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천화장의 비사
다정전모 예설향.
환우삼모중의 한명.
미모를 겸비했을뿐만아니라 후덕한 성품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여인.
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못하는 대쪽같은 성품을 소유한 여전사.
하지만,
호천웅은 할머니인 예설향에 대한 소문만을 들었을뿐 만나본 기억은 전무했는데...
조미련에게서 그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로우며 많은 말을 듣고 싶었다.
"아, 참... 할머니를 본적이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사소한 다툼이 있어 집에서 나온지 십년이 지났으니..."
"예. 주위의 누구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더든요."
"음~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해도 될지..."
"알려주십시요. 현재 천화장이 사고를 당해 식구들중 할머니만 살아계실지 모르는데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좋아요. 그리고 할머니만 계신게 아니랍니다. 고모도 한분 있어요. 호선화라고..."
"녯! 호선화라면... 철심매봉...!"
"잘 알고 있군요. 그분이 호공자의 고모예요."
조미련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지만,
호천웅은 거듭되는 충격에 입을 쩍 벌렸다.
철심매봉 호선화.
천중사봉중의 한명으로 자신의 의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꺽지 않는다는 고고한 성품의 여인.
천하의 많은 남성들이 호선화의 미모와 성품에 반해 청혼을 했지만 모두 물리쳤는데...
자신과 어룰릴만한 남성을 여태까지 발견하지 못해 사십이 다 되도록 혼자 지낸다고 알려진 도도한 여걸이었으니...
조미련이 이야기한 천화장의 비화도 철심매봉과 관련되어 있었다.
화비협 호수권.
호천웅의 할아버지며 천화장의 전대장주.
그는 환우삼모중 한명인 다정전모 예설향과 혼인을 하고 일남일녀를 두었다.
철심매봉 호선화와 풍류화랑 호연수.
두 남매는 아무탈없이 건강하게 자랐고,
호수권과 예설향의 부부애도 너무좋아 그 당시의 천화장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호선화의 혼기가 되었을때,
천화장의 명성과 천중사봉중의 한명이 된 호선화로 인해 수많은 무림방파에서 청혼이 물밀듯 쇄도했다.
호수권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딸에 알맞는 베필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호선화의 남편으로 선택된 남자.
호협유정랑 진가람.
영웅호걸문의 소문주이며 후지기수중 다섯손가락안에 끼는 호남으로 수많은 여인들의 방심을 흔들어 놓은 장본인이었으니...
무림인들은 두 사람의 결합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호선화도 호감을 가지고 몇번 만남을 가졌다.
한데,
어느날 갑자기 호선화가 돌연 폭탄선언을 했으니...
아무런 이유없이 진가람과 결혼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천화장과 영웅호걸문에서 난리가 난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호수권은 불같이 노했다.
하지만,
호선화의 결심은 이미 굳어져 있었으니...
결국,
천화장과 영웅호걸문은 혼인을 취소하기에 이르렀고,
호수권은 호선화를 파문시켰다.
이런 일련의 사건속에서 예설향은 남편에게 격렬히 항의했다.
어찌 천륜을 인간의 힘으로 끊은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부전여전.
호수권도 딸인 호선화만큼 너무나 고지식했으니...
예설향은 눈물을 머금고 딸인 호선화와 함께 천화장을 나왔다.
그 이후,
예설향과 호선화는 다시 천화장에 발을 들이지 못했고,
호수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로 무림에서 발을 끊고 심산유곡에 은거를 했으니...
조미련의 이야기를 들은 호천웅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천화장의 참변으로 천애고아가 된줄 알았는데...
할머니와 고모뿐 아니라 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실 확률이 높지 않은가?
조미련은 호천웅의 흥분된 모습을 보자 왠지 마음이 흐뭇해졌다.
남편의 죽음이후 호천웅의 행동에 따라 이런 기분과 여유가 찾아오다니...
"호공자는 좋겠어요. 졸지에 두분의 가족을 찾았으니..."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을 했나 봅니다."
"아니예요. 충분히 이해하니 그렇게 무안해하지 말아요."
"감사합니다. 한데 어떻게 할머니랑 의자매를..."
"호호... 과거의 쑥스러운 이야기인데... 사실 호공자의 할아버지를 나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예설향언니가 나타나고 포기했어요. 내가
경쟁할 상대가 아니거든요. 그때, 예설향언니가 의자매를 맺자고 해서..."
"그건 너무 겸손한 말씀... 아, 내 정신..."
호천웅은 갑자기 말을 하다 일어나 조미련에게 큰절을 했다.
