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30화 (30/236)

< -- 솔로들의 염장을 제대로 질러주마 -- >

그날 이후 환타지아에서는 더 이상 병태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병태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병태와 나를 게이커플이라고 했던 소문들도 점점 사라져 갔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순전히 내 손가락의 실수로 인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환타지아의 단축번호를 누른다는 것이 그만 그 아래 저장되어 있던 다음 단축번호를 눌러버렸다.

"저 영일입니다."

[..........]

"여보세요?"

[말해 듣고 있어.]/29 쪽30

'힉'누구야? 넌 누구냐? 난 도대체 누구에게 전화를 한 것이냐? 환타지아에 여자가 있을 리도 없는데...

"그러니까"

[설마 난지 모르고 전화 한 거야?]'이익'설마 지란희.. 나는 폰을 귀에서 떼고 번호를 확인했다.

"당연히 알고 전화를 한 거야. 네가 받을 줄 몰랐을 뿐이지."

[그래? 지난번에 그런 일이 있어서 내가 널 좀 오해했었어]

"괜찮아 다 지난일인데 뭘."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그런데 왜 전화했어?]

'그러게 내가 왜 전화를 했을까?'

그저 손가락이 잠시 미쳤던가 봐...

"그게 혹시 주말에 시간 있냐?"

'와우'나의 순발력이란정말 급조된 말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가장 보편적인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이번 주말은 안 될 것 같고 다음 주말은... 괜찮을 것 같아]

"그래? 그럼 그때 한번 만나자."

[그래 그럼 그때 연락해]

"알았어. 이만 끊을게."

전화를 끊고 나는 잠시 가만히 그대로 멈춰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다니... 내가 어제 돼지꿈을 꾸었었나?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환타지아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번주는 중간고사가 있어서 출근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전하고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학교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곧 강의가 있을 강의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란희를 발견했다. 여자동기와 이야기를 하며 걸어오고 있던 란희가 나를 발견하고는 동기에게 뭐라 말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찍 왔네."

"어쩌다보니 너는 나보다 더 일찍 온 것 같은데."

"나는 애들이 기능경기대회 준비하는 거 좀 도와달라고 해서."

"시험기간인데도 대회준비를 하나봐."

"응 큰 대회니까."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저기 영일아 나 이번 주도 시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이번 주에 보면 되겠네."

복도 건너편에서 란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먼저 가봐야겠다."

"나중에 전화할게 가봐."

란희는 나한테 손을 흔들고는 자신을 부르는 친구에게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란희가 내 여친이 되고 싶다는 게 확실한 거겠지?'

이번 주 주말이면 시험도 끝날 테고... 분위기 좋은 곳으로 가서 확.... 흐흐흐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강의실로 들어섰고 강의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던 동기 녀석이 내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반대쪽 벽에 붙은 채 내 옆을 지나갔다.

'왜?'

여자친구 생길 사람 처음 보냐? 그럼 이제 나도 쏠로 탈출인가? 아 얼른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중간고사는 이제 시작이었다. 1학기 때 멋모르고 겪었던 중간고사에 비하면 두 번째라 익숙해졌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험이라는 것은 결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일들 중 하나인 것 같다.

공부를 했건 안했건 시험이 시작되니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인데 막상 손에 든 볼펜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아악'이럴 줄 알았으면 책 한번이라도 제대로 볼 걸... 아무리 후회를 해봐도 이미 시험은 진행 중... '엥'저게 답인가? 분명 미용학개론 시험인데... 답안을 열심히 쓰고 있는 옆에 동기 녀석 답안지를 훔쳐보니 국기에 대한 맹세부터 시작해서 애국가가 4절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난 뭐냐?'

나도 할 수 없이 생각나는 대로 한 자라도 적기 위해 볼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는데 웬걸 애국가가 후렴구절만 생각이 난다.

나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 걸까? 어쨌든 무사히 첫 번째 시험이 끝나고 나서 한 숨 돌리고 있는데 란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에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란희를 뒤따라 나가서 란희에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머"

"뭘 그렇게 놀라냐? 어디 가는 중이야?"

"그냥 커피 한잔 마시려고."

"그럼 날 불렀어야지 혼자 가냐?"

"너 공부한다고 바쁜 줄 알았지?"

