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Everyday is a good day
* * *
1. 일요일
마음만 먹으면 외출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사준과 진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괜히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사람에 치이고 걱정에 치이느니 집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고, 즐겼다.
그런 일상에 젖어든 지 이미 몇 개월, 여느 때처럼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진우와 사준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원하지 못할 거라면 그냥 잊고 싶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당탕 소리가 이어지더니 격렬한 키스와 함께 장면이 바뀌면서 침대에서 두 사람이 달라붙었다.
진우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입속으로 팝콘만 밀어 넣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조금 전까지 세상이 끝난 것처럼 싸우더니 이제 세상이 끝날 것처럼 격렬한 섹스를 했다.
‘꽤 야하네….’
진우가 속으로 중얼거린 순간 허벅지 위로 묵직한 무게가 떨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숙이자 사준이 진우를 올려다봤다.
“왜?”
“재밌어요?”
“재미없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근데 혹시 여자한테 고백받은 적 있어요?”
사준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뭐? 그야… 그럭저럭.”
진우는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물어보나 싶으면서도 솔직히 대답했다. 고백이라면 남녀 가리지 않고 받아봤다. 사귀는 건 동성 한정이었지만 이성에게 호감을 받아 본 게 없던 건 아니었다. 별 감흥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사준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하긴, 김유민도 여자였지.”
사준은 짜증을 섞어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진우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문질렀다.
“뭐, 뭐 하는 거야?”
“쟤네도 하잖아.”
사준이 고개를 슬쩍 돌려 TV를 눈짓으로 가리키더니 손을 뻗어 진우의 엉덩이를 가볍게 주물렀다.
“남녀가 하는 걸로는 흥분 안 되나 봐요?”
“이사준…!”
“그렇게 크게 안 불러도 다 들려요.”
사준은 뻔뻔하게 대꾸하더니 바지와 속옷을 살짝 아래로 당겨 진우의 성기를 입에 머금었다. 귀두를 입술로 쪽 빨았다가 혀끝으로 살살 핥아 올리자 얌전하게 있던 성기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하지 마.”
“섰는데?”
“영화 보는 중이잖아.”
“응, 봐요. 나도 내가 보고 싶은 거 볼게.”
보고 싶은 거라니? 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사준의 행동은 열심히 고른 영화 대신 사타구니를 보겠다는 의미였다. 진우는 TV 화면과 사준의 뒤통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설마 저거 보고 흥분한 거야? 십 대도 아니고 저런 걸 보고 흥분하고 그러냐…. 진우는 짧게 혀를 차고는 고개를 들어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반응을 안 보이면 재미없어져서 떨어지겠지 싶었다.
화면 속 두 사람은 여전히 달라붙어 있었고 사준이 혓바닥 전체를 이용해서 성기 기둥을 핥아 올렸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신음과 아래서 울리는 소리가 겹쳐지면서 서라운드 음향효과를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진우는 주먹을 한번 꽉 쥐었다가 숨을 몰아쉬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적나라한 자극에 자꾸만 몸이 움찔움찔거렸다.
진우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 것처럼 사준의 움직임이 더 과감해졌다. 사준은 고개를 돌려 진우의 성기를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깊게 빨아 물었다가 손을 움직여 고환까지 주무르기 시작했다. 짙어진 애무에 진우의 숨이 거칠어졌다. 급소를 훤히 드러낸 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꼴이었다. 진우는 허공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가 붙잡을 것을 찾아 팔을 양옆으로 쭉 뻗어 소파 등받이를 붙잡았다.
“하, 후으….”
애써 무시하려던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어느새 사준이 빨아 주는 것에 맞춰 아랫배를 들썩이고 있자 사준이 고개를 들어 진우를 바라봤다.
“더 해도 돼요?”
멈출 마음 같은 건 하나도 없으면서 은근슬쩍 묻는 말에 진우는 대답 대신 사준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더 해달라는 듯한 신호에 사준은 몸을 일으키면서 곰 인형을 바닥으로 치워 버리고 진우를 소파에 밀어 눕혔다. 팔걸이에 뒤통수가 닿으면서 완전히 누운 자세가 되기 무섭게 사준이 진우의 바지와 속옷을 훌렁 벗겨버렸다.
털썩, 가벼운 홈웨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함께 살면서 이런 식으로 갑자기 섹스를 시작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언제 해도 묘하게 긴장되고 떨리는 게 사준과의 섹스였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면 더 남자다운 느낌이 드는 사준의 얼굴을 보며 진우는 팝콘의 짭짤함이 묻은 입술을 혀끝으로 문질렀다.
사준은 발갛게 달아오른 진우의 얼굴을 흘긋 보고는 다리를 벌려 자리 잡았다. 그리고는 헐렁한 반소매 셔츠를 목 아래까지 밀어 올렸다. 사준은 먹이를 눈앞에 둔 짐승처럼 진우를 쓱 훑어보더니 훤히 드러난 상체를 큰 손으로 주무르다가 손끝에 걸리는 유두를 살짝 붙잡았다.
“읏…!”
다짜고짜 유두부터 만질 줄 몰랐던 진우가 놀라 허리를 비틀자 사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가 위아래로 흔들리게 건드리자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 거기, 하지, 흣….”
“왜요? 좋아하잖아.”
사준은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게손가락으로 잡은 유두를 빙글빙글 돌렸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손길에 진우의 유두가 꼿꼿하게 일어나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 흣, 왜, 자꾸….”
“여기 좋아하는 거 알고는 있는데 만져주는 걸 까먹게 되더라고요.”
진우가 무슨 의미냐는 눈으로 사준을 바라봤다.
“안쪽에 들어가면 허리 흔들기 바빠서 말이죠.”
“뭐…?”
“오늘은 실컷 만져줄게요.”
황당해하는 진우를 두고 사준은 목덜미를 쪽쪽 빨다가 고개를 내려 빳빳하게 일어선 유두를 입에 물었다. 한쪽은 입술로 자극하면서 다른 쪽은 손가락으로 빙빙 돌려대는 통에 가슴 전체에 쾌감이 번졌다. 손가락과 혀가 움직일 때마다 가슴 쪽으로 몰린 쾌감이 척추를 타고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사준은 눈동자를 들어 올려 진우의 반응을 힐긋 보더니 유륜 전체를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빨리자 진우의 목이 뒤로 젖혀지면서 절로 앓는 소리가 피어올랐다.
“아, 흐읏, 으응….”
가슴을 빨리는 건데 허리가 자꾸만 움찔거렸다. 팽팽하게 일어선 성기가 배꼽 아래를 스치면서 말간 액을 뚝뚝 흘려댔다. 더 세게 빨아 주면 금방이라도 쌀 것 같아 진우는 입술을 깨물며 사준의 머리를 살짝 밀어냈다.
“왜요?”
사준이 혀끝으로 유두를 할짝거리며 말하자 단단하게 일어선 유두가 혀에 쓸려 위아래로 흔들렸다.
“거기, 그만, 흣….”
“아, 여기만 하면 안 되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사준은 입과 손의 방향을 바꾸었다. 여태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유두를 입에 머금고 입에 물고 있던 유두를 손가락으로 잡아 비틀었다.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유두가 비틀리자 아릿한 통증을 동반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이사준, 진짜, 흣.”
“좋으면 좋다고 해요. 티 다 나니까.”
도발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일부러 괴롭히는 것 같기도 했고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심술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기분이 나빠졌다면 확실히 말해주는 게 좋았다.
진우는 몸을 일으켜 사준의 어깨를 뒤로 밀었다. 그리고는 사준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올라앉아 바지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딱딱하게 일어선 성기가 퉁 튀어 올랐고 진우가 손바닥으로 바로 감싸 쥐었다.
“너도 좋으면 좋다고 해.”
진우는 한 손으로는 사준의 어깨를 붙잡고 한 손으로는 사준의 성기를 일부러 세게 쥐며 말했다. 지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며 사준이 씩 웃었다. 쓸데없는 질투에 사로잡혔던 마음이 쑥 가라앉고 말았다.
“나야 맨날 좋죠, 당연한 거라 말 안 했던 건데.”
