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영이 꼭지 두 개를 마음껏 희롱하다 놔주고 그녀에게 물었다.
“안 움직이는 거야?”
“응. 난 힘이 없어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아. 나 눕게 해주고 오빠가 해. 그러면 오빠가 내 몸 망가뜨려도 상관없어.”
“좋아.”
충영이 상체를 세우고 그녀의 몸을 뒤집어 정상위로 돌아갔다.
그가 두 손을 어깨 밑으로 해 그녀의 얼굴을 단단하게 잡자 그 후에 다가올 그의 공격을 예감하고 누리가 떨리는 음성으로 그에게 말했다.
“오빠. 키스해 줘.”
“너. 키스 되게 좋아한다.”
충영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누리가 그의 얼굴을 붙들고 먼저 그의 입술을 빨았다.
충영이 천천히 좆질을 시작하자 그녀가 몸을 들썩이더니 소리쳤다.
“아앙. 오빠. 사랑해. 오빠가 좋아서 이제 오빠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충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 이 룸으로 들어왔을 때 개념 없고 거만하던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젠 사랑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충영은 누리의 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고정시킨 뒤 이제 거침없는 좆질을 가했다.
퍽퍽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
“흐으으으.”
누리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감지하고 충영은 그녀가 또 한 번의 절정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
충영은 그 자세 그대로 정액이 나올 때까지 좆질을 멈추지 않았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
쉬지 않는 그의 움직임에 누리도 어쩔 수없이 호응할 수밖에 없었고 격렬하게 부딪치는 두 사람의 몸 전체에서 물처럼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으으으,. 안 돼요. 오빠. 그만. 나 더 이상... 으으.”
누리가 온 몸을 떨다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충영의 커다란 체구에 갇혀 있기 때문에 빠져나가질 못하고 애원하는 소리만 질렀다.
“오빠. 용서해 줘. 아아. 난 더 이상. 흐으으으.”
그녀가 잇 사이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경직시키자 충영이 몇 차례 더 왕복을 한 뒤 사정을 시작했다.
귀두가 크게 부풀며 정액이 나오자 누리가 감동한 표정으로 낮게 소리쳤다.
“오오오. 오빠. 사랑해. 아아.”
연거푸 두 번이나 사정을 하는 충영의 입에서도 억제할 수 없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으으으.”
최근 들어서 두 번씩이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충영은 이번 사정을 마치자 결혼문제로 품었던 분노가 많이 사라지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후우.”
충영이 낮게 한숨을 쉬자 누리가 두 손을 뻗어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면서 키스를 했다.
쪽쪽쪽-
그녀가 자신의 입술을 맛있게 빨자 그가 웃었다.
“후후. 너 처음엔 키스 못하게 하더니 이제 보니까 키스광이구나.”
“몰라. 그런 거 따지지 마.”
누리가 애교 있게 웃으며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오빠가 왜 대성그룹 회장의 큰 사위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모든 궁금증이 풀린 것 같아.”
“야. 나 회장님 큰 딸하고 이런 거 한 번도 안 했어.”
“정말? 그럼 또 이해가 안 되는데...”
“자식. 그렇게 좋았어?”
충영이 말하며 가슴을 주무르는데 땀에 흠뻑 젖은 처녀의 탄력 있는 감촉이 손안에 그대로 느껴져 싫증이 날 때까지 주물렀다.
“아이. 내 가슴이 좀 예쁘긴 하지?”
충영이 가슴을 계속 손으로 희롱하지만 누리는 귀찮은 기색 없이 그에게 애교를 부리기 바쁘다.
“아아! 또 씻어야겠네? 나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데... 오빠가 씻겨줄 거지?”
누리가 두 팔을 내밀며 애교를 부리자 충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몸을 안아들었다. 그리고 순간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이 이런 것까지 생각해서 이 아일 붙여준 것은 아니겠지?’
누리와 격렬하게 섹스를 하고 나니 원하지 않은 결혼에 대한 부담이 많이 사라지고 회장에 대한 원망도 상당 부분 감소했다. 물론 이런 상황까지 모두 예측한 것은 아니겠지만 회장의 사람 다루는 솜씨가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에 충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생각했다.
‘그래. 배울 건 배워야 해. 나도 앞으로는 좀 달리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며 충영은 누리를 안고 욕실로 갔다.
“아이. 오빠. 나 오빠 땜에 힘이 하나도 없단 말야. 나 업고 가줘.”
샤워를 마치고 옷을 다 입은 후에도 누리가 계속 품에 안겨 들이대자 충영이 그녀의 코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비틀었다.
“야. 이제 너하고 볼 일은 다 끝났잖아? 네 남친한테나 업어달라고 해.”
“이잉. 남친 얘기 꺼내지 말라고 했지? 그 오빠는 힘이 없어서 업어주지 못해. 저번에 한 번 업다가 그대로 주저 않더라고. 나는 몸무게도 많이 안 나가는데...”
“말도 안 돼. 너처럼 가벼운 애를 남자가 못 업는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 남자도 있어. 그 오빠는 공부만 한 사람이라.”
“아아. 알았다. 업혀라.”
충영이 그녀를 가볍게 업고 일어서자 누리가 그의 목을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정말로 오빠는 힘이 장사야. 나 오빠 같은 사람 진짜 처음 봤어. 아아. 지금도 거기가 꽉 차 있는 것 같아서 기분 진짜 이상해.”
길가로 나서자 찬 바람이 강하게 두 사람의 옷깃을 에워쌌다.
“추워. 오빠.”
누리가 품에 안기자 충영은 그녀의 몸을 꼭 안아주었다.
“아아. 오빠 품 진짜로 넓고 따뜻하다.”
“택시 잡아야지.”
“오빠. 나 집까지 바래다주라.”
“미쳤냐? 내가 왜?”
“이잉. 오빠가 좋으니까 그러지. 밤이라 혼자 택시 타는 것도 겁나고.”
“집이 어디야?”
누리의 닭살 애교에 순간 마음이 약해진 충영이 물었다.
“창남동.”
“다행히 충영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같이 타자.”
“정말? 고마워 오빠. 오빠, 진짜 좋은 사람이야.”
“그런 말 하지 마. 나 좋은 사람 아니니까.”
“이잉. 나한테 좋은 일 해 줬으니까 오빤 나한테 좋은 사람인 거야. 아. 저기 택시 온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도 계속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던 누리가 충영에게 말했다.
“오빠. 핸드폰 좀 줘봐.”
“왜?”
“그냥 줘봐.”
충영이 휴대폰을 주자 그녀가 번호를 찍는다.
디리링-
누리의 휴대폰이 울리자 그녀가 그의 휴대폰을 닫고 자신의 휴대폰과 충영의 휴대폰에 뭔가를 찍었다.
“자. 오빠. 내 이름하고 핸폰 번호 입력했으니까 전화 해.”
누리가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하자 충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왜 너한테 전화를 해? 우리 또 만나게?”
“당연하지. 그럼 안 만나려고 했어?”
“야! 넌 남친 있고 나도 곧 결혼할 여자 있어. 우린 오늘 하룻밤 인연이잖아? 모르겠다. 앞으로 그 사장이란 여잔 또 만나게 될지... 그리고 사장한테 전화 오면 말 잘 해줄게. 그건 걱정하지 마라.”
“그런 거 이젠 상관없어. 그리고...”
누리가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오빠가 내 몸 망가뜨렸으니까 책임 져.”
“내가 무슨?”
“나 이제 오빠가 필요해졌어. 남친은 없어도 되지만 오빠는 있어야겠어.”
“너 남친하고 그렇게 가벼운 사이였냐? 처음 내게 말했을 때는 둘이 엄청 친하고 결혼까지 할 거 같더니.”
“아니. 그건 몰라. 그 오빠 집에서도 나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또 요즘 그 사람 행동을 보면 끝까지 갈 자신도 없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충영 오빤 이제 대성그룹의 핵심멤버로 들어갈 건데 나중에 오빠 크게 되면 나 좀 밀어주면 안 될까?”
“뭘 밀어? 내가 때밀이냐?”
