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란 단어가 딱 어울렸다. 재미있는 건 여성스러움으로 똘똘 뭉쳐 보호본능을 마구 불러일으킬 것만 같은 주경이 의외로 털털하고 직선적인 반면, 오히려 남자 쪽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섬세하고 자상한 성격이었다. 어쨌던 그렇게 각자 떼어놓고 볼 때면 꽤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안팎의 부조화가 한 쌍이라는 관점에서는 묘하게 균형을 맞추어 아주 자연스러웠다. 뭐, 물론 은영을 통해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성생활이란 면에서는 말 그대로 ‘미녀와 야수’로서 나름 찰떡궁합인 것도 같았다.
“깔깔깔~”
“호호~”
“하하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마치 여러 해 동안 사귀어 온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한듯한 착각이 들 만큼 유쾌하고 편안한 자리였다. 아마 내 가슴 속의 작은 태풍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완벽했을 거다. 아, 또 한가지, 이 답답한 속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담배의 도움마저 불가능하다는 점도 약간의 흠이긴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내 기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럭저럭 잘 대처하는 중이었다. 그때 주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이젠 배도 부르고 수다도 지치는 것 같은데 노래방으로나 옮길까?”
“어머~!”
“킥~”
은영이 경기라도 든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자 주경이 풀썩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얼굴이 벌개져 민망함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주경의 약혼자, 어제의 해프닝을 알고 있는 나 역시 저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얘, 얘~ 걱정 마, 우리 이이는 취하지만 않으면 얌전한 새색시야~”
“흠, 흠...”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딴 곳을 쳐다보는 주경의 약혼자에 은영도 장난기가 돋는지 슬쩍 거들었다.
“호호호~ 그러면 취했을 땐?”
“헐크~~”
“기운이 마구 세져?”
“아니~”
“그럼?”
주경이 말문을 잠시 끊고서 입술을 축이더니 음흉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물론 기운도 세지지만...엄청 커져, 그러니까 헐크지~ 깔깔~”
“어머나~~!!”
“헛~!”
“컥~”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래 들게 만든 이 대찬 여인네들 좀 보소. 확실히 여자들이 뭉치면 더 무서운 것 같았다. 어쨌던 그녀들 덕분에 한결 기분이 가벼워진 나도 ‘툭’하고 한마디 던졌다.
“은영아..너, 주경 씨랑 너무 자주 어울리지 마라...”
“응? 왜?”
“아무래도 주경 씨를 닮아 점점 더 아줌마가 되가는 것 같아...나 무서워...”
“꺅~~!!! 성우 씨, 정말~~!!!”
“하하하~ 자, 자~ 빨리 옮깁시다. 알코올 헐크남도 일어나시고...”
“윽~~”
그 커플에게 한 방 먹이고서는 은영의 손목을 잡아 일으켜 잽싸게 도망쳤다. 계산을 먼저 해버리고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밤공기가 기분 좋게 맞아주었다. 은영도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내 팔짱을 낀 채 어깨에다 머리를 기대왔다. 몽실한 젖가슴의 따스한 온기와 향긋한 샴푸냄새가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래, 내 착각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혹시나 해서 주경뿐만 아니라 그 약혼자 - 이름이 ‘장석’인 - 까지도 용의자에 넣어봤었지만 찬찬히 살펴본 결과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은영은 물론 주경 또한 레즈비언이라고 보기에는 도저히 무리였다. 장석 역시 취하면 헐크 어쩌고는 했지만 야성미의 표본 같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은 응석받이였다. 때문에 그런 걸 잘 받아주는 주경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정도라고 보는 게 옳았다. 더군다나 그네들의 대화 틈틈이 흘러나온 정보를 조합해봤을 때 어제의 행적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은영의 외도이라는 변수를 억지로 집어넣어보려 해도 시간적인 틈이 거의 없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볼 때 가능한 상황은 딱 한가지뿐이었다.
야릇한 상상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 실낱 같은 가능성이지만 주영부부와 은영이 함께 뒤엉킨 난교였다. 그런 다음 셋이서 입을 맞추어 알리바이를 조작한 거고 말이다. 하지만 은영이 어제 처음 소개받은 친구의 약혼자와 만나자마자 그런 짓을 했다? 그것도 친구와 같이? 내가 아는 바로는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만약 그렇다면 나도..흐흐흐~’
그런데 순간적으로 저 부부와의 스와핑이라면 아주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은 왜 든 걸까? 나도 모르게 주경에게 끌리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이 유쾌한 커플에 대한 호감 때문에? 어쨌던 그런 망상에 잠시지만 가슴이 두근거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곧 머리 속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사랑해, 은영아...”
