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 이거 덮으래."
두꺼운 솜 이불을 가져와 바닦에 텅, 하고 내려놓았다.
"이거 우리엄마 시집올 때 해온건데. 비단이라고 우리도 못 덮는건데."
꿍얼꿍얼거리며 바닥에 이불을 펴는 이영을 보고 강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너 덮어."
"됐어. 괜히 들키면 혼나. 손님 대접 그렇게 했다고, 순전히 손님이라서 이 이불 주는건 아닌 거 같지만."
탁탁. 베게까지 털어 바닥에 놓은 이영이 일어나 침대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막 이불에 몸을 눕히는 강현에게 다시 묻는다.
"너 진짜 침대에서 안 자도 되겠어? 내가 바닥에서 자도 되는데."
"괜찮아."
혹여 같이 자자고 침대로 올라오지 않을까 나름 혼자 경계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강현은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불 끌게."
"어."
불을 끄고 침대로 올라온 이영이 이불을 덮고 누웠다.
숨소리에 신경쓰며 눈을 감고 있던 이영이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등 안배겨?"
"어, 푹신해."
"좋은 이불이라 그래."
피식, 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침묵,
우리집 내방에 강현이 누워있다는 것이 묘하게 설레고 기분좋았다. 게다가 아마 앞으로는 오늘 같은 일은 또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이대로 자는 것이 아까웠다.
"자?"
"어."
이번엔 이영이 피식, 하고 웃었다. 이번엔 강현이 질문했다.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신 거야?"
"삼년전에. 나 말년병장 때라 임종도 못 지켰어."
"위암이셨다고?"
"돌아가시기 4년 전에 2기 판정받고 항암치료 받으셔서 다 나았는데 나 군대 가기 전에 재발하셨어."
군대를 계속 미뤘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보통 치료 하고 5년만 버티면 완치라고 했다. 하지만 그 5년을 6개월 남겨두고 암이 재발했다.
이제 안정기라고 안심했을때라 더 아쉬움이 컸다.
"이랑이가 그런 생각 하고 있을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애들은 무서울 수 있지."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이일이는 엄청 울고불고 어리광이 장난 아니었는데 이랑이는 그대지 울지도 않고 어른스러웠거든."
"......."
"이랑이가 아무리 어른스러운 척 해도 아이인건데 혼자 무서워서 먹고 싶은것도 참고 그랬을거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
"이랑이는 혼자 참는 버릇이 있거든."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었다. 이일이는 안 그런데 이랑이는 혼자 참는 버릇이 있으니까 네가 잘 살펴주라고 당부하셨는데 그걸 깜빡했다.
"알아. 혼자 참는 버릇. 너도 그런 거 있잖아."
어?어떻게 알았지? 강현의 말에 이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 무려 2년 동안이나 짝사랑을 했던 거다.이건 좀 미련한 구석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크게 걱정 안해도 될걸? 그래도 이일이가 있으니까."
"그럴까?"
이일이를 떠올리니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막내 포지션상 집에선 어리광을 부리긴 해도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기만 한 것 같지 않던데."
"그래?"
그래도 남에게 칭찬을 받으니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뭐, 귀엽긴하더라만."
다시금 피식,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 귀엽다고 하는데 기분이 썩 좋지않은 것은 왜일까. 다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너 그런데 동생들이랑 있을땐 사투리 쓰더라?"
"아, 그래? 별로 차이 없지 않아?"
"엄청 나거든?"
"그래?"
"어."
"다시 해봐. 사투리."
"너 지금 굉장히 실례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냐?"
"그래? 그냥 아까 보고 있는데 좀 많이 귀엽길래."
뭐 싫으면 말고. 순순히 물러서는 강현에게 곧바로 이영이 한마디 했다.
"어떤 거."
픽,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치만 좀도 아니고 무려 좀 많이, 라잖아. 아까 둘이 대화하는 거 빤히 보고 있었던 것도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이영의 볼이 살짝 상기 되었다.
"시켜라, 이거."
"응?"
뭐 얼마나 귀여운 대사길래 강현이 그런 소리를 하나 싶어 물었더니 전혀 예상도 못한 대사가 돌아왔다.
