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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2월 24일 (10/21)

외전. 12월 24일

앙상했던 나무들이 반짝반짝 전구 옷을 입었다. 길거리에는 귀에 익은 캐럴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추위를 핑계 삼아 빈틈없이 붙은 연인들이 거리를 메웠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인파 사이를 비집고 걸어가던 해영이 품에 안은 쇼핑백 틈 사이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안에는 곤색 리본이 매어진 작은 상자와 장식 없이 깔끔한 흰색 상자가 들어 있었다. 해영의 뺨에 웃음이 번졌다. 좋아할까. 누군가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건 처음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걸 직접 하려니 조금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챙겨 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로 속이 벅찼다.

해영이 준비한 건 시계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시계를 선물하는 건 매 순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했다. 곧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건우에게 주기 딱 알맞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좋아하니까 스마트 워치가 좋겠다 싶다가도, 입대하면 쓸 수 없으니 군대에서 쓸 시계를 사 줘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둘 다 구매했다.

“좋아했으면 좋겠다….”

쇼핑백 모서리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상자가 찌그러지지 않도록 품에 고쳐 안았다.

“크리스마스에 좋아하는 사람과 특별한 밤을 보내세요! 오픈 기념 룰렛 이벤트 중입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예쁘게 꾸며진 가게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빨간색 풍선으로 정신없이 꾸며진 성인용품점이었다. 풍선도 풍선이지만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직원 때문에 더 눈에 띄었다.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목청껏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한겨울에 맨 가슴팍을 훤히 드러낸 코스튬은 성인용품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과했다.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한 듯했으나, 그들을 거쳐 매장 안까지 들어갈 만한 용기가 사람들에게는 없었다.

추우시겠다. 해영은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하며 그 앞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그 두 명이 해영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해영이 눈을 크게 뜨고 커다란 산타들을 올려다보았다. 쇼핑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왜….”

“룰렛 한번 돌리고 가세요.”

“네?”

“잠깐이면 돼요, 잠깐이면.”

“아니, 아….”

해영이 머뭇거리는 사이, 재빨리 가게 안으로 이끈 남자가 손바닥만 한 설문지와 펜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쓰고 저거 돌리고 가요. 꽝 없으니까.”

해영은 남자가 가리킨 커다란 돌림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1등부터 6등까지 적힌 돌림판과, 그 옆에 등수에 따라 제공되는 상품이 적혀진 판넬이 세워져 있었다. 그의 말대로 꼴등에도 상품이 달려 있었다. 돌림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6등의 상품은 콘돔이었다. 5등은 러브젤, 그 위로는 알 수 없는 제품명이 적혀 있었다.

고개를 숙여 제 앞에 놓인 설문지를 한 번, 그리고 가게 벽면을 한 번 보았다. 매장 앞은 요란해도 벽면은 폐쇄적이라 밖에서 안쪽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고 갈까….

콘돔과 젤을 사오는 건 항상 건우였다. 딱히 그러자고 정한 건 아니었으나, 떨어지기 전에 꼬박꼬박 잊지 않고 채워 주었다. 그게 미안해서 편의점까지 용기 내서 간 적이 있었다. 결국 계산대까지 가져가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과자 따위만 사 가지고 나왔지만. 그러니 이건 기회였다. 준비된 연상의 애인이 될 수 있는 기회. 등 떠밀려 들어오긴 했으나, 여기서 받아 가면 건우 앞에서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해영은 이런 이벤트에 운이 없기도 했고.

해영이 펜을 쥐고 설문지 내용을 살폈다.

1. 현재 애인이 있으신가요?

“네….”

피실피실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입술을 깨물고 참으며 글자를 적었다.

2. 애인과 특별한 밤을 보내고 싶으신 적이 있으신지, 있으시다면 언제 그런 욕구가 드시나요?

특별한 밤? 특별한 게 어떤 걸 말하는 거지.

“모름….”

그 아래로 이어지는 질문들은 모두 ‘특별한 밤’에서 파생된 내용이었다. 특별한 게 뭐야. 더 좋은 걸 말하는 건가? 아니면 기념일에 예쁘게 꾸며 놓고 하는 그런 건가. 구체적으로 좀 써 주지. 해영은 입을 비죽거리며 뭉뚱그려 써 놓은 질문들에 대충 답하고 내려갔다.

6.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섹스 타입을 골라주세요.

“세, 섹…. 하….”

아무리 익명이라도 그렇지, 질문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해영은 한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질문 아래 적힌 보기를 읽었다.

바닐라, SM, 코스튬, 결박, 모두….

바닐라가 뭔진 몰라도 뒤에 네 개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바닐라….”

대충 쓰고 나가자. 해영이 다 적은 설문지를 두 번 접어 돌림판 옆 상자에 넣었다.

“설문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거 잡고 돌리면 되나요?”

“네!”

얼른 콘돔 받고 나가야지.

해영이 돌림판 손잡이를 잡고 힘껏 돌렸다. 빠르게 돌아가던 판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양 옆에서 직원들이 응원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 봤자 6등이거나 운이 좋아야 5등일 텐데…. 해영은 얼른 돌림판이 멈추기만을 바라며 쇼핑백을 끌어안고 기다렸다.

“어, 어….”

그리고 돌림판이 멈추었을 때, 매장 내에 축하 음악이 울려 퍼졌다.

“1등!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아….”

멍하게 서 있는 해영의 앞으로 직원이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분위기가 너무 요란해서 밖에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매장 안쪽을 힐끔힐끔 바라보기 시작했다. 당황한 해영이 제 앞에 건네진 상자를 낚아채 들고 도망치듯 매장을 빠져나왔다.

