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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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의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은 사람을 쉬지도 못하게 하는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너무나 급했던 것이다. 여자들 모르게 따로 자리를 만든 걸 두고서 무슨 흉계냐며 장난스럽게 웃던 장석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니까...다 끝난 줄만 알았던 그 놈이 그런 짓을 하면서 여전히 은영 씨를 괴롭히고 있다고?”

“그래.”

“흠..그렇단...말이지?..”

중얼거리는 장석의 표정이 참으로 묘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분노하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내가 섬뜩할 정도로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다시 쳐다봤을 땐 착각이었나 싶게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쉽게 잡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만약에 잡는다고 해도 그 다음은 어쩌려고? 돌을 매달아서 저 어디 인천 앞바다에다 던져버릴 거야?”

“휴~ 마음 같아서야 정말 공사장 구덩이에다 파묻고 콘크리트로 발라버리고 싶지만...”

둘의 입에서 마치 조폭들에게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물론 진짜로 그럴 능력도 담력도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말만이라도 그렇게 하고 나니 가슴이 조금은 후련했다. 혼자서 끙끙대는 것보다는 이렇게 믿고 의논할 친구가 있다는 게 확실히 힘이 되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일단은 그 이유부터 알아야겠지. 그리고 그 동안의 일들도 다 물어보고.”

“묻는다고 순순히 대답하겠어?”

“당연히 아니겠지. 하지만 패서라도 불게 만들어야지. 제 놈도 한 짓이 있으니까 고발한다거나 하지는 못할 거야.”

“몇 대 맞아서 과연 자백할까?”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한 거야. 조지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옆에서 분위기만 잡아줘..아마...”

“흐흐흐~ 내가 인상만 쓰고 있어도 바짝 쫄 거라고?”

“..미안하다...”

“하하하~ 걱정 마. 양복바지에다 쫄티를 입으면 조폭분위기라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사실이었다. 문신만 하나 떡 그려 넣으면 영락없는 행동대장이었다. 평소 같으면 농담으로 이런 이야길 했겠지만 지금은 굉장히 미안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기충격기라도 쓰지 않는 이상 사지육신이 멀쩡한 성인남자를 나 혼자서 어찌 감당하겠는가? 혹시나 지은 죄 때문에 고분고분 따라오지 않는 다음에야 말이다. 물론 그럴 리는 절대 없을 테고.

“그런데 잡을 방법은 생각해둔 거야?”

“함정을 팔 생각이야. 그러니까...”

놈은 분명히 우리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일이 있은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회사우편함에다 그것을 갖다 놓았다. 게다가 혼자서 친정으로 가는 걸 알았다는 건, 나든 은영이든 둘 중 하나를 감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점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일단 장석이 전처럼 은영을 챙기기가 힘들다는 핑계거리를 만드는 건 쉬웠다. 여기저기 인사도 다녀야 했고, 회사동료들에게 답례회식도 시켜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거기에다 보태서 내 야근이나 지방출장 때문에 - 물론 시늉으로지만 - 은영이 혼자서 퇴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십중팔구는 놈이 접근할 것이다. 그때 몰래 뒤를 밟던 장석이 내게 연락을 해 같이 덮치자는 게 계획이었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거야. 나보다도 네가 고생이 많을 테고.”

“그런데 놈을 어떻게 알아보지? 얼굴도 모른다며?”

장석의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 대답했다.

“그냥은 헤어지지는 않을 테니까...그 사이에 확인할 시간은 충분해.”

“성우야...”

“난 괜찮아.”

다시 떠올리긴 정말로 싫은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만나게 되면 모텔이든 차에서든 섹스를 할 건 거의 확실했다. 장석의 걱정 어린 얼굴에 씁쓸하게 웃어주며 안심시켰다.

“은영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일단은 놈을 잡는 게 급해. 고생스럽더라도 부탁 좀 하자.”

“임마, 너랑 나랑 남이냐? 하여간에 한번 해보자. 그리고 분명히 은영 씨한테 피지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고마워, 장석아..”

“자식이 또? 그딴 소리 그만 집어치우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자.”

“그래.”

한결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최근의 불안한 예감들은 거의 들어맞았는데, 지금의 좋은 이 느낌도 꼭 들어맞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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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너무 허점이 많은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전문가가 아닌 단 두 명으로서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빠르게 나타났다.

