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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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뭐라는거야. 아, 대충 넌 사장이 나보고 너랑 2차 가라는데 왜 안  가냐고 하는 것 같았다'

업소에서 마련해 준 승용차로 호텔방에 갔다. 아가씨가 먼저 샤워하고 나왔다.

난 알 수 없는 가학성이 생겼다.  늘씬한 몸이 거의 마네킹 수준같았다.

- 완췐 투오 이푸 바 (다 벗어봐!)

- 니 쯔지 티아오 우 바 (너 혼자 춤춰봐!!)

호텔 방에서 다 벗고 육중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가진... 매끈한 미녀가 춤을 추니...

내 잦이가 마치 괴성으로 울부짖듯 저절로 선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리 술이 떡이 되도... 은실이를 두고 차마 다른 유흥년의 봇이를 빨 수는 없었다.

난 적당히 뒷봇이를 약올리다가... 뒷치기로 들어갔다.

퍽! 퍽! 퍽! 퍽! 퍽! 퍽!!

“하악! 아, 하, 으응, 하앗!”

오호라...떡칠 때 사운드는 만국 공용이구나...

어떨 때는 공안들의 단속이 심하다고 해서 호텔이 위험하다고 해서 내가 사는 숙소로 여자를 데리고 왔다.

격정의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이 공허했다.

침대 밑에 버려진... 내 정액이 묻은 콘돔과 휴지쓰레기는... 마치 망가져 가는 내 젊은 날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사랑없는 섹스는 공허하고... 애정없는 보빨을 그저 불결할 뿐이다.

섹스를 끝내고... 시커먼 수풀 봊이를 벌리고 침대에 나자빠져 자는 뇬들을 보면.... 난 빨리 가라고 했다.

그 누구도 은실이와의 섹스 후처럼.... 따스하게 안고 보듬고 싶은 뇬들은 없었다.

그냥 꽉찬 내 정액을 정기적으로 쏟아낼 배설구 일 뿐이다.

그런 뇬들 중에는 나에게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나한테 안겨오면서 떡 한번 더 치자는 애들도 종종 있었다.

-니 쓰 워더 라오꽁...워 쓰 니더 라오푸..(당신의 나의 남편이고..난 당신의 아내에요.)

-왓 더 뻑킹! 미친 뇬아! 네가 왜 내 마누라야!!  콰이 콰이 회이쟈바! (빨리  집에 가라!)

법인장의 일과 후 비서 노릇을 하면서 유흥을 탐닉한 것은 반드시 내가 유흥을 좋아해서 만은 아니다.

난 무언가 잊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슬픈 실루렛....맞다. 난 미칠듯이 은실이를 잊고 싶었다.

잊고 싶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길을 가다가도 은실이 비슷한 여자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었다.  KTV 아가씨 중에서도 일부러 은실이 비슷하게 생긴 

여자들을 골라 앉혔다. 그럴 때면 오히려 더 허무감이 몰려왔다.

한국에서 벤처거품이 끊기면서 점점 지원도 줄었다. 현지에서 수익모델을 창출하지 못한 자생력 없는  IT 업체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중국에서 철수했다. 

상해 방송국 관련 계통으로 하스스톤 모바일같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팔았지만 대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법인장과 영업장이 접대만 받고 당했다. 거덜 직전이다.

어느 날 출장 온 대표가 법인장, 영업팀장 면담 겸 저녁 식사 후... 나를 밤에 몰래 불러냈다.

- 김대리, 중국 법인은 어떻게 될 것 같아?

-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부터 청산 준비해야 합니다.

-음...법인장은 그래도 내년까지는 괜찮을거라는데.

-아닙니다. 제 말 믿으십시오. 한국에 지원 없이는 내년에는 도저히 가망없습니다. 그 매출은 받을 수 있는 채권이 아닙니다.

-연말부터는 분명히 한국에서 지원이 힘들 꺼야. 지금 한국에도 자금이 없어.

-그럼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법인장에게 말하지 말고 당신이 서서히 청산 준비해 줘요. 지금은 힘들지만... 김대리 내가 꼭 챙길거야.

내 동생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내 약속 지킬 게.

중국에 진출한 법인들은 회계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를 속이려고 분식회계를 하거나 본사에 허위보고를 해도

잘 알 수가 없다. 눈먼 투자자들을 속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중국기자들 돈 주고 불러모아 삐까뻔쩍한 원탁테이블에서.... 양해각서니 뭐니 체결하는 그럴듯한 장면만 연출해 

중국 포털 사이트에 올려놓으면 된다. 중국에서는 돈만 주면 기자들이 기사써주고 포털 중간 브로커들도 협조했다.

