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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조사 (2) (9/21)

출구조사 (2)

일 년 만이었다. 동도 트지 않은 푸르스름한 새벽에, 수도 없이 오르내리던 그 언덕을 올랐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 여름인데도 피부 위에 닿는 공기가 따끔할 만치 서늘했다. 밤새 흘린 땀의 잔여가 톡 튀는 통증을 남기고 완전히 증발한다. 그 안에 제 속에서 오래 묵히고 썩힌 것들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겨우 땀 몇 방울, 감기 기운 조금 없어지는 게 이 정도로 아플 리가 없다고.

익숙한 대문이 시선 끝에 걸렸다.

문 앞에는 새벽부터 배달 중인 트럭 한 대와 아주머니가 나와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해영이 집을 나온 후에도 그녀는 홀로 남아 집을 돌봤다. 이 집을 누구보다 아끼던 아버지에게는 이 집의 가치를 잘 아는 관리인이 필요했고, 아주머니는 그 적임자였다. 해영은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오래 곁을 지킨 고용주의 유언이나, 저 집에 대한 애정처럼 순수한 이유로 남아 있는 게 아니다. 아주머니는 기회주의자였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렇듯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대문을 열고 기사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비켜섰다. 그리고 맞은편 언덕에서 올라오는 해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해영아!”

해영은 대답 없이 그 앞으로 다가섰다.

“아유, 놀래라. 내가 헛것을 보나 했어. 새벽부터 어쩐 일이니? 연락 좀 하고 오지.”

“제 집인데요.”

뱉자마자 후회했다. 저 집에 있는 것조차 숨 막히고 괴로워서 도망 나온 주제에, 이제 와서 소유권이라도 주장하고 싶었던 걸까. 해영이 입술 끝을 감쳐 물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몸이 안 좋아서요. 뭐 좀 가지러 왔어요.”

“…아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들어가자.”

해영이 대문 안으로 몸을 들였다. 아주머니는 잠시 더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상자를 나른 기사들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잘 관리된 정원을 가로지르니 현관문 옆으로 방금 가져다 놓은 택배 상자가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식재료로 보이는 상자가 대부분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양이 많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집의 냄새가 났다. 신발을 대충 벗어 던졌다. 뒤따라온 아주머니가 마실 것을 권했지만, 해영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 향한 곳은 서재였다. 확인해야 했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그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진실인지, 제가 그동안 무엇을 모르고 살아왔는지.

서재 안은 해영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금방이라도 아버지가 들어와 일을 보실 것만 같았다. 해영은 책상 안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감히 손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뭐 찾니?”

소란스러운 소리에 다급하게 올라온 아주머니가 방문 앞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해영은 아랑곳 않고 방 안 이곳저곳을 헤집었다. 제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뒤졌다. 먼지 하나 없던 바닥이 금세 서류와 책들로 어지럽혀졌다.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그 사이를 밟고 들어와 해영의 어깨를 쥐어 돌렸다.

“해영아!”

“왜 말 안 해 주셨어요?”

“뭐를….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해영이 원망 어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알고 계셨구나.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제 물음을 들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무언가 떠오른 사람처럼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으니까.

“제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거요.”

해영은 뿌옇게 번진 시야를 손등으로 훔치며 또박또박 말했다.

“알고 계셨잖아요.”

“…….”

아주머니는 더 이상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끈질기게 따라붙는 해영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대체 왜….”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제 아비조차 찾지 않는다는 걸 알면 충격받는다고.”

“저는 친아버지가 필요했던 게 아니에요, 저는!”

보호자가 필요했다. 말 그대로 보호자 말이다. 무조건적으로 품어 주고 거둬 주고 가르쳐 주는 사람.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데리고 있는 거라 생각했기에, 평생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제 공간이 생기고, 제 물건들이 늘어나도 단 한 순간도 온전히 저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빌린 거야, 빚이야, 갚아야지. 이상했다. 친아들이라고 알고 살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제집같이 느껴진다는 게. 의도치 않은 실수에서 온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해서 아버지의 선택으로 들여졌다는 사실이 해영을 정말 그 집의 일원으로 느끼게끔 만들었다. 이제서야. 이제 와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주머니는 그 둥글게 말린 작은 몸을 가만히 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많이 좋아졌네.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나이 지긋한 의사가 알 수 없는 의학 용어로 가득한 종이 몇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의사는 서 회장의 이십 년 넘은 주치의이자 몇 안 되는 말벗이었다. 서 회장이 그의 말에 바람 빠지듯 웃었다. 의사가 그 작은 소리에 고개를 홱 쳐들었다. 서 회장은 원체 웃는 일이 드물었다. 사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자식도 없이 홀로 남아 온갖 병을 달고 사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게. 고 작은 것도 사람이라고, 집에 생기가 돌더군. 그 집에 들어가는 게 전만큼 괴롭지가 않아.”