능청스러운 말에 진우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
말이나 못 하면…. 진우는 더 말하는 걸 들어봐야 자신만 손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사준의 어깨를 잡아당겨 입을 막듯이 키스했다. 입술을 쪽 빨고 두 개의 성기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비벼대자 사준이 가슴팍이 들썩일 정도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사준은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진우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성기를 비비는 것에 맞춰 혀뿌리를 빨아대자 진우의 손짓이 점점 빨라졌다. 마찰이 빨라질수록 성기 끝에서 흘러나온 투명한 쿠퍼액이 성기를 적시며 젖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찌걱찌걱,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가 내는 열 때문에 손바닥이 다 뜨끈뜨끈했다. 아래를 바짝 밀어붙이자 사준의 탱탱한 고환이 진우의 엉덩이 사이를 꾹 눌렀다.
그 뭉근한 움직임에 자극받은 진우가 손을 좀 더 빨리 움직이자 사준이 숨을 헐떡이며 진우의 셔츠 속으로 다시 손을 밀어 넣었다. 옆구리를 더듬듯이 올라온 손이 빳빳하게 일어선 유두를 잡아 비틀었다.
“아흣…!”
진우는 사준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에 단단히 힘을 주며 손톱을 세웠다.
“거기… 하지, 흣.”
사준이 다시 유두를 꼬집듯이 비틀자 진우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준은 진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타액을 핥으면서 손끝으로 계속 유두를 문질렀다.
“흣, 잠깐, 아, 흐으….”
“젖꼭지 진짜 좋아하네요.”
“아니, 하응….”
진우는 성기를 비비는 것도 멈춘 채 낮은 교성을 계속 터트렸다. 가슴팍에서 올라오는 쾌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손놀림에 자꾸만 허리가 덜덜 떨렸다. 유두로 느끼는 건지 성기로 느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준은 진우의 반응을 살피면서 유두를 끊임없이 만지작거렸다. 쾌감의 중추신경이 유두가 된 것만 같아 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하으….”
참지 못한 진우가 나른한 신음과 함께 허리를 파르르 떨자 성기 끝에서 정액이 질금 새어 나왔다.
“지금 젖꼭지로 간 거예요?”
“아니, 거든…!”
민망함에 진우가 부정하자 사준이 피식 웃으며 진우의 몸을 뒤로 밀었다. 가벼운 절정감에 몸이 늘어진 진우가 다시 소파에 드러눕자 사준은 진우의 몸을 쭉 훑어봤다. 몇 번을 봐도 좆 달린 남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왜 이렇게 야하고 예뻐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흥분으로 달아올라 울긋불긋한 피부와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미묘한 곡선까지. 마치 이사준을 유혹하려고 작정하고 만들어진 것 같았다. 사준은 진우의 다리를 넓게 벌리고는 팽팽하게 발기해서 터질 것 같은 성기를 회음부에 대고 문질렀다.
“아, 흣.”
그대로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사준은 성기 기둥을 위아래로 흔들며 회음부만 자극했다. 잔뜩 젖은 성기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가 요란해지면서 흥분을 부추겼다. 아직 구멍을 풀지 않았기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아, 이사준, 흣, 빨리….”
“응, 여기도 좋죠?”
사준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물으면서 진우의 무릎을 붙잡고 허리를 흔들었다. 귀두가 음낭을 위로 밀어 올렸다가 성기 기둥이 회음부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오싹오싹했다. 조금 전 가슴만으로 사정한 게 무색하게 또 쌀 것만 같았다. 진우는 입술을 깨물며 사정하지 않도록 버텨 보려고 했지만 사준의 허리 짓이 점점 빨라져서 힘들었다.
“아, 으으읏.”
쾌감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눈앞이 하얗게 변한 순간 다리 사이가 끈적하게 젖어 들었다. 사준의 성기에서 흘러나온 정액은 진우의 성기에 흔적을 만들었고 진우가 쏟아낸 정액은 사준의 복부에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하아, 진짜, 이렇게 야해서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무슨….”
사준은 허리를 숙여 진우의 얼굴 바로 코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직 더 할 수 있죠?”
진우가 뭐라 대답하기 전에 사준이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려 유두를 입술로 빨아올렸다. 할짝할짝하면서 쪽쪽 빠는 것에 다시 쾌감이 몰려왔다. 유두를 자극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사준은 허리를 아래로 내려 성기도 비벼댔다. 정액이 잔뜩 묻은 성기는 사준이 주는 자극에 다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 그만, 자꾸 빨면, 읏….”
“젖꼭지로 느끼는 거 진짜 야해요.”
“흣, 이상해, 그만, 빨아…!”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이상해질 것 같았다. 이러다 나중에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정액을 줄줄 흘리는 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진우가 도리질 치며 말려 봤지만 사준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쯉쯉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빨아댔다. 음란한 소리와 함께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진짜 너무 좋아한다.”
중얼거림에 진우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자신도 몰랐던 성벽이 파헤쳐지는 것 같아 민망했다.
“그만, 해….”
“진짜 싫은 거 아니잖아.”
사준은 달래듯이 말하더니 큰 손으로 진우의 몸 여기저기를 매만지며 계속 가슴을 물고 빨고 핥아댔다. 혀로 깔짝이다가 이로 잘근잘근 깨물어댈 때마다 진우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였다. 가슴에서 올라온 쾌감에 눈앞이 벼락이라도 치는 것처럼 깜박였다.
“아, 흣, 으응, 싫어….”
과한 쾌감에 눈물까지 흘린 진우가 허리를 비틀었다. 진우는 더 버티기 어렵다는 듯 사준의 아래서 벗어나려고 몸을 자꾸만 위로 움직였다. 사준은 진우의 골반을 꽉 붙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그럼 다른 데 빨아도 돼요?”
사준이 입술을 떼고 묻자 진우가 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아니라면 빨 곳은 아래밖에 없었다.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유두를 빨리는 것보다는 성기가 나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인 순간 진우는 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성기를 입에 머금을 줄 알았는데 사준은 진우의 무릎 뒤로 손을 밀어 넣더니 그대로 다리를 밀어 올렸다. 몸이 거의 반쯤 접히자 엉덩이가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비부가 훤히 드러났고 사준은 꽉 다물어져 있는 주름 사이를 혀끝으로 파고들었다.
“으, 하으, 하지, 마…! 미쳤어, 흣….”
진우가 몸을 바르작거리며 허리를 뒤틀었지만 그럴수록 사준의 혀는 안쪽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아, 하지, 흣, 그만….”
형체를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혀가 입구를 파고들어서 몸 전체가 다 술렁였다. 손가락이나 성기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어서 어색했다. 견디기 힘든 오묘한 감각에 허리를 뒤로 빼려고 했지만 사준에게 붙잡힌 다리로는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았다.
“아, 이사준, 그만, 진짜….”
사준은 진우가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게 무릎 뒤쪽을 꽉 잡더니 그대로 혀를 움직였다.
“이, 사준, 뭐 하는 거, 흣.”
“왜요? 싫어? 여긴 좋아하는 거 같은데? 발름거리는 게 진짜 야해요.”
사준이 말할 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주름을 자극했다. 진우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주체하지 못한 채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말은커녕 입도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사준은 진우의 대답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볼일은 아래쪽에 있다는 듯이 엉덩이 사이 구멍을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댔다.
“아, 흐읏, 으응, 그만, 흣….”
진우는 혀가 들락일 때마다 아래가 녹아 없어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분명 빨리는 건 아래인데 뇌까지 곤죽이 되는 것 같았다. 사정해서 늘어졌던 성기 끝에서도 투명한 액이 질질 흐르고, 사준이 세게 빨아대서 구멍이 흐물흐물해졌다. 타액으로 흥건해질 정도로 실컷 빨아대던 사준은 어느새 진우의 성기를 쥐고 가볍게 흔들기까지 했다.
“아, 흐으, 으응….”
말캉거리는 혀가 입구를 자극하고 커다란 손이 성기를 잡고 흔들자 미칠 것 같았다.
“흣, 그만, 하으….”
“엉덩이 빨아 주니까 쌀 거 같아요?”
빨아 주기만 해도 좋냐는 의미에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부족했다. 너무 좋은데 사정까지 가기에는 자극이 얕은 곳에만 머물러서 부족했다.
“아, 더 안쪽, 하고 싶어….”
진우는 그만 괴롭히고 넣어달라는 의미로 중얼거렸다.
