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바닷가에 황혼이 지고 있었다.
누군가 불고 있는 색소폰 소리가 바닷가에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이제 세월의 그늘 속으로 쓸쓸하게 퇴장해야 하는 낡은 회전목마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군데군데 페인트칠은 벗겨져 있었고 귀가 부러져 나간 목마도 있었다. 나는 그 회전목마에 올라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휴우....”
나는 담배연기와 한숨을 함께 내쉬었다.
멀리 바다 저편에는 여객선 한 척이 유유히 떠간다.
내 의식의 흐름은 이미 정지해 있었고 시선만이 먼 바다를 하릴없이 쫓았다.
색소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귀에 익은 멜로디에 맞춰 내 의식 속에서 회전목마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바닷가에서는 여름이 되면 회전목마가 힘차게 돌았다.
화려하게 번쩍이는 그 목마를 보고 있을 때면 내 가슴이 음악소리에 맞춰 쿵쿵 뛰곤 했다.
그러다가 불꽃놀이라도 하는 밤이면 나는 바닷가에 나와 회전목마와 불꽃으로 수놓아진 하늘을 번갈아 가면서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때가 꼬질꼬질한 러닝셔츠를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까까머리 꼬마였던 나는 그렇게 밤하늘의 불꽃과 회전목마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괜스레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뭐가 그렇게 서러웠던 것일까.
그렇게 바닷가에 나가 나 혼자서 이리저리 거닐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노랫소리와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가 나를 반겼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먹고 살기 위해 어머니가 선택하셨던 것은 작은 주막을 차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작부 유라와 둘이서 어부나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술을 따랐고 젓가락을 두드렸다. 어부였던 아버지가 탔던 배가 풍랑으로 뒤집히지만 않았어도 어머니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다.
취객들의 노랫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지우 왔구나!!”
어머니는 술 취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네 방에 저녁 차려놨어. 어서 가서 먹어.”
“예.”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셨다.
나를 제대로 키우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해서 무슨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가 할 줄 아는 것은 없었다. 밥하고 반찬 만들 줄 아는 걸로는 나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을 어머니도 잘 알고 계셨다. 어머니의 선택은 어머니의 외모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즉 남자가 꼬이는 얼굴과 몸뚱이를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눈매와 깊은 눈동자, 웃을 때면 살짝 우물지던 사랑스러운 보조개, 저고리 앞섶을 불룩하게 만들곤 했던 어머니의 가슴, 그리고 미끈하게 뻗어 내린 다리.......
내 방이라봤자 다락이나 다름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기어 올라가면 내 방이었다.
방안에 들어가면 조심해야 했다. 무심코 허리를 쭉 펴고 서면 당장 천장에 머리를 부딪쳐야 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양은 쟁반에 밥과 반찬을 담아 신문지로 덮어놓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그 밥과 반찬을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나의 다락방에는 작은 창이 바다 쪽을 향해 나 있었다.
나는 엎드려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밤에는 그저 마을의 불빛들과 시커먼 바다만 보였지만 낮에는 온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마을에는 집들이 있었고, 마을회관이 있었고, 예배당도 있었다.
나의 다락방 바로 아래에서는 여전히 노랫소리와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란함 속에서도 잠을 잘 잤다.
아침이 되면 작은 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밤새 모기에 뜯기고 더위에 잠을 설쳤어도 아침이 오면 좋았다.
이제 내 다락방 창문을 통해 마을과 바다를 볼 수가 있었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바닷가에 나가 회전목마를 구경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락방에서 오전을 보내고 정오가 가까워질 때쯤이면 어머니와 유라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에게는 그 시간이 아침이었다.
내가 나무계단을 내려와 주막 앞마당에 나가면 유라가 세수를 하고 있었다.
유라가 그때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다.
열아홉 아니면 스무 살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될 뿐이다.
내 어린 나이에도 유라의 동그란 얼굴이 꽤 예뻤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웃옷을 입지 않고 하얀 러닝셔츠만 입고 몸을 구부려 세수를 하던 유라의 가슴을 잊지 못한다. 나는 움푹 파인 가슴골을 보고 싶어서 유라 앞으로 가서 쭈뼛거리면서 몰래 보곤 했다.
