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2월 31일
해영은 작은 주방 안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건우를 눈으로 쫓았다. 커다란 덩치에 곰돌이 자수가 새겨진 앞치마를 맨 모습은, 이제 자주 보아 익숙했다.
“가서 앉아 있으라니까.”
짤주머니를 든 건우가 말했다. 해영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식탁 아래로 발을 하느작거렸다. 보는 거 재밌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불퉁한 목소리에, 설득을 포기한 건우가 작게 웃고 다시 뒤를 돌아 크림을 짜는 데 열중했다.
“넌 어떻게 못하는 게 없어?”
살다 살다 케이크 만드는 걸 보다니.
“배웠어요. 선배한테 해 주려고.”
“누구한테?”
“둘째 누나. 베이킹이 취미거든요.”
“아아.”
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다 들은 이야기들로 유추하건대, 건우의 누나들 중 건우와 가장 닮은 건 둘째 누나였다. 첫째 누나와 윤서 선배는 요리에 취미도 없고, 이벤트처럼 낯간지러운 걸 정말 싫어한다고 했다. 그에 반해 둘째 누나는 건우에게 종종 예쁜 레스토랑이나, 카페, 맛있는 레시피 등을 공유해 줄 정도로 취향이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건우도 첫째 누나와 셋째 누나에게는 세상 무뚝뚝한 남동생이었지만, 둘째 누나한테는 미묘하게 달랐다. 특별한 용건 없이도 가끔씩 전화를 걸곤 했으니까.
가장자리를 따라 크림을 예쁘게 짜낸 건우가 케이크 가운데에 숫자 초 2와 4를 꽂아 식탁 위에 올려 주었다. 케이크는 사온 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예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단 한 가지.
“너무 예쁘다. 근데 조, 조금 작네….”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만 제외하면 완벽했다. 많이 먹고 싶은데….
건우가 픽 웃으며 해영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아야.”
“크리스마스 케이크 그 커다란 걸 선배 혼자 다 먹었잖아요, 그죠.”
“응…. 그랬지.”
“그게 일주일도 안 됐는데.”
“응….”
“조금만 먹어요. 배 아파.”
응,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해영이 속으로 불평했다. 잔소리쟁이.
건우가 앞치마를 벗어 놓고 라이터를 가져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불을 붙이고 해영의 쪽으로 케이크를 밀어 주자, 언제 아쉬워했냐는 듯 웃는 얼굴이 되었다. 해영이 입술을 모아 후, 촛불을 향해 바람을 불었다. 한 번에 꺼지지 않아 세 번을 연달아 불었다.
“생일 축하해요.”
“고마워….”
건우는 식탁 위에 올려진 해영의 손을 잡아 올려 손등에 입술을 비볐다.
“누가 뭐라고 하든, 선배는 저한텐 가장 큰 선물이고 행운이에요.”
선물. 건우는 종종 제게 선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개 장난치듯 가볍게 뱉은 말이었지만, 그 마음까지 가벼운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살면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마음을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해영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메어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건우는 눈가가 서서히 붉어지는 해영을 바라보다가 잡은 손을 좌우로 잘잘 흔들었다. 좋은 날인데, 울리면 안 되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여 눈을 맞추자, 해영이 마주 웃었다.
“선물 받아야죠.”
“저, 저번에 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그건 크리스마스 선물이고. 이건 생일 선물.”
“아….”
아닌 척해도 얼굴에 기대감이 비쳤다. 건우는 손을 놓고 옆 의자에 놓아두었던 봉투를 해영에게 내밀었다.
“용돈…?”
“아니에요.”
건우가 큰 소리로 웃었다. 돈같이 생겼는데. 해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봉투를 형광등에 비춰 보았으나, 보이는 건 없었다. 접혀 있는 입구를 열어 안에 있는 종이를 살살 꺼내 펼쳤다. 그리고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어 내려가던 눈이 크게 뜨였다.
“제, 제주도….”
해영이 건우와 종이를 번갈아 보며 거듭 확인했다. 진짜, 제주도….
“언제, 언제 가?”
“다음 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해영이 식탁을 돌아 건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건우가 그 허리에 팔을 감아 제 무릎 위로 앉혔다.
“너무 좋아…. 가고 싶어 한 거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몰라요.”
티비에서 한라산이 나왔을 때, 저기가 네가 갔던 곳이냐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보고 제주도 관광지라도 나오면 눈을 반짝이면서 예쁘다고 해댔는데.
“겨울이라 한라산은 못 가요.”
“아아, 그렇구나. 괜찮아. 산 안 가도 좋아….”
건우가 포크로 케이크를 퍼서 부지런히 해영의 입 앞에 가져다주었다. 그걸 받아먹으면서도 눈은 종이를 향했다. 좋아하니까 좋네.
“생일 몇 시간 안 남았는데, 뭐 더 하고 싶은 건 없어요?”
