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4장 누드모델이 된 뽀르노 작가 (4/12)

제 4장 누드모델이 된 뽀르노 작가

  R의 혀는 이번에는 겨드랑이로 향했다. 그녀는 그의 온몸을 타액으로 풀칠하겠다는 듯 고루고루  사랑하고 있다. X는 스믈스믈 번지는 욕망을 지긋이  절제하며 까슬까슬한 혀의 감촉을 즐긴다. 온몸을 기어다니는 혀의 감촉은 뿌리에 대한 자극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온몸을 고루 고루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은 아늑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불륜! 

  -첫 사랑 여자와의 불륜!

  

  불륜이라는 말이 아름답다. 첫 사랑이라는  말은 더욱 아름답다. X의 가슴속에서는 다시 격정의  폭풍이 일렁인다. 그러나 육체적 욕망이 가슴속의  폭풍처럼 금방 다시  다급해지지는 않는다. 그는 느긋하게 R의 감촉을 즐긴다.

  

  그들은 이미 소나기 같은 섹스를 나누고 난 후였다. 그들은 만나면 우선 그렇게 소나기  같은 격정을 폭발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막혔던 봇물이 터지 듯 격정은 폭발한다. 그리고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탐하듯 게걸스럽게 서로의  육체에 탐닉의 발톱을 세운다.

  

  소나기는 그치고, 이제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소나기가 지나 간 후의 모든 사물은 더욱 산뜻하고 아름답다.

  

  R의 혀는 무지개다. 무지개는 X의  감각 세포 하나 하나를 영롱한 빛깔로 채워 나간다. 그의 감각 세포들에는 날개가 돋는다.

  

  날개는 비상을 꿈꾼다. 운동회 날 아이들의 손을 떠난 풍선처럼 한꺼번에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고 한다….

  

  노트북 자판 위에서 나대로의 손은  춤추듯 움직이고 있다. 그는 기분이 좋다. 글이 조금도 막히지  않고 술술 써지는 것이 기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에로티카를 나만큼 아름답게 쓰는 녀석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나는 역시  시인이야! 시인이 쓰는  에로티카! 그것이  뭐 어떤가? 시인은 에로티카를 써서  안 된다는 법률의 무슨 금지 조항이라도 있는가? 

  

  -보수주의자는 가라.

  -이상주의자도 가라!

  

  그는 가당치 않은 때에  가당치 않은 우월감까지  우쭐거린다. 그도 지금 자신의 머리 속에서  쭈빗거리고 있는 그런 생각들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삼촌포로 빠지다가는 잘 풀려  나가던 생각이 언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아나 버릴지 모른다.

  

  음, 그런데… 하고  그는 다시  작품에 정신을  집중시킨다. 이쯤에서 에로틱한 묘사로 전환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에로티카의 독자들이 언제까지나 문학 소녀적인 표현에 매료되어 있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나대로의 손은 다시 자판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풍선에 매달린 감각 세포들과 함께 그의 뿌리도 이미  단단하게 일어나 있다. 그리고 R의 손은 그 곳에 이르러 있다. 그녀의 혀는 여전히 감각 세포들을 무지개로 수놓으며, 손은 그의 단단한 뿌리에 사랑을 베풀기 시작한다.

       

  긴 우회로를 거치 듯 배회하던  R의 혀가 마침내 종착점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월의 흔적처럼  비만이 내려 않기 시작한 복부에 머물던 그녀의  혀가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번 우회로를 선택한다. 숲을 지나 그 가운데 우뚝 선 나무를 탐할 듯하던 혀는, 그 곳을 슬쩍 비켜 좀더 아래쪽에서 정착점을 찾는다.

  

  R의 혀는 이제 X의 샅을  타액으로 풀칠하고 있다. 손으로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여전히 그의  뿌리를 움켜잡은 채-

  

  "으음!"

  

  R의 우회로에 대한 끈질긴 집착은 X를 참을 수 없는 기대감으로 신음하게 한다. X는 더  이상 조바심을 참아낼 수  없다. 손을 아래로 뻗쳐 R의 머리를 위로 끌어올리려 한다.

  

  R의 머리는 버티듯 잠시 쭈빗거리다. 못이기는 척 그가  이끄는 대로 따른다.

  

  "아아!"

  

  R이 뿌리를 목구멍 깊숙이 함몰시키자  X는 몸을 떨며….

  

  -오 마이 갓! 

                     *  *  *  *  *

  노트북 옆에 놓여 있던 핸드폰이 신호음을 내고 있다.

  

  -준호형이 벌써 왔나?

  

  자판을 두들기던 나대로의 손은 어쩔 수 없이 멈추며. 그는 모니터 오른쪽 귀퉁이의 시간을 힐끗 본다. 

  

  -13시 41분-

  결혼식은 두 시 반이라고 했었다.

  

  흐흐. 하고 나대로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웃는다.  준호형이 결혼식 시작 시간 한참 전에 서둘러 찾아 올만도 한 일이었다. 할 이야기가  오죽 많겠는가? 준호형이 아무리 수다를 떨어댄다 해도 이런 경우 수다가 결코 여자들만의 미덕이  아님은 분명하다.

  

  준호형이 교수 부인이라는 여자, 그리고  과부인 그녀의 친구와 벌렸다는 2+1의 그 농밀한  정사는 정말 엽기적으로 에로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뽀로노 작가인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것은 그러하다. 뽀로노 작가가 픽션으로나  씀직한 일이 현실 공간에서 연출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엽기적으로 에로틱한  무용담을 늘어놓은 후 준호형은 코가 쭈욱 빠져버렸었다. 그렇게 겨우내 코가 쭈욱 빠져 지내던 준호형한테서 갑자기 생기에 넘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어제 오후이다.  그리고 '너 결혼식에  가지 않을래?' 하고 그는 말했었다.