“또!!!”
세수를 하던 유라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자신의 가슴골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히히..”
“쪼끄만게 벌써부터 여자 가슴이나 볼라고 그러고!!”
“히히..”
유라는 나를 귀여워 해줬다.
고아였던 유라에게 어머니와 나는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도 역시 유라를 가족처럼 대해주셨던 것 같다.
“얘들아, 밥 먹자.”
“예, 형님.”
어머니와 유라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
특히 유라는 반찬을 이것저것 밥에 올려서 고추장과 함께 쓱쓱 비벼 먹는 것을 좋아했다.
“유라야, 오늘 장 보러 가면 너 빤쓰 좀 사자.”
“왜요? 아직 입을 만한데...”
“닳아서 곧 구멍 나겠더라.”
“엄마, 유라누나는 엉덩이는 큰데 빤쓰는 왜 그렇게 작아요?”
“이게 진짜! 내 엉덩이가 뭐가 커?”
“히히”
나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어머니와 유라는 마치 큰 언니와 막내 동생처럼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좋아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덩달아 따라 웃었다.
“지우엄마 왔구나. 고생이 많지?”
생선을 파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이, 고생은요.”
“지우 클 때까지만 꾹 참고 살아라. 지우가 호강시켜줄 테니까.....안 그러냐, 지우야?”
“예, 히히.”
음식거리를 사고 나서 어머니는 유라를 속옷가게로 데리고 가셨다.
“아이, 됐다니까요, 형님. 돈도 없으시면서...”
“돈 없어도 빤쓰는 입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빨리 골라 봐.”
“그럼 형님 것도 사요. 그럼 살게요.”
“그러자 그럼. 덕분에 나도 몇 개 사지 뭐.”
나는 어머니와 유라가 팬티를 고르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유라가 고른 팬티는 분홍색과 노란색 팬티였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그저 단색으로 이루어진 면 팬티였다.
“후와! 진짜 쪼끄맣다.”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왜? 내 엉덩이가 커서 안 맞을 거 같냐?”
유라가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유라의 그 표정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라누나, 진짜 그거 누나 엉덩이에 맞아? 신기하다.”
어머니가 고른 팬티 역시 대단히 작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팬티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팬티를 입에 올리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그때 내 나이 12살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웠다.
습기 찬 바닷바람이 훅하고 불어와 바다내음을 전해주었다.
어머니와 유라는 파라솔을 쓰고 사뿐사뿐 걸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동네 남자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곤 했다.
나는 그때 우리 마을에서 어머니가 제일 예쁘고 그 다음이 유라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이 나중에는 바뀌게 되지만 말이다.
주막으로 돌아와서는 앞마당에 있는 평상 위에 앉아 수박을 함께 먹었다.
“지우야, 엄마가 우리 지우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셨다.
“알아요.”
“그럼 엄마가 술 따르는 일하는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응?”
“예.”
“지우 잘 할 거예요. 얼마나 똑똑한데요.”
그리고 황혼이 질 때 나는 슬며시 다락방의 나무계단을 내려왔다.
방안에서는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술판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와 유라의 웃음소리는 내가 알던 그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좀 더 자극적으로 들렸던 것 같다.
나는 황혼이 지는 바닷가로 나왔다.
아코디언 음악에 맞춰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하염없이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또 왔구나.”
회전목마를 관리하던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항상 해군모자를 쓰고 있었고 얼굴에는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그 회전목마 아저씨는 가끔 손님이 없을 때면 나에게 공짜로 회전목마를 태워주기도 했다.
“이거 먹어라.”
아저씨는 자기가 먹던 빵을 뚝 떼서 나에게 건넸다.
“아니에요. 저 배 안 고파요.”
“누가 배고파서 먹냐? 그냥 심심해서 먹는 거지. 어여 먹어.”
