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옥이 나가고 충영이 소파에 앉는데 경미가 쪼르르 달려와 그의 품에 안긴다.
“오빠.”
충영이 그녀를 품에 안고 보니 얼굴이 많이 상해 있다. 뺨은 얼마나 맞았는지 퉁퉁 부었고 눈 밑은 눈물자국으로 온통 얼룩이 져 있었다.
“우리 경미 목욕해야겠는데?”
충영의 말에 경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벌떡 일어나더니 그의 손을 잡았다.
“오빠랑 같이 할래. 가자.”
“그래. 알았다. 같이 할 테니까 이 손 좀 놓고 가자.”
충영이 웃으며 그녀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옛날에 경진이와 섹스를 끝내고 경미랑 같이 샤워를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욕실에서 경미가 옷을 벗자 충영도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
아까 그 불량여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자신의 상태도 그리 양호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 같이 하지 뭐.’
충영은 경미와 보조를 맞춰 자신의 옷을 모두 벗었다.
마지막 팬티까지 다 벗고 경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충영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으음. 정말 몸매가 예쁘네.’
그녀의 나이가 지금 15살이다. 그런데 정신연령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지만 몸은 또 어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보통 성인여자보다 몸매가 훨씬 아름다웠다.’
알맞게 솟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그 밑으로 확 퍼진 엉덩이는 이미 그녀가 한 여자로 충분히 성숙했다는 것을 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보던 충영은 마치 조물주가 그녀에게 지능을 덜 준 것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몸매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어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오빠!”
충영이 자신의 몸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경미가 얼굴을 붉히며 그의 품에 안겨왔다.
수줍어하는 그녀의 몸을 안으며 충영은 지금 경미가 어린아이가 아닌 한 여자로 자신의 품에 안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다 충영은 그녀의 몸을 밀어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
적당한 크기로 솟은 가슴이 눈부시게 하얗고 더구나 정상에 달린 그 작은 돌기는 전에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커졌는데 연한 분홍빛으로 너무 귀엽고 앙증맞게 달려 있다.
‘후우! 이 예쁜 가슴을......’
충영은 속으로 탄식했다.
오늘 자칫 잘못했으면 다른 엉뚱한 놈에게 이 아름다운 가슴을 빼앗길 뻔 했다. 어디 가슴뿐이랴, 이 부드러운 몸과 처녀의 순결과 어린 영혼까지 단 돈 몇 푼에 무참하게 깨져나갈 뻔 했다. 그리고 그 잔인한 일들이 반복됐다면 아마도 경미의 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끔찍한 생각을 떠올리자 충영의 손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 경미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흐응!”
가슴을 잡히자 경미가 뺨을 붉히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
뭔가 갈망하는 것 같은 그녀의 눈을 보자 자지가 용트림을 하며 충영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가슴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려하는 그 순간 경미가 다시 신음소릴 내자 충영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안 돼! 내가 여기서 경미를 범하면 돈을 주고 그녀의 몸을 살 놈들하고 다를 게 뭐냐...’
옛날에 경진이 잠깐이지만 혹시 경미가 남자를 알게 되면 충영이 그 남자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뜻의 말을 한 적은 있었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가 온다면 충영은 경진의 허락을 맡고 경미의 몸을 취할 생각이었다.
다른 여자들은 다 따먹을 수 있다고 해도 경미는 그가 친동생보다 더 아끼는 아이라 상처를 주는 행동은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충영은 경미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그녀의 몸을 씻겨주었다.
머리를 감기고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기는데 그가 가슴이나 보지 둔덕을 만질 때면 경미가 몸을 뒤틀며 신음소릴 냈다.
그럴 때면 충영 역시 자지가 함성이라도 지르듯 솟구쳐 올랐지만 욕구를 간신히 눌러 참고 샤워를 끝까지 마쳤다.
물기를 다 닦아주자 경미가 먼저 욕실을 나갔고 충영은 천천히 옷을 입고 한참 후에 욕실을 나섰다.
