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선 이영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있던 강현을 향해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안 갔네?’
‘너야말로 간 거 아니었어?’
되묻는 강현에 이영이 손에 들린 검은 봉투를 들어 보였다.
‘밤새야 될 거 같아서 야식 사러 갔다 왔다. 왜. 이것도 서민스럽냐?’
이영의 말에 강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그렇게 웃는 걸 보니 왠지 이영도 불퉁하던 기분이 조금 풀리긴 했다. 그러니 그렇게 막 대해도 여자들이 끊이질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사온 것들을 꺼내 책상 위 빈 공간에 펼쳤다. 이영의 행동을 보고 있던 강현도 이내 다가와 세팅을 거들었다.
‘라면은 왜 하나밖에 없어?’
‘너 가고 없을 줄 알았지.’
어차피 강현은 거의 막바지 작업밖에 남지 않았었다. 인정머리 없이 갔을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왔는데, 그래도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나마 쬐끔 남아있던 앙금까지 모두 풀렸다.
‘그런 것 치고는 양이 좀 많지 않나?’
‘......이 정도는 다 먹을 수 있거든?’
샌드위치며 삼각 김밥이며 편의점 가판대에 남아있던 것을 다 쓸어온 참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라면은 하나만 사왔다.
라면에 물을 붓고 3분이 지나길 기다리는 동안 강현은 삼각 김밥을, 이영은 우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삼각 김밥의 비닐을 벗기던 강현이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우유 겠거니 했던, 이영이 빨대를 꽂고 있는 그것은 무려 진짜 이슬 팩소주.
‘줄까?’
시선을 느낀 이영이 물었다. 강현이 됐다는 듯 고기를 내저으며 다시 물었다.
‘술 잘 마시나보네.’
‘아닌데?’
아직 삼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참지 못한 이영이 컵라면 뚜껑을 열어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난 이상하게 맥주는 배가 불러서 잘 못 마시겠더라고.’
헤헷, 하고 웃는 얼굴로만 보면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물론 우유 대신 소주 팩을 든 아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개방시간인 12시 반을 다 채우고 나오는 이영의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강현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나서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정리가 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차라리 뭐가 이상한건지 알려주면 답답하지는 않겠다고 매번 이를 갈았었으니까.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할 땐 하는 놈이야. 이거 왜이래. 서민의 극치를 보여주지! 하고 호기롭게 새 종이를 꺼낼 때만 해도 뭔가 될 줄 알았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그러면 뿅, 하고 아주 놀라운 작품이 나오고 그러니까.
하지만 그건 주인공의 경우에 해당되는 거라는 걸 잠시 잊었다. 조연은커녕 엑스트라도안 되는 이영은 시안도 못 잡았다. 마음이 허하니 몸도 왠지 으실으실했다. 안 그래도 강현과 비교되는 외모인데 걸치고 있던 후드 지퍼를 목까지 채우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니 더더욱 처량해 보였다.
‘난 이쪽.’
이영이 손은 여전히 호주머니에 넣은 채 까딱, 고갯짓으로 대신했다. 강현이 그런 이영을 빤히 보았다. 뭐 할 말이 있나싶어 시선을 마주한 채 기다렸지만 강현은 입술을 꾹 다문 채였다.
설마 손 주머니에 넣고 고갯짓했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지가 뭐 선배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이영은 슬그머니 손을 빼고 만다. 손을 뺐는데도 강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간다.’
뻘쭘해진 이영이 먼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걷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는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대체 왜 저래? 이영이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그때 강현이 이영을 향해 걸어왔다. 종종거리며 걸어왔던 이영과 달리 긴 다리를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단숨에 거리가 좁혀졌다.
‘저 혼자 살아?’
엄청 심각한 얼굴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이거다. 다소 쫄았던 이영으로서는 어이없긴 했지만 일단 대답했다.
‘어.’
‘그럼 가도 되겠네.’
