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이상한 만남
이제 더위도 한물지나가고 아침저넠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
서쪽으로 지는 해가 저녘놀을 온세상에 짙게 드리우는 저녘무렵.
좁은 소로에 한명의 인영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나타났다.
때가 낀 허름한 옷에 갓을 깊게 눌러쓴 얼핏보기에는 낙방한 선비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
바로 쌍완평에서 이부의 일을 해결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와 천화장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고 있는 호천웅이었다.
"히으~ 오늘은 이 근처에서 묵어야겠는데..."
호천웅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에 하나 둘씩 켜지는 불빛...
마을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은 호천웅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 방금 산에서 캐어온 신선한 산마물이 있습니다..."
"노리개사세요.노리개! 이 고장의 나는 기념품도 있습니다..."
와글와글...
호천웅은 생각보다 꽤 큰 마을에 들어서 잠시 멈춰섰다.
수많은 상인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무영림에서 오년이상을 보내고 산길만을 찾아 걸음을 재촉한 호천웅에게는 아직 익숙치 않은 풍경이었다.
"으음... 정신이 하나도 없군... 아~ 저기 여관이 있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호천웅.
그는 곧 화려하게 치장된 이층여관을 발견하고 여관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옵죠! 으응..."
호천웅이 여관에 들어가자 허리를 굽히던 점원이 호천웅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무나 남루한 호천웅의 차림새에 안색이 돌변했다.
"무, 무슨 일이오?"
"하하! 여관을 찾아오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루밤 쉬어가려는 것외에..."
호천웅은 점원의 행동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 잠깐! 여기는 매우 비싼 여관인데..."
"하핫...!! 내가 돈이 없을까 걱정되는 모양이군요..."
그제야 점원의 의도를 깨달은 호천웅.
그는 품에서 조그만 덩어리의 금을 꺼내놓았다.
족히 다섯돈은 나갈듯한 금덩어리.
점원은 금을 본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정도면 여관에 묶을수 있겠소?"
"아! 예예..."
종업원의 태도가 백팔십도로 달라지며 공손하게 자리까지 안내했으니...
호천웅은 돈의 위력을 실감하며 여관안을 둘러보았다.
마을에서 제일 크고 좋은 여관답게 손님들은 모두 깨끗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뿐이었다.
웅성웅성...
호호호... 하하하...
종업원이 가져다준 만두와 국수를 먹고 있던 호천웅은 입구가 소란해지는 것을 알고 고개를 돌렸다.
막 여관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인영들.
제일 앞서 들어오는 중년남자와 뒤를 따라 연신 종알거리며 들어오는 두명의 여인,
그리고 약간을 거리를 둔체 들어오는 범상치않은 기도를 가진 세명의 장한.
모두 여섯명이었다.
호천웅은 무심코 쳐다보다 처음 들어온 세명의 사람들의 모습과 은연중 배어나오는 기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것이 아니고 평상시 생활속에서 자연적으로 몸에 밴 품성이었으니...
또한,
두명의 여인.
그녀들의 미모는 남자들의 시선을 확 붙잡아 맬 정도로 절세적이었다.
왼쪽에 있는 삼십대 중반의 여인.
위로 틀어올린 궁장머리에 뚜렷한 미목구비,
그리고,
특히 우수에 젖은 눈빛이 묘한 매력을 발하는데...
오른쪽에 있는 이십대초반의 여인 또한 왼쪽의 여인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길게 늘어트린 검은 머리카락만 빼고는 놀랄 정도로 닮은 꼴이었으니...
하지만,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바로 커다란 눈에서 흘러내리는 도도함과 오만으로 가득찬 눈빛.
그것은 젊은 여인의 한가지 단점이 분명했다.
호천웅은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두여인을 보며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옷차림과 풍기는 기도로 보아 평범한 신분이 아닐텐데 이런 곳에 나타났으니...
자리에 앉은 사람들중 젊은 여인이 주위를 둘러본후 눈살을 찌푸졌다.
"호호... 겉으로 보이게는 꽤 괜찮은 여관같았는데... 손님들은 별로네..."
"연아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히이~ 이모도... 제 말이 틀리지 않잖아요...!"
"연아.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이야기하면 않돼!!!"
"흥! 이모는 저 사람이 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단 말이예요?"
"그, 그것은 아니지만... 하여든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진 말라는 뜻이야."
"흐응! 저 사람이 무엇이기에 내가 이모에게 핀잔을 들어야하지...!!!"
연아라는 젊은 여인은 중년여인 즉 이모에게 작은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훽 돌렸다.