'어딜 봐서'도대체 내가 어딜 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단 말이냐? 사실 첫 시험을 칠 때만 해도 열심히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부풀어 올랐었고 1학기 때는 나름 학구파를 자처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하지만 동기들 중엔 미용고를 졸업해서 기본적인 미용에 대한 것은 책을 안 봐도 빠삭한 녀석들이 다수였고 거기다 필기 시험뿐만 아니라 실기시험까지 보는 과 특성상 내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렇게 되다보니 나는 시험에 임하던 자세가 장학금을 노리자에서 F만 띄우지 말자로 바꿔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공부도 대강 흉내만 내고 있는 상태였다.

오히려 지금 일하고 있는 환타지아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목표가 정해져 있으니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들만 충족하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사실 제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제사보다는 오히려 젯밥에 더 관심이 가고 있으니.... 지금 현재는 시험보다는 란희와 어떻게 하면 더 진도를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란희는 복도 끝에 있는 자판기로 다가갔다.

"따뜻한 게 좋아? 시원한 게 좋아?"

"시원한 걸 좋아하긴 하는데 이 자판기는 따뜻한 것만 나오잖아."

"잠시만 기다려봐"

나는 란희를 복도 끝에 잠시 세워두고 얼른 한 층을 내려가서 매점으로 가서 캔커피를 두 개 사서 돌아왔다.

"자 마셔."

"고마워"

나는 사가지고 온 캔커피 하나를 캔뚜껑을 따서 란희에게 내밀었다. 두 손으로 캔커피를 들고는 가만히 커피를 마시는 란희를 바라보며 나도 캔커피 뚜껑을 따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란희를 바라보니 윗입술에 커피가 한방울 묻어 있었고 나는 란희에게로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봐."

"왜?"

내가 윗입술로 손을 가져가자 흠칫 놀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려는 란희를 제지하며 윗입술에 묻은 커피 한방울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닦아내었다.

"커피 묻었어."

"응 그래 고마워."

내가 커피가 묻은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빨아 먹자 놀란 란희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렸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순진하긴'이 정도로 얼굴이 빨개지면 더 진도가 나가면 어쩔래? 그럼 얘 처녀인거 아니야? 와우... 생각만으로도 온 몸이 불끈거리며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캔커피를 다 마시고 란희와 나는 강의실로 돌아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나는 한동안 란희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환타지아에서 발가벗고 빨아달라고 하는 여자들만 보다가 입술에 손이 닿았다고 얼굴 붉히는 란희를 보니 왠지 짜릿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말이 빨리 와야 하는데... 나는 두 번째 시험에도 애국가의 후렴구절만 반복해서 적고 있어야만 했다.

길고도 길었던 시험이 끝이 났다. 란희와 나는 아직은 공식적으로 사귀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 행동을 조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번 주말인 내일 모레를 기점으로 해서 공식 커플로 발전하게 되겠지만 아직은 서로 탐색을 하는 중이었다. 그게 참 미묘한 순간인 것 같았다.

사귄다고 하기엔 멀고 그렇다고 사귀지 않는다고 하기엔 아주 가까운, 하지만 란희와 나는 우선은 같이 다니지 않았다. 물론 같은 과에 동기이다 보니 대부분 같은 강의실에서 있게 되었지만 일부러 둘이 같이 앉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아직 자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몇 명은 이미 우리 사이를 눈치 챈 듯이 시기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오히려 그런 눈빛들을 즐기고 있었다.

'실컷 봐'내가 아주 제대로 염장을 질러주마.

시험기간이라서 환타지아에 출근하지 않고 있었지만 오늘 시험도 끝이 났고 그 사이 자란 머리를 다듬을 겸 해서 학교에서 환타지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연히 고개를 돌리다 보니 병태가 나보다 몇 걸음 앞서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서 걷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병태가 환타지아에서 그렇게 나간 뒤로는 더욱 서먹해져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긴 하지만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그러다보니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피하기까지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번 주가 지나 내가 란희와 공식커플이 되면 병태와 게이커플이었다는 불명예도 완전히 벗겨질 것이기에 나는 더욱 몸을 사리고 있었다. 병태가 저만치 멀어져 안 보일쯤 되어서야 나는 속력을 내어 걷기 시작했다.

'뭐라도 사갈까?'

오래간만에 환타지아에 가는 거라 뭐라도 사가야 할까 생각하던 나는 순간 내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놀러가는 것도 아닌데... 웬 빈손타령.

내가 환타지아에 도착하자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시끌벅적했다.

