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6)

‘이번엔 교수가 별말 안 해?’

막 깐쇼새우 하나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어. 그냥 도면이랑 내 얼굴 번갈아보더니 놓고 가라던데?’

이영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강현도 곧바로 이해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쳇. 제 입으로 한 말이지만 이렇게 단박에 수긍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기껏 저보다 몇 시간 더 잤을 뿐인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강현의 상태였다.

‘너 혹시 뭐 먹는 약이라도 있어?’

‘무슨 약?’

‘몸에 좋은 거 같은 거 있잖아.’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좀 먹자 싶었다.

‘따로 먹는 건 없는데?’

‘그럼 뭐 운동 같은 거 하냐?’

‘딱히.’

헐. 그러니까 지금 이 체력과 몸매는 다 타고 났다는 거라는 거지? 굉장히 재수 털리는 소리였다.

‘집안이 원래 건강 체질이야?’

‘흐음.’

생각해 본적 없는 질문이었던지 잠시 턱을 괴고 있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형이나 동생이 아픈 걸 본적이 없네. 부모님은 건강관리 일부러 하시니까 해당 안 될 테고.’

듣고 있던 이영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형이랑 동생 있어?’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말하는 거나 행동 하는 거나 딱 형제 없이 자란 녀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남자 형제 둘에, 그것도 무려 둘째라니 안 놀랄 수가 있나. 물론 그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으니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형이랑 동생은 몇 살인데?’

‘형이랑은 세 살 터울이고 동생은 두 살 터울.’

‘형은 뭐하는데?’

‘아버지 회사에 다녀.’

‘형도 건축가?’

‘어’

음. 건축가 집안이네.

‘동생은? 동생도 건축학과야?’

‘걘 자동차 공학과 갔어. 메카닉 덕후라.’

헤에.

‘귀엽겠네.’

‘별로.’

말은 그렇게 해도 형 얘기 할 때보다는 말이 많아진 것을 보면 귀여워하는 게 분명했다.

‘넌?’

‘아. 나는 동생만 둘. 여자 남자 이란성 쌍둥이야.’

‘그래? 몇 살인데?’

‘고2’

‘귀엽겠네.’

‘귀엽지.’

에이. 동생 귀여워하는 거 맞잖아. 괜히 아닌 척 해도 이렇게 묻는 걸 보면 저도 내심 동생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가만보면 무뚝뚝한 말투나 행동 때문에 손해 보는 타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왜.’

빤히 보는 시선에 강현이 물었다.

‘아, 아니.’

이영이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강현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계산서를 집어 들며 말했다.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

‘무슨 소리야. 아직 새우가 이렇게 남았는데?!’

이영의 젓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한 말인데, 이영은 펄쩍 뛰었다.

‘배부른 거 아냐?’

‘배는 부르지만, 비산 건데 아깝잖아!’

이영이 급히 다시 젓가락을 앞으로 내뻗었으나 강현의 손에 의해 저지되었다.

‘됐어, 뭐 얼마나 한다고. 그냥 남겨.’

‘헐.’

‘뭐.’

‘이게 바로 부르주아의 사고방식인건가 싶어서.’

이영의 말에 강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먹고 탈나는 게 더 손해겠다.’

‘설사 탈이 나더라도 이런 비싼 걸 남길 순 없다! 할당제니까 너도 두 개 맡아.’

그리고 이영은 젓가락으로 집은 새우를 강현의 그릇에 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표정 없는 얼굴로 제 앞 접시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강현에 이영이 뒤늦게 너무 까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냥 내가 다 먹을게.’

슬그머니 손을 내뻗어 새우를 도로 집었다.;

‘둬.’

어느새 젓가락을 든 강현이 이영이 가져가려던 새우를 낚아채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할당된 나머지 하나까지 마저 삼키고 씹었다.

‘내 몫은 끝났다.’

그렇게 말하며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게 있던 이영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강현은 벌써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가, 같이 가.’

이영도 황급히 제 몫의 새우 두 개를 한꺼번에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먹어주었다. 입안에 가득 찬 새우를 우물거리느라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이영의 입 고리는 분명 말려 올라가있었다.

‘또 바뀌었네.’

‘그러게.’