충영이 거실로 나가니 경미가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빠!”
충영이 다가가자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경진의 방을 손짓한다.
“언니 방으로 가자.”
뭔가 할 게 있는 것처럼 경미가 그의 손을 잡아끌자 충영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경진의 방으로 들어갔다.
충영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온 경미가 경진이 사용하는 침대로 가서 그의 손을 이끌고 먼저 침대에 누웠다.
“오빠. 여기 누워 봐.”
약한 손길이지만 그녀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충영은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서로 마주 보는 상태로 눕자 경미가 충영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에 댔다.
“오빠!”
손에 경미의 뭉클한 가슴이 느껴지자 충영은 그것을 가볍게 쥐었다.
“흐응.”
경미가 신음소릴 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녀의 얼굴은 계속 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경미야.”
충영은 순간 갈등했다. 경미가 지금 분명히 자신에게 성행위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을 거절할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여야하는 건지 마땅한 선택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빠! 얼른...”
충영이 망설이자 경미가 재촉한다.
‘그래. 어차피 오늘 나 아니었다면 이 아인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르는데...’
경미가 자기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요구하자 충영도 더 이상 그녀의 청을 거절하기가 곤란했다. 어차피 그녀의 몸이 남자를 알고 그것을 원한다면 충영이 거절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 그녀를 잘 이끌어주면 매정하게 거절해서 상처를 주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충영이 경미의 가슴을 천천히 주물렀다.
“흐응.”
경미가 신음소릴 내는데 충영도 손안에 쥐어지는 가슴의 부드러운 감촉이 너무 황홀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탄력이 있을까?’
손으로 가슴을 쥐면 힘을 주는 대로 부드럽게 밀려들어가다가 힘을 빼면 어느새 원상으로 되돌아온다. 가슴의 촉감과 탄력이 그가 경험해 본 그 어떤 여자들보다 뛰어나다.
두 가슴을 번갈아가며 주무르다 성이 차질 않자 충영은 잠옷을 풀어헤쳤다. 그러자 안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맨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으음. 예뻐.”
충영이 탄식을 발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젖꼭지 하나를 입에 물었다.
“흐응. 오빠!”
경미가 몸을 떨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충영은 손으로 가슴을 주무르며 혀와 입으로 젖꼭지를 계속 애무했다.
한참 동안 가슴을 빨다 그의 손 하나가 아래로 뻗어 내려가 보지둔덕을 움켜잡았다.
“으응.”
아래도 안에 팬티를 입은 흔적이 없고 그 얇은 잠옷 위로 축축한 습기가 손에 느껴진다.
아까부터 자지가 옷을 뚫고 나올 것처럼 커져 있어 충영은 바지의 혁대를 풀고 달아오른 자지를 꺼냈다. 그리고 경미의 손을 잡아끌어 자지를 잡게 했다.
“오빠!”
경미가 놀란 듯 목소리를 높이더니 그 뜨겁게 달아오른 자지를 꼭 잡았다.
그렇게 경미의 손에 자지를 맡긴 뒤 충영은 잠옷바지 안으로 손을 넣고 아래로 쑥 밀었다.
부드러운 숲과 둔덕을 지나 균열된 곳에 이르자 그곳으로부터 뜨거운 열기와 축축한 물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보지둔덕 전체를 손바닥으로 압박하며 애무하다 중지를 껍질 사이로 밀어 넣자 부드러운 속살이 비에 젖은 꽃잎처럼 축축하게 젖은 채로 그를 반겼다.
젖은 속살에 침입한 그의 중지가 숲을 누비는 뱀처럼 영활한 움직임으로 경미의 보지 전체를 누비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충영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에 이르러 부드럽게 비비자 경미의 입에서 거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손에 힘을 꽉 주고 그의 좆대를 움켜쥔다.
경미가 흥분하자 충영도 따라서 달아올랐지만 입술을 깨물고 참으며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오늘은 내가 흥분하면 안 돼.’
