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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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글의 마지막에서 완결 운운한 건, 그냥 이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제 느낌을 말씀 드린 것뿐입니다...

실상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멉니다...지금까지의 훔쳐보기, 유부녀에서 장르도 점점 더 넓어질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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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뭔가에 놀라서 깨어났다. 악몽 비슷한 걸 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창 밖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를 들었던 듯도 하다. 턱 끝에 부딪치는 따스하고도 간지러운 느낌에 살며시 눈길을 내리자 고요한 숨결을 내뱉고 있는 주경이 보였다.

‘귀엽네...’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는데다가 다음달이면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될 여자, 하지만 엄지손가락을 입에다 살짝 물고서 모로 웅크린 채 잠든 애기 같은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포근한 젖가슴에다 나를 보듬고서 자장가를 불러주며 깰 때까지 지켜주겠다던 그 장담과는 반대였지만, 지친 내 가슴 속을 따스하게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녀의 단잠을 깨울 새라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이야말로 정말 착한 여자야.”

아마 그래서 장석과 천생연분일 거다.

‘..그래...은영이도...’

평화롭고도 안온한 이 느낌을 깨고 싶지 않아 은영에 대한 생각을 의식적으로 피해왔었지만 저절로 떠오르는 데야 어쩔 수가 없었다. 구태여 주경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은영이 착한 여자라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 문제는 별개의 일이다.

‘어쩌면 지금쯤...’

그녀가 낯선 남자 품에 나신으로 다소곳이 안겨있는 장면이 그려지는 순간 주먹을 거머쥐고서 벌떡 일어설뻔했지만 곧 손아귀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달려가서 패고 욕하면서 한바탕 뒤집어 놔? 그런 쪽팔리는 신파극을 하려고?’

아니다, 솔직해지자. 이런 상황에서마저 스스로를 속이려 하는가? 쪽팔려서가 아니라 진짜는 그 남자가 은영을 가리켜 ‘내 약혼녀’ 운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거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은영의 부모님께 인사까지 드려 공인된 약혼자인 그 남자와 그런 상황을 이용해 그녀의 육체를 탐닉하는 기생충 같은 놈인 나, 이것이야말로 남들이 내릴 객관적인 평가라는 게 냉엄한 현실이었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뒤집혀버린 것이다. 바로 그날 때문에.

‘그날의 약속만 없었다면....’

나도 모르게 주경을 내려다 보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지금 난 모든 원망을 그녀에게 돌리려 하는 건가! 가슴 속이 싸늘해졌다.

‘씨발...내가 비겁한 놈인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정말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누굴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발정 난 수캐처럼 박고 쌀 생각만 할게 아니라 은영에게 진작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었다면, 그래서 그녀의 집안에 얽힌 사정만 알았더라도......

차근차근 따져볼수록 때늦은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만 커지고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봐야 무슨 소용이 있다고...’

당장에 급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깐 미처 깨달을 겨를이 없었지만 이건 분명 은영이 보내온 간절한 구조요청신호였다.

현실과 타협하여 그 남자와 결혼한다면 과연 행복할까?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려받은 유산으로 풍족하게 생활하면서 남편 몰래 정부와 밀회를 나누는 그 삶이 말이다.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만약 명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이미 그가 나를 찾아왔었을 것이다. 지금 내게처럼 그에게 모든 걸 고백했을 테니 말이다.

수렁으로 빠져들면서도 그냥 자포자기하고 있던 은영에게 내가 ‘청혼’이라는 구명줄을 던진 것이다. 그 줄의 한쪽 끝을 꼭 붙잡은 채 끌어내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나도 이젠 행복해지고 싶어’라고 외치는 그녀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성..우씨?”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졸음기가 가득한 주경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깼어? 많이 피곤한 것 같은데 더 자...”

“하암~ 아니...충분히 잤어...어머! 성우 씨, 괜찮아?”

비몽사몽간이라 상황판단이 잘 안되다가 불현듯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주경이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물어왔다.

“난 이제 괜찮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아~ 성우 씨~”

꽈악 끌어안자 탄성을 토해냈다. 정말 고마운 여자였다.

“혹시 은영이와 통화가 가능하면 언제고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좀 전해줄래?”

“어, 어쩔 건데?”

“마음 놓아. 주경 씨가 걱정할 만한 사태는 없을 테니까..”

“흑~ 다행이야, 정말. 성우 씨 고마워. 흑~”

주경이 작게 흐느꼈다. 드러내지를 않았을 뿐 중간에서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일단은 은영이 말부터 들어봐야겠지...’