“응, 알겠어요, 조금 더 풀고. 그다음에 박아 줄 테니까.”
사준은 풀어진 입구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진우의 구멍을 벌리고는 그 벌어진 틈으로 혀까지 밀어 넣었다. 말캉한 혀는 입구를 자극했고 길고 곧은 손가락은 안쪽을 건드렸다. 손가락과 혀가 동시에 아래를 괴롭히자 만지지 않고 있음에도 팽팽하게 기립한 성기가 덜렁거렸다.
“아, 흐읏. 이사준, 아응….”
진우는 사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붙잡은 채 천장을 향해 교성이 섞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절정감이 밀려와 진우는 발가락을 꽉 말아쥐었다.
“으응, 또, 싸겠, 하으….”
진우가 몸에 바짝 힘을 준 채 몸을 움찔거리자 사준이 몸을 일으켰다. 잔뜩 빨리고 쑤셔진 아래에 가해지던 자극이 모두 사라지자 진우가 숨을 몰아쉬었다. 끝없이 밀려오던 자극이 사라지자 허전함에 몸이 들썩거렸다.
“빨리….”
조르듯이 재촉하자 사준은 부드럽게 풀어진 진우의 무릎 뒤를 팔뚝에 걸어 다리를 넓게 벌리고는 터질 것처럼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발름거리는 구멍 입구에 맞췄다.
“하아, 넣을게요.”
사준은 성기를 밀어 넣으며 경고하듯이 말했다.
“아, 하응….”
마침내 풀어진 구멍 사이를 굵직한 성기가 밀고 들어오자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졌다. 허리가 반쯤 위로 들리자 진우는 소파 가죽을 손톱으로 긁어댔다. 아래가 꽉 차오르고 내장이 다 위로 밀리는 것 같아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아, 흐으, 읏, 으응….”
사준이 성기를 꾸욱 밀어 넣고 허리를 가볍게 흔들자 몸속의 모든 장기가 다 진동했다. 진우는 다리를 바들거리면서 입을 벙긋거렸다.
“아, 바로 쌀, 거 같아, 흣….”
“얼마나 좋으면 바로 싸요?”
“네가 너무 풀어서, 그런, 하응…!”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진우의 성기 끝에서 정액이 튀어 올랐다. 몸이 거의 반으로 접혀 있던 탓에 성기 끝에서 흘러나온 액은 진우의 턱 끝까지 튀어 올랐다. 사준은 혀를 날름 내밀어 턱에 묻은 정액을 할짝대더니 고개를 아래로 내려 진우의 유두를 다시 입에 물었다.
“히윽, 거기, 하지, 마…! 나 지금, 싸서…. 아, 안 돼, 읏…!”
진우가 말리려고 했지만 사준은 유두를 다시 빨았고, 동시에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를 한껏 뒤로 뽑았다가 다시 안쪽으로 푹 처박자 고환이 진우의 엉덩이 사이를 때리면서 철썩철썩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준의 성기가 진우의 내벽을 푹푹 찍어 댈 때마다 진우의 성기 끝에서 끈적한 액이 퓻퓻 튀어 올랐다.
“아, 그만, 너무, 흣, 하응….”
“하아, 내가 찌를 때마다 싸는 거, 엄청 야해 보여서… 하아, 너무 좋아요.”
사준은 진우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허리를 흔들었다.
“아, 하아, 나도 벌써, 쌀 거 같아.”
진우는 촉촉해진 눈으로 사준을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사준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진우의 입술을 덮쳤다. 그 순간 아랫배가 꿀렁거렸다. 끈적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감각에 진우의 발등이 허공을 향해 곧게 펴지더니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몇 번째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사정이 또 이어졌다.
“아, 흡….”
눈동자에 고여있던 물기가 주르륵 떨어졌다. 격렬한 쾌감에 눈물샘도 고장나 버린 것 같았다. 사준은 진우가 흘린 물기를 모조리 핥아 마실 것처럼 얼굴을 할짝댔다. 그 순간 진우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자신을 덮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는… 안 키워도 될 거 같네.”
진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사준이 고개를 눈을 마주쳤다.
“그런 말 하는 거 보니까 아직 괜찮은 거죠?”
사준은 자신이 싸질러 놓은 것을 휘젓듯이 허리를 둥글게 돌리며 물었다.
“아냐, 힘들, 흣…!”
“그럼 그렇게 쳐다보질 말았어야지. 나 자지 또 터질 거 같아.”
도대체 뭘 어떻게 봤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에 진우는 억울함까지 밀려왔다.
“이번엔 짧게 할게요. 응? 한 번만.”
사준은 공수표를 날리며 허리를 슬금슬금 움직였다.
“안 돼, 흣, 이사준, 읏….”
“진우야, 진짜 안 돼?”
고막을 정확하게 강타하는 목소리에 진우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의 허락에 사준이 입술을 비볐다. 다정한 척 부르는 것에 속으면 안 되는데 또 홀랑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정액과 타액으로 젖어서 질퍽거리는 아래를 사준이 더 빠르게 들락거렸다. 아래를 딱 붙인 채 개처럼 움직이는 것을 버티지 못한 진우는 잘게 경련하다 축 늘어지고 말았다.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현실감각이 모호해진다 싶더니 그대로 암전이었다.
“아, 하아, 씹….”
거칠게 허리를 놀리다가 진우의 안에 또 한 번 사정한 사준은 늘어진 진우의 몸을 끌어안고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했다. 너무 심하게 했나 싶어 후회가 살짝 밀려왔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사준은 약간의 미안함을 담아 진우의 몸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움찔거리며 조이는 것에 입술을 깨물었다.
“하, 진짜… 누가 안 놔주는 건데.”
사준은 땀에 젖은 진우의 앞머리를 넘겨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꼭 저를 유혹하는 것만 같아 한숨이 나왔다.
* * *
진우의 몸을 꼼꼼하게 닦아주고 침대에 눕힌 뒤 사준은 그 옆에 누워 진우를 바라봤다. 최근 진우를 볼 때면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수도 있는 건가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아까도 그랬다. 양진우의 과거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가 의외로 여자들에게도 꽤나 인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괜히 생각하니 짜증 났다.
보고 있던 영화의 러브신이 남녀라는 것도 한몫한 것 같지만 그 순간 알 수 없는 질투심이 피어올라 양진우를 갖고 싶어졌다.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무리시키고 말았다. 양진우가 연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응석을 부리면 부리는 대로 받아주는 걸 알면서 몰아붙여 버리고 말았다. 좁은 소파에서 그랬으니 근육통에 시달릴 게 뻔한데, 그걸 알면서도….
“좋아해요.”
사준은 잠든 진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너무너무 좋다. 순간순간 흘러넘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고 어떻게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로 좋았다.
어제도 좋아했고 오늘도 좋아했다. 그러니 내일도 좋아할 것이었다.
2. 월요일
재택근무를 하면 월요병이 거의 없지만, 대신 휴일의 기쁨을 느끼는 것도 적었다. 그래서 어제가 일요일이었는지, 혹은 내일이 화요일인지를 달력에 적힌 일정을 보고 나서야 상기할 수 있었다. 상담이 주 업무이다 보니 재판을 나가는 것도 아니어서 더 그랬다. 의뢰인과 면담이 17일인 건 기억하지만 17일이 목요일인 건 달력을 봐야 알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할까.
진우는 머릿속으로 오늘 할 일을 대강 정리하면서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어낸 뒤 욕실 문을 열었다.
“소시지 몇 개 먹을래요?”
주방으로 걸어오는 진우를 향해 사준이 물었다.
“하나.”
사준은 진우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 돼요. 두 개 먹어요.”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혹시 세 개 먹는다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진우는 그럴 리 없지 않느냐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식탁에 앉았다.
“아침에는 잘 안 들어가.”
“아뇨, 양진우 씨는 저녁에도 잘 안 먹어요.”
사준은 소시지와 계란이 놓인 접시를 진우 앞에 놓아주고는 조리대 앞으로 걸어가 프라이팬 위로 계란을 깨트렸다. 진우는 턱을 괴고 사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거의 매일 아침 보게 되는 비슷한 모습은 어느새 일상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면 지루할 법한데, 어째서인지 아침을 준비하는 사준을 보는 건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무슨 생각 해요?”