  

  나대로는 지금 그 결혼식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여보세요?" 하고 그가 전화를 받자, 

  

  "김 선생!"

  저 쪽에서 들려온 것은 여자 목소리다. 준호형일 것이고 생각했던 그의 뒤통수를 치는-

              

  나대로는 그것이 강민자 교감의  목소리라는 것쯤 금방  알아들을 수 있다.  뽀로노 작가 한  대로는 순시간에 미림종합고등학교 국어 교사 김윤하로 돌아온다.

  

  "아아, 교감 선생님…"

  

  그는 핸드폰에 인사라도 하듯 허리를 굽실하며 말했다. 

  

  "지금 어디예요?"

  

  "학굡니다."

  

  "아직 퇴근 안 했어요?"

  

  "결혼식이 있어서…"

  

  "참, 그렇다고 했죠? 교수회관이라고 했던가요, 결혼식 장소가?"

  

  "그렇습니다."

  

  "몇 시라고 했던가?"

  

  교감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중언부언  묻고 있는 거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했던  이야기를 그녀가 치매 환자처럼  잊었을 리 없다.

  

  아니 치매환자는 고사하고, 강민자 교감  하면 머리 빠삭빠삭 돌아가고, 기억력 비상하기로 학교에서 소문나 있다.  머리 빠삭하고, 기억력 비상하지 않으면 시어머니 노릇 할 수 없다. 그녀는 학교에서 깐깐한 시어머니다. 그래서 선생들도, 학생들도 모두 그녀를 어려워한다. 아니, 두려워한다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녀에 비하면 사람 좋은 교장은 로봇이나 다름없다.

  

  그는 셋째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 복도에서 강민자 교감과 마주쳤었다. 우연인 것처럼 그러하게 마주쳤는데,  그렇게 마주칠 수 있도록 그녀가 타이밍을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마주쳤고, 교감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었다.

  

  "김 선생, 오늘 오후 무슨 일정 있어요?"

  

  김윤하로서는 마침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두 시 반에 꼭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있고, 네 시쯤 서울에서 이종 누이동생이 내려오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아주 민망한  표정으로 쫘악 이야기했다.  그만하면 주말  오후를 그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요…"

  

  교감은 예사롭게 말하며 지나쳐 갔지만,  그는 그녀의 표정에서 실망의 표정이 힐끗 스치는 것을 읽어내기 어렵지  않았었다. 그는 잠깐 연민을 동반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으로 이번  주말은 그녀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와 뻔한 일을 중언부언  다시 묻고 있다는 것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뭔가 일이 꼬일 것 같다는 예감-

  

  "두 시 반입니다."

  어쨌든 그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끝나면 몇 시나 될까요?"

  

  "아무래도 세 시는 넘겠죠."

  

  "동생은 몇 시에 온다고 했죠?"

  

  "네십니다."

  

  김윤하는 희망을 가지려고 한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여유인데, 교감이 무엇을 어쩌자고 덤비기에는 턱없는 시간 아닌가? 

  

  "에 또…"

  

  강민자 교감은 뜸을 들인다. 김윤하는  다시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내일은 내가 시간이 없고, 월요일 아침에는 보내야 하는 작품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동생 잠깐 만나보고 우리 집으로 와 주는 것이…"

  

  김윤하의 희망 사항은  모래알처럼 무너져  내린다. 강민자 교감은 이쪽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듯 의논하는 투로 말하고 있지만, 의사 결정권이 이미 자신을 떠난 상태라는 것을 그는 모르지 않는다. 교감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그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모처럼 동생이 온다니까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이야기야 나중에 밤새도록 할 수  있는 거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쉬워서 그래요. 김  선생이 작품을 검토해 주시지 않으면 어디 마음이 놓여야지. 그래도  내가 요만큼 이름 얻은  것은 모두 김 선생 덕분인데, 아무 작품이나  함부로 보냈다가 망신당하면 어떡해. …김 선생도 이런 내 심정 잘 알지?"

  

  "알았습니다. 결혼식 끝나는 대로 전화 올리겠습니다."

  

  김윤하는 선선하게 대답했다. 아니, 선선한 척 대답했다. 그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빨리  그녀와 통화를 끝내고 싶었다.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강민자 교감은 애교덩어리 같은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학생들이든, 교사들이든,  그녀의 그런 목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오르지, 국어 교사이며 시인인 열 일곱 살 연하의 김윤하 앞에서 뿐이다.  물론 그것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의 일이다.

  

  김윤하는 갑자기 머리가 무겁다.  아니, 지근거린다. 그녀한테 들리면 엄청  시달릴 것이 뻔하다. 그리고  또… 미란이가 내려온다고 했다. 그 애도  요즈음 제법 끈질겨지고 있다.  밤새 들볶일 가능성이 크다.

  

  젠장, 오늘 같은 날은 비아그라라도  있어야겠군 하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아직 그것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비아그라 좋아하네.

  

  김윤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조소한다. 교감이나 미란을 상대하며 비아그라를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비아그라 같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가 내가 코 꿰는 거 아냐!

  

  비아그라 같은 발상… 하던 나대로, 아니 국어 교사 김윤하의 생각은 럭비공처럼 엉뚱한 곳으로 튄다. 

  

  -시인 김윤하(28세), 열 일곱 살  연상의 직장 상사인 교감과 결혼하다!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거기다가, 서정성과 현실 감각이 조화를 이룬 시를 쓰는, 그 바닥에서는 그런대로 촉망받는 젊은 시인의 반열에 있는 김윤하가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포르노그라피를 쓰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흐흐 이건  완전히 주간지 기사감이다.

