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습관처럼 알람도 없이 같은 시간에 눈을 뜬 건우가 제 품에서 색색 대며 잠들어 있는 해영을 보았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머리통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자 해영의 눈꺼풀이 짧게 움찔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잠이 많은 해영은 한번 깊게 잠이 들면 웬만해선 깨는 법이 없었다.
바스락,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발가벗은 해영의 어깻죽지에 어젯밤 제가 물고 빤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건우는 이불을 해영의 턱 아래까지 꼼꼼히 덮어주고 방을 나섰다.
아침으로 해영이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팬케이크를 해줄 예정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식자재를 확인했다. 계란 하나밖에 안 남았고, 소시지도 사 와야겠네. 버터는 있고. 빠르게 장 볼 목록을 추린 건우가 작은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여름을 목전에 두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쌀쌀하던 아침 공기가 어느새 기분 좋은 선선함으로 변해 있었다. 건우는 평소처럼 강변을 따라 뜀박질하며 몸을 풀었다. 돌아가는 길에 자주 이용하는 24시간 마트에 들렀다. 익숙하게 바구니를 들고 계란과 소시지를 담았다. 그 옆에 놓인 샐러드 야채도 함께 챙긴 뒤 더 살 게 없는지 둘러보다가 상태가 좋아 보이는 사과와 당근도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사과 당근 주스 먹여야지. 해영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챙겨 주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장 본 것들을 정리하고 씻고 나오니 해영을 깨울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일상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곤히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다 흘러 내려온 앞머리를 천천히 쓸어 넘겼다. 깨우기 싫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을 숙여 해영의 뺨과 입술에 쪽, 쪽, 차례로 입을 맞췄다. 해영이 앓는 소리를 내며 꼼질거린다. 찌푸려진 미간에도 입술을 비비고 나지막하게 부르자, 해영이 몸을 제 쪽으로 돌려 허리를 안고 허벅지에 얼굴을 묻었다.
어제 너무 괴롭혔나. 오늘따라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해영을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해영의 겨드랑이 아래에 팔을 넣어 몸을 일으켰다. 해영은 여전히 눈을 꾹 감은 채로 공중에 양팔을 뻗었다. 건우가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번쩍 안아 들었다. 해영이 다리를 건우의 허리에 감았다. 코알라처럼 매달린 그를 달고 욕실까지 걸어가는 내내 건우는 그의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해영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털어내면서도 연신 웃었다.
뚜껑 덮인 변기 위에 해영을 앉혔다. 칫솔에 치약을 짜서 입에 물려 주니, 그제야 눈꺼풀이 느릿하게 뜨였다.
“아침 뭐야?”
해영이 칫솔질을 하며 뭉개지는 발음으로 물었다.
“팬케이크.”
“와….”
눈에 띄게 좋아하는 해영에게 차마 사과 당근 주스도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씻고 나와요.”
건우는 작게 웃고 해영의 이마에 꾹 입술을 누른 뒤 욕실을 나왔다.
고소하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주방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넓적한 접시 두 개를 꺼내 아일랜드 바 위에 놓았다.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팬케이크를 제 그릇에는 세 장, 해영의 그릇에는 두 장 올린 뒤 그 위에 버터를 한 조각씩 얹었다. 가장자리에 소시지와 샐러드, 계란프라이까지 올리자 접시에 빈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짐한 아침이 되었다. 포크와 나이프까지 세팅해 놓고 프라이팬과 조리 도구를 닦아 정리하고 나니, 때마침 해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소시지도 했네?”
해영이 잠이 완전히 깬 얼굴로 식탁 위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그가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의자를 빼 엉덩이를 붙였다. 건우도 앞치마를 벗어 빈 의자에 걸쳐 놓고 자리에 앉았다.
“잘 먹을게.”
해영이 팬케이크를 한입 크기로 썰어 곧바로 입에 넣었다. 그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건우도 포크를 들었다.
“건우야, 근데….”
한참을 맛있게 먹던 해영의 눈동자가 스륵 옆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 끝에 오래된 앞치마가 걸렸다.
“왜 새로 사 준 거는 안 써?”