“히히. 그런 뜻 아니란 거 잘 알면서... 나도 나중에 사장언니처럼 되고 싶어. 오빠가 날 도와주면 오빠 덕에 언니처럼 가희 같은 그런 가게 하나 경영해보고 싶은데 오빠가 도와주면 안 될 게 없잖아?”
“내가 무슨...”
“오빠에게 힘이 생기면 해달라는 말이지. 그리고 나도 오빠만 따르고 오빠에게 충성할게. 지금 사장언니가 회장님한테 하는 것처럼.”
“음.”
누리의 말만 들어도 대강 사장여자와 회장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좀 생각해 보자.”
충영이 틈을 보이자 누리가 그의 입술에 키스하며 말했다.
“오빠가 전화 안 하면 나라도 한다?”
“아우. 이 진드기. 너 알아서 해라.”
계속 들이대는 누리의 애교를 견디지 못하고 충영이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충영은 자신이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것을 알았다.
“뭐야 이거. 본부장님보다 더 빠르게 승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네?”
박 부장과 직원들이 충영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약간의 시기심을 담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하네.”
“축하해요.”
송하나는 그의 귀에 입술을 대고 누가 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혹시 회장님의 숨겨놓은 자식 아니야?”
“이 자식이?”
충영이 그녀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지만 내심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 속 부담도 따라서 커져만 갔다.
‘후우. 경진이한테 어떻게 말하지?’
점심 때 같이 식사를 하며 명기가 말을 건넸다.
“과장 올라간 거 축하해.”
“응.”
“기분은 별로지?”
경진과의 사이를 잘 알고 있는 명기가 그렇게 말하자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미치겠다. 경진이한테 말을 해야 하는데, 차마 만나자고 전화할 용기도 안 생긴다.”
“네 심정 이해한다. 나도 너한테 생긴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충영이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어제 회장님과 개인적으로 술 한 잔 했거든? 그런데 회장님이 그러더라. 명기 너하고 수진이 혼사는 자신이 챙긴다고. 명기 너도 수빈이와 결혼까지 하려면 굉장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안 되는데. 나도 이미 수빈이와 결혼하자고 약속했는데...”
명기의 안색이 심각해지자 충영이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 약속을 했냐? 회장님 생각은 확고한 거 같은데 네가 회장님 이길 자신 있어?”
“음!”
명가가 신음소릴 내는데 얼굴을 보니 생각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렇겠지. 수빈이도 놓치기 싫고, 그렇다고 아버지의 뜻을 꺾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고.’
충영은 명기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 동병상련의 감정에 자신에게 처해진 일이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수빈이는 경진이와 좀 다르잖아? 부모님도 사회 지도층이시고 걔 자체 스펙이 엄청나니까 회장님을 설득하면 될 지도 몰라.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라.”
충영이 격려하는 말을 하자 명기가 그를 보며 웃었다.
“야. 당장 눈앞에 불이 떨어진 녀석에게 내가 위로를 받아야 되겠냐? 너부터 잘 해결해야지. 아무튼 이제 너한테 내가 매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하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냐? 물론 지금 같은 사석에서야 당연히 친구지만...”
“뭐. 상황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지. 난 나쁘지 않아. 영진이 누날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무거웠는데 충영이 너하고라면 그 누나도 왠지 마음을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도 경진이만 아니라면 다 좋지. 아무튼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
“마음도 심란할 텐데 오늘 나랑 술 한 잔 할까?”
“아니. 경진이한테 말 다 하고 나서 마시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일단 경진이랑 끝내고 나서 연락해라. 그때 한 잔 하자.”
“응.”
충영이 어느새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영은 하루를 더 보낸 뒤 경진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잡았다.
“오빠! 일찍 왔네. 나도 늦은 건 아닌데.”
제 시간에 도착한 경진이 시간보다 먼저 커피숍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충영에게 웃으며 말했다.
“응. 앉아라.”
경진이 자리에 앉자 바로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경진은 늘 이랬다. 항상 자신보다 충영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행동을 한다. 지금도 충영의 얼굴이 굳어 있자 바로 눈치를 차리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으응. 우선 차나 마시자.”
“오빠 마셨으면 그냥 나가자. 찻값 한 잔이라도 아껴야지.”
“아니야. 여기서 할 말이 있으니까 차 시켜.”
그의 안색이 더 굳어지자 경진이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커피를 마시고 나서 경진이 그에게 물었다.
“오빠. 미국 가서 무슨 일 있었어? 오빠 얼굴 보니까 나 왠지 마음이 불안해.”
충영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또 망설였다. 정말 입을 떼기가 힘들어서였다.
‘......!’
충영이 살면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처녀를 준 여자가 경진이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 자신을 엄마 다음으로 가장 사랑해 주는, 아니 지금 현재는 어쩌면 엄마와 비교해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그녀인 것이다.
또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평생 돌봐줄 거라 큰 소리 뻥뻥 치고 잘난 척은 다해놓고 이제 와서 헤어지잔 말을 해야 하니 충영의 지금 심정이 딱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 말을 하지 않으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것을...’
충영이 계속 망설이자 경진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없이 그의 입술만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미국에 가서 영진이 누날 만났어.”
충영이 입을 떼자 경진이 굳었던 안색을 조금 펴고 그의 얘기를 경청한다.
“영진이 누나 말이야. 그 누나가 미국에서 계속 마약을 했나봐, 그런데 그게 발각이 돼 구치소로 넘어갔어. 그런데 또 거기서 자궁외임신이 돼서 수술까지 받고, 아무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누나 상태가 너무 심각한 거야. 또 회장님이랑 있는 데서 자살한다고 뛰어내리고. 10층 병실에서...”
“어머!”
경진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자 충영이 쓴 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완전히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걸 내가 운 좋게 간신히 붙잡았어. 그리고 나서도 또 한 번 자살기도를 했다가 어찌 마음을 돌렸는데 그 누나가 나를 걸고넘어지는 거야.”
충영이 말을 멈추자 경진이 그의 입을 주시했다.
“내가 자기를 살렸으니까 나하고 결혼하겠다고...”
경진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결혼해주지 않으면 다시 자살해 버리겠다고 회장님께 협박하니까 회장님도 어쩔 수 없이 그 누나에게 나하고 결혼시켜주겠다고 약속해 버렸어.”
‘......!’
경진의 얼굴이 얼어붙어버렸다.
새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자 충영은 가슴이 쓰라렸지만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갔다.
“엄마 아빠도 경진이 널 너무 마음에 들어 하셔서 우리집 식구들은 당연히 내가 너랑 결혼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날벼락을 맞게 되었으니...”
한 동안 죽음 같은 침묵이 흘러갔다.
콜록-
경진이 마른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모기소리만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가 그 누나란 여자하고 결혼한다 이 말이지? 나랑 하는 게 아니고.”
충영이 한 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
“엄마도 회장님께 따진다고 직접 말을 했는데 오히려 회장님께 설득당하셨고 회장님도 나를 따로 불러서 얘길 하시는데 도저히 거부를 할 수 없는 입장이라 그만 그렇게 한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회장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 경진이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그 집안에게 종속돼있기 때문인데 정말 나도 이런 상황이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경진아. 정말 미안해.”
“아니. 괜찮아. 오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내가 싫증이 나서 헤어지자고 할 수도 있는 문젠데 그것도 아니고. 충분히 이해해.”
경진이 웃으며 말을 하는데 충영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얼굴은 웃는데 그녀의 눈은 금방이라도 다 죽어가는 환자처럼 생기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진짜 너한테 할 말이 없다. 미안해서... 그리고 이거...”
충영이 점퍼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경진이 봉투를 받으며 묻자 충영이 말했다.
“회장님께 내가 경진이 네 얘길 했거든. 결혼할 여자가 따로 있다고. 그랬더니 얼마나 사귄 건가, 형편은 어떤 가, 물으시더니 돈을 좀 주셨어. 미안하지만 보상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서...”
경진이 충영의 얼굴을 한 번 보다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든 수표의 액수를 확인했다.
“1억이네. 회장님 통도 크시다.”
경진이 고개를 들어 충영의 얼굴을 보았다.
“오빠. 이 돈 내가 가져도 되는 거야?”
순간 충영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응. 당연하지. 너 가지라고 준 돈인데.”
“음. 그럼 내가 가질게. 그리고 오빠. 이거 받아.”