해영은 침대 위에 앉아 받아 온 상자를 꺼내 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오늘따라 운이 좋아가지고. 아니지, 어떻게 보면 제 입장에서는 이게 운이 안 좋은 거였다. 해영이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이게 뭐지….”

안에는 작고 동그란 물건이 들어 있었다. 달걀처럼 생겼는데 조금 더 작네. 어찌됐든 성인용품점에서 받아 온 거니까 그렇고 그런 용도겠지. 건우가 보면 놀릴 게 분명했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자고 가기로 했으니, 곧 있으면 도착할 것이다. 건우 오기 전에 버려야겠다.

해영이 상자를 도로 닫아 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현관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안 돼….”

해영은 상자를 들고 우왕좌왕하다 서둘러 협탁 서랍을 열어 상자를 숨겼다. 그곳은 콘돔과 젤을 넣어 두는 곳이었다.

“아….”

불안한데. 다른 곳에 옮겨 놓을까 고민하다,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고민을 거두었다. 저기만 안 열면 되겠지.

“선배.”

“나, 나 여기 있어.”

해영이 침대에서 폴짝 내려와 방문을 열고 튀어 나갔다. 건우가 다급하게 뛰어나온 저를 보자마자 웃었다. 바깥의 찬기가 고스란히 남은 얼굴이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색 하프넥 위에 걸친 긴 코트는 200일 기념으로 제가 사준 것이었다. 저를 보고 웃어 주는 얼굴도, 예쁘게 잘 입고 다니는 옷도 좋았지만, 해영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 아래 건우가 들고 있는 커다란 케이크 상자였다.

“와, 케이크….”

해영은 케이크에 눈을 고정한 채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제 앞까지 다가온 해영의 허리를 건우가 한 팔로 낚아 안았다.

“뽀뽀.”

그의 요구에 해영이 고개를 돌려 입술을 들이밀었으나, 눈으로는 어떤 케이크인지 상자 안쪽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입술은 건우의 입이 아닌, 애먼 입가에 꾹 찍혔다. 관심을 케이크 따위에 뺏긴 건우의 이맛살이 옅게 구겨졌다.

건우가 식탁 위에 케이크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해영의 뺨을 한 손으로 모아 잡고 입술을 겹쳤다.

“응, 으….”

예고나 전조 없는 키스에, 해영이 그의 팔을 툭툭 두드려 보았지만 건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술 반, 장난 반으로 시작한 입맞춤이었으나 크리스마스이브에 연인의 집에서 하는 키스가 깊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해영의 입술을 춥 소리 나게 빨아올리며 밀어붙였다. 해영의 엉덩이에 식탁 가장자리가 닿았다. 건우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바닥으로 던지고 해영의 허리를 안아 식탁 위로 들어 앉혔다. 놀란 해영이 뒤로 손을 짚었다. 손끝에 케이크 상자가 툭 닿았다. 해영이 고개를 돌려 뒤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집중 못 하네.

건우가 해영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입 안을 느릿하게 헤집었다. 그의 다리 사이를 가르고 하체를 바짝 붙이자, 해영이 손을 올려 건우의 팔을 부여잡았다.

“흐으….”

부드러운 잠옷 너머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성기가 느껴졌다. 건우는 반대쪽 손을 해영의 상의 안으로 넣어 등허리를 지분대다, 쑥 올려 가슴팍을 매만졌다. 바깥의 온도가 남아 있는 차가운 손이 제 맨 살갗을 더듬어대자, 해영이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허리를 세우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잡고 있던 건우의 팔을 놓고 양손 모두 식탁을 짚었다. 툭, 케이크 상자가 또다시 닿았다.

건우가 해영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케, 케이크 떨어질 거 같아, 건우야…. 아-.”

쇄골을 할짝대던 입술을 벌려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읏!”

건우가 케이크 타령만 하는 해영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해영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그 모습을 빠짐없이 눈에 담던 건우가 해영의 허리를 안아 들어 바지와 속옷을 빠르게 벗겨냈다. 다시 허리를 놓으니 해영의 맨 엉덩이가 식탁 위에 철퍽 눌렸다.

“여, 여기서…?”

“왜요. 케이크가 보는 앞에서는 싫어요?”

그게 무슨 소리지. 눈동자를 굴리며 의도를 파악하려 해 보았지만, 허벅지 안쪽을 정신없이 더듬는 손길에 금세 머리가 하얘졌다. 건우가 해영의 잠옷 셔츠 아랫단을 잡아 올려 그의 입에 물려 주었다.

“잘 물고 있어요.”

해영이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는 입꼬리를 올려 씩 웃더니, 몸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들려진 옷에 의해 드러난 하얀 가슴팍에 쪽쪽, 입을 맞추다 긴장한 복부 위를 혀를 내어 핥았다. 예쁜 배꼽 위에 입술을 비볐을 땐, 해영의 허리가 크게 튀어 올랐다. 부끄럽다는 이유로 해영이 싫어하는 행위였다. 눈을 위로 해 시선을 맞추자, 아니나 다를까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저를 흘겨보고 있었다.

건우가 코끝으로 웃었다. 얌전히 입술을 떼고 해영의 허벅지를 잡아 벌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해영의 허리가 다른 이유로 움찔했다. 건우는 눈앞의 반쯤 발기한 해영의 것을 손에 쥐고 슥슥 쓸어 올리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음낭 위 붉게 열 오른 살갗에 입을 맞췄다.

