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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오늘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왜냐!!! 성우 씨를 만났으니까, 성우 씨도 그렇죠?”
“아, 네, 네, 당연하죠...”
“캬~ 역시~ 자~ 오늘 밤새워 마셔보는 겁니다~ 고~고~”
“어~? 어~!”
이게 바로 몇 분전의 상황이었다. 그 후엔 장석의 큼지막한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가고 있는 중이고. 늦은 시간이지만 주말이라 심심찮게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쪽팔림에 몇 번이나 탈출하려 애썼지만 도무지 꿈쩍하지를 않아 술에 취하면 헐크가 된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다. 게다가 힘 조절이 안 되는지 잡힌 곳이 은근히 저려올 정도였다. 장석의 팔짱을 낀 주경은 도움을 청하는 내 간절한 눈빛에도 재미있다는 듯이 생글생글 얄미운 미소만 지었다.
‘이거..오늘 부부인신매매단에게 당하는 거 아니야?’
어떤 장면이 갑자기 머리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자 이글거리는 태양빛 아래로 갈매기 한 마리가 ‘끼룩~ 끼룩~’ 울어대며 한가하게 날아다닌다. 이마를 타고 ‘또르르~’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걸 손으로 닦아내는 순간 얼굴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말라붙은 소금기들, 주변을 휭~하니 둘러보자 보이는 건 푸른 물, 물, 물뿐...망망대해다. 푹하니 한숨을 내쉬고서 뼈마디가 앙상한 손으로 그물을 힘겹게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물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퍼덕거리는 새우들....
“훗~”
피식피식 웃고 말았다.
“응? 뭔데 혼자만 웃고 그래요? 재미있는 거라도 봤어요?”
“아, 아니...그냥...”
주경의 말에 얼버무릴 수 밖에는 없었다. 어떻게 그 황당한 망상을 털어놓을까? 더군다나 이렇게도 무시무시한 힘이 내 팔뚝에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물론 이 완력의 소유자는 무골호인이라 화를 내지는 않을...흐음, 가만 생각해보니 아무리 농담이라도 누가 내게 인신매매범이라고 하면 꽤나 열이 받을 것 같다. 만약에 장석이 폭발한다면? 원래 조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섭다는데....
이런저런 온갖 쓰잘데없는 잡생각의 나래를 펼치면서도 어느새 나도 두 사람의 발걸음에 맞추고 있었다. 내 어떤 면이 장석의 마음에 그렇게나 쏙~ 든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 둘 사이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거의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상대에게 ‘글쎄요, 전 그다지 별론데요?’ 이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그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란 걸 충분히 느끼는데다가 호감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들이밀면 왠지 부담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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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빨리 신발부터 벗고 올라와요.”
“네, 네..”
장석의 재촉에 부랴부랴 신발을 벗어야만 했다. 기어코 집까지 끌고 오겠다는 강한 집착 때문인지, 꽤나 취한 상태인데도 현관문을 들어서서 두 개의 잠금 장치는 물론 방범체인까지 채우고 나서야 손목을 놓아주는 꼼꼼함을 보여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게 만들었다.
“어때요? 저희 집..”
기대가 된다는 얼굴로 주경이 물어왔다. 일단 거실과 주방만 대충 휘휘~ 둘러보고 받은 첫 느낌은 털털한 성격이라도 그녀 역시 천생은 여자라는 거였다.
“굉장히 좋네요...깔끔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게...”
“호호호~ 사실 제가 신경을 좀 썼거든요~”
내 찬사에 웃음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주경이 순간적으로 굉장히 예뻐 보였다. 공연히 어색한 기분에 슬며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화장실이 어디죠? 세수를 좀 했으면 하는데...”
“이리로 오세요”
그녀가 손을 덥석 잡아오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
“왜요? 어디가 안 좋...어머? 이를 어째? 멍이 들겠네?”
“괜찮아요, 그냥 손자국이 조금 난 것뿐인데요...금방 없어질 거에요..저긴가요?”
“네...하지만...”
“하하하~ 괜찮다니까요? 맛있는 거나 준비해두세요, 금방 나올 테니...”