장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초저녁이었다. 은영의 차가 회사를 빠져 나와 큰 길로 막 접어들기 직전 갑자기 왠 남자가 막아서더니 곧바로 조수석으로 올라탔다는 그 연락을 받자마자 급히 출발했다.

“xxx 쪽으로 빠지는 것 같은데?”

“알았어...일단은 그쪽 방향으로 갈 테니까..계속 연락 줘..”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냥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태워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집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단다. 사흘 연속을 야근 핑계로 혼자 퇴근시켰더니 마침내 놈이 꼬리를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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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준 대로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자 자기 차에서 나오는 장석이 보였다. 그 옆에다 주차를 하고 내렸다.

“장석아..”

“어, 왔어?”

어두컴컴한 주위를 둘러보자 창고 같은 조립식건물들이 여기저기에 서있었다.

“여기야?”

“으, 응...조금 더 올라가야 해. 혹시나 눈치챌까 싶어 멀리서 확인만 하고 다시 내려온 거야.”

“그 사이에 다른 데로 옮긴 건 아닐까?”

“아닐 거야. 내가 살펴봤는데 그 위쪽으로는 그냥 산길이야. 차로 움직이려면 이 길로 다시 나오는 수밖에 없어.”

요즘은 이 녀석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쉽지 않았을 텐데도 놓치지 않고 잘 따라잡은 것뿐만 아니라 마지막 일 처리까지도 확실했다.

“그래, 수고했어. 그러면 가보자.”

“정말 괜찮겠어? 차라리 내가 먼저 들어가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난 다음에..”

“괜찮으니까 걱정 마.”

장석이 뭘 우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장을 들이닥쳤을 때 보게 될 광경이 내게 큰 상처를 줄 거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미 겪을 대로 다 겪은 상황이었다. 물론 간접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건 큰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던 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은영의 입장을 생각해 명계 혼자 남았을 때 덮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이런 절호의 찬스를 다시 잡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놈이 발뺌하며 버티면 서로가 굉장히 피곤해진다. 게다가 은영에겐 이미 기회를 주었었다. 그녀 스스로 먼저 모든 걸 고백할 시간 말이다. 이제는 상처가 썩기 전에 억지로라도 도려내야 할 시기였다.

산비탈 바로 아래쪽의 마지막 건물 옆에 은영의 차가 서있었다.

“이 안에 있어?”

“응..”

“얼마나 됐는데?”

“한 30분...”

쇠사슬과 자물통으로 꽁꽁 채워진 큰 문짝의 한쪽구석으로 난 작은 문은 자물쇠가 풀려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창고가 맞았다. 여기저기 사무실집기와 박스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사무실을 급히 정리하면서 이곳에다 옮겨놓은 모양이었다.

그때 창고의 한쪽 구석을 조립식 패널로 막아놓은 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문틈으로 새나오는 빛줄기.

“저기..”

“사무실 같아 보이는데..”

턱짓을 하자 장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기에 있을 거다. 나도 모르게 꽉 거머쥔 주먹이 땀으로 축축했다. 한발한발 다가갔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 이대로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손잡이를 쥐는 내 손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학~”

딱 굳어버렸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아니, 장석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서 앞장선 건 이런걸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환희의 신음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열게...”

고압선을 붙잡고 감전이 된 것처럼 문손잡이를 쥔 채 부들부들 경련만 일으키는 내 손을 장석이 떼내며 그렇게 속삭였다. 그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먼저 들어가겠어.”

최악의 장면을 보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먼저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천천히 손목을 틀자 손잡이는 너무나 쉽게 돌아갔다. 이제 이걸 열고 나면 더 이상 돌이킬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나아가야만 했다. 이 문 너머에서 지옥의 불구덩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도 말이다.

‘삐~익~’

순간 흠칫하고 말았다. 자주 사용하지를 않는지 경첩에서 나는 소리가 제법 컸다. 하지만 안쪽에선 전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흑~ 아~ 아~”

“헉~헉~ 개걸레 같은 년~ 헉~ 좋지?”

“아앙~ 앙~”

“씨발년~ 아주 좋아서 죽는구나~ 보지가 내 좆을 물고는 안 놔주는데? 헉~ 헉~”

쌍소리가 난무하고 있었다. 게다가 ‘철썩~ 철썩~’하고 따귀를 때리는 듯한 소리도 들려와 저절로 시선이 갔다.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 내 아내 은영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나신으로 책상에다 두 손을 짚고서 탐스러운 엉덩이를 뒤로 내민 채.

