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6)

움찔. 딱 복도로 들어서던 이영이 일순 굳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복고 벽 쪽에서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 탓이었다. 

뭐야. 구신인 줄 알고 식겁했다가 뒤늦게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걸음을 내딛는다. 술 취한 사람인가. 건물 출입구에 따로 잠금장티가 없는 탓에 취객이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근처 건물들이 다 비슷비슷하니 착각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집까지 못 찾아 갈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은 좀 자제해줬으면 싶지만.

그래도 저렇게 퍼마시는 것도 다 어릴 떄나 하는 거지. 좀 지나면 그러고 싶어도 안 된다. 다음날 컨디션도 생각하게 되고, 잘 안 취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이영은 고개를 푹 숙이 채 땅만 보고 걸었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쳐서 시비가 걸리가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빨리 집으로 들어가 버리자 싶었다.

열쇠가...... 걸어가면서 호주며니를 뒤적였다. 다소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금방 손끝에 열괴가 닿았다. 저도 모르게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갑자기 이여의 팔을 누군가 덥석 붙잡았다.

'으아아악!'

워낙 흉흉한 일이 많다보니 아무리 남자로도 겁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잔뜩 긴장하고 있던 터에 덥석 손을 잡히니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사실 무서운 것보다는 순간 놀란 것이 컸다. 그리고 그렇게 소시를 꽥 지르는 이영을 향해 취객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이여. 나야 나.'

엥? 뒤늦게 이영이 앞에 서있는 취객의 얼굴을 확인했다.

'우강현?'

다리의 힘이 쭉, 풀리다.

'임마. 무야. 사람 놀라게.'

놀라서 눈물까지 찔끔 났는데 강현은 그런 이영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가만히 물었다.

'많이 놀랐냐?'

'안 놀라냐. 그럼?'

'난 또 나인 줄 알고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줄 알았지.'

'취객인줄 알았지. 내가 왜 일부러 모르는 척 하냐.'

다소 뼈가 있는 강현의 말에 대꾸하는 이영의 목소리는 확연히 작아져있었다.

'일주일 동안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없고, 작업실도 안 나온 거랑 비슷한 맥락인줄 알았지.'

'......'

이렇게 콕콕 집어서 얘기하니 어영부영 넘어가기도 힘들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어색한 분위기로 바닥만 보고 있으려니 옆집 문이 빼꼼 열리고 체인이 쳐진 문틈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영이 소리를 질렀던 것 때문이 모양이었다.

'아, 저기 죄송해요. 친군데 제가 잘못 봐서.'

이영이 급히 변명하자 옆집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덧붙였다.

'그럼 얘기는 방에 들어가서 하시면 안되요? 다 들리는데.'

'헉. 죄송합니다.'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간. 안 그래도 방음이 잘 안되는 원룸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기엔 지나치게 민폐인 시간이다. 이영이 황급히 사과를 하자 옆집 남자도 어 이상 따질 생각을 없는지 말없이 문을 닫아걸었다.

'안 들어가?'

'......'

당분간 안보기로 결정 했든데, 결심한 당일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단둔리 밀폐된 공간에 있게 생겼다. 말 그대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열쇠'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우물쭈물하고 있는 이영에 강현이 먼서 선수를 쳤다. 그리고 이영이 내어주기도 전에 이영의 손에서 열쇠를 낚아챘다.

찰칵. 경쾌하게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고 강현이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은 채 여진히 복도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영을 향해 까딱 하고 고갯짓을 했다. 강현의 무언의 압박에 이영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영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뒤에서 문이 닫혔다.

'뭐 마실래?'

발치에 차이는 물건들을 대충 침대 및으로 밀어 넣으며 방을 가로지를 이영이 물었다.

'물'

미간을 찌푸린 채 이영이 하는 양을 보고 있던 강현이 작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강현의 대답에 이영이 냉장고에서 생수통을 꺼내 컵에 따랐다. 형소 같으면 그냥 물통채로 들고 마셨을 이영이지만 그래도 강현을 의식해서 저도 컵에 따랐다. 강현의 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제 물을 한 모금 넘겼을 때였다.

'그런 데 대체 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풉'

얘기치 못한 질문에 이영이 마시던 물을 뿜어냈다. 강현은 급히 옆으로 몸을 피한 덕에 다행히 물세례는 피했다.

'뭘 그렇게 당황해? 뭐 이상한 데라도 다녀왔어?'

뭐 알고 하는 말인가 싶어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무슨. 그냥 친구 좀 만나고 왔는데.'

태주를 만났으니 거짓말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약속하고 만난것은 아니지만.

