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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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두 팔을 벌리며 충영이 대쉬해 들어가자 상대가 공을 동료에게 패스한다.

무리하게 드리블로 돌파하지 않고 가볍게 패스로 돌리다 3점슛 한 방을 노릴 심산이다.

충영은 명기를 힐끗 보았다.

‘......!’

지구력이 약한 명기는 그 동안 충영이 몸으로 커버를 많이 해 줬지만 한계에 이른 듯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안 되겠네.’

명기에게 기대를 포기한 충영은 드리블을 하며 점점 골대 가까이 전진하는 상대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어어어?”

상대도 어지간히 지쳤는데 충영이 멧돼지처럼 달려들자 당황하여 얼른 패스를 해 버린다. 순간 충영이 팔을 들어 올려 공을 낚아채려하자 공이 그의 손 끝에 걸리다 아쉽게 상대에게 넘어가 버린다.

“후우.”

하마터면 공을 빼앗길 뻔하자 상대는 한숨을 돌리다 다시 충영이 자신에게 두 팔을 흔들며 달려들자 패스를 하기 위해 동료를 찾았다.

하지만 충영이 팔을 높이 쳐들고 있어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잘못하다 조금 전처럼 공을 빼앗기면 낭패가 아닌가.

상대는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드는 충영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그대로 슛 자세를 취했다. 3점슛치곤 거리가 조금 멀긴 하지만 들어가면 게임 끝이다.

“아앗!”

상대가 슛모션을 취하자 충영은 크게 함성을 지르며 더욱 속도를 높여 상대에게 돌진했다.

“으음.”

충영이 자기 몸을 부셔버릴 듯 맹렬하게 돌진하자 상대는 그대로 슛을 날렸다. 

‘......!’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골대를 향해 날아가는 공으로 향했다. 

하지만 충영이 달려들면서 발생한 심리적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듯 상대가 던진 공은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 골대를 맞고 바로 튕겨져 나왔다.

“아아!”

상대의 아쉬운 탄식 속에 골대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명기가 재빨리 공을 받아 그대로 레이업 슛을 해 2점을 땄다. 

“와아!”

“나이스.”

골이 들어가자 명기와 충영보다 관중들이 더욱 기뻐하며 함성을 올렸다. 상대는 선수라 기량도 더 뛰어났고 폼도 멋이 있었지만 약자를 응원하려는 심리가 있어 상대에 비해 기량도 부족하고 여러 면에서 딸린 이쪽이 대등한 경기를 펼치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제 스코어는 46대 47.

아직도 비세다. 상대는 3점이면 끝을 낼 수 있지만 이쪽은 어떻게 하든 두 번은 골을 넣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명기는 숨이 턱에 차서 제대로 서 있기도 곤란한 지경인데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충영은 포기할 수 없었다. 상대도 초반에 점수차를 벌리느라 무리하게 힘을 써 지금은 많이 지친 상태다. 반면 지구력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충영은 아직도 더 싸울 여력이 남아 있어 그 점을 이용하면 마지막까지 버텨볼 여지는 충분한 것이다.

명기가 공을 넘기자 충영은 서서히 드리블하며 나아갔다.

“막아!”

한 놈이 명기에게 달려가며 소리치자 다른 녀석이 충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맨투맨 작전으로 나오는데 슛에 능한 명기를 하나가 막고 다른 하나가 충영을 상대해 공을 빼앗거나 충영으로 하여금 슛을 쏘게 만들려는 것인데 슛에 약한 충영이 만약 명기에게 패스를 하면 이미 지친 명기에게 공을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또 충영이 슛을 하면 먼 거리에서 성공할 확률은 10프로도 안 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충영은 이번엔 자신이 혼자서 점수를 따 내리라고 마음 먹었다.

“명기야!”

충영이 명기를 부르며 패스하려는 동작을 취하자 명기가 두 손을 치켜들었고 충영을 막아선 상대도 공을 차단하기 위해 몸을 점프하며 두 팔을 뻗었다. 순간, 충영이 반대로 몸을 틀더니 공을 땅에 튕기며 골대를 향해 달려갔다.

“어엇! 안 돼.”

항상 블로킹이나 명기에게 패스만 하던 충영이 페인트와 함께 갑자기 공을 몰고 골대를 향해 나가자 상대는 몸을 완전히 반대로 뺏긴 상태에서 헛바람을 들이키며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든 팔을 뻗어 차단해 보려하지만 충영은 이미 상대에게서 벗어나 골대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었다.

“막아!”

소리쳐 보지만 명기를 대인방어하고 있던 놈은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어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태라 충영의 상대가 뒤늦게라도 기를 쓰고 충영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쿵쿵쿵-

보기엔 약간 육중해 보였지만 충영의 달려가는 속도는 상대에 비해 절대로 느리지가 않았다. 

드리블을 하며 달려가던 충영이 골대 근처에 이르자 농구장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며 몸을 붕 띄웠다.

“아아!”

“덩크다.”

관중들의 함성을 들으며 충영은 손을 높이 들고 골대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며 덩크슛을 했다.

“와우, 최고다.”

“역전.”

경기한 이래 처음으로 터진 덩크슛에 관중들은 환호했고 다 죽어가던 명기도 충영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다시 전의를 불태웠다. 이제 48점을 얻은 이쪽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다.

“한 점만 더...”

명기가 드리블을 하자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자 충영도 똑같은 모션을 취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길 수 있다.”

“화이팅.”

활기찬 두 사람의 동작을 보고 관중들도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야아. 잘한다.”

“끝내버려.”

명기가 골대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한 놈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명기가 얼른 충영을 향해 패스한다.

이번엔 충영이 서서히 드리블.

충영이 공을 잡을 땐 상대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한다. 체격에서 현저히 밀리는 데다 힘으로는 더더욱 상대가 되질 않아서 몸끼리 부딪치면 통증을 느낄 정도로 충격이 강해 근처에서 길을 막아설 뿐이다.

명기가 적절한 거리에 들어서며 충영을 향해 사인을 보내자 충영은 곧바로 그에게 공을 패스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대를 향해 뛰어갔다. 

쿵쿵쿵-

상대가 멍한 표정으로 충영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명기가 슛을 날렸다. 슛을 하기엔 너무 먼 거리여서 상대도 예상을 전혀 하지 않다가 어엇, 소릴 내며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충영을 보고 그제야 황급히 충영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충영은 그들보다 훨씬 앞서 달리고 있었고 명기가 날린 슛은 골대를 맞고 밑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충영과 명기의 필살기였다. 다섯 명이 정식으로 하는 경기에서는 통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2대 2로 경기를 할 때 명기가 멀리서 슛을 날린다. 물론 득점을 하기엔 거리가 길지만 명기의 정확한 슛감각으로 골대는 맞출 수가 있고 그 속도와 거리를 감안해서 충영이 골대로 달려들어 리바운드를 낚아챈다. 

텅-

골대를 맞고 아래로 내려온 공을 충영이 잡자 상대 팀 두 놈 모두 혼비백산하며 전력으로 충영을 향해 돌진했다.

충영은 그런 그들을 여유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는 공을 잡고 있는 충영에게만 온 정신을 다 팔고 있었기에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 들어오는 명기는 볼 수가 없었다.

충영은 얼굴에 웃음까지 지어가며 둘을 바라보다 그들이 자신의 곁에 이르러 몸으로 막아서려하자 그들의 사이로 공을 빼 뒤따라오는 명기에게 패스했다. 

달려오던 명기가 충영의 패스를 받아 공을 잡고 달리던 탄력 그대로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가볍게 슛.

명기의 손을 떠난 공이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바스킷에 가 꽂혔다.

철렁-

공이 그물을 빠져나오는 순간 명기와 충영이 동시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이겼다.”

“야호!”

관중들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함성을 질렀다.

“야! 잘 한다.”

“기어이 역전을 하는구만.”

소태를 씹은 표정으로 상대가 50만원을 건네자 명기는 반대로 활짝 웃으며 돈을 받아들었다. 그의 입장에선 50만원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치열한 승부 끝에 얻은 돈이라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충영이 가방에서 타월을 꺼내 내밀자 명기가 그것을 받아 얼굴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집에 갈래?”

충영이 묻자 명기가 그의 얼굴을 보며 웃는다.

