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르다.... -- >
[안 바쁘면 전화 해]유진에게 간단한 문자를 보내고 실습할 용품들을 모두 꺼내 정리를 하고 나자 넘버투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럼 오늘은 영양액 사용 후 뒤처리에 대해 한번 연습해 보자. 어제 영양액 처리했던 것 이리로 가져와."
"네"
넘버투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내가 따라하면서 머리카락을 질감과 영양액이 스며드는 정도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 마무리 뒷손질까지 해 보았다. 물론 가발이라서 사람의 머리카락과는 차이가 나긴 했지만 우선은 연습을 해야 하니 넘버투가 일반적인 사례들을 설명해 주며 시범을 보였다.
"사실 이렇게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스타일링 하는 것을 많이 보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돼. 그런 면에선 우리 환타지아의 현 운영 방법은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 편이지. 하지만 시술하고 나서 견습생 방으로 들어가는 손님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손님들을 관찰하면 도움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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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카운터에 있게 되면 드나드는 손님의 전과 후를 비교 관찰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그때 내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언제'벨로 바꿔둔 거야? 분명 진동이었던 것 같은데... 넘버투가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넘버투의 눈총을 받으며 폰을 꺼내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네 최영일입니다."
[오빠 저예요]
"아 유진이냐?"
[네 연락하라고 해서 전화한 건데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주말에 옥탑방으로 좀 올래?"
[왜요?]
"일이 좀 있어서 그래."
[스케줄 확인해 보고 시간 괜찮으면 갈게요]
"오기 전에 미리 전화 해줘"
[알았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아요.]
"지금 소리를 크게 하기 좀 그래서."
[네 그럼 주말에 연락할게요. 이만 끊어요.]
"그래"
통화를 끝내고 넘버투의 눈치를 살피면서 폰을 들고 있었다.
"통화 다 끝났냐?"
"네"
"넌 실습할 때 진동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 에티켓도 모르냐? 거기다가 지금 통화를 해?"
"전화가 왔으니까 받기는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지금 정신 집중이 안 되는 거야."
'뭐야?'
또 뭐가 마음에 안 든 거야? 갑자기 또 왜 이래?
"너 폰 이리 내놔"
"안 돼요."
"어허 이리 안 내놔."
"안 됩니다."
"안 돼?"
넘버투가 나를 앞세우고 옥탑방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우선 간단하게 구르기 50번 실시."
"구르기요?"
'에엑'여긴 눈도 없는데 설마 그냥 이 콩크리트 바닥에 구르라고...
"왜 못 구르겠냐?"
'하지만'지금 실기 연습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잖아. 이런 걸 할 틈이 있다는 거야?
"얼른 안 구르냐? 횟수가 적어서 그러는 거야?"
"아닙니다. 지금 구릅니다."
바닥에 누웠다. 싸늘한 기운이 몸으로 파고들었고 얼른 몸을 움직여 콩크리트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으악'머리야.... 아악 무릎이... 차마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속으로는 바닥에 부딪혀 아픈 곳을 외치며 구르고 있었다. 50번을 다 구르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서서 넘버투 앞에 섰다.
"이제 정신이 좀 드냐?"
"네"
"앞으로 대회 날까지는 실기 연습시간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실기 연습시간에 전화 통화는 금지다."
"네"
넘버투의 뒤를 따라 환타지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걸어가느라 힘이 들었지만 넘버투에게 더 이상 책 잡히기 싫어서 의연한 표정으로 계단을 걸어내려 가고 있었다.
"너 옷부터 갈아입고 와."
"네"
그러고 보니 옷이 엉망이었다. 옷 뿐만 아니라 머리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옥탑방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정리했다. '후우'빨리 시간이 지나가서 어서 대회 날이 되었으면 좋겠네. 이건 기다리는 심정도 아니고 흡사 치러내야 한다는 심정으로 어서 빨리 대회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많이 진정되어 있었고 심한 갈증을 느끼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물 한통을 다 마신 후에야 갈증이 가라앉았고 그렇게 갈증을 해소하고 나서 환타지아로 내려갔다. 노크를 하고 넘버투의 방으로 들어가니 넘버투가 미용잡지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 헤어스타일을 만들어봐."
넘버투는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보고 있던 미용잡지를 내 앞에 내밀고는 사진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요?"
"그래 그거 저 끝에 있는 거 가발이 머리길이가 딱 맞네. 컷트는 하지 말고 한번 만들어봐."
"하지만 아직 펌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는데요."
"지난번 대회 때 기본 펌 배웠잖아. 그리고 지금 네 실력을 보려고 하는 거니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네 알겠습니다."
넘버투가 가리킨 사진에는 머리가 어깨 아래까지 오는 모델의 머리가 굵게 웨이브가 만들어져 있었고 거기에다가 연갈색 톤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다. 앞머리가 큐트하게 가지런히 잘라져 있어서 귀여운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가발의 앞머리는 일명 말하는 깻잎머리로 손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우선 가발의 머리를 빗어 정돈시키고 나서 염색부터 준비했다. 염색은 자신이 있었다.
어제 배웠던 영양액으로 먼저 머리를 충분히 적셔서 영양을 준 후 바로 염색에 들어갔다. 염색을 끝내고 나서 바로 굵은 웨이브를 만들기 위해 아이롱으로 머리를 말기 시작했다.
"우선 머릿결 자체가 찰랑거리지 안잖아 저 사진에서는 모델의 머리가 촉촉하고 찰랑거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
'으음'그렇게 말하니 그랬던 것도 같네. 내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잡지로 다가가서 확인해 보았다. 넘버투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찰랑거리고 촉촉해 보인다.
"너 코팅을 빼먹었잖아."
".. 아 그렇구나."
