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비담이 난주 보림루에 드나든 지 정확히 한 달.
한 달이란 시간동안 비담은 수십 명의 기녀들과 관계를 맺으며 색기를 모았다. 그 결과 지금 비담의 단전은 반 정도 채워진 상태였다. 점점 숙달 된 기술 덕분에 색기를 모으는 시간도 단축이 되었고, 하룻밤에 한 명의 기녀와 여러 번 떡을 치는 것도 가능해졌기 때문에 효과를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담의 노력이 보림루에도 결국 영향을 미쳤다. 알음알음 소문을 전해들은 기녀들이 비담의 방문을 기다리며 문 앞에서 안내를 하는 문지기와 점소이들에게 무리하게 뒷돈을 사용한 것이 결국 화근이 되어 루주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만 것이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죄, 죄송합니다. 루주님.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 루에 발생한 손실이 얼마입니까?”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어림잡아 은자 500냥 쯤 됩니다.”
“하아? 한 달 사이에 은자 500냥이라?”
“그게 망할 년들이 도무지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목이 빠져라 그 녀석만 기다리니 루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
“지금 그것을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총관이란 작자가 루에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것도 모르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안 되겠군요. 제가 직접 나서서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수밖에.”
“하, 하지만 어찌 루주님께서 직접...?”
서릿발 같은 루주의 시선에 말을 잇던 총관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만 나가서 일 보세요. 이번 일로 루의 평판이 나빠지면 장사에 막대한 지장을 줄 것이니 점소이나 기녀들의 입단속이나 철저히 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루주님.”
꾸벅 인사를 한 총관이 서둘러 루주의 방을 빠져 나갔다. 방을 빠져 나오며 크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총관이었다. 이번 일로 크게 문책을 당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루주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하자 한시름 놓았던 것이다.
방을 빠져나가는 총관의 등을 보며 루주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저토록 무능하고 한심한 자가 루를 관리하니 이 모양이지. 꼭 내가 나서야만 해결이 돼요. 에이, 신경질 나. 아무튼 어떤 놈인지 이번에 톡톡히 쓴 맛을 보여주고 난주에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
극도로 화가 치미는지 루주의 눈썹이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이러한 상황을 알 리 없는 비담은 콧노래까지 흥얼대며 제 집을 드나들 듯 보림루로 들어섰다. 그런데 막 보림루에 들어서던 비담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였다. 친한 직장 동료라도 되는 듯 늘 자신을 귀빈 대접하고 살갑게 대하던 문지기의 표정이 오늘따라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어라? 아저씨 표정이 왜 그러세요? 꼭 뭐 마려운 강아지 표정이신데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아, 아닐세.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그나저나 마침 잘 왔네. 안 그래도 오늘 1년에 딱 한번 있는 특별한 공연이 펼쳐지는 날이거든.”
“호오, 정말요? 그동안 보았던 공연도 만족스러운데 특별 공연이요? 뭔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걸요. 몇 번 공연장에서 열리는데요?”
“3층에 있는 첫 번째 공연장에서 열린다네. 내가 미리 이야기를 해 놓았으니까 12번방으로 들어가면 되네.”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매번 이렇게 신세만 지고, 이래도 되나 모르겠어요.”
“허허,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 아무튼 곧 공연이 시작되니 어서 들어가 보게.”
“예, 고맙습니다.”
특별공연에 대한 기대로 비담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는 비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문지기는 속으로 용서를 구했다.
‘미안하이. 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루주의 분부를 거역할 수 없다네. 자네를 사지로 보내는 내 마음이 얼마나 속상한지 모를 걸세. 부디 나를 용서해주게. 그나저나 오늘부터 뒷돈이 끊기는구나. 그동안 기녀들로부터 받은 돈이 제법 쏠쏠했는데. 쩝, 아쉽다.’
비담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의 뒷돈을 먼저 걱정하고 아쉬워하는 문지기였다.
3층 첫 번째 공연장 12번방에 들어선 비담은 익숙하게 의자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비담은 요즘 들어 공연을 보지 않으면 이상하게 허전해서 나름 분석을 해보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공연에 등장하는 남성을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는 것이었다. 설득력이 있는 가설이었기 때문에 혼자 킥킥대며 웃는 비담이었다. 그렇게 별의별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기다리자 드디어 예의 징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특별공연이 시작되었다.
지잉
공연에 등장할 배우들을 기다리며 비담의 눈이 기대로 반짝반짝 빛났다. 비담의 이런 기대에 부흥하려는지 곧 전라의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무대에 등장하였다. 비담은 등장한 남녀를 보는 순간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헉! 특별공연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었어. 이거 무슨 바둑판도 아니고...정말 흑과 백의 절묘한 조화구나.”
무대 위로 피부가 눈처럼 하얀 백인 미녀가 찰랑찰랑 탐스러운 금발의 머리를 흔들며 우람한 근육의 흑인 남성과 함께 등장한 것이다. 비담은 한 달 동안 꼬박꼬박 보림루에 출근도장을 찍으면서도 구경할 수 없었던 백마를 처음 보았기에 탄성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궁금하게 여겼던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금발 누님의 수풀도 역시 금발이었어. 이럴 수가...너무 환상적이야.”
