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모용천은 폭풍처럼 지나간 시간과 어느새 침상 위를 붉게 물들인 흔적들을 발견하고는 찬물을 뒤집어 쓴 듯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이 어느 순간 이성을 잃고 본능에 충실 하느라 소미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이 아팠나 보구나. 미안하다. 내가 좀 더 부드럽게 했어야 하는데...”
다시 본래의 신색을 되찾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모용천을 바라보며 남궁소미는 자신의 휑했던 가슴 한쪽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에요. 가가께 제 모든 것을 드리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기뻐서 흐르는 눈물일 거예요. 이제 저는 천 오라버니의 여인이니까요.”
모용천은 사랑스럽게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남궁소미를 힘껏 끌어안아 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살결이 닿은 채 체온을 나누는 동안 한풀 꺾여있던 모용천의 물건이 다시 되살아났고, 남궁소미는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는 물건의 정체를 파악한 후 깜짝 놀라 모용천의 얼굴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오라버니의 물건이 자꾸 제 허벅지를...”
“네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또 원하는 것이란다. 이번엔 부드럽게 너를 가지마.”
따뜻한 말로 얼어있는 남궁소미의 마음을 녹인 모용천이 한결 부드러워진 동작으로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번엔 조심스럽게 그녀의 계곡사이로 자신의 물건을 밀어 넣었다. 남궁소미 역시 처음 느꼈던 고통이 점점 사라지고,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간지럽고 기분 좋은 느낌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아! 하아! 아으하! 기분이 이상해요. 좀 전과 달리 조금씩 붕 뜨는 느낌이에요. 오라버니.”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남궁소미가 적극적으로 모용천의 움직임에 호응하였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쾌감에 이번엔 남궁소미가 이성을 잃고 매달렸다.
또다시 불어 닥친 방안의 훈풍이 구름을 밀어냈는지 달빛 역시 자취를 감춰버렸고, 그렇게 긴긴 밤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두 남녀의 역사를 실은 채.
모용천은 땀으로 흠뻑 젖은 남궁소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모용천의 팔을 베고 누운 남궁소미는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더욱 몸을 밀착시켰고, 모용천은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남궁소미의 탄탄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이제 나만의 여인이다. 영원히 내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네, 모용가가.”
수줍게 웃으며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하는 남궁소미였다. 모용천은 남궁소미의 대답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품으로 날아든 작고 앙증맞은 새 한 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중 모용천은 자신이 낙양에 온 사실이 궁금하여 남궁소미에게 물었다.
“참, 그런데 무슨 일로 검황 어르신께서 갑자기 날 부르셨는지 궁금하구나. 물론 너를 만나 이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의도도 계셨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혹시 알고 있느냐?”
“어머! 제가 오라버니를 만난 기쁨에 잠시 중요한 것을 깜박 잊었네요. 안 그래도 증조할아버지께서 오라버니를 만나면 꼭 전하라는 말이 있었거든요.”
“그래?”
“그런데 말씀드리기 전에 오라버니께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저를 믿으시나요?”
“당연히 너를 믿지.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않으면 세상 그 누구를 믿겠느냐. 그런데 그것은 왜 묻는 게야?”
“다행이에요. 오라버니께서 저를 믿으신다니 말씀드릴게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증조할아버지께서 꽤 쓸 만한 먹잇감을 발견하셨거든요.”
“쓸 만한 먹잇감?”
“네. 저희 오대세가를 대신해 사도련을 뒤흔들어줄 미끼 말이에요. 그런데 그 미끼를 얻기 위해 저를 이용한 미인계가 필요하다 말씀하셨어요.”
“너를 이용한 미인계? 좀 더 소상히 말해보거라.”
남궁소미를 이용한 미인계라는 말에 깜짝 놀란 모용천이 상체를 기울이며 채근하듯 다음 말을 재촉했다.
“오해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세요. 오라버니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이번에 세가에 불미스러운 일이 좀 있었어요. 작은아버지가 사도련의 꼬임에 넘어가 한바탕 난리가 났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증조할아버지가 그 같은 정황을 사전에 파악하시고 일이 불거지기 전에 잘 막으셨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누군가를 찾겠다며 이상한 놈팡이 하나가 세가를 휘저으며 쑥대밭으로 만들었지 뭐예요.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요절을 내버리고 싶었지만 증조할아버지께서 좋은 수가 생각나셨다며 저를 말리셨어요. 그런 다음 그 놈팡이 녀석과 협상을 하신 후 여기 낙양까지 동행하게 되었죠.
