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12/12)

-그럼 잠깐 가까운 찻집이라도 가자. 오랜 안 걸릴거야.

-오빠, 그럼 요 앞에 가다보면 20미터 거리에 지하 카페하나 있어. 거기 가 있어. 나 금방 갈게.

카페에서 혼자 기다리며....

난 하스스톤 모바일을 할까 하다가 그냥 눈을 감았다. 게임도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은실이는 눈 화장만 살짝 고치고 온 것 같았다.

그래, 술 마시면 감정이 과장된다. 맑은 정신으로 5년 동안 속에 담았던 얘기 털어놓고

빨리 집으로 가자.  집에 가서 울면서 하스스톤 모바일이나 하자.

난 사실 더 서 있을 힘...버틸 힘도 없었다. 아까부터 무너져 내린 마음으로 이미 몸의 평정도 잃은 것 같았다.

- 그래? 오빠가 나한테 할 말 있다는게 뭐야?

'은실이...너 많이 차가워졌구나. 내가 더 담담해야 한다.'

은실이 오른 손에 황금 빛 커플링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격동되었다. 흔들리지 말자,  좋은 모습 보이자.

-응...기억나니?.내가 5년 전에 중국으로 떠날 때 너한테 했던 약속.

은실이는 나를 쳐다보고 별 대답이 없었다.

-내가 너한테 약속한 거, 나 그거 지켰다고 말하고 싶었어. 두 가지 약속말야.

-약속? 오빠가 나한테 약속한게 뭔데..

그래,  이제 이 모든 게 너한테는 그다지 관심사가 아닐 수 있지.....

- 넌 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 그치만 꼭 말해주고 싶었어.

- 응, 오빠, 말해봐.

-응, 첫째는 나 아주 건강하게 잘 있다는 거. 지난 주에 건강 검진 받았는데 뭐 온 몸이 아주 튼튼하다더라....

-다행이네.

은실이가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 또 하나는?

- 내...내가 너 잊지 않기로 했잖아. 나 너 잊지 않았어. 나 중국으로 떠났지만 공항에서 너랑 헤어진 이후로 한 번도 너 잊은 적 없었어.

그 말...그 말은...그냥...꼭 해주고 싶었어.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떨리면 안돼..시발....

은실이가 가만히 알 수 없는 눈길로.....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다가 눈을 다시 내리깔더니

잔을 들어 모카 커피를 조용히 입에 댔다. 또 아무 말 없다....

그치, 이제 와서 이따위 그 시절 약속이 너한테 무슨 감흥과 감동을 주겠니.

어쩌면 기껏해야 네가 저녁에 만날 애인과의 술 안주거리일지도 모르지.

난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서고 싶었다. 섭섭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때,  불현듯 소피이모 얼굴이 떠올랐다. 여전히 내게 따스한 얼굴이다.

소피이모는 마치 나보고 침착하고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냥 일어설까 하다가..난 마지막으로..진짜 젖 먹던 힘을 다 내서....가까스로 용기를 냈다.

- 은실아, 그리고 이거 받아.

- 이게 뭐야?

내가 은실에게 종이 쇼핑백을 건냈다.

"은실아, 내가 중국 북경에서 회사를 나와 광저우로 가서부터 고생 좀 했다....힘들었고..술도 많이 마셔서

잘못하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겠더라. 그때 네 생각했다.

그때부터.... 너 보고 싶고....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썼다.

너처럼 내가 매일 쓰지는 못하고....워드로 친 거지만 ...그래도 너한테...언젠가 만나면.. 꼭 전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출력해 왔다...

나 어떨 땐 자포자기 하고 싶었는데... 네 생각하면서 용기냈다. 오빠가...너....너 ..아니었으며 진짜 무너질 뻔 했다.

별거 아냐.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 그래도 너한테 이 말은 해주고 싶었어.

네 얼굴보니까 건강하고 좋아 보이네. 너도 나한테 약속 했었어. 밥 잘 먹고 건강하겠다고....

그럼 너도 나한테 약속 지킨 거고....자, 그럼 됐다.. 이제 다 된 거야....."

이런 낯 뜨거운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놀랐다.