인우와 몇몇 동기, 이제는 혼자서도 전혀 위화감 없이 그 사이에 끼어있는 이영까지. 참새새끼들 마냥 쪼르륵 창문에 붙어 선 무리가 보고 있는 것은 막 공대 건물 앞에 멈춘 BMW 520. 물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대단한 차의 주인인 1학년 신입생과 운전석 보조석에서 내리고 있는 강현이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함께 차를 타고 등장한 두 사람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그냥 단순한 등굣길 카풀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미인이구만.’

‘언제는 아닌 적도 있었냐?’

‘왜 저번 여자 친구는 미인은 아니었잖아.’

‘대신 몸매가 죽였지.’

죽였지. 특히 가슴과 다리가. 거의 동시에 이전 여자 친구의 몸매를 떠올린 모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참, 희한하단 말이야.’

병호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처음에야 몰라서 그렇다고 치지만 지금은 다 알잖아? 그렇게 악명이 높은 데도 왜 여자들이 끊이질 않는 거지?’

인우가 뭘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여자들은 나쁜 남자에게 끌리게 되어있어. 다른 여자들한테는 차가운 남자가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 달라진다는 스토리가 여자들의 판타지거든. 그 제대로 된 여자주인공이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전하는 거지. 게다가 악명이 높을수록 오히려 그 수많은 여자들을 제치고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으니 더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지.’

‘그냥 착한 남자를 만나면 안 되는 거야?’

인우의 친절한 설명에도 병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얘가 뭘 모르네. 그럼 넌 뭐 하러 기를 쓰고 보스몹 잡냐? 그냥 편하게 약캐 잡으면서 레벨업하지.’

‘그럼 재미가 없잖아. 아예 게임을 안 하고 말지. ……아.’

자기가 대꾸하고 바로 깨닫는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던전 보스몹의 레어템이랄까.’

‘그런 거면 뭐.’

‘그러게.’

게임 덕후들을 위한 눈높이 설명으로 모두들 단박에 납득.

‘게다가 경험자의 증언에 따르면.’

동기 중 한 명이 살짝 목소리를 죽인 뒤 덧붙였다.

‘잠자리 매너가 또 그렇게 끝내준다더라.’

끄덕끄덕. 한 사람만 들은 얘기는 아닌지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얘긴 나도 들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기술이 아주 그냥.’

‘대체 뭐 얼마나 잘 하길래?’

‘오죽하면 남자도 임신시킬 수 있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돌까.’

‘헉.’

‘정말?’

‘그렇다니까.’

아침 댓바람부터 할 소재는 아니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이정도 음담패설은 음담패설 축에도 못 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음담패설의 대상이 강현이라는 데 있었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이야기에 동참하던 이영이었으나 음담패설, 정확히는 남자도 임신시킬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 직후부터 표정은 딱딱하게 굳고 말수도 확연히 줄었다.

‘야. 왜 그래?’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자연히 눈에 뛸 수밖에.

‘너 임마. 지금 상상하고 있었지.’

‘…….’

뭘 알고 한 소리도 아니고 그냥 멍 때리고 있는 이영을 놀리려고 한 소리였을 뿐이다. 그냥 어떻게 알았냐며 농담처럼 받아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정곡을 찔려 당황한 탓에 이영은 받아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뭐야. 정말 상상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아니라…….’

뒤늦게 수습을 해보지만 옵션으로 귀까지 벌겋게 물들인 이영은 이미 모두의 놀림감이 되었다.

‘와. 송이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 음탕하구만?’

‘그런 거, 아니고.’

‘그러게. 송이, 순진한 얼굴로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거야?’

‘그냥 딴 생각 좀 했다니까.’

사실 한 번 이런 분위기가 되면 무슨 얘기를 해도 놀림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럴 땐 그저 녀석들이 질릴 때까지 얌전히 닥치고 있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어구. 우리 송이양 막 상상하구 그래쪄요?’

‘…….’

‘오빠들이 아침부터 송이한테 너무 자극적인 얘기를 했구나? 앞으로는 주의할게.’

‘……네, 주의 좀 해주세요.’

결국 수습하는 것을 포기한 이영이 적당히 맞장구를 치자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무슨 자극적인 얘기를 했는데?’

-!!!

