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 (16/36)

백화점 입구에서 기다리다 지영의 모습이 보이자 충영은 그녀에게 사인을 보낸 뒤 서서히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뒤에서 따라오자 충영은 조금 발걸음을 늦춰 그녀와 나란히 보조를 맞추었다.

“식사를 하기엔 조금 이른 것 같은데 술 좀 마실 줄 알아요?”

“예. 잘 마시는 편이에요.”

지영이 빼지 않고 말하자 충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디로 갈 까요? 가장 가고 싶은 데를 말해 봐요. 나, 돈 많은 사람이니까 돈에 구애 받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해요.”

지영이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마른 얼굴에 살며시 미소를 떠올리며 말한다.

“오늘 소맥이 무척 땡기는데, 도다리 회에 소맥 사주실래요?

“오케이. 나하고 통했네. 나도 회가 먹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곳 실정은 내가 잘 모르니까 송 본부장이 식당을 정하죠?”

“예. 비싸긴 해도 아주 잘하는 일식집이 있어요. 오늘 사장님 좀 벗겨먹어도 되죠?”

“얼마든지. 자. 갑시다.”

일식집에 들어온 두 사람은 조용한 룸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자연산 도다리를 주 메뉴로 하고 소주와 맥주를 시킨 뒤 충영은 술이 나오자 소맥을 만들어 지영의 잔에 따랐다.

충영이 내민 잔에 마주 잔을 부딪치더니 지영이 소맥 한 잔을 단숨에 다 마신다.

“아! 맛있다.”

잔을 비우고 지영이 탄성을 발하자 충영도 잔을 한 번에 비우고 두 사람의 잔에 다시 소맥을 채웠다.

두 번째 잔은 가볍게 한 모금만 마시더니 지영이 충영의 얼굴을 보며 웃는다.

“나 우리 백화점에 근무한 이래 사장님하고 술 마셔보기는 첨이네.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회의실에서 인사할 때 말이에요. 나를 보고 조금 놀란 눈치던데, 혹시 전에 날 본 적 있나요?”

충영이 묻자 지영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장님. 저번 일주일 동안 우리 백화점에 날마다 나오셔서 돌아보고 다니셨죠?”

“어? 그런 거였나?”

충영이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공부하는 머린 안 되지만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거든요. 특히 우리 백화점에 자주 들르는 손님들의 얼굴은 꼭 기억하죠. 그런데 사장님은 처음 봤을 때 체격도 좋으셔서 단번에 눈길이 갔었는데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계속 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좀 이상하다 생각했죠. 별로 물건 사는 데는 관심도 없고 이것저것 탐색하듯 살피는데 난 다른 백화점에서 혹시 견학 나온 직원인가 생각했었죠. 그런데 오늘 아침에 사장님이라며 인사하라는데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어요?”

“후후. 나도 사실 놀랐는데.”

“왜요?”

“본사 근무 마치고 일주일 쉬는 기간에 계속 백화점을 시찰했는데 직원들 중에서 본부장이 가장 눈에 많이 띄더라구. 일 참 열심히 하는 직원이구나, 나중에 좀 부려먹어야겠는데... 이런 생각 하며 이름도 외워뒀는데, 그 직원을 오늘 간부석상에서 본 데다 또 오늘로 해고라니... 후후. 놀라지 않을 재간이 있나?”

“호호.”

지영이 웃으며 술잔을 드는데 마침 메인안주가 들어왔다. 

메인 안주가 나오자 두 사람은 그때부터 소맥을 경쟁하듯 마셨다. 충영이 한 잔을 마시면 지영도 따라서 마시고 지영이 한 잔을 먼저 비우면 충영도 그녀와 똑같이 술을 비웠다.

술이 얼큰해지자 지영이 고개를 똑바로 들고 충영의 얼굴을 보았다.

“사장님은 참 키가 크시네요. 몇이나 되세요?”

“190이 조금 넘는데, 키 큰 남자 좋아해요?”

“예.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남자가 좋아요.”

“후후. 딱, 나네.”

충영이 웃자 지영이 그를 보며 말했다.

“명 사장님도 낙하산 인사였지만 이번에는 대성그룹 사모님의 큰 딸하고 큰 사위가 온 다니까 내심 마음이 불편했어요. 이보다 더 나빠지면 우리 백화점 망하는데 어쩌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참, 저 고졸 출신인거 아세요?”

“알아요. 비서실장이 말해주던데?”

“음. 그 여우한테 저에 대해 물어보셨어요?”

“하하. 실장 그 여자가 여우인가?”

“그렇죠. 명 사장한테 어찌나 살살 거리며 애교를 부리는지 눈꼴시어서 못 봐줄 정도였으니까요. 명 사장 그만 두면 그 여우가 어찌 나올지 제일 궁금했는데... 그 여우보다 내가 먼저 잘리게 생겼으니.”

“실장한테 감정이 있나 봐요? 실장은 나한테 본부장 얘기 잘 해주던데. 우리 백화점에서 송 본부장이 가장 손꼽히는 인재라며 사표 수리하지 말고 꼭 잡으라던데...”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요?”

지영이 놀라 물었다.

“그래요.”

“으음. 명 사장 나가도 여기 붙어 있으려고 마음먹었구나.”

지영이 중얼거리더니 그에게 말했다.

“사실 그 이기영 실장, 능력은 있어요. 상사한테 아부하고 살살거리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나도 그 실장은 그대로 쓸 생각인데.”

“그러세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계속 일하게 하실 건가요?”

지영이 자신을 바라보자 충영도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당연히 그럴 마음으로 이 자릴 마련한 거지. 하지만 내 생각은 그것보다 더 많이 나가 있는데 어때요. 내 생각을 한 번 들어 볼래요?”

“예. 말씀하세요.”

지영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난 송 본부장을 해고하지 않는 걸로 끝내지 않고 아주 중용할 생각인데, 어때요. 나하고 큰 일 한 번 해보지 않을래요?”

“큰 일이라 하시면...”

지영이 눈을 반짝이며 궁금한 표정을 짓자 충영은 정색하며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난 본부장이 원하는 만큼 밀어줄 마음이 있는데, 만약 그러려면 본부장도 나한테 충성을 맹세해야 할 거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으음.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본부장의 영혼까지 모두 내게 맡기길 원해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나도 본부장을 내 바로 밑에 두겠소. 나 빼고 가장 높은 사람, 즉 이인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뜻이지.”

“대성백화점의 이인자가 되기 위해 내 영혼을 팔라는 말씀인가요?”

“아니. 내 꿈은 여기 화양동에 있는 작은 대성백화점의 오너가 아니요. 대성그룹 전체의 회장이 되는 것이지. 어때. 불가능하게 보여요?”

충영이 쏘아보자 지영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신음소릴 냈다. 

“대성그룹 전체의 회장이라니. 으음. 사장님이 그렇게 큰 뜻을 품고 계신 줄 몰랐네요.”

그 말을 듣고 충영은 속으로 웃었다. 사실 방금 자신이 말한 것은 수진이가 품고 있는 뜻이었지, 자신의 포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백화점 사장이 되고 나서 마음이 서서히 바뀌는데 대성그룹의 주력은 백화점이다. 다른 건설 쪽이나 호텔사업 등 몇 가지가 더 있긴 해도 대성을 결정짓는 이미지나 주력사업은 백화점인 것이다. 

“난 여기 화양지점을 발판으로 끝까지 차고 올라가 대성의 모든 백화점을 총괄하는 백화점 왕이 될 거요. 본부장도 직장이라곤 백화점 근무가 전부고 또 여기에 큰 매력을 느끼니까 외길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 아니겠소?”

“예.”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그의 제안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갑자기 너무 큰 제안을 받았으니 갈등이 심하겠지.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 봐요. 지금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본부장을 해고하거나 그럴 것은 아니니까. 또 지금보다 더 직위도 높이고 명 사장님이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우해 주겠소. 하지만 거기까지, 본부장은 더 이상 백화점에서 출세하지는 못 할 거요. 업계의 모든 생리가 그러하듯 이 바닥도 백이나 연줄이 없으면 최고까지 갈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 것이니까. 나도 회장님의 큰 사위라는 줄이 아니라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백화점 사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직함을 받을 수 없었겠지.”

“으음.”