의사의 물음에 잠시간 말을 고르던 서 회장이 답했다.

가족, 기다려 주는 사람, 집. 이런 것들이 그리웠던 회장에겐 누군가가 맞이해 주는 퇴근길은 그 자체로 기쁨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게 된 것이 있었다. 그건 해영의 부담이었다. 빚이었고, 증명이었다.

“다녀오셨어요….”

해영은 아주머니나 홍 실장한테 회장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매일같이 물었다.

“그래.”

해영은 회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작고 배척된 삶을 살아왔던 아이에게 회장은 제 목숨줄을 쥐고 있는 커다란 거인과도 같았으니까.

해영은 얌전한 아이였으나 이상한 곳에 고집이 있었다. 회장은 굳이 마중할 필요 없다고 일러두었지만,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나서도 회장은 한동안 덜덜 떨며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아이를 마주해야 했다.

밥을 먹을 때라고 다르지 않았다.

눈치 보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갑자기 흠칫 놀라 우걱우걱 퍼먹기도 하고. 반찬을 골라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밥알 한 톨 남기는 일이 없었다. 강박적으로 잘 먹었다. 아이는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더 굳어서, 결국 잔뜩 체해 밥을 먹던 도중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날 밤, 아이의 방문 틈새로 속상한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비집고 나왔다.

“…내일부터는 저녁을 따로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 해영이 회장의 뒤를 따르겠다 말한 것은 뜻밖이었다.

“해영이가.”

회장이 들고 있던 펜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푹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애가 경영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 말이야. 서 회장은 자못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홍 실장은 그런 그의 태도가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없는 서 회장은 후계자 문제를 두고 줄곧 고민을 해왔다. 해영은 빈말로라도 배포가 크거나 리더형 성격이라고 평할 수는 없지만, 성실하고 꼼꼼한 데다 머리도 좋으니 가업을 잇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것에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다. 홍 실장은 생각한 그대로 답했다.

“뿌듯하시겠습니다. 공부도 곧잘 하셨으니 분명 잘하실 겁니다.”

“자네 눈에는 그게 곧잘 한 걸로 보이나.”

서 회장이 펜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필사적으로 한 거야. 그러지 않길 바랐는데.”

그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손끝으로 꾹 누르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무리 성적에 무관심하게 굴어도 소용이 없더군. 은근히 고집이 있어. 조그만 게.”

“사모님도 강단이 있으셨죠.”

“고집쟁이들한테 치여 살 팔잔가 보지.”

회장이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 애는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 그 나이에 다 짊어지고 가려고 하잖아. 자기가 무얼 주었는지도 모르고.”

그가 습관처럼 왼손 약지에 끼워 둔 반지를 매만졌다. 홍 실장은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책장 사이에서 두통약 통을 집어 들었다. 서 회장이 질린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됐네. 약도 안 먹어 버릇하니까 먹기가 싫어.”

서 회장은 해영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해영의 생일이며 졸업 선물을 모두 홍 실장에게 맡겨 왔다. 그러나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생일 선물만큼은 서 회장도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이거 어떤가.”

카달로그를 들춰 보던 회장이 은색 체인 시계 하나를 가리켰다.

“너무 회장님 취향 아닙니까. 젊은 친구들이 하고 다닐 것 같지 않은데요.”

직설적인 책언에 회장이 홍 실장을 흘겨보았으나, 그는 굽히지 않았다. 회장은 흠, 하고 고민하다 페이지를 넘겼다.

“그럼 이건.”

회장이 가리킨 것은 다이얼이 작은 깔끔한 가죽 시계였다. 손목이 얇은 해영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좋은데요.”

그제야 씩 웃은 회장이 카달로그를 내밀었다.

“하나 주문 넣어. 오면 바로 건네주고.”

“회장님이 주시면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빚을 더 얹어 줄 셈인가? 자네가 줘. 내가 줬다고 하지 말고.”

그렇게 정정했던 서 회장이 쓰러진 건 해영이 막 복학을 한 그 해 봄의 일이었다.

병실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문 앞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문이 열렸다. 해영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 회장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옆을 지키고 서 있는 홍 실장을 노려보았다.

“얘기하지 말라니까.”

홍 실장이 그 호랑이 같은 시선을 피했다. 병상에 누워 있어도 한 기업의 수장이었다.