경진이 봉투를 다시 내밀자 충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가진다고 했잖아? 이제 그 돈은 네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 돈 오빠한테 주는 거야.”
“뭐?”
“결혼선물로 오빠 줄게. 이걸로 결혼할 때 써.”
“경진아.”
“그 동안 오빠한테 받기만 하고 한 번도 뭘 해준 적이 없는데 이거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경진아. 이러지 말고 받아. 응? 제발 받아라.”
충영이 봉투를 다시 그녀 앞으로 쭉 밀자 경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빠. 부탁이야. 나 지금도 충분히 괴로운데 이깟 돈으로 날 더 이상 비참하게 하지 마.”
“경진아.”
경진의 얼굴을 보고 충영은 더 이상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충영이 봉투를 다시 집어넣자 경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나가자.”
의자에서 일어난 경진이 한 걸음 움직이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경진아!”
충영이 놀라 자리를 박차고 그녀의 곁으로 갔다.
몸을 부축하자 경진이 그의 품안으로 안겨왔다.
“오빠! 나 다리가 풀려서 걷질 못하겠어. 날 좀 안아서 가라.”
“응. 알았다. 내게 기대.”
충영이 경진의 몸을 번쩍 들어서 안고 걸음을 옮겼다.
충영이 주차장으로 가는데 안고 있는 경진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을 보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 사이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정말... 죽일 놈이구나.’
충영은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그대로 경진을 안고 한국을 탈출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후우. 미치겠다.’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충영은 그녀를 안고 주차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조수석에 경진을 태우고 충영은 그녀의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경진은 울었고 충영은 묵묵히 운전만 했다.
경진의 집에 도착하자 충영은 다시 그녀의 몸을 안고 그녀의 집 현관까지 갔다.
“이제 됐어. 내려줘.”
아파트 현관 앞에 그녀를 세우자 경진이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 고마워. 아니. 그 동안 고마웠어.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 그리고 결혼하면 나 같은 건 잊어버려. 난 그 동안 오빨 너무 사랑했으니까 그걸로 족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억지로 웃으려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충영은 가슴이 정말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그래. 나도 그 동안 경진이 널 사랑해서 좋았어. 평생 너하고의 추억 간직할 거야. 잘 살아라.”
몸을 돌리자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그 층수에 머물러 있다.
충영은 얼른 내림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기 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경진의 눈을 보는 충영의 마음이 또 한 번 무너진다. 사냥꾼에게 상처 입은 사슴의 눈이 저러할까... 곧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눈이 저러할까... 아무 희망도 기대도 없어져버린 경진의 슬픈 두 눈을 보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문이 닫히며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경진아!”
엘리베이터가 내려가자 충영은 눈앞에 그녀가 있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경진의 아파트를 나온 충영은 바로 근처에 있는 슈퍼에 들러 소주 10병하고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 충영은 차고에 차를 넣고 저택 주변을 걸었다. 그러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벤치 하나를 골라 그곳에 앉았다.
소주 10병을 모두 꺼낸 뒤 충영은 그 중 한 개를 골라 마개를 열고 종이컵 가득 술을 따랐다. 그리고 원샷.
컵에 술을 따르면 남기는 법이 없이 무조건 원샷으로 술을 비운다.
그렇게 마시다 생각이 나면 오징어 다리를 질겅 씹고 또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잊으려고 술을 마시는 건데 마실수록 더욱 경진의 슬픈 눈빛이 떠오른다.
소주 세 병을 비웠을 즈음엔 수치심에 땅을 보며 그 바닥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다섯 병을 비우자 이젠 제법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경진이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자신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겠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후후. 술이란 참 좋은 거구나. 소주야. 너 앞으로 내가 좀 애용해주마.”
충영이 소주 한 병을 들고 마치 사람에게 하듯 말하다 마개를 열었다.
여섯 병을 비우자 이제 확실하게 느낄 정도로 취기가 몰려왔다.
술에 취하니 문득 견딜 수 없이 외로움이 느껴졌다.
충동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든 충영은 잠시 생각을 굴렸다.
전화할 상대를 찾다 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보이자 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무슨 일이야? 사고 났어?”
수화기 저편에서 화영이 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언제나 두 사람이 만나려면 화영이 먼저 전화를 했기 때문에 이렇게 충영이 전화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사고 안 났어. 그냥 우리 화영이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왜 싫어?”
“아니. 지금 어딘데?”
“대성그룹의 대저택 주변이지.”
“잠시만 기다려. 내가 곧 갈 테니까.”
화영이 전화를 끊자 충영도 휴대폰을 닫았다.
잠시 후 휴대폰이 울리자 충영이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난 지금 온실 앞인데.”
화영의 목소리가 들리자 충영이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여기 있었구나.”
화영이 충영을 발견하고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바삐 걸어왔다.
“어머!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주변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빈 술병을 보고 화영이 놀라자 충영이 그녀의 몸을 낚아채더니 바로 입술에 키스했다.
“우읍.”
그가 한참 동안 입술을 빨고 놔주자 화영이 가볍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술 냄새.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응. 오늘은 내 인생 최고로 기분 나쁜 날이야.”
충영이 일곱 병째 술의 첫잔을 마시자 화영이 그의 곁에 바짝 앉더니 물었다.
“왜 그래? 나한테 말해 봐.”
“나. 자기 딸하고 결혼하기 싫어. 정말 결혼하기 싫다구.”
충영이 거친 목소리로 말하자 화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때문에 그러는구나. 후우.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어떡해. 영진이가 자기하고 결혼 안 시켜주면 죽어버리겠다는 걸. 그이에게 미국에서의 일도 다 들은 마당에 아무리 나하고 자기가 그런 사이라지만 이번 혼사는 나로서도 반대할 수가 없었어.”
“후후.”
충영이 실없이 웃었다.
‘그게 아니라구. 내가 화영이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경진이 땜에 마음이 아파서 이러는 거야.’
술에 취하긴 했지만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어서 충영은 화영에게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 좀 웃기지 않아? 내가 화영이하고 애인인데 또 화영이 딸하고 결혼을 하면 대체 촌수가 어떻게 되는 거야? 화영이가 이 결혼 좀 말려주면 안 될까?”
“미안해. 나도 싫지만 어쩔 수가 없다 자기야. 그리고 난 자기가 날 이처럼 많이 생각해주는 줄 몰랐는데 자기 날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나 정말 감동했어.”
화영이 이젠 먼저 충영의 입술에 키스를 해 온다.
혀와 혀가 얽히고 진한 키스가 오가는 가운데 술에 취한 충영이 먼저 입술을 뗐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러냐?”
충영이 묻자 화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웃었다.
“자기가 장소는 잘 잡았는데? 여기 외지고 움푹 꺼져 있어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이네.”
“미치겠네.”
충영은 화영의 대담함에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보면 우린 끝장인데 두렵지 않아?”
“자기도 두렵지 않으니까 날 불렀잖아? 자기가 두렵지 않다면 나도 마찬가지야. 아무 것도 무서운 거 없어.”
“좋아. 그럼 여기서 한 번 할까?”
충영이 시험하듯 그녀의 의향을 묻자 화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려면 편하게 내 방으로 가서 하자.”
“후후. 내가 그렇게 좋아?”
화영이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항상 말했잖아?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그러니까 영진이랑 결혼해도 날 사랑해줘야 해?”
“영진이보다 더?”
“응. 그랬으면 좋겠어. 사랑은 자식한테도 양보하기 싫으니까.”
“아아. 어쩔 수가 없는 건가? 정말 이제 영진이랑 결혼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거야?”
충영이 술을 한 번에 비우자 화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마셔. 내일 회사 나가야지.”
“후후. 오늘 내 주량이 어디까지인지 확실하게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러다 몸 상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이제 그만 마시면 좋겠다.”
화영이 그의 몸을 안아주자 충영이 그녀의 품에서 중얼거렸다.
“이러니까 꼭 엄마 같다.”
“그래. 자기가 필요하면 내가 엄마도 돼줄게. 착한 내 아기.”
화영이 자신의 가슴을 그의 얼굴에 부비며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충영의 굳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래. 그만 마셔야지.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충영이 빈 종이컵을 멀리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그가 몸을 비틀거리자 화영이 얼른 그의 몸을 부축했다.