‘찌걱~ 찌걱~ 푸르르르~’

사내의 아랫도리가 세차게 부딪칠 때마다 둥그스름한 엉덩이가 짜부라지면서 달뜬 신음소리와 함께 음탕한 보지트림을 내뱉고 있었다.

‘철썩~’

사내의 손이 엉덩이를 때리자 요란한 소리가 실내를 울리고 동시에 은영이 ‘파르르~’ 떠는 게 보였다.

“흐흐흐~ 꽉꽉 무는 게 역시 죽이는데?”

새하얀 엉덩이 군데군데에 벌겋게 손자국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 팔을 뻗어 책상 위에서 뭔가를 집어 드는 남자.

‘찰칵~’

플래시 불빛이 터지는 순간 눈앞이 환해지더니 아지랑이가 맴돌며 현기증이 일었다. 비틀하는 나를 붙드는 두툼한 손에 고개를 돌리자 잔뜩 일그러진 장석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툭~ 툭~’ 두드리고는 앞으로 나섰다.

“제, 제발 사진은~ 아흑~”

깜작 놀라 몸을 뒤채려는 은영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남자가 말했다.

“씨발년, 슬쩍 쑤시기만 해도 질질 싸는 년이 내숭은?”

그리고서 허리를 크게 돌리자 은영이 교성을 토해냈다.

“아앙~ 제..발~ 앙~”

“그 새끼는 네가 이런 년이란 거 모르지? 앞으로 내 말을 안 들으면 그땐 이걸 확~ 꺼억~”

뒤에서 다가간 장석의 커다란 손이 남자 목을 콱 틀어쥐더니 그대로 끌어내 벽에다 밀어붙였다. 그러자 거의 허공으로 뜨다시피 해서 바닥에는 발끝만 겨우 닿은 남자가 그 두터운 팔뚝을 두 손으로 잡고서 버둥거렸다. 하지만 장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에서 박고 있던 자지가 갑자기 쑥 빠져나가자 은영이 의아한 듯 뒤돌아보다가 눈이 찢어질 듯 커져 입만 떡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꺄아악~ 꺅~”

그러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눈자위가 돌아가더니 그대로 ‘쿵~’하고 쓰러져버렸다.

“은영아~ 은영아~”

기겁을 한 내가 그녀를 끌어안고서 뺨을 때렸다.

“으~ 으~”

가늘게 흘러나오는 소리,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성우야. 일단 은영 씨를 데리고 나가서 차에다 눕혀. 여긴 내게 맡기고..”

“그, 그래...”

장석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들어 은영을 벌떡 안아 들었다.

“이 새낀 내가 손을 좀 보고 있을 테니까..은영 씨가 깨거든 진정 좀 시키고 천천히 와도 돼..알았지?”

“고마워...”

자칫 저대로 질식사를 시키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지만 그 정도까지 이성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목을 졸랐던 손이 남자의 목덜미 뒤쪽을 거머쥐고서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콜록거리며 숨쉬기를 힘들어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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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을 내 차의 뒷좌석에다 눕힌 다음 손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아주었다.

“으~응~”

정신이 돌아오는지 몸을 뒤척이는 그녀의 하체에서 진한 냄새가 확 풍겨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허벅지 안쪽까지 애액으로 질척했다. 게다가 아직도 보지가 벌렁거리며 끈적한 물을 조금씩 흘려내고 있었다. 문득 장석의 손에 잡혀 대롱거리던 그 남자의 아랫도리로 보짓물에 흠뻑 젖은 자지가 끄덕거리던 게 떠올랐다.

“씨발~ 미친 놈..”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은영을 범하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나 강하게 밀려왔던 것이다. 게다가 창고로 들어서던 처음 그때부터 내 자지는 이미 터질 것 같은 상태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정신이 드는지 그녀가 눈을 깜박거리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자, 자기?”

“그래, 나야. 정신이 들어?”

“흑흑흑~”

구석으로 피하며 잔뜩 웅크린 은영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너무나 추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몸을 동그랗게 만 그녀의 모습이 짠하게 만들었다.

“휴~ 은영아...”

“흑흑흑~ 흑흑~”

하고 싶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던 것 같은데 하나도 생각나지를 않는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를 와락 당겨 품에다 꽉 껴안았다. 따스한 여체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가슴팍을 적셔오는 축축한 눈물이 내 가슴 속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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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없이 울기만 하는 은영을 겨우 달래 차에서 잠시 기다리게 하고서 창고 안으로 돌아온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장..석..아...”