머리 속이 정리되고 마음도 어느 정도 굳힌 상태이긴 했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게 빠져있었다. 마지막 결정은 그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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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초조했었나 보다. 재떨이 속에 꽁초가 수북했다. 은영으로부터 집으로 오겠다는 메시지가 들어온 후 2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심결에 전화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었다.

‘띠리리링~ 찰칵~’

현관의 전자키가 돌아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왔어?”

목소리가 떨려나올 것만 같아 최대한 짧게 말했다. 그러자 시선을 못 마주치고서 고개를 푹 숙인 은영에게서 희미하게 대답이 들려왔다.

“..성우 씨...”

정말로 오랜만에 듣기에 낯설기까지 한 호칭이 뭔가가 울컥 올라오게 만들었다.

조금은 수척해진 얼굴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처음 보는 화사한 원피스에다 작은 여행용 가방, 마치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공항을 막 빠져 나온듯한 모습이었다.

“..어디서 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꽉 깨물어졌다. 은영의 고개가 더더욱 가라앉으며 어깨까지 움츠러든다.

“..제주...악~!”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이 나가버렸다. 내 손바닥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비명과 함께 뺨을 붙잡고 휘청거리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따라와!!!”

“흑~ 흑~”

미처 벗지도 못한 한쪽 힐 때문에 절뚝거리는 그녀를 질질 끌고서 욕실로 들어선 다음 샤워꼭지 아래로 밀어 넣었다.

‘쏴아~’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흠뻑 뒤집어쓰는 은영의 모습이 비에 젖어 처마 밑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고양이 같았다.

“..씻고 나와..구석구석 모두...”

“흑흑~ 흑~”

돌아선 내 등뒤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씨발~”

이런 상황에서도 내 아랫도리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에 젖어 투명해진 천 속으로 드러난 여체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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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이 뿌얘질 정도로 줄담배를 피워가며 겨우 진정시켰던 가슴 속이 수건으로 주요부위만 겨우 가린 채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꺼내는 은영의 모습에 또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아까의 원피스처럼 모두가 내 눈에 낯선 것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속옷까지도 말이다.

“그딴 것들 싹~ 다 갖다 버려! 내가 몽땅 다시 사줄 테니까!!!!”

내가 버럭 내지른 고함소리에 기겁을 하며 딱 굳었던 은영이 뭔가를 깨달았는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렸다.

“흑..자기야...고마워...흑흑~ 정말 미안..”

“시끄럿~! 뭘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무심결에 너무나 쉽게 속내를 들켜버렸다는 게 왠지 민망하면서도 울화가 치밀었다.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고는 안방으로 들어선 다음 침대 위에다 내던졌다.

“꺅~!”

수건이 나풀거리며 떨어져나간 나신이 물기를 머금고서 빛났다. 여전히 매끄럽고도 아름다운 육체였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빠알간 보지입술이 살짝 내비쳤다. 지난밤 내내 아니 어쩌면 바로 얼마 전까지도 다른 남자의 자지가 박혀 물을 줄줄 흘려냈을 음란한 저곳. 순간 열이 확 뻗어 아랫도리만 까 내리고 덮쳤다.

“자, 자기...악~! 아, 아파~”

다짜고짜 박아버리자 은영의 허벅지가 딱딱하게 굳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채 준비도 안된 안쪽의 연한 속살이 힘겹게 길을 내며 귀두를 아프게 했다.

“아흑~ 아~ 자기~”

“씨발~ 이 씨발~ 나쁜 년~”

“아학~ 미안해~ 앙~”

쉴새 없이 욕을 하며 거칠게만 박아댔지만 어느덧 적응한 질이 화려한 율동을 보이고 있었다.

“헉~ 헉~ 씨발 년, 개 같은 년~”

“아앙~ 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으헉~ 넌 내 거야~ 내 여자란 말이다~!!! 허억~”

“아하하학~ 악~ 사랑해~ 사랑해~ 아~ 자기야~”

머리 속이 텅 비는 것만 같은 엄청난 쾌감과 함께 정액이 봇물처럼 터져나갔다. 내 등으로 손톱을 박으며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 ‘부들부들~’ 떠는 은영의 질 속 깊숙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 붓고는 털썩 늘어졌다.

‘그래...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은영을 끝까지 미워할 수가 없다는 걸, 여전히 사랑한다는 걸, 때문에 결국엔 용서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을 난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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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폭풍처럼 격렬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둘은 나란히 드러누워 침묵하고 있었다.

“이야기해봐, 처음부터 하나도 빼놓지 말고...”

“..응...”

팔베개를 해주자 품으로 안겨 들더니 나지막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 그건 주경 씨한테 들었으니까 됐고, 일단은 세 사람 관계부터 명확하게 설명해봐...”