  

  그러나 김윤하는 포르노그라피를 쓰는 것에 대해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발가벗고 세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  강민자 교감과의 섹스도 전적으로 끔찍한 것만은 아니다. 뽀로노  작가 나대로의 입장에 서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그녀는 점점 물이 오르고 있다. 40대 중반의 무르익은 육체에 농염한 물이  오르고 있고, 테크닉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녀는 주는 것만큼 탐욕스럽게 받기를 원한다.

  

  섹스에 있어서 그것은 조금도 지탄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다양한 테크닉으로 상대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만큼 받으려고 한다는 것- 오히려 그것은 굿 섹스를 위한 기본적인 덕목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강민자 교감은 뽀로노 작가 나대로에게  영감의 중요한 원천이  되어주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래도 곤란하다. 그녀와  진을 빼고 나면 미란이와 보내야 할 밤이 문제다.

  

  김윤하, 아니 나대로는 고개를 흔든다. 지금 한가하게  그런 것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따로 있다. 뽀로노를 써야 한다. 스스로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섹스에 대한 환타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것도 뽀로노 작가 나대로의 명성에 금이 가지 않도록 감각적이고 에로틱하게…

  

  다른 때는 평소에 틈틈이 썼지만, 요즘은 신학기라 학교 일이 바빠 그것이 힘들다. 주말에 집중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민자  교감과 미란이만 아니라면 좀  더 느긋하게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남들은 주말이면 모두 느긋해지는데 더  바쁘고,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요거 인생 완전히 거꾸로 사는 거 아냐?

  

  김윤하, 아니 뽀로노  작가 나대로는  구시렁거리는 생각을 잠재우며, 화면 보호기가 작동하고 있는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슬쩍 건드린다. 써야 한다.. 준호형과  결혼식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써 놔야 하는 것이다.

  

  모니터는 금방 그가  글을 쓰던 아래  아 한글의  화면으로 돌아온다. 그는 생각을 모으려고  애쓰며, 앞서 써 놨던  부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읽어보기 시작한다….

  

  "으음!"

  

  R의 우회로에 대한 끈질긴 집착은 X를 참을 수 없는 기대감으로 신음하게 한다. X는 더  이상 조바심을 참아낼 수  없다. 손을 아래로 뻗쳐 R의 머리를 위로 끌어올리려 한다.

  

  R의 머리는 버티듯 잠시 쭈빗거리다. 못이기는 척 그가  이끄는 대로 따른다.

  

  "아아!"

  

  R이 뿌리를 목구멍 깊숙이 함몰시키자.  X는 몸을 떨며….

  

  나대로는 "몸을 떨며" 다음에 얼른 "신음한다."라고 타이핑한다. 그러나 그는 금방  찜찜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너무 상투적이다. 좀 더  개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뭔가 그런 표현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는 강민자 교감의 전화 때문에 날아가 버린 생각을  잡아오려고 안간힘 한다. 그러나 그것은 투명 인간처럼 흔적이 잡히지 않는다.

  

  나대로는 포기한다. 요런 대목에 자꾸  집착하다 보면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재빨리 써서  제치고, 필요한 부분은 나중에 수정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R은 그의 뿌리에 오랫동안  집착한다. 그녀의 혀는 뱀처럼 간교하게 날름거리고, 타액은 정염의 점액질이 되어 끈적거리며, 입술은 고급 창녀의 은밀한 탐욕처럼 노골적이다.

  

  X는 R의 그런 집착이 문득문득 두렵다. 그것은 불륜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인지도 모

른다. 그는 그녀가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 결사적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파릇파릇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그녀의 그러한 욕망 또한 그를 두렵게 있다.

  

  그녀는 집착하면서 스스로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따금 우우- 하는 울음소리 같은 신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고개가 갑자기 아래위로 격렬하게 움직이며 피스톤 운동을 하는 듯 하더니,  그녀는 몸을 한바퀴 돌린다.  그녀의 무성한 숲이 그의 얼굴은 덮고, 그들은 식스 나인의 자세다.

  

  X의 혀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샘을 맞는다.

  

  "아아!…"

  

  타이핑하던 나대로의 손은 다시  전화벨 소리로 방해를  받는다. 이번에는 휴대폰이 아니고 교무실 전화다.

  

  -에이 썅!

  

  시인에, 국어 교사답지 않은 막 말이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며, 그는 전화벨이 울리는  책상 쪽을 노려본다. 학생  주임 책상 위에 있는 전화다. 

  

  그는 몸을 일으킨다. 어쨌든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미안합니다."

  

  그 때 교무실 문이 성급하게  문이 열리며 미술 선생  이현미가 들어선다. 

                

  이현미 선생은 오늘  당직이다. 그런데  김윤하가 퇴근하지 않고 교무실에서 어정거리자, 시내에 볼일이  있는데 잠깐 나갔다 와도 되겠느냐며, 교무실을 그에게  맡겨 놓고 외출했었던 것이다.

  

  이현미 선생은 말처럼 성큼성큼  전화벨이 울리는 책상  쪽으로 걸어가서 수화기를 든다.

  

  -말(馬)!

  

  김윤하는 그녀에게서 자연스럽게 말을 연상하게 된다. 말에서 애마부인… 시인다운 감수성으로 이렇게 에로틱한 연상을 하게 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녀에게서  애마부인 같은 에로틱한 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내기 힘들다.

  

  그녀는 그냥 말 같다. 우선 길쭉한 얼굴이 말상이다. 큰 키에 성큼성큼한 걸음걸이도  여자답다기보다는 말 같다. 비쩍 바르고 골격만 큰 체구도 여성적이라기보다는 중성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데, 그것도 어쩐지 말 같다. 

  

  엉덩이만은 신체의 다른 어떤 부위보다 풍만하다. 아니, 시인의 감수성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것은 풍만한 것이  아니라 펑퍼짐하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도 말 같다.