“하지만 나랑 같이 하면 끝까지 가게 되는 거요. 성공하면 그 권력이나 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거고, 만약 내가 추락한다면 같이 망하는 거지.”

충영이 말을 마치고 자신의 얼굴을 보자 지영이 입술을 깨물며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다 마셨다.

충영이 따라서 잔을 비우며 말했다.

“아직 인수인계도 받지 않은 상황이니까 내가 제안한 것은 차분하게 생각해 봐요.”

순간, 지영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지금 결정했어요. 사장님과 함께 가기로요.”

충영이 눈에 이채를 발하며 말했다.

“그 길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가족도 없는 싱글이라 부담도 없고 백화점 일이 천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더구나 저번 일주일 동안 사장님이 백화점을 돌며 보여주신 모습에 큰 신뢰를 갖게 되었고 전의 명 사장님과는 다른 분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한 번 잘 보필해서 우리 대성백화점을 한국 제일의 백화점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충영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날 믿고 따르는 사람은 절대로 먼저 내치지 않은 성격이니까 그 점은 안심해도 좋을 거요.”

“예. 사장님.”

지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자 충영이 말했다.

“자 한 잔만 더 하고 일어서지.”

“집으로 가시게요?”

“아니. 이 근방에 시설 좋은 호텔 있나?”

충영이 잔에 술을 따르며 묻자 지영이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본다.

“호...텔이요?”

“뭘 놀라지? 영혼까지 바치라고 했지만 오늘 영혼을 받을 수는 없고 대신 몸이라도 받을까 하는데, 첫날부터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아, 아닙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첫 날에 바로 섹스를 요구하는 충영의 태도가 당황스러운지 지영은 얼굴을 붉히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지영의 안내를 받아 근처 호텔에 들어온 충영은 룸에 들어서자 그녀에게 말했다.

“욕실에 가서 탕에 물 좀 받고 나오지.”

“예.”

충영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부끄러워하던 지영이 구실을 찾은 듯 재빨리 욕실로 들어갔다.

혼자 남자 충영은 답답한 마음이 들어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후우!”

강하게 나갔지만 사실 충영의 마음도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 이 백화점 사장을 맡을 때만 해도 그저 떨어진 매출을 어떻게든 올려서 회장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회장의 제1상속자가 되자는 영진의 말을 듣고 또 그러던 차에 이렇게 능력이 뛰어난 송지영이란 여잘 알게 되었다. 비록 고졸 출신이지만 뛰어난 능력과 잠재력을 가진 지영이란 여잘 완전히 내 사람으로 만든다면 백화점 왕이 되는 게 꼭 꿈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오늘 지영에게 이런 무리한 약속과 요구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사내로 태어나서 기회를 잡았는데 스스로 걷어 찰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죽어라고 해 보는 거야.’

달칵-

문이 열리며 지영이 욕실에서 나왔다.

“물 다 받아 놓았습니다.”

“그래?”

“저 그런데 사장님.”

지영이 부르자 그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저하고 하는 건 좋은데 별로 만족을 느끼지는 못하실 거예요.”

지영의 말에 충영이 그녀를 보며 웃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그 동안 남자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나?”

지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제가 가진 외모나 다른 것도 별 볼 일이 없지만 사실은 제가 별로 느끼질 못해요. 좀 무감각하달까? 어떨 땐 석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뭐. 상관없겠지. 오늘 여기 들어온 목적은 내가 본부장 몸이 탐나서가 아니라 서로 유대관계를 다지기 위해서니까. 우리가 한 몸이 되는 의식을 치루면서 정신적인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자는 데 그 뜻이 있는 거니까 그런 부담은 갖지 말고 그냥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자구.”

“예.”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충영은 그 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그가 옷을 벗자 지영도 그를 따라 자신의 옷을 벗었다.

충영이 팬티만 남기고 알몸이 됐을 때 지영도 브라와 팬티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었다.

지영이 차마 거기까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자 충영이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브라를 벗겨냈다.

“와우. 가슴 크네.”

충영이 그녀의 가슴을 보고 탄성을 발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가 지금까지 본 여자 중에서 지영의 가슴이 가장 컸다.

“아이.”

지영이 수줍어하며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자 충영은 손을 아래로 뻗어 그녀의 팬티를 끌어내렸다.

팬티까지 모두 벗기고 그녀가 완벽한 알몸이 되자 충영도 하나 남은 팬티를 스스로 벗어 내 던졌다.

지영이 눈이 잠깐 아래로 스치다 그의 자지를 보고 그대로 딱 시선을 고정시켰다.

‘......!’

입을 벌리고 그의 반쯤 선 자지를 보는 지영의 두 눈에 놀란 빛이 가득했다.

“자. 욕실로 갑시다, 양치하고 샤워 정도는 해야지?”

충영이 몸을 안자 지영이 그의 품으로 자연스럽게 안겨왔다.

“예. 사장님.”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떠 있는 것을 느끼고 충영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욕실로 들어간 두 사람은 먼저 양치부터 했다.

칫솔질을 끝내고 충영은 그녀의 몸에 물을 뿌렸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내가 씻겨주지.”

바디클린저를 그녀와 자신의 몸에 듬뿍 바른 뒤 충영은 지영의 몸을 천천히 문질렀다.

예민한 곳을 찾으려 애쓰며 마사지를 하는데 다른 여자와 달리 좀처럼 쉽게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충영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좀 둔감하게 느끼는 편이구나.’

그리고 또 하나 지영이 보통 여자와 다른 것은 가슴을 주물러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슴에다 이렇게 부드러운 마사지를 가하면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기분 좋아했고 또 어떤 여자는 아주 민감하게 느끼며 보지에서 애액을 쏟아내는 여자도 있었다. 그런데 이 지영이란 여자는 커다란 가슴을 갖고 있는 대신 그쪽에 성감대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둔감하다고는 해도 충영의 손길에 그녀가 아주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목 옆 부근이나 귓바퀴, 허벅지 안쪽, 엉덩이와 보지 사이의 회음부 등을 만질 때면 미약하나마 조금씩 몸을 움츠리며 반응을 보인다.

충영은 그녀의 몸을 애무하듯 쓰다듬으며 지영이 긴장하지 않고 편한 마음을 갖도록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을 걸었다.

“남자와는 많이 사귄 것 같지 않은데, 연애는 몇 번이나 해 봤지?”

“응. 두 번 정도? 그것도 깊게 가진 못했어요.”

“지금 내 것이 크게 성나 있는데 한 번 만져볼래?”

충영의 말에 지영이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만져보고 싶어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영이 손을 아래로 뻗어 배꼽을 향해 솟은 자지를 움켜쥐었다.

“아아!”

뜨거운 좆대를 쥐고 그녀가 신음소릴 냈다.

“좀 크지?”

충영이 그녀의 보지 둔덕을 문지르며 말하자 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엄청나게 커요.”

지영이 말과 함께 침을 꿀꺽 삼키자 충영이 웃으며 물었다.

“내 자지 먹고 싶어?”

“으응. 몰라요.”

“샤워는 이 정도로 하고 우리 나갈까?”

“예.”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충영은 그녀와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씻은 뒤 욕실을 나섰다.

룸으로 나와 충영이 먼저 침대에 모로 눕자 지영의 그의 곁으로 같이 누웠다.

그가 그녀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고 했나?”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말했다.

“내가 볼 땐 조금 늦게 오르는 타입인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만족을 못하니까 상대도 그렇고. 그렇다보니 섹스를 해도 기분이 별로예요. 그래서 자꾸 피하게 되는 것 같고.”

“오늘은 한 시간만 할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오늘 본부장 완전히 정신줄 놓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그렇게만 된다면...”

충영이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키스를 나누다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으로 가 그것을 마음껏 주물렀다.

“그런데 가슴이 참 크다. 여자 많이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가슴은 처음이야.”

충영의 말에 지영이 한숨을 쉬었다.

“후. 사실 이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딱 절반만 줄었으면 좋겠는데. 여름에 땀 차고, 무거워서 거추장스럽고 뭣 땜에 이렇게 큰 걸 달고 다녀야 하는지...”

“이렇게 한 번 해 볼까?”

충영이 일어서더니 그녀의 가슴 사이로 발기된 자지를 끼웠다.

“가슴이 작으면 이런 거는 꿈도 꾸지 못하지.”

