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day 전날 -- >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허억"
벌떡 일어난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사람 때문에 놀랐다. '우엑'나 지금 꿈을 꾸는 거야? 아 진짜 난 왜 꿈에서도 여자를 만나지 않고 꼬붕이나 만나고 있는 걸까?
"뭐하냐? 출근 안하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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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해도 안 받아서 원장님이 올라가 보라고 해서 온 건데.. 참나 가위 쥐고 자니 잠이 잘 오던가봐."
"이거 꿈 아니에요?"
"너 잠 덜 깼냐? 얼른 씻고 나와 늦었어. 너 내일 대회라는 건 알고 있는 거냐?"
"알죠. 당연히 그것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데요"
"그럼 일찍 내려와야지 원장님이 오늘 펌에 대해 너한테 알려주라고 하시던데. 넌 이렇게 퍼져서 잠이 나 자고 있으니 어쩔 생각인 거야."
"잠시만 기다려요 형 바로 옷 갈아입고 나갈 테니까."
나는 욕실로 달려 들어가며 소리를 질렀고 욕실에 들어가서 보니 가위를 끼로 잔 손가락이 팅팅 부어 있어서 가위의 둥근 고리 사이에 아예 꽉 끼여 있었다. '와우'이렇게 되면 가위 절대 떨어트릴 일 없겠네. 라는 생각을 하던 나는 억지로 가위를 빼내서 주머니에 꽂고는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방으로 들어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꼬붕에게로 갔다.
"이제 내려가요."
꼬붕은 옥탑방 마당에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보니까 사람 드나드는 거 다 보인다."
"그래요? 난 아래 잘 안 내려다 봐서 모르겠는데요."
꼬붕이 앞장 서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현우 형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으로 내려가요. 바로 아래쪽하고 연결 되어 있어서 금방이에요."
"그래 그럼 계단으로 가자."
계단을 통해 4층으로 내려가자 현우형은 두리번거리면서 신기해 했다.
"와 이렇게 통해 있었네. 난 전혀 몰랐는데. 넌 좋겠다. 출근 하기 편해서."
"늘 이리로 오는 건 아니에요. 가끔씩 이용해요."
꼬붕과 나는 환타지아 1층으로 내려갔지만 출근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난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봤다.
'뭐야?'
시간이 너무 이르잖아.
"뭐예요? 늦었다더니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요."
"너 오늘 펌에 대해 배우기로 했다면서."
"네"
"펌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아냐? 그 많은 펌에 대한 실습을 오늘 다 해보진 못할 테고 기본 펌에 대해서만 실습을 해본다고 해도 시간이 모자라."
'그러니까'왜 진작 좀 안 가르쳐주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가르쳐 주냔 말이야?
"네."
"간단하게 오늘은 여성 펌의 종류 중에서 일반펌, 디지털펌, 섀도펌, 발롱펌, 물결펌, 볼륨펌에 대해서 배워보자."
'우악'뭐가 간단하게라는 거야? 그걸 다 했다간 오늘 밤을 새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네"
"각 펌의 특성은 다 알고 있겠지?"
"네."
"자 그럼 오늘은 원선생님 방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니 원선생님 방으로 가자."
"네"
넘버투의 방으로 가던 꼬붕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넌 '네' 밖에 모르냐? 왜 대답을 그렇게 밖에 못해? 앞으로 잘해라."
"네"
'아악'그럼 뭐라고 하란 말이야? 싫어라고 할까? 모르겠다고 할까? 하다하다가 이젠 대답하는 걸로 트집을 잡냐?
하지만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꼬붕의 뒤를 따랐다. 꼬붕의 목 뒤엔 내가 어제 가위로 찔렀던 곳이 딱지가 앉아 있었다.
'조금만 참을 걸'아무리 미워도 조금만 참을 걸 그랬어. 에휴 이렇게 바로 보복을 당할 줄 알았으면... 넘버투의 방은 어제 내가 정리해 둔 그대로 있었다. 나는 곧 펌에 필요한 것들을 꺼내서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다.
"오늘 실제 실습은 일반펌에 대해서만 할거야. 그러니 다른 재료들은 치워라"
"네"
'아우'진정 내가 재료를 꺼내기 전에 미리 말할 순 없었던 거야?
나는 하는 수 없이 꺼냈던 재료들 중 절반 이상의 것들을 치워버려야만 했다.
"항상 펌 재료를 만질 때는 장갑을 끼고 하도록 해 그리고 오늘은 모델 없이 가발에다가 실습할 거야."
'이미 알고 있거든'나는 뒤돌아 서있던 꼬붕의 뒷통수를 슬쩍 노려봐 주었다. 오전은 그렇게 일반펌을 하기 위해 가발에 약을 발랐다가 가발을 빨다가 하면서 시간을 다 보내야만 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해도 그 특유의 약품 냄새는 어쩔 수 없어서 오전 내도록 맡은 약 냄새에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벌써 점심시간이네 영일아 점심 뭐 먹으러 갈래?"