  

  시인이며 국어 선생인 김윤하만, 시인다운 감수성으로 그녀에게서 말을 연상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별명도 마 선생이다. 학생들은 미술 선생이나, 이현미 선생님이라는 당연한  호칭을 제쳐놓고 그녀를 마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그는 2년 전 이  학교로 처음 부임해 왔을 때 그녀를 "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범했었다. 50명이 넘는 교사들의 이름 석자를 단밖에 다 욀  수는 없는 일이었고, 학생들이 마 선생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정말 그녀의 성이 "마씨"인 줄 알았던 것이다. 얼굴 모양과 성이 잘 어울린다는 야릇한 연상까지 하면서…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민망하고,  큭큭 웃음도  나온다. 그녀는 말이 하품하듯 유머 감각은 제법 있다.

  

  "저 부르신 건가요, 시 선생님?"

  

  "마 선생"이라는 그의 호칭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응대했었다.

  

  "저는 김윤하입니다. 시씨가 아니고, 김씨죠."

  

  그는 그녀가 성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조금 기분이  나빠져서 말했다. 그런데 "시씨"가 도대체 있던가?

  

  "아아 그러시군요. 시인이라고 하셔서, 저는  그것이 성함인 줄 알았어요."

  

  부근에 있던 교사들이 큭큭 웃었고,  그녀는 관객을 웃기는데 재미를 느낀 아마추어 코미디언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 아버님 성함도 마씨가 아니고, 이씨예요. 그래서 주민등록증에 이현미라고 제 이름이 되어 있어요. 마씨는 요 얼굴에만 붙는 성이고요."

  

  그녀는 손가락을 얼굴에 대고  뱅글 돌리는 제스처까지 하며 말했는데, 그쯤 되자 정작 민망해 진 것은 "시 선생" 김윤하 자신이었었다.

  

  그 때 그는  그녀의 유머 감각이 좀  매료되기는 했었지만, 그  후 지금까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교사라는 것 이상의 친분 관계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아니, 더러 에로틱한 농담을 주고받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친분 관계의 표시라기보다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예술가로서의 동류 의식이 일정한 몫 작용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는 누드에  대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마침 화가와 누드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그녀로부터 무슨 이야깃거리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해서였다.

  

  "화가들은 왜 누드를 열심히 그리죠.  누드 모델 쓰자면 모델료 지출도 더 많을 텐데."

  

  그는 아마 이런 식으로 운을 떼었었을 것이다.

  

  "화가가 아름다운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그리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그녀는 스스럼없이 그의 말을 받아 넘겼다. 

  

  그가 모델료 들먹이며  누드 모델 이야기 꺼낸  것은, 누드 모델과 화가 사이에 섬씽이 종종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뉘앙스를 풍기자는 의도가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가 시인 김윤하가 아닌 뽀로노  작가 나대로로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쪽이었으므로. 

  

  물론 그런 이야기 잘못하다가는 직장에서의 성희롱 된다는 

것쯤 시인 김윤하가 아닌 뽀로노 작가 나대로라고 해도  모르

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말쯤  가지고 말(馬)인 그녀가 

성희롱으로 몰아 붙이지 않으리라는  계산쯤 끝내고 꺼낸  이

야기였다.

  

  그런데 그녀의 응대가 기대와 다르게  퉁겨져 나갔고, 그렇

다고 해서 그쯤에서 아하 그렇군요 하고 입을 다물어버릴  수

도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그도  정공법을 써서  진지하게, 

아니 조금 모자라는 척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러니까 누드는 아름답다… 이런 이야기군요."

  

  "어떤 사물보다도 오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알몸이라는 것이 화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죠."

  

  "그건 물론 여자 알몸에 해당되는 이야기겠죠."

  

  "오우, 노- 휴먼 빙! 내가 분명히 인간이라고 말했어요."

  미술 선생 이현미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런데 누드화는 왜 한결같이 여자들뿐이죠."

  

  "남자들이 여자 화가 앞에서 잘 벗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것도 남자들의 그릇된  우월감이라 할 수 있는데,  저는 남자 누드에 관심 많아요."

  

  "그럼 제 누드도 그리실 용의가 있습니까?"

  

  "물론이죠. 벗어만 주신다면-"

  

  그 대화에서도 그는 당한 꼴이었었다. 그러나 당한 것이 꼭 기분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 이후  그는 언제든 말 앞에서 한번 벗어 보이겠다는 생각을 음모처럼 머리 한  귀퉁이에 꿍쳐두고 있는 터였다.

  

  -남자 누드 모델이 된 뽀로노 작가!

  

  그것은 감각적이고, 이색적인 뽀로노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제법  오래 된 이야기여서 그녀가  그 대화를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지만-

  

  아니, 잊었다면 기억을 되살려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 일을 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물론 통화가 끝나야 되겠지만-

               

  전화는 임자가 제대로 받은 듯했다.  이현미 선생은 전화통을 붙잡고 늘어진 채 쉽게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전화기가 놓여 있는 책상까지 거리가 있는  데다, 그녀 목소리가 본래 허스키여서 통화 내용을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그녀는 이쪽으로 등을 보인 채 긴 다리를 늘어드리고 책상에 턱 걸터앉은 자세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강조되어 김윤하의 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은 펑퍼짐한 엉덩이다.

  

  아니, 풍만한 엉덩이이다. 그는 시인 김윤하에서 금방  뽀로노 작가 한 대로로 돌아 와 있다.

  

  뽀로노 작가에게 펑퍼짐한  엉덩이란 없다.  말의 엉덩이에 대해서 쓴다 해도 독자가 그것을  풍만하고, 육감적인 엉덩이로 상상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그는 마(馬) 선생의 그 풍만한 엉덩이를 철썩 한 번 갈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흐흐…

  

  그는 뽀로노 작가답지 않게 말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마(馬) 선생이  됐든, 미술 선생 이현미가  됐든, 지금 그녀의 엉덩이에  너무 관심을 가질 때는  아니다. 글을 써야 한다. 준호형이 오기 전에 이번  회는 다 써버리자는 것이 그의 작정이었었다.