자칫 이성을 잃고 경미를 덮치면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이미 흥건하게 젖은 경미의 보지 속 깊숙하게 들어가 질입구를 찾은 충영은 그곳 주변을 가볍게 문질렀다.
“하응. 어서. 오빠. 해 줘.”
경미의 신음소릴 듣던 충영은 순간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경미가 내는 신음소리는 다른 여자들이 내는 것과 똑같은 소리였다. 어린 아이가 아닌, 분명한 성인여자가 내는 교태어린 목소리였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경미는 분명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느낀 충영은 뜸만 들이던 것을 마침내 실행했다.
그의 중지가 입구를 뚫고 질속으로 쑤욱 들어가자 경미가 몸을 후득, 떨며 무릎을 세웠다.
“아앙!‘
충영도 경미의 보지근육이 손가락 첫 마디를 끊어먹을 듯 조여 오자 자지로 혈액이 더욱 몰리는 것을 느끼며 신음소릴 냈다.
“으음. 경미야.”
“오빠!”
경미가 세웠던 무릎 그대로 다리만 벌리자 손가락을 조이던 보지의 힘이 느슨해졌다.
마치 어서 들어오라는 듯 느껴지자 충영은 손가락 한 마디를 더 질속으로 집어넣었다.
“흐윽!”
자지를 쥔 경미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간다.
내친 김에 충영은 손가락을 움직이며 중지를 세 마디 모두 끝까지 집어넣었다.
“으음.”
충영의 좆이 아플 만큼 발기하자 경미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흐응. 흐응.”
손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은 채 움직이지 않고 충영은 빨다 중단했던 그녀의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고 경미의 젖꼭지를 빨았다.
“아아!”
경미가 자지를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젖꼭지 양 쪽을 번갈아가며 빨던 충영은 애무를 계속 하며 묻어두었던 손가락을 서서히 빼내 조금씩 움직였다.
영진과 섹스를 하며 배웠던 테크닉을 구사하여 경미의 질속에 숨겨진 성감대를 하나씩 찾아내 손가락으로 애무해주자 경미가 손에 잡힌 자지를 리드미컬하게 주무르며 그와 보조를 맞춘다.
“하아. 오빠!”
문득 경미가 자신을 부르자 충영은 젖꼭지를 입에서 뱉어내고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
잘 익은 사과처럼 뺨이 붉어진 채 경미가 그에게 말했다.
“뽀뽀해 줘.”
“응.”
충영이 그녀의 입술을 빨자 기다렸다는 듯 경미가 혀를 그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언제 배운 적도 없으련만 경미가 혀를 그의 입속으로 넣고 휘젓자 충영은 그녀의 혀를 받아 부드럽게 빨았다.
“흥! 흐흥.”
충영의 녹을 듯한 키스와 질속의 성감대를 찾아서 움직이는 손가락 기술에 경미가 마침내 절정으로 올랐다.
“흐윽!”
경미가 몸을 떨며 보지에서 애액을 왈칵 쏟아내자 충영은 질속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의 왕복을 멈추며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절정에 오르는 것도 순하게 하네.’
경미가 경직되었던 몸에 힘을 풀자 충영은 키스는 계속 하며 질속에 담가두었던 손가락을 서서히 빼냈다.
“흐응.”
손가락이 빠지자 경미가 콧소리를 내며 그의 입술을 빨았다.
한 동안 키스를 계속 하다 충영이 입술을 떼자 경미가 그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다음엔 이걸로 해줘.”
아직도 자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그녀가 말하자 충영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경미야.”
“왜? 언니는 해 주고...”
“경진이는 어른이잖아? 대학생이고.”
충영이 달래듯 말하자 경미가 묻는다.
“으응. 그럼 나도 대학생 되면 해주는 거야? 언니처럼.”
“그래. 대학생 되면 언니처럼 해줄게. 경희도 그래서 안 하잖아? 오빠는 이런 거 경진이하고만 했어.”
“아아. 그렇구나. 그럼 경희도 대학생 되면 해 주는 거야?”
“아니. 그런 거는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하는 거야.”