그때까지 태연하던 은실이의 표정에 조금씩 미동이 왔다. 고개가 숙여지고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우리 참 먼 길을 돌아 왔는데..또 이렇게 어긋나는구나...다시 먼 길 가야 하나 보다..'

지난 5 년간의 긴 폭풍의 여정이 끝났다. 마지막 비바람이 오늘 이 자리에서 그쳤다. 난 눈을 감았다.

눈시울은 뜨거워졌으나...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내 마음은 고요해졌다. 이제 가야 한다. 다 끝났다, 자, 일어서자.

신은 야속하지만...그런대로 내 운명을 잘 설계해줬다.

고맙습니다.. 은실이 이렇게 건강하고...또 좋은 남자 만났으니 저, 됐습니다. 저 바랄 것 없습니다.

저 불평하지 않습니다. 내 잔이 넘칩니다.

난 교회는 안 다니지만... 교회 권사인 엄마가 하던 말 생각하면서...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 오빠, 고마워..

은실이 목소리가 태연을 가장했지만..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안돼, 우리 제발 서로 울지 말자. 추한 꼴 보이지 말자. 꽃잎이 지듯....아름답게 마무리 하자.

언제가 서로 웃으며 볼 수 있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자.

- 은실아. 그럼 오빠 먼저 일어난다.  내가 계산할게.

"또 보자"...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언제 다시 보겠니.....

차라리 와이프가 은실이랑 친척인 재형이는 그래도 널 가끔  볼 수 있겠구나..

그때만큼은 재형이가 너무 부러웠다. 왜 금수저 물고 태어난 새끼가 이렇게 복도 많은 거야.

나는 그 옛날..그 시절 <빨간당나귀>에서 은실이가 뒤도 한 번 안보고 걸어 나갔던 것 처럼...

나 역시 성큼성큼 나갔다. 태연한 척...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밖으로 나온 난 당장 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발이 엇박자로 휘청거렸다. 도저히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다.

난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서 문을 닫는 동시에... 폭풍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어흐흑.. 어으..어으......

난 아주 대성통곡을 했다. 기사 아저씨가 힐끗 안됐다는 듯 쳐다봤다.

'잘했어, 윤환아,  은실이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아서 잘 했어. 너 잘 견뎠어. 울어. 이새캬.. 더 울어..

괜찮아. 실컷 울어.."

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핸드폰도 꺼버리고 계속 울었다,

아마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시발.. 으흐흑.. (계속)

-----------------------------------------------------------------

옛날 추억하니 쓰면서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진실된 기억을 더듬으려니 오래 걸립니다. 형님들...조금 쉬다가

오늘 마무리 지을께요. 개추좀 박아주세요.

난 하루 종일 울었다. 점심도... 저녁도 굶었다. 당연히 입맛도 없었다.

기도해 주신다는 어머니는 별 말씀이 없었다. 그냥 바라만보고 슬퍼하셨다.

난 불효자인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우리 어머니에게 그렇게 낙담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적이 없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가족 앞에서 그저 씨익 웃었던 나다.

새벽에 다시 일어나 동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주 2병을 사왔다. 라면 끓일 힘도 없었다.

밤새 울면서 그냥 컵라면 국물에 소주 까다가 잠들었다.

담날도 난 그냥 방에서 시체처럼 하루종일 처잤다. 하스스톤 모바일하다가... 자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차라리 그냥 중국에 남아 있을 걸...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또 외국으로 나가자.. 나 정말..이 땅에서 못살겠다...시발..

나한테 뭔가 안 맞는거다. 내 팔자가 그런가 보다.

나 또 중국 지원해서 갈거야...어디 처박혀 하스스톤 모바일이나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거야. 시발...엉엉..설움이 북받쳤다.

종일 핸드폰을 꺼놨다가 저녁 6시나 되서 혹시나 해서 켜봤다. 응? 부재중 전화 수십 통과 문자가 와 있었다.

<오빠, 나 은실이야. 핸드폰 꺼져있네. 왜 전화를 안받아? 나 빨간당나귀에서 기다릴테니 메시지 보면 그리로 와요.

늦게라도요..기다릴게요.>

이제 와서 은실이가..날  왜?

아, 그치.... 너도 나한테 못 다한 말이 있을 수 있지. 담담히 들어주자. 그리고 좀 더 대범하게 은실이 축복해주자.