“어? 은영 씬 좀 어때?”

“으, 응? 괜찮아..그런데...도대체 이게...”

“나도 모르게 좀 흥분을 해서 말이야. 크게 다친 데는 없으니까 너무 걱정 마.”

저게 멀쩡한 거라고? 한숨만 나왔다. 그러자 장석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묻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봐. 아마 다 대답할 거야. 뭐, 시원찮다 싶으면...”

“흑흑~ 다, 다 마하게요. 제발~ 흑흑흑~”

장석이 말끝을 흐리면서 슬쩍 째려보자, 바닥에서 벌거벗은 채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 기어오더니 내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발음조차 제대로 못할 지경인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한때 가졌던 살의는 물론 증오심도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휴~ 장석아...”

“응? 왜? 양에 안 차? 하기야 너도 맺힌 거 많을 테니까...”

“엉엉엉~ 자, 자못해써요~ 제발 사려주세요~ 엉엉엉~”

이번에는 내가 패려는 줄 알았는지 손을 싹싹 비비며 대성통곡을 한다. 왠지 우리가 악당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반면 가슴 속이 후련해지면서 야릇한 쾌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 ‘벌레’를 확 밟아 터뜨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깨닫고서 소름이 쫙 끼쳤다.

‘내가 이렇게나 잔인했다니...’

장석은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절대 아니었다. 내가 들어섰을 때도 이미 엉망이던 얼굴이 지금은 더 부어서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쌕~ 쌕~’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는 저 코는 중간부터 푹 내려앉은 걸 보니 부러진 게 분명했다. 게다가 거의 감기다시피 된 두 눈 중에 한쪽은 몇 바늘은 꿰매야 할 정도로 눈두덩이 찢어졌다. 몸 여기저기로 발자국과 피멍이 보였고, 가슴과 갈비뼈 쪽도 시꺼멓게 살이 죽어있으니 어쩌면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게 부러진 코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장석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넌 좀 나가있어라.”

“응?”

“걱정 마. 설마 이런 상태에서 덤비기야 하겠냐? 당장에라도 실려갈 판인데..”

“이 자식이 엄살이 워낙 심해서 그런 거야..확~”

“히익~”

장석이 한 팔을 들어올리는 시늉을 하자 남자가 기겁을 하고는 내 뒤쪽으로 기어가 숨었다.

“문밖에서 기다려...필요하면 부를게.”

그 말에 내 다리를 꼭 잡은 남자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알았어.”

그제서야 남자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고서 장석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돌아섰다.

“명계 씨, 맞나요?”

“흑흑~ 네?”

아직도 훌쩍이고 있던 남자가 미처 못 들었는지 고개를 쳐들며 되묻는 순간 그대로 따귀를 날려버렸다.

“아악~ 아흐흐~ 엉엉엉~”

바닥으로 쓰러진 남자가 얼굴을 감싸 쥐고는 대굴대굴 구르며 펑펑 울었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들었을 것이다.

‘그래, 이걸로 끝내자..’

이렇게라도 꼭 한대는 패고 싶었었다. 장석이 심하게 망가뜨린 바람에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이었지만 말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부러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다시 대답이 제때 안 나오면 저 친구에게 맞길 테니까..”

“흑흑흑~ 제발~”

바닥에서 뒹굴던 남자가 번개같이 몸을 일으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장석이 녀석,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했길래 오줌까지 다 지리냐?’

쪼글쪼글해진 자지에서 흘러내린 노란 물이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장면에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을 수 밖에 없었다.

“명계 씨, 맞나요?’

“흑~흑~ 네, 도 며계..헉~! 며어~계~”

“아, 아~ 그 정도면 충분해요..”

묻지도 않은 성까지 대답하는 성의를 보이다가 발음이 제대로 안되자 그걸 꼬투리 잡을까 겁이 났는지 다시 대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 이제 대화를 나눌 자세가 제대로 된 것 같군요...이야길 시작해볼까요?”

