남검부를 동시에 궤멸시키려는 음모.

누구라도 눈치채지 못할 조호이산지계였으니...

호천웅은 다시 한번 조미련의 아름다운 얼굴을 우러러볼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눈뜨고 당할수 밖에 없는 계략을 간파한 지혜와 끈질긴 노력.

남자도 할수없는 일을 조미련은 해낸것이니...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당장 내일이면 벌어질 결전을 막아야했고,

독도부와 남검부 내부에 있을 반역자의 색출.

결코 쉽지 않은 난제였다.

또한,

북도부와 남검부에 가완중일행과 같은 독수가 전개되었다면...

힘 한번못쓰고 전멸할수 밖에 없으니...

어찌보면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조미련의 얼굴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던 호천웅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 잠깐만 손좀 주실수 없겠습니까?"

"무, 무슨 일때문에..."

"제가 의술을 조금 배웠습니다. 혹시라도 독에 당하셨을까봐..."

"아~! 그렇다면 부탁드릴께요."

조미련은 선듯 자신의 섬섬옥수를 호천웅에게 내밀었다.

뼈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고운 손.

호천웅은 가슴이 진탕되는 것을 억누르며 맥을 집었다.

"으음! 역시 백일탈공산~!"

"무, 무엇이라고요. 백일탈공산이라니..."

조미련은 침울한 호천웅의 말에 깜짝 놀랐다.

백일탈공산.

오십년전에 돌연히 사라진 잔혈독문의 오십가지 독약중 하나.

무색무미무취의 희귀한 산공독.

평소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백일동안 복용한후에야 약효가 나타나는데...

공력을 운기하면 할수록 내공이 감소되어 무림인에겐 무엇보다 무서운 독이었으니...

하지만,

백일탈공산의 해약은 아주 쉬었다.

산에서 흔히 자라는 들풀을 씹어먹으면 해독이 되었으나,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호천웅은 조미련의 이해를 쉽게 하기위해 몇마디 말을 덧붙였다.

"백일탈공산은 증상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눈동자에 아주 미세한 반점이 나타나지요. 또한 내공을

운기하기 시작할때 단전에 약간의 통증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아~! 맞어요. 그런 통증을 느꼈지만 금방 사라져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녜, 그걸로 백일탈공산이라는게 확실해졌습니다. 제가 진맥을 한걸로 보면 오늘로 백일째가 되어 내일부터 효과가 나타나도록 했으니

정말 간교한 안배가 아닐수 없습니다."

"뿌드득! 악독한 놈들..."

"흐으~ 하지만 우리의 일은 한결 쉬워졌습니다. 이번일로 내부에 있는 반역자를 색촐하기가 쉬워졌으니..."

"어멋! 벌써 거기까지 생각을..."

조미련은 놀랄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약점을 순식간에 강점으로 바꾸는 순발력.

호천웅의 생각대로 백일탈공산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반역자들일 것이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그런 것을 떠올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텐데...

"공자는 정말 굉장한 사람이군요. 평범치않은 신상내력을 가지고 계실듯한데... 실례되지 않는다면 저에게 이야기해주실 있나요?"

"......"

호천웅은 금방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조미련의 전신에서 풍기는 이미지에 자꾸만 끌려드는 자신을 느끼며 결국 입을 열었다.

"저는 천화장의 사람입니다. 아버님의 성함은 연자 수자이시고..."

"아~~ 사장중의 한곳이던 천화장... 그럼 공자가 천문신동이라는 천화장의 소공자...?"

"쑥스럽습니다."

호천웅의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은 아득히 먼 옛날같이 느껴지던 시절의 과분한 호칭을 듣다니... 

그러나,

조미련은 감탄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앞에 있는 호천웅.

결코 소문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조미련은 천화장의 참사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휴으~ 미안해요. 천화장이 변을 당했은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괜찮습니다. 북도부에도 변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천화장과 북도부는 아무런 연관도 없으니..." 

"아니예요, 호공자. 북도부와 천화장이 관계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관련이 있어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음! 모르는 모양인데... 사실 호공자의 할머니와 나는 의자매를 맺었답니다."

"녯! 할머니와 의자매를..."

호천웅은 조미련의 입에서 할머니에 대한 말이 나오자 너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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