그의 어깨를 목에 걸고 화영이 간신히 버티자 충영이 자세를 바로 잡고 목 아래로 빠져 나온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가 마음껏 가슴을 주무르는 데도 화영이 전혀 거부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자 충영은 밝은 곳으로 나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충영은 난생 처음으로 숙취를 느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운데, 오히려 그런 숙취가 충영에게는 고마웠다. 그렇게 자신을 학대해야 경진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리다 퇴근한 충영은 명기와 함께 곧장 집으로 왔다.
저녁으로 순영이 끓여주는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가볍게 한 그릇 비운 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 알코올이 모두 분해됐는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든다.
“음. 어제 괜히 이모를 불러내서 민망한 꼴을 보였군.”
술에 취해 어제 화영에게 주정한 것이 생각나자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 충영은 그녀에게 문자라도 전해줄까, 생각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휴대폰이 먼저 울렸다.
‘......!’
발신자를 확인한 충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경진이 동생 경희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충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오빠!”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저편에서 다급하고도 숨찬 경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경희야. 무슨 일 있어?”
“응. 어떡해 오빠. 언니가...”
“언니가 뭐. 빨리 말해.”
충영이 다그치자 경희가 말했다.
“언니가 약을 먹었어요.”
전화를 받을 때부터 뭔가 예감이 안 좋았던 게 바로 이거였다.
충영이 재빨리 물었다.
“그래서. 죽었어?”
“오빠!”
“빨리 말해. 언니가 죽은 거니?”
“흑흑. 오빠.”
대답 대신 경희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충영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몸 전체로 퍼져갔다...
................................
1부는 여기까지 준비했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능력도 부족하여 만족할 만큼 좋은 글이 되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 글을 사랑해 주신 독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까지 좀 쉬구요, 2부는 그 다음 주 화요일부터 똑같은 연재 방식으로 일주일에 두 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부도 올린 횟수는 많지 않지만 한 번 올릴 때마다 내용이 긴 편이라 1부만 해도 300쪽이 훨씬 넘네요... 2부는 1부보다 더 길게, 더 스피디하게 쓰고 싶은데 제 의도대로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최선을 다해서 끝마칠 때까지 가볼 생각이니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제 글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즐거웠다면 그걸로 충분하구요, 앞으로도 독자분들에게 건강과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길 바랍니다.
참, 경진의 생사는 2부에서... 그리고 이미 정해졌습니다...^^
그럼 저는 다다음주 화요일에 글로
“흑흑흑. 오빠. 언니가...”
경희가 울기만 하고 말을 잇지 못하자 충영은 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경희야. 언니가 어떻게 됐는데? 지금 병원이니?”
“응. 언니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중태야. 의사 말로는 살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데... 흑흑흑.”
“그럼 아직 죽진 않은 거지?”
“응.”
“어디 병원이냐?”
“한강을지병원이야.”
“오빠가 지금 갈게.”
“응. 오빠. 빨리 와줘. 나 무서워 죽겠어.”
“알았다. 경희 네가 부모님이랑 경미 잘 돌보고 있어.”
“빨리 와.”
“그래.”
전화를 끊고 충영은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중환자실 입구에 도착한 충영은 경희와 경미, 그리고 그녀들의 부모까지 모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오빠!”
경미가 제일 먼저 그를 발견하고 크게 소리치며 그의 품안으로 달려들었다.
“오빠. 언니가 아파.”
충영은 경미를 품에 꼭 끌어안고 울먹이는 그녀를 달랬다.
“그래. 경미야. 언니는 괜찮을 거야.”
“응. 오빠가 왔으니까 이제 언니는 괜찮아.”
울다가 웃는 경미의 얼굴을 충영이 쓰다듬고 있을 때 경희와 그녀의 부모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버님. 어머님.”
충영이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데 양심에 찔려 그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충영이 왔구나.”
한두 번 밖에 본 적이 없지만 경진의 아버지가 다정하게 맞아주자 충영은 더욱 괴로워 고개만 숙였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어. 충영이 자넨 알고 있나? 우리 경진이가 왜 약을 먹었는지. 흑흑.”
경진의 엄마가 충영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자 그가 그녀를 달랬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경진이는 꼭 살아날 겁니다. 경희야 지금 상태는 어때? 전보다 더 좋아졌어?”
충영이 묻자 경희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의사가 말을 안 해주니까...”
“들어가 볼 수 있을까?”
“응. 소란스럽게만 하지 않으면 한두 사람 정도는 들어가서 얼굴 보게 해줘요. 오빠. 나랑 같이 들어가.”
경희가 충영의 손을 잡고 입구에 있는 탈의실로 갔다.
옷을 걸치고 충영은 경희와 함께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경희가 손을 잡자 충영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아주고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걸어갔다.
“여기.”
경희가 한 침상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말하자 충영은 그곳에 누워 있는 경진의 얼굴을 보았다.
‘......!’
어제 자신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생기발랄했던 그녀가 이제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자 충영은 심장이 타는 것 같이 아파왔다.
“오빠!”
충영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경희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충영은 경진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신이여! 당신이 정말 있다면 제발 경진이 좀 살려줘요. 잘못한 놈은 난데 왜 죄 없는 경진이가 세상을 떠야합니까?’
여자 때문에 지금까지 충영이 울었던 적은 딱 두 번 있었다. 첫 번은 엄마 순영이 교통사고로 거의 죽게 생겼을 때 울었고, 경진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지금이 두 번째다.
하지만 엄마와 경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교통사고는 충영이 한 게 아니지만 지금 경진이 죽을 고비를 맞고 있는 것은 오로지 충영 자신 때문인 것이다.
‘경진아! 너 진짜 죽으면 안 돼.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살아다오. 네가 이대로 가면 난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난 그러기 싫어. 제발 깨어나라.’
“오빠! 그만 나가자.”
충영이 울음을 그치지 않자 경희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경희의 손에 이끌려 중환자실을 나온 충영은 경진의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언니는 좀 어때?”
경진의 엄마가 경희에게 물었다.
“그냥 똑같아.”
“나빠지진 않았어?”
“응.”
“후우! 내가 죽어야 하는데, 왜 앞길 창창한 젊은 것이...”
경진 엄마, 미옥이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는데 곁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는 충영은 죄책감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더구나 경진이 없는 지금의 이 가족은 마치 가장을 잃은 아이들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어 평소 경진이 이 가족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여보! 그만 울어요. 이러다 당신까지 쓰러지겠소.”
곁에서 남편이 안아주자 미옥이 눈물을 훔치며 경희에게 물었다.
“이제 어쩌지? 경미가 배 고프다고 보채는데.”
충영이 경희에게 물었다.
“식구들 아무 것도 안 먹었니?”
“응.”
경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충영이 지갑을 꺼내 카드를 그녀에게 주었다.
“우선 부모님이랑 경미 데리고 나가서 밥 먹고 와라. 여기는 내가 지킬 거니까.”
“오빠는?”
“난 저녁 먹었어. 그러니까 어서 다녀 와. 그리고 어머님은 식사하고 아버님이랑 경미 데리고 집으로 가세요. 제가 경희랑 둘이서 병원에 남을 게요. 여기 이렇게 식구들 전부가 남아 있어봐야 모두 지치면 오래 버티기 힘드니까 교대로 병원을 지키는 게 좋겠습니다.”
“엄마. 오빠 말대로 하자.”
경희가 카드를 받고 미옥에게 말했다.
“충영이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미옥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충영은 낯이 뜨거워졌다.
보아하니 경진이 식구들에겐 자신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것이 더 경진과 이 가족에게 미안했다.
“어머니. 절대 그런 말씀 마시고 얼른 가서 영양가 있는 걸로 식사하시고 기운 차리세요. 남은 사람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대비를 하죠. 어서 가세요. 경희 넌 돈 생각하지 말고 꼭 영양가 있고 맛있는 걸로 챙겨먹어라. 알았지?”
“응. 식사하고 올게.”
경희가 식구들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경미가 충영과 떨어지기 싫어했지만 배가 워낙 고프다보니 밥을 사준다는 말에 그와 간신히 떨어졌고 경진의 부모는 충영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병원을 나갔다.