“흐, 건우야….”

해영이 물고 있던 것을 놓고 몸을 안으로 둥글게 말았다. 넓게 벌려 놓은 무릎 또한 함께 오므라들어 건우의 머리를 약하게 조였다.

“다리 잘 벌리고 있어야죠. 그래야 해 주지.”

입을 뗀 건우가 장난스럽게 타박하며 흘러내린 옷을 다시 입 앞에 대 주었다.

“잘 안 돼….”

해영이 입술을 열어 옷을 다시 물었다. 그리고 바들거리는 다리를 다시 열었다.

건우가 활짝 벌려진 허벅지 안쪽에 입을 맞추며 해영의 기둥을 잡고 위아래로 훑어 올렸다. 점차 성기에 가까워지도록 빈틈없이 길을 내듯 입술을 비볐다. 흥분으로 혈관이 옅게 도드라진 기둥에 키스하다, 귀두 끝을 혀를 내어 핥았다.

“흐읍, 으….”

긴장인지, 기대인지. 감질나게 쪽쪽 가볍게 입을 맞추는 행위에 해영의 성기가 움찔움찔 떨렸다. 마침내 건우가 입을 벌려 단번에 목구멍까지 밀어 넣었을 때, 해영의 다리가 다시 한번 모아들었다.

“하읏!”

찰싹, 그 순간 건우가 해영의 허벅지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다시 다리를 벌리는 해영의 무릎이 가늘게 떨렸다.

건우는 때린 곳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고개를 앞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춥, 아이스크림이라도 빠는 것처럼 혀를 굴리고 소리를 내어 빨아올렸다. 해영의 발가락이 안쪽으로 힘껏 오므라들었다.

“흐으, 아아…. 읏….”

옷은 놓친 지 오래였고, 신음은 여과 없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와 공기를 데웠다. 해영은 고개를 젖히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엉덩이를 소심하게 들썩이며 쾌감을 좇아 움직였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건우의 머리칼을 움켜쥐었을 때, 눈이 마주쳤다.

건우가 눈가를 찌푸렸다. 제가 해 주는 그대로, 혹은 그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모습에 통증이 느껴질 만큼 아래가 욱신거렸다.

손을 내려 바지 버클을 풀어 헤쳤다. 한 손으로는 해영의 것을 죽죽 잡아 올리며 입술을 조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단단하게 올라붙은 제 것을 감싸 쥐었다. 아까부터 젖어 있던 성기를 잡고 빠르게 훑어 올렸다.

온갖 음란하고 질척한 소리가 해영의 귓가에 닿았다. 그 안에는 하릴없이 흘러나오는 제 신음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 아읏! 나올 것 같아, 흐, 잠깐만, 아-.”

해영이 다급하게 건우의 어깨를 두드려도 건우는 고집스럽게 버텼다.

“아흑, 흐….”

마침내 건우의 목구멍으로 진한 정액이 쏘아졌다. 그리고 건우의 얼굴이 파삭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건우의 성기 또한 커다란 손바닥을 가득 적셨다.

사정의 여운으로 해영의 허벅지가 간헐적으로 떨렸다. 꾹 깨문 입술 사이로 흐느낌을 닮은 신음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해영은 사정 후 느끼는 시간이 긴 편이었고, 건우는 그 순간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이때는 성기를 조금만 자극해도,

“흐으윽, 아!”

묽은 물을 약하게 뱉어내며 자지러진다. 건우는 붉게 피가 쏠린 해영의 것을 두어 번 더 주무르다 몸을 세웠다. 정신없이 헐떡이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구겨진 해영의 상의를 완전히 벗겨냈다. 몸 곳곳이 열로 얼룩덜룩하다. 그가 진정될 때까지 상체 여기저기 입술을 비볐다. 거세게 널을 뛰던 호흡이 점차 잦아들고, 해영의 팔이 습관처럼 저를 향해 뻗어진다. 건우가 씩 웃으며 그의 요구대로 몸을 붙여 꼭 품에 안았다. 등을 천천히 쓸어 주자, 해영이 건우의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댔다.

“왜 맨날 입을 안 떼는 거야….”

“저번처럼 얼굴에다 하는 게 좋아요?”

건우가 실실 웃으며 묻자, 해영이 기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네가 너무 늦게 떼서 그런 거잖아….”

해영이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여기서 더 빨개질 것도 없을 텐데, 또다시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의 얼굴에 듬뿍 쏘아졌던 제 흔적이 떠오른 탓이었다.

건우가 펠라를 해 줄 때마다 머릿속을 채우는 호기심이 오늘도 어김없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해영이 건우의 어깨에 입술을 오물거리며 미적대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기댄 채 그를 올려다보고 물었다.

“나, 나도 해 줄까?”

“뭐를요?”

“…입으로.”

해영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너는 그런 거 싫어해?”

싫어하기는. 너무 좋아서 문제지.

건우가 해영의 어깨를 잡아 떼어내고,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손을 올려 작은 입술 사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말캉한 살덩이가 약하게 벌어진다. 너무 작잖아.

“나중에요.”

쪽, 그 입술 위로 느릿하게 입을 맞췄다.

나중에. 해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에 속이 답답했다. 싫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너무 미숙한 탓일까. 역시 잘못하다가는 깨물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건우처럼 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매번 받기만 하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말처럼 언젠가는, 건우가 제게 해 준 것처럼 능숙하고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지금은-.”

건우가 해영의 허리를 받쳐 안고 뒤로 눕혔다.

“하던 거 계속 해요.”