“공돈도 생겼는데 쓰고 가야지?”

“그러자. 땀도 많이 흘렸는데 맥주 한 잔 정도는 해도 되겠지?”

“그럼. 오늘 같은 날은 좀 마셔도 되지.”

충영은 이런 명기가 좋았다. 재벌 총수의 아들에 머리도 수재요, 외모도 최상급이었지만 이렇게 놀 때는 또 확실하게 놀 줄도 아는 녀석인 것이다. 

그때 누군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충영과 명기의 눈이 동시에 돌아갔다.

‘뭐야? 엄청 미인이네.’

두 여자가 그들의 앞을 막고 섰는데 둘 중 한 여자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굉장한 미인이었다.

‘외모로는 대성의 3총사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겠다.’ 

충영은 여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까지 충영이 보아온 최고의 미인은 대성그룹의 안방마님과 그녀의 두 딸이다. 

회장의 부인인 명화영은 재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소문난 미녀였고 그녀의 두 딸, 즉 명기의 두 살 위인 누나 김영진과 그보다 7살 어린 동생 김수진 역시 엄마와 견줄만한 미모를 갖고 있어 어릴 때부터 가까이 봐온 충영으로서는 그들 셋보다 더 아름다운 여잘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과 필적할 만큼 예쁜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명기 역시 약간 놀란 모양이다. 늘씬하고 예쁜 그 여잘 뚫어지게 보고 있다.

두 남자가 동시에 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는 말이 없고 그 옆에 서 있는 평범함 외모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실례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시간 되시면 우리랑 같이 어울리지 않을래요?”

여자의 말에 충영이 명기의 얼굴을 보았다.

명기도 마침 충영의 얼굴을 보고 있어 시선이 마주치는데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지내온 사이라 충영은 명기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

충영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린 맥주 한 잔 마시러 갈 생각이었는데 같이 갈 까요?”

“좋아요.”

여자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저녁 겸 간단한 주류를 함께 하며 네 사람은 급속하게 친해졌다.

아무리 청춘의 남녀라지만 그들이 그토록 빠르게 친해지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서로 짝이 적절하게 맞아들었기 때문이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예쁘고 늘씬한 미녀의 이름은 이수빈으로 알고 보니 명기와 같은 학과 1년 후배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경영학과 3학년에 이토록 예쁜 여자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고 또 명기가 자기와 같은 학과 4학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수빈도 급속하게 명기에 대해 호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 사이가 친해지자 충영은 자연스럽게 수빈의 친구인 여자를 오늘의 파트너로 삼았다. 

그녀의 이름은 송인경으로 충영처럼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오늘 마침 친구인 수빈이 다니는 이 대학에 놀러 왔고 그러다 우연히 충영과 명기가 농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관전하다 접전이 벌어지자 그들은 일제히 두 사람을 응원했다. 그것도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수빈은 명기를, 인경은 충영을 응원했고 경기가 끝나갈 즈음에 인경은 수빈에게 제의를 했다. 만약 저들이 이기면 가서 데이트 신청을 하고 지면 그냥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리기로 말이다. 그런데 곧 질 것 같던 경기가 뒤집어지자 그녀들은 이것도 굉장한 인연이라 생각하고 두 남자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나는 아니지만 여기 수빈이는 남자에 대해 완전 숙맥이에요. 오늘도 내가 아니었으면 이런 자리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인경이 웃으며 말하자 충영이 말을 받았다.

“그쪽만 그런 거 아니다. 여기 이 도련님도 얼굴은 이렇게 잘 생겼지만 여자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라.”

“에이. 거짓말.”

인경이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충영이 수빈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야. 얘네 집안이 워낙 엄격해서 남자라도 함부로 인생 낭비하고 그러면 회장님이 용납하지 않으시거든.”

충영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회장이란 말이 나오자 두 여자의 안색이 변한다.

“보통 집안이 아닌 모양이네. 혹시 뉴스에 나오는 그런 집안인가?”

인경이 묻는데 곁에 있는 수빈이도 관심을 갖고 충영의 입술을 주시한다.

충영은 명기의 얼굴을 보았다.

‘......!’

평소라면 대성그룹이란 말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데 지금 명기의 얼굴 표정은 그게 아니다. 

말을 해도 무방하다는 명기의 얼굴표정을 읽고 충영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대성그룹이라고 들어봤어?”

충영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자 두 여자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 대성백화점의 대성그룹?”

인경이 말을 더듬자 충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분이 그 대성그룹 회장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드님이시다.”

충영이 농담식으로 가볍게 말을 꺼냈지만 두 여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청나네.”

인경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데 수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학교에 소문이 안 났을까?”

명기가 웃으며 수빈에게 말했다.

“그건 수빈이도 마찬가지잖아? 그 정도로 예쁘면 학교에 소문이 났을 텐데 왜 나는 몰랐지?”

“미국에서 학교 다니다 편입한지 얼마 안 됐거든요.”

“아. 어디?”

수빈이 망설이자 인경이 낼름 답한다.

“하버드 다니다 편입했어요. 수빈이도 공부라면 어디에 내 놔도 꿀리지 않는 천재예요. 뭐. 오빠만큼 집안이 빵빵하진 않지만.”

인경의 입에서 바로 오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하. 우리 그룹 이름 때문에 부담이 돼서 말이야. 나도 학교 다니면서 누구에게도 집안 얘긴 한 적이 없거든. 철저하게 비밀로 했는데 오늘, 그만 들켰네. 한 가지 부탁할게. 나에 대한 얘기 학교에 퍼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명기가 수빈을 향해 말하자 그녀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안 할 게요.”

명기에 대해 감탄할 만큼 하다가 대화가 끊기자 이번엔 수빈이 충영을 보며 묻는다.

“충영 오빠는 명기 오빠와 어떤 사이예요? 학교 동창?”

수빈이 맑은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자 충영은 처음으로 어떤 열등감을 느꼈다.

충영이 바로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명기가 대신 나서준다.

“친한 친구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쪽 같이 지냈을 뿐 아니라 서로 마음이 가장 잘 통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지.”

“아아!”

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데 명기의 말 한 마디에 충영도 덩달아 스펙이 확 올라간다.

하지만 충영은 내심 씁쓸하게 치밀어 오르는 기운을 억눌렀다. 실상을 말하자면 자신은 명기의 친구가 아니라 종이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이 아니었다. 충영의 아버지 정충국은 회장의 종이고 충영의 엄마인 함순영은 회장 사모님의 하인이었다.

겉으로야 그럴 듯하다. 충국은 회장의 아우라 칭해지며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종의 신분을 탈피할 수는 없었다. 함순영 역시 어렸을 때부터 사모님을 언니처럼 따랐지만 실상은 그녀의 수족이 되어 온갖 잡일을 돕는 노비나 마찬가지였다.

충영의 얘기를 해 나가자면 그의 가문과 회장의 가문을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명기와 충영의 인연은 그들의 부모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길게 이어져 내려온 가문과 가문의 질긴 인연이었다.

조선시대에도 명기의 선조는 뼈대 있는 양반가문이었고 충영의 선조는 그 집의 종이었다. 아니, 충영의 조상도 엄밀하게 뿌리를 따지자면 절반은 양반가문이었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몇 대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선조 할머니 한 분이 유명한 장수를 부친으로 둔 양반이었다. 그런데 부친이 당파싸움에 말려 갑자기 역모죄로 몰렸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남자들은 다 죽고 여자인 할머니 혼자 간신히 살았지만 노비로 전락했고 그렇게 전전하다 그녀는 명기의 선조 가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남자노비 하나와 정을 맺고 자식을 낳게 되는데 그 자식들 중 하나가 뛰어난 충성을 바쳐 주인의 큰 인정을 받게 되고 그때부터 충영의 선조는 대대로 명기의 선조네 집에서 종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하찮은 종에서 시작한 두 가문의 관계는 조금씩 변하게 되는데....