그리고 오라버니를 만나러 오기 직전에야 증조할아버지의 세부적인 계획들을 듣게 되었답니다. 그 자를 전면에 내세워 사도련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오정회의 힘을 결집시켜 그자들의 뒤를 치는 계획 말입니다. 5년 전 정사대전 때 저희 오정회가 당했던 대로 그대로 돌려줘야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 하셨지요. 그렇게 하려면 우선 그자를 회유하여 저희들의 충실한 꼭두각시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저를 이용한 미인계가 필요한 것이고요.”
“네 말을 들으니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겠구나. 그런데 정녕 그자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더냐?”
“제가 보았을 때에는 그자의 무공이 조금 고강하다는 것 외에는 특출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증조할아버지의 안목이라면...”
“하기야 검황 어르신의 안목이라면 믿어야 되겠지.”
“그래서 말인데 저를 좀 도와주세요, 오라버니.”
“알았다. 무슨 일이든 두 팔 걷어붙이고 도울 것이니 말만 하거라. 사도련 그 간악한 자들을 무림에서 지울 수만 있다면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상관없다.”
‘역시 천 오라버니는 믿음직스러운 내 남자야. 장차 무림을 이끌어갈 오라버니께 날개를 달아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의기 넘치는 모용천의 모습에 감흥을 받은 남궁소미가 거듭 자신의 각오를 다졌다.
“그럼 세부적인 계획을 말씀드릴게요. 사흘 후, 그 비담이란 자와 제가 백마사로 유람을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증조할아버지께서 잘 주선해준다 하였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연후 인적이 드문 적당한 장소로 제가 그자를 유인할 것이고, 그곳에서 잠시 볼일을 해결한다는 핑계를 대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럼 오라버니께서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가 저를 겁탈하려는 시늉만 한 후 그자가 도착하기 전 도주하시면 됩니다.”
“내가 너를 겁탈한다?”
“그렇습니다. 그자의 무공수위가 높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가 재빠르게 도주해주세요. 그럼 제가 적당히 옷매무새를 헝클어트려 그와 같은 정황이 벌어졌음을 간접적으로 알리고 그자에게 거듭 사의를 표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돌아와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증조할아버지께서 그자에게 술상을 대접할 것이고, 기회를 틈타 할아버지께서 특별히 제조하신 약을 그자의 술잔 속에 몰래 타 넣을 것입니다.”
“검황 어르신께서 특별히 제조하신 약이라면...”
“순간적으로 인사불성이 되는 미혼제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최음제도 섞어 그자가 여인을 덮치게끔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그자가 너를 덮친단 말이냐?”
“설마 증조할아버지께서 자신의 친증손녀를 그런 불한당 같은 놈에게 덥석 던지시겠어요? 당연히 저와 비슷하게 생긴 기루의 기녀 하나를 섭외해야지요. 그자는 미혼제에 취해 사리분별력도 떨어질뿐더러 기녀를 적당히 꾸미면 저 인줄 착각하고 덥석 끌어안은 채 뒹굴 것입니다.
그럼 저는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교합이 끝나고 그자가 잠이 들면 그 기녀와 바꿔 누우면 된답니다. 미혼제의 후유증으로 그 자는 간밤에 자신이 나를 안았다 착각할 것이고, 저는 그자의 심사가 복잡한 그 순간에 눈물 몇 방울 살포시 떨궈주고 말없이 방을 뛰쳐나가면 모든 계획은 끝나는 것이지요. 호호, 어때요?”
“역시 검황 어르신의 지략은 무섭구나. 그럼 그 자는 너에 대한 죄스러움과 미안함에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겠어.”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럼 저는 그자의 애간장을 살살 녹여가며 마음껏 뒤에서 조종해야지요. 적당히 거리를 둔 채로 말입니다. 호호호.”
“하하, 그럼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구나. 그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말이야.”
“만반의 준비요? 오라버니께서 따로 준비하실 것은 없는데...”
“아니지. 너를 겁탈하는 시늉을 하려면 제대로 연습을 해야지. 이렇게 말이다.”
“꺄악! 오라버니도 참.”
모용천의 손이 남궁소미의 어디를 어떻게 건드렸는지 자지러지는 교성을 토해내며 그대로 숨을 헐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