  

  화면 보호기의 작동을 멎게  하자 모니터 오른쪽 귀퉁이에 드러난 시계에는 오후 1시 59분이 표기되어 있다. 준호형이 2시 20분쯤 와 준다면 20분은 더 쓸  수 있다. 물론 당장 들이닥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써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준호형이 올 때까지는…  나대로는 생각의 가닥을  잡기 위해  앞서 써 놨던 글의 꼬랑지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착하면서 스스로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따금 우우- 하는 울음소리 같은 신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녀는 몸을 한바퀴 빙글 돌린다. 그녀의 무성한 숲이 그의 얼굴은 덮고, 이제 그들은 식스 나인의 자세다.

  

  X의 입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샘을 맞는다.

  

  "아아!…"

  

  나대로는 입 속으로 아아… 하고 되뇌며 끊어진 생각의 가닥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쉽게 실마리가 풀린다.  그의 손이 자판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X가 혀를 길게 내밀어 달콤한 젤리를  핥듯 석류알처럼 벌어진 R의 꽃잎을 핥자, 그녀는 몸을 떨며 신음했다.

  

  X의 혀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샘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호기심의 촉수를 번뜩이며 샘 안을  이 곳 저 곳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호기심을 충족시킨 아이는 금방 노련한 탐색가로 돌변한다. X의 혀가 스치는 곳곳에는 관능의 꽃망울이 맺고, 감각의 화약이 장전된다. 그래서 관능의 불꽃은 폭죽놀이처럼 온몸으로 번져 나간다.

  

  "으흐 흐… 아아… 흐."

  

  R은 공들여 모아 놓았던 것들을  흩트리는 것 같은 신음을 

내며, 그녀의 계곡 전체를 X의 얼굴에 강하게 밀착시킨다. 

  

  X는 금방 숨이  막힌다. 숨이 막혀 헉헉거렸다.  그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탈출을 시도하듯 R의 엉덩이를 끌어안고 재빨리 몸을 굴려 그녀의 위로 올라간다.  

  

  이제 주도권은 X의 몫이다. 그는 그것을 R에게 확인시키기

라도 하려는 듯 맹렬한 공격을 시작한다. 그러나 R의  방어도 

만만치 않다. 한치의 땅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방어군처럼 그

녀는 치열하게 공격에 맞선다.

  

  그들은 몸을 굴려, 몇 차례나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맹렬한 

공방을 계속했다.

       

  최후의 승자는 R이 된다. 아니, X는 기꺼이  승자의 자리를 

R에게 양보한다. 식스 나인의 자세를 푼 R은 X의  몸 위에서 

파도타기를 하듯…. 

  

  나대로는 타이핑을 멈췄다.  너무 평범하다. 감각적으로  매

끄럽게 풀리는 듯 하던 글이 결정적인 대목에서 너무  평범해 

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미흡하게 생각되는 부분을 되풀이해서 읽어본다.

  

  >그들은 몸을 굴려, 몇  차례나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맹렬한 공방을 계속했다.

  

  이건 상투적인 표현이다.  아주 요긴한  대목인데 상투적인 묘사로 얼버무린다는 것은 시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포르노그라피를 쓴다고 해서 그가 시인이 아닐 수는 없다.

  

  최후의 승자는 R이  되었다…로 시작되는 그  아래 부분도 

상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좀  더 섬세하게, 그리고  감각적으

로 써야한다. 아니, 보다 격렬하게 쓰는 것이 더 나을까?

  

  그는 그것을 묘사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구체적으로  그 

장면을 머리 속에서 연상하려고 노력한다.

  

  "뭘 그렇게 열심히 쓰세요?"

  

  그의 노력은  허스키한 목소리에  의해 방해받고  만다. 마(馬) 선생 이현미가 어느 사이 통화를 끝내고, 소요하는 말처럼 흔들흔들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나대로는 문득 위기 의식을 느낀다. 그녀가 등뒤로 와서 쓰고 있는 뽀로노를 들여다보기라도 한다면 큰 낭패다.

  

  "예, 잡문 쓸 것이 좀 있어서…"

  

  그는 얼른 저장  단추를 누르고 나서 말한다.  다음은 물론 종료다. 이제 더 이상  써 나가기는 틀려먹은 일이다.  준호형도 곧 들이닥칠 것이다.

  

  "우리는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남자처럼 엄지와 검지를 비벼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주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당연히 그가 쓰고 있는 글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로서는 도둑 제 발 저린 것이었다.

  

  "남자 친구…?"

  

  얼결에 튀어나온 질문이다. 나대로는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문득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기예요. 졸업 동기. 군대 갔다 와서 복학했으니까 학번은 나보다 빠르지만요?"

  

  "…"

  

  나대로는 문득 실망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히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이  여자한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사실이다. 김윤하는 마(馬) 선생 이현미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져 본 적은 없다.

  

  "…자기도 오늘 당직이래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전화했다는데, 딱 맞아떨어진 거지 뭐예요."

  

  말 같은 이현미 선생의 얼굴은 즐거움이 철철 넘치는  표정

이다. 나대로는 요것 봐라!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를 받고 즐

거움이 철철 넘치고, '자기'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올 정도라면 

보통 사이는 아니라는 이야긴데…

  

  …그럼 섹스도 했을까? 하고 나대로의 생각은 비약한다. 뽀

르노 작가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섹스일 수밖에 없다.

  

  그는 새삼스럽게 클라이맥스에 이른 그녀의 표정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주변 여자들을 보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그녀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는 것은 나대로의 뽀르노  작가

다운 고상한(?) 취미이다.