어느새 준비를 끝낸 건지 사준은 제 앞에 접시를 놓고 식탁에 앉았다.
띵―.
사준은 토스터에서 튀어나온 식빵을 꺼내 능숙한 손길로 버터를 발라 진우의 앞으로 내밀었다. 빵을 받아든 진우는 제 몫의 시리얼에 우유를 붓는 사준을 보고는 식탁을 빙 둘러봤다.
우유를 많이 넣은 커피, 토스트와 소시지, 프라이에 토마토까지. 언제부턴가 사준이 차려주는 게 당연해진 아침은 진우의 취향과 사준의 취향이 적당히 섞인 모양새였다. 토마토와 시리얼은 사준의 취향, 토스트와 라테는 진우의 취향이었고, 계란프라이와 소시지는 둘의 교집합이었다.
“아침 차리는 거 안 귀찮아?”
진우가 빵 귀퉁이를 한 입 베어 물고 묻자 사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12첩 반상을 차리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귀찮아요?”
“아니, 그래도….”
12첩 반상을 차려야 귀찮은가. 그냥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다 귀찮고 그런 거지.
“귀찮지는 않은데 좀 많이 먹었으면 싶긴 하죠.”
“이렇게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거 자체가 드문 일인데? 그건 마찬가지지 않아?”
진우는 전에 같이 살던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에 둘 다 바빠서 아침은커녕 저녁도 집에서 먹는 날이 드물었다.
“아침 먹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그땐 그냥 너무 바빠서 그랬던 거지.”
“그래?”
“먹을 수 있으면 먹는 게 좋죠. 그리고 같이 먹는 건데 싫을 리가 없잖아요.”
사준은 진우의 정강이를 톡 건드리며 슬쩍 웃어 보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있고,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거 난 너무 좋은데.”
눈꼬리까지 접어가며 하는 말에 진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더니, 누가 한 말인지 딱이라니까요.”
사준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말하다가 입을 딱 다물었다.
“뭐야, 설마 나만 그런 거 아니죠?”
싱글싱글 웃던 사준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묻자 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싫을 리가. 당연히 좋았다. 이런 소소한 일상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늘 바랐고, 그게 이사준이라는 게 기뻤다.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하고 다 포기하려고 한 순간 찾아와 이렇게 가까이 있어 주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파랑새네, 파랑새.”
진우가 작게 중얼거리자 사준이 피식 웃었다.
“그럼 우리 개나 고양이 말고 새 키울까요?”
“음….”
“지난번에 개는 안 데려와도 될 거 같다고 했잖아요.”
“그건 더 생각해 보자.”
반려동물을 키우자는 얘기를 지난번부터 하고 있었지만, 아직 뭘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었다. 사실 급하게 정할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떤 동물이 됐든 어설픈 마음으로 데려오고 싶지 않다는 게 사준과 진우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래요. 좋을 대로 해요.”
진우의 뜻에 따르겠다는 듯 대답하던 사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샐쭉하게 웃었다.
“왜 그렇게 웃어?”
“지금 우리 대화 좀 신혼부부 대화 같지 않았어요?”
“…뭐?”
“양진우 씨, 여기.”
사준이 제 목덜미를 톡톡 치며 하는 말에 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제 사준이 하도 빨아대서 목덜미뿐만 아니라 온몸이 다 얼룩덜룩했다.
“그런 자국 달고 이런 대화 하니까 야하고 좋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그렇다고요. 뭘 데려와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그런 느낌?”
사준의 기약 없는 확신에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렇게 마구잡이로 날리는 공수표에 아직도 마음이 떨리다니, 역시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쓰인 게 분명하다.
“아, 맞다. 나 해 보고 싶은 거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하는 말에 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고 싶은 걸 참을 사람이 아닌데 새삼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조금 이상했다.
“…뭔데?”
“양진우 씨 자고 있을 때 덮쳐도 돼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덮쳐? 뭘? 섹스한다고? 자는 사이에? 그럼 눈을 뜨면 이사준이 안에 들어와 있을 거라는 말이야? 아니, 뭐, 그런 걸 이렇게 예고까지 하고 해? 뭘 얼마나 어떻게 하려고? 양심도 없나? 지난 주말에 기절할 때까지 했던 건 벌써 잊은 거야?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진우는 지난 주말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혹시 그때 기절한 뒤에도 더 하고 싶었는데 차마 그렇게 못했던 걸 이런 식으로 선전포고하는 건가? 자는 동안 덮치는 게 아니라 기절한 다음에도 계속하겠다는 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진우는 남은 빵을 세 번 만에 다 베어 물어서 입속으로 삼켜버렸다.
“안 돼요?”
“아니, 무슨, 그런 말을 이렇게 해?”
“갑자기 하면 당황할까 봐 그렇죠.”
지금도 충분히 당황스럽거든? 진우는 목구멍에 맴도는 말을 뱉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해도 되는 거죠?”
“…하지 말라고 하면?”
“그럼 안 해야죠. 미움받기 싫으니까.”
사준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양진우가 아는 이사준은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데 있어서 포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니까.
진우는 눈동자를 굴려 사준을 바라봤다. 말로는 싫으면 안 한다고 했으면서 시선에는 기대감과 함께 다정한 애정이 버무려져 있었다. 말은 안 하지만 끈질긴 시선을 보내는 게, 마치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커다란 대형견 같기도 했다.
“진우야?”
사준이 이름을 부르자 진우는 엷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준이 이런 식으로 조르면 마음이 약해진다. 원하는 걸 해줘야 할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결국 턱을 까딱, 아래로 움직였다. 그 작은 행동에 사준이 기분 좋게 미소 짓자 주변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언제 할지는 말 안 해 줄 거예요.”
“살살해, 살살….”
진우가 자포자기하듯 말하자 사준이 작게 키득거렸다.
“기분 좋은 것만 할게요.”
아…. 진우는 입술을 반쯤 벌렸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 말이 완전히 거짓말이 아닐 걸 알아서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이제 기대하는 건 사준이 아니라 자신이 될 게 뻔했다.
3. 화요일
톡, 토독.
진우는 얼굴 위로 떨어진 물방울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려 주는 비는 오랜만이었다. 하나둘 떨어지던 물방울은 금세 물줄기가 되어 추적추적 떨어졌다. 멈출 기미 없이 내리는 비에 진우는 콧등을 찡그렸다. 눈이라면 맞고 가겠지만 비는 얘기가 달랐다. 이대로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 전에 가까운 편의점으로 우산을 사러 가야겠다.
결론을 내린 진우가 빗속으로 발을 내민 순간 빵빵, 하는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도심에서 클랙슨 소리는 자주 들리는 소린데도 어쩐지 그 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아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자 익숙한 차가 서 있었다. 얼마 전에 사준이 산 검은색 SUV였다. 외국에 나왔을 때는 애국해야 하는 거라며 일부러 산 국산 차였다.
자신을 마중 나온 게 분명해서 진우는 웃으면서 차로 다가갔다. 조수석 문을 열자 역시나 반가운 얼굴의 사준이 싱긋 웃었다. 비가 내려서 날씨가 우중충한데도 사준이 있는 곳만 맑게 갠 것 같았다.
“어떻게 왔어?”
“비 오길래요. 우산 안 챙겼잖아요.”
“우산이야 하나 사면 되는데.”
“그런 건 당연히 핑계죠.”
사준은 진우가 안전띠 매는 걸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키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빨리 보고 싶어서 왔죠.”
무덤덤한 말에 심장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호소하며 요란하게 뛰었다. 사람 두근거리게 하는데 재주가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 보면 정말 천부적이다.
진우는 사준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지난주에 잘 때 덮치겠다고 선언은 했지만, 아직 시도한 적은 없었다. 도대체 언제 할 생각인지…. 언제 할지 알려 주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고, 물어보면 기다리고 있었냐고 놀릴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꺼내기도 뭐 했다.
사준은 한 손으로 핸들을 조작하면서 진우의 앞으로 손바닥을 쭉 펼쳐 내밀었다. 손을 잡아 달라는 신호에 손바닥을 겹쳐 올려놓자 사준이 깍지를 끼어 붙잡았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들어온 게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아 비싯비싯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와 이렇게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할 날이 오게 될 줄 몰랐다.
“좋아요?”
“싫을 거 같아?”