“으, 응? 뭐라고 했어? 자기야.”
중얼거리듯 속삭인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았나 보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 보는 그녀의 모습에 사랑스럽다는 감정이 마구 밀려들었다.
“사랑한다고...쪽~”
“자기야~ 나도~ 쪽~ 쪽~”
사랑의 밀어와 함께 동그스름한 이마에다 입을 맞추자 은영이 내 목을 껴안고 매달리며 입술을 연거푸 부딪쳐 화답해왔다. 확실히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순수했다.
“어머~! 어머~ 와~ 우리보다 더하네? 진짜 신혼은 저쪽인데? 그치~ 여보야~”
“하..하....으, 응...”
뒤쪽에서 들려온 놀리는 듯한 그러면서도 부러움이 가득 담긴 주경의 목소리와 어눌하게 대답하는 장석이었다. 이렇게나 편안한 걸 왜 그리 고민하고 힘들어했는지 스스로가 참 한심했다. 그래도 지금이나마 마음을 다잡았으니 다행이었다. 은영의 허리를 부드럽게 껴안으며 뒤돌아보았다.
“후후후~ 몰랐어요? 우린 3년 전부터 쭉~ 신혼이었는데...그리고 앞으로도 최소 7년은 더 이럴 겁니다...사랑하는 사이엔 적어도 그 정돈 되야 기본이죠...”
“꺅~ 느끼해~”
“흥~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계집애야~”
“아~ 몰라~ 몰라~ 안 들려~”
두 여자가 옥신각신 토닥거리는 정겨운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아까 내 말에 자극이 된 건지 주경은 약혼자에게 찰싹 달라붙어 제법 진한 스킨십을 보여주면서 자신들의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내겐 웃음을 자아냈다.
“후후~ 은영이 너도 꽤나 특이한 걸?”
“응? 뭐가?”
노래를 선곡하기 위해서 책자를 뒤적거리던 은영이 내 귓속말에 되물어왔다. 나는 저 건너편에 앉아 닭살 짓을 하고 있는 주영부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어제 잔뜩 흥분했었다며? 어떻게 곰 인형을 껴안고 좋아서 죽는 어린애를 보면서 거기를 적시냐?”
“킥~ 정말이네? 킥킥~”
저 커다란 덩치를 꼭 끌어안고서 뺨을 비벼대며 행복해하는 주경의 모습이 영락없이 그랬던 것이다. 은영도 이제서야 그걸 깨달았는지 소리 죽여 킬킬댔다. 그때 그녀 허리에 있던 손을 움직여 탐스러운 엉덩이를 덮은 레깅스 속의 팬티를 더듬으며 속삭였다.
“근데..혹시 너 또 그런 거 아니야?”
“뭐, 뭐가?”
찔끔하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 시치미를 떼는 걸 보니 정말로 그런 모양이었다.
“팬.티.검.사...해본다?”
“하, 하지마...”
손끝을 미끄러뜨리며 꼬리뼈 부근을 슬쩍 문지르자 은영이 굉장히 당황해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일까? 장난으로 시작한 얘긴데 자꾸만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지는 이 야릇한 충동이라니...어째 어제오늘 이틀 사이에 내 속에서 뭔가가 약간 변한 것 같았다. 아니면 어제 노래방에서 벌어졌던 해프닝을 들으며 장석을 조금은 부러워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자기야...제발...손 좀..”
“후후후~ 뭐, 들키면 또 어때? 어제 저 둘은 더 심했다며?”
“그건...취해서...”
입으로는 그만하라고 애원하면서도 막상 엉덩이 골을 따라 애무하듯이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는 내 손길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 은영, 어쩌면 그녀도 이 작은 모험의 짜릿한 스릴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숨결이 조금 빨라진 듯도 했다.
“아휴~ 이러다 끝까지 끼리끼리만 놀겠네? 이제 지방방송은 그만 끄고~ 자~ 자~ 모두 신나게 놀아요~”
그때 들려온 외침에 고개를 들어보니 주경이 일어서며 우리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쉬움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은영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
그 후론 특별한 사건 없이 - 내가 뭘 기대했던 건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 평범했다. 물론 그렇다고 지겨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모두들 자리가 파하는 걸 아쉬워했지만 이미 어제 외박을 해버린 은영의 입장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서로의 목적지를 물어보다 주경네가 내가 사는 곳과 의외로 가깝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자 모두 같이 타고 가다 은영을 먼저 내려준 뒤에 자기집으로 가서 한잔 더하자며 손을 잡아 끄는 주경에 ‘어~ 어~’ 하다 뒷좌석에 끼어 앉고 말았다.
