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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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어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머? 근데 아프셨다더니 정말로 많이 힘드셨나 봐요?”

“호호호~ 아니에요. 우리 애들이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보네? 나보다는 새색시가 많이 먹고 살이 좀 붙어야겠어, 신랑은 이렇게 듬직한데...”

“호호호~ 어머님, 걱정 마세요~ 이래 보여도 제가 아주 건강체질이거든요?”

장석과 주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와 함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음지으며 화답했다. 이미 결혼식 전에도 몇 번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기에 서로 익히 알고 있는 사이였다. 점심시간 때 은영과 카섹스를 즐긴 장석이 어머니의 상경소식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모두 함께 저녁식사하기를 제안한 것이었다.

“성우야~ 오늘 이 자리는 내가 먼저 찜했으니까 행여나 몰래 계산하기 없다, 알았지?”

“흐흐흐~ 오~냐~ 너 오늘 등골이 휘청~해도 난 모른다.”

“크흐흐~ 네 녀석 말마따나 몬스터가 아니냐? 끄덕 없어~”

티격태격 우정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을 어머니가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낮에 통화하면서 기운이 없다 싶더니 모시러 집에 들렀을 때도 여전한 것 같아 걱정이 됐는데 이제야 화색이 돌아와 마음이 놓였다.

“엄마, 장석이가 큰소리를 뻥뻥 쳤으니까 아주 비싼 걸로 왕창 시켜. 뭐가 먹고 싶어?”

“에고~ 장가를 가도 여전히 어리광쟁이에다 철이 없다니까?”

“어, 엄마!”

“킥킥킥~”

“하하하하~ 이제야 왕 뺀질이 성우가 제대로 임자를 만났네?”

어머니의 장난스런 핀잔에 내가 얼굴을 붉히자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단란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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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불빛을 타고 흐르는 재즈연주가 참으로 감미로웠다. 저쪽 테이블로 고개를 돌리다 시선이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시선을 내리깔자 품에 기댄 가녀린 여체가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릴 적 내 기억과 별차이가 없는 날씬한 몸매를 여전히 유지하는 그녀가 늘 자랑스러웠지만 오늘만은 아니었다. 이 연약함이 자꾸만 내 가슴을 찌른다.

“이렇게 보니까 우리엄마 참 미인인데? 몸매도 꼭 아가씨 같고...”

“호호호~ 그래도 장가를 가더니 이제야 여자 보는 눈이 좀 생겼구나?”

다정하고 재치가 넘치는 내 어머니. 지금 이순간만큼은 은영마저도 도저히 비교가 되지 못할 거다. 아니, 세상의 그 어떤 여자도 상대가 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한 저 부드러운 미소가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웅~ 그래도 난 엄마가 좀 더 통통했으면 좋겠어.”

“호호호~ 일 없네요~ 내가 너한테 잘 보일 일이 있어? 내 남편 마음에만 쏙 들면 되지?”

“쩝~ 엄마~”

“그렇게 통통한 여자가 좋거든 네 색시를 살찌우든지? 그건 또 싫지? 하여간에 사내들이란..”

“켁~”

정곡을 찔린 탓에 항복하고 말았다. 괜히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뽑은 셈이다. 잘록한 허리를 꽉 당겨 안으며 속삭였다.

“사랑해, 엄마... 나중에 우리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할 때까지 지금처럼 늘 아름답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호호호~ 이렇게 멋진 남자 품에 안겨서 사랑고백을 받으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는걸?”

미소를 띄우는 엄마의 얼굴이 정말 수줍은 듯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아~ 엄마도 여자였구나..’

그것도 실제 나이를 알아맞히기 힘들만큼 매력적인 여자. 아직도 병색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수척한 낯빛이 오히려 묘한 아름다움을 더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아버지와 사랑을 나누며 토해내던 그 가슴 떨리는 신음소리가 떠올라버렸다.

‘이, 이런...’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조금씩 일어서고 있었다. 물론 당시의 내 감정이 욕정이었으며 그 상황에선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했었기에 새삼스레 어머니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블루스를 추느라 이렇게 몸이 맞닿은 상태에서 발기가 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흐응~ 근데 너 그거 알아?”

“응? 뭘?”

다행히도 어머니가 화제를 바꾸면서 아랫도리가 진정되는 기미가 보였다.

“내 스스로도 한 미모를 한다고 자부하기는 하지만...너 그 웃음이 어째 수상하다?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인데?”