충영이 가슴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그 속에 낀 자지를 움직였다.

충영이 자지를 밀고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입술에 그의 귀두가 닿았다.

“빨아 봐.”

충영이 명령하지 지영이 입을 벌려 귀두를 안으로 삼켰다.

쭉쭉-

한참을 빨다가 지영이 귀두를 뱉어내자 충영은 그녀의 가슴을 놔주고 자지를 그녀의 얼굴에 댔다.

“봐봐.”

지영이 좆대를 잡고 그것을 살폈다.

“크고, 단단하고, 너무 예뻐요.”

“그렇지? 오늘 그건 지영이 거니까 마음껏 만지고 빨아도 돼.”

그녀의 나이가 34살이고 충영은 스물여섯이다. 8살 차이가 나는 데도 오히려 연하인 그가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고 연상인 그녀는 공손하게 존대를 한다. 하지만 조금도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은 그가 충분하게 잘 리드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충영은 69자세를 취하며 그녀의 보지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다리를 벌리고 보지껍질을 벌려보니 아주 조금이지만 보지속살이 젖어 있었다.

충영이 보지에 얼굴을 박고 혀로 속살을 파헤치자 지영이 엉덩이를 약간 틀며 두 손으로 좆대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의 자지를 입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후릅- 쩝- 후릅- 쩝-

상대의 성기를 서로 빨아주며 애무를 즐기다 충영이 먼저 입술을 뗐다.

“이제 넣어볼까?”

충영이 정상위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묻자 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서.”

그녀가 재촉하자 충영은 보지에 자지를 끼우고 입구를 찾았다.

쉽게 입구가 찾아지자 그는 자지를 밀어 넣었고 그가 미는 대로 귀두가 질속으로 쑥 들어갔다.

“으음.”

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소릴 내자 충영이 자지를 점점 더 깊숙하게 밀며 말했다.

“왜? 느낌이 안 좋아?”

“아니. 그 반대예요. 좋아. 느낌이 굉장히 좋아요.”

“그래?”

충영이 안심하며 계속 힘을 주고 자지를 밀었다.

‘으음. 한 없이 들어가는데?’

보통 여자들은 자지를 밀어 넣으면 끝까지 들어가기 전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 여자는 그게 없다. 길이가 굉장히 길다는 것을 깨달은 충영은 자지에 힘을 주고 한 번에 끝까지 박았다.

“헉!”

뿌리까지 박히자 지영이 헛바람 소릴 내며 몸을 떨었다.

자지를 완벽하게 다 넣었는 데도 살이 닿는 느낌이 들지 않자 충영은 골반과 골반이 밀착되도록 힘을 준 다음 맷돌을 갈듯 원을 그리며 돌렸다. 그러자 비로소 끝에 뭔가 닿은 느낌이 들며 지영의 입에서 탄식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 완전히 꽉 찼어.”

“기분 좋아?”

충영이 묻자 지영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기분 좋아요. 너무 좋아. 이렇게 가다간 나...”

“느낄 거 같아?”

“응. 오래 해 주면 느낄 거 같아. 지금도 기분이 너무 좋아요.”

지영이 볼을 붉히며 그를 올려다보자 충영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녀가 혀를 내밀자 충영이 그것을 빨았다.

진한 키스를 마치고 입술이 떨어지자 충영이 얼굴을 약간 들어 지영의 귀로 입술을 가져갔다. 귓구멍에 더운 숨결을 불어넣다 귓바퀴를 이빨로 잘근잘근 씹자 그녀가 소름이 돋는 듯 몸을 떨었다.

그러는 중에도 충영이 엉덩이에 힘을 주고 원을 그리며 압박하자 지영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아. 커서 좋아. 가득 차서 너무 좋아.”

“그렇지? 지영이 넌 나 같이 큰 자지가 보지에 맞는 것 같아. 지금 사이즈가 딱 맞는 느낌이 들지 않아?”

“들어요. 더 할 수 없이 아주 잘 맞아. 아아. 조금만 움직여 볼래요?”

충영이 그녀의 말대로 자지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팍-팍-팍-팍-팍-팍-

충영이 규칙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자지를 움직이자 지영이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껴안으며 헐떡거렸다.

“하아. 흐응. 기분 좋아. 내 몸이 이상해요. 사장님.”

“몸이 느끼는 대로 다 느끼게 그냥 둬. 내가 오늘 지영이 천국 가게 만들어 줄게.”

“정말? 아아. 너무 좋아. 오래 해 줘요 사장님. 오래오래 해 줘. 흐응.”

“알았어. 오래 해 줄게.”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더 속도와 강도를 높여갔다.

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

“하아. 하아. 사장님.”

지영의 신음소릴 들으며 한참 동안 좆질을 하다 충영이 그녀의 등을 두 손으로 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상체가 들리자 그가 그녀의 몸을 안고 일어섰다.

침대에서 그녀를 안고 서자 그의 키가 천장에 닿는다.

침대에서 내려온 그는 지영을 안아 올리고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좆질을 가했다.

팍팍팍팍팍팍팍- 팍팍팍팍팍팍-

“아악. 깊어. 이렇게 깊이 들어오다니. 아우. 나 미치겠어. 후윽.”

몸이 허공에 들린 채 보지 깊숙하게 좆이 들락거리자 지영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자세와 보지 가득 박히는 충만감에 점점 신음소릴 높여간다.

“아아악!”

“지영아. 옆방에서 다 듣겠다. 소리 좀 줄여라.”

충영이 웃으며 말하는데 그러면서도 끊이지 않고 계속 좆질을 이어갔다.

“아앙. 안 내려고 하는 데도 어쩔 수가 없이 나와 버려요. 사장님. 그거 너무 좋아서 내가 어쩔 수가 없어.”

퍽퍽퍽퍽퍽퍽퍽퍽-

지영이 무겁게 느껴지자 충영은 그녀의 몸을 벽에 밀고 등을 기대게 한 뒤 더욱 거세게 좆을 박았다.

퍽퍽퍽퍽퍽퍽퍽-

“으으으! 이럴 수가... 사장님. 너무 강해. 아아. 이렇게 강하게 들어오다니...”

자세가 점점 힘들어지자 충영은 그녀의 몸을 불끈 들어 다시 침대로 옮겼다.

자지가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먼저 등을 대고 침대에 누운 충영은 그녀를 위로 올리고 말했다.

“이제 난 좀 쉬어야겠다. 지영이 네가 위에서 마음껏 해 봐.”

“응.”

충영의 위에서 지영이 엉덩이를 서서히 올렸다.

귀두가 빠질 듯 말 듯 물린 다음 지영이 그곳에서부터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으. 미치겠어.”

자지를 절반쯤 먹은 상태에서 계속 왕복을 하다 한 순간에 쑤욱 엉덩이를 내려 자지를 뿌리 끝까지 삼키고 지영이 크게 한숨소릴 낸다.

“하아. 깊게... 끝까지 다 들어왔어. 완전히 꽉 차버렸어. 너무 좋아.”

골반과 골반이 짓이겨질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이며 지영이 상체를 숙이더니 그의 작은 젖꼭지 하나를 입에 물었다.

쪽쪽쪽-

꼭지에 자극이 가해지자 충영이 귀두에 힘을 불끈 주었다.

“흐응.”

그것을 느끼고 꼭지를 빨면서 지영이 애교 섞인 신음소릴 흘려낸다.

“지영이 너. 너무 좋아하는 거 같다. 이거 봐. 물도 엄청 나오는데?”

충영이 손을 아래로 뻗어 보지에 대고 그곳에서 흐를 정도로 넘치고 있는 애액을 찍어 눈으로 확인했다.

“흐응. 사장님 그게 너무 커서 그래. 그게 날 미치게 하고 있어.”

“그게 그렇게 커?”

“응. 크고 단단해.”

“그리고?”

“뜨거워.”

“그리고?”

“안에서... 그곳에서 지금 엄청난 힘이 느껴져.”

“그리고?”

“으응. 너무 너무 좋아. 이런 게 있는 줄 난 정말 몰랐어.”