내 팔목에 자리한 벌건 손자국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주경을 진정시키고서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 문을 잠근 뒤에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시 동안 물줄기를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열이 잔뜩 올라 눈자위에까지 뻘건 실핏줄이 선 한 남자가 거울 속으로 보였다. 저 얼굴이 추하게만 느껴진다.
“...뭐냐? 윤 성우...”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손을 씻으려다 멈칫하고 말았다. 팔목의 벌건 자국이 연해지는 대신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주경의 걱정처럼 멍이 조금 남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녀가 언급하기 전까지는 그 정도인지도 전혀 몰랐다. 정작 내 시선이 멈춘 곳은 그 아래쪽이었다. 조금 전 주경이 그걸 잡자 나도 모르게 탄성을 토하게 만든, 또한 택시 안에서 은영의 보지를 애무하던 오른손.
왜 그랬을까? 주경의 손이 닿는 순간 은영의 보지를 떠올려버렸었다. 땀이 배인 건지 약간 촉촉한 그녀의 손바닥은 갓 구워낸 식빵처럼 말랑말랑하면서도 따뜻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감촉인데도 불구하고 발기가 돼버렸던 것이다.
“봤을까?...당연히 알아챘겠지...휴~우~”
무심결에 주머니로 손이 가 담배를 잡다가 멈추었다. 그리고는 세차게 쏟아지는 찬물로 머뭇머뭇 두 손을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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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마셔보자며 호언장담을 할 때부터 예상하기는 했지만 장석은 일찌감치 나가떨어졌다. 앉아서 조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고개를 꾸벅거리다가 뭔가에 놀란 듯 화들짝 깨서는 건배를 외치길 반복하더니 그것도 점점 줄어 결국 코까지 골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성우 씨, 억지로 끌고 와놓고는...”
“아니에요..저도 좋았는걸요? 그나저나 장석 씨 꽤나 귀여운데요? 하하하~”
“어머나~ 귀..여워요?”
“후후후~ 왜 있잖아요? 유리진열장에 놓인 커다란 곰 인형.”
“킥~”
미안해하던 그녀가 내 농담에 안색을 펴고 환하게 웃었다. 확실히 이 여자의 매력은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인 것 같았다. 주변이 다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이만 정리하죠. 참, 혼자선 힘드실 테니까 침대에 뉘는 걸 제가 도와드릴게요..”
“너무 고마워요, 염치없지만 부탁 좀 드릴게요...사실은 안 그래도 걱정이었거든요..잠시만요..”
안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아마 누일 자리를 미리 손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문을 열어둔 채로 다시 나온 그녀와 둘이서 장석의 양쪽에서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다행인 건 눈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취한 와중에도 주경이 살살 달래자 시키는 대로 순순히 발걸음을 떼놓았다는 점이다. 다만 워낙 비틀거렸기에 그녀 혼자였다면 꽤나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휴~ 수고하셨어요, 성우 씨...”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면 오히려 민망하죠, 신혼 집에 와서 잘 얻어먹은 입장인데..”
대자로 뻗은 장석의 모습이 편안하면서도 아주 행복하게 보였다. 이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모양이었다. 왠지 가슴 속이 허전한 느낌이었다.
“잠자리만 조금 봐주고 금방 나갈게요. 참, 술상은 치우지 마세요, 둘이서 조금 더 마시게, 괜찮죠?”
“저야 상관없지만 주경 씨가 힘들지 않겠어요?”
“호호호~ 걱정 마세요. 아마 힘들어도 그건 제가 아니라 성우 씨일걸요?”
하기야 지금도 그녀가 더 말짱한 것 같긴 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돌아섰다.
‘헛~!’
문은 닫아주려다가 무심코 방 안으로 향한 시선에 잡힌 광경이 나를 딱 굳게 만들었다. 이불을 덮어주느라 침대에다 한쪽 무르팍을 올리고서 상체를 숙인 주경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허벅지 중간쯤에서 찰랑거리던 치맛단이 당겨 올라가 깊은 곳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끈 팬티였다. 터질 듯 탐스럽게 벌어진 엉덩이가 완전히 드러나고 그 아래쪽으로 매끈하게 뻗은 새하얀 허벅지가 너무나 눈부셨다. 하지만 내 숨을 멈추게 만든 건 그것들이 합쳐지는 자리였다. 겨우 가릴 듯 말듯한 천으로 인해 도톰하게 부풀어오른 살집은 물론 오목하니 들어가 패인 곳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유독 그 한가운데부분이 더 짙어 보이는 게 아닌가!