난 급히 샤워을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빨간당나귀>는 우리 동네라 당연히 가까웠다

은실이가 혼자 BAR 구석에서 창밖을 보며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어제보다 눈화장을 더 진하게 한 것 같았다.

멀리서도 꽉찬 B컵 가슴은... 어디에서나 존재감을 발하듯 돋보였다.

얘가...오후 1시부터 왔으면... 거진 5시간 넘게 기다린 건데...

나한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라도 은실 얼굴 더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제 못 볼 텐데 은실이 얼굴 실컷 눈으로 캡쳐라도 해두자...그리운 얼굴로 남겨두자..

-오빠 하루만에 대체 얼굴이 왜 그래?

아팠어...아주 많이...너 지금 나한테 정말..몰라서 묻는거니..

-응. 그냥 잠을 많이 못 자서..

-오빠 또 밤새 하스스톤 모바일 게임했구나.

잠시 말이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오빠야...나 좀 봐요.

은실이 표정도 목소리도 어제보다 한결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내 어제 밤새도록 오빠가 쓴 편지 다 읽었어. 오빠도 내 생각 참 많이 했구나?

- ......

-오빠가 나한테 모질게 대했지만 ...오빤... 그걸로...다 갚은 거야. 나 오빠 다 용서했어.

- ........

가만히 살펴보니 은실이도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눈화장을 진하게 하고 온 것 같았다.

- 재형이 오빠한테 오빠 귀국했다는 얘기 전에 들었어. 그래서 오빠 오기만을 까마득히 기다리고 있었어.

빨리 올 줄 알았는데...내..내가 어..얼마나 기다렸는데...왜 그리 늦었어...

- 응, 미안해..정리할 게 좀 있어서..

-오빠는 그래, 중국까지 가서 뭐했어? 이쁜 중국 여자들 놔두고... 여자도 못 사귀고... 돈도 못 벌고...

은실이가 약간 장난끼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응. 조금 힘들게 살았어. 일이 잘 안 풀려서...

내가 풀이 죽어 대답했다. 얘는 지금 나 약올리려고 불렀나...정 떼려나 보다.

하긴..가끔 분위기 파악 못하고 엉뚱한 얘기 하는 게 은실이 버릇이기도 했다.

-거봐. 오빠 나랑 떨어지고 잘 되는 일이 있는 줄 알았어?

- ......

난 대답할 말도 없고 해서 그냥 유리컵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오빠야, 손 이리 내봐.

-응?

은실이가 품 안에서 반지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내 손을 잡더니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어제 본 그 황금 커플링이었다.

어어엇..!!! 뭐..뭐얏????!!!!!!

이거 뭐하는 시츄에이션이지....!!!!!!

- 은실아...너...이거..지금.. 뭐..뭐하는 거야?

- 뭐하긴..내가 오빠한테 커플링 끼워주는 게 오빤 이상해?

- 너 남자친구 있는 거 아니었어?

- 남자친구는 무슨... 내가 언제 남친 있다고 했어?

-으...응?

-나 오빠 기다리면서... 예전 백금 커플링 끼고 다녔는데...그 백금 커플링은 볼 때마다 내가 너무 슬펐어.

그렇다고 안 낄 수도 없고...그래서 작년에 황금 커플링으로 미리 맞춰 놓은거야.

오빠 오면 끼워줄려고...그래도 오빤 살 안 쪄서 손가락에 잘 맞아서 다행이네.

은실이가 황금 커플링 낀 내 손과 ...자기 손을 나란히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와, 이제 참 보기 좋다. 진작 이랬어야지..

뭐...뭐..뭐라고? 

갑자기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오빠야, 내한테 들이대는 남자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래서 내가 밖에 나가면 이 커플링 꼭 낀다.

내 모르는 애들은... 다 내가 애인 있는 줄 안다.

나도 여잔데...잘생긴 남자애들이 들이대면  내가 안 흔들리는 줄 알아?...그래서 모르는 사람 만날 때 미리 끼고 나간다.

내 친구들은 내 애인 외국에 돈 벌러 간 줄 알아....

은실이가 경상도 억양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하거나 흥분하면 꼭 경상도 억양이 나온다.