"들여보내달라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남자분은 출입금지입니다."

"잔소리 말고 내가 가서 직접 찾아봐야겠어."

"직접 전화를 해보세요. 저희는 들여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넘버투가 왠 남자와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때문에 저러는 거야?

"참나 기가 막혀서 내 마누라가 여기 있다고."

"그래도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나는 지난번 날 끌어냈던 떡대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기에 넘버투가 저런 남자를 상대하고 있는가 싶어서 뒤쪽 편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이 남자 혼자 온 게 아닌가보다 딱 보니 양아치처럼 껄렁거리는 패거리들을 떡대 무리들이 상대하고 있었다.

"야 내 마누라가 여기 갖다 바친 돈이 얼만 줄 아냐? 그 돈 다 내가 벌어다 준거야. 그래서 마누라 데리러 내가 들어가겠다는데 왜 막고 이래."

"자꾸 이러시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안 있으면? 엉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배째라는 듯이 배를 마구 내밀며 넘버투에게 엉겨 붙는 남자를 나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러다 넘버투 빡 돌면 저 남자도 골치 아플 텐데 싶었던 나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둘을 쳐다봤지만 넘버투는 냉정함을 잃지 않은 채 남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엉 이건 뭐야? 제비새끼처럼 생긴 이 녀석은 왜 들여보내 줘?"

"저희 직원입니다."

"뭐 저게 미용사라고? 딱 보니 제비 같은데"

'억'뭐라고? 제비 내가 어딜 봐서 제비란 말이야?

"저런 새끼들이 여기서 일해서 내 마누라가 뻔질나게 여길 드나드는 거였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여긴 엄연히 미용실이고 정식 헤어디자이너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입니다."

"웃기지 마 어디서 공갈 치고 있어? 그럼 왜 못 들여보내 주는데. 내가 내 마누라 찾아가겠다는데 엉"

"안 됩니다. 지금 이런 행동들이 영업 방해인건 아시죠?"

"뭐 영업방해? 그래서 경찰한테 신고라고 하게."

"계속 이러시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이게 미쳤나?"

한마디도 밀리지 않는 넘버투가 정말 넘버투다워 보였다. 그런데 이런 시국에 원장은 어딜 간 거야? 도대체가 보이지가 안잖아. 계속적인 실랑이가 지속되자 남자가 갑자기 품에서 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양아치 좀 부리는 남자인지 또 다른 패거리들에게 환타지아로 오라는 연락을 하고는 카운터 옆의 대기석에 '털썩' 앉았다.

"내가 그냥 두고 보려고 했더니 안 되겠어."

그렇게 앉아서 넘버투와 나를 노려보던 남자가 순간 흠칫하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남자의 시선이 향하던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원장과 손님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하'원장은 그러니까 여태껏 예약손님이 있어서 나오지 못했던 거였어? 이거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건가?

그렇지만 행패를 부리던 남자가 놀란 이유는 원장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야 꼴뚜기 네가 여기 웬일이냐?"

'뭐?'

꼴뚜기? 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꺽꺽 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혔고 그런 나를 넘버투가 자신의 뒤쪽으로 밀어 몸으로 나를 가려버렸다.

"그게..."

"무슨 일인데? 뭐 급한 일 있냐?"

"아닙니다."

아까 넘버투한테 마누라 찾아야 겠다고 행패를 부릴 때와는 정반대로 너무도 정중한 남자의 태도에 난 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넘버투가 뒤발로 내 발을 지그시 눌러 밟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폭소를 터트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미칠 듯이 웃겼다.

"저 흑나방누님."

"컥 컥 컥.. 컥 컥"

'흑나방누님이래'흑장미도 아니고 흑나비도 아니고 흑나방... 내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웃음을 참으며 몸을 떨어대자 넘버투가 뒤로 발차기를 해서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뻗어버렸고 그럼에도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내 위를 넘버투가 구두를 벗은 발로 쿡쿡 밟아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넘버투 외엔 나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면 신경이 쓰였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인가?

"나 데리러 온 거냐?"

".. 아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유원장 여기 얼마지?"

"아니 흑나방누님 제가 알아서 계산하겠습니다. 먼저 나가서 차에 타고 계십시오."

"그렇게 해."

그렇게 흑나방누님이 밖으로 나가버렸고 환타지아 안에는 꼴뚜기와 그 패거리들이 남아 있었다.