그리고는 이영을 스치고 제가 앞서서 걷는다. 그런 강현의 뒷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던 이영이 뒤늦게 에엑?! 하고 소리를 냈다.
‘우리 집에 가겠다는 거야?’
‘어.’
너무 태연하게 대답해서 일순 이상하게 생각하는 자신이 이상한건가 하는 착각까지 일었다.
‘왜?’
‘시안도 못 잡은 거 아냐?’
저기요. 내가 시안을 못 잡은 거랑 니가 우리 집 가는 거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데요?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깜빡 하고 있는 이영에게 강현이 덧붙였다.
‘봐줄 필요 없으면 뭐 관두고.’
‘......봐주려고?’
‘나 때문에 다시 하는 거잖아.’
‘.......’
아무렇지 않아 보이더니 내심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의외로 소심한 성격인거 아냐?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이영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닌데?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하는 건데?’
‘그래? 그럼 관두고.’
‘헉! 아니요! 봐주세요! 제발.’
들뜬 기분에 조금 깐족거리다가 굴러온 호박을 발로 찰 뻔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영이 뒤돌아서는 강현의 팔에 매달려 애원했다. 그런 이영을 보는 강현의 표정은 한없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다행히 발걸음은 돌려졌다.
‘좀 더럽지.’
따라 들어오다 말고 멈춰 선 강현을 보며 이영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좀이 아닌데?’
물론 예의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강현의 대답에 이영이 곧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사내놈 방이 다 그렇지. 남자가 너무 깔끔한 것도 결벽증 같아서 정떨어지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속옷을 침대 아래로 슥, 밀러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뭐 좀 마실래?’
‘뭐 있는데.’
냉장고를 열어 보더니 이영이 하하, 하고 입으로만 웃었다.
‘뭐 좀 사올까?’
‘사오더라도 내가 사올 테니까 넌 과제부터 해라. 몇 시간 안 남았다.’
제 손목시계를 가리키는 강현에 시간을 확인한 이영이 이내 으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시간은 어느 덧 1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악.’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뒤. 이영이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 한 번 괴산한 소리를 내질렀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캐드를 적용하고 있던 강현이 고개를 꺾었다. 이영의 자취방인 원룸은 고개만 꺾으면 책상에 앉은 이영이 눈에 들어오는 구조였다.
‘아 몰라. 그냥 수정할래.’
미친놈처럼 머리를 헝클이던 이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면 가방에서 처음의 도면을 꺼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강현이 제도 위에 놓인 도면을 들어다보고 있었다.
‘괜찮은데.’
‘......그래?’
턱을 만지작거리며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강현이 한마디 툭, 하고 던지자 이영이 꺼내던 도면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옆으로 다가왔다.
사실 처음 것과 거의 차이도 없는 것 같아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수정이나 하자 한 건데 강현의 말을 듣고 다시 들여다보니 좀 전과는 달라 보이고 괜찮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넌 너무 드라마가 없어.’
뭐래. 뭐 그럼 도면이 바람피우고, 복수하고 그래야 하는 거냐. 물론 속으로만 생각한 것이지만 이영이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알아차린 강현이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좀 더 알기 쉬운 단어로 부연설명을 했다.
‘뭘 목적으로 하는 지가 없다고. 집이라고 해도 남자 혼자 사는 집일수도 있고, 여자 혼자 사는 집일수도 있지. 그리고 남자 혼자 산다고 해도 남자의 나이가 20대인지 30대인지 직업이 전문직인지, 운동선수인지, 몸이 불편한 사람인지 아닌지, 경우의 수는 셀 수가 없는데 니가 그리는 집은 그냥 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심심해지는 거지.’
서민아파트, 라는 말의 뜻을 이영이 뒤늦게 깨달았다.