“이렇게 떡~ 하니 양쪽에 미인이 어디야? 성우 씬 오늘 정말로 복 터진 줄 아세요~ 호호호~”
“아, 네, 네...”
내게 바짝 달라붙어 호들갑을 뜨는 주경에 나는 그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앞만 바라보고 있는 장석은 그렇게 조금은 과하다 싶은 두 사람의 밀착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피앙세의 그런 모습에 익숙한 때문인지 아니면 약간은 여성적인 성격과는 달리 덩치 값을 할 만큼 대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도 남자인 이상 이런 자리배치가 싫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노래방에서 못내 아쉬움을 남겼던 은영의 젖은 팬티를 확인한다거나 아니면 그걸 빙자한 야릇한 뭔가를, 그녀를 바래다주러 가는 길에 꼭 하고야 말겠다던 야심 찬 흉계가 깨진 탓에 흥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밤시간인데도 어디서 사고라도 났는지 차가 엄청나게 막혀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르다 싶을 만큼 엉금엉금 기었다. 한참 동안을 그 상태이자 지겨웠던 데다가 술기운까지 겹쳐 주구장창 떠들던 주경은 물론 앞자리의 장석마저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자?”
“아니..”
눈을 감고 있길래 은영 역시 조는가 싶었지만 내 귓속말에 바로 대답했다.
“안 피곤해?”
“응, 괜찮아...”
은영의 허벅지에다 슬쩍 손을 올려놓자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잠시 그대로 두었다가 마치 오일이라도 발라주는 것처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면섬유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그 안쪽에 자리한 살결의 따스한 온기와 탄력이 손바닥으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짐에 따라 꽉 달라붙어있던 허벅지 사이도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손길이 깊은 곳을 향해 슬금슬금 기어올라가려는 순간 갑자기 손목을 잡아왔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약간 열기를 띤 그녀의 촉촉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자기야 제발 그만해...’
그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턱 끝으로 졸고 있는 장석과 주경을 가리키며 작게 고개를 내젓자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은영이 자신의 백에다 메어놓았던 카디건을 풀어 넓게 펼치더니 하체를 가렸다.
“고마워, 사랑해...”
아주 작게 속삭이며 가볍게 입맞춤을 하자 은영은 조금은 원망 어린 눈길로 노려보다가 정말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내 볼을 가볍게 꼬집고서 풀썩 웃고 만다. 그리고는 어디 원하는 대로 맘껏 해보라는 듯이 허벅지 사이를 넉넉하게 벌려주고서 엉덩이를 앞으로 빼 거의 반쯤은 드러눕다시피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서 순간적으로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어머니를 떠올렸다면 그건 모성애에 대한 모독일까? 이렇게나 음란하고 조금은 변태적이기까지 한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미친 건지도 모르지만, 개구쟁이 막내아들의 온갖 고집과 응석을 포근한 미소로 보듬어주시던 그 가이없는 사랑의 향기를 느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아~”
물론 그렇다고 진짜로 착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머니를 대상으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 즉, 주저 없이 은영의 가랑이로 손을 ‘쑥~’ 밀어 넣어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가지런히 모아서 곧게 내리 뻗은 손가락들로 도독한 살점이 닿았다. 보지의 윤곽은 물론 그 사이의 골마저 뚜렷이 드러나기에 치마를 덧입거나 상의로 어느 정도 가려주어야만 하는 게 바로 레깅스 바지였다. 당연하게도 지금 내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너무나 생생해서 은영의 보지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오솔길을 따라 길게 늘어진 가운데손가락을 지그시 눌러보았다. 그러자 볼록한 둔덕이 좌우로 살짝 벌어지면서 손가락이 가라앉았다. 확실히 안쪽은 온도부터 달랐다. 바깥쪽이 따스한 정도였다면 그곳은 뜨거웠다. 조금 더 힘을 주자 은영이 움찔하면서 가랑이 사이를 더욱 넓혔다.
“쌕~ 쌕~”
숨소리가 조금 더 빨라지면서 그녀의 아랫배가 크게 오르내렸다. 그러자 덩달아 실룩거리며 벌어지는 보지입술, 더 깊이 파고든 손가락으로 미끈미끈한 물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리 얇은 망사팬티라지만 그건 털이 비치는 위쪽의 사정이고 정작 오줌구멍이 있는 아래쪽은 겹으로 되어있기에 이렇게 겉옷까지 베어나올 정도면 상당한 양이었다. 내 손길이 닿은 이후의 그 짧은 시간으론 거의 불가능한 반응이었다. 즉,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젖은 상태였다는 걸 뜻한다.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직접 만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참아야만 했다. 이만큼이나마 허용해준 은영의 입장을 생각하면 내 욕심만 부릴 수는 없었다.