'친구? 친구 누구?'

'니가 내 친구 다 아냐?'

'친구가 거의 없다는 건 알지'

그래. 나 친구 없ㄷ. 이영이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고향 친구 만났어.'

'그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빤히 보고 있는 강현에 이영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괜스레 물마 열심히 들이켰다. 침착하자. 침착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강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산은 취향들이 독특한가봐?

그건 또 뭔소리야. 강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렸던 이영의 얼굴이 일그려졌다. 이놈의 셔츠. 내일 당장 불태워 버릴 테다.

'뭐야. 남의 셔츠 트집 잡으로 왔냐?'

이영이 불퉁하게 받아쳤다. 티셔츠만 없입어도 패션집자 화보 찍는 녀석을 앞에 두고 보니 안 그래도 부끄러운 차림새가 더더욱 민망하게 느껴졌다. 그런 이영의 반응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강형이 물어싿.

'화 많이 났냐?'

'......뭐야. 그냥 한 말인데 뭘 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래. 화 안 났어.'

진지하게 물어오니 이영도 당황했다.

'그 날 말야.'

이영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니가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

심장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멍하게 있던 이영이 뒤늦게 더듬거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싫어해.'

설마, 하면서도 뒷덜미가 서늘했다. 손끝으로 핏기가 사라지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너 머리 만지는 거 싫어하잖아.'

깜빡. 깜빡. 잠시 무슨 소리인지 몰라 눈만 깜빡이는 이영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뭐야. 그날 내가 너 머리 헝클여서 화난 거 아니야?'

'.......'

아. 그제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런 이영의반응을 보고 있던 강현이 살풋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묻는다.

'그럼 혹시 인우 말대로 그 여자후배 때문이야?''

다시 긴장했으나,

'인우 말로는 니가 그 여자후배 마음에 들어 했다가 시실을 나한테 그런 거라서 기분 상한 거 아니냐고 하던데.'

'그런 거 아니야.'

안심한 이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이영에 강현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대체 뭐야?'

'.......'

'대체 뭔데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씹고, 사람을 피한 건데?'

'.......'

'화내는 게 아니라, 왜 그러는지 말해달라는 거잖아.'

'......'

제가 피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강현 쪽에서 찾아올 줄을 몰랐다. 아무리 속은 다정한 녀석이라도 그런 대접을 참고 넘길 만큼 사람이 고픈 녀석도 아니고.

그런 녀석이 지금 이렇게 자신의 화를 풀어주려고 애쓰는 것을 보니 그것이 저와는 전혀 다름 마음이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송이영.'

이영의 이름을 부르는 강현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베어있었다.

'송이영'

이건 진짜 반칙이다.

왠지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결국 이영이 입을 열었다. 최대한 평소와 같은 목소리와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그냥 좀 쪽팔려서 그랬다. 됐냐?'

'대체 뭐가?'

'별것도 아닌데 혼자 화내고 나왔잖아. 남의 모임자리에 낀 주제에 빈정 좀 상했다고 뛰쳐나오고, 생각하니까 너무 쪽팔리잖아. 말 안하면 대충 넘어가면 되지. 그걸 또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보냐.'

툴툴거리는 이영에 그제야 강현이 못 말린다는 듯 피식, 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 이영은 지금 상황도 잊고 가슴이 설렜다.

'하루 이틀이냐?'

'그러니까 더 쪽팔리지.'

'뭐 , 애들도 놀려서 미안하다고 하던데/'

'쫌팽이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뭐, 처음엔 그랬는데, 너 계속 작업실도 안 오고 그러니까 너무 심하게 놀린 거 같아도 반성하더라.'

이영이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럼 이제 다 풀린 거지?'  

'뭐, 풀리고 말고 할게 뭐있어.'

'일주일 내내 잠수 탄 게 말은 잘한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공대작업 들어가기로 했으니까 아침에 일찍 나와'

'어?'

자기 할 말을 끝낸 강현이 식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방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향하는 강현을 이영이 급히 뒤따라갔다.

'저기 그거 나 그냥 빠지면 안 될까?

신발을 신고 문고리를 잡으려던 강현이 몸을 틀었다.

'왜?'

'난 실력도 그렇고 그리고 계절학기도 들을 거라.'

우물쭈물 변명하는 이영을 물끄러미 보던 강현이 물었다.

'뭐야. 다 풀린 거 아니었어?

'이건 그거랑 상관없어. 진짜 할 일이 많아서...'

'송이영'

변명하는 이영의 말을 강현이 딱 잘랐다.