“와, 가만 보면 진짜 한마디를 안 져줘.”
사준이 못 이기겠다는 듯 앓는 소리를 하자 진우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사준은 창밖을 한번 보더니 진우를 바라봤다.
“비 오는 날에는 원래 파전에 막걸리 아니에요?”
진우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사준에게 붙잡힌 손을 꼬물거렸다.
“진짜 그게 먹고 싶은 거면 마트에서 재료 사 가자.”
“해 주게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진우의 대답에 사준은 마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마트에 들러서 사 온 부추를 진우가 다듬는 동안 사준은 막걸리를 냉장고에 넣었다.
“막걸리는 진짜 오랜만에 마시는 거 같아요.”
사준이 막걸리 라벨을 보면서 말하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예전에는 자주 마셨었는데.”
“예전… 언제요?”
“막걸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래서 이런 날 되면 꼭 마셨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이었지만 사준은 진우가 예전에 만났던 남자 중에 막걸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신도 만날 만큼 만나고 다녔는데 새삼 진우의 과거가 흘러나오자 막걸리를 쥐고 있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걸 보면 이제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을 사람이라는 걸 아는데도 싫었다.
이런 식으로 과거에 질투하는 치졸한 남자는 되고 싶지 않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이 진우를 좀 더 빨리 만나지 않은 것에 괜한 짜증이 밀려왔고, 그 짜증의 끝은 진우를 가볍게 만나다 버리려고 했던, 멍청한 생각을 했던 자신에게로 향했다.
사준은 냉장고 문을 닫고 부추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진우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잘게 키스하자 간지러운 감각이 몸에 퍼져 진우가 가볍게 몸을 웅크렸다.
“읏, 뭐 하는 거야. 칼 들고 있는데 위험하게….”
“진우야.”
사준은 진우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미한 열기를 띠고 있는 그 목소리에 진우의 척추가 뻣뻣하게 굳으며 허리가 곧추섰다.
“부추전 말고 다른 거부터 먹으면 안 되나?”
“…뭐?”
“부추가 정력에 좋은 거 알아?”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진우가 고개를 돌리자 코앞에 놓인 사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거 효과가 진짜 있는지 알아보려면 먹기 전에도 한번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진우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보자 사준이 아랫입술을 쪽 빨았다. 사준은 진우가 쥐고 있던 칼을 조심스럽게 빼서 내려놓고는 진우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나 배고픈데….”
“금방 끝낼게요.”
“거짓말인 거 같은데?”
“진짜예요.”
사준은 진우의 몸을 휙 돌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지퍼가 내려가고 아래가 허전해지기 무섭게 사준의 입술이 성기에 닿았다.
“이사준…!”
“조금만 할게.”
지난주에 들었던 자고 있어도 덮쳐도 되냐는 말만큼이나 황당한 말이었다. 시작하면 끝을 보려고 하면서 조금은 무슨…! 진우는 밀어내려고 했으나 사준이 더 빨랐다. 사준은 혀를 내밀어 진우의 귀두를 건드리더니 이내 뜨끈한 살덩이를 한입 가득 물어 당겼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몸의 중심에 몰리면서 허벅지가 가볍게 경련했다.
사준의 애무에 길든 몸은 몹시도 쉽게 반응했다. 성기가 움찔움찔 떨리면서 엉덩이 근육이 같이 조여들었다. 창밖을 두드리는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사준의 구음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잠깐, 너무 빨라….”
싱크대를 붙잡고 있던 진우의 손이 사준의 뒤통수를 붙잡으며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헤집었다. 커다란 입속으로 성기가 빨려 들어가는 감각은 정말로 잡아 먹히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무릎이 꺾여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아, 흣….”
사준은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진우의 요도구를 자극하다가 음낭을 손으로 쥐고 주물렀다. 정액을 짜내려는 것 같은 음탕한 손길에 허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아, 그만, 흣, 쌀, 거 같아….”
입에 싸는 것만큼은 안 하고 싶어서 진우가 사준의 머리를 밀어냈지만 사준은 봐주지 않았다. 볼을 홀쭉하게 해서 성기 기둥을 세게 빨며 압박을 가하자 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진우는 발등을 둥글게 말며 어떻게든 참아 보려 했지만 쾌감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읏, 하아….”
진우는 더 참지 못하고 목을 뒤로 젖히면서 정액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정하는 것과 동시에 나른한 탈력감이 밀려와 진우가 허리를 파르르 떨자 사준이 귀두를 쪽쪽 빨아댔다. 남아 있는 것까지 모두 짜내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사준을 밀어낼 힘도 없어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꿀꺽 소리와 함께 사준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사준을 멍한 눈으로 보던 진우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떠졌다.
“그걸 왜 먹어…!”
“처음 먹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사준이 손으로 입가를 닦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처음이고 두 번째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민망함에 손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는 진우의 바지와 속옷을 입혀주며 사준이 입을 열었다.
“비 오는 날 전이 왜 생각나는지 알아요?”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진우는 반쯤 얼이 빠져서 사준을 바라봤다.
“비 오는 소리랑 전 부치는 소리랑 비슷해서 그런 거래요.”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을 잘도 한다는 의미로 묻자 사준이 씩 웃었다.
“이제, 나는 비 오면 이게 생각날 거 같아요.”
다음 말이 예상돼서 진우는 사준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한발 늦었다.
“양진우 맛.”
태연한 얼굴로 하는 말에 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까 양진우 씨도 막걸리 보면 내 생각 했으면 좋겠네.”
“하…?”
진우는 헛숨을 터트리며 사준을 바라봤다. 아닌 게 아니라 앞으로 비 오는 날 막걸리, 하면 사준이 주방에서 제 정액을 먹었던 게 떠오를 것 같았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기억까지 독점하려고 할 줄이야…. 사준의 소유욕은 자신의 예상 범위를 훨씬 웃도는 것 같았다. 웃긴 건 그게 꼭 싫지만은 않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이사준의 흔적이 얼마나 많이 남게 될지 은근히 기대됐다. 진우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며 사준이 입술을 할짝였다.
“그렇게 기대하는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나머지는 저녁 먹고 할 거니까.”
“기대하긴 무슨….”
“난 기대되는데요? 부추 먹고 정력이 좋아지면 지금보다 더 많이 쌀 거 아니에요?”
“…….”
“엄청 배부르겠다.”
진우는 대꾸하는 대신 몸을 돌려 부추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아무래도 부추전이 아니라 김치전을 해야 할 것 같다.
4. 수요일
“어디 가?”
진우는 외출 준비하는 사준을 보며 물었다.
“아, 머리 자르러 갈까 해서요. 날도 더워졌고, 영상 따오라고 할지 모르니까요.”
언제 촬영해야 할지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무리 이런 시국이라고 해도 TV 뉴스에 나오는 기자가 덥수룩한 차림일 수는 없겠지.
“나도 머리 좀 자를까.”
진우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훑어 넘기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나랑 떨어지기 싫어요?”
“뭐?”
“그럼 같이 갈래요?”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 시키는 사준을 보며 진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건지.
* * *
「짧은 스타일도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어떠세요?」
「아뇨, 그냥 다듬어만 주세요.」
「그럴까요? 그럼 끝에만 살짝 다듬고 앞머리는 이런 식으로 세팅해 드릴까요?」
「네.」
사준은 거울을 통해 미용사와 얘기를 나누는 진우를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란히 앉았다면 말을 걸어 방해라도 했을 텐데 하필 자리 배치도 등을 지고 앉아서 말을 걸기도 애매했다. 왜 잊고 있었을까. 양진우가 어디를 가도 호감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오는 게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같이 오는 게 나은 건가? 혼자 왔다면 더 했을지도 모르니까. 아까부터 오락가락하는 생각 때문에 사준은 자신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진 지도 모른 채 거울을 노려봤다. 그 바람에 사준의 담당 미용사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연신 두리번거려야 했다.
「커트 시작하겠습니다.」
「…네.」
사준은 불퉁한 얼굴로 대답하고 여전히 희희낙락 웃고 있는 진우와 진우를 담당하는 미용사를 눈에서 레이저라도 뽑아낼 것 같은 시선으로 응시했다.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우와 사준의 커트가 거의 동시에 끝났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사준은 가운을 벗기 무섭게 카운터 앞으로 성큼 걸어가 진우의 몫까지 계산하고 입구에 서서 기다렸다. 조금 뒤 진우가 생긋 웃는 걸 마지막으로 미용사에게 인사하고 사준의 앞으로 걸어왔다.