‘저건...혹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내 자지가 ‘부르르~’ 떨었다. 호흡마저 곤란할 지경이었다. 젖었다, 젖은 게 분명했다. 왜? 무슨 이유로? 아니, 누구 때문에? 그런 생각들이 봇물처럼 밀려드는 순간 내 다리가 움직여질 뻔했다. 하지만 그 대신에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잘게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하아~ 하아~”
방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으로는 땀이 흥건했다.
“..너무 많이 마셨어...그만하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중얼거리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마음이 진정되고 발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을 있다가 나오자 주경이 식탁에 앉아 술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속이 안 좋아요?”
“아..네..조금...오늘은 그만해야겠네요...”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 조금 전의 광경이 자꾸만 떠오르며 아랫도리가 또다시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할 것만 같았다. 선 걸음에 돌아서서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나오지 마세요..엎어지면 코 닿을 데니까요..”
“성우 씨...잠깐...”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는 그녀를 뒤로 하고서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닫힌 철문을 멍하니 바라보자니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머리 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진 탓에 진이 다 빠져나갔다. 집까지 멀지 않은 거린데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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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가까이 태반을 야근에다 주말까지 출근하며 정신 없이 보냈다. 실제로도 회사의 업무가 많긴 했지만 일정 부분은 내가 자청한 거였다. 괜히 일찍 퇴근했다가 집 근처에서 주경과 마주치기라도 할까 해서였다. 물론 내가 특별히 크게 잘못한 건 없었지만, 몇 번인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자위를 해버린데다가 장석에게서 수시로 전화가 걸려와 집으로 놀러 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통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이제는 꽤나 담담해진 상태였다. 다만 은영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약간 남아있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자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으, 응..자기야...”
조금 쉰듯한 은영의 음성이었다.
“감기야?”
“아니, 괜찮아.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
“어디? 아직 사무실이야? 조용하네?”
“응...다들 먼저 갔어..자기는?”
“이제 나가려고...언제 끝나?”
간만에 심야영화도 보고 들어가는 길에 주영부부를 불러내자고 말했다.
“난 끝나려면 꽤 늦을 텐데...어차피 만난다면 집 근처에서 볼 거지?”
“아마...”
“그러면 자기가 먼저 가서 자리잡고 있어, 난 회사에서 출발할 때 전화할게..”
“그래, 그게 좋겠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서 이번에는 장석의 전화번호를 누르며 약간은 긴장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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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도 조금 늦어질 거라며 주경 혼자서 나타났을 땐 가슴이 덜컥했지만 애써 담담한 척했다. 둘만 마주앉은 처음의 어색함도 술잔이 오가고 나자 금새 전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많이 바쁘셨었나 봐요?”
“아, 네...월급쟁이가 다 그렇죠...”
“호호호~ 집에서 놀고 먹는 제가 상팔자네요?”
“에이~ 놀고 먹다뇨? 가사일이 어디 보통일인가요?”
그러자 잠시 미소만 지으며 바라보던 주경이 문득 말했다.
“성우 씬, 참 좋은 사람 같아요...”
“과분한 평가인데요? 사람 좋기로 따지자면야 장석 씨만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이가...착하긴 하죠...”
“그게 그 말이죠...”
“과연 그럴까요? 착한 것과 좋은 게 같다는 게...”
뭔가 의미가 담긴 것 같아 토를 달기가 뭐해 다음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
“성우 씨는 결혼 안 해요?”
“결혼이라...”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물은 건 은영을 염두에 둔 걸 테니 말이다. 내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은영이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요?”
“사랑합니다...사실...”
최근에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은영에게도 못했던 이야기가 쉽게 술술 흘러나왔던 것이다.
“..제가 바보라서 은영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야 안 거죠...”
“..이런 이야기...은영이에게 한 적은 있나요?”