“아, 아니야~ 세상에서 최고 아름다운 싸모님이신데요~ 사랑해요~ 쪽~”

급히 부인을 하며 뺨에다 입을 맞추고서 무마시켰다. 표정의 작은 변화는 물론 정말 눈빛만 봐도 나의 내심을 척척 읽어내는 어머니임을 깜빡 했던 탓이다.

“어디까지 했더라~~? 아, 맞아...나보다 더 예쁜 미인이 우리식구 중에 있었다는 사실을 넌 모르지?”

“에? 가만...그렇다면 은영..아코~”

“하여간에 콩깍지가 씌어가지고는?”

내 옆구리를 꼬집으며 눈을 흘기는 어머니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변명했다.

“아이~참? 그렇잖아~ 객관적으로 봐도 형수들보다야 은영이가 더 미인인 건 사실인걸? 그러니까 엄마를 빼고 나면 누가 더 있어?”

“쿡쿡쿡~ 과연 그럴까?”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이건 스무고개도 아니고 도대체 감이 안 잡혔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머리를 스쳤다.

“서, 설마?”

“알아냈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건 정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러니까 아, 아버지가 우리 몰래 밖에서 딸을...악~ 어, 엄마~?”

“나~참~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들어보네? 일루와~”

“어, 엄마~ 이, 이건 좀 놓고...”

“시끄럿~ 네 아버지를 욕보인 벌이야~”

어머니에게 한쪽 귀를 잡힌 채 홀을 가로질러 일행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끌려갔다. 라이브 바의 모든 사람들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말이다. 쪽팔려 죽을 지경이었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마음 속으로 그런 황당한 상상을 한 자신을 원망할 뿐.

“어, 어머님 무슨 일이에요? 이이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거 같은데...”

아주 분위기 좋게 블루스를 추던 모자 사이에서 갑자기 벌어진 사태였기에 모두가 긴장했다. 특히 은영은 금방 눈물이라도 쏟을 기세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호호호~ 너무들 놀라지마...글쎄 이 녀석이...”

어머니의 설명이 이어지자 그제서야 모두 안심을 하면서 킥킥대고 나를 놀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들 역시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지 정답을 궁금해했다.

“으음~ 아무래도 내가 답을 가르쳐줘야겠구나?”

“네~ 어서요~ 어머님~”

모두들 이구동성을 대답했다. 나마저도 말이다.

“우리집안의 최고 미인은 바로...”

말을 툭 끊으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어머니. 그러자 뭔가가 언뜻 떠오를 듯 말듯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말썽쟁이 장난꾸러기 이 녀석이야~”

“에엑~”

“어머낫~!”

“헉~”

상상도 못했던 정답에 모두가 입이 쩍 벌어지고 이제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떠오른 내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황급히 어머니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호호호~ 얘가 어릴 때 정말 예뻤거든? 유모차에 태워서 밖에 나가면 아주 난리가 났었어. 며느리를 삼자는 둥 커서 미스코리아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둥 장난이 아니었거든?”

“어, 엄마! 제발~”

정말 사실일까 하고 의아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나머지 일행들. 나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주 냉정하게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모두들 못 믿나 본데 내 이야길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거야...”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한바탕 웃고 말 에피소드 정도였다. 다만 당사자로서는 정말로 숨기고 싶지만 말이다. 서너 살 때쯤이라고 들은 것 같다. 당시 미혼이던 고모가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여자애의 옷을 바꿔서 돌아가던 길에 잠깐 들렀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생긴 게 발단이었다. 나야 그저 좋아하는 고모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을 뿐이지 어린 나이에 뭘 알았나? 여자 옷을 입은 채 고모 손에 잡혀 집밖으로 나간 내가 우연하게도 광고회사직원의 눈에 띄고 말았다.

“호호호~ 마침 여자애들 옷 광고를 찍어야 하는데 마땅한 모델을 찾지 못해서 한참 고민하는 중이었다나..”

“네에? 그러면....”

“호호호~ 맞아. 얘를 보자마자 덥석 껴안더니 너무 기뻐하더래. 그리고 얼결에 스튜디오까지 따라가서 테스트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고모는 너무나 감격하는 그 사람에게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했고, 한편으론 재미있다는 생각에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단다. 정 안되면 정말로 광고를 찍으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어차피 영락없이 예쁜 여자아이였으니.

“깔깔깔~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수영복이 아니겠니?”