조선말쯤에는 충영의 선조가 하찮은 종의 신분에서 그 양반가문의 집사로 승격하게 되고 그 인연은 일제치하에서도 이어져 충영의 선조는 주인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바친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잠깐이나마 전세가 역전이 돼 명기의 증조부가 빨갱이들에게 잡혀 부르주아의 표본으로 걸려 죽을 뻔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때 극적으로 충영의 증조부가 주인을 대신해서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렇게 목숨을 버려 최고의 충성을 바친 결과 그 뒤로 충영의 조부 때부터는 주인에게 막대한 신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명기의 증조부는 시골에 있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와 기업을 일으킨다. 그 사업은 날로 번성하여 명기의 조부 때에 이르러 한국 100대 기업으로 성장하고 마침내 걸세출의 인재인 명기의 아버지가 총수로 앉은 뒤로는 30년이 채 못 된 기간 동안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여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10위 안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려놓아 국민 누구라도 대성그룹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재벌기업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회장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충영의 아버지 정충국이다. 

회장과 그는 겉으로는 회장과 집사지만 내막을 보면 엄연히 종이다. 하지만 또 더 깊이 들어 가보면 그는 회장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친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충영의 아버지가 회장과 그런 관계이듯 그의 엄마 순영 역시 명기의 엄마 화영과 친동생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순영은 화영과 달리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그날 하루 먹을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돈에 시달렸다. 

화영이 결혼한 뒤 그녀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던 그녀는 충영의 아버지 충국도 자주 보게 되었고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약간의 호감을 갖던 중 회장과 화영의 주선으로 정식 선을 보게 됐고 결국 결혼까지 이르게 됐다. 

순영은 그때 나이가 스무 살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그 다음해였다. 여자로서 결혼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었지만 언니라며 따르던 화영도 대학 1학년 때 결혼을 하였고 가난한 집안에서 입이라도 하나 줄이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충영의 아버지에게 시집을 온 것이다. 충국도 회장을 보필하느라 돈 같은 것은 모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 모든 것을 회장이 다 알아서 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충영이 태어났다.

아버지 충국은 영원히 회장 가문에 충성하라는 뜻으로 이름도 충영이라 지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충영의 가족은 또 하나의 사건을 맞이한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충영의 엄마 순영이 교통사고로 거의 죽을 뻔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충영은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날씨도 화창한 봄날 충영의 가족은 생전 처음으로 셋이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충국이 운전을 하고 순영은 조수석에, 그리고 충영은 뒷좌석에 타고 시골길 좁은 도로를 가는데 커브길을 돌다 갑자기 맞은 편에서 대형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하여 곧바로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운전이 능숙한 충국이라도 그러한 돌발상황에서는 마땅히 대처할 수단을 찾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고 말았다. 그러자 차는 트럭을 피해 도로 옆 큰 나무에 충돌했고 그 결과 충국과 충영은 무사했지만 순영이 크게 다쳤다.

정신을 수습한 충국이 트럭을 찾았지만 운전자는 그대로 달아난 상황이었고 순영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충국은 사고를 유발한 운전수를 내버려두고 아내를 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하지만 순영이 입은 상처는 도저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만큼 중상이었고 그녀를 담당한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란 말밖에 하지 않았다.

그때 사고 소식을 들은 회장이 곧바로 달려왔다.

시골병원에 들어온 그는 곧바로 순영을 서울 가장 큰 병원으로 옮기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순영의 상태는 너무나 비관적이었다.

그녀가 입은 상처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었지만 그 중 특히 큰 상처를 입은 곳은 심장이었다.

심장이 파열돼 도저히 이식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날 방법이 없었는데 회장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순영에게 맞는 심장을 구했고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이식을 받은 순영은 그야말로 극적인 소생을 하게 된 것이다.

회장이 동분서주하며, 또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심장을 구하기까지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충영와 충국은 그녀가 극적으로 살아나자 회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내가 그리 됐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충국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이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충영도 회장이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로밖에 생각이 안 들었고 이후로 회장을 위해서라면 활활 타는 불속에라도 들어가리라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들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 회장도 두 사람을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다.

사고가 나기 전에도 충영은 운동을 열심히 했었지만 사고 이후로는 오로지 운동에만 매달리며 자신의 몸을 인간병기로 만들어갔다. 명기가 공부를 하는 그 이상으로 몸을 단련시킨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회장이 명기의 보디가드가 되라는 지시에 따른 것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충영은 회장의 명령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수행해 오고 있는 중이다.

충영이 하는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회장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버지가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바로 달려가 돕는다. 또 그 집 막내가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남자녀석이 치근대면 가서 그녀를 보호해 집까지 무사히 데려온다. 물론 막내가 워낙 조신하고 착해서 그토록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가족을 설명하다보면 그들의 관계 또한 빼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충영은 그의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다음 년도에 12살 연상의 아버지와 결혼을 해 바로 임신을 했고 충영을 낳았다. 그 후로 다른 자식은 본 적이 없어 충영은 외아들이다.

반면, 명기의 가족은 조금 많다.

명기의 아버지 김동민이 32살 젊은 나이로 기업의 총수 자리에 앉았을 때 그는 명기의 엄마 화영을 만난다. 그때 그녀는 서울 유수의 명문대학 1학년이었는데 그 미모가 짝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뛰어났고 가문 또한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부모가 건실한 사업인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퀸카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회장은 한 눈에 반해 무려 6개월 동안 그녀에게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콧대 높았던 그녀도 역시 여자라 멋진 킹카가 그토록 정성을 다한 구애를 해 오자 마음이 흔들려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후 바로 임신이 되자 대학 1학년의 어린 나이로 아이를 가진 그녀는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장녀 영진을 낳고 다시 복학을 했지만 2년이 지나 또 임신을 하게 됐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휴학을 하게 됐다. 그때 낳은 자식이 명기다. 그렇게 대학 다닐 동안 두 번의 휴학을 하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선포했고 회장은 내심으로는 더 많은 자식을 낳기 원했지만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명기를 낳은 지 7년 만에 또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됐는데 그렇게 세상에 나온 딸이 바로 막내 수진이다.

회장의 세 자식들은 모두 외모가 출중했다.

장녀 영진은 날씬한 몸에 얼굴도 화려하고 세련된 미모를 자랑하여 그녀를 처음 보는 남자라면 반드시 뒤를 돌아 그녀를 다시 한 번 쳐다볼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외모에 비해 하는 짓이 개망나니였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는 아예 뒷전인 데다 남자를 너무 밝혀 문제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다녔다. 보다 못한 회장은 그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냈지만 그곳에서도 가끔씩 들리는 소문은 회장의 이마에 주름살을 늘게 할 정도로 좋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장녀가 골치를 주었던 것 이상으로 남은 두 자식들은 회장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장남 명기는 키 크고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대학도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 경영학과에 진학, 지금은 졸업과 동시에 아버지 사업 중 하나를 물려받아 바로 경영일선에 뛰어들 준비가 돼 있었다.

그리고 막내 수진은 오빠보다 더했다.

장녀처럼 눈에 확 띄는 미모는 아니지만 청순한 아름다움과 함께 보면 볼수록 더욱 빛이 나는 내면의 미를 갖고 있는 여자였다. 거기에 머리는 오빠보다 더 뛰어나서 오빠가 전국 100등 안에 드는 실력이라면 그녀는 전국 10등 안에 드는 수재인 것이었다. 당연히 회장이 금쪽보다 더 예뻐했고 그녀의 안전을 위해 전용비서를 따로 두고 보호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충영은 어떤가?

그는 외모는 평범했고 공부하는 머리도 뛰어나지 못했지만 체격은 옛날로 따지자면 한 나라를 떠받들 장수감에 어렸을 때부터 회장이 명기를 보호하고 집안의 보디가드로 쓰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운동을 시켰다.

타고난 운동신경도 뛰어난 데다 최고의 무술지도자들에게 교습을 받은 그는 한 마디로 인간병기로 만들어졌고 그를 일대일로 감당할 사람은 아마도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겼던 충영이 명기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아버지 김동민 회장이 아들에게 한 가지 아쉬워하는 점이 있다면 지구력이 부족하고 남자로서 배포가 작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력은 운동으로 보완하고 부족한 배포는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교육을 통해 향상되어 나가고 있다. 아마도 멀지 않은 장래에 명기는 대성그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나갈 것이다. 물론 아직은 회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이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지만...

“우리 그만 나가죠.”

인경이 지금 있는 자리가 답답한 듯 명기를 보며 말했다.

명기가 수빈을 보며 묻는다.

“어디로 갈까?”