  

  여자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의 표정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현미 선생은, 그녀를 섹스와 관련시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그녀 표정을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다.

  

  물론,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여자가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는 지론은, 다양한  여성 체험을 통해 터득한  것은 아니다. 비록 뽀르노를 쓴다고는  해도 나대로는, 스물 여덟  살의 평균적인 총각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편력이 그리 다양한  편은 못된다. 그의 뽀르노는 대부분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그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 강민자 교감이다.

  

  강민자! 그녀는 "아름다움"이라는  말과 짝짓기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여자다.  꼭 용모나 몸매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

고,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

녀 주변에서는 항상 찬바람이 돈다. 

  

  그녀는 철저한 윈리원칙 주의자이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정의이다. 당연히 주변의 모든  일들은 그녀에게 못마땅

하다. 찌푸린 얼굴은  펴져 있을  때가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눈초리는 항상 매섭게 번뜩인다. 

  

  그녀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 감을 찾지 못해 안달하는 시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녀의 그러한 면면이 유능한 교감이라는 꽃다발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녀는 자신이 성실한  교육자요, 미림종합고등학교

라는 교육의 전당을 튼실하게 지탱시키는 버팀목이라는 자부

심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나 그녀는 재단 이사장의 친척별 된

다는 플러스 알파의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도 

그녀의 자부심에 흠집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나대로는 그녀가 섹스를 원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

던 일이었다. 그녀는 마흔 다섯  살의 독신주의자 노처녀답게 

남자에 대한 혐오감을 일상적으로 드러냈었다. 그래서 여선생

들보다는 남자 선생들이 그녀를 더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원했고, 그는  잔뜩 위축된  상태에서,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위기감과 공포심까지 느끼며 그녀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더 큰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공포심!

  

  모든 것은 기우였다.  그녀는 의외로 능숙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데 적극적이라는 것이 놀라웠고, 남자를 리드해서 스스로 엑스터시에 도달할  줄도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엑스터시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자태란! 

  

  그녀는 온 몸으로 아름다움을 발산시켰다. 시인의 감수성에 

그것은 예민하게 포착되었고, 그가 그녀에게  가졌던 온갖 고

정 관념은 한 방에 날아갔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엑스터시에 이르렀을 때  아름답지 않는 여자는  없다. 아

니, 엑스터시에 이르렀을 때 여자는 가장 아름답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나대로는 강민자 교감과의 관계에서 얻은 체험을 일반화함으로써 스스로 지혜로운 자의 자리로 올라섰다. 여자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때는 클라이맥스에 이른 표정이 라는 그의 지론은 그렇게 해서 확립된 것이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현미 선생의 말에 나대로는 움찔하며 상념에서 깨어난다.

  

  "뭔가 황홀한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표정이… 아니면 음탕한 생각이었던가?"

  

  "흐흐 음탕한 생각을 했었죠. 그림 그리시는 분이라 감수성이 놀랍군요."

  

  "물론 저에 대한 무슨 음탕한  상상을 하신 것은 아니겠죠. '너 자신을 알라' 하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쯤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이 선생님에 대한 음탕한 생각입니다."

  

  "흐흐 농담이시겠죠,"

  

  그녀의 웃음은 분명 소크라테스 같은 웃음은 아니고, 말 같

은 웃음이다. 그런데… 하고 나대로는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 여자에게 매력적인 면이 아주 없는 바도 아니다. 가령,  그

녀의 감수성은 놀랍고, 그것은 섹스의  굿 파트너로서 훌륭한 

자질 아닐까?

  

  그리고 또… 어쩌면 그녀는  스포츠를 즐기듯 섹스를  즐기

는 타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그것은 그녀의 말 

이미지와 결합되어 떠오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천만예요. 누드 모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이 선생님의 누드 모델이 되는 생각…"

  

  나대로는 문득, 이 여자의 날카로운  감수성이 지금 자신의 

생각까지 꿰뚫고 있을 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며  얼른 

말한다. 

  

  "그게 왜 음탕한 생각이에요. 예술적인 생각이죠."

  "으흐…"

  

  이번에는 나대로가 말처럼  웃지 않을 수 없다.  아 여자는 확실히 나보다 한 수 위다!

  

  "그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한 건가요?"

  

  이현미가 다시 말한다.

  

  "무슨 이야기 말씀인가요?"

  

  "제 누드 모델이 되어 줄 용의가 있다는 얘기…"

  

  "물론입니다."

  

  "잘 됐네요. 그럼 다음 주부터라도 시작하죠."

  

  "…!"

  

  나대로, 아니 김윤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나 어떻게!' 하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누드 모델까지 하자면 주말이 너무 바빠질 수밖에 없다.  으흐흐흐…

  그때 한준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학교 앞에 와 있으니 빨리 나오라는 거였다.

  

  나대로는 누드 모델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현미  선생에게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얼른 노트북을 챙긴  후 도망치듯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

  

                     *  *  *  *  *

  "네 뽀르노 요즘도 잘 나가니?"

  

  나대로를 보자 한준호가 대뜸 물은  말이다. 주변에서 그가 시인이며 국어 교사인 김윤하인  동시에 뽀르노 작가  나대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준호 정도다.