‘화려하게 하라는 게 아니라 포커스를 어디에 둘지 생각하라는 거야. 평범한 가족이 산다고 해도 몇 명인지. 그러면 거실의 크기가 나오잖아. 일하는 엄마가 있는 가족이라면 동선을 우선시해야 할 거고, 전업주부라면 주방에 공간을 좀 더 할애해도 되고.’
‘........’
‘내가 말한 드라마라는 건 그런 드라마를 말한 거야. TV 드라마가 아니라.’
말 그대로 허를 찔린 기분. 자신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쉴 새 없이 나오는 과제에 허덕이며 어떻게 하면 기한 내에 과제를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고작이었는데.
이 녀석은 진지하게 이른 생각을 하는 구나. 어찌 보면 잘나가는 건축가 집안의 아들이라고 우습게 본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아, 쪽팔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진 이영이 고개를 푹 숙이고 도로 책상에 앉았다. 하지만 그것이 강현에겐 기분이 상한 것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난감한 표정을 지은 강현이 물었다.
‘또 기분 상했냐?’
‘아냐.’
‘상한 거 같은데.’
‘아니라고.’
‘내 느낌일 뿐이니까 그냥 잊어버려.’
그렇게 말하는 강현의 목소리에 다소 미안해하는 기색이 번져있었다.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지적한 것은 심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면 더 이상 나아질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기도 했다.
‘아 진짜!’
책상에 고개를 푹 박고 있던 이영이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상체를 틀었다.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이영과 고개를 돌렸던 강현의 눈이 마주쳤다.
‘마음 상한거 아니랬잖아. 사람 말을 왜 안 믿냐?’
‘.......’
‘쪽팔려서 반성 좀 했다. 됐냐?’
‘.......’
웬만하면 좀 넘어갈 것이지. 꼭 내 입으로 말하게 하냐. 입을 삐죽거리는 이영에 강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영의 머리 위로 강현이 손을 내뻗었다. 이영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머리칼을 파고든 손가락은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진짜 별것도 아닌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별것 아닌 행동에 이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런 이영의 반응에 강현도 잠시 멈칫했다. 마주한 이영의 눈에 잠시 당황스러운 빛이 번지는 듯 하더니 그것도 잠시.
‘뭐야. 이런 건 여자 친구한테나 해.’
탁. 얼굴을 굳힌 이영이 강현의 손을 쳐냈다. 하지만 손을 쳐낸 것보다 벌겋게 달아오른 이영의 얼굴이 더 신경이 쓰였다.
‘기분 나빴냐?’
‘......다, 당연히 기분 나쁘지. 난 누가 내 머리 만지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야.’
시뻘게진 얼굴이나 잔뜩 주름이 생긴 미간. 이영은 온몸으로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미안.’
이번엔 강현도 순순히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에도 화가 안 풀렸는지 시선도 맞추지 않고 도로 도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했다.
‘나 과제해야 해.’
‘그래.’
시뻘겋게 달아오른 귀와 목덜미가 계속 신경 쓰이긴 했지만 사과도 했는데 더 뭐 어쩌랴, 싶었다. 강현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식탁 의자에 앉아 슬립 모드로 전환된 노트북을 재부팅시키면서 흘끔 이영을 보았다. 이영은 여전히 도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답지 않게 생각하며 강현은 다시 켜진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현이 그렇게 답지 않게 반성까지 했지만 사실 그 반성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이영은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위험했다. 위험했다. 강현이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순간,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을 뻔 했다. 다행히 실낱같이 남아있던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면 무슨 창피인가 싶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답지 않게 강현의 손길이 너무 부드러웠다. 게다가 그 눈이 부신 미소라니. 그것을 떠올린 이영이 잠시 뭐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멋있긴 했지.'
'응?’
뜨끔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려니 아예 노트북에서 시선을 뗀 강현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어?’
‘뭐가?! 나 아무 말도 안했는데?’
젠장. 목소리 톤이 너무 높았다.
또 왜 저러나 하는 강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영은 고개를 푹 박은 채 도면치는 척을 했다.