“그게 그 사이에 그럴만한 시간이 전혀 없어서...물론 그래 봐야 핑계밖에 안되지만...”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주경이 갑자기 손을 잡아왔다.
“주, 주경 씨?”
“저 때문인가요?”
“그, 그게 무슨...”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일 뿐이에요. 예쁜 걸 보면 만져보고 싶고 가지고 싶어지는....그런 걸로 은영이에게 괜히 미안해하지 마세요. 바보 같은 짓이에요...”
주경은 그날 자신을 훔쳐보는 내 시선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품었던 욕정도.
“그렇지만....”
“호호호~ 아직 내 매력이 죽지 않았구나 싶어 기뻤어요. 성우 씨가 아줌마라 그래서 자존심이 무척 상했었다고요~~”
“아~ 죄송합니다...”
“아이~ 참~ 웃자고 한 이야기에 너무 진지하면 내가 미안하잖아요?”
“하..하...그렇게 되나요?”
정말로 괜찮은 여자다, 아니, 그녀 말처럼 매력적이었다. 자꾸만 끌리는 것만 같은 마음을 다잡으려 애를 썼다.
“그런 본능은 저도 마찬가지에요...그때 성우 씨에게 보여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랬어요...”
“헛~!!”
너무나 깜짝 놀랐다.
“주, 주경 씨...”
그녀는 여전히 내 손을 꽉 잡은 채 눈을 응시하며 말문을 이어갔다.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이지만 사람들마다 행동은 다 달라요...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참아내는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쁜 사람도 있죠..물론 그보다도 더 심한 진짜 악당도 있지만...”
잔잔하게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 속에 담긴 깊은 뭔가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제가 성우 씨를 좋은 사람이라고 한 거에요...아마 전 약간은 나쁜 여자겠죠? 호호호~”
그때 갑자기 그녀의 전화벨이 울리자 우리는 깜짝 놀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통화하는 걸 들으니 장석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내 전화기마저 울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예상대로 은영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이제 곧 출발한다는 전갈이었다. 통화가 끝난 후 잠시 서로를 응시하다 주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네...이야기해요..”
“아니, 그냥....저 잠시만요....”
화장실에라도 가려는지 그녀가 일어섰다. 뭔가 심각한 이야길 꺼내려 했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실치는 않았다. 어쩌면 감당 못할 고백들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와르르~ 쏟아내 버릴까 두려운 건지도.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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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석이 합류했지만 은영은 아직이었다. 도착할 때가 꽤 지난 것 같아 전화를 하려는데 마침 그녀가 나타났다.
“미안, 많이 늦었지?”
“아니야, 피곤하지 않아? 고생했어, 빨리 앉아..”
주경과 장석에게 인사를 건네는 은영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집으로 바로 와서 편하게 쉬게 해줄걸 괜한 자리를 만들었나 싶었다. 내가 너무 무신경했다는 생각이 들어 테이블 밑으로 그녀의 손을 꼭 거머쥐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잔을 들고서 말했다.
“지각했으니까 보조를 맞추려면 벌주를 몇 잔 마셔야겠죠?”
“어? 저도 조금 전에 왔는데...”
“호호호~ 그래요? 다행이네요, 동지가 있어서..그러면 우리 둘이 석잔 원샷, 어때요? 오케이?”
“콜~입니다요~”
장석과 둘이 잔을 부딪치고는 단숨에 넘기더니 철철 넘치게 따라 연거푸 마신다. 무리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지만 어쨌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 두 사람이 발동을 걸자 나머지 둘도 덩달아 술잔을 비우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어느덧 테이블 위엔 빈 병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오늘도 변함없이 장석이 제일 먼저 해롱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일관성이라는 점에선 장점이기도 했다. 쉽게 예측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때였다. 내 뒤쪽 허리띠를 밀치고서 손이 파고들었다. 깜짝 놀라 곁눈질을 하자 은영이 다른 손으로 턱을 괸 채 주경과 태연하게 떠들고 있었다. 저번에 노래방에서 내가 그랬던 걸 복수하는 걸까? 그녀의 손이 점점 더 깊이 들어와 팬티 속까지 침범하더니 대뜸 엉덩이 골을 더듬기 시작했다.