“머리 깔끔하….”
진우가 머리를 칭찬하는데 사준이 허리를 한쪽 팔로 감아 당겼다.
“예쁘네요.”
사준은 진우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주고는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웃었다. 누가 봐도 의미심장할 사이임을 짐작하게 하는 행동에 진우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사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요.”
사준은 영역을 주장하는 짐승처럼 진우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쥐고는 미용실 문을 밀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오면서 어깨너머로 진우를 담당했던 미용사를 힐긋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는 의미였다.
미용실을 빠져나온 사준은 가게 앞에 세워 놓은 차에 진우를 태우고 빠르게 운전석에 올랐다. 탕, 차 문을 닫기 무섭게 사준은 진우의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입술을 덮치듯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
“잠깐, 왜, 이러는 거….”
사준은 진우가 흘리는 말을 입술로 삼켜버리며 혀를 움직였다. 치열을 더듬고 입천장을 자극하며 혀를 몇 번 빨다가 천천히 입술을 떨어트렸다.
“하아….”
사준은 진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숨을 골랐다. 자신이 이렇게나 여유가 없는 사람인 줄 몰랐다. 사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유가 생겨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 날이 갈수록 여유가 더 없어진다. 질투는 점점 심해지고 소유욕도 강해진다. 이러다 진우를 납치하고 싶었던 김유민의 마음을 이해하는 날이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사준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진우의 얼굴을 힐끔 봤다. 미용실에 다녀와서 한층 더 깔끔해진 스타일 때문에 오늘따라 뒤에서 후광이라도 비추는 것 같이 빛이 난다. 미용실에 들렀다가 저녁에 먹을 걸 사기 위해 마트에 가기로 했는데, 이 상태로 마트에 가면 전부터 진우에게 호감을 보이던 캐셔가 오늘이야말로 작정하고 연락처라도 건네는 게 아닐까. 사준은 진우의 목덜미에 입술을 문지르다 잘근잘근 깨물더니 팔을 들어 올려 세팅된 머리칼을 엉망으로 헝클였다.
“이사준…?”
진우가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자 사준이 씩 웃었다. 미용실에서 갓 나왔을 때보다 흐트러진 머리를 보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내 거잖아요.”
사준은 진우의 다리 사이를 손바닥으로 더듬다가 은근슬쩍 고환을 눌렀다.
“읏, 뭐 하는 거야?”
“하고 싶어졌어요.”
“갑자기 왜 이러는데?”
“갑자기 아니고 나는 틈만 나면 하고 싶은데.”
사준은 진우의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바지 위로 성기를 더듬다가 꽉 움켜잡았다. 그러자 진우가 허리를 비틀었다.
“잠깐, 왜 여기서, 이러는 건데…?”
“아까 말했잖아요.”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말하는 것에 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준의 손목을 밀어냈다.
“당장 손 떼.”
“끝까지는 안 할게요. 살짝만 하면 안 돼요?”
카섹스의 로망은 남자라면 한 번쯤 가지고 있을 법한 일이지만, 남의 가게 앞에서 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사준이 이러는 게 감정이 동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화풀이처럼 느껴져서 더 싫었다.
“하지 마.”
“싫어요.”
사준은 진우의 말을 안 듣고 몸을 더 바싹 밀어붙였다.
“내가 가리고 있어서 어차피 밖에선 안 보일 거예요.”
사준은 조금도 안심되지 않을 말을 중얼거리더니 진우의 바지 버클을 풀려고 했다. 진우는 사준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며 밀어냈다.
“하지 마,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싫어…!”
진우가 크게 소리치자 사준은 정신이 번쩍 든 사람처럼 손을 멈추고 몸을 살짝 떨어트렸다.
“왜 이러는지 말을 하라고.”
미용실에 있을 때부터 계속 불만이 가득했다는 건 진우도 알고 있었다. 거울 너머로 보이는 사준의 표정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다짜고짜 이러니 화도 나고 답답했다. 진우는 엉망이 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사준을 바라봤다.
“연애하는 건데, 이런 식은 싫으니까….”
스스로 말해놓고도 민망하다는 듯 진우는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뭐가 불만인지 말을 해주면….”
사준은 오물거리는 진우의 입술을 빤히 보다가 아랫입술을 물어 당겨 쪽 소리가 나게 키스했다. 순간 진우가 귀여워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양진우 씨 때문 아니에요.”
“……?”
“멍청했던 나 때문이에요.”
“뭐?”
“놀라게 해서 미안해, 진우야.”
사준은 진우의 이마와 뺨에 키스하고는 콧등을 비벼왔다.
“이사준….”
“아까 미용사가 여기도 만지고 여기도 만졌죠?”
사준은 진우의 귓가와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미용사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처럼 굴었다. 그 손길을 따라 진우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날카로운 고양이를 길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준의 가슴속이 어떤 감정으로 넘실거렸다.
“하…. 의부증 걸린 와이프의 마음을 알 거 같아요.”
“뭐?”
“내 남자가 이렇게 멋있으면 당연히 세상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지.”
진우는 어이가 없어 더 말을 못 했다.
“왜 진작 못 알아챘는지 모르겠어요.”
끝에 가서는 거의 자학 비슷한 말을 하는 것에 진우는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건지. 진우의 담당 미용사는 시종일관 친절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였고, 진짜 관심 있어 보였던 건 사준의 미용사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사준을 담당하고 싶어서 눈을 반짝거렸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사준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해져서 별말도 못 붙인 거 같지만…. 이 얘기는 해 주지 말아야겠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됐네.”
진우가 평소의 사준을 흉내 내며 뻔뻔하게 말을 하자 사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요,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네요.”
사준은 진우의 뺨을 슬쩍 쓸어보고는 안전띠를 매주고 자신도 운전할 준비를 했다.
“그래도 오늘 너무 예쁘니까 바로 집으로 가요. 저녁은 배달시키죠.”
“그래.”
진우의 대답에 안심한 것처럼 사준이 풀어진 얼굴로 운전에 집중했다.
골목을 빠져나온 차가 도로에 들어섰을 때였다.
“근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대뜸 흘러나온 말에 사준이 고개를 돌려 진우를 바라봤다.
“네?”
“나 네 거잖아.”
이어진 말에 사준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아….”
사준은 순간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행복하면 내일 죽는 게 아닐까?
“왜 그런 얼굴이야? 네가 그렇게 말해놓고.”
진우가 틀린 말을 했냐는 듯이 굴어서 사준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운전 중만 아니었다면 키스했을 거예요.”
사람이 어떻게 이래….
사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5. 목요일
“응, 잘 지내. 너는? 고양이? 너 동물 안 좋아하지 않았어?”
진우는 맥주 캔 탭을 밀어 올리는 사준을 바라보며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 같이 산다고? 축하해야 하는 거지? 아니, 하 기자님을 말려야 하는 건가?”
하 기자 얘기에 사준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통화 상대는 태준인데 갑자기 하 기자 얘기를 하더니 축하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나? 나는 뭐….”
진우는 사준을 힐끔 보고는 눈을 크게 굴렸다. 통화 음량을 작게 해 놔서 그러는 건지 사준에게는 태준의 목소리가 안 들려서 답답했다. 사준은 팔을 쭉 뻗어서 진우의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잘 지내시죠? 이사준입니다.”
― 뭐야, 네가 왜 같이 있어?
“같이 사는 사이니까요. 다른 것도 더 말씀드릴까요?”
― 하…?
태준의 기가 막혀 하는 반응과 진우의 당황한 얼굴이 겹쳐졌다.
‘뭐야, 아직 아무 말도 안 한 건가?’
“근데 거기 지금 아침 아니에요? 안 바쁘세요? 얼른 일하세요. 저희는 이제 잘 시간이어서요. 나중에 또 연락드릴게요.”
사준은 끝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고 진우에게 핸드폰을 돌려줬다.
“팀장님한테 우리 같이 산다고 말 안 했었어요?”
“말하면 이것저것 물을 게 뻔해서….”