한 시간 후에 경희가 돌아왔다.
“오빠. 별다른 일은 없었지?”
“응. 의사가 부르지 않은 걸 보면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이리 와 앉아라.”
경희가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자 그가 물었다.
“저녁은 잘 먹었어?”
“응. 나하고 경미는 잘 먹었는데 엄마는 거의 못 먹고 아빤 술만 마셨어.”
“경희 네가 고생이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에...”
고3인 데도 제법 어른 티를 내며 의젓하게 행동하고 있는 경희가 대견해 충영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니만 좋아진다면 그까짓 공부가 대수야? 대학 안 들어가도 돼.”
“그런 말 하지 마. 넌 언니보다 공부도 잘하고 강단이 있어서 좋은 대학 갈 거야. 오빠가 너 꼭 대학 보내주고 취직도 시켜줄게. 다른 데 안 되면 우리 회사에 취직해도 되니까.”
“오빠!”
경희가 기어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품에 안겨왔다.
그녀를 안고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 충영이 물었다.
“언니는 어떻게 된 거야? 집에서 약을 먹은 거니?”
“응. 경미하고 둘이 있었는데 언니가 약을 먹었나봐. 경미가 보통 잠을 자는 시간이 있거든? 그때 언니가 약을 먹은 것 같은데 정말 천만다행인 것이 경미가 잠을 빨리 깼어. 경미도 이상한 것을 몸으로 느낀 건지, 언니를 죽게 놔두지 않으려고 그런 건지 아무튼 언니를 생각보다 일찍 발견해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어. 아빠도 마침 가까운 곳에 있어서 빨리 언니를 병원에 옮길 수 있었고.”
“음.”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가 응급조치로 위세척을 하는데 아직 소화되지 않고 있던 약이 세척으로 씻겨 나왔대. 의사가 말하는데 언니가 진짜 죽으려고 작정한 게 맞는 것이, 만약 세척돼서 나온 약이 그대로 다 소화됐다면 무조건 사망이래. 그만큼 약을 치사량이 넘게 먹었다는 거야.”
경희의 말을 듣고 있는 충영의 안색이 굳어졌다.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다.’
“정말 미안하다.”
충영이 나직하게 말하자 경희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언니하고 다툰 거야?”
충영이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툰 게 아니라...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
“으음...”
경희가 신음소릴 냈지만 어느 정도 짐작했다는 듯 크게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 경희가 한숨을 토했다.
“후우. 언니는 참 바보야. 요즘 세상에 남자하고 사귀다 헤어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런 일까지 저지르는지. 난 어떤 상황이 와도 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짓은 못하겠던데...”
“다 내 잘못이다.”
충영이 괴로워하자 경희가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오빠 얼굴 보면 언니가 싫어져서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왜 그랬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변명 같지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발생했어.”
“언니가 없는 상황이 온 데도 날 대학에 보내주고 취직도 시켜주겠다는 말 진심이야?”
경희가 묻자 충영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응. 난 경진이를 사랑하지만 경희 너도 좋고 경미도 좋아. 꼭 내 동생 같아서 끝까지 보살펴주고 싶어.”
“오빠. 언니가 남긴 편지가 있어.”
“나한테?”
“응. 우리 가족 네 식구한테도 각자 한 통씩 남겼고 오빠한테도 남긴 편지가 있어. 여기.”
경희가 가방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충영에게 건넸다.
“읽어보진 않았어.”
“으응. 고맙다.”
충영이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오빠! 이렇게 먼저 가서 미안해. 내가 이렇게 가 버리면 오빠가 너무 괴로워할 거라는 걸 알지만 어쩔 수가 없네. 오빠가 없는 세상에서 옛날처럼 우리 가족들과 살 생각을 하니 도저히 감당이 안 돼. 그 동안 오빠와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던 만큼 오빠가 없는 세상은 내게 암흑이고 지옥이 돼 버렸어. 세상을 등질 생각을 하니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빠와 함께 하며 즐거웠던 추억이 있어 그것만 끌어안고 갈래. 오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래...)
충영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경진아. 꼭 살아만 다오. 내가 어떡해서든 다시 되돌려 놓을 테니까. 꼭 돌아와. 제발...’
충영이 울자 경희가 그의 품에 안겨 허리를 두 팔로 안았다.
“오빠. 오빠 마음 언니가 다 알 거야.”
경희가 어른처럼 그를 위로하자 충영은 그녀의 얼굴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마음을 안다면 언니는 꼭 깨어날 거야. 우리 기다려보자.”
두 사람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기다리는데 시간이 흐르자 기온이 점점 내려가며 경희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춥지?”
충영이 묻자 경희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밤 되니까 좀 춥네.”
충영이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
“오빠. 그러면 오빠가 춥잖아?”
“아니. 난 괜찮아. 추우니까 내 쪽으로 더 기대라.”
충영이 경희의 몸을 안자 그녀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밀착하고 두 팔로는 그의 허리를 감았다.
“아. 이러니까 따뜻하고 좋다.”
“자세는 불편해도 이렇게 한 숨 자라.”
“괜찮아... 그런데 오빠.”
“응?”
“참 이상하지?”
“뭐가?”
“언니가 이렇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오빠 때문이잖아?”
“그래.”
“그런데 이상하게 난 오빠가 원망스럽지 않아. 그것보다 오빠가 있으니까 너무 좋아. 만약 오빠가 없었다면 우리 식구들은 지금도 갈팡질팡 어쩔 줄 모르고 있었을 거야.”
“오빠도 경희가 좋다. 처음 너 봤을 때는 까칠하고 성격도 급해서 친해지려면 힘들겠다, 싶었거든. 그런데 막상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닥치니까 너무 의연하고 믿음직해. 내가 그 동안 경희 널 과소평가했나 봐.”
“몰라. 오빠란 믿음직스런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힘이 더 나는 거야. 오빠가 없었다면 나도 불안해서 이렇게 태연하게 행동은 못했을 거고.”
“아무튼 우리 경희도 어른이 됐나 봐.”
“어른 되기 싫은데... 하지만 어쩌겠어? 그 동안 언니가 있어 마음껏 의지했는데 이젠 나도 조금은 더 어른이 돼야 할 것 같아.”
“언니만 살아나면 그럴 필요 없어. 지금 생각하니까 경희 너는 옛날 모습이 더 귀엽고 개성이 넘치는 것 같다. 옛날이 더 생기발랄하게 느껴지는데 지금은 왠지 네 모습이 아닌 것 같아서 좀 안쓰러워.”
“뭐. 지금은 비상상황이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껴안은 상태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충영의 눈이 잠깐 감길 무렵, 중환자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소리치는 것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민경진 환자 보호자분 계세요?”
“예!”
충영과 경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민경진 환자 보호자 되세요?”
“예.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충영이 황급히 다가가 묻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민경진 환자 상태가 호전됐습니다. 그래서 일반 병실로 옮겨야 될 것 같은데.”
“아! 정말입니까?”
충영이 굳었던 얼굴을 펴며 경희를 보았다.
“오빠!”
경희가 활짝 웃자 충영이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오빠.”
충영이 경희를 놓고 간호사를 항해 물었다.
“상태가 어떻게 호전됐나요? 이제 생명엔 지장이 없는 건가요?”
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이탈 사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어서 지금 상태라면 낙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담당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일반병실로 옮기는 게 환자분이나 보호자께도 편하실 테니까 병실을 선택해 주셔야겠습니다.”
“예.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 까요?”
충영이 묻자 간호사가 설명했다.
“병실은 보호자가 결정을 해주셔야 해요. 지금 6인실, 2인실, 1인실 모두 자리가 비었으니까 마음대로 고르셔도 돼요.”
“그보다 더 좋은 병실은 없나요?”
간호사가 충영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특실이 하나 비어있긴 한데 병실료가 비싸요.”
충영이 바로 입을 열었다.
“특실로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특실로 옮겨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간호사가 충영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본 뒤 안으로 사라졌다.
“오빠! 특실로 할 필요는 없잖아? 2인실 정도로만 가도 훌륭할 거 같은데...”
경희가 약간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한껏 기분이 좋아진 충영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뺨에 입술을 댔다.