"그게, 귀여웠다고?"
제게 귀엽다, 라는 단어의 의미가 강현에게 있어서 귀엽다, 라는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일까 싶었다.
"흠, 굳이 따지자면 그 말 할 때 모습이 귀엽달까?"
"......뭐래."
왜 이렇게 삐죽삐죽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강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이영은 입술만 올려 소리 없이 웃었다.
"너 동생들이랑 있을때 엄청 무뚝뚝하거든."
"그래?"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마도 동생들은 어리고 나름 경상도 남자의 가오? 뭐 그런 것도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만."
겠지만? 이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강현에게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겠지만.
"뭐랄까 내눈엔 쌍둥이들이나 너나 꼬꼬마라. 그냥 꼬꼬마들의 서열다툼으로 보인달까?"
뭐잇?! 이영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게다가 너 나랑 있을땐 납작 엎드리기도 하고 어리광 부리기도 하잖아. 그런데 쌍둥이들한테는 영락없는 형인걸 보니까 그 갭이 확, 차이나서 더 귀엽게 느껴지더라고."
"......."
아나 진짜 미치겠네. 이게 뭐 또 그리 대단한 칭찬이라고 자꾸만 광대가 튀어나오려고 한다.
"앞으로는 네 앞에서도 어리광 안 부리고 무뚝뚝하게 할 거야."
"그러지마."
왠지 민망한 기분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좀 했던 건데 강현이 갑자기 진지하게 나와서 상황은 더 어색해졌다.
순순히 알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다시 장난으로 받아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 강현이 담담하게 툭, 하고 말을 던졌다.
"내앞에서는 어리광 부려도 돼."
"......."
아. 강현은 가끔 이렇게 사람 허를 찌른다. 담담한 어조라 더 놀랐다. 가슴이 간질간질한 기분.
"오늘 고마워."
멋쩍은 기분에 볼을 긁적이던 이영이 계속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을 툭, 하고 털어놓았다. 녀석이 솔직하게 구는 것을 보니 자신도 조금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어졌던 것.
"아. 치킨? 뭐 그정도야."
"치킨 말하는 거 아니거든!? 물론 그것도 고맙지만. 잘 멋었어."
발끈했던 이영이지만 뒤늦게 잘 먹었다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일단 인사는 했다.
침대 아래에서 피식, 하고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가족들 만나기 싫댔는데 마음대로 소개시키고 자고 가게까지 됐잖아. 그런데도 별로 싫은 내색도 안보이고. 이일이한테도 잘해주고. 걔가 눈치는 없어도 애들은 자기 싫어하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거든. 그런거 눈치 안채게 해줘서 고맙다고."
내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뭐, 하고 모르는 척 넘기려고 해도 그래도 싫어하는 것을 다 아는데 이영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게다가 자고 가게 된것도 이일이 어리광 때문인데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받아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변명을 하게 되고 주절주절 말이 길어진다.
"무슨 소리야."
누워있던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표시했는데 우리가 몰랐던 건가? 적어도 제가 보기엔 전혀 그렇게는 안보였는데.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데 강현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는다.
"싫어한 적 없는데?"
"......."
무슨 소리냐는 강현의 반응에 잠시 멈칫했던 이영이 뒤늦게 발끈해서 반박했다. 깜빡하면 자기가 이상한 사람 될뻔 했다.
"니가 우리 가족들 보는 거 좀 그렇댔잖아."
아.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반응을 보이는 강현에 이영이 이제 생각났냐며, 거보라는 듯 턱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거야 처음 뵙는 건데 급하게 오느라 차림도 그렇고, 심지어 설인데 빈손으로 왔잖아."
"......."
그런 이영에게 돌아온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
"그런 거 였어?"
"그럼 그거 말고 뭐라고 생각했는데."
"......."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만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차림이 뭐 어떻다고."
달싹달싹, 입술만 달싹거리던 이영이 제일 먼저 한 말은 이것, 이 와중에도 짚고 넘어갈건 짚었다.
"내내 그런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빤히 보고 있던 강현이 물었다. 그러나 이영은 할말을 찾지 못하고 시선만 주고 받았다. 풀이죽은 이영의 모습에 강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생각을 왜 해."