“난 잘 모르겠어요. 오빠가 정해요.”

수빈이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데 옆에서 보던 충영은 가슴이 약간 울렁거리는 것 같아 숨을 깊이 내 쉬며 그것을 억눌렀다. 수빈이 같은 타입이 외모적으로는 딱 자신의 이상형인 것이다.

하지만 수빈은 충영에겐 관심이 전혀 없는 듯 오직 명기의 얼굴만 보고 있다.

“어디가 좋을까?”

명기도 노는 쪽으로는 신통치가 않아서 충영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다고 충영도 그쪽은 아니다.

“인경이 넌 어때? 가고 싶은 데 있어?”

충영이 인경에게 묻자 그녀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클럽에나 가죠. 저번에 한 번 가본 데가 있는데 사람들 붐비지 않고 분위기도 그럴 듯 하던데.”

“명기 넌 어때?”

충영이 의견을 묻자 명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 가 보자.”

의견이 통일되자 네 사람은 명기의 차에 모두 탔다.

운전대는 충영이 잡았는데 이렇게 명기가 술을 마신 날에는 충영은 술을 마시지 않고 운전을 해야 한다. 물론 공부에 전념하는 명기가 술을 마시는 날은 거의 없지만...

클럽에 도착한 네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마실 만큼 술을 시키고 자유롭게 행동했다. 명기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수빈과 대화에 여념이 없었고 충영은 술은 마시지 않고 명기의 주변을 지키며 가끔씩 인경과 어울렸다.

“오빠. 춤 한 번 추자.”

오늘따라 술이 당긴다며 양주를 계속 마시던 인경이 충영의 손을 잡아끌고 클럽 중앙에 위치한 홀로 나갔다.

충영은 명기가 안전한지 다시 한 번 살핀 뒤 인경의 손에 이끌려 홀에 나갔다.

“오빠는 체격이 좋다. 키가 몇이야?”

인경이 충영의 가슴에 안겨 귓속말로 묻자 그가 대답했다.

“190.”

실제로는 190이 약간 넘지만 키가 너무 크면 부담스러워하는 여자들이 많아 충영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나하고 키 차이가 너무 나는데?”

“인경이 넌 몇인데?”

“163. 수빈이도 나하고 키가 똑같아.”

인경이 묻지도 않았는데 수빈이의 키까지 얘기한다.

충영은 고개를 돌려 명기와 수빈이 앉아 있는 좌석을 보았다.

그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낀 듯 인경이 속삭였다.

“수빈이 예쁘지?”

“응.”

“쟤하고 어울릴 남자가 한국에 있나 싶었는데 드디어 짝을 찾은 거 같아.”

“그렇게 뛰어나니?”

“응. 하버드 들어갈 때도 순수하게 공부로 들어갔고 여기로 편입할 때도 하버드 성적을 보고 교수들이 만장일치로 편입을 허가했다고 그러더라. 외모도 정말 끝내주고 집안도 아빠가 의사고 엄만 대학 교수야.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여자지.”

“그래. 명기와 정말 잘 어울린다.”

“그렇지? 저 두 사람, 보고 있으니까 우리가 너무 초라해 지는 것 같지 않아?”

충영이 인경의 말을 듣고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

그녀의 말대로 인경은 수빈과 너무 차이가 졌다. 그냥 인경의 얼굴은 못생긴 편이 아니고 몸매도 얼굴만큼 평범했지만 모델처럼 날씬하고 톱탤런트처럼 아름다운 수빈과는 비교할 생각을 말아야했다.

그래도 칭찬할 만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충영이 그녀의 몸을 살피다 가벼운 어투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인경이 너 가슴은 수빈이보다 더 예쁜 거 같은데?”

순간 인경이 두 눈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몸에 가슴을 비벼왔다.

“정말?”

“응. 난 가슴 큰 여자가 좋던데...”

물론 충영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수빈이처럼 적당하게 솟아오른 가슴을 좋아한다. 사이즈로 따지자면 B컵에서 C컵 사이 정도? 

가슴이 너무 크면 왠지 무거워 보이고 너무 작으면 만질 맛이 나질 않는다. 자신의 크고 두툼한 손으로 움켜쥐면 한 손에 잡힐 듯 말듯 볼륨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들이 전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는 줄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절벽인 경우보다 지금 인경이처럼 커다랗게 부푼 가슴이 더 낫기는 하겠지만...

충영이 가슴을 칭찬하자 인경이 바로 반응을 보이는 걸로 보아 그녀 역시 자신의 가슴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경의 가슴을 몸으로 느끼며 충영이 두 손을 그녀의 허리로 뻗어 바짝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아랫도리를 내밀어 자지를 그녀의 아랫배에 대고 비벼댔다.

“으음.”

불같이 뜨거운 자지를 느끼자 인경이 미약한 신음소릴 흘린다.

인경이 반응을 보이자 충영은 그녀를 구석진 곳으로 밀고 갔다.

자신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오자 충영은 가장 어두운 곳으로 가서 그녀의 몸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서로의 몸이 더욱 근접하자 인경의 가슴이 충영의 몸에 짓이겨지듯 비벼졌고 그의 발기된 자지는 그녀의 아랫배를 구멍이라도 낼 듯 찔러댔다.

그렇게 재미를 보고 있는 가운데 느린 음악이 끝나고 경쾌한 발라드가 이어지자 인경이 마주보고 있던 자세를 틀어 등으로 충영의 품에 안겨왔다. 그와 동시에 엉덩이를 충영의 아랫도리에 대고 밀자 그는 두 손을 뻗어 그녀의 아랫배를 감싸 안았다.

인경이 엉덩이를 흔들며 자지를 비벼대자 충영은 아랫배를 쓰다듬던 손을 점점 위로 올렸다. 그녀가 자세를 뒤로 돌린 이유는 바로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애무해 달라는 뜻으로 생각한 충영이기에 가슴을 잡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으음!”

커다란 가슴 두 개를 충영이 거칠게 움켜쥐자 인경이 한숨을 쉬듯 신음소릴 내다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내 가슴 어때?”

이 상황에서 나쁘다고 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최고다. 진짜로 멋있어.”

충영이 웃으며 찬사를 퍼붓자 인경이 붉어진 두 눈을 그에게 고정시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여줄까?”

“정말?”

충영이 못 믿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자 인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여기 여자 화장실이 크고 넓더라. 거기 가면 아마도 내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인경이 유혹의 목소릴 내자 충영의 마음도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여자 화장실이라...’

철이 들고 난 뒤 여자화장실에 가본 적이 없는데 어쩌면 희한한 구경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번 가볼까?”

“좋아. 하지만 조심해야 돼?”

“응. 인경이 네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겠지.”

“가자.”

인경이 충영의 손을 잡고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잠깐만...”

여자화장실 앞에서 인경이 주위를 살피다 충영을 기다리게 한 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곧바로 인경이 나오더니 말없이 손짓으로 충영을 부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충영은 주변을 둘러본 뒤 재빠른 동작으로 인경의 뒤를 따랐다.

‘......!’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없을 뿐, 여자화장실이라고 남자와 별다른 것은 없었다. 

“어서!”

인경이 반 쯤 열린 문 하나를 완전히 열어젖히며 작은 목소리로 충영을 재촉했다.

충영이 안으로 들어가자 인경이 바로 따라 들어오며 문을 걸어 잠갔다.

달칵-

문이 잠기자 충영은 여유가 생겨 얼굴을 좌우로 돌리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

남자화장실의 대변을 보는 곳과 달리 여기는 확실하게 공간이 넓었다. 

양변기도 일반 사이즈보다 약간 커 보였고 변기와 칸막이 사이의 공간이 넓어 한결 시원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내숭 떨거나, 그러지 않을 거야.”

인경이 충영을 향해 웃으며 셔츠를 벗었다. 그러자 바로 상체는 브라만 걸친 알몸으로 변했다.

‘정말 크긴 크네.’

힘겹게 버티고 있는 브래지어를 금방이라도 뚫고 나올 듯 인경의 가슴은 크고 단단해 보였다.

“야. 예쁜 가슴이다.”

충영이 짐짓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을 뻗어 가슴을 쓰다듬었다.

인경이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나만 보여주면 불공평하니까 오빠도 뭔가 보여줘야지?”