홍 실장도 할 말은 있었다. 출장 일정 한 번에도 뉴스가 나는 그가 근 한 달간 집을 비우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해영이 홍 실장을 끈질기게 괴롭힌 것이다. 회장은 해영이 알아선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대책은 주지 않으니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홍 실장 개인적으로도 숨기는 게 마음이 불편했던 터라 결정은 쉬웠다.

“아버지….”

그사이 해영이 침대 옆까지 다가와 회장의 몸에 덕지덕지 붙은 기기들을 흔들리는 눈으로 살폈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와 기계음이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그런 눈 할 거 없다. 금방 나갈 거니까.”

별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지만, 회장의 상태는 날로 악화되었다.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하나 둘 그의 부재에 의문을 표했고 자극적인 기사들은 해영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매일같이 병원에 드나들던 해영이 휴학계를 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서 회장은 크게 노했다.

“늙은이 병수발 든다고 휴학계를 내?”

“느, 늙었다고 하지 마세요….”

“갈수록 고집만 세져서는.”

쯧, 회장이 혀를 찼다.

“하게 해 주세요….”

“왜. 또 그놈의 빚 타령 할 거냐? 대체 언제까지-!”

언성을 높이던 중, 회장이 크게 기침하며 몸을 말았다.

“아, 아버지…!”

“회장님!”

***

해영은 엉망이 된 방 한가운데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 해영은 바닥에 떨어진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액자를 조심히 들어 올렸다. 그 안에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의 저와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와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중 한 장이었다. 중학교 졸업식 때에도,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사진관까지 가 사진을 찍었지만, 아버지의 책상 위 액자는 줄곧 이 사진이었다. 가장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었고, 또 가장 엉망으로 나온 사진이었다. 왜 이 사진일까, 생각해 봐도 그렇다 할 답을 찾지 못했다.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는데.

해영은 어질러진 방을 천천히 정리했다. 그리고 액자 하나만을 손에 쥔 채 방을 나섰다.

해영은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귀를 현관문 가까이 가져갔다. 갔으려나. 안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해영이 한숨을 작게 내쉬며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잠금장치 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 그냥, 약간의 기대를 갖고 문을 쿵쿵 두드렸다. 역시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제가 가도 된다고 써 놓고 나온 주제에 가지 않았기를 바라는 게 우스웠다. 해영은 부끄러운 기분에 서둘러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와 동시에, 안쪽에서도 문이 열렸다.

“아….”

급하게 나온 건지 상기된 얼굴을 한 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해영이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팔이 약하게 끌렸다. 그리고 곧 그 품 안으로 풀썩 당겨져 안겼다. 허리에 단단한 팔이 감겼다. 안도감. 돌아올 곳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수고했어요.”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건우가 동그란 머리통 위로 입을 맞추며 웃었다. 해영도 그의 등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었다.

***

잰걸음으로 현관문 앞에 선 해영이 신발에 발을 구겨 넣으며 슬쩍 거울을 살폈다. 삼십 분 동안 공들인 머리가 민들레 홀씨마냥 공중으로 붕 떠 있었다. 도착했다는 건우의 메시지를 받고 두툼한 니트에 급하게 머리를 욱여넣는 바람에 정전기가 일어난 것이다. 해영이 손바닥을 빠르게 비벼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진정시켰다. 목도리 모양도 영 이상한데.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투성이었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해영이 아쉬운 마음을 거두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건우야.”

오피스텔 일 층 문을 열고 나가자, 점퍼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은 건우가 저를 향해 씩 웃는다. 이렇게 기다리는 건 오랜만이었다. 요즘 들어 해영의 집에서 머무는 횟수가 잦아지고, 늦은 시간까지 있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잠을 자고 갔다. 그러다 보니 데이트 약속이 있을 때에도 올라와서 준비 시간이 긴 해영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데이트 약속도 아닐뿐더러, 원래 해영 혼자서 가기로 한 것을 건우가 같이 가겠다고 한 거였다. 건물 앞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건우를 보니 막 친해졌을 무렵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해영이 그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건우가 익숙한 듯 삐뚤어진 해영의 목도리를 풀었다 다시 반듯하게 매 주었다. 그 사이 해영은 코트 주머니에서 핫팩 하나를 꺼내 건우의 주머니에 쏙 넣어 주었다. 나오기 전에 열심히 흔들어 둔 것이었다. 추위에 둔한 건우는 보온용품을 챙기는 법이 없었다. 목도리의 주름까지 꼼꼼하게 편 건우가 손바닥으로 그 위를 툭툭 두드렸다. 해영은 예쁘게 매진 목도리를 힐긋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렇게 안 매져….”