점심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안 먹겠다고 하면 넘버투의 방에서 계속 펌 연습을 해야할 것 같아서 나는 가능한 환타지아에서 먼 곳의 식당의 이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한정식집이 먼 편에 속하는데 오늘 원장이 뭘 먹으러 가고 싶어 할지 몰라서 나는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무거나 밥이기만 하면 되요."
"난 쌈밥이 먹고 싶은데. 그럼 쌈밥 먹으러 갈까?"
"원장님하고 다른 식구들은요?"
"알아서들 먹으러 가겠지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쓸 필요 있냐? 얼른 가자."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꼬붕은 넘버투의 방에서 나와 카운터까지 가기도 전에 원장에게 잡혀서 원장이 먹고 싶다는 콩나물국밥집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꼬붕의 옆에 있던 나도 당연히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 전 오늘 쌈밥이 먹고 싶었다고요. 이렇게 먹을 자유까지 억압하기면 어떻게 합니까?"
'뭐냐?'
이번에는 삽입불가가 아니라 메뉴선택권리에 대해 항거할 생각인 건가?
"현우군 각자가 먹고 싶은 걸 먹으라고 하면 다 다른 식당으로 가서 먹어야만 하고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오후 영업에 지장을 주게 되요. 그래서 그냥 한 가지를 정해서 먹으러 가도록 하고 있었고 가능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번갈아가며 먹도록 하고 있어요. 그러니 쌈밥은 다음에 먹으러 가도록 하고 오늘은 미리 연락해둔 콩나물 국밥을 먹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러면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되니까 식사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원장님, 그러다보면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가 부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서비스의 기본은 우선은 자기 만족이 먼저이니까요?"
'와우'브라보. 꼬붕이 이렇게 똑똑해 보일 수가...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도 원장한테는 안 될 것 같은데...
"현우군의 말을 들으니 현우군은 환타지아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 이유가 단지 점심 식사메뉴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더 있나요?"
"아니 제가 불만이 있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원장님 그리고 저 콩나물국밥 좋아합니다."
라고 말한 꼬붕은 앞장 서서 콩나물 국밥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잉'뭐야? 싱겁게 이게 끝이야? 이러고 말 것을 반항은 왜 하냐? 나는 꼬붕의 뒤를 한심한 듯 바라보고 있었고 역시 내 옆에 서 있던 원장도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환타지아 무리들은 곧 꼬붕의 뒤를 따라 콩나물국밥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큰하고 시원한 콩나물국밥을 한 그릇 먹고 나니 펌약 냄새로 울렁거리던 속이 진정 되는 것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영일군은 보기보다 잘 먹는 것 같네요."
"네 자취생활을 해서인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자는 주의라서요. 그리고 예전부터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입니다."
"잘 먹으니 보기 좋네요."
원장은 내 옆에 앉아서 밥을 깨작거리고 있는 꼬붕을 바라보았고 꼬붕은 반찬을 입에 넣다가 원장과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밥에 집중했다.
"현우형 밥알 몇 개에요?"
"어엉?"
"밥알을 세고 있는 것 같아서 묻는 거예요."
"그러게 오늘은 쌈밥이 땡긴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팍팍 좀 먹어요."
"먹고 있거든."
꼬붕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나도 더 이상 꼬붕에게 신경 쓰지 않으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난 환타지아 무리들은 식당에서 나왔다. 나는 이렇게 금방 환타지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넘버투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옆에 가던 꼬붕의 옷자락을 조용히 잡아 당겼다.
"왜?"
"커피 한잔 마시고 들어가면 안 돼요?"
"환타지아 들어가서 마시면 되잖아."
"그게 오늘따라 핸드그립커피가 마시고 싶네요."
"그래? 네가 쏘는 거냐?"
'참 나'진정 너보다 적은 월급 받는 나에게 얻어먹고 싶은 거냐?
"... 현우 형도 핸드그립 커피 마시고 싶어요?"
"마시고 싶으니까 묻는 거지."
"알았어요 내가 쏠께요."
그렇게 해서 나와 꼬붕은 그 근처의 유명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메리카노 두잔을 주문하고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꼬붕은 커피전문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커피가 나오고 나는 커피 두잔을 들고 꼬붕에게로 다가갔다.
"마셔요."
내가 내민 커피를 보고 씩 웃던 꼬붕은 곧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캬 역시 맛 좋다 역시 커피는 핸드그립으로 마셔야 해"
'아쭈'너 그거 그냥 머신에서 내린 커피거든. 핸드그립은 내꺼야.
나는 소심한 복수의 결과에 미소 지으며 환타지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환타지아로 들어가서는 곧 넘버투의 방으로 들어선 나와 꼬붕은 우선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시고 나서 곧 오후의 펌을 위한 재료를 꺼내려고 하자 이번에는 꼬붕이 어제 배운 염색과 컷에 대해서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이래 뵈도 몸으로 배운 건 잘 안 잊어버리거든'나는 어제 넘버투에게 싫은 소리 들어가며 배운 염색의 기본에 대해서 쭉 나열했고 꼬붕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지 않네. 그리고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특히 더 새겨들어."