지영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더니 요분질을 치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퍽-

떡방아를 찧듯 지영이 엉덩이를 돌려대자 충영은 자지에 힘을 주고 그녀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도록 조절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

“아아아! 난 몰라. 으으으.”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엉덩이를 돌려대던 지영이 갑자기 그의 자지를 뿌리 끝까지 삼키더니 그대로 그의 가슴에 상체를 묻었다.

“으으으.”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녀가 절정에 오르자 충영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영이 너 혼자 오르는 거야? 조금만 참았다 같이 하면 좋았을 걸.”

“으응. 이런 거 처음이라 자제가 안 돼요. 미안. 사장님 하고 싶으면 더 해요. 난 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잠시 후 지영이 숙였던 고개를 들고 쑥스러운 웃음을 짓자 충영은 그녀의 몸을 잡고 그대로 한 바퀴 뒤집어 정상위로 돌아왔다.

안정된 자세를 취한 뒤 충영이 허리를 움직였다.

퍽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

이번엔 자신만 만족하면 될 것이라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충영은 단순하게 좆질을 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

강한 좆질이 규칙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처음 가만있던 지영의 몸이 또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아. 사장님. 오늘 나 왜 이러지? 또 느껴져. 아아.”

“으으. 나도 이제 곧 나올 것 같다.”

충영이 신음소릴 내며 더욱 강하게 좆질을 하자 지영이 다급하게 소릴 지르며 그의 등을 끌어당겼다.

“아아. 안에다 싸 줘. 가득... 가득 싸 줘요. 제발.”

지영이 애원하자 그렇지 않아도 한계에 도달해 있던 충영은 더 이상 참지 않고 마지막으로 사정을 위한 좆질을 가했다.

퍽퍽퍽퍽퍽퍽퍽-

“으으으. 나온다.”

“아아. 사장님. 어서. 어서 해 줘. 아아아악!”

방안이 떠나가라 지영이 크게 비명을 지르자 충영은 그녀의 비명소릴 들으며 참았던 사정을 시작했다.

“아아아!”

자궁 속으로 쏟아지는 정액을 받으며 지영이 비음 섞인 신음소릴 내는데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 감정으로 쏟아내는 그 소리가 충영의 귀에는 마치 천상에서 나는 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후으으.”

사정이 다 끝나자 지영이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몸에 힘을 풀었다.

충영도 흠뻑 땀을 흘리며 섹스를 마친 뒤라 상쾌한 기분과 함께 마셨던 술도 다 깬 느낌이 들었다.

쾌락의 여운까지 완전히 사라지자 충영은 지영과 함께 욕실로 가서 말끔하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옷을 다 입고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지영이 머뭇거리자 충영이 물었다.

“왜? 할 말 있어?”

“아니. 기분이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한데?”

“그냥... 앞으로 모시게 될 상사를 너무 좋아하면 안 되잖아요?”

“당연하지. 업무는 업무니까 공식적인 자리에선 절대로 티내선 안 돼.”

“그야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사적인 자릴 가질 수 있나요?”

“왜? 갖고 싶어?”

“예. 하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더 들어서 조금 우울해지네요.”

“그냥 받아들여. 우리 앞으로 평생 같이 일 할 텐데, 살다 보면 이렇게 사적인 일도 있을 거지만 자꾸 사적으로 얽히다보면 같이 일 못하니까. 내 말 무슨 뜻인 줄 알지?”

“예.”

“피곤하다. 모범택시 불러 달라고 해.”

택시를 두 대 불러서 지영을 먼저 보낸 뒤 충영은 나중에 온 택시를 타고 경진의 집으로 갔다.

“나야. 지금 집 앞.”

충영의 전화를 받고 경진이 바로 아파트 앞으로 나왔다.

“오빠!”

벤치에 앉아 있던 충영은 경진이 부르자 그녀의 얼굴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응. 어서 와.”

“회식은 잘 했어?”

“그래.”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경진이 옆에 앉으며 말하자 충영은 그녀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우리 마누라 보고 싶어서 일찍 끝냈지.”

“호호. 오늘 첫 출근인데 어땠어? 사장치곤 너무 젊어서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아니. 그런 거 없었어. 그냥 간부들하고 인사하고 무난하게 보냈지. 전에 있던 사장이 조금 텃세를 부리긴 하는데 그것도 잘 넘어갈 것 같아.”

“다행이다. 자. 이것 받아.”

경진이 쇼핑백을 내밀자 충영이 그것을 받았다.

“이게 뭐니?”

“우리 남편 대성백화점 사장으로 첫 출근하는데 당연히 선물이 있어야지. 와이셔츠하고 넥타이 하나 샀어.”

“잘 됐네. 그렇지 않아도 필요했는데. 고맙다.”

“뭘? 이런 작은 거 가지고.”

“작다니. 물질보다 성의가 중요한 거지. 그리고 내가 백화점을 죽 둘러봤는데 6층에 있는 식당코너를 보니까 경진이 네 생각이 나는 거야.”

“식당?”

“응. 내가 기반 잡으면 식당가 중에서 목 좋은 곳을 골라 경진이 너한테 줄 거야. 그러면 그곳에서 네가 너네 식구들하고 장사를 하는 거지. 어머니 음식 솜씨 좋잖아? 우리 경미도 서빙하는 거 거들 수 있고. 식구들이 모두 힘을 합하면 그곳에서 금방 목돈 벌 수 있을 거야.”

경진이 그의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생각까지 했어? 오빠가 내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마. 나 때문에 오빠한테 피해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으니까.”

“걱정 마라. 내가 사장으로 완전히 기반을 잡은 다음에나 할 거니까. 그나저나 경미 말이야.”

“응. 경미가 왜?”

“저번에 큰 사고 당한 날 있잖아?”

“아. 인신매매범들한테 잡혔다가 오빠가 구해 준 날?”

“응. 그날 사건 해결하고 경미랑 거실에 둘이 있었는데 걔가 나한테 성적인 걸 요구했어.”

“으음.”

경진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별로 놀라는 표정이 아니다.

“너 안 놀래?”

충영이 묻자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뭘.”

“그래?”

“응. 경미는 뭘 숨기지 못하는 아이잖아? 당연히 알고 있지. 그래서 오빠 그 날 경미하고 무슨 일 있었어?”

“으응. 일이 있었다면 있는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건데... 그냥 가볍게 뽀뽀하고 애무해주는 정도? 그런데 옛날에 우리 그거 할 때 말이야.. 경미도 한 번 본 적이 있었잖아?”

“응. 끝나고 같이 샤워도 했었지.”

“그걸 기억하고 경미가 자기도 똑같이 해달라는 거야. 경진이 언니한테는 해주고 자기한테는 안 해주냐고.”

“그래서?”

경진이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충영이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어. 경진이는 어른이고 대학생이니까 그렇게 한 거라고. 경미도 정 나하고 하고 싶으면 대학생이 되라고 그랬어. 그러면 그때 가서 언니하고 똑같이 해주겠다고.”

“아아. 그래서 요즘 경미가 공부한다고 설치는 구나. 공부 싫어하는 애가 웬일인가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어쩌냐?”

“뭘. 아주 말 잘 해줬네. 경미 대학 가려면 아직 멀었어. 최소한 앞으로 4년은 있어야 갈 텐데 그 다음엔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그리고 만약 그때 가서도 경미 마음이 안 변하면 오빠가 경미는 책임 져라. 아무래도 경미 맡을 사람은 오빠밖에 없는 것 같아. 여리고 착한 아인데 괜히 이상한 남자 만나서 신세 망치는 것보다는 오빠 그늘 밑에 있으면 걔 인생도 행복할 것 같아.”

“질투 안 나?”

경진이 그의 얼굴을 보며 웃는다.

“경미는 질투 안 하기로 했어.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는데 경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영진과 결혼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그때 상처 받은 것을 경진이 돌려서 말하자 충영은 할 말이 없어 어설픈 미소만 지었다.

“그래. 경미 문제는 우리 둘이서 상의하고 최대한 잘 해결해 보자. 자. 이리 와 봐. 우리 마누라 한 번 안아보게.”

충영이 두 팔을 벌리자 경진이 활짝 웃으며 그의 품에 깊숙이 안겼다.

충영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경진아. 사랑해.”

“나도. 오빠 사랑해. 내가 오빠 사랑하는 거 오빠가 더 잘 알지?”

“응.”