“후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오빠한데 그 정도 돈은 있으니까. 아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충영이 뺨에 뽀뽀를 하자 경희가 얼굴을 약간 붉혔지만 그녀도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오빠가 알아서 해라.”
특실로 경진을 옮기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충영과 경희 두 사람은 병실로 들어갔다.
“아! 좋다. 이런 데는 처음이야.”
경희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하는데 충영도 사실 이런 화려하고 넓은 병실을 구경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경진의 안위가 먼저다. 충영은 얼른 침대에 누워 있는 경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
중환자실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얼굴에 붉은 기가 돌고 상태가 좋아 보여 충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말 좋아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제 안심이 돼.”
경희가 그의 곁에서 경진의 얼굴을 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응. 언니가 살아나려나 봐. 오빠가 와 있다는 걸 느끼는 거 아닐까? 그래서 갑자기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건지도 몰라.”
“그랬다면 좋겠다.”
충영도 이제 웃을 여유가 생겨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음. 이제 좀 졸린다.”
긴장이 풀어졌는지 경희가 입을 손으로 가리고 하품을 하자 충영이 얼른 그녀에게 말했다.
“한숨 자라. 그 동안 너무 힘들어서 더 피곤할 거야.”
충영이 넓고 긴 장의자를 침대 밑에서 빼 경희 앞에 놓았다.
“오빠는?”
“난 아직 괜찮아.”
“이거 굉장히 넓은데 같이 자도 될 것 같아.”
경희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자 충영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넓어서 그래도 되겠다. 경희 너 먼저 자. 오빠도 정 피곤하면 옆에 누워서 잠깐 잘게.”
“응. 오빠, 여기 앉아 있어.”
충영이 경희가 지적한 곳에 앉자 그녀가 그 밑에 베개를 놓고 눕더니 팔을 위로 뻗어 그의 허벅지를 감쌌다.
“나 잠잘 때까지 이대로 있어줘.”
허벅지 안쪽에 경희의 손이 느껴지자 충영은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떨치고 그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자. 자고 나면 언니가 깨어서 경희 널 맞아 줄 거야.”
“응. 그러겠지? 오빠. 오빠가 있어서 너무 좋아.”
“그래.”
충영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1분도 안 돼서 허벅지에 놓인 경희의 손이 떨어지자 충영은 그녀가 잠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손을 허리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새근거리며 곤히 잠든 경희의 얼굴을 잠시 보다 충영은 고개를 돌려 경진의 얼굴을 보았다.
‘......!’
경진 역시 경희처럼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평온해서 충영은 마음을 놓고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새벽 4시네.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구나.’
충영도 긴장이 풀어지자 갑자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날 과음하고 푹 쉬지도 못했으니...’
충영은 장의자에 앉은 채, 침대에 얼굴을 얹고 잠깐 졸았다.
‘......!’
누군가 뺨을 만지자 충영은 잠에서 깨어났다.
‘누구지?’
잠결이지만 얼굴을 만지는 손길이 솜사탕처럼 부드러워 손의 임자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다 충영은 완전히 잠이 깨 얼굴을 들었다.
‘......!’
경진이 침대에서 상체를 세우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진아!”
충영이 나직하게 부르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경진이 다시 손을 뻗어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자 충영도 그녀가 하던 그대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껴안았다.
‘......!’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고 특히 충영은 지금 이 순간 경진이란 여자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아프게 깨달았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가 버릴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몇 분 동안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다 두 사람은 떨어졌다.
“오빠!”
경진이 부르자 충영이 그녀의 말을 끊고 먼저 말했다.
“그래. 경진아. 오빠가 부탁 하나만 하자.”
“응. 해.”
무엇이든 들어줄 태세로 경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부터 하루만 나하고 있자. 아무 결론도 내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 그냥 이 병원에서 푹 쉬면서 나랑 하루만 지내자. 그럴 수 있지?”
“오빠 회사는 안 가고?”
그녀의 말을 듣고 충영이 창밖을 보았다.
‘......!’
깨기 전에는 새벽이었는데 지금은 날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다.
“응. 회사는 하루 쉬어야겠다. 전화하면 돼.”
“알았어.”
“몸은 좀 어때? 아픈 데는 없어?”
“머리가 좀 아프고, 여기 명치가 쑤셔.”
“어디. 누워 봐. 내가 지압 좀 해줄게.”
“응.”
경진이 눕자 충영이 그녀의 명치 부근에 손을 댔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지압을 하다 충영이 그녀의 가슴 하나를 손으로 잡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오빠! 거긴 안 아파.”
“응. 알고 있어. 여기는 오빠가 만지고 싶어서 하는 거야.”
충영이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보자 경진이 중얼거렸다.
“난 키스가 하고 싶은데...”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충영이 고개를 숙이자 경진이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키스했다.
“오빠! 침대로 올라 와.”
“응.”
충영이 신발을 벗고 장의자에서 침대로 올라와 경진과 함께 누웠다.
경진이 품에 안겨오자 충영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한 손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넣어 보지 둔덕을 부드럽게 애무했다.
경진이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충영의 길고도 부드러운 애무는 간호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루를 병실에서 보내며 경진의 몸은 완전히 회복됐다.
원래 과량의 수면제를 먹고 그 독에 의해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의식이 돌아오니 그녀의 몸에서 나쁜 독을 빠르게 몰아내 회복이 빨라진 것이다.
경진의 가족들도 그녀가 빠른 쾌차를 보여 마음을 놓았고 경진이 충영과 단 둘만 있기를 원하자 두 사람만 두고 병원에서 집으로 다 철수했다.
그렇게 하루를 같이 보내고 그 다음, 날이 밝자 경진이 충영에게 말했다.
“오빠. 이제 가봐야지.”
“응. 너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퇴원하는 거 보고 갈게.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라 회사도 쉬고.”
“그래. 고마워. 안 그럴려고 했는데 또 오빠한테 신세를 졌네.”
“경진아!”
“응?”
“내 말 잘 들어.”
“......!”
“난 회장님의 딸하고 결혼을 해야 해.”
“알고 있어. 절대로 오빠 괴롭히지 않을게. 걱정하지 마.”
“너 또 자살 할 거니?”
“......!”
경진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충영이 고개 숙인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경진이 너랑은 이제 못 헤어질 것 같다.”
경진이 고개를 들자 충영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너... 나랑 헤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들어 볼래?”
“무슨?”
“내가 두 집 살림을 하는 거야. 경진이 너하고 회장 딸 영진이 누나하고.”
“오빠!”
경진이 놀라 자신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세컨드가 되라는 말이야?”
충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네가 퍼스트고 영진이 누나가 세컨드지.”
“......?”
“법적인 아내는 물론 영진이 누나가 되겠지만 나한테 아내는 경진이 너 하나뿐이야. 네가 인정해주면 난 그렇게 알고 평생 살아갈게. 내 자식도 경진이 네가 낳아주고... 그 영진이 누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거든.”
경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아기를 못 가져?”
“그 누나가 미국에서 막 살았어. 남자관계도 아주 복잡하고 마약도 하고. 아무튼 상식이하의 삶을 살았는데 그 누나가 자궁외임신으로 수술을 받았지. 그 말은 너도 전에 들었지?”
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궁외임신이란 게 너무 그런 쪽으로 문란하게 살아도 생긴다고 하고, 아무튼 나팔관인가, 하는 것이 막혀서 임신할 확률이 거의 없대.”
“후우. 그렇게 부잣집 딸이 뭐가 아쉬워서...”
경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 누나가 반듯하게 살았다면 지금 나와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오빠 말은 결혼식은 그 여자하고 하고 실제로 아내는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거야?”
“응. 형편이 그래서 법적으로 널 아내로 맞아들이진 못하지만 경진이 넌 내 사랑하는 부인이 될 거고. 너만 좋다면 결혼식도 너하고 먼저 올리고 신혼여행도 먼저 가자. 난 정말 그 누나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약한 엄마를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다. 만약 회장님이 화를 내서 우리 가족을 엿 먹인다면 우리 엄마는 아마 한 달도 살지 못할 거야.”
“오빠!"
경진이 충영의 얼굴을 보며 입술을 깨무는데 그녀도 그의 말을 듣고 흔들리는 표정이 역력했다.