“어딜 보여줄까?”

인경의 마음을 짐작하면서도 충영은 그렇게 물었다.

“여기. 아까부터 단단하게 서 있던데. 궁금해 죽겠어.”

“좋아. 같이 벗자.”

충영이 혁대를 풀고 바지를 아래로 끌어내리자 인경이 브라의 호크를 풀고 양변기에 앉았다.

그녀의 가슴이 드러남과 동시에 충영도 팬티를 아래로 내려 물건을 그녀 앞으로 내 보였다.

“어머! 이게 뭐야?”

시종 웃고 있던 인경의 얼굴이 굳어지고 두 눈은 크게 떠진 채 그의 몽둥이처럼 부풀어 오른 자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좀 크지?”

충영이 웃으며 말하자 인경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인다.

“좀 큰 게 아니잖아? 이런 거 처음이야. 정말로 크다. 아까 춤추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

“네 가슴도 정말 큰데? 여태껏 본 여자 가슴 중에서 네 가슴이 가장 크다.”

여태껏이라고 해 봐야 엄마를 빼면 고작 두세 명의 여잘 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경의 가슴은 보통 여자들보다 두 배 이상 커서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충영이 손을 뻗어 가슴 하나를 움켜쥐자 인경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자지를 잡았다.

“어머! 불끈거리는 것 좀 봐. 이렇게 뜨겁고 단단한 게 정말로 있었구나.”

인경이 감탄하며 자지를 어루만지자 충영도 손을 마음껏 놀리며 가슴을 주물렀다.

“아아. 오빠. 기분이 이상해.”

인경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충영은 자지를 그녀의 입에 바짝 대며 말했다.

“한 번 빨아 볼래?”

그러자 인경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벌렸다. 

충영이 귀두를 넣어주자 그녀가 그것을 빨기 시작했다.

쪽-쪼옥-

맛있게 귀두를 빨던 인경이 갑자기 좆대를 자신의 가슴 사이에 끼웠다. 그러더니 양 가슴으로 끼운 좆대를 압박하며 비벼댔다.

‘이런 것은 또 처음이네. 야동에서 보던 거잖아?’

충영은 인경이 파이즈리를 하며 귀두를 입에 물고 빨자 전보다 훨씬 쾌감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으음!”

기분 좋은 신음소릴 내며 충영이 두 손을 뻗어 그녀의 젖꼭지를 잡고 비틀었다.

“흐응!”

인경도 탄성을 발하며 한참 동안 귀두를 빨다 충영을 놔주었다.

“오빠. 나도 여기 벗을까?”

인경이 붉어진 얼굴로 팬티나 다름없을 정도로 짧은 바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말은 자신의 보지에 충영의 자지를 넣고 싶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충영이 아니었다.

“응. 벗어 봐라. 넌 거기도 예쁠 것 같은데.”

충영이 웃으며 말하자 인경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끌어내렸다.

인경이 알몸으로 변하자 충영은 그녀의 옷을 양변기 뒤쪽에 두고 자신의 바지도 완전히 벗어 그녀의 옷 위에 놓았다.

셔츠는 굳이 벗을 필요를 느끼지 못해 그대로 두고 충영이 인경의 곁에 바짝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약간 벌어진 그녀의 두 다리를 옆으로 쫙 벌려 보지를 개방시켰다.

‘......!’

시커먼 보짓털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충영은 두 손을 뻗어 털과 함께 보지껍질을 옆으로 벌렸다.

붉은 속살이 드러나자 충영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의 의도를 깨닫고 인경이 몸을 약간 틀었다.

“아이. 안 씻었는데...”

“괜찮아.”

충영이 가볍게 대꾸하며 입술을 보지에 대고 혀로 속살을 핥았다.

“아응.”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참을 만 했고 인경이 좋아 콧소리를 내자 충영은 혀로 보지 구석구석 핥아주었다.

“아으. 거기. 거기가 이상해 오빠.”

혀가 클리토리스를 문지르자 인경이 가파르게 오르며 헐떡였다.

“이제 해 봐. 해도 될 거 같아.”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뗐다.

허리를 세우고 인경의 엉덩이를 변기 앞까지 쭉 끌어당긴 뒤 충영은 붉게 달아오른 방망이를 그녀의 보지에 갖다 댔다.

“아아. 살살.”

인경이 다가올 상황을 예감하고 살며시 두 눈을 감는다.

자지를 보지에 대고 몇 번 문지르다 충분히 젖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충영은 귀두를 입구에 대고 밀었다.

‘......!’

역시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뒤로 물렸다가 이번엔 강하게 힘을 주고 쑥 밀어 넣었다.

순간 똑딱단추를 잠글 때 그런 것처럼 커다란 귀두가 좁은 질입구를 통과하며 달칵, 하는 느낌과 함께 안으로 쑥 들어갔다.

“흐억!”

인경의 입에서 짧고 강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충영도 좁은 입구에서 근육들이 귀두를 조여오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지를 조금씩 움직였다.

“아으. 오빠.”

“왜?”

“왜 이렇게 커? 아아.”

“아파?”

“아니. 아프진 않는데 너무 크고 단단해서... 거기에 이상한 게 박힌 거 같아.”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충영이 서서히 왕복하며 자지를 조금씩 밀고 들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자지를 뿌리 끝까지 밀어 넣자 인경이 억눌린 소릴 냈다.

“으으으. 뱃속에 가득 찼어. 오빠 게 너무 커서 내 몸이 움직일 수가 없어.”

“그럼 움직이지 말고 가만 있어.”

충영이 자지를 뒤로 절반 쯤 빼고 그 상태에서 서서히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흐윽.”

자지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인경의 입에서 어김없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나 밖에 들릴 까봐 소릴 죽였지만 참을 수 없이 내는 그런 소리는 수컷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충영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경의 간드러진 신음소릴 듣자 흥분이 배가돼 왕복하는 속도를 점점 더 높여갔다.

퍽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퍽-

크고 단단한 좆으로 쉬지 않고 찔러주자 인경이 앓는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아. 좋아. 미치겠어.”

순식간에 몇 백 번을 왕복하다 그 자세가 조금 질리자 충영은 인경의 몸을 약간 옆으로 틀고 한 쪽 다리를 높이 치켜세웠다.

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

이 자세는 조금 불편했지만 보지에서 자지가 들락거리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여 시각적인 느낌이 좋았고 지금 그 좆대를 타고 희멀건 애액이 자지가 왕복할 때마다 흘러내렸다. 

허공을 향해 들어 올린 인경의 다리가 조금 무겁게 느껴지자 충영은 그녀의 몸을 완전히 돌려 뒷치기 자세로 들어갔다. 

인경이 엉덩이를 높이 들어 올려주자 충영은 달덩이 같은 두 개의 엉덩이를 손으로 꽉 움켜쥐고 자지를 움직였다.

퍽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

자세가 안정이 되자 충영은 지속적이면서도 강하고 빠르게 자지를 왕복했다.

“아으. 나 이상해. 몸이 이상해. 아아아. 오빠. 갈 거 같아.”

몇 분 동안 뒷치기로 왕복을 계속 하니 인경이 얼굴을 뒤로 돌려 그의 얼굴을 보며 하소연했다.

“오빠. 아아. 나 안에서 뭐가 나오려고 그래.”

인경이 절정에 이르는 신호를 보내오자 충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다시 정상위 자세로 돌아오자 충영은 그녀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마지막 피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

그렇지 않아도 크고 단단한 좆인데 속도까지 빨라지니 인경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몸을 뒤로 물러나려한다.

“오빠! 그만. 아아. 난 몰라. 으으으.”

인경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절정에 오르자 충영도 몇 번 더 자지를 힘차게 왕복한 뒤 보지에서 빼 귀두를 그녀의 가슴으로 향하게 했다.

쿨럭-

첫 번째 정액이 출발하자 충영은 몸을 떨며 기분 좋은 신음소릴 냈다.

“으음.”

정액이 쏟아져 나오자 인경이 초점 잃은 시선으로 자신의 가슴에 꽂혔다가 뚝뚝 떨어지는 그 희멀건 액체를 보았다.

“어쩜. 많이도 나오네.”

인경의 감탄하는 소리에 충영은 미소만 지었다. 