국수를 거의 다 먹고 있던 호천웅은 기가 막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있으니...
"주인장!"
"예, 손님."
"내 방은 어디요?"
"예. 이층으로 올라가셔서 오른쪽 끝방입니다."
"조용한 방이겠지요?"
"당연한 일입죠..."
"고맙소. 그리고 한가지 부탁할 일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이야기해 주십시요. 저희 여관은 될수 있는한 손님의 뜻을 존중해주니까요."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니 예의를 지킬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옆방을 주지않았으면 좋겠소.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하지
마시고... 알겠죠..."
호천웅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인에게 당부했다.
그 순간,
"야! 너 뭐라고 했어...!!!!"
아니나 다를까???
연아라는 젊은 여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탁자를 치고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는 것이었으니...
그와 함께 여자의 일행중 세명의 장한들도 벌떡 일어났다.
"음~! 저에게 하신 말이십니까?"
호천웅은 태연하게 젊은 여인을 돌아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뒤따라 일어선 장한들.
그들에게서 풍기는 기도는 경시하지 못할정도로 막강한 것이기에...
하지만,
젊은 여인의 일행중 중년인이 엷은 미소를 띠며 세장한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세 장한들이 잠시 망설이다 자리에 앉았다.
젊은 여인은 호천웅을 무섭게 쏘아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래. 다시 한번 말해봐...?"
"호오~~~ 나는 주인장에게 이야기했지 당신에게 말한것이 아니오!"
"뭐, 뭐라고... 네가 한말이 나를 두고 한것이 아니란 말이냐?"
"흥! 나는 일반적인 부탁을 한것인데, 당신은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게 아니오???"
"무어라고... 이, 이 거렁뱅이주제에...!!!"
"닥치시오. 말이라고 함부로 하지 마시오."
호천웅은 얼굴을 굳히며 젊은 여인을 쳐다보았다.
순간 젊은 여인은 호천웅의 시퍼런 안광에 잠시 움찔거렸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얼굴색이 급변했다.
나이도 많지 않은데다 행색도 초라한 걸인에게 당황한 자신을 질책하며...
"너, 너 내가 누군줄 알고...!!!"
"여, 연아야!"
젊은 여인은 화를 누르지 못해 곧 울것처럼 인상이 찡그러졌고,
중년여인은 젊은여인의 소매를 잡아당겨 자리에 앉힌후 호천웅을 쳐다보았다.
"소협! 우리 연아의 행동이 좀 심했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소협도 너무하지 않나요?"
중년여인의 질책을 들은 호천웅의 가슴이 뜨끔했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맞대응한 자신의 옹졸한 행동이라니...
호천웅은 급히 포권을 지어보이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부인. 제가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됐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먼저 잘못을 했으니..."
호천웅의 행동을 보던 중년여인의 눈에 기광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곧바로 사과를 하는 것은 어려운 행동인데 앞에 있는 사내는 어린나이임에도 쉽게 하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부인이 용서를 해주셔서... 그럼 저는 피곤해서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그러세요..."
호천웅은 다시 한번 포권을 해 보인체 윗층으로 올라가며 이상함을 느꼈다.
중년여인의 말투.
그것은 분명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이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가?
거기에 자신도 당연한듯 받아들이고 있었으니...
오래간만에 목욕을 해 상쾌함을 느낀 호천웅이 막 침대에 누운 순간,
호천웅은 자신의 방쪽으로 쿵쾅거리며 뛰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얼굴을 찌뿌렸다.
"이 녀석! 밖으로 나와랏!!!"
"이, 이런... 그 아가씨군..."
호천웅은 잠시 망설였다.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분명 젊은 여인의 것이 아니던가?
"쳇! 곤히 자기는 다 틀렸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호천웅은 침대에서 내려와 문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누구신데 이렇게 소란을 부리십니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호천웅의 시야.
호천웅의 예상대로 젊은 여인이 갈갈이 날뛰고 그 옆에서 중년여인이 말리고 있는게 보였다.
"그래. 잘 나왔다... 너, 너가 감히 날 놀리... 아...!"
화를 참지 못해 큰 소리로 소리치며 막 호천웅을 돌아보던 젊은여인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호천웅의 모습.
아까 식사할테와는 완전히 달랐으니...
마치 전설속의 송옥이나 반안이 현생했을 정도의 수려한 이목구비에 주위를 압도할만한 기도.
여인이라면 꿈속에서라도 그리워할 남자의 모습이지 않은가?
호천웅은 젊은 여인의 모습을 보자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중년여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데,
호천웅을 쳐다보는 중년여인 또한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으니...