  

  그들은 그럴만한 인연이 있는 사이다.  나대로에게 자위 행위를 가르쳐 준 것이 바로 한준호이다. 나대로가 중2,  한준호가 고2였을 때의 일이다. 아니,  그 때 나대로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김윤하였지만. 김윤하 학생-

  

  그 무렵 그들은  서울 고덕의 한  아파트에서 같은  라인의 바로 앞 동에  마주 보며 살았었다. 그리고  한준호는 이따금 야한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윤하네 집으로 보러 왔었다. 윤하 부모가 맞벌이 부부인 탓에  집에 어른이 없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준호는 비디오를 보면서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고, 윤하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 배우게  되었다. 김윤하는 요즘 때때로, 자신이 뽀르노 작가가 된 토양은  그 때 준호형과 야한 비디오를 열심히 본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 후 준호네가 이사를 가면서 두 사람 사이는  단절됐었는데, 참으로 우연스럽게 그들은 이 곳 Y시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10여년만에…

  

  그들은 긴가민가하며 조심스럽게 서로를  확인했고, 옛날의 한준호와 김윤하라는 것이 분명해 지자

  

  "너 시인 됐더구나? 시인 김윤하가 너 맞지?"

  한준호가 대뜸 한 말이었다.

  

  "형, 그것도 알고 있었어!"

  김윤하는 감격스러웠다. 준호형이, 자신이 시인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니…

  

  "그럼. 너 예전부터 글짓기에 소질 있었잖아. 너희  집에 글짓기 대회 나가  받은 상장 많이  걸려 있었지. 그래서,  얘가 마침내 시인이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럼 연락 좀 하지 그랬어요. 잡지사 같은 데 알아보면 내 연락처야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글세… 생활인으로 살다  보니 그렇게  까지는 되지  않더라."

  

  그쯤에서 김윤하는 오발탄을 쏘고 말았다. 당시로서는 말을 뱉어놓고 나서, 아차! 오발탄을 쏘았다는 찔끔한 생각이 들었었다는 이야기다.

  

  "후후, 나 에로티카 쓰는 건 모르죠?"

  

  "에로티카?"

  

  "성애 소설이라고는 거 있잖아요. 주로 남녀간의 정사를 감

각적으로 다루는 소설…"

  

  "아아,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뽀르노 쓴다는 얘기구나."

  

  -뽀르노!

  

  나대로는 그 때, 한준호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온  '뽀르노'라는 말이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었다. 그는  자기가 쓰는 작품을 점잖게 성애문학, 또는 서양식으로 말하면  '에로티카'라는 명칭으로  미화하기를 좋아했었다.  작품에  어쨌든 문학이라는 월계관을 씌워주고 싶어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계속 글을 써나가다 보니 자신의 생각이 사치요 허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문학이라는 월계관에 집착해 봐야  그것이 먹혀들지 않았다. 감각적이고, 야하지 않으면  독자가 붙지 않았다. 그리고  독자가 붙지 않는 작품이란 이 바닥에서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야하게,  감각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에 '성애문학' 또는 '에로티카'라는 월계관을 씌워 눈 가리고 점잖 빼기보다는,  '뽀르노'라는 명칭이 한결 더 어울린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포르노' 보다도 준호형이 발음한 그대로 '뽀르노'가 더 어울리고 감각적이었다.

  

  그가 뽀르노를 쓰면서 마지막  보루로 지켜나가고 있는 자존심은, 이른바 "야설"이라는 글들과는 차별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쓰겠다는 정도였다.  그러므로 그는  작품에서 소설적인 구성은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감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 일상적인 언어로서의 품격은  잃지 않는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디오로 비유해서 말하면 무조건 핥고, 빨고, 배설하는 일만으로 일관하는 하드코어가 아닌, 일정한 스토리는 가진 포르노그라피를 쓰고자 한다는 이야기인데, 나름의 문학적 수업을 쌓아 시인이라는  이름 정도는 얻어  걸친 그로서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째든 요즈음은 뽀르노라는 말에  대해 그는 별다른  거부

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십여 년만에 준호형과 재회한 자

리에서 '에로티카'를 쓴다는 오발탄을 쏜 것도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었으면 잘된 일이었지, 그릇된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

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가 에로티카를 쓴다는  오발탄을 쏘지 않았다면  준호형으로부터, 두 여인과 벌린 관능적인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이야기를 얻어듣는 행운은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뿐인가? 준호형은 그에게, 뽀르노  소설의 소재가 될만한 이야깃거리들을 제공해 주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십여 년 전 준호형으로부터 자위행위를 배워 비밀을 나눠 가진  사이가 되었던 것처럼, 그들은 또 다시  서로 비밀을 나눠 가지는 사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요즘 네 뽀르노 잘 나가니?' 하는 한준호의 질문에  대해서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럼요, 내가 누굽니까? 시인 아닙니까, 시인!. 시인이 쓰는 뽀르노그라피…' 어쩌고 하며 나대로는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유료 사이트에서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뭐 그렇죠…' 하며 그 말을 대충 받아 넘겼다. 

그리고 결혼식으로 관심의 방향을 회전시켰다.

  

  "그런데 말이우,  그 결혼식 정말  내가 가도  괜찮은 자린

가?"

  

  "뭐 어때? 누구한테 부조할 일 있는  것도 아니고, 네 목적은 두 여자 얼굴 보자는 거 아냐?"

  

  "…!"

  

  한준호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  *  *  *  *

  

  미림대학교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미림종합고등학교와 붙어 있다.

  

  한준호는 차를 고등학교 앞 빈터에 그대로  세워 둔 채, 두 사람은 대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말야, 네가 뽀르노 작가니까 묻는 건데…"

  

  한준호가 문득 진지한 표정이 되어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심각한 표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까?

  

  나대로는 잠자코 그의 말이 계속되기를 기다린다.

  

  "윤교수 부인한테서 연락이 온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

까?"

  

  "뭘 어떻게 받아들여요? 친구  결혼한다고 오라고 한  거라

며?"

  

  '그게 말야, 따지고 보면 내가 꼭 참석해야 할 성격의  결혼식은 아니거든."

  

  "왜 아니유? 두 여자 다 보통 인연인가?"

  

  "흐흐…"

  

  "…"

  나대로는 준호형이 꼭  마(馬) 선생 이현미  같이 웃는다는 생각이 든다. 두 여자와 가졌던  화려한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생각이라도 잠깐 떠오른 것일까?