어제 소라와 격렬한 섹스를 했지만 오늘 역시 어제 못지않게 나오는 양이 많았다.

“오빠. 가까이 와 봐. 내가 처리해 줄게.”

인경이 자지를 손으로 잡고 귀두를 입안에 넣어 쭉쭉 빨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인경이 먼저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핀 뒤 충영을 이끌고 화장실을 나왔다.

“아아. 오빠. 왜 이렇게 다리에 힘이 없지?”

인경이 충영의 품에 바짝 안기면서 말하자 그가 그녀의 몸을 부축하며 물었다.

“힘들어?”

“아니. 몸이 나른하고 아직도 오빠 그것이 내 몸에 꽉 차 있는 거 같아. 이상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

“응.”

인경이 애교를 부리며 충영에게 몸을 기대는데 그녀의 모습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많이 달랐다.

충영이 자리로 돌아오자 명기가 그를 보더니 웃으며 묻는다.

“한 시간 가까이 어딜 갔다 오는 거야?”

“한 시간이나 됐어?”

충영이 놀라 시계를 보니 얼추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둘이 같이 갔다 온 거야?”

“으응.”

충영이 말을 흐리자 명기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수빈에게 말했다.

“시간도 꽤 흘렀는데 오늘은 이만 일어날까?”

“예.”

한 시간 가까이 충영이 인경과 노는 동안 두 사람도 꽤 친해진 듯 명기를 보는 수빈의 시선에 정감이 흘러넘쳤다.

“일어나자.”

명기의 말에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일어섰다. 명기가 결정하면 그 다음부터 충영에겐 결정권이 없고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침 인경이 수빈과 비슷한 곳에 살아서 충영은 두 여자를 바래다주고 명기와 집으로 향했다.

“인경이란 애 괜찮아?”

차안에서 명기가 묻자 충영이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아니. 그냥 하루 보고 말 애지 뭐. 그러는 넌? 아까 보니까 두 사람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

“그렇게 보였어?”

명기가 미소를 짓자 충영이 말을 받았다.

“그래. 너도 그렇지만 수빈이 걔는 완전히 너한테 푹 빠진 표정이더라.”

“음. 그렇다면 한 번 진지하게 나가볼까?”

“정말? 명기 너 이제까지 한 번도 정식으로 여자 사귄 적 없잖아.”

“응.”

“너 걔가 진짜로 마음에 들었나보다.”

“괜찮은 녀석인 거 같아. 나하고 가치관이나 취미 등 여러 가지 공통점도 많고.”

“잘해 봐라. 나도 사실 처음 걔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날씬하고 예쁘더라.”

“꼭 외모 때문만은 아니야. 머리도 나보다 더 영리하고 생각도 아주 건전해. 만나도 나한테 이익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진 않을 거 같아.”

“회장님이 아셔도 뭐라 그러진 않겠네.”

“그렇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마.” 

“응. 알았다.”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회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대성그룹 회장 김동민.

30년 전만해도 평범했던 자신의 대성기업을 일약 10위권 이내로 도약시킨 인물로 재계에서는 신화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인재를 볼 줄 아는 안목에다 사람에 대한 친화력이 좋아 자신이 한 번 믿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뒤를 봐주고 경영능력 또한 탁월하다. 과감한 승부수를 띄울 줄도 아는 데다 기업에 불이익이 되는 자라면 냉정하게 쳐내는 몰인정함 또한 갖추고 있어 CEO로는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큰 딸 김영진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지만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그녀는 회장의 눈 밖에 나는 행동만 골라서 했는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은 예사요, 술과 담배, 그리고 남자를 밝히는 것까지.... 못 된 짓은 골라서 다 하고 다니는데 그녀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회장이 매를 들어도, 그 까칠한 엄마가 눈물로 애원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그녀가 임신까지 하게 되는데 기가 막힌 것은 자신을 임신시킨 남자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회장은 불같이 노해 딸을 낙태시키고 그길로 미국으로 그녀를 보내버렸다. 하지만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 않을 리 없다. 가끔씩 들려오는 영진에 대한 소문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좋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그렇게 큰 딸에게 질린 회장은 아들 명기와 막내 수진에게 엄중한 경고를 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어떤 이성교제도 허락할 수 없으며 대학에 들어가도 성에 대해 문란하단 말이 나오면 자신의 기업을 물려주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장의 경고는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명기와 수진이 모두 영진과는 달리 착하고 끔찍할 정도로 모범생이어서 회장이 걱정할만한 행동은 이제껏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명기가 이제 정식으로 여잘 사귈 생각을 하다니...’

충영은 운전에 신경을 쓰면서 가끔씩 고개를 돌려 명기의 잘생긴 얼굴을 보았다.

과연 그와 수빈의 관계가 좋은 결말을 맺을 것인가, 아니면 나쁜 쪽으로 끝이 날 것인가...

충영은 문득 궁금한 마음이 일었지만 여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명기에게 수빈이란 여자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 속 작은 걱정을 몰아냈다.

다음날 오후.

체육관에서 운동에 여념이 없는 충영에게 소라가 경진과 함께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오빠!”

“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둘의 방문에 충영은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충영이 두 여자를 쳐다보았다.

소라는 연두 색 나시티에 오렌지 색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가린 것보다 노출된 부분이 더 많을 정도로 개방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모두 명품 로고가 박혀 있고 얼굴 또한 잔뜩 멋을 부리고 와 한 눈에 봐도 남자들의 시선을 끌 차림이다.

충영의 시선이 경진을 향했다.

‘......!’

경진은 청바지에 평범해 보이는 노란 색 셔츠를 입고 있다. 

하지만 충영의 눈엔 경진이 훨씬 더 예쁘게 보였다. 날씬하고도 세련된 멋은 소라가 더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얼굴은 경진이 소라보다 뚜렷한 윤곽에 갸름한 얼굴형 등, 충영의 마음을 더 잡아끌었다.

“경태한테는 연락 했냐?”

충영이 묻자 소라가 경진을 보며 말했다.

“경진이가 전화했어. 지금 여기로 오고 있을 걸?”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입구에 경태가 나타났다.

“어이! 다들 모였군.”

경태가 다가오더니 소라를 보고 두 눈을 가늘게 뜬다.

“와우. 소라 너 진짜로 멋있다. 역시 모델은 어딜 가도 티가 나네.”

경진은 경태가 자신보다 소라에게 먼저 눈길을 주고 인사까지 하자 얼굴색이 굳어졌다. 

“날이 더워서 좀 시원한 차림으로 나왔어. 어때? 너무 노출이 심한가?”

소라가 충영에게 웃으며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기 좋다.”

충영은 간단하게 말한 뒤 경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경진이도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예쁘네.”

충영과 시선이 부딪히자 경진은 그의 강렬한 눈빛이 부담스러운 듯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한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자. 충영이 너 수업 없지?”

“응.”

“빨리 옷 갈아입어라.”

“알았다.”

충영이 옷을 입고 나오자 경태가 그에게 말했다.

“우리 아가씨들이 볼링 치고 싶다는데, 가까운 볼링장으로 가자.”

“아니. 나는 치고 싶지만 경진이는 그런 말 안 했잖아?”

소라가 애교스럽게 말하자 충영이 경태의 얼굴을 보았다.

‘이 새끼. 소라한테 푹 빠져가지고...’

상황을 보니까 경태가 두 여자에게 뭐하러 가면 좋겠냐고 물었고, 소라가 볼링 치고 싶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경진은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고 경태는 그런 경진은 무시하고 소라의 의견만 존중해 볼링장을 가자고 한 모양이다.

“경진이는 볼링 못 쳐?”

충영이 부드럽게 묻자 경진이 그의 얼굴을 보았다.

‘......!’

충영의 웃는 얼굴을 보며 경진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전혀 못 치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가 봐야 민폐만 끼칠 텐데...”

“공만 굴릴 줄 알면 되지. 자자. 빨리 가자. 오랜만에 나도 볼링이나 한 번 쳐야지.”

경태가 다그치자 충영은 실소를 금치 못하며 두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소라야 경태가 자신에게 푹 빠진 표정으로 의견을 거들자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경진도 그다지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럼 가서 조금만 치다 나올까?”