“..주경이가 이야기 안 했어?”

“대충만...”

“으, 응...”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은영과 주경은 말 그대로 단짝이었다. 그런데 죽고 못살던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금이 가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게 바로 명계였다. 당시 그와 사귀던 주경이 솔로인 친구가 안쓰러워 명계를 통해 은영에게 소개팅을 주선했다. 문제는 주선자이었던 그 명계란 놈이 첫눈에 은영에게 반해버렸다는 거다.

그 이후는 흔하디 흔한 전개였다. 이런저런 구실로 둘만 만날 자리를 만든 명계가 친구의 애인이기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던 은영을 취하도록 만들어 모텔로 데려갔다는 그런 사연 말이다.

은영이 다음날 깼을 땐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태였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그에게 차마 모진 소리는 못하고 그저 서로의 실수였으니 비밀로 하잔 말만 하고 급히 도망 나왔다. 그런데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사랑을 맹세하는 명계에 조금씩 흔들리다 결국엔 또다시 관계를 가지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가 점점 더 깊어지자 당연히 주경에게 꼬리를 잡혔다. 주경이 발작하는 대신 둘 모두에게 절연을 선언하고 돌아서서 그나마 조용하게 끝나는 듯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친구에게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애욕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질질 끌려가던 은영 앞에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주경보다도 오히려 더 오래 전부터 명계와 깊은 관계였던 그녀는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길거리에서 마주치자마자 은영의 뺨을 때리고는 머리채부터 휘어잡은 것이다.

“..그 일로 휴학까지 했었어...”

학교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라 은영을 아는 사람들이 목격했던 것이다.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남자하고는? 그때 헤어진 거야?”

“으, 응...1년간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버렸거든. 어차피 집에다가는 다른 핑계를 댈 수도 없어서...”

복학 후 쥐 죽은 듯이 학교와 집만 오가는데 그 사이에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주경이 어느 날 문득 찾아왔다. 어색한 시간만 흐르다 절친했던 예전 분위기가 조금씩 되살아날 때쯤 주경이 그 후의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명계란 놈은 자기회사 내에 여자가 또 있었단다. 은영을 휴학하게 만든 그녀가 이번엔 명계의 회사까지 쳐들어가 발칵 뒤집어놓았다. 덕분에 명계는 사표를 내고 지방 어딘가로 사라졌다. 대단한 여자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여자를 그렇게까지 만든 그 놈이 더 대단하다.

“나..참...그럼 그 동안은 전혀 소식도 몰랐던 거야?”

“응, 맞아.”

“그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며? 우리회사 건물?”

“...응...”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부터는 아주 거북한 이야기가 될 거다. 하지만 듣고 싶다.

“해봐...모두다 상세하게...”

“자기...

“듣고 싶어. 왜 그렇게 됐는지, 그때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리고 그 느낌까지도.”

은영이 굉장히 곤혹스러워했다. 이미 모든 걸 들킨 상황이라지만, 그걸 자신의 입으로 직접 그것도 소설을 쓰듯이 생생하게 그려내라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얼굴에 서린 단호함을 보더니 결국 말문을 열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어...그런데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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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툭’ 건드리는 손길에 깜짝 놀라면서도 아마 성우일 거라는 반가운 마음에 뒤돌아보았다.

“여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구나~ 하하하~ 정말 오랜만이네?”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도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머리 속 깊은 곳에다 꾹꾹 눌러 처박아놓았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어? 설마 날 잊은 거야? 햐~ 이거야 원~ 나야 나, 명..”

“명계 씨...”

“하..하하...그러면 그렇지. 많이 놀랐던 모양이구나? 미안해,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니에요...잘 지냈어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첫사랑이자 자신이 여자임을 알게 해준 남자인데. 하지만 그 대신에 많은 대가를 치르게 만든 남자.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과 함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은영이도 여기서 근무해?”

뻔뻔스러운 건 여전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다.

“아니에요...”

“그럼 애인이라도 보고 싶어서 온 거야?”

“그, 그런 사람 없어요. 그냥 지나는 길에 친구를 잠깐...”

왜 그랬을까?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린 건.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햐~ 너무,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은 정말 몰랐어. 우리사무실에서 차나 한잔 하고 가, 괜찮지?”

“아~! 네...”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안으로 들어선다. 술 때문일까? 아니면 노래방에서 주경과 그 약혼자의 행태를 보며 흥분한 탓? 희미한 향수냄새가 섞인 땀냄새가 확 풍겨오는 순간 아래가 짜릿하고 머리 속이 멍해져 거부할 시도조차 못하고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한 걸? 아니, 더 예뻐졌어...”