“꺄악~ 어머머머~”

“까르르르르~”

“푸하하하하~”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자~ 어때? 이젠 모두들 인정하지?”

“네~ 윤 씨 가문 최고의 미인을 위해, 건배~”

“건배~”

결정타까지. 그런데 꼭 뒤늦게 복장을 뒤집는 녀석이 있게 마련이다.

“성우 양~ 사실은 전부터 열렬히 사모하고 있었습니다...저의 사랑을..컥~~”

“죽엇~ 이 괴물녀석~~”

분노가 서린 내 가라데춉에 목을 부여잡고 캑캑거리는 장석을 연이어 헤드락으로 응징했다. 그런 내 귀로 ‘덤 앤 더머’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꽤나 간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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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주말이라 늦게까지 놀아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라이브 바에서 나와 모두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과일을 깎아 맥주와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피곤해서 먼저 자야겠다며 어머니가 일어섰다.

“난 한번 잠이 들면 잘 안 깨니까 모두들 편하게 놀아.”

젊은 사람들끼리 편하게 놀라고 자리를 피해주는 걸 왜 모를까? 그리고 사실 어머니는 잠귀가 굉장히 밝은 편이다. 자식이 아프면 한밤중에 자다가도 귀신같이 알아채는 분이었다. 오늘따라 왠지 쓸쓸하게만 느껴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장석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 연세가 50대 중반이신 것 맞아? 40대가 아니고?”

“임마~ 그러면 우리엄마가 미성년자일 때 나를 낳았다는 게 되게? 아니, 나야 그렇다 쳐도 우리 형들은?”

“아~ 아~ 자식이 흥분하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엄마보다도 오히려 몇 년 위신데도 너무나 차이가 나서 하는 말이야. 부럽다, 임마~ 저렇고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를 둬서..”

왠지 녀석의 눈빛이 마치 사랑의 열병을 않고 있는 사춘기소년처럼 느껴져 순간 울컥하다가 웃고 말았다. 하기야 자식인 나조차 아까는 순간적으로 반했을 정도가 아닌가? 여자로서 아직 그만큼이나 매력적이라는 건 정말로 축복받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돌리자 금새 마음이 편해지면서 장석의 태도 또한 귀엽게 보여졌다.

“어쩔까? 차라리 우리 집으로 옮기는 게 낫지 않겠어? 어머님 혼자 주무시게 할 수는 없으니까 너흰 나중에 다시 돌아오고...”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은영의 무릎을 슬슬 어루만지는 장석 못지 않게 나 역시도 아까부터 주경의 젖가슴으로 향하려는 손을 참느라 힘든 상태였다.

“근처 노래방에서 놀다 올 테니 걱정 말고 주무시라고. 엄마한테 말을 해놓고 나갈 테니까 먼저들 내려가있어.”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서 우르르 몰려나간 후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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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린 후 들어서자 불은 껴져 있었지만 인기척이 났다.

“엄마, 아직 안 잤지?”

“으, 응...이제 막 자려고 했어. 왜?”

상체를 일으켜 쿠션에다 등을 기대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앉았다.

“응, 모두들 노래방에 가기로 했거든? 엄마도 갈래?”

어차피 사양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권유는 해보았다. 자칫 서운해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호호호~ 너희들이나 가. 젊은 사람들이랑 나랑 같니? 안 그래도 힘들어..”

“치~ 무슨 소리야? 아직도 한창인데?”

“호호호~ 그래, 맞아. 넌 아직 어린애고..”

품에다 끼고 애지중지하던 막내가 어느새 다른 여자의 남편이 돼버렸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허전한가 보았다.

“엄마, 누워봐. 내가 자장가를 불러줄게..”

“얘가?”

“어서~”

“아이~참~ 그 고집을 누가 당해낼까?”

억지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자 결국에는 못 이기고 고개를 흔든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서 조용히 흥얼거렸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느새 고요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잘자..좋은 꿈꾸고...사랑해...쪽~”

아주 작게 속삭이고는 조심스레 이마에다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엄마...”