충영이 이번에도 경진의 얼굴을 보며 묻자 그녀가 충영에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래요. 가요.”

평일 오후라 그런지 볼링장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각자 공을 고른 뒤 준비를 마치자 경태가 일행에게 말했다.

“우리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내기라도 해야지.”

“좋아. 내기 하자.”

소라가 꽤나 자신 있는지 대뜸 말을 받는다.

“난 자신 없는데...”

경진이 주저하자 경태가 물었다.

“몇 점이나 치는데?”

“그런 것 없어요. 100점 넘어본 적도 없고.”

“음. 소라는 어떻게 되나?”

“난 130 정도?”

경태가 감탄한다.

“여자가 그 정도면 잘 하는 거네. 난 120 정도 치는데 헐크가 150 정도 치니까 나는 소라하고 한 편하고 경진이는 헐크랑 같은 편 먹으면 되겠다. 그렇게 해서 내기 한 번 하자.”

“난 아무래도 좋아.”

소라가 웃으며 말하자 충영이 경진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나야 괜찮은데 오빠한테 민폐 끼칠 까봐 그러죠.”

“하하. 그런 거라면 걱정 마. 재미 있게 치고, 지면 술이나 사지 뭐.”

충영은 그제 소라에게 받은 돈도 있고 해서 맘 편하게 웃었다.

“지면 돈은 내가 낼게.”

그제야 경진도 따라 웃으며 말한다.

“그러면 안 되죠. 지면 나도 절반은 낼 게요.”

“좋아. 그리고 우리가 꼭 진다는 보장도 없잖아? 자. 파이팅 한 번 하자.”

충영이 손을 내밀자 경진이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화이팅!”

충영이 소리치며 손을 위로 올렸다.

“야! 저기는 벌써부터 기세가 대단한데.”

경태가 웃으며 소라에게 말한다.

“우리도 화이팅 하자.”

게임은 의외로 박진감이 넘쳤다.

극도로 자신감이 없어 보이던 경진이 처음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아내자 경태와 소라가 그녀에게 내숭 떨었다며 구박을 했고 그들도 여유를 부리지 않고 게임에 열중했다.

파바박-

“스트라이크.”

충영이 4연속 스트라이크를 잡아내자 경진이 환호하며 그와 두 손을 마주쳤다.

특히 충영이 스트라이크를 칠 때는 15파운드의 묵직한 공에 그의 가공할 힘까지 실린 파워에 핀들이 산산조각이라도 날 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때문에 주변에서 공을 치던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야야! 살살 해라. 너하고 같이 공 치다 주눅 들겠다.”

경태가 그의 어깰 치며 레인에 들어섰다.

어느덧 마지막 차례가 되자 충영은 점수를 계산해 보았다.

‘......!’

점수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시소게임을 벌여오다가 지금은 거의 똑같다. 마지막에 승부가 갈리는 것이다.

먼저 시작한 충영이 마지막엔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하고 스페어처리마저 불발에 그치자 경태와 소라가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야. 됐다 됐어. 승리는 우리 것이지?”

경태가 웃으며 레인에 들어섰지만 그도 역시 충영과 마찬가지로 9점을 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야. 이거 이제 여자들에게 달렸네.”

경태가 소리쳤지만 이미 승부는 기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스트라이크를 잡은 것은 경진의 운이었고 그 다음부터 그녀는 단 한 차례도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했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레인에 들어선 경진은 그러나 신중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다 팔을 뒤로 올렸다. 

스텝을 밟으며 그녀가 마지막에 공을 굴리자 공이 천천히 핀을 향해 굴러갔다.

힘이 부족한 듯 아주 천천히 굴러가던 공이 옆으로 빠지는 듯 하다 다시 방향을 바꾸더니 핀의 중앙으로 부딪쳤다.

타닥-

천천히 쓰러지는 핀들의 숫자가 의외로 많자 충영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어어!”

하나씩 쓰러지다 마지막으로 핀 하나가 남았다. 하지만 그것도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다 기어이 쓰러지자 충영이 환호성을 질렀다.

“야. 스트라이크! 경진이 대단하다.”

기쁜 마음에 충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진의 골반을 잡고 불끈 들어올렸다.

“어머!”

탄성을 발하는 경진의 몸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려 한 바퀴 돌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렸다.

마치 아빠가 어린 딸을 들어 올리듯, 하는데 일반 남자라면 도저히 그런 자세로 여잘 들어 올릴 수가 없다. 하지만 충영은 너무도 가볍게 경진을 들어 올렸고 그녀를 내려놓았을 때 경진도 충영의 이런 행동이 싫지 않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아직 이긴 것도 아닌데.”

“하하. 져도 상관 없어. 이 정도 했으면 잘 한 거잖아?”

경진도 그와 생각이 같은 듯 부정하지 않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공을 손에 잡았다.

두 번째는 8개를 쓰러뜨리고 경진의 차례는 끝이 났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로 인해 보너스 점수가 있어 소라가 스트라이크를 잡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국면으로 돼 버렸다.

신중한 표정으로 자세를 가다듬던 소라가 공을 굴렸다.

“야아. 아쉽다.”

소라의 볼링 치는 자세는 남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멋이 있었고 실력 또한 뛰어났다. 하지만 이번 회에서는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인지 공이 정중앙으로 굴러가 8개를 맞췄지만 좌우에 핀이 하나씩 남은 스프릿트가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프로선수라도 양쪽으로 갈라진 핀 두 개를 모두 처리할 수 없다. 

“아우. 졌네.”

소라가 아쉬운 표정으로 남은 핀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공을 다시 굴렸다.

탁-

역시 핀 하나는 쓰러뜨렸지만 스페어처리를 못해 게임은 충영과 경진에게로 돌아갔다.

“하하. 이거 마음을 비웠더니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로 왔네.”

충영이 밝게 웃으며 경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경진도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쳤다.

“아우. 이길 수 있었는데...”

소라가 아쉬운 듯 인상을 썼지만 이내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할 수 없지 뭐. 경진이가 마지막에 스트라이크를 칠 줄 알았나? 호호. 이제 나가자.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싶다.”

충영은 볼링장을 나가면서 명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스케줄이 어때? 내가 갈까?)

바로 답신이 온다.

(아니... 수빈이하고 데이트 하기로 했다. 그냥 집으로 가.)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오케이)

휴대폰을 닫으며 충영은 수빈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로 인해 오늘 놀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감에 앞으로도 명기는 수빈이와 잘 풀려나갈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충영도 시간을 훨씬 더 여유롭게 쓸 수가 있을 것이다.

카페에서 스테이크를 안주 삼아 그들은 술을 마셨다.

오늘은 필이 꽂혔는지 소라가 연신 맥주를 들이켰고 경태와 충영도 소라와 분위기를 맞춰가며 대작해주었다.

“경진이는 술을 전혀 못해?”

충영이 묻자 그녀가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뒤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비운다.

“아주 못 마시지는 않네?”

충영이 잔에 맥주를 채우며 묻자 그녀가 말한다.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파요. 속도 쓰리고...”

“얼굴이 빨개지진 않고?”

“예.”

경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충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가?”

경진이 충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경진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오늘은 볼링 파트너 그대로 가자는 경태의 강력한 주장으로 소라가 그의 파트너가 됐고 충영의 곁엔 경진이 앉아 있었다. 

소라의 얼굴엔 급하게 마신 술로 벌써 취한 기색이 드러났다.

“우리 다음엔 홍대로 가자. 부담 없이 술도 마실 수 있고 기분 나면 가볍게 춤도 출 수 있는 괜찮은 데가 있거든.”

소라의 말에 경태는 무조건 찬성이다.

카페를 나온 일행은 택시를 탔다.

조수석에 충영이 타고 뒷좌석엔 경태와 두 여자가 탔다.

택시가 가는 동안 충영의 휴대폰에 문자가 떴다.

(오빠. 나 소라야. 놀 때는 이렇게 놀 더라도 나중에 갈 때는 나하고 가야 돼? 알았지?)

(상황 봐서 하자.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싫은데... 나 오빠랑 자고 싶어.)

(알았다. 나중에 기회 봐서 따로 만나자.)

(응.)