건우가 매일같이 쓰고 있는 저 앞치마는 무려 사귀기 전, 제가 그의 생일 때 선물해 준 것이었다. 아래에 곰돌이가 새겨진 줄도 모르고 산. 건우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저 앞치마를 좋아했다. 제가 처음 사 준 선물이라 그런 거라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 큰 성인이 곰돌이가 그려져 있는 걸 저렇게 해질 때까지 쓸 일인가, 싶었으나 밖에서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입고 싶은 거 입게 두자, 하는 생각으로 넘겼다. 그냥 그렇게 ‘앞치마’ 본래의 용도로만 저걸 사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해영도 이제 와서 저 곰돌이 놈이 신경 쓰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건우의 생일날, 요리를 해 주겠다고 안 하던 짓을 하다가 저 앞치마를 입은 채로 수모를 겪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거기에 더해 키가 큰 건우에게는 배꼽 부근에 오는 곰돌이가, 제가 입으니 볼썽사나운 곳에 닿아 한참을 놀림까지 받아야 했다.
그날 이후로 해영은 저것을 볼 때마다 그날의 일이 떠올라 얼굴을 붉혀야 했다.
‘그거 이제 그만 입으면 안 돼?’
처음에는 말로만 요구를 했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준 거라 안 돼요.’
라는 말을 들어, 감색의 무난한 새 앞치마를 사다 주었다. 그런데도 건우는 끝내 저 앞치마를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 사 준 것도 내가 준 건데….”
“애착 앞치마라 안 돼요. 이제 이거 없으면 요리가 안 된다니까.”
이번에는 또 애착 앞치마란다.
“괜한 데 머리 굴리지 말고. 아, 늦겠다. 이거 마시고 얼른 준비해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서.
건우가 해영의 빈 접시를 가져간 뒤 미리 갈아 놓은 사과 당근 주스를 해영에게 내밀었다.
“으….”
그 주황색을 보자마자 해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저를 위해 챙겨 주는 것에 대고 차마 안 먹겠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해영이 눈을 질끈 감고 꿀떡꿀떡 단숨에 잔을 비웠다. 건우가 곧바로 작은 초콜릿 하나를 까서 해영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해영은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 빙긋 웃으며 입안에서 달달하게 녹아가는 초콜릿을 음미했다.
건우가 준비를 마친 해영을 차에 태웠다. 아파트 주차장을 나서기 전 짧게 입을 맞추고 회사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예전에 한 번 회사 앞에서 뽀뽀했다가 며칠 내내 잔소리를 들은 뒤로 타협한 것이었다. 어차피 선팅 때문에 보이지도 않을 텐데. 해영은 이런 것에 섭섭할 정도로 엄격하게 굴었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긴 했지만, 가끔은 짓궂게 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곤 했다.
“갔다 올게.”
“응, 이따 봐요.”
가볍게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해영이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건우는 멀어지는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빈 손바닥에 불충분하게 닿았다 떨어진 온기가 옅게 맴돌았다. 매일 해도 아쉬운 건 어째 나아지지를 않았다. 해영이 회사 건물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건우는 차를 다시 출발했다.
해도, 해도 해야 할 게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집안일이었다. 건우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해영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가지부터 주워 들었다. 빨래 바구니에 모여 있던 수건 따위와 함께 세탁기에 넣어 돌린 뒤 잔 설거지를 했다. 혼자 있으니 적적한 기분이 들어 티비를 켰다. 매일 이 시간마다 방영하는 막장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불륜에, 삼각관계에, 시한부, 출생의 비밀 등 온갖 자극적인 주제로 범벅이 된 드라마였다. 개연성이 납득가거나 연출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욕을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맛이 있었다.
“씨팔, 자식도 둘이나 있는 놈이 잘하는 짓이다. 저딴 새끼는 거세를 시켜야 하는데.”
시선은 티비를 향한 채 한 손으로 청소기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식탁 위에 둔 휴대폰이 길게 진동했다. 건우는 청소기를 세워 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휴대폰을 들어 액정을 확인했다. 경태였다.
“왜.”