“훌쩍~ 네, 네~ 훌쩍~”

내 말투가 질리는지 명계는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물론 그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잔인한 폭력 다음에 이어지는 정중하고도 차분한 말투는 사람을 두렵게 만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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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는 장석이 태워서 데려갔다. 망가진 그 모습에 은영이 놀랄까 걱정되었던 것도 있지만 나중에라도 딴 생각을 못하게 거처도 알아두고 사진과 영상을 수거하기 위해서였다. 컴퓨터와 사진기 그리고 핸드폰까지 샅샅이 뒤져서 확실하게 파기하겠다면서 자신에게 맡기라는 장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지만 가장 놀란 건 바로 장석에 대해서였다. 나마저도 그가 사실은 조폭출신이 아닌가 할 정도로 너무나 실감나게 행동하고 협박했던 것이다. 저렇게 당한다면 나 역시 감히 신고는커녕 그림자만 비쳐도 질겁을 하고 도망갈 것 같았다.

그를 놀리며 농담으로 부르던 ‘헐크’가 아닌 진짜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여자들에겐 비밀이라며 싱긋 웃는 변함없는 그 눈빛에 그런 불안감은 곧 사라졌다. 적이면 몰라도 친구인데 이만큼이나 든든한 우군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지금 내 머리 속은 그런 걸 오래 붙들고 있을 여유가 전혀 없었다.

“씻고 나올게..”

같이 씻자고 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가는 은영을 바라보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마 그녀는 내가 그 말을 꺼낼까 겁이 났을 거다.

“휴~”

서재로 갈 기력도 없어서 그냥 담배를 물었다. 아까 명계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러니까 장인이 시켰다는 거죠?’

‘네, 네. 매세코 트림엄습니다.’

욕지기가 치밀어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니기미 씨발~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까 둘을 갈라놓기만 하면 돈을 주겠다고? 좆 같은 인간..”

한번 내뱉고 나니 욕이 술술 나왔다. 의심은 하면서도 설마, 설마 했던 일이 모두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은영의 매몰찬 반응에 포기하고 있는데 장인에게서 연락이 와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깟 여자 하나 못 휘어잡아서 뺏겼냐고 마구 퍼붓더니 다른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이미 명계와 은영의 결혼은 물 건너간 이야기니 대신에 우리를 깨놓기만 하라고 말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둘 사이를 인정한 적이 없다는 말만 그냥 하고는 꽤나 많은 성공보수를 약속했단다.

그날 친정에 갔다가 벌어진 일도 역시 장인이 꾸민 일이었다. 그때 장인이 사진 한 장을 건네주면서 그랬다고 한다. 일단 만나서 그걸 보여주면 시키는 대로 다 할 거라고 말이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려다보았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통통한 볼의 은영이 귀여운 곰이 그려져 있는 잠옷을 입고서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혹시나 싶어 이리저리 돌려보고 뒤집어봐도 특별한 건 없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가슴만 답답해져 테이블 위에다 휙 던져놓고는 담배를 다시 찾았다.

“나~ 참~ 여러 가지로 꼬이네?”

어차피 은영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빈 담뱃갑을 구겨서 휴지통에다 던져 넣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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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바깥바람을 쏘였더니 가슴이 조금 틔는 것 같았다. 담배를 사다가 문득 술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맥주 몇 병을 집었다. 그리고는 털레털레 집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씻나? 휴~ 하기야...”

씻을 수만 있다면 오늘의 기억마저 모두 깨끗이 하고 싶으리라.

“어~? 이게 무슨...”

거실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있는 종이조각들, 그건 분명 아까 테이블 위로 던졌던 그 사진이었다. 이걸 이렇게 갈갈이 찢을 사람은 은영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기에 무슨 비밀이 있길래?

“서, 설마...아, 아니겠지? 아닐 거야...아무리...”

순간 스치는 생각을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몸이 떨리는 걸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안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

“흑흑흑~ 흑흑~”

“은영아....”

침대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던 은영이 나를 보고는 겁에 질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등이 벽에 닿자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싫어~ 싫단 말이야~ 흑흑흑~”

“은영아, 은영아. 나야, 괜찮아..자~ 자~ 사랑하는 우리 은영이~”

꽉 끌어안자 발버둥을 치다가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흑흑흑~”

한참을 그렇게 울던 은영이 푹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흑흑흑~ 자기...미안해...미안해...난 정말 더러운 년이야...흑흑흑...”

“그만, 그만...한숨 자고 나서 나중에 이야기하자...응?”

하지만 살살 달래며 눕히려는 그 순간 나는 얼어붙어버렸다.

“흑흑흑~ 아빠랑 붙어먹은 짐승 같은 년....”

머리 속에서 뭔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더러운 예감은 왜 이렇게 잘 맞는 걸까? 씨발~ 정말 좆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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