“이 모양은 앞에서 매 줘야 예쁘게 나와요. 직접 하면 잘 안 되고.”

“아아.”

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가도 되는데, 고마워.”

“그냥 같이 가 주는 거 아니에요.”

“그럼?”

“끝나고 데이트할 건데.”

“응, 그러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해영의 눈이 둥글게 호선을 그렸다. 건우가 그 잔 움직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오늘만큼 해영이 웃는 게 다행인 적이 있었던가. 건우는 해영의 예쁘게 웃는 눈 위로, 색소가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져 주고 마주 웃었다.

둘은 손을 잡는 대신 팔뚝을 맞붙이고 걸었다. 대로변으로 가 어렵지 않게 택시를 잡아탔다. 해영의 입에서 ‘교도소’라는 말이 나오자, 룸미러로 힐긋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건우는 말없이 시트 위에 놓인 해영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교도소 정문 앞에 선 해영이 건우를 돌아보았다.

“정말 혼자 괜찮겠어요?”

건우가 재차 물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영이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여기까지 함께 와 준 것만으로도, 그리고 나왔을 때 맞아 주는 것으로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

“응.”

단호한 대답에 건우가 바람 빠지듯 웃었다. 평소에는 살랑살랑 잘만 흔들리면서, 정작 옆에 있어 줘야 할 것 같은 때 듬직하니.

“알겠어요. 그럼 여기 있을게요.”

해영이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몸을 돌려 정문으로 향하는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작아지는 뒤통수를 응시하던 건우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핫팩을 움켜쥐었다.

해영은 화살표를 따라 민원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창구에서 종이를 받아 인적 사항을 적은 후 접견표를 받았다.

“접견 시간은 10분입니다. 표 가지고 대기하시다가 방송 나오면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10분씩이나 할 얘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영은 종이를 들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건우가 고쳐 매 준 목도리가 포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받은 대로 방송이 나오고, 해영은 배정된 호수로 들어갔다. 덩그러니 놓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긴장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건우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체를 했으나, 교도소 내부의 묵직한 분위기와 오래된 건물 냄새에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이 바지 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그때, 하늘색 수형복을 입은 어머니가 들어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선 오래 전 가난하지만 당당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에 쥐지 못할 것을 쫓고 또 쫓다가 지쳐 망가진 사람만 있을 뿐이다. 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해영을 보자마자, 어머니는 뺨이 뒤틀리도록 웃었다. 눈물이 더해졌다면 서럽게도 느껴질 만큼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가 의자에 풀썩 앉았다. 둘 사이에는 두껍고 투박한 유리 벽만이 존재했다.

침묵이었다. 어머니라면 제 얼굴을 보자마자 분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 꼴 보려고 왔니?”

그녀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보니까 좀 나아?”

“그럴 줄 알았는데….”

해영이 입술을 꾹 물었다. 어머니를 보고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 아니었다. 잘 됐다, 쌤통이다. 그런 감정도 아니었다. 원망이었다.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건가, 생각해 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들어 봤자 뭐 해. 이미 그녀가 벌려놓은 간극은, 그녀와 자신 사이에 있는 이 유리 벽보다 훨씬 더 두껍고 불투명한 것에 가로막혀 서로의 말이나 생각 따위가 전해질 리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음이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저를 버렸건, 낳았건, 이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제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이 안에 들은 어머니를 보는 것으로 충족됐으니까.

“저 이제 드릴 거 없어요.”

그러니 그만 내려놓고 새 인생 사시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주제도 모르고 남 걱정한다면서 비아냥거릴까. 아니면 약 올린다고 생각할까. 그러나 이것이 더할 것도, 덜을 것도 없는 해영의 본심이었다.

“다 정리했어요.”

“네가 미쳤구나.”

어머니가 구속되고 나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것들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했다. 그중 대부분을 정리했다. 아버지가 우려했던 것처럼, 부담 때문은 아니었다. 제게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저보다 그 돈을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이 있었으니까. 그곳으로 가는 게 해영이 생각하는 그 돈의 올바른 쓸모였다.

부담이 아니라는 증거는 남김없이 정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해영은 자신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유서 속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살면서 버팀이 될 정도만 제 몫으로 챙겼다. 정리하고 나눈 것들에 비하면 그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었으나, 해영치고는 꽤 대담한 결정이었다.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모두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래 봤자 어머니 눈에는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멍청하게 산다. 분명 후회해, 너.”

그럴 수도 있겠지. 살다 보면 지금의 제 결정을 후회할 만큼 돈이 절실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보단 잘 살 거니까 걱정 마세요.”