“나는 오빠 좋아하고, 오빠도 나 좋아하니까 내가 대학생 되면 해주는 거지?”
“응. 우리 경미는 오빠가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 대학생 되면 할 거야. 그러니까 경미야 지금부터 오빠가 하는 말 잘 들어?”
“응.”
“오늘 그 모르는 언니들 따라가서 정말 무서웠지?”
순간 경미의 눈에 공포가 떠올랐다.
“응. 너무 무서웠어. 그 언니들 나빠.”
“그러니까 경미야. 앞으로 다시는 모르는 사람들이 같이 가자고 해도 따라가면 안 돼. 알았지?”
“응. 절대로 안 갈 거야.”
“특히 남자가 가자고 하면 절대로 가면 안 돼.”
“응. 그건 엄마하고 언니가 말해줬어. 그러니까 남자가 어디 가자고 하면 절대로 안 가.”
“그랬구나. 여자도 마찬가지야. 오늘처럼 나쁜 사람한테 끌려가면 다시는 엄마랑 언니랑, 오빠도 보지 못하고 날마다 매 맞고 살게 돼.”
“무서워.”
“그러니까 절대로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 마.”
“응. 약속.”
경미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충영도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아응, 오빠 잠 온다.”
“그래? 그럼 여기서 그냥 자. 오빠가 우리 경미 자는 거 봐줄게.”
“응.”
충영은 경미의 옷매무새를 잘 마무리 해주고 자신도 바지를 챙겨 입었다.
충영이 경미를 안고 등을 몇 차례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바로 잠이 들었다.
충영은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경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
천사 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충영은 왠지 서글픈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경미 너는 이런 섹스 같은 거 모르고 살면 좋았을 텐데...’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이니까 언제까지라도 어린 마음으로 살아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녀도 어엿한 인격체이고 몸과 마음이 남자를 원한다면 그녀에게도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지. 기왕 그럴 거라면 이 오빠가 널 끝까지 행복하게 해줄게. 우리 사랑스런 경미.”
충영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데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경미의 감긴 눈이 문득 행복하게 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정식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충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화점으로 갔다.
개장부터 폐장하는 시간까지 열심히 둘러보고 공부를 한 덕분에 그는 몇 가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몇 가지 소득 중에서 충영의 마음에 가장 든 것은 한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삼십 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여자였는데 충영이 백화점에 가 있던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얼굴을 본 사람이었다.
명찰에 적힌 그녀의 이름은 송지영.
그녀는 백화점 어디에든 있었다. 모든 매장을 돌아다니며 정열적으로 일하는 그녀는 직원들에게 신망도 좋은지 그녀가 나타나면 거의 모든 여직원들이 그녀를 반기며 진심으로 복종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인재를 잘 뽑아야 하는 충영으로서는 꼭 눈여겨봐야할 대상 1호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출근하는 날이 오자 충영은 영진과 함께 아침 일찍 화양지점을 향해 차를 몰았다.
둘 다 멋지게 차려 입고 백화점 정문을 들어서자 경비가 먼저 두 사람을 발견하고 그들 앞에 섰다.
“혹시 새로 오신 사장님과 부사장님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충영이 웃으며 말하자 경비가 최대한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제가 사장실로 모시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충영이 영진과 함께 경비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7층에서 내려 사장실이라고 쓰인 방 앞에 이르자 경비가 말했다.
“이곳입니다. 명 사장님은 아직 출근 전이시지만 비서들이 있으니 안내해 드릴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비가 인사하고 사라지자 충영은 사장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일할 집무실인가?’
그가 생각에 잠기기도 전에 영진이 사장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후.”
충영은 성질 급한 영진의 행동을 보며 웃음이 나왔지만 곧 그녀의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
충영이 안을 둘러보자 그곳에 있던 세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와 영진의 얼굴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부사장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비서실장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여자가 먼저 인사를 한다.
충영은 인사를 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뭐... 비서들을 전부 얼굴 보고 뽑았구나.’