해영의 돌발 발언에 성기가 다시 힘을 받은 차였다. 제 사정액으로 젖은 손을 해영의 볼기 사이로 가져갔다. 달래 주는 사이 조금 굳긴 했으나, 이것 외에 윤활제를 대체할 만한 게 없어보였다. 검지와 중지를 모아 구멍 위를 살살 문지르니, 해영의 것 또한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아….”

건우는 한번 시작하면 짧게 끝내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식탁에서 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밥을 먹는 곳인데. 아, 맞다. 케이크.

“건우야, 케이크. 냉장고에 넣어야, 아흑!”

건우가 돌연 손가락을 푹 찔러 넣었다. 그놈의 케이크.

“제가 사 온 케이크가 좋아요, 케이크를 사 온 제가 좋아요?”

“흑, 으….”

예고 없이 거칠어진 추삽질에, 해영이 허리를 비틀었다.

“케이크 먹고 싶어요?”

“아, 천천히….”

“먹고 싶어요, 안 먹고 싶어요?”

정신없이 쑤셔지는 와중에 계속해서 바뀌는 질문까지. 답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응?”

건우가 대답을 종용했다. 해영이 겨우 입을 열어 답했다.

“머, 먹고 싶어…. 아, 흐으….”

“위, 아래. 어디로.”

위랑 아래가 뭐야. 토핑이랑 시트 중에 뭐가 더 먹고 싶냐는 건가. 되물어 보려는 찰나, 아래서 찔꺽이는 소리가 속도를 더했다. 해영이 턱을 들고 신음했다. 초코 케이크니까 초코 시트….

“밑에, 밑에 거.”

건우의 눈에 순간 이채가 돌았다. 밑에라고. 해영의 대답을 듣자마자 뒤통수가 저릿할 정도로 흥분감이 차올랐다. 묘하게 엇나간 대답이 제 질문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진 않았으나, 종종 그랬듯 이번 역시 해영의 무지를 구실삼아 제 욕심을 채운다.

손가락을 빼낸 건우가 해영의 허리를 안아 바닥으로 내렸다.

“뒤돌아봐요. 허리 숙이고.”

해영이 몸을 돌려 식탁 쪽으로 상체를 약간 숙였다.

“이, 이렇게?”

“좀 더.”

건우가 그의 등을 지그시 눌러, 해영의 가슴이 식탁에 마주 닿도록 했다. 해영이 눈을 굴리는 사이, 건우가 케이크 리본을 풀었다. 상자를 열어 꺼낸 케이크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빼곡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 가장자리로 흰색 생크림이 수북하게 장식되어 마치 쌓인 눈처럼 보였다. 건우는 망설임 없이 케이크를 푹 떠서 해영의 입 앞에 가져갔다.

“아-.”

머뭇거리던 해영이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냄새에 결국 입을 벌렸다. 안쪽 깊숙이 들어온 손가락은 크림과 시트를 혀 위에 펴 바르고도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케이크와 함께 건우의 손가락까지 빨아 넘겨야 했다.

“맛있어요?”

건우가 웃음기를 머금고 물었다. 발간 혀를 뭉근히 짓뭉개는 손가락 때문에 해영은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식으로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해영의 얼굴에서 불만이 뚝뚝 묻어났다. 건우는 픽 웃더니 손가락을 순순히 빼 주었다. 그러고서 다시 케이크로 손을 뻗었다.

“밑에도 먹어야지.”

또 한 번 하얀 생크림을 손으로 푹 퍼냈다. 그 손이 향한 곳은 입이 아니었다. 설마. 해영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자, 잠깐만….”

건우가 긴장한 듯 움찔대는 뽀얀 등에 쪽쪽, 입술 자국을 내며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생크림을 펴 발랐다.

“하으….”

해영의 무릎이 앞으로 굽혀졌다. 건우는 그 골반을 붙들어 올린 후 생크림이 치덕치덕 발린 볼기 사이를 응시했다. 조금 전 손가락으로 넓혀 놓은 곳이 오물대며 새하얀 크림을 조금씩 안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건우가 홀린 듯 몸을 낮추고 살 오른 엉덩이를 쥐어 한껏 벌렸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그 사이로 고개를 처박았다.

“아! 아, 안 돼, 흐윽…!”

혀를 내어 움찔대는 구멍 위를 핥아 올리자, 해영의 몸부림이 눈에 띄게 거세졌다.

건우가 양손으로 해영의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고 움직임을 저지했다. 뽀얀 허벅지에 금세 붉게 손자국이 새겨졌다. 입술에 키스하듯 꽉 다문 곳 위에 입을 맞추자, 바닥을 밀어내는 발이 바쁘다.

건우는 생크림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개처럼 핥았다.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어대던 해영은 어느샌가부터 포기하고 식탁에 뺨을 댄 채 울었다. 주름 사이를 비집고 살덩이를 밀어 넣었을 땐, 해영의 성기 끝에서 투명한 프리컴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부풀어 꺼떡인다. 건우는 입을 떼고 손가락 두 개를 모아 푹 찔러 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굽혀 내벽을 문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희고 탁한 정액이 식탁 다리를 적셨다.

“으응, 윽!”

해영의 엉덩이가 안쪽으로 움푹 패었다. 여전히 구멍 안을 헤집고 있던 손가락을 꽉 조여 문다. 건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눈물로 젖은 뺨에 쪽, 입을 맞췄다.

“흐으, 나 다리, 다리가 아파….”

해영이 흐느낌 섞인 목소리로 겨우 말을 뱉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상체로 겨우 기대고 서서 버티던 참이었다.