***

얼마 남지 않은 막대사탕을 깨물었다. 잘게 부서진 조각들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 건우는 용도를 잃은 흰 막대를 이로 물었다. 그렇게 움푹 팬 잇자국이 여러 개. 혓바닥은 이미 단맛으로 얼얼해진 지 오래였다. 금연을 결심한 후 칭찬 스티커마냥 받은 사탕이 다섯 개나 사라졌지만, 해영은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 건우가 막대를 문 채 입술 사이로 한숨을 내쉬었다. 물고 있기도 불편할 만큼 망가진 막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차게 식은 핫팩을 쥔 순간이었다.

“건우야.”

해영이 정문 사이를 지나 달려왔다. 안에서부터 뛰어온 건지, 그는 제 앞까지 도착해서도 몸을 숙여 잠시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데 급급했다.

“왜 뛰어와요. 천천히 오지.”

“너, 후, 기다리니까.”

해영이 그제야 상체를 세웠다. 그는 웃고 있었다. 커다란 혹이라도 떼고 온 사람처럼 후련하게.

“얼굴 차갑겠다.”

건우는 해영의 발간 뺨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예상대로 손바닥에 감긴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올려다보는 코끝도 붉었다. 눈은, 울진 않은 것 같고. 제 시선을 눈치챈 해영이 눈을 접어 웃었다.

“나 괜찮아.”

누가 누굴 달래는 건지. 건우가 바람 빠지듯 웃고서 해영의 손을 깍지 껴 잡고 걸음을 옮겼다. 매일 그랬듯 꼭 잡은 손등에 입술을 비빈 건 덤이었다.

“네 손 엄청 따뜻해. 좋다.”

“선배가 준 핫팩 때문이에요.”

“아니야. 너 원래 되게 따뜻해.”

해영이 건우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어 온기를 느꼈다. 작은 손 안에서 주물러지는 감각이 좋았다. 제 손을 마치 따끈한 손난로라도 되는 것처럼 온기를 나눠 가지려 열심히 반죽해댄다.

“저녁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네가 해 준 거 말해도 돼?”

응, 건우가 해영의 손을 반대쪽으로 옮겨 잡고 그를 길 안쪽으로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그러면 저번에 바지락 그거. 냄비에 바지락 들은 거.”

“바지락 술찜.”

“응, 응. 그거.”

“또 술 먹을라고.”

정곡을 찔린 말에 해영이 입술을 조개마냥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건우가 잡고 있던 손을 올려 손등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해영이 움찔 놀라 고개를 도로 제 쪽으로 돌렸다.

“안 돼?”

그럴 리가.

“장 봐야 하는데 괜찮아요?”

“응, 같이 갈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해영이 한참을 머뭇거리다 물었다.

“아이스크림도 사도 돼?”

“요즘 너무 많이 먹는데. 밥 먹고 먹으면요. 조금만.”

“…알겠어.”

비죽거리는 입이 심술 맞다. 그 불퉁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건우가 고개를 숙여 뺨에 쪽 입을 맞췄다. 해영이 기겁을 하고 노려본다. 그러더니 빠르게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확인하고 손등으로 뺨을 벅벅 문지르며 불만을 표했다. 건우는 마찰로 서서히 붉어지는 뺨을 응시하며 웃었다.

“걸어가고 싶어.”

해영이 여전히 켜지지 않은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말했다. 바라는 걸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이제 제법 자연스럽다.

“그럴까. 추운데 괜찮겠어요?”

“응, 네 손 따뜻해서 괜찮아.”

“천천히 가요, 그럼.”

주저 없이 원하는 것을 함께해 주겠다 하는 말에, 해영의 눈이 둥글게 휘어진다. 건우가 그의 손등을 엄지로 살살 문질렀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내어져 있던 손등 위에 온기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교도소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안 다짐한 것이 있다. 해영이 저 안에서 홀로 느꼈을 것들을 두 번 다시 겪게 하지 않겠다고.

해영을 지키는 것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것도 모두 그를 사랑하는 제 몫이다.

당연한 것을 받지 못했을 때, 세상의 많은 것들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다. 해영은 피해자였고, 스스로를 가둔 가해자였으나, 이제는 제가 주는 희생을 당연하게 받을 줄 아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마음껏 누리기를.

가장 안전하고 풍족한 울타리는 되어 주지 못하더라도, 힘들 때 기대 쉴 수 있는 튼튼한 기둥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의지하고, 응석부리고, 기대도 무너지지 않는 기둥이 되어 그의 옆에서 그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걷는 미래를 꿈꾸었다.

횡단보도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그들은 그제야 맞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나란히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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