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월 2일
택시가 멈춰 선 곳은 도심과 가까운 어느 산의 초입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해영은 결제된 카드를 돌려받고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차 문을 열었다.
내어진 산길을 따라 올랐다. 겨울이 채 가지 않아 여전히 추워 보이는 나무들이 얼마 남지 않은 햇빛을 거르지 않고 내려 준다. 덕분에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임에도 무섭지 않았다. 사박사박, 마른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가 간지러웠다. 그렇게 십 분쯤 걸었을까. 납골당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분만을 모시고 있는 곳답게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실장 아저씨께 들은 말로는 풍수사가 더 큰 산의 깊은 자리를 추천했음에도 아버지가 굳이 이곳을 고집하셨다고 했다. 산 사람이 찾아오기 힘들면 기리는 자리가 다 무슨 소용이 있냐면서. 그 마음 덕분일까. 삼 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꽃을 들고 찾아오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해영도 그중 하나였다.
관리인이 해영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마주 인사로 답하고서 익숙한 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해영이 사이좋게 붙어 있는 두 개의 납골함을 바라보았다.
故 서명헌 故 정순애
큰 벽면 한가운데, 눈높이에 맞게 놓인 납골함 주변에는 두 분이 나온 사진들이 함께였다. 그중 몇 장은 색이 바래 본래의 색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사진 속 모습 또한 두 분의 젊은 시절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셨다는 게 엿보였다.
제가 아버지와 함께 찍었던 사진은 납골당 건물 안쪽, 손님이 드나들 수 없는 곳에 몇 장 넣어 두긴 했으나 사람들에게 내보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원치 않기도 했고.
해영이 들고 온 꽃다발을 발치에 두었다.
“저 또 왔어요.”
귀찮으신 건 아니겠지.
“오늘 첫 출근이었거든요. 아, 사원증도 받았어요. 이거.”
주머니에 돌돌 말아 넣어 두었던 사원증을 꺼낸 해영이 앞으로 내밀었다. 사진이 좀 바보같이 나오긴 했지만, 보여드리고 싶었다.
“저 아버지 이름 없이도 합격했어요. 아무도 몰라요. 아까는 저한테 아버지 소개도 해 주고 그랬어요.”
해영이 코끝으로 웃었다. 점심시간의 일이 떠오른 탓이었다. 새 사수는 애사심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해영에게 회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다. 대단하신 분이라고. 혼자 지레 놀라 움찔했으나, 다행히 사수는 이야기하는데 집중해 눈치채지 못했다.
“빚 갚으려고 간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아버지가 일궈낸 곳에서, 아버지의 그늘 아래,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싶었다. 뒤늦은 마음이지만, 부담이 아닌 경애로서.
“열심히 해볼게요.”
해영이 사원증을 도로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아, 맞다. 다음에 올 땐 치, 친구랑 와도 돼요?”
안 되려나. 이곳을 다녀갈 때마다 다음엔 저도 인사하러 가면 안 되냐고 슬쩍슬쩍 물어보던 건우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애인이라고 하면 납골함이 뒤집어질지도 모르니까 친구라고 소개하면 괜찮지 않을까.
“…아버지 기일에 같이 오, 올게요?”
돌아오는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모르겠다. 말했으니까 괜찮겠지.
내려가는 길은 어두웠다. 등산객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로도 자주 이용되는 길이라서인지, 드문드문 가로등이 세워져 있었으나 저녁 시간의 산길을 밝히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해가 진 후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조금 무서웠다. 자연스럽게 해영의 걸음이 빨라졌다.
거의 뜀박질에 가까운 속도로 내려오고 나서야 해영은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다음에 올 땐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호구조사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