그걸 또 한국의 경제신문 기자들에게 보도자료 내면서 허풍을 떨었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대부분 IT 인터넷 기업들은 언젠가 쓰러질  수 밖에 없는 두발 자전거 같았다. 

그저 물먹는 하마 같았고 열매가 없었다.

듣기로는 본사의 CFO는... 더는 외부에서 투자가 이뤄지질 앉자...양아치 기업 사냥꾼들을 끌어들인것 같았다.

사채를 끌어들여서... 다 쓰러져가는 상장업체 하나 인수해서....허위공시 남발하고.... 

주가 뻥튀기 한 다음에 먹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껍데기뿐인 중국법인도... 나중에는 주로 그런 용도로 쓰였다. 

중국에서의 3년은 내 인생의 흑역사 3년이다.  나는 3년 동안 난 조금씩 망가져갔다. 

사랑도 잃고...내 첫 직장도 쓰러져갔다. 

CFO와 기업사냥꾼 건달들에게 뒷통수 맞은 대표는 구속되었고 ...회사는 헐값에 인수되어 사그러져 갔다.

세상 물정 모르는 많은 젊은 벤처 CEO들이 그렇게 당했다.

중국법인도 저마다 침몰하는 난파선에에 뛰어내리는 사람들처럼 아우성치며 사표를 썼고..

나는 대표의 간곡한 부탁으로 본사의 데미지를 최소화하면 차분히 회사를 청산해 갔다.

흥청망청 회삿돈을 쓰고 다니던 법인장은 이미 한국으로 발랐고.. 어떤 조선족 직원은 내 앞에서 욕을 하고 회사를 나갔다.

- 한국 본사로 보내주고.... 월급도 올려주고.... 키워준다더니...당신들 한국인들 너무 합니다!

내가 미안했다.  그것은 죄다 법인장이 남발한 립서비스였다. 

어떤 회사 법인장 개새끼는 마누라랑 이혼할거 라며 예쁘장한 여자직원에게  추근거려서 따 먹고 돈으로 합의 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한테 해꼬지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난 중국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잘 대해서 줘서 그런지 인심은 잃지 않앗다.

내가 책임질 위치도 아니고... 당시는 워낙 이런 회사들이 많아서.. 중국 공안도 형사적인 부분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렇게 내 젊은 날은 비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월급은 밀린 지 오래고... 숙소로 쓰던 아파트에서 보증금 까먹고.... 다시 싸구려 단칸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방세 마저 낼 돈도 없었다. 난 무일푼이었다. 하스스톤 모바일 결제할 돈도 없었다.

그나마 모아둔 돈도 주갤럼 같은 놈에 속아 어느 벤처회사에 투자했다가 깡통찼다.

차마 중국에서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믿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기가 싫었다.

중국에서 소주는 꽤 비싸다. 나는 값싸고 독한 고량주를 사서... 신문지 깔고 마른 명태를 찢어가며..

매일 밤 혼자 들이켰다. 눈물이 났다.

그때 갑자기 다가온 천사처럼 ..은실이가 생각났다.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오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씩 꺼내 읽어'

공항에서 은실이가 한 말이 갑자기 기억에 났다. 난 정신없이 내 짐 보따리 구석에 은실이 편지를 꺼내 읽었다.

<오빠, 그거 알아?  난 오빠 진짜 믿는다. 오빠 선한 눈빛을 보면 알 수가 있어. 오빠의 눈빛은 거짓말을 못 하거든.  

오빠가 나를 아주 잊지만 않는다면... 오빠는 언젠가 내게 돌아올 거야. 거짓말 같지? 어디 두고봐...내 말이 맞을 거야...

오빠, 제발..부탁이야. 제발... 나 잊지만 말아줘. 그럼 돼...>

편지를 읽으면서 신문지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은실아, 중국에서 망가진 3년 동안..나는... 나는 한번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난 정말 약속 지켰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난 힘든거냐. 나 지금 벌 받는 거니...(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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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팠던 제 젊은 날의 고백이 이제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네요.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나네요. 

마지막으로 힘을 내고 아내와 주말에 일산 호수공원에 가고싶어요 ㅠㅠ

한국을 떠난 지 3년 만에 나는 회사에서 나와 완전히 중국대륙의 떠돌이 캐뷁수로 전락했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회사들이 많이 망해서 공중에 붕 떠버린 나 같은 가엾은 청춘들이 엄청 많았다. 

이 꼴로 한국에는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기도 싫었다.

난 거의 절망상태였다. 매일 5분에 한 번씩 정말 했다. 하스스톤 모바일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상해에서 잠깐 술자리에서 어울리던 50대 양사장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어이, 김대리,  젊은 사람이 힘을 내. 당신 성실한 거 내 알아. 우리 회사에 와서 나 좀 도와줘.