대신에 비록 옷 위로지만 본격적인 애무를 시작했다. 손끝으로 이미 단단하게 성이나 뾰족해진 싹을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문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보지구멍이 있는 부분에다 깊숙이 밀어 넣기도 했다.
“흐으~ 흐~”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은영의 얼굴이 아주 새빨갛게 달아올라있다는 걸 어둑어둑한 뒷좌석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반듯하게 등을 기대고 누웠던 처음의 자세도 어느덧 내 어깨 뒤쪽에다 얼굴을 파묻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보지를 애무하고 있는 내 오른쪽 팔뚝을 그녀가 두 손으로 꽉 붙든 건 말리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점점 더 커지는 쾌감을 참기 힘들어 본능적으로 뭔가에 매달린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허벅지를 꽉 조여 내 손을 붙드는 것과 동시에 팔목을 아프게 거머쥐더니 작지만 아주 다급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 그만...”
절정이 온 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자극적인 상황이라지만 이렇게 제한된 조건에서 거기까지 도달하기는 아주 힘든 일이었다. 아마 더 이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가 힘들어서였을 게다. 아쉬웠지만 이 정도까지 온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사실 은영보다도 내가 도중에 사정을 해버릴까 은근히 걱정될 정도로 너무나 아찔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그렇게나 지긋지긋하게 막히던 - 물론 나로선 하늘에 감사하고 싶다 - 도로도 슬슬 제 속도를 찾아가는 기미가 보였다. 제대로 달린다면 은영의 집까지 도착하는 데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기에 정리를 하긴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너무나 큰 선물이었어...고마워...사랑해...”
작고 보드라운 은영의 손을 꼭 거머쥐며 소곤대자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아주었다. 직접 애무를 할 때처럼 진득한 액체가 흥건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이 묻었었던 것이다. 구석구석 꼼꼼히 챙긴 그녀가 손수건을 다시 백으로 집어넣으려는 순간 그걸 잡았다.
“이거 나 줘...
“왜?”
“기념으로 보관하게...”
“자긴 정말...못 말리는 사람이야...”
“머리맡에다 두고 너 보고 싶을 때마다 맡아볼 거야...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냄새거든? 응?”
“아~”
카디건 밑으로 재빨리 손을 넣어 보지를 꾹 거머쥐며 속삭이자 은영이 작은 탄성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자신이 낸 소리에 깜짝 놀라 굳은 얼굴로 조심스레 동정을 살피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별다른 이상이 안 보이자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는 여전히 보지에 있는 내 손등을 가볍게 꼬집었다.
“이젠 정말 그만해...”
“알았어...사랑해~ 쪽~”
“피~ 미안하니까 괜히 오버한다~”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야 아무리 뻔하고 입에 발린 소리라도 애정표현을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손수건을 내게 넘긴 은영이 실내를 흘깃 훑어보더니 갑자기 바지 앞섬을 쥐어와 터질 것 같은 기둥을 부드럽게 쓰다듬다 손을 떼 토닥거리며 중얼거렸다.
“에고~ 불쌍한 우리 애기, 오늘은 이 엄마가 못 놀아주니까 나중에 아빠한테 부탁하렴~”
그리고서 콤팩트를 꺼내 얼굴을 잠깐 살피고는 자세를 바로 하는 은영을 쳐다보며 참으로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아까 내가 어머니를 연상했었는데 이젠 그녀 스스로가 자칭하다니 희한한 우연이었다. 그때 구석에 처박혀 졸고 있던 주경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암~ 성우 씨, 아직도 멀었어요?”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젠 금방이에요...차가 빠지기 시작했으니깐...”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앞쪽으로 몸을 기울여 장석을 깨우는 순간 난 튀어나오려는 신음소리를 겨우 참아냈다. 은영을 슬쩍 쳐다보자 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휴~ 다행이구나...’
한 손으로 내 허벅지를 짚은 채 자기 신랑과 떠들고 있는 주경을 바라보았다. 사실 조금 전 내게 손을 올릴 때 딱딱하게 성이 난 자지를 손등으로 ‘툭’ 건드리는 접촉사고가 났었던 것이다. 뭐, 막상 가해자는 전혀 의식도 못하는 모양이지만 어쨌던 한참 동안 엉뚱한 짓거리를 몰래 했던 나로서는 기겁할 일이었다.
“아저씨, 저쪽 골목길로 좀 들어가주세요...”