충영이 말했다.
“물론 그렇게 결정을 내리면 우리 두 사람의 인생은 앞으로 엄청나게 꼬일 거다. 넌 법적으로 남편 없는 몸이 되고 아기를 갖게 되면 미혼모가 될 거야. 태어난 아기도 법적으론 아비 없는 자식이 될 것이고.”
“오빠는 나보다 더 힘이 들 거야.”
“그렇겠지. 회장님을 완전히 배신하는 셈이 되니까 만약 들통이 나면 우리 가족은 후환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 그러니까 널 철저하게 감춰야하고 그렇게 평생 이중 적인 삶을 살아야겠지.”
“날 그렇게 사랑하는 거야? 그렇게 위험부담을 안고 갈 만큼?”
경진이 충영의 얼굴을 보며 묻자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 네가 이렇게 되면서 확실하게 깨달았어. 나에게 네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꼭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닌 게 그 누나가 본인 입으로 그러는데 자기는 남자에게 금방 싫증을 느낀대. 이제껏 살면서 남자를 사귀면 두 달 이상 가 본 적이 없다고 그러니까 아마 나하고도 그러지 않을까? 내 얼굴이 자기 이상형도 아니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어쩌면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결혼생활이 정리될 수도 있어. 그러면 그땐 부담없이 나와 법적으로도 부부가 될 수 있는 거고.”
“으음.”
경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보았다.
“오빠 말대로 할게. 어차피 난 이 세상에서는 오빠가 없으면 더 살 생각이 없었으니까... 오빠하고 살 희망이 생긴다면 내가 세컨드가 되어도 좋아.”
“경진아. 넌 왜 나한테 그렇게 목을 매는 거니?”
충영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묻자 경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몰라. 내 유전자에 오빠밖에 받아들일 공간이 없나보지 뭐.”
“이 자식! 이러니까 내가 널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 맹세할게. 앞으로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넌 나하고 끝까지 가는 거야. 알았지?”
“응. 난 이미 오빠한테 마음 줄 때 그렇게 맹세했었어.”
충영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퇴원 준비 할까?”
“응. 어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집에 가서 오빠랑 하고 싶다.”
경진이 웃으며 그의 얼굴을 보는데 마음을 정해서인지 표정이 아주 밝았다.
“그래. 오늘은 좀 각오해야할걸? 오빠가 그 동안 너 땜에 속 끓인 벌로 아주 괴롭힐 거니까.”
“무섭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얼른 집에 가자.”
경진이 충영의 목을 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오후가 되자 충영은 퇴원수속을 밟고 경진을 차에 태워 그녀의 집으로 갔다.
집에서 기다리던 식구들은 모두 그녀를 반갑게 맞아들였고 경진은 그들에게 사과했다.
“엄마 아빠. 미안해. 다신 이런 짓 저지르지 않을게.”
“그래. 이 정도로 끝나서 정말 다행이다.”
미옥이 눈물을 글썽이자 경희가 경진에게 말했다.
“언니. 경미한테 고맙다고 해라. 경미 아니었으면 언니는 우리 식구들 얼굴 다신 못 봤으니까.”
“그래. 경미야. 언니한테 와.”
그러자 충영의 품에 안겨 있던 경미가 그녀의 곁으로 갔다.
“우리 막내가 언닐 살렸네. 고맙다 막내야.”
“응. 언니가 살아서 나도 좋아.”
“아유. 이쁜 우리 막내.”
경진이 경미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렇게 잠시 더 얘기를 나누다 경진의 아버지가 일이 있다며 나갔고 경희도 공부하러 독서실로 갔다.
“충영이는 저녁 먹고 갈 거지?”
미옥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묻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녁까진 먹고 가겠습니다.”
“그럼 나가서 장 좀 봐와야겠네. 그 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까 맛있는 것 좀 해서 먹자.”
충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힘들게 그러실 것 없구요, 나가서 먹도록 하죠. 경진이도 회복됐고 자축도 할 겸 근사한 데 가서 제가 저녁 쏘겠습니다.”
미옥이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병원비도 다 자네가 내고... 너무 미안해서.”
“아,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돼서 하는 거고 오늘은 어머님도 일 하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쉬세요. 아버님도 제가 술대접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오늘 저녁에 다 해결하면 될 것 같네요.”
충영이 친근하게 웃으며 말하자 미옥이 경진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경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옥에게 말했다.
“엄마. 오빠 말대로 해. 그리고 오빠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경미 데리고 잠깐만 나갔다 올래?”
“그래? 마침 해피 산책도 시켜야 했는데 잘 됐다. 경미야. 해피 데리고 나가서 놀다 오자.”
“좋아. 해피!”
경미가 소리를 지르자 안방에서 강아지가 나와 그녀에게 달려왔다.
“하하. 많이 컸네.”
충영이 웃으며 말하자 경미가 강아지를 안아들었다.
“엄마. 가자.”
“응. 경진아. 한 시간 정도 있다 오면 되겠니?”
미옥이 딸에게 말하는데 충영이 듣기에 어쩐지 좀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후후. 엄마가 딸한테 섹스하라고 자리를 피해주는 건가?’
“응. 한 시간 이면 돼. 조금 더 있다 와도 괜찮고.”
“알았다. 그 전에는 들어오지 않으마.”
미옥이 충영과 경진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미묘한 웃음을 짓다 경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자 충영이 경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네 엄마가 우릴 놀리는 것 같다.”
“응. 그러게. 내가 회복돼서 기쁜 가봐.”
경진이 따라 웃었다.
“엄마는 알고 있어?”
충영이 묻자 경진의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엄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아빠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
“경희는? 이번에 보니까 경희가 아주 의젓하더라.”
“응. 내가 이런 몹쓸 짓을 한 것도 경희를 믿었기 때문이야. 걔가 겉으로는 말을 함부로 하고 딱딱거려도 속은 그렇지 않거든. 나보다 능력도 뛰어나고 결단력도 있어. 아마 나이가 더 들면 나보다 경희가 훨씬 더 우리 가족에 도움이 될 거야.”
충영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진 않아. 공부를 더 잘하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경진이 넌 네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경희가 아무리 잘한다고 네 자리를 메울 수는 없는 거야.”
“그래. 경희도 나중에 오빠와의 관계를 알게 되겠지. 하지만 알게 될 때까지 그대로 두고 싶어.”
“하긴. 수험생인데 골치 아픈 일을 미리 말할 필요는 없겠다.”
“으응. 이제 그런 얘긴 그만 하자. 나 오빠 안고 싶은데.”
“그러려고 엄마랑 경미 내보낸 거 아니야?”
충영이 짓궂게 웃으며 묻자 경진이 얼굴을 붉힌다.
“응. 그런데 나 그 동안 안 씻어서 몸이 더러울 텐데.”
“오빠가 씻어줄게. 같이 목욕하자.”
“안 돼. 때 나올 것 같단 말이야. 내가 할게.”
“어허! 넌 아직 환자야.”
“아니. 이제 다 나았어.”
“그래도 무리하면 안 되니까 오빠가 해줄게. 때 좀 나오면 어떠냐? 이제 우린 부부나 마찬가진데.”
“아이. 부끄러운데.”
“아까운 시간 간다. 이런 일로 시간 허비하지 말자.”
충영이 그녀가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탕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옷을 벗은 후 경진의 옷까지 벗기고 충영은 그녀의 몸을 씻어주었다.
비누칠을 하고 머리까지 감겨준 뒤 충영은 자신도 간단하게 씻고 그녀와 함께 욕실을 나왔다.
경진을 안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 충영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오빠. 안아 줘.”
경진이 두 팔을 벌리자 충영은 곁에 누워 그녀의 알몸을 꼭 안아주었다.
“좋아.”
“병원에 있느라 힘들었을 텐데 오빠가 경진이 마사지 해 줄게.”
“오빠 마사지 잘 하는 거 아는데, 오빠도 힘들잖아?”
“괜찮아. 그리고 그 동안 풀코스로 해준 적은 없었는데 오늘 완전 풀코스로 한 번 받아 봐라.”
충영이 웃으며 그녀의 몸을 마사지하지 시작했다.
“아아. 정말 시원하다.”