  

  "너한테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그 동안 딱 단절되어 있었잖아. 내가 몇 번이나 메일 보내고, 전화했어도 바늘 끝  들어갈 틈도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나긋나긋해져서, '정애, 박교수와 재혼해요' 하며 꼭 참석해 달라는 거야."

  

  "그러니까 그 변화된 태도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 다시  형

을 원하기 때문은 아니겠느냐? 이런 것 묻고 싶은 거죠?"

  

  "바로 그건데… 뽀르노에서는 이런 때 어떻게 쓰니?"

  

  "감격적인 재회가 이루어지고, 뜨거운  정사를 나누고… 이게 정석이겠죠."

  

  "뽀르노에서는 당연히 그런 식으로 나가겠는데, 현실에서도 그런 정석이 맞아떨어지겠느냐 이거야?"

  

  "공은 이쪽으로 넘어온 거예요. 중요한  것은 그 쪽의 뜻이 아니라 이쪽의 액션이라 이런 뜻입니다."

  

  "…!"

  

  "형, 그 여자 원하는 거죠?"

  

  "음- 항상 생각하게 되는 거지만 그 여자와 나는 환상적인 파트너야, 그날, 오늘의 신부 오정애 여사가 너무  격정적으로 나와서 그녀와는 제대로 끝낼  수가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도 있고…"

  

  "그럼 당연히 밀어부쳐야죠."

  

  나대로는 한준호의 용기라도 북돋아 주려는 듯 단정적으로 말했다.

                     *  *  *  *  *  

  그들이 예식장인 교수회관에 도착했을 때,  결혼식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팔을  반쯤 올려 손을 우아하게 흔들어 보이는 여인이 있었다.

  

  나대로는 그녀가, 윤경민  교수의 부인이며, 미림학원  재단 이사장의 딸인 민혜영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혹시 안  오시는 거 아닌가 걱정했어요."

  

  그녀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번지고 있음을 나대로, 아니  김윤하는 시인의 감수성으로 읽어내기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한준호가 오기를 기다리며, 결혼식이 시작되고 있음에도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예, 앞에 수업이 좀 지체돼서요."

  

  한준호는 태도는 마치,  좋아하는 여선생  앞에서 쩔쩔매는 

초등학생 같았다.

  

  민혜영은 발끝까지 끌리는 검정색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리고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과 목을 제외한 피부가 드러나는 부분을 거의  검정색으로 치장하고 있는  셈이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가무잡잡한 피부를  거의 깨닫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또, 그녀가 짙은 향수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한준호로부터 들은 그대로였다.

  

  나대로는 그녀에 대해서 얼마쯤 경멸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대학 이사장의 딸에, 남편이 존경받는 교수인 여자가 젊은 컴퓨터 강사와, 그것도  과부인 친구까지 끌어들여 2+1을 벌렸다는 것은 포르노그라피의 감각적인 소재는 될 수 있을 지 몰라도, 보편적인 삶의  자리에서는 결코 상찬 받을만한 일이 못됨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 앞에서 주눅이 들고 있었다. 그녀는 상류사회 집안 출신답게 기품  있고, 우아하고, 행동은 한껏 여유 있었다. 그는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그녀가, 친구에게 커닐링구스를 하고 있는 남자의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고 펠라티오를 해서 폭발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뽀르노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도 제대로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후뱁니다. 요 앞에서 우연히 만나서 함께 왔어요. 미림고등

하교에 근무하거든요."

  

  한준호가 나대로를 민혜영에게 소개했다. 그가  함께 온 것을 우연으로 얼버무리는 배려를 곁들여서…

  

  "김윤합니다."

  

  나대로는 정확하게 국어교사 김윤하로 돌아 와서 민혜영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재단 이사장 딸 아닌가?

  

  "김윤하 선생님이시라면… 시 쓰는 국어 선생님 아니신  가요?"

  

  "…!"

  

  오오, 이 여자가 나를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김윤하가 당혹감에 얼른 응대를 못하고 있는데,  한준호가 대신 나서서 말했다.

  

  "맞습니다. 아주 유명한 시인이죠."

  

  그는 후배가 시인이라는 것을  한껏 자랑하고 싶어하는  태

도였다. 뽀르노 작가라는 것까지 떠벌렸다가는 물론 낭패였겠

지만…

  

  "교감 선생님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훌륭한  시인이시고, 실력 있는 선생님이시라고 칭찬 많이 하시던 데요…"

  

  "감사합니다."

  

  김윤하는 속으로 오 마이 갓!  하고 외치며 말했다. 교감이 재단 이사장  딸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떠벌리고  다니다니… 교감이 이사장과  인척간이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올  기회가 있었을 법한 일이기는 했다.

  

  사회자가 신부 입장을  알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 가 자리를 잡았다.

  

  김윤하의 관심은 이제 신부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아니 국어 교사 김윤하의 관심이 아니라, 뽀르노 작가 나대로의 관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민혜영 못지 않게 신부 오정애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하긴 신부라는 자리에 서면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있을까? 그러나 그런 프리미엄을 감안한다고 해도 괜찮은 용모임이 분명했다.

  

  한준호가 말했던 대로 살결이 희고, 통통한 체구에,  현모양처형의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그런데 저 여자도 그렇게  격정적이었다니… 준호형은 복도 많지…

  

  주례사가 시작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김윤하는 민망해져서 얼른 밖으로 뛰쳐나와 전화를 받는다. 

  

  미란이었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내려왔는데 지금 어디 있느냐는 거였다.

  

  김윤하로서는 이 결혼식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이 곳에 온 목적은 오르지 준호형과 포르노그라피를 연출했던 두 여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으므로…  그 목적은 달성되었고, 미란의 전화는 그에게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해 제공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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