건우가 곧바로 해영의 몸을 돌려 등과 무릎 아래로 팔을 넣어 안아 들었다. 눈물범벅인 얼굴 위로 기분 좋은 입맞춤을 쏟아부으며 침실로 향했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을 이로 갉작거린 건우가 해영을 천천히 침대 위에 눕혔다.

“크림 맛 난다.”

건우가 끈질기게 입술을 괴롭히더니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변태 같아.”

칭찬도 아닌데 뭐가 즐거운지, 연신 픽픽 웃어대는 얼굴을 해영이 열심히 흘겼다.

건우는 그 말에 반박하는 대신 어리광을 부리듯 몸을 낮춰 해영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볐다. 해영이 손을 올려 그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자, 눈앞의 살갗 위에 입술 도장을 찍어댄다. 상체 위를 유영하며 쪽쪽, 바쁘게 입을 맞췄다. 그러다 입술 끝에 도드라진 유두가 걸리자 입을 벌려 진득하게 키스했다.

“흐읏….”

“조금만 더 할 수 있어요? 힘들면 그만하고.”

건우는 말과 상반된, 아쉬움이 덕지덕지 묻은 손길로 해영의 몸을 쓰다듬었다. 허벅지 위로 건우의 성기가 닿았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삽입은 없었어도 방금 전 변태 같은 행위로 기운이 빠진 것은 사실이었으나, 무시하기에는…. 해영의 발가락이 꼬물대며 안으로 굽었다.

“천천히 하면….”

내일 빨간 날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게다가 건우와 맞는 첫 크리스마스니만큼,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네.”

건우가 활짝 웃으며 해영의 뺨 위로 뽀뽀를 퍼부었다. 그렇게 좋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해영의 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건우는 해영의 허벅지 위로 단단해진 성기를 문지르며 입술을 포갰다. 해영의 목 안쪽으로 앓는 소리가 울렸다. 눈을 질끈 감고 어설프게 혀를 마주 움직이는 얼굴을 열띤 눈으로 내려다보던 건우가 해영의 다리 사이를 가르고 하체를 맞붙였다.

제 것을 손바닥으로 감싸 잡고 두어 번 문지르며 아까까지 한참을 물고 빨던 구멍 위에 가져갔다. 해영의 엉덩이가 흠칫 떨렸다. 위로는 혀를 쪽쪽 빨아 올리며, 아래로는 허리를 꾹 눌렀다.

“으읍, 응….”

해영의 신음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입 안에서 울렸다. 건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뻑뻑한데. 겨우 들이밀었던 끄트머리를 도로 빼냈다. 충분히 풀었음에도 제대로 된 윤활제 없이는 삽입이 어려웠다. 억지로 밀어 넣었다간 다음 날 퉁퉁 부어 고생할 테고.

건우가 옆으로 손을 뻗어 협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을 더듬은 순간이었다.

이게 뭐지. 손끝에 닿는 건 익숙한 젤이나 콘돔이 아닌 큼직한 상자였다. 건우가 상자를 꺼내 들었다.

아릿한 통증으로 눈을 꾹 감고 있던 해영이 이상하리만치 길어지는 정적에 슬며시 눈꺼풀을 열었다. 눈앞에선 건우가 성인용품점에서 받아 온 상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고 있었다. 헉, 사색이 된 해영이 냅다 손을 뻗었다.

“이런 거 써 보고 싶었어요?”

뺏으려는 손을 가볍게 피한 건우가 씩 웃으며 물었다.

“아니야, 지나가다가 받은 거야!”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선물 이거 아니야!”

해영의 말은 들은 체도 안 한 건우가 도망가려는 해영의 허리를 붙들어 다리 사이에 앉혔다.

“흐, 이거 놔, 놔줘….”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해영을 결박하듯 한 팔로 붙들어 안고 한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도망가지도 못하고 제 다리 사이에서 개봉되는 상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던 해영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저기다 두지 말걸. 더 하겠다고 하지 말걸. 룰렛 같은 거 돌리지 말걸.

온갖 후회가 머릿속에서 쳇바퀴 돌듯 반복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등 뒤에 있는 놈은 애처럼 신이 난 얼굴로 상자 속 내용물을 꺼내 들어 보였다.

“와.”

동그란 구체를 손에 쥐고 굴리다가, 해영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와, 이거 봐요.”

대놓고 놀려대는 목소리가 얄밉기 짝이 없었다.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해영이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몸을 축 늘어트려 코 고는 시늉을 했다.

“커어….”

귓가에 숨 쉬듯 픽픽 대는 웃음이 내려앉았다. 정말 이대로 잠들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알았어요, 그만 놀릴게요.”

그의 말에 해영의 눈이 스르르 떠졌다.

“이제 줘…. 버릴래.”

“음….”

“달라니까?”

손바닥을 펼쳐 재촉했지만, 건우는 그것을 내어 주지 않았다. 그가 미적거릴수록 해영의 불안이 커졌다. 결국 기다리다 못해 손을 뻗었다. 건우는 이번 역시 거뜬하게 피하고서 들고 있던 손을 머리 위로 휙 들어올렸다.

“한 번만요.”

“…….”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고저 없이 사뭇 진지했으나, 속으로는 웃고 있을 거라는 걸 해영은 알고 있었다. 건우가 시뻘게진 해영의 뺨에 뽀뽀하며 재차 졸랐다.

“한 번만.”