나이가 가장 많은 여자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고 나머지 둘은 이십 대 초중반 정도 돼 보였는데 하나같이 다 미인들이었다. 특히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여자는 남자라면 길을 가다가 다시 한 번 돌아볼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우리가 일 할 곳은 어디죠?”
영진이 묻자 실장이 공손하게 말했다.
“부사장님은 다른 방에 따로 집무실이 마련돼 있습니다. 우선 사장님부터 모신 다음에 부사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실장이 아주 사근사근하게 나오자 영진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사장실부터 갑시다.”
“예.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실장이 비서실 한 쪽에 있는 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응.”
영진이 고개를 치켜들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충영이 실장의 얼굴을 보았다.
‘......!’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실장이 생긋, 웃는데 그 눈빛에 뭔가 유혹의 빛깔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충영은 그녀를 향해 가볍게 웃어주었다.
사장실 안으로 들어간 충영은 놀라 입을 벌렸다.
‘......!’
생각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잘 배치돼 있는 집기들 역시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화로웠다.
“흠. 사장실은 쓸 만하네. 삼촌의 미적 안목도 그럭저럭 봐줄만 한데?”
충영이 사치스럽다고 느낀 반면에 영진은 만족하는 표정이다.
“허니. 어때? 사장실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다 바꾸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조금 사치스러운 것 같은데?”
충영의 말에 영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장실이 이 정도는 돼야지. 괜찮아.”
“저기. 부사장님도 집무실로 모실 까요?”
실장이 묻자 영진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단 여기 있다가 삼촌 오면 보고 나서 옮기지 뭐. 참. 실장은 내가 누군지 알죠?”
“예. 명 사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실장이 다시 한 번 머리를 깊이 숙이자 영진이 고개만 까딱거리며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 보지? 우린 할 말이 좀 있으니까.”
“예 부사장님.”
실장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충영이 영진에게 말했다.
“실장한테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닌가? 우리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영진이 웃는다.
“후후. 저런 것들은 초장에 기를 꺾어놔야 해. 사장 바뀌면 제일 먼저 잘릴 것들이 비서거든? 그런데 저 년은 나한테 굽실거리는 거 보니까 삼촌 그만 둬도 따라서 그만 두고 싶진 않은 모양이네. 다른 두 년들은 얼굴이 굳어 있는 걸로 봐서 삼촌 나가면 따라 나갈 것 같고.”
“오오. 그런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 색시, 대단한데? 경영자의 자질이 보여.”
“난 성질이 더러워서 최고까진 안 돼. 대신 우리 허니가 최고 자리에 오르면 내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최고는 자기가 해.”
“후후. 노력한다고 나쁠 것은 없으니까 목표를 그쪽으로 둬 볼까?”
“이제 그럴 마음이 생겼어?”
“응. 든든한 아내가 내 바람막이가 돼 준다는데 시도도 해 보지 않는다면 그건 남자가 아니지.”
“좋아. 시작은 여기서부터야.”
영진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데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삼촌!”
영진이 사십 대 중반의 남자를 보며 반갑게 맞이하자 그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영진이 왔구나. 여어! 이렇게 차려 입으니까 자네도 신수가 훤하네. 우리 저번 결혼식 때 보고 이번이 두 번째지?”
화영의 동생 진우가 다가와 손을 내밀자 충영은 두 손으로 그의 한 손을 잡아 예를 표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명진우란 사내는 누나인 화영과 세 살 터울로 이제 나이가 마흔다섯이다. 염색을 했는지 그 전에 봤던 흰 머리는 자취도 없이 전부 검은 색으로 바뀌었지만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는 머리카락의 숫자는 어쩔 수가 없는지 정수리 부근에 고속도로가 나 있다. 그러나 얼굴은 뚜렷한 이목구비에 꽤 잘 생긴 편이었고 옷차림도 세련 돼 아직도 여자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정도는 돼 보인다.
“누나한테 충분히 말은 들었다. 누나가 특히 큰 사위한테 꼬장 부리지 말고 무난하게 잘 넘겨주라고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던지 말이야. 내가 텃세도 한 번 못 부리고 그냥 밀려나가게 생겼다니까.”