쉴새 없이 떠들고 있지만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깨를 껴안았던 그의 팔이 어느새 밑으로 내려와 허리를 휘감은 것이다. 그리고는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손, 마치 애무라도 하는 듯이 허리와 엉덩이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띵~’

갑자기 울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 내리지.”

“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복도는 정적만이 흘렀다. 여전히 허리를 안긴 채 걸었다. 그의 손이 조금씩 밑으로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이사온 지 며칠 안돼서 좀 어수선할 거야..”

“네..”

안으로 들어서자 아닌 게 아니라 아직도 풀지 않은 박스가 여기저기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몸을 휙~ 돌려세우더니 허리를 강하게 조여오는 팔과 함께 뜨거운 숨결이 다가왔다.

“이, 이러지 말아...흐읍~”

고개를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그대로 덮쳐버린 두툼한 입술, 아찔한 현기증에 가쁜 숨을 내쉬는 순간 물컹한 혀가 들어왔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입 속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살덩이, 동시에 허리를 감았던 손이 밑으로 내려와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고 바짝 달라붙은 아랫배로는 딱딱한 게 눌러왔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가랑이 사이론 화끈한 열기가 느껴지고 뭔가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엉덩이를 마구 주물러대던 손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와 깊은 곳을 파고들려 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그만~”

그의 가슴을 밀어내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찻잔은 어디 있죠? 제가 탈게요...아, 저거면 되죠?”

구석 쪽에 자리한 싱크대 위에서 찻잔을 발견하고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나 젖어버린 그곳을 들켰을 것만 같아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뒤에서 와락 껴안으며 젖가슴을 거머쥐는 손길에 비틀거리고 말았다.

“아학~ 이, 이러지 마...”

귓가에 들려오는 뜨거운 속삭임.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어. 부드럽고 따스한 이 느낌은 물론 꽉꽉 조여주던 네 보지도...”

“아흑~”

레깅스와 팬티까지 단숨에 고무줄을 들치고서 파고드는 손,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민감한 곳만 건드리고 있었다. 점점 더 깊이 들어오는 손에 자신도 모르게 가랑이를 벌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옷을 들어서 보지를 보여줘...어서...”

어느 틈에 하의를 무릎까지 내려오게 만든 그가 돌려세워 정면을 향하게 하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스스로 블라우스 자락을 잡고는 서서히 걷어 올리고 있었다.

“역시...여전히 정말 예쁜 보지야...속도 마찬가지겠지?”

“아학~”

몸 속으로 들어오는 굵은 두 손가락에 신음을 토하며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는 끝까지 천천히 밀어 넣었다가는 손목을 틀어 빙글 돌리면서 빼내는 손짓에 부들부들 떨었다.

“말해봐. 내가 너무 그리웠지?”

“아흐흑~ 아~”

빠르게 드나드는 손가락에 아래쪽에서는 찌걱대는 질척한 물소리가 요란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줄줄 새는 애액이 바닥까지 튀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집요하게 물어오는 이 남자. 입술을 꼭 깨물고 참아보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을 뿐만 아니라 아랫도리마저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어때? 오랜만에 보니까 정말 반갑지? 당장에라도 넣고 싶지?”

“하아~ 하아~”

그가 지퍼를 열고 꺼낸 것에 숨이 탁 막혔다. 핏줄이 불끈 솟아오른 굵고 단단해 보이는 기둥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엉덩이를 내밀어...”

돌아서게 해 허리를 누르는 손길에 엉덩이를 순순히 내밀었다. 게다가 어서 넣어주기를 바란다는 듯이 스스로 허리를 더욱 낮추고서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그때 딱딱한 귀두가 보지 사이를 비비자 무릎이 탁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을뻔했다.

“아윽~”

뻐근하게 구멍을 벌리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에 싱크대를 꽉 붙들었다. 그리고서 완전히 꽉 찬 느낌과 함께 젖가슴을 거머쥐는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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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충격이었다. 사실은 그 남자가 반강제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미안해...자기...”

“아, 아니야...”

내 심경이 얼굴에 드러난 걸까? 너무나 미안해하는 은영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주경의 말이 떠올랐다. ‘거절할 줄 모르는 여자’, 딱 맞았다. 정말로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그때 한가지 생각난 게 있었다.

“흡연실은?”

“으, 응? 흡연실? 무슨 흡연실?”

“아니, 됐어...그러고는 내게 바로 온 거야?”

“응..그게...”