충영의 손이 스쳐갈 때마다 경진이 탄성을 발한다.
충영은 화영에게 해 주던 방법에다 정성까지 담아서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아아. 오빠. 이제 들어와. 들어와 줘.”
충영이 2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전신 구석구석 경진의 몸을 마사지하자 그녀가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그의 자지를 요구했다.
경진이 다리를 벌리자 충영은 그녀 사이로 들어가 자지를 보지에 끼웠다.
귀두를 껍질 속으로 미는데 마사지로 이미 몸이 달아올랐는지 흐를 정도로 그곳이 젖어 있었다.
“오빠! 어서 넣어 봐. 나 이미 몸이 열렸어.”
경진이 달콤함 음성으로 속삭이자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를 찾았다.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 그곳에 자지를 밀자 입구가 벌어지며 그의 큰 귀두가 단번에 질속으로 쑥 들어갔다.
“아아. 오빠!”
경진이 몸을 떨며 크게 신음소릴 내는데 충영도 귀두가 마치 열탕에 빠진 듯 뜨겁게 느껴지며 보지 속 근육들이 자지를 단단하게 조여오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쾌감을 즐겼다.
“경진이 너. 거기가 엄청 뜨겁고 조인다. 이제까지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충영이 그녀의 뺨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며 웃자 경진이 한숨소릴 냈다.
“하아. 너무 좋아. 난 오빠 그게 더 뜨거운 것 같아. 아아. 뜨거운 게 들어오니까 내가 너무 좋아서. 아아. 오빠. 움직여 봐.”
“응. 천천히 하자. 너 오늘 퇴원했으니까 무리하면 안 돼.”
충영이 말과 함께 자지를 서서히 움직이며 자궁 쪽으로 밀었다.
“아응. 너무 좋아. 다시 살아서 오빠랑 이렇게 할 줄 몰랐는데, 너무 좋다. 죽지 않길 너무 잘했어. 오빠. 사랑해.”
자지가 진입할수록 경진의 말이 빨라지더니 뿌리 끝까지 자지 전체가 보지에 박히자 경진이 입만 딱 벌린 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흐으. 흐으.”
경진이 엄청난 반응을 보이며 달아오르자 충영도 분위기에 동화되어 그녀의 입술에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쭉쭉쭉-
“아응. 오빠!”
경진의 달아오른 신음소릴 들으며 충영은 고개를 숙여 젖꼭지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것을 살살 입속에 굴리며 혀로 쓰다듬자 경진이 그의 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속삭였다.
“오빠. 그렇게 부드럽게 하니까 나 너무 기분이 좋아져. 난 오빠 없으면 안 돼. 아아. 움직여 봐. 응. 거기 그대로 있지 말고 움직여 줘.”
충영이 유두를 혀로 굴리며 깊이 담가두었던 자지를 뒤로 빼냈다.
“으으으.”
귀두만 남기고 뒤로 모두 자지를 물린 뒤 그가 펌프질을 시작했다.
퍽-퍽-퍽-퍽-퍽-
행여 그녀가 상할까봐 충영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부드럽게 좆질을 했고 그것에 더욱 감질이 나는지 경진이 안타깝게 소리쳤다.
“아아. 조금만 더. 오빠. 더 강하게 해 봐.”
경진이 보지에서 물을 계속 쏟아내는지 움직이는 자지에 뭔가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이 들었다.
퍽퍽퍽퍽퍽-
“아아아! 오빠! 갈 것 같아.”
경진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충영도 점점 좆질을 강하고 빠르게 했다.
처음 경진의 몸을 생각해서 이번 섹스는 마지막까지 부드럽게 끝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경진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더욱 강한 것을 요구하자 충영도 더 이상 그녀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욕심이 찰 때까지 자지를 움직였다.
퍽퍽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
“어어억. 갈 것 같아. 아아. 난 몰라. 오빠. 어서. 어서 해 봐.”
경진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절정에 오르자 충영도 그녀와 보조를 맞추며 사정을 시작했다.
“아으으.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아요.”
자신의 정액을 받으며 경진이 황홀해 어쩔 줄 몰라 하자 충영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하아. 좋아. 오빠. 너무 좋아.”
“경진아. 사랑해.”
충영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도. 오빠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랑해.”
“응. 알아.”
충영은 자신의 품안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여자가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란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현재 충영이 가장 마음을 쓰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바로 수진이다.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도 수진은 경진과 비교할 수 없다. 얼굴과 몸매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에 든 지식과 부모의 배경 등, 사실 경진이 수진과 비교해서 우위를 점할 한 구석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경진은 충영을 사랑한다. 그것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한다.
자신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릴 만큼,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하는 그녀를 충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충영은 경진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경진이 네가 바로 내 조강지처다.’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옛날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처를 두고 따로 첩을 들일 수 있다고 했다. 왕은 더 말 할 것도 없고 요즘에도 남자가 능력만 있으면 삼처사첩을 거느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강지처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했다.
‘경진이 네가 조강지처고 영진이 누난 세컨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내가 버려도 경진이 넌 평생 아끼고 보살펴 줄 거야.’
충영이 그런 다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경진이 시계를 보며 그를 재촉한다.
“어머! 엄마 나간 지 벌서 한 시간이 훨씬 지났어.”
“그래. 빨리 샤워하고 옷 입자.”
충영이 웃으며 그녀의 몸을 안았다.
샤워를 마친 두 사람이 옷을 입고 거실 소파에 앉자 바로 문이 열리고 미옥과 경미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경미가 품에 안고 있던 강아지를 내려놓고 그에게로 달려왔다.
“그래. 우리 경미.”
충영이 경미의 몸을 번쩍 안아들고 위로 올려 한 바퀴 돌았다.
“호호. 재밌다.”
경미가 허공에서 비명을 지르듯 웃자 곁에 있던 미옥이 경미를 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장녀 경진의 얼굴을 보았다.
‘......!’
충영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웃고 있는 딸의 얼굴을 보자 미옥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의 다 죽어가는 얼굴이었는데 하루 사이에 건강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한 시간 전 자신이 나갈 때와 지금의 모습이 또 달랐다. 얼굴에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모두 저 충영이란 사내 때문이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충영을 향해 더 할 수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옥은 속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래. 그렇게라도 행복하다면 어쩔 수가 없겠지.’
한 가지, 충영보다 자신의 딸이 훨씬 더 그를 사랑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어렵고 값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충영을 바라보며 웃고 있던 경진이 그가 경미를 내려놓자 고개를 돌려 미옥의 얼굴을 보았다.
‘......!’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경진은 엄마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미옥이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을 통해서 두 모녀 사이에 훈훈한 정이 오고 갔다.
충영과 영진의 결혼식이 5월 둘째 주 토요일로 정해졌다.
날이 잡히자 충영은 경진과 약속한 대로 그녀와 먼저 아무도 모르는 단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한적한 시골의 성당을 택해 그곳 신부님의 주례로 식을 올린 뒤 사진을 찍고 간단하게나마 여행까지 다녀왔다. 회사를 쉬면서까지 다녀올 수 없는 형편이라 주말을 이용한 1박2일의 여행이었지만 두 사람에겐 아주 의미가 큰 여행이었고 충영은 1년 후엔 더 좋은 곳으로 갈 것을 경진에게 약속했다.
결혼식 올리는 날이 가까워지자 충영과 영진, 양쪽 집안이 분주해졌다.
순영과 화영은 거의 날마다 쇼핑을 다녔는데 다녀올 때마다 순영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충영이 그 이유를 물으니 화영이 그녀에게 너무 과분할 정도로 살갑게 잘해준다는 것이었는데 충영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어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화영과 자신의 관계를 엄마에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충영과 영진이 결혼하고 나서 살 공간도 인테리어가 한창이었다. 처음 충영의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순영이 반대를 했다. 영진이 며느리라고는 하지만 순영이 상전으로 모시던 화영의 딸이다. 같이 살면 시어머니인 순영이 오히려 며느리 눈치를 보게 될 확률이 많아 그냥 영진이 옛날 살던 방과 그 옆방을 연결해서 두 사람의 살림방을 차려주기로 결정이 났다.
경진의 문제가 안정이 되어서인지 충영도 결혼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그렇게 날은 하루하루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