―야, 바쁘냐?
“어. 왜.”
식탁 위에 덜 닦인 물기가 보였다. 곧바로 마른행주를 집어 든 건우가 재차 꼼꼼히 닦으며 무감한 목소리로 답했다.
―뭐 하는데.
“청소.”
―아, 뭐야.
경태는 싱거운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피실피실 웃었다. 이 새끼가 집안일을 우습게 알고. 건우는 한마디 할까 하다 관두었다. 몇 년 전, 녀석의 자취방에 갔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발 디딜 틈이라곤 없던, 바퀴벌레가 안 나온 게 기적이었던 그 광경을 떠올리자 그런 녀석한테 집안일의 고됨을 설명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와, 나 심심해.
아버지와 함께 작은 술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경태는, 평일 대낮에 오늘처럼 대뜸 불러내는 일이 잦았다. 건우가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내 시간을 확인했다.
“네 시 넘어서 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아, 그래? 그럼 그때 밥이나 먹지, 뭐.
“술은 안 먹어.”
―알지, 알지. 이따 우리 가게로 와.
건우는 짧게 알겠다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티비에서는 그사이 드라마가 끝나고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다시 보기로 보든가 해야지.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껐다.
해영에게 경태와 만나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네 시에 나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5월 말이 되니 슬슬 더워지는 게 느껴졌다. 작은방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선풍기를 거실로 가지고 나왔다. 그걸 분해한 후 닦아서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 말려 두고 에어컨까지 청소하자 어느새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건우는 바로 해영까지 픽업해 데려올 생각으로 차 키를 챙겨 신발을 신었다.
경태네 가게는 먹자골목 안에 위치해 있었다. 차를 대기 영 불편한 위치여서, 건우는 늘 가게와 조금 떨어진 공영 주차장을 택했다. 차가 빽빽한 공영 주차장에 겨우 자리 하나를 찾아 주차한 뒤, 술집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의 문이 닫혀 있었다. 건우는 익숙하게 건물 뒤쪽으로 가서 주방과 바로 이어지는 뒷문으로 들어갔다.
“어, 왔냐.”
인기척을 느낀 경태가 육수로 보이는 커다란 냄비 안을 국자로 대충 휘저으며 알은체했다. 그는 잠깐만 앉아서 기다리라며 홀을 향해 턱짓했다. 건우가 홀의 불을 켜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태가 접시 다섯 개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가져온 것을 세팅하고 맞은편에 앉은 그가 말했다.
“이거 신메뉴거든. 맛 좀 봐봐.”
어쩐지 많이도 가져온다 했다. 경태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면 항상 제게 먼저 맛을 보였다. 그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었지만, 보완이 필요한 것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건우의 의견을 맹신하는 수준으로 참고했다. 그렇게 수정해서 내놓은 메뉴들이 대부분 잘 팔렸기 때문이다.
건우가 앞에 놓인 음식들을 보았다. 장사만 오 년을 하더니. 이제 모양은 다 그럴싸했다. 건우는 하나하나 맛을 보며 짧게 감상을 말하고 제안을 했다. 경태는 휴대폰에 제 말을 빠짐없이 적어 내렸다.
“식당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 되는데.”
그가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툭 뱉었다.
“아직도 생각 없냐?”
“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건우가 칼같이 답했다.
“그래, 뭐. 네가 결정한 거니까. 근데 너도 진짜 대단하다. 나 같으면 불안할 거 같은데.”
“뭐가.”
“나중에 헤어지면 뭐 먹고 사나, 하는 그런…. 야,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어우, 씨. 두 번 말했다가 사람 하나 죽이겠다.”
별생각 없이 이야기를 꺼내던 경태가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건우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급하게 말을 거두었다.
“애초에 그런 게 걱정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어.”