가끔, 아니. 종종 건우는 혈기 넘치는 호기심으로 해영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어린 사람과 사귄다는 건 이런 면까지 모두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 어떻게 쓰는 건지는 알아?”

“대충은요.”

이런 걸 왜 알고 있는 걸까, 대체.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해야 돼.”

“응.”

초등학생에게 장난감을 쥐여 줘도 이것보다는 덜 신나 하겠다. 해영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진짜 내가 산 거 아니야.”

“알겠어요.”

건우는 근심 가득한 뒤통수에 입을 맞추고 해영의 허벅지를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그리고 해영의 손을 하나씩 들어 무릎 위에 올렸다.

“잘 잡고 있어요.”

“꼭 이, 이런 자세로 해야 해…?”

해영이 의심스럽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건우는 오로지 새로 받은 장난감 위에 젤을 펴바르는 데 열중했다. 한 팔로는 해영의 허리를 단단하게 끌어안고, 한 손으로 로터를 구멍 위에 가져갔다. 그 위에 문지르자, 해영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흐….”

금방이라도 뚫고 들어올 듯 배회하는 플라스틱 덩어리의 감촉이 낯설었다. 차갑기도 하고, 살처럼 부드럽지도 않았다. 막연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해영은 엉덩이를 꾸물대며 건우에게 몸을 더 붙였다.

건우가 플라스틱을 움찔대는 구멍 위에 꾹 눌렀다. 충분히 풀어 두었던 곳은 어렵지 않게 작은 구체를 쏙 삼켰다. 해영의 복부가 긴장으로 들썩였다.

“이, 이상해….”

아프지는 않았으나 낯설고 불편했다. 손가락이나 성기와는 달랐다. 몸 안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는 생각에 덜컥 두려워진 해영이 잡고 있던 무릎을 놓고 제 허리에 감긴 건우의 팔을 매달리듯 움켜잡았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느낌이 이, 이상한데….”

이런 게 일등 상품이라니. 좋지도 않고 감흥도 없었다. 제일 안 팔리는 걸 준 게 아닐까. 계속 품고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았다. 해영이 그만 빼 달라고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건우가 줄 끝에 이어진 리모컨을 꾹 눌렀다.

“아흑!”

해영의 무릎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내벽 안쪽에서 들려오는 진동음이 아찔했다. 잘은 떨림이 연한 살 위에 뭉근하게 퍼져, 안쪽 전체가 천천히 달아올랐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해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잘 잡고 있으라니까.”

건우가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 다시 해영의 손을 들어 무릎을 쥐게 하자, 해영은 자꾸만 힘이 빠져 미끄러지는 손을 올리고 또 올렸다.

“자, 잘 안 돼…. 아아….”

해영이 고개를 뒤로 젖혀 건우의 어깨에 뒤통수를 비볐다. 건우가 그 뺨에 입을 맞추며, 리모컨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흐으, 아! 아윽, 으응!”

덜덜덜, 진동음이 위험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해영의 온몸이 부르르 경련했다. 발끝으로 시트를 꾹꾹 밀어내며 버티다가, 결국 무릎에서 손을 놓고 팔을 위로 해 건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거, 건우야, 아…! 흐, 아아….”

힘을 잃었던 해영의 성기는 어느샌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시트가 젖을 정도로 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건우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연인을 열 오른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제 목을 안은 팔을 떼어냈다.

“왜, 왜, 윽!”

그리고 곧바로 해영의 등을 앞으로 꾹 눌렀다. 해영의 가슴팍이 침대 위에 맞닿고, 고개가 이불 위로 처박혔다.

건우는 제 눈앞을 차지한 해영의 엉덩이를 살살 주물렀다. 얇은 줄 하나만을 문 채 꽉 다물린 구멍이 진동에 따라 떨리는 광경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건우의 허벅지 근육이 재촉하기라도 하듯 꿈틀거렸다. 고꾸라진 해영의 입에서 보지 말라는 말이 줄줄이 뱉어져 나왔으나, 듣지 않았다. 손가락 두 개를 모아 구멍 안으로 넣어 로터를 좀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해영의 허리가 크게 튀어 올랐다.

“아아!”

무서워. 안 빠지면 어떡하지. 안쪽으로 끝없이 밀려 들어오는 느낌에 두려워진 해영이 뒤로 손을 뻗었다. 그 덜덜 떨리는 손끝에 마침내 줄이 닿았을 때, 손목이 잡혔다. 붙잡힌 양 손목이 이내 얼굴 옆에 결박하듯 짓눌렸다.

건우가 봉긋 솟은 해영의 둔부 사이에 제 성기를 비비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시트 위에 이마를 누른 해영이 도리질했다. 건우는 그런 그를 달래듯 상체를 숙여 목덜미 뒤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허리를 움직여 귀두 끝을 진동하는 구멍 위에 대고 꾹 눌러 밀어 넣었다.

“하….”

“으윽, 아, 흑….”

좁은 틈새를 억지로 벌리고 들어오는 느낌에 해영이 이를 악물었다. 시트를 한껏 구겨 쥐다가 손을 뒤집어 건우의 손을 맞잡았다. 머리 위에서 살풋 웃는 소리가 들린 듯했으나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해영은 지금 어느 때보다 이게 간절했다.

“선배, 저 봐요.”

건우가 잡고 있던 해영의 손을 엄지로 툭툭 건드리며 졸랐다. 울상을 한 해영이 힘겹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건우가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물렸다. 질펀한 뒤쪽 사정만큼이나 진한 키스였다. 그때, 퍽 소리와 함께 내벽이 들어차는 감각이 해영의 아랫배를 때렸다. 뿌리까지 삼켜진 커다란 성기는 진동하는 기구를 내벽 끝까지 밀어 올렸다.

