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미안해요”
그녀의 고운 입에서 도끼로 내려치는 듯한 냉정한 말이 흘러 나왔다. 게다가 말투는 정중하고 얼굴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눈에는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 그렇다. 너 따위가 감히 나한테 사랑을 고백하느냐는 식의 한심하다는 눈초리... 물론 그녀는 무림 최고 미인으로 추앙받는 5봉 중 으뜸인 화봉 상관소혜, 나는 무림의 평범한 후기지수일 뿐이지만 비참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다시금 들려오는 그 소리를 뒤로하며 나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객잔을 빠져 나가려 했다.
“감히 별호도 없는 것이 어디서 화봉 언니를!” - 이것은 성격 나쁘기로 유명한 독봉 당령의 말.
“그러게 무공도 별 것 없어 보이는구먼.” - 무공광인 혈봉 철혜미이다.
“좌우간 저런 날파리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데...” - 황실의 일원인 금봉 주금화.
“그래도 불쌍한데 심한 소리를 하면 안 되지요.” - 제일 경멸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던 의봉 악소희.
“이제 익숙한 상황이니 걱정하지 마렴.”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화봉의 말을 뒤로하며 객잔을 나올 때 비참함보다는 웬지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른 체 남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을 뒤로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화봉을 비롯한 5봉에게 모욕을 당한 채 근처 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무명소졸 이사는 이상하게도 점차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어디론가 끌려가듯이 자꾸만 깊은 산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갔을 때, 한 동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분한가?’
동굴 안에서 머리 속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합니다. 그년들을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합니다.”
이사는 갑자기 솟구치는 화를 못 이겨 소리쳤다.
‘힘을 원하는가?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원하는가?’
“원합니다. 무엇을 바쳐서라도 얻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각오를 다지고 동굴 안으로 들어오라.’
이사는 그렇게 한참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지칠 만큼 걸었을 때, 한 무더기의 유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유골 안에는 검은색의 둥근 구슬이 놓여 있었다. 이사는 그 구슬을 보자 더욱더 분노가 솟구쳤다.
‘힘을 원하는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네 앞에 있는 구슬을 이마에 박아 넣어라!’
이사는 잠시 멈칫거렸으나 곧 5봉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구슬을 들고 이마쪽으로 가져갔다. 신기하게도 구슬은 이마에 닿자 서서히 녹아 없어지며 이마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구슬이 모두다 사라지자 검은 기운이 이사를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생각보다 빨리 멍청한 놈이 걸려들었군. 후후. 세상에는 힘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의외로 많다니까. 으하하하하!”
검은 기운이 사라진 후 나타난 이사의 입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내용의 말이 흘러나왔다. 사실 그 구슬은 천 년 전의 마인 음란혈마의 사념체였다. 말년에 그는 사람의 이지와 신체를 자유자제로 조정할 수 있는 마공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것을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스스로를 사념체로 만들어 그 사악한 마공을 계속해서 연공해 왔었다. 마침내 천 년의 시간 끝에 마공을 완성시킨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숙주가 될 대상을 물색했는데 고작 삼일만에 이사가 거기에 걸려든 것이다.
“그러나 본좌의 강호 재출두에 거름이 된 만큼 네놈의 소원은 이루어주지. 그 5봉이란 년들은 결국 내 자지를 핥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별호도 없이 이름만 이사라니 참 한심한 놈이군. 후후. 지금부터는 호화서생 이세영이 본좌의 이름이다.”
바야흐로 희대의 색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