경진을 안은 채 충영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그곳 하늘에는 마치 그들 두 사람의 인생을 축복이라도 하듯 선명하고 아름다운 반달이 은은하게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다음 날. 

정시에 출근한 충영은 한참을 기다린 뒤 사장실로 어슬렁거리며 출근하는 명진우를 만날 수가 있었다.

“사장님!”

“아. 정 사장. 일찍 왔네? 사장은 꼭 정시에 나오지 않아도 되니까 자네도 앞으로는 좀 여유 있게 출근하라구.”

“예.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사장님께 한 가지 상의드릴 게 있는 데요.”

“뭔가?”

“송지영 본부장에 관한 일입니다.”

“오! 그 놈이 사표 썼는가?”

“예.”

“그거 잘 됐군.”

“하지만 제가 받지 않았습니다.”

순간 진우의 눈이 충영의 얼굴에 가 꽂혔다.

“뭐라고? 왜 그랬지?”

언제 친근하게 굴었냐는 듯 진우가 자신을 쏘아보자 충영은 웃는 낯으로 그에게 말했다.

“제가 알아본 바로 송지영 본부장은 이 백화점이 창설될 때부터 지금까지 일 해온 원년멤버더군요.”

“그래서?”

“그뿐 아니라 송 본부장의 능력이 백화점에서 제일 갈 정도로 뛰어나고 직원들에게 신망도 좋아서 만약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한다면 백화점 직원들의 사기저하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백화점 매출에도 많은 지장을 줄 것이란 판단에 그랬습니다.”

“이거야 원... 이제 나가는 나는 아무 권한도 없다 이 말이지. 자네. 날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 송지영 그 놈이 일은 잘 하지만 여러 가지로 결함이 많아. 상사 말은 항상 귓등으로 듣고 지가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은 절대로 타협도 안 하지. 나한테 대들었던 기억만 떠올려도 수십 번은 잘랐을 텐데 내가 그것도 많이 봐준 거란 말이야.”

진우가 화를 내며 말하자 충영이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다면 제가 부임하기 전에 자르시지, 왜 지금에서야 해고를 하십니까?”

“그거야...”

진우가 바로 말을 하지 못하자 충영이 가로챘다.

“저는 사장님이 장모님 친 동생이시고 또 제가 장모님을 많이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인수인계를 좋게 마무리 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백화점에 가장 필요한 인재를 제가 부임하자마자 바로 자른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사장님이 지실 수 있겠습니까?”

“왜 내가 그 책임을 져야하지?”

진우가 쏘아보자 충영도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인재를 해고한 것은 사장님이시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송 본부장에 관한 건은 제가 양보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 사장님이 끝까지 그 직원을 해고하신다고 해도 제가 정식으로 사장이 되면 다시 불러서 지금보다 더 직급을 올려 대우해 줄 생각입니다.”

“자네 정말...”

진우가 자신을 노려보자 충영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쏘아보았다.

“여기서 끝내시죠 외삼촌.”

“......!”

“만약 삼촌이 끝까지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10년 동안 삼촌께서 이 백화점에서 행한 부조리를 모두 파헤쳐 장모님과 회장님께 다 고하겠습니다. 뭐, 그 동안 삼촌께서 청렴결백하게 일을 해 오셨다면 제가 나쁜 놈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비리가 많이 나오면 그 뒷감당은 삼촌이 다 하셔야 할 겁니다.”

“뭐라고? 지금 자네가 날 협박하는 건가?”

진우가 얼굴이 하얗게 변해 소리치자 충영이 웃으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아닙니다. 전 처음부터 삼촌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이다. 다만 지금 저에게 떨어진 사명은 백화점 매출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그것 하나뿐인데 삼촌께서 처음부터 방해를 하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은 거죠. 저는 삼촌과 앞으로도 더욱 좋은 사이로 남고 싶은 사람입니다. 삼촌이 제 입장을 조금만 헤아려 주신다면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삼촌 편이 될 것입니다. 제가 사장이 돼서 삼촌의 어떤 비리가 발견되어도 다 덮어드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으음. 정말인가?”

진우가 먼저 시선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전 한 번 입에서 나온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킵니다.”

“그래도 그 지영이란 놈은 그 동안 나한테 너무 건방지게 굴었어.”

진우가 그래도 미련이 남은 듯 중얼거리자 충영이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제가 송 본부장을 불러서 사장님께 사과드리라고 하겠습니다.”

“흥. 행여나 그 놈이 그러겠네.”

진우가 냉소적으로 말하자 충영이 인터폰을 들고 실장을 불렀다.

“응. 여기 사장실로 송지영 본부장 좀 불러줘요.”

잠시 후 지영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송 본부장.”

충영이 부르자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 사장님.”

“여기 명 사장님이 본부장에게 요구했던 사표를 철회하신다고 했어요. 얼른 와서 사장님께 그 동안 무례했던 점 공손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비세요.”

충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영이 진우 앞으로 와서 허리를 90도 가량 굽히며 순한 양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동안 제멋대로 굴어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모두 못 배우고 경험이 짧은 저의 잘못이니 사장님께선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으, 응. 그래. 본부장이 그렇게 나오면 나도 할 말은 없지. 그 동안 우리 회사를 위해서 본부장도 일 많이 했지. 아무튼 사과는 받고 사표도 없는 걸로 합시다. 자 악수 한 번 하지.”

진우가 손을 내밀자 지영이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어 그의 악수를 받았다.

“하하. 저 뻣뻣한 놈이 하루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 됐네.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

지영을 보내고 진우가 충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여기 아니면 갈 데가 마땅치 않았겠죠. 여기서 기반도 어느 정도 잡았는데 다른 백화점엘 가 봐야 처음부터 시작해야하고...”

“그렇지? 진작에 좀 그렇게 공손했으면 내가 이렇게까진 안 했을 텐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이제 마음이 좀 놓이네요.”

“내가 자네 한 번 봐줬으니까 자네도 내 뒷조사 하면 안 돼? 사실 그 동안 내가 좀 방만하게 경영을 하다 보니 약점도 많이 있을 거야. 아까 말한 것 꼭 그대로 지켜주게.”

“하하. 만약 명기나 수진이가 나중에 여길 맡았다면 삼촌은 아주 고생 좀 했을 겁니다. 삼촌도 알다시피 걔들은 유도리가 좀 없잖습니까?”

“그렇지.”

“저야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 장모님을 아주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래. 누나가 자네 얘기 하는 거 나도 여러 번 들었네. 누나가 자넬 엄청 신임하고 있어.”

“그러니까요. 장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신데 제가 삼촌을 어떻게 배신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배신해도 저는 절대로 그럴 염려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는 끝까지 삼촌 편이 될 것이니까요.”

충영의 말에 이제 진우의 얼굴은 완전히 펴졌다.

“하하하. 그래. 이제 완전히 마음이 놓인다. 자. 난 이만 나가봐도 되겠지?”“그럼요. 삼촌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모든 일은 제가 다 감당하겠습니다.”

“하하. 이거 내가 자넬 완전히 오해했구만 그래. 좋아. 난 이만 나가보겠네.”

“예, 삼촌.”

충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는 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 쉬었다.

‘후우. 일단 한 고비는 넘겼군.’

진우가 나가자 충영은 바로 송지영을 다시 불렀다.

“명 사장님은 나가셨죠?”

사장실에 들어온 지영이 웃으며 말하자 충영이 손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

“예.”

“차 한 잔 할까?”

“녹차 마실게요.”

충영은 녹차 두 잔을 실장에게 시키고 그녀의 앞에 앉았다.

“어젠 잘 들어갔지?”

“예. 사장님도 잘 들어가셨죠?”

충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한 가닥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응. 일 얘기 좀 하려고 불렀는데 어젠 간부들과 인사를 나눴으니까 오늘은 전 직원들하고 얼굴이나 마주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하겠지?”“사장님이 손수 다니면서 인사하시게요?”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

“직원들 입장에서야 당연히 환영이죠.”

“그럼 먼저 본부장이 직원들한테 말을 해 둬요. 참. 간단하게 초콜릿 같은 선물 하나씩 건네면서 말을 전하면 더 부드럽지 않을까?”

“그러실래요?”

“그래. 내가 카드를 줄 테니까 일단 본부장이 알아서 처리하고 이리 와요. 오후쯤엔 인사하러 다닐 수 있겠지?”