“하고 싶은 거?”
“응. 이거 만든다고 많이 못 놀아 줬잖아요.”
“음….”
해영은 단 한 번뿐인 기회라도 얻은 아이처럼 신중하게 고민했다.
“그러면.”
그러다 갑자기 화악 달아오른 얼굴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본격적인 거 아니에요?”
이러라고 준 건 아니었는데. 건우가 제 손목에 묶인 넥타이를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며칠 전 콘솔 게임 내기에서 이겼을 때, 움직이지 말라고 해놓고 괴롭힌 데 대한 복수인 듯했다.
“네가 자꾸 내 어, 엉덩이 주무르잖아.”
“전 그때 안 묶었는데.”
“그건 내가 안 움직이고 잘 있어서 그런 거고…. 너는 말을 안 들으니까 어쩔 수 없어. 아파?”
해영이 엉성하게 지은 매듭을 만지며 물었다. 아니요,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이제 진짜 움직이지 마.”
“네.”
건우가 다소곳하게 모아진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해영이 그의 다리 사이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티셔츠도, 바지도, 제가 선물로 주었던 시계까지 벗겨진 채 드로즈 한 장만 걸치고 누운 건우는 왠지 모르게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뭐를 해야 하지….
지난번에 하도 호되게 당해서, 너도 당해 봐라 하는 마음으로 뱉긴 했는데.
“못 하겠어요?”
“아니!”
여유롭게 웃는 낯짝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 제 모습이 어땠는가. 울고불고 그만해 달라고 사정하고.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괴롭게는 만들고 싶었다. 방금 그 도발로 오기가 생긴 해영이 이를 악물고 상체를 숙였다.
먼저 입술 위에 쪽, 입을 맞추고 그가 제게 했던 것처럼 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귓바퀴를 따라 입을 맞추다 귓불을 이로 깨물자, 아야, 영혼 없는 신음이 들렸다. 이게 아닌가. 해영이 꿍한 얼굴로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춥, 가슴팍까지 천천히 키스했다. 그때, 위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
“간지러워요.”
해영이 위로 눈을 흘기며 다시 괴롭히는 데 집중했다. 혼이 덜 났어, 아직.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복부 위를 아프지 않게 깨물며 내려갔다. 드로즈 아래로 크기를 키운 것이 꺼떡이며 해영의 가슴팍에 문질러졌다. 그제야 건우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습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숨소리에 해영이 반짝이는 눈을 하고 드로즈 밴드로 손을 가져갔다. 천천히 끌어 내리자, 완전히 발기한 성기가 퉁겨져 나오면서 해영의 뺨을 툭 때렸다.
“아….”
얼떨결에 뺨을 얻어맞은 해영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리고 배 위로 바짝 올라붙은 건우의 것을 보았을 때, 해영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렇게 컸나. 이 정도로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해영이 검지로 기둥을 톡 건드리자, 눈에 띄게 움찔한다.
“재밌어요?”
건우가 괴로운 듯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응….”
이번에는 성기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한 손에 다 잡히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맥박이 선연했다. 해영이 신기한 듯 입을 헤 벌리고 찰흙 반죽하듯 천천히 주물렀다.
“윽….”
건우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자극보다, 정말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릿한 손동작이 더 괴로웠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해영이 자꾸만 튀어 오르는 그의 골반을 다른 손으로 꾹 눌렀다. 그리고 귀두 끝에서 방울져 나오는 선액을 엄지로 펴 발랐다. 미끌거려. 금세 표피가 번들거리는 액체로 뒤덮였다. 더 커진 것 같은데. 해영이 눈을 위로 해 그의 표정을 살폈다. 확실히 아까보다 더 괴로운 얼굴이었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아니다. 그가 그동안 제게 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자. 해영이 고개를 작게 털어냈다.
또 뭘 했더라. 아, 맞아.
해영이 기둥을 양손으로 꼭 붙잡고 입을 천천히 벌렸다. 그리고 그 말캉한 입술이 귀두 끝에 닿았을 때, 건우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해영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선배, 잠깐만요.”
그러나 작정을 했는지, 해영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큼직한 귀두를 입에 합 물자 혀끝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더 밀어 넣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틀어 봤지만, 이게 한계였다. 이미 끄트머리를 문 것만으로도 턱이 잔뜩 벌어져 아릿했다. 츄릅, 해영은 눈을 질끈 감고 사탕 빨듯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읍, 으, 흐으….”
너무 커. 눈물이 고였다. 그가 해 주었던 행위를 떠올리며 기둥을 붙잡은 손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건우가 묶인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아, 죽겠다. 허벅지 근육이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숨이 모자란 해영이 입을 떼어냈다. 선단이 타액으로 축축했다. 그걸 본 해영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 풀어 주시면 안 돼요?”
건우가 간절한 눈으로 물었다.