진우가 웃으며 말을 하자 충영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괜한 심려를 끼쳐드렸네요. 그래도 장모님이 회장님께 삼촌 말씀을 많이 하시던데요? 삼촌, 백화점 나오시면 좋은 자릴 꼭 마련해 달라시는 걸 저와 제 처가 들었습니다.”
“하하. 그래? 하긴 누님이 내 생각은 끔찍하게 하시지. 그래도 이번엔 내가 야단을 좀 맞았다. 너희들도 실적 나쁘면 1년만 하고 그만 둔다며? 이 백화점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아무튼 빨리 인수인계 해 줄 테니까 둘이서 잘 해 봐라.”
“예. 감사합니다.”
충영이 다시 고개를 숙이자 진우가 자신의 책상 옆에 놓인 또 하나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분간 사장이 둘이니 자넨 저 책상을 쓰도록 해. 그러다 내가 나가면 그때 내 책상을 물려받게. 저 책상이 보기엔 저래도 이태리에서 수입해 온 명품이야.”
“예.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회의실로 가 볼까? 간부들하고 정식으로 인사는 해둬야지.”
“예.”
진우의 안내를 받아서 회의실로 간 충영은 그곳에서 열 명의 간부들과 인사를 나눴다.
간부들은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남자여서 충영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명의 여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니! 저 여자는 바로 송지영, 그 여자잖아?’
일주일 동안 백화점을 돌며 가장 많이 보았던, 가장 정력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바로 그 여자가 간부로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간부 중에서 가장 말단인 듯 지영은 맨 끝자리에 앉아 이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충영은 진우의 소개로 간부들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정신은 온통 송지영이란 여자에게 쏠려 있었다.
“......앞으로 이 정 사장 부부를 잘 보필해서 우리 대성백화점 화양지점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줄 믿습니다.”
진우의 인사말이 끝나고 충영과 영진도 짧게 인사했다.
“자. 그럼 미팅은 이걸로 끝내고 각자 사장님과 부사장님께 개별적인 인사를 나누도록.”
진우의 말이 떨어지자 간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충영과 영진에게 다가왔다.
충영은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다 마지막으로 지영이 앞에 서자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고개를 숙이고 얼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있던 지영이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어머!”
충영의 얼굴을 보고 지영이 그제야 사람다운 안색을 드러내며 놀라는데 충영은 그녀가 초면인 자신을 마치 아는 사람 보듯 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먼저 말을 했다.
“정충영 사장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예. 송지영 본부장입니다.”
자신의 손을 마주 잡고 차분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충영은 자세하게 바라보았다.
‘......!’
키는 165정도에 전체적으로 마른 체형이다. 하지만 마른 몸에 비해 가슴이 아주 크게 튀어나와 있어 언밸런스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얼굴을 보면 작고 마른 데다 눈이 찢어지고 코는 낮아 처음 보는 인상으로는 미인보다 추녀에 가까운 쪽이다.
그렇게 인사가 다 끝나고 간부들이 모두 떠날 때 명진우가 지영을 불렀다.
“송 본부장! 이리 좀 와 봐.”
지영이 다가오자 진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표 제출하라고 말 한 것 같은데 까먹었나?”
지영이 말없이 진우를 보고 있는데 충영이 가까이에서 보니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아예 노려보고 있다.
지영이 대꾸도 없이 자신을 노려보자 진우가 먼저 고개를 돌리며 그녀에게 말한다.
“이번 주 안으로 사표 꼭 제출하도록 해.”
그러자 지영이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갔다.
“저,저. 싸가지 하고는... 내가 저런 놈을 부하직원이라고 10년 동안이나 봐왔으니...”
진우가 혀를 끌끌 차며 지영의 뒷모습을 째려보았다.
처음부터 이런 광경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충영은 지영의 모습이 사라지자 영진과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영진이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부사장실로 가자 충영은 진우와 함께 사장실로 들어갔다.