저와 해영의 사이를 알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듣는 질문이었다. 결혼으로 묶인 관계도 아닌데 뭘 믿고서 네 인생 포기하고 사느냐고. 나름대로 제 친구를 생각해서 한 말인 걸 알아도, 들을 때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이미 숱하게 다투며 나온 결론이 이거였다. 저는 본래가 직업적, 사회적인 성취에 관심이 쥐똥만큼도 없는 인간이다. 그런 제가 해영을 만나면서 생긴 목표가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일이었고. 그게 어떤 모습인지 찾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목적이 분명했기에 결과적으로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영을 위해 제 인생을 포기했다거나,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상상조차 안 될 정도로 그 존재 자체가 제게 이유가 되어 주었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확신이 있었다. 해영도 저도 헤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거. 이런 장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적어도 당사자인 두 사람은 그렇게 느꼈다.
“나 이제 형 데리러 가 봐야겠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 나도 오픈 준비해야겠다. 조언 고맙다, 야. 다음에 형이랑 또 먹으러 와.”
“어. 잘 먹었다. 다음에 보자.”
뒷문을 열고 나가는 저를 향해 경태가 손을 휘저었다.
매일 해영을 기다리는 회사 근처에 차를 세웠다. 여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멀리서 해영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에 맞춰 달칵 잠금을 푼 건우는 조수석에 올라탄 해영이 안전벨트를 매는 걸 기다린 뒤, 차를 출발시켰다.
“경태 잘 만나고 왔어?”
“네. 오늘 또 엄청 먹고 왔어요. 걔는 적당히가 없어, 적당히가.”
“신메뉴?”
“응.”
건우의 답에 해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게 소리 내 웃었다.
“경태네 음식보다 네가 한 게 더 맛있잖아. 그래서 맨날 물어보나 봐.”
“그런가.”
건우가 옆을 힐긋 보고 씩 웃으며 되물었다. 어떻게 대답할지 알고 있으면서. 매일같이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응. 경태가 한 것도 맛있긴 한데, 네가 한 게 훨씬 맛있어. 이건 나라서 좋게 말하는 게 아니고, 진짜 아무나 데려와서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걸? 네가 식당 하면 완전 대박 나.”
해영은 혹시라도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은 걱정에 이것저것 말을 덧붙였다. 차가 신호에 걸렸다. 건우는 조잘대며 쉬지 않고 저를 칭찬하기 바쁜 해영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등에 쪽, 짧게 입을 맞췄다.
“오늘 그 소리만 두 번째네. 저 진짜 식당 해요?”
“하고 싶어?”
해영의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하고 싶다고 답하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가게라도 차려 줄 기세로.
“아니. 난 형 먹이는 게 좋은 거지, 다른 사람 먹이는 건 별로.”
건우가 단박에 답했다. 그 말에 해영이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싱긋 웃고서 맞잡은 손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얽어 빈틈없이 깍지 껴 잡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건우가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해영이 앉아 있는 소파로 향했다. 오늘처럼 금요일이 되면 일주일 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소소하게 술을 기울였다.
“이번 주도 고생했어요.”
“너도.”
해영이 내밀어진 건우의 캔에 제 것을 톡 부딪쳤다. 경쾌한 소리가 기분 좋았다.
“나는 한 것도 없는데, 뭐. 형이 나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죠.”
건우가 해영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제 옆에 바짝 끌어와 껴안고 뺨에 입을 맞췄다.
말은 저렇게 해도 해영은 알고 있었다. 집이 항상 깨끗한 것도, 제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마다 따뜻한 밥을 해 주고, 출퇴근 길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해 주며,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집을 만들어주는 게 건우라는 거. 그리고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니까.”
해영이 그를 밉지 않게 흘겼다. 건우는 대답 대신 해영의 얼굴 구석구석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맨날 얼렁뚱땅 넘어가고. 해영의 입술이 불만으로 비죽 튀어나왔다.
“알았어요.”
건우가 그 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으며 달래듯 이야기했다. 해영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그의 희생을 절대 당연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해영은 매번 그가 주는 것들을 곱씹으며 속에 새겨 넣었다. 건우는 항상 제가 있어 다행이라고 이야기했으나, 해영에게 그의 존재는 감히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래전, 제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준 것들의 합이 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커서, 전부 갚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영은 오늘도 또 한 번 다짐했다.
만약 제가 그걸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언젠가 건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있는 힘껏 도와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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