아버지가 잘못한 아이를 달래듯 툭, 하고 담담하게 내뱉는 그 말을 듣는데 왜인지 맥이 쭉, 빠졌다. 강현이 침대위로 손을 뻗었다. 잠시 멈칫했던 손이 이내 머리에 얹혀졌다. 그리고 툭툭, 머리를 두드린다.
"가끔 보면 넌 진짜 이상한 고민을 하더라."
못 말린다는 듯 핀잔을 하면서도 표정은 다정하다.
"그러게. 좀 이상하긴 했어 싫다더니 이일이가 조른다고 바로 알았다고 하고."
기가 산 이영이 맘껏 투덜거렸다.
"내가 자고 가라고 할때는 콧방귀도 안 뀌더니."
"귀엽잖아."
강현이 빙글거리며 덪붙인다.
"그렇게 귀엽게 조르는데 어떻게 거절을 해."
"그래. 웃기는 누구랑은 다르게 귀엽겠지."
웃겨서 사귄다고 했던것을 또 마음에 두고 있었다.
"뭐야. 지금 질투하는 거야?"
"질투는 무슨."
흥칫핏, 하는 이영을 보며 강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벋어 이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미니민데 그럼, 안귀엽겠냐?"
컥. 진짜 얘는 어떻게 이런 소리를 눈도 깜짝 안 하고 하는지 모르겠다.
"니가 그렇게 조른다고 생각하니까,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
"......."
민망하기는 한데 또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들로 뒤섞인 이영은 시뻘게진채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너도 해봐. 혹시 알아? 뭐든 다 들어줄지."
"......뭐. 어디까지 들어줄 건데."
이 와중에도 궁금한건 또 물어보는 이영이다.
"글쎄. 그거야 너 하기 나름이지."
"......."
해볼까 말까. 조금 고민하고 있는 찰나 강현이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물렸다.
"아니다. 하지 마."
"왜에?!"
저도 고민하고 있었으면서 하지 말라니 갑자기 왠지 억울해진 이영이 항의했다.
"네가 하면 못 참을 거 같아서 말이지."
"......."
이번엔 뭘 못참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영이라고 저렇게 파랗게 날이 선 눈동자를 보고 덤빌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조용히 천장을 보고 누운 뒤 눈을 꾹 감는다. 그리고 목까지 끌어 올린 이불을 꾹꾹 여미는 이영에 강현이 의외로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하고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Squall
어라?
부스스, 좀비처럼 몸을 일으켜 앉은 이영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
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바닥에서 잠들었던 강현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강현이 잠들었던 이불도 없었다.
슬그머니 침대에서 내려온 이영이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막 주방에서 나오던 이랑이와 마주쳤다.
"이랑아, 강현이는?"
"요 앞 슈퍼에."
뭐 필요한게 있어서 사러 갔나? 어디 갔는지만 알면 되지, 뭐.
안심한 이영이 배를 긁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막 화장실 문을 열려는데 안쪽에서 뭔가 열심히 말하고 있는 이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둥이구나, 별 생각 없이 문을 열던 이영이 목격한 것은 거울을 보고 뭐라고 뭐라고 하고 있는 이일이었다.
뭐래는 거야. 지키고 서서 보고 있으니 거울을 보며 건방지게 턱을 살짝 든 이일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난 남녀 불문하고 인기 많은데?"
저 대사는 분명 어제 강현이 했던 대사. 재수 털린다고 뭐라고 할 땐 언제고 그걸 또 따라하고 앉았다.
"그건 강현이가 하니까 멋있는 거다."
딱 그렇게 생기고 딱 그만큼 사는 놈이.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형의 목소리에 휙, 하고 뒤를 돌아본 이일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이 형인 줄 알았네."
"문이나 닫고 하던가."
이영은 이일이 선 세면대 옆으로 다가가서 칫솔을 꺼내 물었다.
이미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던 이일이 물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생겼나."
열심히 움직이던 칫솔을 빼고 퇫, 하고 뱉으며 말했다.
"말이 되나."
"하긴."
다시 칫솔질. 머리를 다 말린 뒤에도 이일은 이영의 옆에서 알짱알짱거린다.