'나 졸업하고 나면 사무실 차릴 거야.'

엥?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이영은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는 거 아니고?'

'형이랑 둘이 나눠 먹이 긿어.'

꽤나 재수 털리는 소리였지만 강현이 하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때 너도 데려갈 건데, 지금처럼 빌빌거리는 실력인 채로는 목 데려가. 그러니까 닥치고 따라와라.'

그리고 악당처럼 씩익, 웃은 강현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대화는 없다는 뜻이었다.

광. 하고 문이 닫히고 잠시 멍하게 혀오간에 서있던 이영이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 진짜 뭐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팔등으로 문지르며 이영이 중얼거렸다. 심정이 미친듯 이 뒤었다.

잘하는 짓이라고 빈정거리는 태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지만, 그건 태주가 강현이 저러는 것을 못 봤으니까 하는 말이다. 저 얼굴로, 저런 소시를 하는데 누가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무리. 절대 무리다.

좁지처럼 침대로 기어들어간 이영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으니 더 귓가에 생생한 목소리. 

[닥치고 따라와라.]

누가 따라간데? 웃기고 있어. 입으로는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자꾸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심장이 간잘간질하다. 쉴 새 없이 얼굴에 열기가 올랐다 내렸다 한다.

진정을 하려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파닥파닥파닥파닥, 팔다리를 휘젓는다. 그리고 다시 가만히 베개로 달아오른 얼굴을 꾹꾹 눌ㄹ렀다.

좋아서 미칠것 같다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이영은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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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누군가 중얼거림에 한참 폼보드와 씨름하고 있던 이영이 고개를 들었다. 이영의 등고 축축했다.

강의실과 달리 학행들망 사용하는 작업실을 구석 에어컨이 고작이다. 틀어봐야 소리만 요란하지 그다지 시원해지지도 않고 본드를 많이 쓰는 작업실 특성을 고려해 모든 창문을 열어놓는 것으로 냉방을 대신하고 있는 터라 12시부터 2시 사이는 거짓말 살짝 보태서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콧잔등에 맺힌 땀을 훔치며 이영이 일어섰다. 창으로 바짝 다가서자 그나마 조금 맑은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방학이라고는 해도 공모전이다 프로젝트다 해서 작업실 포화도는 여전히 높았다. 특히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누구 때문인지 이번 방학은 유난히 여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고개를 내리니 공대 입구, 큰 은행나무 아래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안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 일견 이영에게만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누가 웃긴 얘기를 했나보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울려 포지고 강현도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슨 얘기길애 강현도 웃는 건가 싶어 이영이 창틀을 짚고 고개를 쭉 뺐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리던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강현이 손을 들어보였다.  강현의 시선이 움직인 곳으로 함께 있던 친구들도 함께 시선을 움직였다.

'송! 여기가 더 시원해. 내려와.'

병호가 크게 외쳤지만 이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담배를 태울까? 그놈의 사랑이 뭔지. 군대에서도 안 배운 담배인데, 지금에 와서 그런 생각까지 들게 한다. 피식, 하고 웃은 이영이 창에서 물러섰더ㅏ.

띠딩.

시원한 빙수나 한 사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핸드폰을 열오본 이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빙수 먹으로가게 내려와.]

뭐야. 텔레파시라도 통했나. 별 것도 아닌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랑에 빠진 청년 송이영이다.

'교수는 스킵플로어 적용해보라는 무리한 요구를 막 하는데.'

뒷담화의 단골 레퍼토리는 보통 과제 많이 내주는 교수와 누가누가 더 과제가 많은가로 나뉜다. 그리고 오늘은 교수로 낙찰.

'그런데 나조차도 그러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정신 나간 기대를 듣고 있다는 게 함정.'

'스킵플로어 그렇게 안 어렵던데. 기본만 조금 할 줄 알면 얼추 나오니까.'

'야 그 기본 조금이 어려우니까 문제 아냐.'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이영은 말없이 빙수 드링킹 중.

'누가 뺏어 먹냐. 천천히 먹어.'

'얼음 녹잖아.'

보다 못한강현이 한마디 하지 이영은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듯 펄쩍 뛰었다.

'아직 덥냐?'

물론 가게 안의 에어컨은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로 빵빵하게 가동 중이다.

처음에 다들 빙수 먹겠다고 오기는 했지만 정장 싸늘한 가게 온도에 모두 조용히 빙수대신 음료로 전환할 때 이영 혼자 끝까지 빙수를 고집했다. 그리고는 미련하게 덜덜 떨면서 아직 녹지도 않은 얼음을 퍼먹고 있다.