"얼마야?"

"이백오십만원입니다."

"어엉 뭐가 그렇게 비싸?"

"원장님 예약 손님이라서 그렇습니다. 왜요? 내역서 뽑아드릴까요?"

"아니 됐고 이걸로 계산해."

꼴뚜기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12개월 할부로"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넘버투는 기쁘게 그 카드를 받아서 카드단말기에 긋고 난 뒤 카드를 꼴뚜기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영수증을 뽑아서 꼴뚜기에게 건네주었다.

"야 뭐들 하냐? 가자."

마누라를 찾겠다던 꼴뚜기는 카드 영수증을 손에 든 채 환타지아에서 사라졌다. 당연히 그 이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야겠지만 그 이후 꼴뚜기는 종종 환타지아에 나타났다.

바로 흑나방 누님을 보필하기 위해서... 아무튼 나는 꼴뚜기 패거리들이 사라지고 나자 바닥을 뒹굴면서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웃고나서 겨우 일어서자 넘버투가 나를 보고 말했다.

"너 어디 잘 못 됐냐?"

"내가 뭘요?"

"뭐가 그렇게 우습다고 그 상황에서 미친 듯이 웃어?"

"내가 웃고 싶어서 웃었어요? 웃음이 나오니까 할 수 없이 웃었지."

'나도 참느라 참은 거거든'그 패거리들 작명센스 덕에 정말 숨이 막히도록 웃느라 나도 힘들었거든. 웃겨서 죽을 뻔하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나도 이렇게 웃다가 넘버투에게 밟펴 죽거나 흑나방누님에게 맞아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곧 원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인사를 했다.

"원장님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이번 주 시험이라더니 어떻게 온 거지? 영일군."

"오늘 끝났어요."

"그럼 쉬지 왜 왔어요?"

"그게 머리가 좀 긴 것 같아서."

"그렇네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그런데 원장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내 팔을 넘버투가 붙잡았다.

"원장님 내가 영일이 머리 다듬어 주겠습니다."

'에엑'싫어 넘버투한테 머리를 맡길 순 없어.

하지만 세상살이란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법이란 진리는 역시 나도 피해가지 못했다.

"그래요? 가만히 보면 원선생이 은근히 영일군을 예뻐하는 것 같네. 그렇게 하세요?"

"저 원장님 저는 ,,, 웁우우 푸우 풋"

'우욱'예뻐해? 넘버투가 나를? 그런 예쁨 따윈 받고 싶지 않다고... 나는 넘버투에게 입이 막혀 질질 끌려가면서 속으로 외쳐대었지만 당연히 아무도 내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여기 앉아"

'이미 앉혀 놓고는 앉으라니?'

장난하나?

"이래 뵈도 컷트는 원장님보다 내가 나아?"

'리얼리, 정말, 진정으로?'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넘버투를 한껏 노려보았지만 곧 가위를 드는 넘버투를 보고는 눈을 내리 깔았다. 혹시라도 저 가위에 눈이 찔리게 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잠시 후 가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가위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위소리가 멈췄고 넘버투가 머리카락이 떨어져 내린 내 코끝과 목덜미를 가볍게 털어내었다.

"다 됐다."

'와우'존경합니다. 형님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말을 억지로 삼키고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난번 원장의 솜씨에도 놀란 나였지만 넘버투의 컷트 솜씨는 정말 원장을 능가하는 솜씨였다.

"멋져요 선생님."

"그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그럼 나랑 술이나 한잔 하러 갈래?"

'Oh No'다른 건 다 들어줄 수 있지만 그것만은 절대로 해 줄 수 없어.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넘버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정말 원선생님과 같이 가고 싶지만 오늘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다."

'웬일로?'

조용히 수긍하는 거지?

"그럼 누구 추천해 줄 사람 있냐?"

"네?"

"나랑 술 먹으러 갈 만한 사람 추천 좀 해봐."

"그야 당연히 현성이 형이랑 시호형이랑 뭐 그 정도면 될까요?"

"그래? 알았어."

나는 그렇게 내 대신 20번 방형과 시호형을 넘버투의 손아귀에 넘겨주고 무사히 환타지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란희와 만나기로 한 주말 아침이 되었다..... ㅋㅋㅋ============================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이비앙님, 성미카엘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감사드립니다.

쿠폰 투척해 주신 이름모를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셨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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