“예. 그렇게 해 놓겠습니다. 사장님에 대해 좋은 말씀도 많이 해 놓을 게요.”

지영이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에 충영은 영진과 함께 지영을 대동하고 백화점 전 매장을 돌았다.

매장에 나와 있는 직원 전부와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다 보니 그날 오후의 업무는 인사하는 것으로 끝이 나버릴 정도로 직원들의 숫자가 많았고 그 중에서도 여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게 직원들과의 인사로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충영은 영진과 함께 집으로 퇴근했다.

셋째 날에 출근한 충영은 비로소 마음을 편하게 갖고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지영을 사장실로 부른 충영은 그녀에게 물었다.

“명 사장님 말이야. 그 동안 본부장이 봐오면서 어떤 점이 안 좋고, 또 좋았던 점은 무엇인지 말 좀 해보지?”

그러자 지영이 준비라도 한 듯 바로 입을 열었다.

“좋은 점도 몇 가지 있긴 있었죠. 하지만 단점들이 너무 많아서 사장님이 조금만 보완을 해도 우리 백화점 매출은 그냥 오를 걸로 저는 확신합니다.”

지영이 자신 있게 말하자 충영이 활짝 웃었다.

“하하. 이거야 말로 내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군. 일단 단점들 몇 가지만 말해 봐요.”

“우선 명 사장님은 개인 욕심이 너무 많아요. 첫 번째로 돈을 보자면 그 분, 비자금으로 회사의 공금을 엄청 많이 빼돌렸을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 빼돌렸을까?”

“가장 액수가 큰 것은 역시 백화점 코너에 자리를 내주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죠. 우리 백화점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자리를 얻으려면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닌데 명 사장님은 아마도 거의 모든 코너에서 뒷돈을 받고 자리를 줬을 겁니다. 물론 그 액수나 방법은 자세하게 모르지만 거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음. 하지만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챙기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데...”

충영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지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물론 회사를 운영하려면 비자금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문제는 명 사장이 손쉽게 모은 그 비자금 거의 다를 순전히 자기 주머니에 챙겨 넣는데 있어요. 그 돈의 절반만이라도 백화점을 위해,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써 줬다면 제가 그렇게 그 분을 무시하진 않았을 겁니다.”

흥분하여 지영의 언성이 높아지자 충영은 손을 들어 제지를 했다.

“아아. 알았으니까 그만 하고 그 비자금은 누가 관리를 하는 거지? 사장님이 직접 했나?”

“아니요. 전민철 상무가 비자금 담당인데 나중에 명 사장님 나가면 그 사람은 꼭 잘라야 될 요주의 인물입니다.”

“그래?”

“예. 명 사장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고 백화점의 이인자인데 그 작자는 완전히 백화점의 암적인 존재라고 보시면 돼요.”

“예를 들자면?”

“한 마디로 그 사람은 명 사장의 충실한 개나 마찬가지로 비자금을 관리해줄 뿐 아니라 사장이 맘에 들어 하는 여자가 있으면 비서로 앉혀서 성 상납을 하고, 참. 비서실에 세 명 있는 직원들 중에서 실장만 빼고 나머지 두 직원은 명 사장의 콜걸이에요. 여기 와서 하는 일이라곤 화장하고 손톱 다듬고 사장한테 예쁘게 보였다가 같이 퇴근하는, 한 마디로 월급 받는 창녀들이나 한 가지죠.”

“나도 그렇게 느끼긴 했는데...”

“전민철 상무는 명 사장이 온갖 나쁜 짓은 다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 거기에 빌붙어서 거머리처럼 피를 빠는 그런 못된 인간이라 우리 백화점을 위한 눈으로 보자면 재고할 가치가 전혀 없는 악인입니다.”

충영은 그 뒤로도 지영에게 명진우의 온갖 비행을 다 들었는데 만약 그녀의 말이 맞는다면 명 사장은 누나의 백만 믿고 지난 10년 동안 백화점에서 제 마음대로 돈을 횡령하고 여자 또한 마음껏 상납 받으며 제왕처럼 지내왔던 것이 분명하다.

“...... 명 사장의 마지막 단점은 그가 너무 게으르다는 거예요. 뭔가 매진할 일이 있으면 다 부하직원에게 떠맡기고 자기는 쏙 빠져요. 귀찮은 일 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노는 것은 또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데 참 묘하게도 노는 걸 좋아해서 명 사장이 우리 백화점의 vip고객들의 관리는 잘 한다는 거예요. 돈을 많이 쓰는 고객들은 최우선으로 접대하고 같이 어울려 놀 수 있으면 같이 노는 거죠. 그렇게 고객들 관리, 그거 하나로 버티고 있는 중인데, 그래서 한 가지 걱정은 명 사장이 나가고 나서 우리 vip고객들이 떨어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 롯데백화점이 버티고 있는데 그리 고객들을 뺏기면 우리 백화점은 타격이 아주 클 텐데...”

“으음.”

충영이 잠시 생각하다 그녀에게 말했다.

“구조조정은 못하고 vip고객만 뺏긴다면 여기서 매출 10프로 하락은 일도 아니겠네?”

“최악의 경우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만들지 말아야죠. 최소한 매장관리 투명하게 하고 아니, 그 비자금을 개인용도로 쓰지 않고 풀어서 고객들에게 환원만 시켜도 지금보다는 낫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으니까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오케이. 앞으로 비자금 관리는 본부장과 내가 같이 관리하기로 하지. 비자금이 생기면 회사에 필요한 돈은 아끼지 않고 줄 테니까 본부장도 추진하고 싶은 계획이 있으면 돈에 구애받지 말고 항상 나에게 건의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지영이 웃으며 말하자 충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나가서 매장을 둘러보며 얘기할까?”

“예. 사장님.”

지영이 활기 찬 표정으로 그를 따라 일어났다.

지영과 함께 충영이 매장을 돌아보는데 백화점 중에서 가장 요지인 곳에 이르자 지영이 손짓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 백화점에서 가장 목 좋은 자리는 보시다시피 전부 외국 명품매장이 자리 잡고 있어요. 절 안 좋게 평가하실지 모르지만 전 저런 거 보면 체질적으로 싫거든요. 뭐, 정상적으로 비싼 값을 치루고 들어온 매장이라면 모르지만 저 명품매장들만은 리베이트도 별로 없을 걸로 추측하고 또 임대료도 엄청나게 저렴해요. 단지 매출이 높다는 이유로 저런 부당한 것을 놔두고 보기엔 아직 제가 많이 젊다는 뜻이겠죠?”

충영이 지영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요. 저번 일주일 동안 백화점을 돌면서 나도 본부장하고 똑같은 생각을 했었소.”

“그래도 할 수 없죠. 우리나라 사람들 국민성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물론 대다수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그런 심리를 이용하지 않고 소신껏 장사할 수 있을 까요?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매출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고... 명 사장님은 명품코너를 저런 좋은 자리에 싸게 내준 대신 다른 데서 엄청 후려치고 있어요. 우리 국산도 진짜 훌륭한 브랜드가 많은데 그런 것은 홀대하고, 품질이 좋아도 임대료를 비싸게 부르고 또 리베이트까지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브랜드라도 절대로 좋은 자릴 내주지 않거든요.”

“으음.”

충영은 손님들로 줄을 서 있는 명품 매장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머! 사모님. 안녕하세요!”

지영이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하자 충영은 고개를 들고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여잘 보았다.

‘......!’

나이는 삼십 대 중반쯤 될까, 키가 170은 넘어 보이고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매에 얼굴도 조각 같이 예쁜 여자다.

‘우리 대한민국 서울에 예쁜 여자 진짜 많다니까...’

충영은 속으로 감탄하며 지영의 곁으로 가 섰다.

“참. 사모님. 소개시켜 드릴 게요.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우리 백화점 사장님이세요.”

지영이 충영을 여자에게 소개시키자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충영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머! 사장님이 바뀌셨어요?”

여자가 놀라 지영에게 묻자 지영이 대답한다.

“예. 이번에 대성 그룹 본사에서 특별히 모셔온 분이세요. 참, 이 복잡한 데서 이럴 게 아니라 vip실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하시면서 얘기하시면 안 될 까요? 제가 사모님께 특별히 부탁드릴 말씀도 있구요.”