택시가 홍대에 도착하자 일행은 모두 내려 소라가 인도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직 시간이 이른 것인지 클럽은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에 사람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자 소라가 대뜸 술부터 시킨다. 경태는 소라의 그런 행동이 더욱 마음에 드는지 연신 그녀를 부추겨 술을 권한다. 술에 취하면 뭔가 도모해 보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다.

“아. 쫌 취하는데... 경진아. 화장실 안 갈래?”

“가자.”

경진이 소라와 함께 화장실로 가자 경태가 황급히 충영에게 말했다.

“야. 소라 쟤. 넘어갈 것 같은데?”

“근데 어쩌냐, 경태야. 소라는 나하고 자고 싶다는데...”

충영이 조금 전 소라가 보낸 문자를 그에게 보여줬다. 어제 만나서 충영이 경태에게 그젯밤 소라와 잤다는 얘길 모두 해 준 상태라 경태도 이미 소라와 충영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야. 넌 어때? 소라하고는 앞으로 사귀거나 그럴 생각 없다고 했지?”

경태가 초조한 표정으로 보자 충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사귄다면 경진이 같은 스타일이 좋아. 소라는 하룻밤 엔조이로나 적당하지, 사귄다거나 할 그런 마음은 안 들어. 어제 얘기 했잖아?”

“그러면 오늘은 네가 양보 좀 해라. 난 소라 같은 여자만 보면 꼴려서 미치겠다. 어떻게든 한 번 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친구야. 내 맘 이해하지?”

“알았어. 내 것도 아닌데 뭐 아무려면 어떠냐? 그런데 경진이 내가 어떻게 해도 넌 괜찮아?”

“야야. 걔하고는 제대로 손도 한 번 안 잡았다. 브루스 출 때 잠깐 안아본 거 빼곤 신체접촉한 적도 없어.”

“그래도 경진이는 너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래서 그저께 한 번 해보려고 했지. 그런데 걔 하는 행동이 영 아니더라구. 자기는 남잘 만날 때 앞으로 진지하게 사귀는 걸 고려해서 만나지, 그냥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그러진 않는다는 거야. 간단하게 결론 내리자면 걔하고 뭔가 해보려면 사귈 생각을 하고 해야 한다는 건데,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거든. 말 들으니까 집안도 별로고... 소라네 집은 잘 산다고 그러더라.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데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라더라.”

“그래?”

“응.”

“경태 너희 집도 부자잖아?”

“너도 알다시피 돈만 많지, 아버지가 떳떳하게 번 돈은 아니니까...”

“야.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 돈만 많으면 되는 거지.”

경태의 아버지는 사채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그가 번 수입 모두가 음지에서 번 돈들이었다.

“그래도 우리 아부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대에서는 양지로 나와 합법적인 사업을 하길 원하지. 나중에 헐크 네 덕 좀 보자.”

“내가 무슨...”

“야. 너 대성그룹 후계자와 둘도 없는 친구잖아?”

“친구는 무슨...”

“야. 저번에 명기하고 잠깐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명기는 널 둘도 없는 친구처럼 생각하던데?”

“명기야 원래 인간성이 좋은 녀석이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명기가 그렇게 말했다니까 충영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튼 난 경진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너 알아서 하고... 하지만 경진이 걔가 워낙 고지식해서 쉽게 넘어갈지는 모르겠다. 그것까지는 내가 책임 질 수 없는 거 알지?”

경태가 웃으며 말하자 충영이 그의 어깰 가볍게 쳤다.

“자식. 그걸 말이라고 하냐? 경진이 걔가 마음에는 들지만 나 싫다고 빼는 여자한테까지 들이대진 않는다.”

“그나저나 소라 이거 한 번 먹으려면 오늘이 아주 기횐데... 헐크 너도 소라한테 술 좀 많이 먹여라. 술에 맛이 가면 장사 없으니까.”

“아이고. 이 새끼. 아주 소라한테 맛이 갔구나. 뭐. 하긴 걔가 매력은 좀 있지.”

“야야. 저기 온다.”

경태가 멀리서 이쪽을 향해 오는 두 여잘 보고 속삭였다.

경태와 충영이 번갈아가며 술을 권하자 소라가 사양하지 않고 모두 받아 마셨다.

소라가 술이 꽤 취하자 경태가 술이나 깰 겸 해서 춤을 추자며 그녀를 데리고 중앙에 작게 마련된 홀로 나갔다.

둘만 남자 충영이 경진에게 말했다.

“경진이도 오늘 꽤 마시네?”

“이렇게까지 마신 적이 없었는데...”

경진이 쓴 웃음을 짓자 충영이 물었다.

“기분이 안 좋아?”

“아니. 안 좋은 것까진 아니지만 좀 그래요.”

그러면서 경진이 맥주를 또 마신다.

“경태가 소라에게 마음이 가서 그런 거지?”

충영이 정곡을 찌르자 경진이 움찔, 몸을 경직시키더니 그의 얼굴을 본다.

“내가 이러는 거 별로죠?”

“아니. 사람 마음이 가는 걸 뭐라 하겠어?”

“소라 부러워해본 적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 부럽네.”

“왜?”

“오빠 둘 다 소랄 좋아하잖아요?”

“경태는 확실하게 소랄 좋아하지만 난, 아닌데...”

“거짓말.”

경진이 충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정 짓 듯 말한다.

“진짜야. 난 경진일 좋아하는데.”

그러자 경진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소라하고 있었던 일, 내가 다 들었는데...”

충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소라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처음에 호감을 느낀 사람은 경진이야. 겅태도 소랄 마음에 들어 해서 우린 잘 됐다, 싶었지. 난 경진이하고, 경태는 소라하고... 그렇게 파트너하면 좋겠다고 합의를 봤는데 둘이서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갑자기 내 앞엔 소라가 앉고 경태 앞엔 경진이가 앉더라. 그때 경태와 나는 여자들이 그렇게 원하는 구나, 생각하고 그대로 따른 것뿐이야. 내 말이 틀려?”

“아니. 틀린 것은 아니고... 사실, 그렇긴 했어요. 소라는 헐크오빠가 마음에 든다고 했고 난... 경태오빠에게 호감이 갔으니까...”

“거봐.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여자들이 파트너를 정했잖아?”

“그렇다고 처음 만난 그날 그렇게...”

섹스를 했냐는 말일게다.

충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진이가 날 오해한 거 같은데, 난 그렇게 날라리가 아니야. 여태껏 여잘 사귄 것도 딱 한 번뿐이었고, 그제 소라하고 그런 것도 소라가 원해서 그렇게 된 거지, 내가 강제로 한 게 아니거든?”

“하긴... 소라는 성격도 좋고 다 좋은데 남자관계가 좀 복잡하긴 해요. 아니, 복잡하기보다 쿨하다고 할까... 아무튼 오빠가 나한테 관심 두고 있는 줄 몰랐네요.”

“정말 몰랐어? 난 틈만 나면 경진이한테 신호를 보냈는데.”

“언제?”

“시간만 되면 경진일 쳐다봤는데, 못 느꼈어?”

“그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경진이 붉어진 얼굴을 살며시 숙이자 충영이 그녀에게 말했다.

“술만 계속 마시면 그러니까 우리도 나가서 한 번 출까?”

충영이 권하자 경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선다.

홀에 나가보니 어느새 늘어난 사람들로 가득 차 그곳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충영이 경진의 몸을 감싸다시피 하며 큰 체구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서자 사람들이 바로 밀어대 경진은 충영의 품에 안긴 꼴이 되고 말았다.

충영은 품에 들어온 경진의 몸을 안고 발만 가볍게 움직이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져 경진의 몸이 점점 더 가까이 밀착되자 충영은 이미 발기돼 달아오른 자지를 경진의 아랫배에 붙이고 원을 그리듯 비볐다.

경진이 뭔가 느낀 듯 고개를 들어 충영의 얼굴을 본다.

‘......!’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잠시 그대로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마치 상대의 마음이라도 읽어내려는 듯 그렇게 눈동자를 바라보다 경진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

경진의 다소곳한 표정을 보고 충영이 두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감싸더니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남자가 사랑하는 자신의 여잘 다정하게 안아주듯 충영이 경진을 껴안아도 그녀는 반항하지 않고 가만있었다.

자신의 품에 쏙 안겨 숨만 색색거리는 경진의 모습이 왠지 사랑스러워 충영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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