‘윽~ 얘가 사람을 아예 바짝 말려 죽일 작정이구나!’
지금까지 은영이 먼저 이렇게 나오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그녀의 이런 도발적인 행동이 너무나 짜릿하고 즐거웠다. 마치 그때 내가 자신에게 한 그대로 되돌려주겠다는 양 골짜기를 손톱으로 살며시 긁다가 꼬리뼈부분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아~ 미치겠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당장 그녀의 가랑이로 손을 뻗고 싶었지만 참았다.
‘허억~’
자지가 움찔하면서 귀두가 닿은 팬티앞부분이 척척해지는 게 느껴졌다. 뾰족한 손톱이 항문을 ‘쿡’ 찔러오는 순간 하체로 ‘짜르르~’ 전기가 흐르면서 겉물이 흘러나온 것이다. 오늘의 은영은 정말 평상시와 너무나 달랐다. 과감성에서 뿐만 아니라 나를 자극하는 이 절묘한 손놀림까지.
그 정도로 도저히 만족 못하겠다는 듯이 기어코 항문을 뚫고 들어오려는 손톱에 나는 다급해졌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대로 두었다는 자칫 사정을 해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 때문이다.
술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면서 동시에 테이블 밑으로 은영의 허벅지를 꾹~ 거머쥐어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자~ 모두 같이 건배하죠?”
그러자 맞은편의 부부는 물론 은영도 할 수 없이 내 엉덩이에서 슬며시 오른손을 빼내 잔을 들었다.
‘쨍~ 쨍~’
잔을 부딪치고서 술을 넘기는 순간 자칫 목구멍에 걸릴뻔했다. 은영이 이번에는 자신의 허벅지에 놓인 내 손을 잡아당겨 가랑이로 이끄는 게 아닌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그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야~ 우리 러브샷 하자~ 응?”
“그, 그래...좋지...”
발그레해진 눈가로 색정이 뚝뚝 듣는듯해 현기증이 났다. 왠지 그녀의 모습으로 변한 서큐버스가 내 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서로의 팔을 꽈배기처럼 꼬는 사이 맞은편에서도 주경과 장석이 따라 한다고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숨결이 닿을 만큼 얼굴이 가까워지고 잔을 입술에다 가져다 대는데 아주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자기야, 보지를 만져줘...”
“!!!!!”
환청이 아닌가 싶어 눈을 부릅뜨자 은영이 살짝 윙크를 하고는 술을 넘기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정말로 아래쪽에서 잡은 내 손을 자기의 도톰한 둔덕에다 대고 꾹 누른다.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경황이 없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 오른손은 테이블 위에다 놓은 채 아래쪽에서 왼손의 손가락을 움직여 더듬기 시작했다. 얇은 치마 밑에서 뭔가가 옴찔거리며 뜨끈뜨끈한 열기를 전해주자 가슴 속에서 불이 확 치밀었다. 유혹적인 이 여체를 이대로 발가벗겨 구석구석 핥고 빨아 달콤한 보짓물로 갈증을 달랜 뒤 뜨거운 동굴 속으로 빠져들고만 싶었다.
“두 사람은 언제나 참~ 사이가 좋군요...”
그때 문득 주경의 차분한 음성이 들렸다. 또렷한 흑백의 눈이 한치의 흔들림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뒤에 숨은 뜨거운 열기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기야 아무리 테이블 밑이라지만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어깨나 팔의 움직임만 보아도 쉽게 알아채는 게 정상이었다. 물론 덩치만 커다랄 뿐 둔감한데다 벌써 취해서 눈이 풀린 저 친구만큼은 예외겠지만. 슬며시 손을 빼내려는 순간 은영의 허벅지가 ‘탁~’ 조여 들며 강한 거부의 의사를 표출했다.
“흐응~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니니?”
“그..래...당연한 일..맞아...”