"어머! 호공자..."
"말씀을 낮추고 천웅이라 불러주십시요. 그리고 할머니의 동생분을 못알아 보고 걸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이,이러면......"
조미련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비록 의자매지만 언니의 손자가 아니던가?
또한,
생각지도 않은 할머니의 의동생을 찾은 호천웅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것처럼 허전하고 섭섭한 기분이란...
"휴~ 그래, 천웅이 말대로 하마... 한데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녜, 할머니. 천화장이 습격을 받는날..."
호천웅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던 아픈 기억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할머니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끼며...
이모 염향림과의 도망과 무영림앞에서의 사건.
무림삼괴와의 만남과 신체의 비밀까지...
조미련은 안타까움과 분노, 한숨을 쉬며 손자가 된 호천웅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쌍한 것...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고초를 치렀구나..."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긴데요..."
"대견하기도... 그래. 무영림에서는 무림삼괴와 같이 나왔느냐?"
"아, 아닙니다. 혼자서..."
호천웅은 말을 더듬으며 얼굴이 빨개졌다.
장은설사부와의 격렬했던 정사가 떠올랐던 것이었으니...
"아니, 왜? 무슨 일이 또 있었느냐?"
"하, 할머니..."
나는 당황해 어쩔줄을 모르다 결국 모든 것을 말하고 말았다.
사부 염향림과의 뜨거운 정사를...
조미련의 얼굴은 후끈 달아올랐다.
이제 13세뿐이 되지 않은 호천웅이 여자와 몸을 섞었다니...
그것도 50이 다 되어가는 자신의 사부와...
조미련은 사회의 신분을 뛰어넘은 호천웅의 정사이야기에 야릇한 흥분과 경악속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짜릿하게 온몸에 퍼지는 쾌감이란...
하지만,
조미련은 곧 정신을 차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독수공방을 한지 오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추태가 없었으니...
"너도 대단하구나. 무림천녀라면 남자보기를 돌같이 안다고 소문으로 들었다만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나이많은 사부를..."
"죄송합니다. 할머니..."
"나에게 미안할게 뭐가 있니. 나중에 너 사부를 만나면 잘 해주려무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녀석~!"
조미련은 붉게 물들은 호천웅의 얼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데... 이번 이부의 위기를 헤쳐나갈 묘안이라도 있느냐?"
"헤헤~ 할머니도 뭔가 생각하고 계신게 있는거 같은데요..."
호천웅은 급히 안색을 바꾸었다.
순간,
조미련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며 어린아이답지 않은 호천웅에게 다시 한번 감탄을 할수밖에 없었다.
"호호~ 능구렁이같기는... 좋아! 그럼, 우리 손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써서 펴볼까?"
"좋습니다."
조미련과 호천웅은 마음이 통한듯 야릇하게 웃으며 서로의 손에 무언가를 썼다.
그리고,
동시에 손을 내밀었는데...
'역'이라는 단 한자였으니...
"역시... 천문신동이란 아호가 잘못되지 않았구나."
"히히~ 할머니도 만학성혜답습니다."
"호호~ 너는 어른을 추켜세우는 제주가 뛰어나구나..."
조미련은 호천웅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평소와는 달리 몹시 흥겨워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니...
잠시후,
두 조손은 한참동안 무언가 긴밀히 상의를 하고,
조미련이 밖으로 나가기위해 일어섰다.
그때,
호천웅이 조미련을 불러세웠다.
"할머니!"
"왜? 아직도 할말이 남았니?"
"이 보따리?"
호천웅은 탁자에 하나 남은 보따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조미련은 흘낏 보따리를 쳐다보았을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으니...
"그것은 노호법이 너에게 준것이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녀석~! 노호법의 마음이니 너가 보관하고 있거라. 아마 큰 도움이 될테니..."
"으음... 그게 무슨소리입니까?"
"노호법이 북도부에 들어오기 전에 천면환마라고 불리웠으니, 아마 변장술에 관한 비법이 들어있을 것이다."
"헉~! 그럼 할머니는 노호법이 천면환마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예끼! 누구를 종이호랑이로 아느냐?"
"하, 할머니..."
"나는 나갈테니 보따리는 너 마름대로 해라."
조미련은 금새 우울한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장막밖으로 걸어나갔다.
혼자 남은 호천웅.
그는 조미련의 대범함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으니...
색마로 이름이 높았던 천면환마를 곁에 두었으면서도 그렇게 태연하게 행동할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어느새,
천막빡은 아침해가 하늘높이 떠올라 따스한 기운을 대지에 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