“대답하면 되죠. 어차피 내가 뉴욕 보내 달라고 억지 부렸을 때부터 팀장님은 대충 예상했을 건데.”
“…그랬겠네.”
진우는 사준이 오픈해 놓은 맥주를 꼴깍꼴깍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맥주 한잔하자는 말에 감자튀김과 함께 야식을 먹고 있었는데 태준에게 전화가 왔다.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이는 전염병 때문에 안부 차 한 연락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으로 이어졌고 그 바람에 통화가 좀 길어졌다. 그동안 사준은 진우의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뭐, 결국 못 참고 전화를 뺏어가 버리긴 했지만.
“설마… 언제 헤어질지 모르니까 말을 말자, 이런 생각 때문에 팀장님한테 말 안 한 건 아니죠?”
사준의 질문에 진우가 놀란 눈을 했다.
“그런 거 아냐. 말할 타이밍을 못 잡았던 거지. 그런 생각 안 했어.”
혹시라도 오해하면 안 된다 싶어 진우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준은 진우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게 확실했고, 쓸데없는 의심으로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팀장님 고양이 키운대요?”
“길냥이 기르기 시작했다는데, 하 기자가 키우자고 했겠지.”
“하 기자? 아, 그러고 보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사준이 감자튀김을 하나 입에 넣으며 물었다.
“뭐?”
“하 기자랑 축하한다는 그거요.”
“아, 둘이 같이 산다고….”
“둘이 왜요? 고양이 때문에? 근데 같이 살 정도로 친했나?”
사준의 말에 진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모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사준은 둘이 왜 같이 살게 된 건지 이유를 아느냐는 얼굴로 진우를 바라봤고, 진우는 어디서부터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사준을 바라봤다. 짧은 정적이 흐르는 사이 사준의 얼굴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야, 설마, 둘이 그런….”
다행히도 사준은 진우가 말해주지 않아도 두 사람의 동거 이유를 깨달은 듯했다.
“그걸 몰랐다는 게 더 놀라운데, 나는.”
진우의 말에 사준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빈 캔을 손으로 꽉 쥐었다. 우지직 소리를 내며 캔이 구겨졌다.
“도대체 언제부터요?”
“글쎄, 아마 마음은 처음부터 있었던 거 같은데, 둘 사이 일은 나도 잘 몰라. 장태준이 시시콜콜 얘기하는 성격도 아니고.”
진우는 연애를 하면 태준에게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편이지만 태준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연애한다는 거 자체가 하 기자가 처음이었다. 사준은 한국에 있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을 곰곰이 떠올려 봤다. 신입치고는 팀장이 많이 신경 쓰는 기색이 있었지만 설마 둘이 그런 사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자신이 눈치를 못 챘으니 팀원들도 눈치를 못 챘을 거다. 기껏해야 편애한다는 생각이나 좀 했겠지, 설마 둘이 사내 연애라는 거창한 걸 하고 있을 줄이야.
“근데 그럼… 양 변호사님은 처음에 나한테 친구 애인한테 관심 있다고 뻥 친 거예요?”
“…….”
다 지나서 완전히 잊고 있던 얘기를 꺼낸 것에 진우가 당황해서 눈을 깜박였다.
“아니, 그게….”
“완전 나쁜 사람이네?”
사준이 진우의 뺨을 집게손가락으로 주물럭거리면서 말했다.
“그런 게 아니고….”
“뭐가 그런 게 아닌데요? 그런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나 별로였어요?”
사준은 진우의 어깨를 가볍게 밀어 바닥에 깔린 러그 위로 눕히더니 얼굴 옆에 팔을 짚으며 몸을 겹쳤다.
“이 자세는 갑자기 뭔데?”
“나쁜 짓 했으니까 혼내주려고요.”
“나쁜 짓은 나만 했어?”
“변호사님 일사부재리 몰라요? 나는 잘못한 거로 이미 많이 혼났고 많이 빌었잖아요. 그리고 이제 다시는 안 그럴 거니까.”
사준은 고개를 숙여 콧등을 비비며 말했다. 애교부리는 강아지 같은 행동에 진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도 고양이 키울까?”
진우의 질문에 사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따라 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개는 있으니까.”
“뭐요?”
사준이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진우의 이마에 이마를 콩콩 부딪쳤다.
“지금 나한테 개 같다고 욕한 거죠?”
진우는 모르는 척하며 눈동자를 크게 굴렸다.
“진짜 혼나야겠네.”
“이건 혼내는 자세가 아니지 않아?”
진우의 물음에 사준이 고개를 살짝 비틀어 입술을 가까이했다.
“그럼 속은 나한테 상을 주는 거라고 해요.”
“속아?”
“처음에 하 기자한테 관심 있다고 거짓말한 거 말이에요.”
사준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속지도 않았으면서….”
“속았다 치고요.”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진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사준의 목에 팔을 감았다.
“사준아.”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애정 표현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서로의 입술 위치를 확인하는 것처럼 시작한 키스는, 곧 서로의 입술을 먹을 것처럼 뜨거운 키스로 바뀌었다. 말캉거리는 혀끝이 농염하게 얽히면서 마주 닿은 아래가 달아올랐다. 진우는 밀착한 하반신을 비비면서 달아오른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섹스라면 질릴 정도로 많이 해 본 것 같은데, 사준과 하는 섹스는 매번 느낌이 달랐다. 단순히 육체의 욕구를 채우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마주 닿은 심장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그건 정말이지 끝내주는 make love였다.
몇 시간 뒤 하 기자는 사준에게 문자 하나를 받았다.
[신혼여행은 뉴욕으로 와]
6. 금요일
“다 끝났어?”
사준이 노트북을 덮는 소리에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네.”
“피곤하지 않아?”
“아뇨, 괜찮은데요.”
늦은 시간까지 일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걸까 싶어 사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차 바뀐 상대랑 일하는 거 좀 피곤할 거 같아서.”
진우의 말에 사준은 턱을 매만졌다. 딱히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서 의식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진우는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아뇨, 괜찮아요.”
“그래도 한국에 있었으면….”
“그랬으면 이렇게 같이 있지를 못했겠죠.”
사준은 소파에 앉아 있는 진우의 옆을 파고들어 허리를 끌어안더니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말했다.
“그랬으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되는 말이었다.
“이 기자님.”
사준에게 기대 있던 진우가 조용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 호칭 왠지 오랜만인 거 같네요.”
“야동 볼래요?”
“……?”
사준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피어올랐다. 야동이라면 게이 야동을 말하는 걸까? 그걸 갑자기 왜? 섹스하자는 말을 이렇게 하는 건가? 아니면 우리가 하는 걸 찍어서 같이 보자는 건가? 그런 거면 너무 야하잖아. 사준의 망상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몇 달 전에 잘 때 덮치겠다고 자신이 선언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야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왜요?”
“이 기자님은 나한테 잘 때 덮친다는 말도 했잖아.”
“아….”
“그래놓고 하지도 않고.”
“기회, 보고 있었거든요…?”
“언제까지 볼 건데?”
“아니, 근데 그게 왜 이걸로 이어지는 건데요?”
“그냥… 전에 영화에서 야한 장면 보면서 흥분한 거 같아서. 야동 보면 어떻게 흥분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에 사준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나는 이쪽이 더 흥분되는데.”
사준은 진우의 셔츠 속으로 손을 밀어 넣더니 유두를 슬쩍 건드리고 가슴팍을 더듬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한번 쓸어보자 괜히 자신도 떨렸다. 품에 안고 있는 진우의 체온이 상승하는 게 전해졌다. 매번 만질 때마다 질리지도 않고 좋다고 느끼는 거 보면 중증 아닌가?
사준은 자세를 바꿔 진우를 소파에 밀어 눕히더니 허리 위에 올라탔다. 당황한 진우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사준이 진우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슬쩍 밀었다. 소파 쿠션이 푹 꺼지면서 사준이 사줬던 곰 인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만있어요.”
“…….”
“내가 흥분하는 거 보고 싶다면서요.”
사준은 진우의 배 위에 걸터앉아 바지춤에서 성기를 끄집어내더니 보란 듯이 훑어 올렸다. 흉흉한 성기가 단박에 형체를 갖추었다. 사준은 한 손으로는 성기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진우의 셔츠를 목 아래까지 밀어 올렸다. 깨끗한 피부 위로 붉어진 유두가 톡 튀어나온 게 선정적이었다.