"형은 저 형이랑 같이 다니면 엄청 좋겠다이."
뭐가.
"여자랑 헌팅 같은거 엄청 잘될 거 아냐."
픽. 딱 고등학교 남학생다운 생각이라 이영은 웃고 말았다.
"우리 오늘 광안리 가서 놀자. 요즘 방학이라 예쁜 여자애들 엄청 많이 온다."
물로 입안을 헹구고 있던 이영이 급히 입안의 물을 뱉었다.
"서면 가서 낙지볶음 먹자며."
"먹고 가면 되지."
"그냥 밥만 먹고 얌전이 온나. 강현이 바쁘다."
"왜. 강현이 형도 가고 싶을 수도 있잖아."
왜긴 왜냐. 진짜 여자들한테 헌팅 들어올까봐 그렇지.
"글쎄 관두라니까네."
"내가 물어보께. 어제도 내가 물어보니까 자고 간다했잖아."
뽐내듯 말하는 이일에 이영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영이 생각해도 이일이 조르면 진짜 갈 것 같았다.
"안 돼. 강현이 자꾸 귀찮게 하지 마."
"왜에."
"씁."
얼굴을 굳이는 이영에 이일이 조금 울상이 된다.
띵동.
초인종소리가 나고 이랑이가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강현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는데 옆에 서있던 이일이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형한테 직접 물어본다?! 형! 형!"
"송이일!"
그리고 이일의 이름을 외쳐보지만 이미 이일은 밖으로 튀어나가버린 뒤다. 이영이 이일의 뒤를 쫓아 나갔다.
"형, 우리 광안리 가요. 거기 바이킹이 엄청 유명~."
"송이일,너!"
"왜 그래?"
갑자기 뛰어나와 외치는 이일과 그 뒤를 쫓아 나온 이영까지. 그 장면만으로도 대충 상황은 추측되었다.
"아니. 뭐. 너 오늘 일찍 올라가봐야 하잖아."
대충 얼버무리려는데 강현은 눈치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난 늦게 가도 상관없는데?"
"그봐라! 그럼 형 광안리 가는 거죠?"
"가고 싶으면 가지 뭐."
"아싸."
제가 원하는 답변을 들은 이일은 쪼르르 제 방으로 달려가 버리고 거실엔 덩그러니 두 사람만 남았다.
"왜. 일찍 갔으면 좋겠어?"
"누가 그렇대?"
그래도 늦게 간다는 건 좋다 싶었다.
"뭐 사러 갔다 오는데?"
체념한 이영이 화제를 돌렸다. 강현이 막 대답을 하려던 참에 주방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아. 사왔나?"
"네. 여기요."
그리고 얌전히 강현의 손에서 어머니의 손으로 넘어가는 검은 봉지.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이영이 물었다.
"뭔데?"
"된장찌개 끓이는데 두부가 떨어져서."
"에? 엄마가 얘 심부름 시켰나?"
이영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데 어머니는 태연하다.
"어. 느그는 다 늦잠 자느라고 일어나지도 않고, 야는 일찍 일어나서 할 일 없어 보이길래 시켰지. 왜 안 되나?"
"내 깨우지!"
"니가 깨운다고 일어나나."
별소리를 다 듣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어머니는 봉지를 들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이영의 얼굴에 난처한 빛이 서렸다.
"미안."
"뭐가?"
"깨우지."
"뭐 하러. 어차피 할 일도 없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말한 강현이 이영을 스쳐 소파로 갔다. 그리고 먼저 앉아서 뉴스를 보고 있는 이랑의 옆에 앉아 함께 뉴스를 본다.
거리를 두고 앉아 뉴스를 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시선을 느낀 이랑이 고개를 들었따.
"안 씻어?"
"......씻어야지."
다시 티비로 시선을 돌리는 이랑을 멍하게 보던 이영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하려고 했던 세수를 했다. 어푸어푸, 물을 끼얹고 비누거품을 얼굴에 문지르던 이영이 갑자기 호호호, 하고 이상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어떻게 쟤한테 심부름 시킬 생각을 했지? 새삼 엄마는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영은 다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