사실 강현이 이영에게 시선을 준 시간은 몇 초 사이로 그것도 아직 화가 나있나, 하고 살핀 것뿐이다. 하지만 괜히 찔리는 것이 있는 이영만 안절부절.
휴우, 강현의 시선이 제게서 거두어진 것을 확인한 이영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모르게 급 치곤이 밀려왔다.
‘뭐해?’
이번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강현이 꾸물꾸물 침대위로 올라가서 눕는 이영을 발견했다.
‘나 한 시간만 잘래.’
그렇게 말한 이영은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려 덮었다.
그래.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이상한 건 수면부족 때문이다. 너무 잠이 오니까 자꾸 눈앞의 사물이 미화되어 보이는 것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행동에 눈이 감기려고 한 것이다. 한 시간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 질 거라고 생각하며 이영이 서둘러 눈을 감았다. 그러나.
-!
묘하게 시트가 기울어지는 감각에 슬쩍 이불을 내렸던 이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현이 침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왜, 왜 올라오는 건데?’
‘나도 눈 좀 붙일까 하고.’
깜짝 놀라 후다닥 몸을 뒤로 몰린 것인데 엉겁결에 자리를 비켜준 것이 되었다.
‘내, 내려가서 자. 사내놈 둘이 좁은 싱글침대에서 뭐하는-,’
‘편하게 자면 못 일어날 거 아냐. 한 시간만 잔다며.’
‘.......’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좁은 침대 위에 강현과 나란히 누워있었다.
흠칫. 제 쪽으로 고개를 틀어 자고 있는 강현에 이영이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벽을 보고 자는 것도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싶어져 결국 정면으로 천장을 보고 누었다. 보통 옆으로 모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어서 정면으로 똑바로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순전히 자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영도 잘 알고 있었다.
옆에 누운 사람이 미친 듯이 신경 쓰여 숨을 쉬는 것도, 침을 삼키는 것도, 불편한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사, 살려줘!
이영이 어두운 허공을 향해 외쳤다. 물론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헉.’
막 교수실에서 나오던 이영과 마주친 재황이 귀신이라도 마주친 반응을 보였다. 아침에 세수하고 거울 본 자신의 소감도 딱히 다르지 않았으니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덕분에 교수도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스케치 업으로 작업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괜찮냐?’
‘죽을 거 같다.’
‘이미 죽은 거 아니야?’
‘불길한 소리 하지마!’
이영의 외침에 재황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왜?’
뚫어져라 보는 이영의 시선을 느낀 재황이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웃는 게 참 못생겼다 싶어서.’
‘너는 뭐 다른 줄 아냐?!’
발끈한 재황의 공격에도 이영은 별다른 반박 없이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그런 이영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재황이 소리쳤다.
‘야, 어디 가는데.’
‘자러.’
‘점심 사줘?’
‘밥보다 잠이 더 고파.’
그래도 고맙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보인 이영이 다시 비틀거리며 걸었다. 집에 갔다 올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백방 오후 수업은 못 들어갈게 분명했다.
어디 빈 강의실 없나. 자꾸만 감기는 눈을 비비며 걷던 이영이 멈칫했다. 마주 걸어오던 강현도 이영을 발견하고 거리를 좁혔다.
‘4차 수정?’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통과됐네요.’
‘그것 참 안타깝네.’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 어제의 그 기묘한 기분은 정말 단순한 수면부족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밥은?’
‘안 먹었는데.’
강현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묻는다.
‘먹으러 갈래?’
‘……지금?’
어제 야식 네가 샀으니, 점심 살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풍원각 깐쇼새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영이 대답했다. 재황이 물었을 때만 해도 자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파졌다.
‘뭔가 내가 손해인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현은 방향을 틀었다. 그 옆으로 이영이 쫄래 졸래 따라 붙으며 덧붙였다.
‘짜장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