은영과의 꿈 같던 1박2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
애초 계획과는 달리 포장마차에서 마시기로 했다. 그건 내가 우긴 결과였다. 서로 많이 가까워졌다지만 사실상 나는 이들과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다. 게다가 아직 정식으로 식도 올리지 않은 두 사람의 신혼살림집에 쳐들어가기가 괜히 미안했다. 아니, 그런 걸 떠나 원래 신혼일 때는 해가 지고 난 후엔 찾아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지 않는가? 물론 이 경우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셋이서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다 내가 문득 물었다.
“참~ 장석 씨, 그렇게 마시다가 여기서 또 헐크로 변하면 어쩌려고요?”
“나~ 참~ 이거, 이거...전 그래도 같은 남자라 성우 씨가 제 편인 줄 알았더니..이제 봤더니 적군이군요..”
내 놀림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장석, 꽤나 친숙해진데다가 술기운도 제법 돈 탓인지 처음과는 달리 곧잘 농담도 걸어왔다.
“호호호~ 우리 신랑 너무 놀리지 마세요, 아무데서나 그러진 않거든요? 그렇지? 여보야~”
“물론이지~ 내가 누구 남편인데?”
“하하하~”
주경의 지원사격에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의기양양해하는 장석의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역시나 둘은 아주 잘 어울리는 쌍 같았다. 아마 어제 같은 일은 그나마 마음이 편한 자리, 즉, 약간의 실수 정도는 웃고 넘어가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나 드물게 있는 모양이었다.
“자~ 자~ 그러면 안심하고 건배~ 좋은 분들 만나서 너무 반갑습니다...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내가 잔을 들며 말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부딪쳐왔다.
“저도요~”
“반갑습니다~”
술잔이 여러 번 비고 나자 장석이 조금씩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술이 제일 약한 것 같았다. 그래도 흔히들 말하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해서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유형은 아니라 그다지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의외의 복병은 주경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도저히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호호호~ 근데 은영이가 자랑할 만한데요?”
“뭐, 그거야...오히려 장석 씨야말로 정말 대단하다고...”
“네? 제가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사람인데....”
“하하하~ 주경 씨가 은영이에게 자랑한 걸 들어보니 장석 씬 변..”
‘강쇠와 카사노바를 합친 섹스머쉰’ 이라는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내 발끝을 ‘톡톡’ 건드리는 기척과 함께 그만하라는 신호를 장석 몰래 눈짓으로 보내는 주경에 말문을 잠시 끊었다가 대충 둘러댔다.
“...함 없이 주경 씨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하하~ 사실이긴 한데..좀 쑥스럽네요...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니죠...그거야말로 진짜 자랑할 만한 일이죠...”
분위기는 매끄럽게 그대로 계속 이어졌다. 주경이 왜 제지를 했는지는 얼마 후 장석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알게 되었다.
“미안해요, 성우 씨, 당황하셨죠?”
“아니에요...그런데...”
“사실은...”
그녀가 전화상으로 했던 이야기들은 은영을 놀리려고 거의 꾸며댄 거라고 했다. 흔히 친구들 사이에 장난 삼아 하는 야한 농담 정도였다는 것이다. 장석은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른단다. 그렇기에 뒤늦게 듣게 되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었다. 조금은 황당해졌다. 그렇다면 결국에 우리 이야기만 다 까발려졌다는 게 아닌가! 나는 급하게 뒷수습을 시도했다.
“아~ 그랬군요..하기야 은영이가 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니까..뭐, 비겼네요...하하하...”
어색하게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얼버무렸다. 그럼에도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호호호~ 저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었어요...그런데...”
그때 주경이 말문을 끊더니 빤히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가슴이 뜨끔했다.
“지금은 왠지 사실대로 말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적어도 최소한 반은 맞는 것 같아요...굉장히 능숙하던데요?”
“네? 그게 무슨?”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택시 안에서요...”
“흡~!!”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설뻔했다. 깨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주경이 내 뒤쪽을 향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이가 오네요...그리고 참...”
또 무슨 소리가 나오려고? 순간 오줌마저 찔끔 지리는 기분이었다. 목구멍이 바짝 타는 느낌에 물잔을 들었다.
“지금은 좀 가라앉았어요?”
“푸흡~”
식도를 타고 넘어가던 물이 도로 튀어나왔다. 주경이 그 말과 함께 시선을 던진 곳이 바로 내 아랫도리였던 것이다. 어쩌면 발기가 된 내 자지를 스치듯 건드렸던 게 우연한 실수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 성우 씨, 괜찮아요?”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놀라서 내 등을 두드리는 장석에게 걱정 말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런 나를 맞은편에서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호기심으로 눈빛을 반짝거리는 주경에 또다시 골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