“벼, 별로지…. 더 잘할 수 있는데. 조금만 더 있어 봐.”
“아니, 하….”
해영이 손등으로 입술을 슥 닦아내고 다시 입을 벌려 성기를 삼켰다. 그가 해 준 것처럼은 못 해도,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대로 입에 넣는 것조차 힘이 들어 도무지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넣으면. 해영이 눈을 꼭 감고 아까보다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으나, 꾹 참았다. 그 순간, 건우가 허리를 위로 퍽 쳐 올렸다.
“컥, 흐….”
목구멍까지 성기가 처박힌 해영이 놀라 입술을 떼어냈다.
“괜찮아요?”
건우가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해영은 작게 기침하며 목을 부여잡았다. 건우는 묶인 손으로 해영의 턱을 쥐어 입술을 벌렸다.
“아 해봐요.”
“아….”
찢어지거나 상처가 나진 않았으나, 놀란 점막이 피가 몰려 벌겠다. 건우가 미안한 얼굴로 턱을 놓고 해영의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댔다.
“죄송해요…. 너무 좋아서.”
“조, 좋았어…?”
“네. 엄청.”
그 말에 해영은 목이 아픈 것도 잊고 싱글거렸다.
“그렇게 좋아요?”
“응…. 맨날 너만 해 줬잖아. 나 그럼 조금만 더 해볼래.”
고집은. 건우가 포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해영이 기다렸다는 듯 다시 몸을 낮춘다. 재차 제 성기를 입에 무는 뒤통수에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목구멍에 힘 빼요. 힘 주면 좁아져서 구역질 나요.”
해영은 가르쳐 준 대로 곧잘 따라 했다. 목에 힘이 빠지니 확실히 조금 전보다 더 깊숙한 곳까지 수월하게 들어갔다. 그래 봤자 반의반도 채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건우는 머리가 터질 것처럼 흥분했다. 아랫배 근육이 움찔움찔 떨렸다.
“하아…. 혀 내밀고. 턱 안 아파요?”
“으응….”
해영이 성기를 문 채 목울림으로 답했다.
“고개 천천히 움직여 볼래요?”
작게 끄덕인 해영이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처 넘기지 못한 타액이 주륵 기둥을 타고 흘렀다. 츕, 츕, 빨아 넘기는 소리나 동작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영이 꿈틀대는 성기를 양손으로 버겁게 감싸 쥐고 조금 더 속도를 내어 움직였다.
“하, 윽….”
건우의 미간이 깊게 패었다. 묶인 손으로 해영의 귓바퀴를 진득하게 매만졌다. 좁은 귓구멍 안으로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자 해영의 몸이 움찔 튀었다.
“선배, 조금만 더.”
단단한 성기가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해영이 눈을 질끈 감고 목 안쪽까지 꾹 밀어 넣자, 건우가 그 뒤통수를 잡아 내리눌렀다.
“읏!”
작은 입 안에 제 것을 콱 박아 넣었다. 그와 동시에 해영의 목구멍 안쪽으로 비릿한 것이 여러 차례에 걸쳐 쏘아졌다. 해영이 시트를 꼭 구겨 쥐고 버텼다. 모자란 숨으로 인해 붉어진 목덜미 위로, 울대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마침내 사정이 멎었을 때, 건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떼어 냈다. 해영이 붉게 짓무른 눈을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기침했다.
“어떡, 하….”
이럴까 봐 못 하게 했던 건데.
“저 봐봐요.”
해영의 쪽으로 몸을 붙이면서 말했다. 정면으로 돌려진 얼굴은, 잔뜩 울고 온 사람처럼 엉망이었다. 그 얼굴에 건우는 다시 한번 아래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짐승 새끼도 아니고.
“이거 이제 하지 마요.”
건우가 해영의 눈가를 엄지로 닦아 주며 일렀다.
“왜?”
“힘들잖아요. 목도 상했네.”
평소보다 미약하게 갈라진 목소리에, 건우가 미간을 구겼다. 죄책감으로 속이 저렸다.
해영은 대답 없이 제 입가를 살피는 건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고집스러운 시선을 느낀 건우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그를 힐긋거렸다.
“좋았지?”
셀 수 없이 몸을 맞춘 연인은 제 자신조차 인정하기 싫었던 파렴치한 본성까지 꿰뚫어본다. 그리고 해영은 이런 일에 결코 모른 척 넘어가 주는 일이 없었다.
“너 되게 조, 좋으면 그러더라. 귀 엄청 빨개지고, 막 미안해하고….”
건우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좋았지?”
다시 한번 되묻는 말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대답을 받아낸 해영이 활짝 웃었다.
“다음엔 더 잘 해야지….”
그러더니 엄청난 말을 중얼거렸다. 혼자 결의에 차 있기에 굳이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건우는 속으로 여간 심란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잘하기까지 하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