“자. 이제 대충 인사를 시켰으니까 난 나가봐도 되겠지?”
진우가 나갈 뜻을 비취자 충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충영도 그가 없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했다.
“강비서. 윤비서와 같이 퇴근 준비 해.”
진우가 인터폰으로 하는 말을 듣자니 두 여비서와 같이 아예 퇴근을 할 모양이다.
충영은 속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뭐라 해도 그는 화영의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이라 충영은 그녀의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진우가 젊은 여비서 둘을 데리고 퇴근하자 충영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그가 한창 업무를 보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린다.
그가 수화기를 들자 실장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지금 송지영 본부장이 왔는데 들여보내겠습니다.”
“예.”
문이 열리고 조금 전에 회의실에서 보았던 송지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충영이 먼저 인사를 하자 지영이 진우의 책상을 보다 그에게 말했다.
“명 사장님은 안 계세요?”
“잠깐 일 보러 갔는데 왜 무슨 볼 일이라도?”
순간 그녀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충영에게 다가오더니 품에서 봉투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사직서예요.”
“사직서를 왜 나에게?”
충영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자 지영이 그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명 사장님이 제게 퇴사를 요구했는데, 그 동안 조금 망설이다 오늘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명 사장님은 벌써 퇴근 하신 것 같은데 사장님이 받아두었다 명 사장님께 전해 주세요.”
“송지영 본부장님.”
충영이 정색하며 그녀를 부르자 지영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사표는 제출한 거니 일단 받아는 두죠. 하지만 내 첫 출근 날에 첫 업무가 이런 사표 심부름이라니... 좀 불쾌한 데요?”
“죄송합니다.”
지영이 바로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자 충영은 좀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회의실에서 진우를 대할 때는 곧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며 대꾸조차 안 하더니 지금 자신에게는 순한 양처럼 굴고 있다. 더구나 자신은 그녀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사장이 아니던가.
충영이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곧바로 짐 싸서 퇴근 할 건가요?”
“아닙니다. 정식으로 사표처리 될 때까지는 근무를 해야죠.”
“그래요. 그럼 가서 일 보시고... 참. 오늘 저녁에 별다른 약속 없으면 나랑 식사나 할 까요?”
그의 말에 지영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약속은 없지만...”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충영이 자신의 휴대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핸드폰 번호 좀 찍어줘요. 내가 오후에 연락 할 테니까.”
“예.”
지영이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번호를 찍었다.
송지영이 물러가자 충영은 인터폰을 눌렀다.
“네. 사장님.”
실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충영이 말했다.
“차 한 잔만 가져와요.”
“무엇으로 준비할 까요?”
“커피로 하죠.”
“예. 곧 가겠습니다.”
잠시 후 실장이 커피를 들고 들어오자 충영이 말했다.
“아. 이쪽으로 가져오지 말고 저기 탁자에 놓고 좀 앉아요.”
“예.”
실장이 커피를 탁자에 놓고 그 앞에 앉자 충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충영이 그녀를 칭찬했다.
“오. 커피 맛있는데요?”
“호호. 감사합니다.”
“실장님은 여기 몇 년이나 근무했죠?”
충영이 묻자 그녀가 그와 눈을 마주치며 웃는데 왠지 정감이 흐른 달까, 그 눈빛 속에 뭔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은 애매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음. 제가 입사한 지가... 횟수로는 6년째이고 만으로 5년이 조금 넘었네요.”
실장의 말에 충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만 5년이면 짧지 않은 세월인데... 백화점 실정은 잘 파악하고 있겠군요.”
“그 동안 명 사장님을 보좌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사장님이 바뀌게 되어 사실 저희 비서실도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지금 내가 실장님을 부른 이유는 우리 회사 직원 중에 궁금한 사원 하나가 있어서 그러는데. 방금 나간 송지영 본부장 말입니다.”
“예.”
“그 직원, 실장이 보기에 어때요?”
“음. 송지영 본부장은 명 사장님이 강제사직을 시킨 직원인데요.”