시간적인 우연의 일치가 있긴 했지만 그때 흡연실에 있던 건 다른 사람인 모양이다. 어쨌던 제정신이 돌아온 은영이 뒤늦게야 자신이 저지른 짓을 깨닫고서 허겁지겁 도망쳐 나와 그때 마침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타고 있던 두 남자의 시선이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아 아무 층이나 눌러서 도중에 내려버렸다. 그런데 무의식 중에도 익숙한 우리사무실 층을 눌러버린 탓에 나와 마주쳤을 땐 정말로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단다.

“흐음..그래서 나를 껴안은 거야? 당황해서?”

“으, 응...무섭기도 하고..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후 화장실에 들러 한바탕 눈물을 쑥 뽑고서 마음을 진정시켜 속옷을 갈아입고 세수도 했다는 거다.

“허..허...”

여자를 일컬어 요물이라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었다. 영악하지 못한 은영마저도 그 짧은 순간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으니 다른 여자들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그건...”

이어진 이야기는 주경에게서 들은 것과 별반 다른 게 없었다. 가뜩이나 나는 만나기 힘들고 - 주경의 문제로 고민하며 2주 가까이나 일에만 파묻혀 있었으니 - 집에서 압박을 받던 차에 프러포즈를 하며 따라다니는 그에게 결국 다시 몸을 허락해버렸다는 거나,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는 정도였다.

명계와의 밀회는 주로 평일 날 퇴근 후에 이루어졌다. 때로는 점심시간에 맞춰 갑자기 불러내는 바람에 차에서 관계를 가진 적도 있다는 말에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그 남자가 워낙 밝혀서 그랬겠지만 말이다.

“어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어? 내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

사실 그게 너무나 궁금했다. 내게 다 털어놓을 각오를 했다지만 이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나를 잘 설득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에 아예 기름을 끼얹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녀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명계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이 힘들었는데, 그 힘겨웠던 결정마저 나로 인해 무너지고 나자 이젠 도저히 또다시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졌다.

“자기를 속여왔던 게 너무 괴로웠어...그래서...”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모두 보여주고서 용서받든지 아니면 떠날 작정이었다.

“떠나다니 어디로?”

“하다만 디자인 공부나 마저 하러...아빠도 반대하진 않을 거니까...”

주경이 언뜻 언급했던 유산문제라던가 은영의 고백에서 나온 어학연수에 이어 이젠 유학이야기까지 볼 때 확실히 여유가 있는 집안인 모양이었다.

‘유학? 거기에 가면 널 가만 놔둘 거 같아?’

같은 한국남자는 물론 동양여자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 희고 검은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 그곳이다.

어쨌던 그녀의 절박했던 심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와 닿아 가슴이 뭉클했다. 보드랍고 연약하기만 한 그녀의 볼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많이 아팠지? 때려서 미안해...”

“흑~ 아니야...맞아도 싼 걸...흑...”

뺨을 쓰다듬어주는 다정한 내 손길에 또다시 눈물이 솟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시울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며 속삭였다.

“사랑해...은영아...”

“흑흑흑~ 사랑해, 자기야..고마워...”

촉촉한 입술을 잠시 맛보다가 다시 말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마...그랬다가는 그땐 정말로....”

“으, 응...”

은영이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제부턴가 터질 것처럼 되어있던 내 자지로 슬며시 손을 뻗었다.

“나 또 안아줘...”

“그래...얼마든지...”

그녀의 위로 몸을 올리며 또다시 입술을 겹쳤다. 목을 꽉 껴안아오는 여체가 너무나 뜨거웠다.

‘어쩌면...’

그녀가 비슷한 일을 다시 벌인데도 왠지 또 용서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좀 전에 말을 하다 끊은 것이다.

“아흑~”

물기를 타고 그녀의 몸 속으로 매끄럽게 들어가는 자지를 쫄깃쫄깃하게 물어오는 뜨거운 속살에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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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문제는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은영을 믿기로 하고서, 결혼을 결심한 이상 제일 급한 일부터 우선 처리하기로 했다. 그건 바로 은영의 아버지를 뵙는 거였다.

“자기...”

“괜찮아, 나만 믿어...그리고 내가 이야기한 거...기억하지?”

“으, 응...”

모든 죄는 내가 뒤집어쓰기로 했다. 3년 동안을 깊은 사이로 지내왔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은영이 자신이 아는 선배를 대타로 내세워 인사 드리게 만든 괘씸한 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건 반쯤은 사실이기도 했다.

“아빠...”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서자 은영이 주춤주춤 일어서며 그렇게 말했다. 굉장히 완고해 보이는 인상이 주눅들게 만들었지만 다리와 아랫배에다 단단히 힘을 주고서 벌떡 일어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 성우라고 합니다...”

“흠.....일단 앉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그 모습에서 왠지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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