그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사이로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작업실 분위기가 단숨에 확 식었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제 등 뒤에서 들려온 강현의 목소리에 이영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강현이 이렇게 등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는데도 전혀 눈치도 못 챘다.

대체 어디서부터 듣고 있었을까? 사실 처음부터 듣고 있었다고 해도 이영이 무슨 상상을 했는지 강현이 알 리가 없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 듯 찔리는 것이 있다 보니 이영의 시선은 강현을 똑바로 보지 못 하고 괜히 이리저리 허공을 떠돌았다.

게다가 그런 사정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강현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니 강현의 성격을 익히 아는 친구들은 모두들 초긴장 상태.

다행히 그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강현이었다.

‘그런데 누가 송이라고 한 거야?’

너잖아. 너.

정작 송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낸 원흉이 분위기를 착 가라앉히고 물으니 다들 턱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하고 서로 시선만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불만을 토로할 수 잇는 사람은 이영정도였지만.

‘자꾸 송이송이 그러면 듣는 송이 기분 나쁘잖아. 그렇지?’

‘뭐……. 그렇,지.’

괜히 찔리는 것이 있는 이영은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고작.

‘우린 뭐, 그렇게 싫은지 몰랐지.’

‘그러게. 그렇게 싫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미안. 앞으로는 그렇게 안 부를게.’

‘어? 아니, 뭐…….’

괜히 이러다가 좀 전에 강현의 뒷담화를 나눴던 것까지 들통이 날까. 인우를 필두로 냉큼 사과를 한 친구들은 뒤이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아, 나 강의 있는데 깜빡했다.’

‘나도.’

‘나도 자료 찾으러 가봐야 해서. 나중에 봐.’

어,어? 하는 사이 타이밍을 놓친 이영만 텅 빈 작업실에 강현과 단둘이 남았다. 다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미묘하게 비켜져 있던 시선을 내리자 곧바로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강현이 이영을 향해 툭, 하고 한마디 내뱉었다.

‘이젠 애들이랑 나 없이도 잘 논다?’

왠지 따지는 듯 한 말투에 이영의 반응도 불퉁한 것이 당연했다.

‘뭐. 그래서 꼽냐?’

‘아니.’

뭐. 또 뭔 소리를 하려고 그러나 싶어 방어 태세에 들어가 있던 이영의 허를 찌르는 강현의 한마디.

‘서운해.’

‘…….’

담담하게 툭, 던진 말이라 더 놀랐다.

‘웃, 웃기네. 니가 여자 만나고 다니느라 없었던 거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이영은 자꾸만 말려 올라가는 입 꼬리를 감추지를 못한다. 이영의 투덜거림에 이번엔 강현이 되물었다.

‘왜. 질투 나냐?’

‘……질투는 개뿔.’

물론 이영은 솔직함과 거리가 멀었지만. 그런 이영의 불퉁한 대답에도 강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하고 웃었다. 강현이 웃으니 이영도 따라 웃고 말았다.

‘그런데, 넌 강의 안 들어가?’

뻘쭘한 기분에 이영이 말을 돌렸다.

‘가야지.’

‘늦은 거 아냐?’

‘늦었지.’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한 강현이 마치 남의 일인 양 태연히 대답했다.

‘강의실 어딘데?’

‘104호.’

강현의 대답에 이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의실이 1층인데 작업실까지는 왜 올라 온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너 일찍 와서 모형 만든다고 했잖아. 커피나 사주려고 들렸더니 열심히 남의 뒷담화나 까고 있고.’

헉. 뜨끔한 이영이 슬그머니 강현의 눈치를 살폈다.

‘……들, 었어?’

그래도 막 험악한 기운은 아니기에 혹시나 싶었으나.

‘남자도 임신시킬 수 있는지는 나도 자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

곧바로 이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간다.’

사실 이영이 물어서 대답하다보니 나온 것이지 어차피 그 일을 문제 삼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럴 거면 진작에 다른 놈들 있을 때 했겠지. 가볍게 인사한 강현이 몸을 틀었다.

‘수업, 잘 듣고 오세요.’

이영이 냉큼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영은 더 이상 강현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뒷걸음질 쳐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서운해.」

그 목소리를 떠올린 이영이 슥슥,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왠지 목덜미의 솜털이 파스스, 일어선 것 같았다. 그렇게 목덜미를 문지르는 이영의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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