가슴이 먹먹했다. 이마에다 입맞춤을 할 때 움찔하는 어머니의 속눈썹에는 옅은 물기가 베어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 말고 빨리 나가보라는 배려로 일부러 자는 척했을 것이다. 자장가소리에 눈물을 지을 만큼 사실은 막내가 곁에 있어주기를 얼마나 바라셨을까? 순간적으로 그냥 그 곁에 누워 팔베개를 해드리고 같이 잠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이젠 더 이상 내가 누울 자리가 그곳이 아니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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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했던 1주일을 넘겨 열흘을 꼬박 채우고서 어머닌 귀가했다. 도중에 통화한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당신은 괜찮으니 원한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있어도 좋다고 하셨었다. 어머니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부부금슬이 내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를 모셔온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그냥 아버지 곁에 계시게 했으면 그런 허전함 따위를 느끼지도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생각이 옳았다는 건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1년이 유수처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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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을 통해 느닷없이 들려온 소식으로 나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쩝~ 이거야 원...정말 종교라도 믿어야 하는 건가?”

은영의 아빠와 계모간에 이혼소송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신까지 찾아가며 내심 은근히 빌었다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이야!

소송을 걸어온 건 계모 쪽이었다. 폭언과 폭행으로 인해 더 이상 같이 못살겠다며 이혼과 더불어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청구한 것이다. 은영을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어버린 그녀의 아빠 때문에 압박감이 심했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들을 때는 그냥 코웃음만 치던 나도 은영의 다음 말에는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계모가 은영의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다는 거다.

“그거...혹시 널 걸고 넘어지려는 거 아냐?”

“아빠 말이 그건 아니니까 걱정 말래.”

그 대답에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자 은영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도 뒤를 밟다가 결국엔 놓쳤지만 여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니까..”

“아...그렇구나.”

그 망설임이 이해되었다. 그녀가 고백했던 바로는 아빠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게 2년 전이었다. 짐을 싸 들고 내 집으로 옮겨오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몸을 주었다고 했었다. 그걸 다시 언급하려니 거리껴졌던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 이야길 꺼내지는 않을 거래...”

일단 피해자인 은영이 부정해버리면 증명하기도 힘들거니와, 결국엔 증언뿐인데 그건 자신들 역시 공범이라는 걸 자백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걸 묵인해주는 대가로 많은 걸 누리며 살았으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자신 있게 말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볼 때 또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면 정말로 딴 여자가 있다는 소리야?”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사실일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해...어쨌던...”

결국 계모 측에선 그걸 증명하지 못한 채 심증만을 토로한 상태였다.

“아빠 말로는 어림없다면서 한 푼도 못 준다고 자신하는데...”

말 그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입맛이 쓴 건 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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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쪽 보도에 서서 두리번거리는 어머니가 보였다. 양손에다 쇼핑백을 나눠 들고 있는 그 모습에 차를 얼른 갖다 붙이고서 내렸다.

“엄마..”

“웅~ 아들~”

“아이쿠~ 자~ 자~ 일단 그거부터 줘. 차에다 싣게.”

쇼핑백을 쥔 채 와락 안겨 드는 그녀에서 희미하게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 짐들을 넘겨받아 뒷좌석으로 밀어 넣고는 조수석에다 태웠다.

“언제 온 거야?”

“응~ 아까 오후에...”

“그러면 바로 연락을 하지? 근데 술 마셨어?”

“응, 아주~ 쪼~오금~”

혀가 꼬이는 그녀, 얼마나 많이 마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취한 건 분명했다.

“누구랑 마셨는데? 아얏~”

“흥~ 좁쌀영감탱이처럼 자꾸 꼬치꼬치 따질래? 이 엄마가 같이 술 마실 친구하나 없을 까봐?”

“미안~”

팔을 꼬집으며 쀼루퉁하게 입술을 내미는 어머니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녀 같은 표정이 잘 어울린다. 게다가 은영 또래가 입을만한 하늘하늘한 원피스라니. 문제는 저런 옷차림 역시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거였다.

“엄...”

운전을 하느라 잠시 앞을 보는 사이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린 어머니. 지난 1년 동안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막내아들 집을 드나들다 서울의 화려함에 빠져버린 것인지 왕래가 점점 더 잦아졌다. 그녀에게만은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듯했다. 전에 장석의 표현했던 것처럼 이젠 정말로 40대 중반이라고 해도 누구나 믿을 정도였다. 은영이나 주경과 함께 피부마사지를 종종 받긴 했다지만 저렇게까지 젊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단순히 젊어지고 아름다워진 것뿐이라면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휴~”

무릎부터 드러난 미끈하게 뻗은 새하얀 다리. 우아하게 선을 그린 목덜미로는 틀어 올린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흘러내렸다. 가슴 골의 언저리까지 패인 원피스 아래서 아담하게 솟아오른 젖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보였다. 바로 이게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따스함과 포근함을 의미하던 그녀의 모든 것이 이제는 여자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눈치챘을까?’