사실 나는 그 아저씨가 먹고 있던 빵이 무척 먹고 싶었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궁핍함을 숨기고 싶었던 자존심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조그만 내 두 손을 내밀어 아저씨가 건네 준 빵을 받았다.
소담스러운 단팥이 들어있는 맛있는 빵이었다.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그때 왜 그렇게 아코디언 음악이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 슬프기만 하던 음악소리 속에서도 목마를 탄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 웃고 있었다.
“음악이 슬프지?”
아저씨가 말했다.
“예.”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아서 웃는다. 허허...”
나는 그날 밤 아저씨가 나를 또 공짜로 회전목마를 태워주기를 기대하면서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타고 싶냐?”
“아...아니요.”
“이리 와라. 한 번 타자.”
사람들이 교체되는 약간의 쉬는 시간이 왔을 때였다.
“아직 사람들 많은 데요”
“괜찮다. 빈자리 있을 거다.”
사람들은 교체되었고 나는 아저씨 말대로 비어있는 목마를 찾아 올라탔다.
잠시 후 음악과 함께 회전목마는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밝고 경쾌한 음악이었다. 나는 신이 났다.
천장을 이루고 있는 색색의 휘장들과 조명들이 마치 내가 동화 속의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세상은 그저 아름다웠고 예쁘기만 했다. 아저씨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고 나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회전목마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서 멈췄을 때 그 아름다웠던 세계는 단지 하늘을 잠시 수놓았던 불꽃놀이처럼 사라져 버렸고, 내가 목마에서 내려올 때에는 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던 서러움이 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해 여름이 빨리 가기를 바랐다.
여름이 가면 해변에 사람들도 오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회전목마도 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거짓 바람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 회전목마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난리가 나 있었다.
유라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고, 어머니는 취객을 부여잡고 말리고 있었다.
“어이 썅년아! 니가 멀 잘났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내가 뭘! 이 새끼야. 여기가 창녀촌인 줄 알아? 왜 빤쓰를 벗기려고 지랄이야?”
“야 이 년아, 술 팔면 몸도 파는 거지. 니가 춘향이냐 계월향이냐?”
“아이, 손님. 고정하시고 맘 푸세요.”
나는 유라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 취객과 유라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무조건 유라 편이었다.
“아저씨! 우리 누나 왜 때려요?”
나는 유라 앞을 가로 막고 서서 그 취객을 향해 소리 질렀다.
“얼씨구! 이건 또 뭐야? 작부집 아들인가?”
나는 그때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취객에게 달려들어 팔을 물어뜯었으니 말이다.
“아아아악!!”
“이이이익!!”
취객은 나를 번쩍 들어서 내동댕이쳐버렸다.
나는 바닥에 나둥그러졌다.
그때 어머니의 눈이 뒤집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보더니 그 취객을 향해 내가 물었던 그 팔을 다시 물고 늘어졌다.
“아아아아아악!!...야 이년아....이거 안 놔!!!”
유라도 질 새라 달려들어 그 취객의 다른 쪽 팔을 물고 늘어졌다.
“끄아아아악...놔!! 이년들아!!”
그날 밤의 소란은 결국 모두 파출소로 끌려가면서 막을 내렸다.
파출소에서 유라는 시퍼렇게 멍이 든 눈두덩을 계란으로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얼굴에 상처가 나 있었다.
“이 양반아, 거기는 그냥 술 마시고 젓가락 두들기는 데 아녀!! 왜 빤쓰를 벗기려고 난리여!”
파출소장이 그 취객을 큰 소리로 나무랐다.
“죄송합니다. 술이 너무 취해서 그만...”
“어여 잘못했다고 사과해...”
“아 예...어이 내가 잘못했네. 그 놈의 술이 원수네..”
취객은 어머니를 향해 사과를 했지만 그 태도는 여전히 거만했고 진정성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파출소장은 어머니와 유라의 얼굴에 상처를 낸 그 취객을 너무나 관대하게 다루는 것이었다. 마치 술 취해서 작은 실수 하나 저지른 사람을 대하듯이 말이다.