지영의 말에 여자가 충영을 한 번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특별하게 할 일도 없는데 그렇게 할까?”

“예. 사모님. 저희랑 같이 가시죠.”

지영이 여자를 여왕 모시듯 하고 앞서 가자 충영은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어 아무 말 없이 여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영의 뒤를 따랐다.

몸이 부딪칠 듯 가까이 붙다 떨어지며 여자가 힐끗 그를 보았다.

“사장님. 굉장히 젊고 체격도 크시네.”

“예. 그런 말씀 자주 듣습니다. 사모님도 정말 미인이시네요. 보고 있으니 제 눈이 정화되는 느낌인데요?”

충영이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 말씀도 잘 하시네.”

6층 식당가에 자리 잡고 있는 vip룸에 도착하자 지영이 여자에게 자리를 권하고 물었다.

“사모님. 커피 좋아하시죠? 커피로 할 까요?”

“아니. 곧 점심때라 녹차로 하지.”

“예. 사장님은 뭘로 준비할 까요?”

“같은 걸로...”

“예. 알겠습니다. 잠깐만 얘기하고 계세요. 제가 가서 준비해 오겠습니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여자가 먼저 충영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전 사장님이 대성그룹 회장님의 처남이 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잘못 알았나요?”

“아닙니다. 사모님이 알고 계신 게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만 두시는 걸까?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 계통이 그 분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그 분도 이 일을 흡족해 하셨는데...”

“으음. 그럴 만한 내부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충영에게 웃으며 말한다.

“그 내부사정이란 걸 알면 안 되나요? 좀 궁금하네요. 그래서 사실 여기까지 따라온 건데.”

“아.”

충영은 이 여자에게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본부장이 상전 모시듯 하는 걸 보면 꽤 비중이 있는 여자 같긴 한데...’

그가 고민하고 있는 그때 마침 지영이 차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호호. 티백이라 좀 아쉽지만 질은 좋은 거라 마시기 괜찮을 거예요.”

지영이 차를 놓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여자가 자리를 뜨자 충영은 그녀가 자신에 대해 지영에게 설명 받을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비켜주는 거란 생각이 들어 지영에게 얼른 물었다.

“어떤 여자야? 우리 백화점 최고 vip인가?”

지영이 고개를 저었다.

“돈을 많이 써주는 고객은 아니에요. 하지만 남편이 kbs 보도국 부국장으로 그 방송국에서 권력이 아주 센 사람이죠. 그래서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여자예요.”

“음. 밉보여서 방송에 백화점이 안 좋게라도 나온다면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겠네.”

“설마 그렇게까진 안 하겠지만 아무튼 vip고객들 중에서 저 분의 영향력은 대단해요. 여기에서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고 또 남편이 사업이나 고위공직자들도 많죠. 그런데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언론이라 저 분에게 잘 보이려고 신경들 많이 써요.”

“음. 명 사장님이 관리하고 있지 않은 건가? 보니까 본부장하고 친한 것 같던데.”

“제가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분이 저 분이에요. 저 분이 명 사장하고 전 상무와는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 했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저 분이 우리 백화점만 다니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롯데백화점도 우리와 똑같은 비중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문제예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죠. 여기 사장하고 특별한 친분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쪽하고도 그다지 친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만약 저 분을 우리가 잡는다면 저 분하고 친한 롯데백화점 고객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반면 저 분이 롯데백화점으로 붙게 되면 우리 쪽 고객들을 다수 잃을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거죠.”

“으음.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여자란 말이군.”

“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그 동안 겪어온 경험으로 저분은 나이 든 남자들이 집적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도 보질 못했고... 그래도 사장님은 젊고 멋있으니까 한 번 친절하게 대시해 보세요. 만약 부담스러워 하면 저나 김영진 부사장님이 관리해도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뭐.”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여자가 다가왔다.

“사모님. 차가 다 식겠어요. 어서 드세요.”

지영이 녹차를 내밀자 여자가 잔을 들어 한 모금 삼켰다.

그때 지영이 충영에게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여기 사모님이 우리 백화점에 아주 중요한 고객님이세요. 그리고 사모님. 여기 사장님도 사모님이 알고 계시면 여러 가지로 좋으실 것 같아서 제가 인사시켜 드릴게요. 여기 사장님은 이번에 대성그룹 김동민 회장님의 큰 따님과 결혼하신 분이세요.”

“아!”

여자가 깜짝 놀라 충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얼마 전에 대성그룹 회장님이 큰 사위를 보셨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제가 얼굴 보게 될 줄 몰랐네요. 반가워요. 나 임미화라고 해요.”

“정충영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사장을 맡게 돼서 부족한 게 많습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호호.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지영이 임미화의 말을 받았다.

“호호. 우리 사모님이 겸손의 말씀을 하고 계시네요. 사모님의 부군되시는 분이 방송국 보도국에서 부국장으로 일하고 계시는데 그 파워가 엄청 강해서 부국장님 말씀 한 마디면 산도 움직인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어요.”

“호호. 무슨...”

충영이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하하. 저는 그것보다 사모님의 얼굴이 더 놀랍네요. 서울에 예쁜 여자들이 많다고 해도 사모님처럼 아름다운 분은 제가 이제껏 본 적이 없습니다.”

“호호. 아부도 잘 하신다. 뭐 그래도 듣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

지영이 또 끼어들었다.

“우리 사모님이 이래봬도 15년 전에 미스코리아에 나가 선에 당선되신 분이세요.”

“아! 어쩐지. 이제 이해가 되네. 15년 전이라고? 그럼 중학교 때 미스코리아에 나가셨다는 말인가요?”

충영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묻자 미화가 그에게 말했다.

“내 나이가 얼마 정도로 보이는 데요?”

“제 아내가 스물여덟인데 딱 그 정도로 보이십니다.”

“어머. 설마 그럴 리가...”

미화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얼굴엔 미소가 걷히질 않는다.

“정말인데요? 오히려 제 아내보다 더 젊어보이세요. 물론 제 아내가 미국생활을 오래 해서 나이보다 조금 더 들어 보이긴 하지만요.”

“호호. 어디 가도 사람들이 내 나이로 보진 않지만 그래도 이십 대는 좀 너무 했다.

미화가 얼굴을 활짝 펴고 웃자 그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던 지영이 자신은 자리를 비켜주는 게 낫다고 판단해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매장에 일이 많아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사장님은 사모남하고 좀 더 얘기 나누고 오세요.”

“그럴까요? 본부장 먼저 들어가 봐요.”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영을 먼저 보내는데 미화도 싫지 않은지 지영의 인사를 받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래요. 다음에 또 봐요.”

손까지 흔들며 지영을 배웅하는 미화에게 충영이 물었다.

“궁금한데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뭘요?”

“사모님 나이요.”

“본부장이 말 안 해줬나?”

“예.”

“호호 너무 나이가 많아서 말하기 싫은데...”

미화가 잠시 망설이다 충영을 보며 말했다.

“38살이에요. 좀 많죠?”

“정말요? 진짜 안 믿겨 지네요. 저하고 동갑이신데요?”

“에에? 무슨...”

말을 하려다 미화가 뭔가 깨닫고 배시시 웃으며 다시 묻는다.

“띠동갑?”

“하하. 예.”

“그럼 사장님은 스물여섯?”

“예.”

“한참 좋을 때다. 나도 사장님처럼 젊을 때가 있었는데...”

“빈 말 아니구요, 사모님은 지금도 저랑 나이 차가 안 나 보여요.”

미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보았다.

“좋게 봐줘서 고마운데 그래도 실제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죠.”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사모님은 몸매도 관리를 아주 잘하시나 봐요. 얼굴만이 아니라 몸매도 이십 대 여자보다 더 우월하시네요.”

“호호. 날마다 수영하고 헬스로 관리를 한 덕분이죠 뭐. 참. 정 사장님은 수영 잘 하세요?”

“제 전공이 체육이라 운동은 뭐든 조금씩 할 줄 압니다. 수영도 접영까지 다 배워두긴 했지만 평소에 즐겨하는 운동이 아니라서 아주 잘하지는 못 합니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 한 번 놀러 와요. 우리 회원들 주로 롯데백화점 많이 다니는데 사장님이 방문해서 식사라도 한 번 쏘면 혹시 알아요? 거래처 바꾸게 될지.”