실장의 아름다운 얼굴에 약간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충영이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난 지금 실장님의 솔직한 대답을 원하고 있어요.”
“솔직한 대답을 원하신다는 말씀은...”
충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난 새로 사장이 되었다고 무리하게 직원을 자르고 싶진 않아요. 비서실은 사장이 바뀌면 변동이 있겠지만 내 마음은 우리 실장님하고는 같이 가고 싶은데... 실장님이 다른 곳에 이미 자리를 마련해 놓은 상태라면 내가 붙잡는 다고해도 안 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 실장님이 이곳에서 계속 나와 근무하고 싶다면 나에게는 감추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실장이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입장도 편하네요. 사실, 사장님 오시기 전에는 갈등도 많았습니다. 명 사장님하고 잘 해 왔는데 신임 사장님과는 과연 명 사장님처럼 잘 갈 수 있을지 자신도 안 서고... 그래서 일단 오늘 사장님과 부사장님을 한 번 뵙고 나서 결정을 하자고 마음을 정한 상태였죠.”
“그런데 내가 너무 일찍 선택을 요구한 것인가요?”
충영이 묻자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
‘......!’
두 사람의 눈이 부딪치는데 충영이 강렬하게 쏘아보자 실장이 먼저 그의 눈길을 피했다.
“그렇지만 빨리 결정을 내리게 돼서 오히려 마음은 편하네요.”
실장이 다시 고개를 들어 충영의 얼굴을 보는데 이번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송지영 본부장은 우리 백화점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입니다. 우리 백화점이 15년 전에 처음 여기 화양동에 생겼을 때 고졸 출신으로 입사한 원년 멤버인데 능력도 뛰어나고 성실한 데다 직원들 간에 친화력도 좋아서 현장에서 뛰는 직원들은 송 본부장을 가장 믿고 따르죠.”
“으음. 그런데 왜 명 사장님은 그런 직원을 자르려는 거죠?”
“송 본부장은 나하고 동갑인데 나와는 달리 윗사람하고 타협을 잘 못해요.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이죠. 노조위원장처럼 부하직원들한테는 절대적인 신망을 얻고 있지만 사장님하고는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들이 많아서 명 사장님도 몇 번이나 자르고 싶어 했지만 워낙 본부장이 일을 잘 해서 매출 때문에 자르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온 겁니다. 그러다 사장님이 물러나게 되니까 그 동안 눈엣가시 같았던 송 본부장부터 자르게 된 것이죠.”
“일이 그렇게 된 거구나.”
충영이 중얼거리자 실장이 그에게 말했다.
“송 본부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으셔야 합니다. 그 직원만큼 우리 백화점 실정을 잘 아는 사람도 없고 우리 백화점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충영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난 실장님도 마음에 드는데 우리 앞으로 같이 잘 해 나갈 수 있겠죠?”
“사장님이 잘 이끌어주신다면 저야 직무가 사장님 보필하는 것인데 항상 최선을 다해 모실 준비가 돼 있습니다.”
“좋아요. 이제 그만 나가서 일 보세요.”
“예 사장님.”
오후가 되자 충영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송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자 충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렇지. 근무 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는구나.’
충영은 실장을 불러 송지영을 사장실로 호출했다.
충영이 잠시 기다리자 지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녀가 인사하자 충영이 말했다.
“오전에 내가 말한 식사. 저녁에 가능하죠?”
“예.”
그녀가 다소곳하게 말하자 충영은 미소를 지으며 시계를 보았다.
“지금 다섯 시 반인데 어때요? 퇴근 시간은 아니지만 좀 일찍 나갈 까요?”
“지금이요?”
지영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충영이 웃으며 물었다.
“왜? 이렇게 일찍 퇴근 한 적 없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은 좀 일찍 나갑시다. 내가 근사한 저녁 한 번 쏠 테니까.”
“예.”
지영이 순순히 대답하고 나가자 충영은 영진에게 전화를 걸어 일이 있으니 따로 퇴근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