-오빠가... 재형이 오빠랑도 연락 끊기고...오빠 보고 싶은 것은 둘째 치고... 이건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중국가서 술먹다가 아무 데나 쓰러져 자면 내장도 꺼내 판다고 하더라.

오빠, 술 좋아하잖아.. 내가 오빠 걱정되서 이건 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편지 그만 쓰고 내가 기도라도 할라고.... 몇년 전 부터 교회 다닌거야.  그런데 내가 편지 멈춘 때 부터....

오빠가 나한테 편지 쓴 걸 보면... 우린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다 했어..

은실이 목소리에 조금씩..조금씩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빠는 맨날 나 알바에 쫓기고 힘들게 사는 거 안쓰러워했지만...

내 그동안 방통대도 졸업하고.... 엄마 덕이지만... 이렇게 번듯한 가게 사장도 됐다....

내 이만하면 오빠 볼 면목도 있는 것 같아서... 내 오빠 오기 어...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아..시발....난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냐...눈물  나오면 안되는데...

어제도 그렇게 밤새워 울고....왜 눈물은 마르지 않는 거냐...

-오빠야, 내 오빠 엄마가 예전에 나 별로 안 좋아하셨잖아. 오빠는 서울에서 대학 나오고

내 시골에서 상고 밖에 졸업 못 했잖아. 내 고졸 며느리라고 구박 안당하고... 오빠 체면도 살려주고 ....

이를 악물고 방통대 졸업했다. 오빠야, 방통대 졸업하는 거 얼마나 힘든 줄 알지?

흑흑흑....

너 나 진짜 오늘 날 제대로 울리려고 아예 작정했냐...

순간 나도 꾹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 오빠야, 내 어릴 때부터.. 내 아빠도 없고...형제도 없이 자라서... 남들보다 외로움 많이 타잖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오빠야...다른 건 내 바라지도 않아.

돈 없어도 된다. 내가 그런 거 따지는 사람이야?  그냥....이제....이제...옛날처럼 나 다시 예뻐해줬으면 좋겠어.

나 혼자 남겨두지 말라고.. 나 이제 엄마도 없단 말이야.. 흑흑흑......

은실이도 감정이 북받치는지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흘린다.

-내 어제 오빠 보려고 했는데...토요일 저녁이 교회 청년부 모임이라서 빠질 수 없었어.

사실 마음도 좀 추스리고 싶었고...어제 전화 온 것은... 재형이 오빠한테 전화 온 거야. 요즘 매일 전화해 오빠 왔냐고 물어보더라...

오빠... 힘들어한다고.. 오빠가 나 사랑한다고....너희 둘 이젠 진짜 잘 되야 한다고....흑흑흑...

재형이..이 새끼.....은근히 멋있는 척 하는 개새끼...흑흑흑...

-이제 오빠야.. 진짜..한 번만...한...한 번만 더 그렇게 말 없이 떠나서 연락 끊으면...

내 진짜 오빠 용서 안 해...내 오빠 다시는 안 볼 거야...오빠 이젠 제발 그러지 않는 거다. 

으아아앙.....

은실이 설움이 북받치는 듯 엎드려서 운다. 아예 통곡을 한다.....

우리 착한 은실아...

나 같은 벌레 같은 새끼가....어떻게 네 사랑에..발 끝에도 미칠 수 있겠니..

은실아..나 평생 갚으면 살 거야. 너한테 속죄하면서 살 거야.

내가 진짜 너 다시는 외롭지 않게 하고..끝까지 행복하게 해줄 거야..

나도 눈물이 펑펑 났다. 콧물도 났다. 으헝헝헝....

둘이서 하도 울으니...종업원이 옆에서 와서 묻는다.

'저..죄송한데...물 한 잔 드릴까요.'.

'네..'

-오빠야, 내 어제 오빠가 백금 커플링 끼고 온 거 봤어.. 일부러 모른 척 했어.

내 오빠 가고....내 너무 너무 고마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오빠 고마워... 정말 고마워..

- 흑흑흑....뭐가 고마워...그게...흑,

-오빠야.. 내한테 다시 돌아워줘서 고마워..참말로 고마워...