당연히 그럴 거다. 수십 년을 살을 맞대며 살아온 사이인데 그런 변화를 못 느낄까? 아직까지도 부부관계를 가질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여전한 분인데 말이다.

사실 난 어머니에게 남자가 생긴 게 아닌가 보고 있었다. 잦은 상경과 화려해진 몸차림 게다가 거의 보일 듯 말 듯 투명하던 화장마저 짙어지고 항상 향수냄새가 떠돌았다. 결정적으로 의심이 가는 부분은 잦은 상경에도 불구하고 행적이 불분명한 시간대가 많다는 점이었다. 물론 대부분 낮 시간이었지만 그게 더 의심스러웠다.

“좁쌀영감탱이라...하아~”

언젠가부터 아버지를 저런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루하고 답답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 연세에 그만큼이나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자꾸만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도 힘든 일이었다. 은영이나 주경을 겪으면서 남녀관계라는 게 그리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 자신이 워낙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 담담하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미친 놈아...이 미친 놈아...누가 누굴 욕하냐?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 따위 구질구질한 소리는 다 변명이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머니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갑자기 생기기 시작한 감정, 그건 바로 질투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 내 어머니를 다른 남자가 안았다는 걸 상상하자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치 전에 은영에게 느꼈던 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이제 와서는 확실히 깨달았다. 은영이 자기 아빠와 그런 관계였다는 걸 알았을 때 내게는 분노와 질투 외에도 한가지 감정이 더 있었다. 욕정이었다. 명계만이 아니라 부녀의 근친상간에도 발정했던 것이다. 지금 내 아랫도리를 거북하게 만들고 있는 딱딱한 이 자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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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부축해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에서 초조하게 오가던 은영이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자, 자기야?”

“응, 괜찮아...조금 취한 것뿐이니까...침대에 눕혀서 한숨 재우면 돼.”

“으, 응..”

“무슨 일이야?”

“그게...일단 어머님부터 눕혀드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

잠이든 어머니를 잠시 내려다보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왔다.

“이젠 이야기해봐.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걱정스런 얼굴이야?”

“아빠한테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이 시간에?”

늦은 밤시간이라 이맛살을 찌푸리는 순간 이어진 말에는 나도 놀라고 말았다.

“병원에 입원하셨어..”

“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그런데...”

순간적으로 심적인 충격을 받아 그냥 쓰러진 정도란다. 응급실로 실려온 후 곧 의식을 되찾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검사와 함께 하루 정도 입원조치를 한 거라니 그녀의 말처럼 크게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다만 뒷이야기가 꽤나 쇼킹했다. 소송이 지지부진해지고 승산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자 계모가 현금과 패물을 챙겨 도망가버린 것이다. 은영의 아빠 쪽에서 뒷조사를 시작하며 남자관계까지 드러난 모양이었다. 아들들은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남자와 야반도주를 해버렸다니 정말로 대단한 모정(?)이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아~ 참! 그러면 빨리 가봐야겠네? 내가 태워줄까?”

“아니야, 어머님이 저런데 한 사람은 있어야지. 그냥 혼자 갈게.”

“그럼 그렇게 해, 밤길 운전조심하고...혹시 병실서 자야 할 것 같으면 다시 전화해.”

“으, 응...그런데 자기..괜찮겠어?”

은영의 물음이 뭔지는 잘 안다. 아무리 병실이라지만 어쨌던 아빠와 같이 밤을 보내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말하는 것이다.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바보같이 왜 그런 걸 묻고 그래? 빨리 가기나 해.”

“사랑해~ 자기야~”

은영이 내게 가벼운 키스를 하고는 챙겨두었던 짐을 들고 부랴부랴 나갔다.

“휴~ 이거야 원~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야릇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은영과 그녀의 아빠 그리고 나와 어머니, 이렇게 부녀와 모자가 각각 둘만 있는 장소에서 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왠지 두근거리는 이 느낌을 뭐라고 할까, 불안감? 아니면 기대감? 어머니가 잠든 방을 잠시 쳐다보다가 옷을 벗겨주기는 아무래도 난감해서 대신에 얼굴과 손발이라도 닦아주자 싶어 물수건을 만들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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