"당연한 걸 자꾸 말하면 입 아픈거 아시죠?"
"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내일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사람들중 삼분의 일 정도가 원장님 밑에서 배운 사람이란 말이야."
"정말요?"
"예전엔 원장님도 미용학원이나 학교 강의 많이 나가셨거든. 지금이야 환타지아에만 거의 매여 계시지만 말이야."
"강의도 나가시잖아요."
"요즘은 거의 취미생활이시지. 옛날엔 본업으로 하셨던 거고"
"그래요?"
"그리고 최근에는 강의 횟수를 더 줄이신 모양이던데. 가끔 대학 특강만 나가시고"
"네."
"자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다시 펌에 대해 말해볼까?"
그렇게 펌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재료를 설명하라고 시키기도 하고 가발로 여러 가지 스타일을 연출 하면서 꼬붕은 내 사전지식을 점검했고 어제의 소나기 공부덕인지 나는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한번도 손님에게 직접 펌을 해본적은 없지만 손님들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되새기면서 나는 꼬붕이 가르쳐 주는 내용을 하나 둘 머리속에 새기기 시작했다. 오후는 오전보다 더 빨리 지나가 버렸다.
"영일아 지금 몇 시야?"
"저 지금 손에 약이 묻어서 확인 못하겠는데요."
소파에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었던 꼬붕은 귀찮은 듯 주머니속의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고 있었다.
"아악"
"뭐 예요?"
"나 오늘 약속 있는데."
"네?"
"아씨 야 영일아 나 먼저 갈테니까 넌 더 연습하고 원장님께 말씀드리고 퇴근해라."
"저 현우형 형 형... "
'아씨'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나는 한숨을 쉬면 난장판이 되어 있는 넘버투의 방을 둘러보았다. 가발이 5개나 놓여 있고 그 옆으로 펌 재료들과 염색 재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머리카락들이 떨어져 있었다.
한번에 펌과 염색, 그리고 컷트까지 복합적으로 연습을 한 덕에 가발도 그렇지만 바닥도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보라색 머리카락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장갑 위에 묻어 있던 약품을 씻어내고 장갑을 낀 채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빈 약통들을 정리해서 버리고 가발들도 정리하고 염색과 펌 재료들을 치웠다. 약냄새에 취해 이제는 몽롱함까지 느끼고 있던 나는 서둘러 약품들의 뚜껑을 덮어서 정리하고 사용했던 물건들을 모두 씻었다.
바닥의 머리카락까지 다 쓸어버리고 나서 나는 장갑을 벗었다. 오랫동안 장갑을 끼고 있어서 인지 손이 팅팅 불어있었다.
손을 씻고 꼬붕이 나가기 전까지 보고 있던 잡지를 정리하기 위해 들어올리다가 꼬붕이 펼쳐놓은 장을 보았다. 모델의 뒤로 서 있는 여자 헤어디자이너가 있었고 연예인 뺨치게 생긴 그 헤어디자이너의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본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잡지를 접어서 책장에 꽂아 두었다.
정리가 끝난 넘버투의 방에서 나온 나는 원장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원장님 저 영일인데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영일군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좀 들어와요."
'네.
"나는 반쯤 열었던 문을 활짝 열고는 원장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 대회 준비는 다 되었죠?"
"네"
"그럼 저녁 먹으러 가죠."
"네?"
"오늘 저녁은 영일군 힘내라는 의미에서 내가 저녁 사주려는데 괜찮나요?"
"아 네"
나는 환타지아 밖으로 나오는 원장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전화가 온 것인지 잠시 몸을 꿈틀거리던 원장은 곧 폰을 꺼내 통화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 저녁 먹고 들어가려고."
"너도 지금 시내에 있니?"
"그럼 저녁 같이 먹을까?"
"그래 알았어, 환타지아 앞으로 올래? 2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알겠어 기다릴게"
'와'저런 목소리도 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으으으 닭살.
그런데 누구랑 통화한 거지? 설마 수진인가 뭔가 하는 그 애 아니겠지?
"영일군 지금 내 딸이 이 근처라고 곧 도착할 것 같다는데 우리 저녁 셋이 같이 먹어도 될까요?"
'아니'안 돼 절대 그럴 수 없어.
라는 건 마음의 소리이고 난 겉으로는 미소까지 머금은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같이 먹어도 되죠."
도착하는데 20분이 걸린다는 수진을 기다리기 위해 나와 원장은 다시 환타지아로 걸음을 옮겼지만 방범센서를 끄고 자물쇠를 열어 환타지아 문을 여는 건 왠지 낭비인 것 같아서 그냥 환타지아 밖에 서서 수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원장과 내 앞에 나타난 수진의 모습에 나와 원장은 입이 떡하니 벌어져 버렸다. 원장과 내 입이 벌어진 이유는 각자 달랐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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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나 연참이 가능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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