“하으, 아!”

“윽….”

고통과 닮은 쾌감에 동시에 입술을 떼어 낸 둘의 입에서 높낮이가 다른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건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고,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뱉어졌다. 예민한 귀두 끄트머리에서 울리는 진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괴롭고 자극적이었다. 흡사 바늘로 성기 전체를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감각이었다. 이거 좀, 심한데. 건우의 입꼬리가 순간 비틀렸다.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해영의 배 아래로 가져가 성기를 움켜쥐었다.

“으응, 아, 아아…!”

엄지로 귀두 끝을 문질렀을 뿐인데, 해영이 사시나무 떨듯 경련하며 사정했다. 눈은 초점이 반쯤 나가 있고, 벌어진 입에서는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타액이 주륵 흘러내렸다.

“좋아 죽네.”

자극도 자극이지만, 제 아래에서 정신 놓고 우는 해영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쾌감이라, 머리가 아찔했다. 건우가 허리를 크게 뒤로 물렸다 퍽, 끝까지 쳐올렸다. 내벽 안쪽이 주는 압박감에 탄식을 뱉은 건우가 상체를 세웠다. 그리고 골반을 단단히 붙잡은 채 허리짓을 시작했다.

평소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짓눌리는 느낌이 선연했다. 좋은 건지 아픈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철퍽철퍽, 폭력적인 소리가 속도를 더했다.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사정감과는 다른, 처음 느끼는 감각이 아래에서 타고 올랐다.

“흐윽, 아, 윽! 자, 잠깐만, 흐으….”

해영이 건우의 허벅지를 다급하게 밀었다. 건우가 그 손을 잡아 해영의 허리 위에 올리고선 거세게 박았다. 해영의 입에서는 더 이상 말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을 타고 나오는 건 짐승이 교미하는 듯한 신음과 울음뿐이었다.

“아, 아아, 으응, 하윽!”

“하아, 너무, 좋아요….”

깊은 곳까지 처박을 때마다 조여 무는 내벽과 표피를 긁어대는 진동에 건우는 이를 까득 물었다. 조금 전의 사정으로 예민해진 점막을 비벼대며 허리짓을 이었다. 파드득 파드득 해영의 등이 튀어오를 때마다 도드라지는 뼈의 윤곽이 사랑스럽다.

“후, 선배….”

슬슬 한계였다. 치미는 사정감에 몸이 절로 연인의 온기를 찾는다. 가슴팍을 해영의 등에 마주 붙이자, 해영이 그 무게를 못 이기고 엉덩이를 풀썩 떨어트린다. 그 위로 무게를 실어 수직으로 강하게 찍어 내렸다. 퍽, 퍽.

“아읏, 아, 아아! 흐으윽, 아!”

건우가 추삽질을 할 때마다 아래로 성기가 이불 위에 짓눌렸다. 해영의 몸이 힘없이 흔들린다. 뺨 아래는 이미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였다. 해영의 하얀 어깨에 이를 박은 건우가 이불과 배 사이에 눌린 해영의 성기를 잡아 슥슥 쳐올렸다. 쌀 것 같은데. 건우의 손이 닿자마자 배뇨감에 가까운 느낌이 몸을 타고 소름이 돋는 것처럼 올랐다. 해영이 그 감각을 피해 엉덩이를 위로 들었으나, 뒤에서 이어지는 삽입을 도와주는 꼴이었다.

“윽!”

“아흑…!”

콱, 건우가 꿈틀대는 제 성기를 끝까지 박아 넣었다. 동시에 해영의 배 안쪽으로 따뜻한 것이 몇 차례에 걸쳐 쏘아진다. 사정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제 것을 쑤시고, 또 쑤셨다. 해영의 엉덩이가 부르르 떨며 안쪽으로 건우의 것을 물었다. 그 순간.

쪼르르….

건우의 손바닥 위로 묽은 액체가 울컥 뱉어졌다. 큼직한 손은 금세 흥건하게 젖어 찰박거리는 젖은 소리를 냈다. 건우가 한 번 더 해영의 성기를 크게 쓸어 올렸다.

“아아, 아….”

해영은 입을 헤벌린 채 쾌감에 절은 눈을 하고 다시 한번 성기에서 퓻 물을 쏘아댔다. 그렇게 몇 번을 더 하고 나서야 건우는 손을 떼어 냈다. 여태껏 넣고 있던 성기를 느릿하게 빼냈다. 전원을 끈 로터 역시 끈을 잡고 천천히 꺼내자, 그에 딸려 나온 희고 진한 정액이 이불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괜찮아요?”

건우가 해영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그 얼굴을 본 건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해영은 벌게진 눈을 하고 호두턱이 되어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왜…. 많이 힘들었어요?”

해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급기야 터진 울음을 손을 올려 가려 보았으나, 곧바로 잡아 내리는 건우에 의해 저지되었다.

“흐….”

“왜요. 왜 그래.”

“차, 창피해서….”

해영의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줄줄 흘렀다.

“네 손에, 못 참고, 흐, 쉬….”

입 밖으로 뱉으니 더 수치스러웠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못 참다니. 쾌감 속에서 허우적대다 정신이 들자마자 제가 저지른 짓에 머리가 하얘졌다. 너무 창피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최악의 크리스마스다. 건우의 손을 뿌리치고 이불을 끌어다 얼굴을 가렸다.

“귀여워.”