말이라도 고마웠다. 본사는 중국 광저우에 있는 물류회사라고 했다. 알고보니 조그만 따이공 - 즉 보따리 운반책 회사였다.

알고보니 양사장은 거의 캐양치급이였다.

한국돈 월 100만 원도 안되는 저임금으로 날 그 더운 지방에서 관리직을 빙자한  노가다로 부려먹었다.

80년대 한국 철제책상이 있는 낡은 사무실과 곰팡이 팍팍 낀 쪽방을 숙소로 배정받고 나는 거의 하루 12시간씩 고되게 일했다.

딱히 방법도 탈출구도 없었다. 난 갈 데도 없고 그 돈도 아쉬웠다. 

북경과 상해에서 삐까번쩍하던 가라오케에서 놀던 나는... 가끔 광저우 변두리 노래방에서 나이 먹은 중국 도우미들 젖가슴 주무르며 어울렸다.

그 아줌마들은 한국 돈 1만원 정도가 팁이었고 3만원 주면 몸도 대줬다.

그 전까지는 재형이와 간간히 연락을 했다. 재형이를 통해서 은실이 소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실이 또한 내 소식을 듣기 위해서 재형이와 부지런히 접촉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1년 전 얘기다. 그나마 광저우로 간 후에는 가족 외에는 일절 소식을 끊었다. 내 자신이 비참하고 초라했다.

세월은 참 속절없이 흐르는구나.

광저우로 온 지 또 어영부영 2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난 얼굴도 많이 탔다. 저임에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었다.

게을러졌고 무언가 그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4월 어느 날은 내 생일이었다.  내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은실이 밖에 없을 것이다.

혼자라서 쓸쓸했다.  마침 토욜이라서 점심부터 반주로 술 마시고.. 곰팡이 퀘퀘 묵은 냄새나는 낡은 숙소에서 난 땀을 뻘뻘 흘리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미 지쳤고 몸도 많이 쇠약해졌다.

누구 다 세상을 살다보면 한번씩 신기한 일을 겪는다. 그건 우연일 수도.. 필연일 수도 있다. 그 날의 내 꿈이 바로 그랬다.

그 날 자면서 열이 좀 났다. 그래서 헛 것을 본 건지..아니면 꿈을 꾼 건지.....

꿈에서 <빨간 당나귀>인지  <장미의숲>인지...어느 술집에서 내가 은실이랑 바짝 붙어서 즐겁게 웃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는 흰 얼굴의 은실이는 늘 사랑스럽고 나는 참 행복했다.

갑자기 주방에서 엄한 표정의 소피이모가 나타났다. 바지부터 상의까지 죄다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소피 이모는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걸 알기에 얼른 나와 은실이는 떨어졌다.

그런데 소피 이모가 나를 말없이 쳐다보더니 내 손을 가만히 잡고 은실이 손 위로 얹었다.

-어? 이모?

소피이모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가게 문 밖으로 나갔다.

- 엄마, 어디가?

- 이모, 어디가요?'

우린 동시에 외쳤다. 이모는 마치 산보 나가는 사람처럼 가볍게 문 밖으로 사라졌다. 다리 부분이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소피 이모는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 온 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

은실이와 소피이모를 본 것은 너무 반가웠지만 기묘한 꿈이었다. 

다음 날 이멜이 한 통 와 있었다.

<김대리, 어떻게 지내요...> 로 시작하는 전 대표의 편지였다. 횡령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전 대표님은 재기해서

강남에 소재한 게임회사의 임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입사조건으로 몇몇 옛날 동료들을 동반 입사시키기로 했단다. 나보고 중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같이 가자고 했다. 

보직은 관리직 과장으로 염두해두고 있다고도 했다. 참 고마웠다.

나를 동생처럼 아껴주셨던 대표님은 내가 중국 법인을 청산할 때... '약속을 지킨다'고 했고 그 약속을 정확히 이행했다.

북경과 상해에서 3년, 저임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고생하던 광저우에서 2년...나 역시 중국살이에 외롭고 지쳐갈 무렵이었다.

난 그간 이성을 아주 안 사귄 것은 아니다. 중간에 유학생 출신 여성과 교제를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김치뇬 근성으로 인한 경제적 갈등으로 헤어졌다. 중국에선 한국 보다 더 돈이 필요했다. 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월급 타면 노래방이나 다니며 아예 별 생각없는 주갤의 통닭처럼 살았다. 마침 어머니도 편찮으시다고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거역할 수 없는 새로운 흐름은 다시 나의 귀국을 종용하고 있었다.

200X년 늦여름,  나는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사랑하던 은실이를 버리고, 가족을 두고 한국을 떠난 지 5년 만이었다.

공항에서 편찮은 몸을 이끌고 나오신 어머니도 우시고... 아버지도 눈물을 글썽이셨다.  