'원래 빙수 같은 건 겨울에 덜덜 떨면서 먹는게 묘미야.'

무슨 대단한 철학처럼 진진하게 말하는 이영에 강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혀가 얼었는데 발음이 조금 어설퍼서 더 웃긴 이영이다.

'보면 송은 확실히 좀 웃긴 거 같애.'

송이영에서 송으로 별명이 무한 변화하는 이영이었다. 그래도 송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지만.

'칭찬이냐 , 욕이냐.'

'친찬이지, 칭찬.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게 아니라 진지한데, 그네 엄청 웃기달 말이지. 그거 쉽지 않은 건데.'

'나 그거 뭔지 알아. 얼마 전에 과제 모형 만드러 온 거 보고 아 완전 굴렀닪아. 어찌된게 폴리보다 나무가 더 정교해. 나 그 나무 진짜 나무 꽂은 건 줄 알았네.'

대놓고 비웃음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건 제가 봐도 비웃을 만 하다고 인정하는 바였다.

일부러 그런것은 아닌데 만들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무가 정말 진짜 나무처럼 만들어져버렸다. 유난히 퀄리티가 훌륭한 나무에 반해 정작 폴리, 즉 건물은 너무나도 비루해서 건축 모형이 아니라 나무 모형을 만들어왔냐고 교수한테 한소리 들었다. 물론 강현에게도 완전 비웃음 당항 것은 당연한 수순.

병호의 말에 강현도 그 기억이 떠올랐는지 풉, 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강현이 그렇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은 흔티 않은 일이라 다들 시선이 강현에게 고정되었다. 물론 이영의 시선도 거기에 섞여 있었다.

'봐. 강현이를 이렇게 웃기는 거는 얘밖에 없다니까.'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이영이 볼을 긁적였다.

'확실히 송이가 웃기긴 하지.'

그럼게 말하며 내 뻗은 상현의 손이 이영의 머리 바로 위에서 멈추었다. 쏘리. 곧바로 입모양으로 사과하고 손을 돌리는 강현에 이젠 괜찮다고 해야 하나 이영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Trrrrrrrrrrrrrrrrrrrr.Trrrrrrrrrrrrrrrrrrrrrrrr.

전화벨이 울렸다. 다들 전화기를 뒤적였지만 소리가 나는 쪽은 강현이었다. 역시 인기인. 전화도 오고. 여자냐? 핸드폰을 꺼내는 강현을 향해 야유가 쏟아졌다.

'여보세요.'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 조용히 웃으며 전화를받던 강현이 다음 순간 얼굴을 굳혔다. 야유를 하던 친구들이 단숨에 입을 다물었다. 물론 강현이 얼굴을 굳힌 것은 친구들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 정말이야?......그래. 알았다. 지금 바로 갈 수 있어.......그래 좀 있다 보자.'

심각한 표전으로 연신 간단한 대답만 하던 강현이 전화를 끊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에 이영과 친구들은 시선만 주고 받을 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다.'

마치 숨이라도 고르듯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린 강현이 히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강현을 보고 있던 이영이 뒤늦게 강현의 뒤를 따라갔다.

'한 며칠 학교 못 올 거 같은데 혼자 학업하기 힘들면 그냥 둬.'

'혼자 하는 건 상관 없는데, 무슨 일인데 그래?'

'친구가 죽었다네.'

아. 이영의 얼굴도 조금 굳었다. 말투가 덤덤하긴 해도 그건 슬프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 현실감이 없어서인 것 같았다.

'찬한친구였어?

'어/'

물어놓고도 괜한 걸 물었다 싶었다. 강현의 표정으로, 행동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뭔가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Trrrrrrrrrrrrrrrrrrrr.Trrrrrrrrrrrrrrrrrrrrrrrr.

할 말을 찾지 못해 보고만 있는데 다시 전화벨일 울렸다.

'인우냐. 나도 금방. 어. 그래. 난 지금 가려고......그래 병원에서 보자.'

인우의 전화를 받던 강현이 이영에게 손으로 인사를 했다. 이영이 마주 손을 들어 보이기도 전에 강현이 먼저 몸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강현이 택시를 잡았ㄷ. 강현이 택시에 올라 문을 닫으려던 찰나, 이영이 급히 문을 붙잡았다.

'너 그러고 가게?'

'아'

이여의 말을 듣고서야 강현은 제 옷차림이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마워, 가는 길에 사서 가야겠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내.'

'그래'

탁. 이영이 택시 문을 닫았다. 문을 닫기 무섭게 택시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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