손으로 오줌을 받아 놓고도 좋다고 웃고 있는 건우를 보니 속이 더 답답했다.

건우는 빼꼼 튀어나온 이마에 뽀뽀하고, 이불을 걷어 둘둘 말았다. 그리고 이불 대신 베개를 해영의 얼굴 위에 올려 주고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시트에는 묻지 않아 빨래 바구니에 처박히게 된 건 이불뿐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건우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해영의 말랑한 배를 쓰다듬었다.

“다 울었어요?”

“응….”

대답을 들은 그는 베개를 치워냈다. 말대로 울음은 그쳤지만, 여전히 시선은 반대쪽을 본 채였다. 건우가 해영을 안아 들어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욕조 물 안에서 그의 품에 안겨 온몸이 뽀득하게 씻겨지고, 부드러운 타올에 몸이 둘둘 싸여 침대까지 도로 배달될 때까지도 해영의 표정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건우가 가져온 새 이불을 덮고 누워 그 안으로 해영을 끌어안았다. 머리 밑으로 팔을 넣어 주니, 익숙하게 품으로 파고든다. 건우의 가슴팍 위로 한숨이 흩어지다 이내 입술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또다시 숨을 푹 내쉬었다.

여전히 창피했다. 아마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나겠지. 그래도.

해영이 다시 한번 눈앞의 살갗에 입술을 비볐다.

건우는 정말 착하다. 손에 그런… 걸 쌌는데도 화도 안 내고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저를 씻겨 주기까지 했으니까. 수치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그가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속이 따뜻했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됐다. 귀엽다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런 실수를 계속해서 보게 되면 기분 나쁘고 거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변 하나 못 가리는 애인이라니. 그것만은 절대, 절대로 안 된다. 그러려면 우선 저 이상한 것부터 처리해야 했다.

“저거, 이제 안 쓰고 싶어….”

머리 위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싫었어요?”

“그냥, 이상해….”

해영의 정수리 위로 입맞춤이 쏟아졌다. 그 정신없는 뽀뽀 세례에, 해영은 대답을 듣는 것을 잊고 말았다.

***

쪽쪽쪽.

“으응….”

“이래도 안 일어나네.”

건우가 퉁퉁 부은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뽀뽀를 퍼부었다. 참다못한 해영이 도리질하며 거부 의사를 표해도 멈추지 않았다. 뺨에, 입술에, 콧잔등에,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알았어….”

해영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벽에 등을 기대앉은 채로 붕어처럼 부은 눈을 힘겹게 떴다. 단잠을 깨운 뽀뽀가 달갑진 않았으나, 막상 눈앞의 연인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평소보다 작은 해영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건우가 발치에서 큼직한 상자를 꺼내 해영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어….”

“원래 어제 케이크 먹으면서 주려고 했는데.”

건우가 눈썹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멋쩍게 웃었다.

발가벗고 머리도 부스스한 데다, 퉁퉁 부은 얼굴로 받기엔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눈을 뜨자마자 받는 선물에 정신이 팔린 해영은 옷을 주워 입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신이 나 물었다.

“여, 열어 봐도 돼?”

“네.”

눈처럼 새하얀 상자에 감겨 있는 큼직한 빨간 리본. 크리스마스 느낌을 풀풀 풍기는 상자 위로 손을 뻗었다. 대체 뭘까. 딱히 짐작 가거나 원하는 선물은 없었지만, 그가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웠다. 해영이 풀기 아까울 만큼 정갈하게 매어져 있는 리본 끝을 잡아 천천히 잡아당겼다. 부드러운 감촉의 리본은 약한 힘에도 쉽게 풀어졌다.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침대 위로 스르르 내려앉은 리본을 바라보다, 상자 뚜껑을 잡아 올랐다.

내용물을 확인한 해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상자 안에는 캐주얼한 구두 한 켤레와 베이지색 넥타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년 되면 신을 일 많아질 것 같아서요. 마음 같아서는 그때마다 타이도 매 주고 싶은데, 못 그러니까.”

줄곧 속을 답답하게 짓누르던 아쉬운 말을 겨우 내뱉은 건우가 쓰게 웃었다.

해영이 졸업을 하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의 첫 면접 날에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졸업식 날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첫 출근 날 넥타이 하나 매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무엇보다, 그가 힘들 때 그걸 알아차릴 수 있는 위치에 제가 없다는 게 가장 걱정이었다.

이제 막 맞춰가기 시작한 연인에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마냥 순탄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웃어넘길 수도 없었다. 롤러코스터라도 타듯 수 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십 번씩 불안하고 초조해서, ‘군대에서 헤어지지 않는 법’ 따위나 닳도록 검색을 하고 있으니.

제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해영과 저의 마음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에 있었다.

서로 다 꺼내 보이지 못할 만큼 좋아하지만, 저는 ‘해영’ 그 자체가 좋은 반면에, 해영은 그를 지탱해 주는 사람,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더 좋아하는 사람 눈에는 그 차이가 선명하다.

우연히, 해영이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그 시점에 옆에 있던 것이 저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마워….”

해영이 축 처진 얼굴로 넥타이 끝을 만지작거렸다. 건우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부러 장난스럽게 물었다.

“넥타이 매 줘도 돼요?”

“지금…?”

“네.”

고개를 숙여 아래를 슬쩍 훑은 해영이 경계하는 눈을 하고서 이불을 끌어다 제 몸을 가렸다.

“…발가벗고 있는데?”

“응.”

“…안 돼.”

해영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건우가 이불 위로 고개를 묻고 소리 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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