“여기, 어쩐지 처음보다 좀 커진 거 같아. 색도 진해지고.”
사준은 진우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읏.”
자극에 놀란 진우가 몸을 움츠렸다. 유두를 눌린 것뿐인데 스위치라도 눌린 것처럼 진우의 아래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이다음에 벌어질 일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반응이었다. 사준은 탐욕스러운 손길로 진우의 상체를 매만지다가 야살스럽게 웃더니 제 성기를 꽉 움켜쥐었다.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건데 진우를 보면서 성기를 만져대니 절로 흥분이 몰려왔다.
진우는 자신의 몸을 샅샅이 핥는듯한 시선에 꼼짝 못 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눈동자를 빙글빙글 굴리다가 천장을 향해 옅은 숨을 뱉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숨이 가빠와서 힘들었다.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어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 찰나, 사준의 목소리가 귀에 달라붙었다.
“나 봐요.”
붙잡아 당기는 목소리에 눈동자를 위로 굴리자 사준이 뜨거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정말이었다. 사준의 시선을 만질 수 있다면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뜨거운 시선이었다. 목울대가 꿀렁일 정도로 크게 마른침을 삼키자 사준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쿠퍼액으로 젖은 성기가 번들거리면서 질척질척 젖은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손으로 굵은 흉기를 쥐고 앞뒤로 움직이자 귀두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에 삽입에 대한 욕구가 넘실거렸다. 진우는 제 바지 속도 끈적해지는 걸 느끼며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사준은 진우의 유두를 만지작거리며 손을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제 아래 깔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알만 빙빙 굴려대는 게 뭐라고, 미치도록 야해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죄다 발라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흥분이 가까워진 듯 사준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삽입한 것도 아닌데 제 위에서 허리를 들썩이는 사준은 마치 발정기를 맞이해 주인의 몸에 마운팅하는 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도덕적인 상상이 몸에 불을 지폈다.
“후우, 진우야….”
사준은 탁한 음성을 흘리더니 고개를 숙여 진우의 유두를 입술로 머금었다. 혀끝으로 톡톡 건드리다가 입술 전체로 감싸 쪽쪽 소리가 나도록 세게 빨자 진우의 허리가 절로 들썩였다.
“하지, 흣, 그만….”
허리를 가볍게 튕기던 진우가 사준의 머리를 밀어냈다. 이러다가 언젠가처럼 유두로 느끼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만 같았다.
“왜요, 내가 흥분하는 거 보고 싶다며.”
그렇게 말한 건 맞지만 그게 자신의 배 위에서는 아니었다.
“하아, 진짜 존나 맛있어 보인다, 진우야.”
일부러 저속하게 말한 사준은 보란 듯이 성기를 흔들었다. 탁탁탁, 일정한 박자를 띠며 흔들리는 살덩이가 음탕했다. 진우는 차마 그냥 더 볼 수 없다는 듯 사준의 뺨을 감싸 제 쪽으로 잡아당겨 사준의 입술 사이로 혀끝을 밀어 넣었다. 미끄러지듯 파고든 혀가 농염하게 얽혀 사준을 자극하자 이미 터질 것처럼 발기한 성기가 부르르 흔들렸다.
손으로 움켜쥐어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흘러나오기 시작한 정액을 막을 수 없었다. 왈칵왈칵 쏟아진 정액은 진우의 복부에 마킹이라도 하는 것처럼 길게 흔적을 남겼다. 사준은 당황했다. 이렇게 쌀 생각은 아니었는데 설마하니 섹스가 아니라 키스로 쌀 줄이야….
“하아… 강아지가 좋겠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깊게 이어지던 입술이 떨어진 틈새로 진우가 속삭였다. 사준은 멍한 눈으로 진우를 바라보다 이내 말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미 큰 개는 있으니까 작은 강아지로.”
진지한 얼굴로 흘린 진우의 농담에 사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큰 개한테 오늘 한번 물려 볼래요?”
“무는 건 내가 더 잘하지 않나?”
야릇함이 감도는 말에 사준은 완전히 졌다는 얼굴로 웃음을 터트리더니 진우의 엉덩이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럼 물어봐요.”
사준은 진우를 데리고 침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진우가 위아래로 실컷 물 수 있게 제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 * *
사준은 늘어진 진우의 등줄기를 따라 남겨진 키스 마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머리를 매만졌다. 진우의 유혹으로 시작한 한낮의 섹스는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중간에 힘들다고 울기도 했지만 사준은 먼저 유혹했으니 책임지라는 억지를 부리며 진우를 몰아붙였다. 전에 소파에서 기절시킨 뒤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이사준의 이성은 실보다 가는 건지 툭하면 툭툭 끊어졌다.
“진우야, 뭐 해 줄까?”
지금이라면 뭐든 해 줄 수 있다는 듯 묻자 진우는 베개에서 얼굴을 돌려 사준을 바라봤다.
“물 마시고 싶어.”
진우가 입술을 달싹이는 것도 힘들다는 듯 작게 대답했다. 사준은 얼른 생수를 한 병 갖고 와 뚜껑을 열어 진우에게 내밀었다. 진우는 사준이 내민 생수를 받아 들어 꼴깍꼴깍 넘겼다.
물을 마시는 진우를 바라보며 사준은 입술을 할짝였다.
“마실래?”
진우가 반쯤 남은 생수병을 내밀었다.
“아니.”
사준은 진우가 건네준 생수병을 그대로 협탁 위에 내려놓고 옆에 누워 진우를 꼭 끌어안았다.
“양진우 씨는 나한테 너무 물러요.”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
“진짜 물러터졌다고요.”
약간의 억지 정도는 우습게 들어주는 걸 보면 정말이지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지금 시비 거는 거?”
진우가 미간을 찡그린 채 묻자 사준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진짜 잘해줄 거니까, 계속 내 옆에 있어요.”
진우는 사준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살풋 웃었다.
“그래야겠네.”
“네?”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봐야 하니까 계속 옆에 있는다고요.”
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우를 꼭 끌어안았다.
“좀 자요. 일어나면 밥 먹게.”
7. 토요일
반짝, 눈을 뜨기 무섭게 사준은 옆에 누워있는 진우의 얼굴을 확인했다. 쌔근거리는 고른 숨을 내쉬는 진우의 얼굴은 평온했다. 나쁜 꿈을 꾸지 않는 게 분명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준은 손가락을 뻗어 진우의 얼굴 윤곽을 더듬었다.
반듯한 이마를 시작으로 오뚝한 콧대와 선이 예쁜 입술을 천천히 만지던 사준은 눈을 슬쩍 굴려 시계를 바라봤다. 오늘은 전부터 벼르고 있던 반려동물을 데리러 가기 위해 유기견 분양센터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강아지를 데려오면 분명 한동안 거기에 정신 팔릴 테니까, 오늘은 이미 한참 전에 선언했던 일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사준은 이불 속에서 몸을 움직여 진우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주물러 보고 바지와 속옷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으음….”
잠에서 깨는 듯한 소리에 사준이 손을 멈추자 진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른 숨소리를 냈다. 그 숨소리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사준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바지와 속옷을 아래로 벗겨 내리자 진우가 사준의 품속으로 더 파고들 듯 움직여 팔로 허리를 감아 당겼다.
“…오늘, 이야?”
우물거리면서 눈도 뜨지 않은 채 묻는 말에 사준은 놀란 눈을 했다가 엷은 웃음을 터트렸다.
“응, 오늘이야.”
사준의 대답에 진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깼으니까 실패네.”
진우의 귓불을 매만지며 사준이 말하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자는 척해줄게.”
인심 쓴다는 듯한 말에 사준은 진우를 똑바로 눕히고 위로 올라가 목덜미를 깨물었다.
“자꾸 이렇게 봐주면 나중에 곤란해질걸.”
사실이었다. 이렇게 뭐든 해도 된다는 식으로 나오면 자신도 뭘 더 요구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진우는 슬며시 눈을 떠 사준의 목에 팔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너는.”
들이치는 햇살에 눈을 뜨는 게 불편한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웃어 보이자 사준은 완전히 졌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사준은 다시 눈을 감은 진우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살며시 끌어안으며 몸을 붙였다.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아침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