"흐, 흐음!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나요..."
"흐, 흥!!!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군. 허우대만 멀쩡한 약골같으니라고..."
정신을 차린 젊은 여인은 얼굴이 빨개진체 몸을 돌려 급히 사라져갔다.
더러운 겉모습만 보고 시비를 걸었는데 현재의 호천웅에게 더이상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여, 연아야..."
중년여인도 얼굴이 붉어진체 호천웅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체 급히 젊은 여인을 쫓아갔다.
"히으~~~ 이제는 끝난건가??? 하지만 잠이 다 깼으니..."
두 여인이 사라진 복도를 쳐다보던 호천웅.
그는 한숨을 쉬며 무슨 생각인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관의 아랫층.
희미한 불빛이 넓은 식당을 비추고 있는 중앙.
한명의 중년인이 혼자서 술을 들이키고 문쪽에는 점소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이! 젊은이. 피곤하다니 어쩐일인가?"
중년인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고 호천웅을 불렀다.
아마 이층에서의 소란을 듣지 못한듯...
"잠시 일이 있어 잠이 다 달아났습니다."
"후후~ 연아가 분을 참지 못해 소란을 피운 모양이군..."
중년인은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호천웅은 중년인에게 호감을 느끼며 곁으로 다가갔다.
"한데 일찍 끝났데 그려... 연아의 성질이 보통 아닌데..."
"녜. 잠시 화를 내더니 그냥 들어가셨습니다."
"하하하! 지금 자네의 차림새를 보니 이해가 가네... 그야말로 인중지룡이 아닌가!!!"
"대, 대협... 과찬이십니다..."
호천웅이 얼굴을 붉힌체 고개를 숙이자 중년인은 빙그레 빙소지었다.
두사람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헤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호천웅이야 어릴때부터 신동으로 수많은 서적을 탐독했지만,
중년인의 지식 또한 호천웅에 결코 뒤지지 않았으니...
호천웅은 중년인의 신분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솟구치는 것을 참을수가 없었다.
한데 그런 호천웅의 호기심은 머지 않아 풀리게 되었는데...
중년인의 입에서 나온 신분의 비밀.
호천웅은 그것을 듣는 순간,
제자리에 일어나 한쪽 무릅을 꿇고 고개를 숙였으니...
"왕야!!! 왕야를 몰라뵙고 무례를 범한 소인을 용서하십시요!!!"
호천웅은 황제의 동생인 영양왕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노심초사할수밖에 없었다.
한데,
영양왕이라니...
현 황제의 동생이며 나라의 병권을 쥐고 있는 실세...
그럼,
그런 영양왕과 같이 있던 두명의 절세미인들은???
호천웅은 영양왕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자애공주와 천애공주.
황실삼미인중 두명이며,
한명은 황제의 누이동생이며 다른 한명은 황제의 금지옥엽이지 않은가?
그리고,
호천웅과 말다툼을 벌인 상대는 다름아닌 천애공주였으니...
비록 황실은 무림에 대해 관대함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백성의 한명이 아니던가?
호천웅이 난감해하고 있을때 영양왕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내가 신분을 밝힌것은 자네를 혼내주기 위해서가 아니니..."
"와, 왕야!!!"
"자네의 재주가 너무나 뛰어나 나라를 위해 함께 일을 해보는게 어떤가해서 신분을 밝힌것이네. 내 제안이 어떤가?"
호천웅은 영양왕의 느닷없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범인이라면 생각할 여지도 없이 승낙을 해야 맞는데...
하지만,
호천웅의 처지가 어떠한가?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생에서 처리해야할일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으니...
"죄송합니다. 왕야! 저의 사정상 왕야의 분부를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흐음! 그러한가???"
"예. 황송합니다."
"휴으... 그렇다면 어쩔수 없군..."
영양왕의 얼굴에 아쉬움이 짧게 스쳐갔고,
호천웅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야! 무례인줄 알지만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호오... 이 자리가 불편해서 인가?"
"그것이 아니옵고 갈길이 바뻐서입니다."
"하하하! 우리를 신분을 알고 있으니 내일 아침 연아랑 부딪칠것이 두려워서는 아니고...!"
"와, 왕야!!!"
"하하! 농담이네... 하지만 만약 황도에 들릴일이 있으면 꼭 나를 찾아온다고 약속을 해준다면 보내주겠네..."
"알겠습니다. 황도에 가면 꼭 왕야를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올라가 보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호천웅은 영양왕에게 허리숙여 인사를 하고 윗층으로 걸어올라갔다.
영양왕은 그런 호천웅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