“그라고 지우엄마, 자네도 그렇지. 술 팔고 웃음 파는 게 뭔 자랑이라고 이렇게 동네방네 시끄럽게 하고 그런다냐!!”
어머니의 태도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피해를 입은 쪽이었는데도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파출소장 앞에서 쩔쩔 맸으니 말이다.
“이거 원래 쌍방 폭력으로 둘 다 형사입건 되는 건데...내 지우를 봐서 그냥 보내주는 거야.”
“가..감사합니다.”
파출소장은 나를 봐서 어머니와 유라를 용서해 준다고 했다.
내가 무엇이었기에....
“지우야, 네가 우리 마을의 희망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꼭 판검사 되야 헌다. 알았지?”
파출소장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 당시 우리 마을에서 신동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아이들보다 암기를 더 빨리 한다는 이유로 그 촌동네에서 나는 꽤 유명해져 있었던 것이다. 국민학생 때의 천재는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천재에서 그저 남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수많은 우수한 학생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셋은 우울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우리를 봐준다는 거야?”
유라가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세상이 그런 거야. 작부집 여자들한테 손찌검 좀 했다고 눈 하나 깜짝할 사람 없어. 그러니 유라 너도 어서 빨리 돈 벌어서 여기를 벗어나.”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만 말똥말똥 뜬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걸었다.
한 여름 밤의 습한 대기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괴로웠지만 나는 그저 어머니, 그리고 유라와 함께 걷는 것이 좋았다.
그날 밤 다락방의 작은 창을 통해 바다를 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더니 유라였다.
그렇게 늦은 밤에 유라가 나의 다락방에 올라오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왜, 유라누나?”
유라는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지우 너, 아까 아프지 않았어?”
“별로 안 아팠어. 누나가 더 아프지 않아?”
유라의 눈두덩은 멍이 들어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입술도 터져서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너 오늘 멋있더라? 누나를 위해서 그 놈하고 싸워주고?”
“히히..”
“그래서 말인데, 누나가 지우 너한테 너무 고마워서 상을 주고 싶어.”
“상? 무슨 상?”
“움.....너 맨날 내 가슴 보고 싶어 했잖아...”
유라가 가슴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나 내가 항상 유라의 가슴을 보고 싶어 했다는 말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언제?”
“그랬었잖아. 부끄러워 안 해도 돼.”
“으....응....”
“그래서 오늘 상으로 가슴 보여줄게...”
유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여자의 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자라나고 있던 나에게는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여자의 가슴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유라는 입고 있던 블라우스 단추를 위에서 아래쪽으로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단추가 풀릴 때마다 조금씩 드러나는 유라의 속살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단추를 다 풀은 유라는 나를 보고 살짝 미소 짓고는 얌전하게 블라우스를 벗어서 자신의 옆에 놓았다. 다락방의 작은 창으로 달빛이 어스름하게 비쳐들고 있었다.
나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유라의 상반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라는 이제 손을 뒤로 해서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었다.
깊게 파인 가슴골로부터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유라의 가슴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으...음...좋아.”
나는 그때 뭐가 좋았던 것일까.
여자의 아름다운 가슴을 보고 있기만 해도 좋았던 것일까.
달빛은 유라의 가슴에 내려앉아 톡 튀어 올라있는 젖꼭지를 비추어 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리 와.”
유라는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유라 가슴의 그 보드라운 속살의 느낌이 내 얼굴에 전해져 왔다.
나는 유라의 허리를 어정쩡하게 감싸 안고 아무 짓도 못한 채 유라의 몸에서 풍겨오는 체취를 맡고 있었다.
“유라야! 뭐 하냐? 자자!”
아래층에서 어머니가 소리치셨다.
“예, 형님. 곧 가요.”
유라는 나를 떼어놓고 다시 브래지어와 블라우스를 챙겨 입었다.
그리고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잘 자, 어린 왕자님.”
나는 유라가 다락방에서 내려 간 후에도 넋을 잃은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리고 유라의 입술이 닿고 갔던 내 이마에 살며시 손을 대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