은영이 당당하게 대꾸하며 주경이 뻔히 알 텐데도 오히려 보란 듯이 내 사타구니로 손을 뻗었다. 두 여자는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긴장감이 느껴지는 팽팽한 시선. 조마조마했지만 왠지 짜릿한 흥분으로 자지가 당장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기둥을 부드럽게 거머쥔 채 귀두를 엄지로 비비는 은영의 손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경의 앞이라는 이유가 가장 클 거다. 그렇게 숨 막히는 대치는 주경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서며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은영아..”
내가 재빨리 입을 여는 순간 은영이 자신의 사타구니에 있던 내 손을 잡아 치마 밑으로 끌며 속삭였다.
“겉으로 말고 직접 해줘...”
그 순간 머리 속에서는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축축하게 젖은 팬티를 예상했던 내 손끝에 느껴진 건 미끈미끈하면서도 흐느적거리는 뜨거운 보지입술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치마 위에서 만져지는 감촉이 너무 생생하다 싶더니 노팬티일 줄이야!
“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장석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소리 낮춰 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손가락은 꽃잎을 벌리고서 그 안쪽의 연약한 점막을 확인하는 일을 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다.
“하아~ 아까 너무 피곤해서 잠시 집에 먼저 들러 뜨거운 물에다 샤워를 하고 나왔어...그때 팬티를 빨았어..”
비록 집 바로 앞이라지만 이 얇은 치마 하나만 입은 채 보지를 내놓고 다녔다니, 은영에게 이렇게 뜨거운 면이 그간 잠자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도 신선했다. 그녀는 지퍼를 열어 자지를 직접 만지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게 아쉽다는 듯이 바지 위로 거머쥔 기둥을 꽤나 거칠게 흔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끈적끈적하게 느껴지는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아~ 하고 싶어, 우리 여기서 해버릴까?”
“허억~!”
물론 구석 골방이라 마음만 먹는다면야 정히 못할 것도 없지만 그건 우리끼리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은영의 말이 그냥 그런 기분을 나타낸 것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걸 듣는 순간 정말로 그래 버릴까 하는 아주 강한 유혹을 느꼈다. 그때 노래방에서 주경과 장석이 취해 거의 사랑을 나눌뻔했다는 게 아마 이런 분위기이었을 것이다. 자지를 대신하듯이 내 손가락이 구멍을 벌리고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아~”
가녀리게 흘러나오는 작은 신음소리, 절절 끓는 살점들이 조여와 꿈틀거리며 느른한 눈물을 밀어냈다. 주경이 곧 돌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미칠 듯한 욕구를 도저히 멈출 수는 없었다. 자연스러운 본능이니 괜한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했던 건 그녀가 아닌가? 들켜도 그만이라는 뻔뻔한 마음이 드는 중이었다.
‘똑~ 똑~’
갑자기 들린 소리에 급히 손을 빼냈다. 주경이 화장실에 가는 길에 주문을 더하기라도 한 걸까?
‘삐익~’
문이 열리고 들어선 건 종업원이 아니라 주경이었다. 아마 우리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을 거라 예상한 모양이었다. 조용히 제자리로 앉은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집으로 모두 같이 가서 한잔 더할까 싶었지만...그래선 안될 것 같네요...이만 끝내죠?”
왠지 미안한 마음에 변명을 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네요. 은영이도 늦게까지 일하느라 많이 피곤해하고, 저도 약간 취하는 것 같으니...일단 장석 씨는 우리가 같이 데려다 줄게요..”
“아니에요, 이 정도면 혼자도 잘 걸어요, 걱정 마세요...”
고개를 저은 주경이 장석을 깨우자 그녀의 장담처럼 약간 비틀거리기는 해도 혼자서도 잘만 일어섰다. 그리고 혀가 꼬이긴 했지만 우리와 제대로 작별인사까지 나누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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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참고 참았던 욕정이 화산처럼 폭발해 키스를 퍼부으며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앙~ 빨아줘~ 내 보지를 먹어, 자기야~”
현관 신발장에 기대고 서서 스스로 치마를 허리 위까지 걷어 올린 그녀가 가랑이를 넓게 벌린 채 요분질을 하며 소리쳤다. 창녀같이 거침없는 말과 행동들, 너무나 음란한 그 모습이 미치도록 아름답다. 그녀의 모든 것이 새로웠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아직도 숨겨진 것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이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그걸 꼭 찾으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