오빠야, 내 말이 맞지?  내 그랬지...오빠가...나 안 잊으면... 반드시 돌아 올 거라고...나한테 올 거라고..

우리 교회 목사님도 그랬어. 나 잘 될 거라고....오빠..오빠 진짜 고마워....나도 인제 오빠한테 더 잘할게..

흑흑흑....

내가 지금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니...

내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며....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걸 본 은실이가 잽싸게 내 팔을 꼬집었다.

"아얏!"

"또!  담배.. 오빠야, 아직도 담배 못 끊었어?"  [끝]

---------------------------- 에필로그 ------------------------

"곱게 물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건... 귀여운 새잎 돋게 할 준비라지요

아름답던 꽃들이 쉬이 지는건.. 맺은 열매 영글게 할 준비라지요..."

20명 정도 되는 초등학생 합창단이 동요를 부르고 있다.

2015년 5월 어느 날..난 연차를 내고 아내와 함께 귀여운 딸램이 참가한 초등학생  동요대회를 보러갔다

"우리들도 만났다 헤어지는 건... 다시 만날 꿈 때문이죠

떠난다는 건 슬픈 일만은 아니랍니다. 더 큰 희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죠..."

- 오빠, 저 노래 알아? 제목이 <떠난다는 건>이라는 노래야.

- 글쎄...

- 저 노래가 원래 시야..내가 전에 오빠한테 쓴 편지에도 있어... 떠난다는 건 슬픈 일만은 아니라고..

또 다른 희망이라고.. 그런데..이제는 우리 딸이 다 커서... 저 노래를 다 부르네.

아내가 감회에 젖는지 살짝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난 슬며시 아내 손을 꼬옥 잡았다.

<떠난다는 건 슬픈 일만은 아니랍니다. 더 큰 희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죠...>.

그러고보니 은실이가 보낸 편지에서 저런 가사의 내용이 언뜻 기억에 나는 것도 같다.

어쩌면 은실이는 가끔씩 저 노래를 부르며... 젊은 날 그 힘든 세월을 견뎌냈을지 모른다.

난 은실이와 재회한 그 이듬해 바로 은실이랑 결혼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린 은실이를 ...잠시라도 혼자 두기 싫었다.

결혼장소는 교회를 택했다. 우리 어머니도, 은실이도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이다.

"은실이, 너 저런 멋진 사람있으니 너 그동안 남자친구 안 사귀었구나.."

은실이 교회 청년부 친구들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줬다. 참 다들 고마웠다.

사회는 재형이가 봐 줬고.. 축의금도 아주 입이 떡 벌어지게 냈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도 이제는 사연을 듣고 은실이를 좋아하셨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은실이는 나랑 결혼하고 얼마 후 악세사리 가게를 접었다. 은실이는 20대 내내 힘든 알바만 하던 청춘이었다.

난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영화 좋아하던 은실이는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밀어줄 테니 열심히 하라고 했다.

내 월급과 은실이 가게를 세준 임대료로... 그런 대로 우리 식구 사는 데는 큰 지장 없다..

으스대지 않고..남을 지배할 게 아니라면.. 살아가는데 너무 큰 돈은 필요 없다.

우리는 딸을 낳았다. 우리 딸 은혜는....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다행히 성격도 외모도 은실이를 꼭 닮았다. 아이는 더 안 낳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주어야

할 사랑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은실이의 꽉찬 B컵 가슴이... 애낳고 풍만한 C컵 가슴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래도 아직은 젊고 늘씬한 편이라서 가끔 남자들이 쳐다보는게 신경 쓰이긴 한다.

결혼식 올리기 며칠 전 우린 소피이모에게 인사하러 갔다. 추모공원에서 본 사진 속의 소피이모는

내가 그 날 꿈에서 본 것처럼.... 흰 옷을 입고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러나 난 별로 놀라지 않았다.

사실 우리 삶에 어차피 그런 암시는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잘 인식 못 해서 그렇지..

소피이모....정말....고마워.. 나 은실이에게 잘 할 거야....아주 많이.. .(끝)

==================================================================================

늦어서 죄송합니다.. 애 좀 재우느라고요...

졸필이지만 기쁘고 슬펐던 저의 젊은 날의 고해성사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ㅜ

아름다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