중국 간 지 첫 1년만  명절 때 후다닥 한국을 다녀갔으니 4년만이었다.

"아이고, 이놈아, 얼굴이 이게 뭐야."

오랜만에 더 늙으신 것 같은 부모님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부모님은 이제 번듯한 직장 얻었고.. 나이도 있고하니...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서두르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5년 동안 단돈 1원도 저축 못한 나를 탓하지 않으셨다. 탕자를 따뜻하게 반기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만 그래도 변두리 연립주택 전세자금 얻을 정도는 마련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고보니 내 나이도 이미 30대 중반이었다.

모든 게 원점이었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고마우신 대표님이 이끌어줘서...강남의 하스스톤 모바일 같은 게임을 만드는 비슷한 회사에 출근하지 두어 달 되는 어느 날이었다. 

도시에는 벌써 이른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주변 정리도 다 되어 주말에 나는 모처럼 재형이를 만나러 갔다.

재형이는 우리 동네와 의정부 건물을 팔고 서대문 어느 지역 번화가 10층짜리 건물을 매입해서 떵떵거리면 살고 있었다.

재형이는 나를 보더니 반가와서 어쩔 줄 몰라했다. 우린 반갑게 포옹했다.

- 야, 윤환아,  임마. 너 어찌 사람이 그렇게 긴 세월동안 연락이 없냐.

- 미안하다. 내가 중국에서 평지풍파를 겪었어.

- 임마, 나 결혼도 했어. 딸도 있다. 여보, 인사해..

재형이는 하필 연락이 끊긴 지난 2년 안에 결혼을 한 것이다. 혹시....

애기 얼굴 부터 살펴 보니 전혀 은실이 얼굴이 안보였다.  아니구나..

우린 동네 꼼장어 집에서 4년 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 중국에서 고생 많았지? 윤환아. 너 할 일 없으면 우리 건물관리회사로 들어와 나 좀 도와줘라. 

- 아냐, 나 지금 전에 사장님이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해.

- 거 잘 되었네. 할튼 언젠든지 말해라. 주위에 믿을 놈이 없더라구. 너 중개사 자격증도 있잖아.

우린 반가운 마음에 소줏잔을 주거니 받거니 금새 취했다. 재형이는 살도 두툼하게 찌고 완전히 건물주 행색이 풍겼다.

재형이 아내도 두툼하니 재형이를 많이 빼닮았다. 

둘다 술이 얼큰하게 올랐다.

- 너 임마,  그렇게 연락도 없고....우리 그런 사이냐? 사람이 어찌 그리 차갑냐..

- 짜샤, 넌 아직도 하스스톤 모바일 좋아하냐...

재형이는 반가운지 술 기운인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어릴 때 부터 한 동네에 자라 청소년 방황기를 거쳐 재수생활도 함께 했었던 재형이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마음이 짠했다.

소박한 꼼장어집  앞에는 이름 모를 가을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 꽃을 보니 조용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하얀 얼굴에 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있었다. 언제나 내게 힘이 되었던 그 얼굴....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리는 포근한 함박눈 처럼 설레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잊어번 적이 없는 이름이 있었다.....

공항에서 아련하게 손을 흔드는 갈색 빛깔 머리의 한 여자가 있었다.....

내가 차마 먼저 물어볼 수는 없었다. 20대 초반의 앳 됐던 은실이도 이미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으로 가는 나이일 거다.

그동안 결혼할 수도 있고...약혼자 있다거나.. 아니, 어쩌면 재형이가 아기 아빠가 되듯 귀여운 아기 엄마가 돼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잠자코 술만 들이켰다. 재형이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나는 그냥 그날 돌아가려고 했다. 마음이 아팠고 두려웠다.

- 아참, 너 소피 이모 소식은 전혀 모르지?

소피이모..난  얼굴이 달아오르고 조금씩 가슴이 뛰었다.

- 나야 모르지. 소피이모 잘 지내시지?

재형이가 담배 한 대를 깊게 빨더니 휴..하고 내쉬었다.

- 너 진짜 모르는구나. 야, 돌아가셨어. 임마.

이럴 수가...

- 아니.. 어...어떻게?

-올 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그 형님도 같이 돌아가셨어. 둘다 만취 음주 운전이었다고 하더라...

지난 청년 시절...반바지에 슬리퍼 질질 끌고 소피이모 호프집을 새벽에 가서 거들어 주고 둘이서 섹스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색욕을 참지 못하던 젊은 날의 20대의 욕정은 40대의 농염한 소피이모를 만나 불 붙었고....

우리는 두고 두고 후회할 위험한 불장난을 저질렀다.

그랬구나...나도 담배를 깊게 빨았다. 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탔다. 다시 소줏잔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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