“사모님이 자리 한 번 마련해 주시겠습니까?”

충영이 반색하며 묻자 미화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정도는 내가 해 줄 수 있지.”

“그럼 부탁 한 번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시간이 언제가 좋을까?”

“저야 아무 때나 다 좋습니다. 지금은 명 사장님하고 인수인계하는 중이라서 시간이 여유가 있으니까 언제든지 불러만 주시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럼 내일 와요.”

“예. 감사합니다.”

충영이 활짝 웃자 미화가 그를 보며 말했다.

“말을 많이 했더니 이제 배가 좀 고프네.”

“참. 식사하실 때가 됐죠? 사모님.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시면 제가 오늘 모시겠습니다.”

충영의 말에 미화가 그를 보며 웃었다.

“사실 쌀국수가 먹고 싶어 여기 온 거예요. 여기 쌀국수가 맛있거든요.”

“예. 저도 식사해야하니까 같이 가시죠.”

“호호. 그럴 까요? 젊은 사장님이 싹싹하고 친절하니까 참 마음에 드네.”

“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왠지 사모님이 친 누님처럼 생각이 들고 대하기가 편하네요.”

“호호. 그럼 앞으로 사석에선 누님이라고 불러요.”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충영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보자 미화도 그런 그가 싫지 않은 듯 시종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약속한 11시 정각에 충영은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고 몸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충영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더욱 곧게 폈다.

사춘기를 막 지나 순진했을 때는 수영장에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아랫도리에 쏠리는 게 거북스러워서 가기가 싫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건 큰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또 근육질의 잘 빠진 몸매를 자랑할 수 있어 즐기는 심정으로까지 바뀌게 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미화를 찾던 충영은 풀 한 가운데서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저 여자 같은데?’

자유영으로 수영을 하다 턴을 하는 순간 평영으로 바꿔 여유 있게 물살을 가르는데 긴 다리며 몸매가 어제 본 미화가 분명해 보였다.

평영을 하며 물위로 솟구치던 그녀가 충영의 얼굴을 보더니 한 손을 높이 들었다.

미화가 맞는 것을 확인한 충영이 손을 흔들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 바퀴 도는 것을 마치고 미화가 손을 내밀자 충영이 그녀의 손을 잡아 물 밖으로 끌어냈다.

“어후. 힘 좋다.”

그의 힘에 끌려 가볍게 물 밖으로 나오자 미화가 감탄하며 그의 몸을 보았다.

‘......!’

처음 상체를 보면서 감탄하던 그녀의 눈이 하체에 가서 머무르는 순간 얼굴표정이 굳어졌다. 한 눈에 보기에도 대단한 것이 안에 숨어 있음직한 부피와 질량감이 그녀의 얼굴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하. 누님. 수영 정말 잘 하시네. 선수 뺨치는 데요?”

충영이 말을 건네자 그제야 미화가 시선을 위로 올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방금 온 거야?”

“예. 이 동네에 이렇게 훌륭한 수영장이 있었네요.”

충영이 주위를 둘러보는 틈을 타서 미화가 얼른 그의 아랫도리를 다시 훔쳐본다.

다시 보니 더욱 무게감이 느껴지는 게, 수영복이 미어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있어 미화는 속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대체 얼마나 크면 이렇게 될 수가 있지?’

순간 궁금증이 가슴 속까지 확 치밀어 오르는데 생각 같아서는 한 번만 볼 수 없겠냐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어머! 언니. 누구야?”

그때 곁에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충영이 보니 늘씬한 삼십 대 초반의 여자가 말은 미화에게 하면서도 눈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미화가 여자에게 말했다.

“응. 내가 말했잖아? 오늘 대성백화점 사장이 식사대접 하기로 했다고. 이 분이 바로 대성백화점 사장님이셔.”

“어라? 이렇게 젊은 분이 사장님이라고? 나보다 훨씬 젊은 것 같은데. 아무튼 언니. 둘이서 그렇게 있으니까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이다. 두 분 다 몸매가 아주 환상적이야.”

“후후. 내가 좀 딸리는 것 같은데? 이제까지 키가 작다는 생각은 않고 살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내 키가 작은 느낌이 든다. 이 동생이 워낙 커서 말이야.”

미화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동생? 벌써 동생이라 부르는 거야? 부럽다. 저렇게 건강하고 잘 생긴 동생 둬서.”

충영이 쑥스럽게 웃자 미화가 그에게 여자를 소개시켰다.

“잘 아는 동생이야. 이름은 정영숙. 이쪽은 아까 말했듯이 대성백화점 사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정충영이라고 합니다.”

“정말 체격이 좋으시다. 아줌마들이 뿅가게 생기셨네.”

여자가 눈웃음을 치며 말하자 충영이 가볍게 대꾸했다.

“하하. 그래서 제 별명이 헐크입니다.”

“아아. 헐크. 호호. 별명이 딱 어울린다.”

영숙이 잡아먹을 듯 충영을 바라보자 미화는 왠지 기분이 상해 충영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같이 수영이나 하지? 나랑 시합 한 번 할까?”

미화가 여자 앞에서 더욱 다정하게 굴자 충영도 그녀와 보조를 맞췄다.

“예. 그런데 아까 보니까 누님 실력이 너무 좋아서 내가 밀릴 것 같은데요.”

“호호. 정 사장은 남자잖아?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세니까 비등할 거야.”

“좋습니다.”

충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화가 그의 손을 잡고 풀로 뛰어들었다. 순간, 충영은 영숙에게 목례로 눈인사를 한 뒤 미화와 함께 물로 뛰어들었다.

“한 바퀴 돌고 오는 걸로 하지.”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충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미화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우리 내기 할까?”

“무슨 내기요?”

“응. 당장 생각나는 건 없으니까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부탁 한 가지 들어주기. 어때?”

“무리한 부탁입니까? 이거 내가 질 게 뻔한 시합 같은데, 좀 무섭네요.”

“호호. 엄살은. 내가 이기더라도 정 사장이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부탁은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저는 이기면 무리한 부탁 할지도 모르는데...”

충영이 일부러 여운을 깔고 말하자 미화가 그의 눈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기에 지면 할 수 없이 들어줘야지.”

“와우. 화통하시네.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할 까요? 자유영, 아니면 평영? 아니면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종목으로 하기?”

충영이 묻자 미화가 대답한다.

“난 평영으로 하고 싶은데. 평영이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거든.”

“전 평영은 잘 못하고 자유영이 좋은데.”

“그럼 두 번 하지. 한 번은 평영, 또 한 번은 자유영.”

“좋습니다.”

충영이 시원하게 말한 뒤 레인에 가 섰다.

“먼저 평영으로...”

미화가 말한 뒤 물안경을 착용했다.

충영도 물안경을 쓰고 준비자세를 취했다.

“출발!”

미화가 소리치며 물로 뛰어들자 충영도 그녀의 뒤를 따라 물살을 가르며 헤엄쳤다.

미화의 몸이 유연하게 앞서나가자 충영은 그녀의 뒤를 추격했다.

하지만 그녀의 평영 실력은 대단히 뛰어나서 맞은 편 레인에 도착할 때까지 상당히 추월당해 충영은 이 게임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물론 져 줄 마음도 있었지만 이대로 무기력하게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생기자 충영은 턴을 하고 나서 최대한 힘을 주고 그녀를 추격해갔다.

촤아- 촤아-

물살을 가르며 충영의 몸이 급속하게 앞으로 나가자 미화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여유 있게 앞서 나가며 뒤를 돌아보던 미화는 충영이 바짝 따라붙자 다급한 표정으로 재빨리 다리를 차며 속도를 높였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내 뱉으며 충영이 끝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미화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끝이 나서 첫 판은 미화의 승리였다.

“이거 두 번째 판은 만만치 않겠는데?”

막판에 꽤 힘을 썼는지 미화가 가슴을 볼록이며 말하자 충영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난 믿을 게 힘밖에 없는데 누님 힘 빠졌을 때 빨리 시작해야겠네요. 자. 준비하시죠.”

충영이 레인에 서자 미화가 웃으며 그의 옆 레인에 섰다.

“자. 이번엔 자유영입니다. 출발!”

충영이 이번엔 신호를 넣고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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