급기야 비담의 눈이 몽환적으로 풀리며 침을 질질 흘리고 말았다. 이것은 색공과는 별개로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열의와 환상을 쫓는 본능이었기 때문에 비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금발의 백마는 남자라면 누구나 맛보고 싶어 하는 특식 중에 특식이었다.
무대에 나온 배우가 사방에 인사를 하는 것으로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비담은 침을 삼키는 것도 잊은 채 둘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공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이런 비담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바로 특수 제작된 옆방에서 비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관찰하던 보림루주였다.
‘칫, 망할 년들이 뒷돈까지 쓰며 난리를 쳤다기에 대단한 놈인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잖아. 생긴 것도 평범하고. 어, 어이구 저 침 흘리는 꼴이라니. 하여튼 남자새끼들은 다 똑같아. 그저 백옥 같은 피부라면 환장을 하지. 그나저나 일이 쉽게 해결되겠는데.’
루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애써 누르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공연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현란한 흑형의 힘과 기술 앞에 드디어 금발의 백마가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나름 백마가 전투적인 자세로 열심히 버텼으나 역시 흑형의 힘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슬슬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군.’
공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백마의 긴 신음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순간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루주였다.
비담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좋다고 입을 헤 벌리며 실실 웃고 있었다. 그렇게 특별공연이 성황리에 끝나자 비담이 있는 12번방의 문이 부드러운 마찰음과 함께 열렸다. 비담은 문이 열린 것도 모른 채 아직도 공연이 남긴 여운을 만끽하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정신을 못 차리는 비담의 모습에 루주는 그만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루를 맡아 운영한 10년 동안 저런 놈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사냥을 나온 이상 흥분은 금물이었기 때문에 애써 분노를 가라앉힌 루주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비담을 불렀다.
“공자님? 공연이 무척 재미있었나 보네요. 그러지 말고 저도 좀 바라봐 주세요.”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비담의 고개가 문을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에 루주는 폭발하려는 자신을 간신히 제어할 수 있었다.
“어라? 근데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혹시 청소를 하시려고...? 아직 기녀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우선 방을 비워드려요?”
“아, 아주머니? 청소? 내 이 새끼를...호호호, 공자님 농담도 잘 하시네요. 제가 바로 12번방을 맡은 기녀랍니다. 그렇게 말하시면 소녀 슬프답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해 미모를 가꾸었던 루주의 자존심엔 이미 씻지 못할 상처가 난 후였다. 그런데 비담은 루주의 안색은 전혀 살피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풀어놓았다. 한마디로 상처 난 루주의 자존심에 친절하게 소금으로 간을 해주는 중이었다.
“소, 소녀요? 에이 농담하시는 거죠? 그렇죠? 그렇게 말하기엔 연식이 꽤 되어 보이는데요. 연비가 딸려서 잘 달리지도 못할 것 같은데...”
“호호호, 공자님. 농이 너무 지나치셔요.”
‘저 망할 놈의 새끼가 연비 따지고 지랄이야. 시발 내가 익힌 방중술이면 그놈의 연비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오냐, 오늘 내 위에 올라타는 즉시 지옥으로 가는 급행마차를 태워주마. 넌 죽었어. 아주 진기를 모조리 빨아 껍데기만 남게 해주마.’
겉은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루주의 눈동자 안에 교묘하게 피어오르는 스산한 살기를 비담은 용케 잡아냈다.
‘늙은 여우가 제법 화가 난 모양이야. 옆방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느라 애를 쓴 모양인데 나한텐 어림없는 수작이지. 그나저나 어디서 어설프고 요사스러운 방중술을 익혀 남자들 꽤나 잡은 모양인데 특별히 색기 뿐만 아니라 네년의 진기까지 흡수하여 다시는 그따위 요사스런 행동을 못하게 모두 부셔주마.’
결국 루주는 공자(孔子)님 앞에서 문자를 쓴 꼴이 되고 말았다. 색공의 최고봉인 흡정색공을 익힌 비담의 눈을 피해갈 색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루주의 기척을 눈치 채고 방심한 듯 공연에만 열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물론 비담 자신은 방심한 척 연기를 한 것이라 말했지만 그게 정말 사실인지는 비담만 알고 있을 것이다.
“아잉, 공자님. 장난은 그만 치시고 저를 안아주셔야죠. 언제까지 이리 세워두실 건가요?”
루주는 비음을 적절히 섞어가며 서서히 비담을 향해 다가왔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나삼 안으로 터질 듯 팽팽하게 부푼 가슴이 흔들렸다. 비담은 늙은 여우랑 함께 침상 위에서 뒹구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정기를 빼앗기고 폐인이 되어버릴 미래의 재수 옴 붙은 불특정 사내들을 위해 한 몸 기꺼이 희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