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6)

"오빠야, 왜 얼굴이 벌겋노."

"아, 그냥. 좀, 더워서. 보일러 너무 세게 틀어진 거 아니가? 왜 이리 덥노."

마주 앚아있던 이랑의 지적에 이영이 손으로 파닥파닥 손부채질을 한다.

"덥다고? 이랑이 니 덥나?"

"아니. 우리는 하나도 안덥느데 오빠야는 덥나?"

이일과 이랑, 어머니의 시선이 이영에게 쏠린다.

"그러고보니까 어째 저번에 내려왔을때보다 살도 많이 빠지고, 공부하느라고 힘든갑네."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염려를 필두로 이일과 이랑의 걱정스러운 시선까지 한몸에 받으려니 양심이 콕콕콕 쑤셔왔다.

"내일보고 한의원가서 약 한재 지어먹자."

"아니다. 됐다. 약은 무슨. 밥을 걸러서 그렇다. 밥먹으면 도로 찐다. 괜찮다."

눈이 휘둥그레진 이영이 손까지 휘저으며 말렸다. 중간중간에 배달음식들을 시켜먹기는 했는데 확실히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것이 티가 났다.

"뭐한다고 끼니를 거르노? 공부도 좋지만 끼니는 거르면 안된다. 몸상한다."

다시금 쿡쿡쿡 찔리는 양심.

"어. 이제 잘 챙겨먹을께."

자꾸만 이영의 목이 자라마냥 움츠러들었다.

"아가 왜 자꾸 반찬 놔두고 밥만 먹노. 조기좀 먹어봐라."

어머니가 조기그릇을 이영의 앞으로 밀어준다. 그것을 보고있던 이일이나 입ㅇ을 불퉁하게 내밀며 한마디 한다.

"형아만 입이가. 나도 조기 좋아하는데."

"형은 따로 산다고 잘 못 챙겨 묵는다 아이가. 그리고 어차피 한 사람에 한마리씩 구웠구만 무슨 투정이고."

어리광을 부리다가 어머니에게 혼이 난 이일의 입이 댓발은 나왔다.

"아나. 우리 이일이는 팔이 짧으니까네."

장난스럽게 말한ㄴ 이영이 슬그머니 조기그릇을 이일의 앞으로 밀었다. 눈이 마주친 이일을 향해 이영이 씩, 하고 웃자 뾰루퉁하게 있던 이일도 멋쩍은 듯 젓가락을 움직였다. 투덜거리긴 해도 사실 이일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이영이었다.

"형, 우리 생일선물 뭐 사줄거고?"

사실 신정이라서 온것도 있지만, 1월2일 쌍둥이들 생일때문에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뭐 갖고싶은거 있나?"

"선물 대신에 내 설날에 스;키타러가면 안되나?"

"스키?"

"어. 성일이네 아버지 콘도쓸수있는데 애들이 그날 가재."

보통 이영이 신정에 맞춰서 내려오는터라 신정은 식구들끼리 보내는 것이 집안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엄마가 형오면 물어보라했다."

사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는 집안의 대소사나 특히 쌍둥이들과 관련되는 결정권은 이영에게 넘기곤했다.

"그래? 그럼 갔다온나. 그럼 이랑이도 가나?"

"아니."

쌍둥이들 친구들이 모두 겹치는 지라 당연히 같이 가겠거니 했는데 이랑이 딱잘라 아니란다.

"아, 남자들끼리 가나?"

아무래도 여자애라 남자들끼리 가는데 끼는게 좀 그런가 싶었는데 이번엔 이일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반여자애들도 가는데 괜히 안 간단다."

"반애들가는거면 너도 가지, 왜?"

"됐다."

"왜, 형도 가라잖아."

이랑과 달리 이일은 같이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가자, 어?"

"안 갈란다."

"왜? 너도 처음엔 간다 했잖아."

"내가 언제."

힐끔, 이랑이 이영의 눈치를 보며 부정해보지만 눈치가 없는 이일은 곧바로 반박했다.

"저번에 상일이가 물어볼때."

우물우물. 끼어들기도 뭣해서 조용이 콩나물무침만 우물거리며 쌍둥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때였다.

"오빠왔는데 우리둘다 가버리면 서운하다이가."

끈질기게 조르는 이일에 이랑이 결국 속마음을 털어노고 만다. 물론 이일은 이해할수없다는 반응.

"형이 가도 된댔잖아."

그렇게 말하며 제말이 맞지 않냐는 듯 고개를 돌리는 이일에 이영이 피식,하고웃었다. 이래서 일분차이도 누나는 누나구나 싶었다.

"서운하기는 뭐가 서운하노. 나도 오랜만에 고향친구좀 만나고 그러면 좋지."

"거봐라."

"진짜?"

이랑은 턱을 치켜들고 뽐내는 이일이 아니라 이영을 보고있었다.

"진짜."

그런 이랑을 향해 이영이 빙그레 웃자 이랑이 조금 가벼워진 얼굴로 마주 웃는다.

"재밌게 놀다 온나. 이일이 간수잘하고."

"어."

죽이 맞는 이랑과 이영에 이일이 발끈했다.

"뭐? 남자인 내가 이랑이 잘 간수해야지."

"니나 사고치지마라."

"내 이제 사고 안친다."

"아,네. 그래서 저번주에-"

"송이랑!"

뭔가 폭로하려고 입을 여는 이랑에 당황한 이일이 빽소리를 내질렀다. 이름이 불린 이랑의 표정이 조금 사나워졌다.

이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괜찮아도 성을 붙여서 송이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못참았다. 이영으로서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수 없었지만 아마도 쌍둥이들사이에만 통하는 규칙이 있는 모양이라고 혼자 추측할뿐.

"뭐? 누나한테 송이랑?"

화를 내는 이랑을 향해 이일이 메롱, 하고 혀를 내밀었다.

"몇초차이도 안나잖아."

"억울하면 니가 빨리 나오지."

"니가 내 머리 누르고 먼저 나갔잖아. 내 뒤통수에 증거있다."

"뭐라하노."

언제나처럼 그렇게 쌍둥이들의 아웅다웅하는 목소리가 주방을 가득 메웠다.

"혼자 밥 챙겨먹을 수 있겠나."

막 등산화를 챙겨신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나마 쌍둥이들은 묻기라도 했지, 어머니는 쌍둥이들이 집을 나가기무섭게 친구들끼리 설날기념 등산을 가기로 했다고 통보를 했다. 그래도 아들혼자 두고 놀러가는 것이 걸리긴 하시는 지 연신 이것저것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맨날 혼자 챙겨먹는데, 뭐."

"그래도."

어머니가 나가시면 문잠그려고 멀뚱하게 현관 앞에 서서 대기하고 있던 이영이 새삼스럽게 무슨, 하고 대꾸했다.

"냉동실에 보면 곰국도 있고 어제 끓여놓은 된장찌개도 있고, 반찬은 김치냉장고에 있다. 고기구워먹을라면 김치냉장고 야채칸에 보면 있고.

"알았다.알았다. 그라다 늦겠구만."

이영의 핀잔에 시계를 확인한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가면서도 또 생각났다는 듯 한마디를 더 붙인다.

"아, 냉동실에 떡도 있다. 나중에 구워먹던가."

"알았다니까요."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싶어 감싸쥔 어머니의 어꺠를 앞으로 밀었다.

"갔다 오께."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질때까지 기다리던 이영이 문을 잠그고 거실로 들어왔다.

털썩. 소파에 드러누운 이영이 리모컨으로 틱, 하고 티비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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