"뭐가 아 그렇구나야 아까도 내가 설명했잖아 염색 전후의 처리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렇게 넘버투는 기회만 되면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갈굼을 당하면 실력이라도 일취월장해야 하지만 내가 보기엔 내 실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미용대회에 나가게 되면 주제 선정이나 헤어디자인의 독창성도 보겠지만 스타일링시 작업에 대한 능숙도와 시간 내의 완성이라는 것이 필요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실기 연습이지만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하자."
"네"
'후우'드디어 끝났다.
"저녁 먹어야지."
"아뇨 저 생각 없습니다."
"대회 때까지의 체력 관리도 중요한 거다. 딴소리 말고 얼른 따라나와."
'에이씨'기껏해야 분식점에나 갈거면서... 하지만 넘버투는 나를 삼겹살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장님 여기 우선 삼겹살 삼인분하고 된장에 공기밥 두 개 주세요."
"식사 바로 하시게요?"
"그래 너도 밥 먹고 나가자. 삼겹살을 반찬이라고 생각하고 먹어라. 밥 없이 삼겹살 시키면 소주 생각나서 안돼. 대회 전까지 금주니까 그렇게 알고."
"네"
난 머리털 나고 최초로 삼겹살 집에서 들어가서 소주를 마시지 않고 밥과 고기만 먹고 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만 집에 들어가라. 그리고 정리 된 자료 가지고 있지? 그거 매일 다섯권 이상씩 검토하고 매일 테스트 할거야."
"네 그럼 들어가세요."
넘버투가 내게 손을 흔들고는 환타지아 뒤편에 세워둔 차로 가서 올라탔다. 알고 보면 넘버투도 나 때문에 신혼생활도 즐기지 못하고 매일 나를 가르친다고 고생하고 있는데 나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탑방으로 올라오니 온 몸이 다 쑤셨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까 콘크리트 바닥을 맨몸으로 50번이나 굴러다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바로 잘 수가 없어서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온 후 거실의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자다가 추워서 일어났더니 소파에서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자고 있었고 시간은 새벽 한시가 넘어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오늘은 토요일이라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당연히 학교는 가지 않고 환타지아로 바로 출근해야 하는 날....'에휴'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한숨만이 새어나왔다. 언제 시간이 가서 대회 날이 되는 거야?
아직도 거의 이주가 남은 시간동안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노래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얼른 일어났다. 이럴 때 지각까지 하면 하루종일 시달려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정신상태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시달리는 것보다야 서두르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환타지아에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출근한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다. 넘버투는 이미 출근해 있었다.
"이제 오냐? 월요일부터는 좀 더 빨리 출근해라."
"네"
"그럼 원장님께 출근했다고 말씀 드리고 내 방으로 와."
'뭐야?'
원장도 벌써 출근한 거야? 나이가 들어서 아침잠이 없어진 거야? 왜 이리 일찍들 오는 거야?
"똑 똑"
"들어와요."
"원장님 저 출근했습니다."
"그래요. 영일군 그럼 오늘도 원선생과 연습할 예정인가요?"
"네 아마 대회전날까지 그렇게 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학교도 가야하니까요."
"알겠어요. 그럼 당분간 두 사람은 아침 구호시간에 나오지 마세요."
"네 원선생님께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가서 일보세요."
"네 원장님."
나를 향해 기대와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원장의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진짜 이러다가 대회에서 대상을 못 타게 되면 나 완전 새 되는 거 아니야? 곧 넘버투의 방에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장님께서 대회날까지 아침구호 참석 안 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형도 몸이 달긴 했나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뭐 그거야.."
"세라장이 요즘 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기 자존심에 찾아가지도 못하고 아마 모르긴 해도 요즘 죽을 맛일 거다."
"뭐가요?"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
째려보는 넘버투의 눈빛에 반 얼음이 되어 버렸다.
"잡담 그만하고 실시 연습 시작한다. 물건이나 꺼내서 정리해."
넘버투가 꼬붕을 보고 물었다.
"일이 있어서 그렇지. 원선생님은 그만 신경 끄시죠."
"영일이 나하고 늦게까지 연습하고 저녁 먹으러 갈거야."
"그럼 나도 저녁 먹으러 같이 가."
'뭐야?'
갑자기 진드기 흉내라도 내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혹시나 내가 유진이를 따로 만날까봐 저러는 거야?
"저는 상관없는데 두 분이 결정하시죠."
"거봐 영일이는 상관 없다잖아. 그럼 저녁 먹으러 같이 가자 내가 쏠게."
꼬붕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야 나 지명이다. 그럼 간다."
꼬붕이 문을 닫고 사라지고 나자 넘버투가 나를 쳐다보았다.
"현우 무슨 일 있냐? 갑자기 왜 너한테 붙고 싶어 하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마 현우 취향이 바뀐 건 아니겠지?"
라고 말하며 날 아래위로 쳐다보는 넘버투의 능글거리는 시선에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렸다.
"자식 그렇다고 오버하기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우 쟤는 그럴 애 아니니까 걱정 마라. 그런데 정말 너한테 왜 저렇게 잘해주는 거야? 진짜 몰라?"
'어쩌지?'
계속 모른척 해. 에이씨 몰라 계속 모른 척 해. 설마 넘버투가 따라오기야 하겠어?
"영일아 오늘은 코팅연습에 주력해 보자."
'뭐가''주력해 보자'야 어차피 나 혼자 다 해야하는데... 그냥 '해 봐라'고 하면 되지.
"네"
내가 가발하나를 코팅제로 떡칠을 하고 있는 것을 넘버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들어오세요."
"원선생님 문제가 생겼는데요."
"무슨 문제 원장님 어디 나가셨어?"
"아니요 계십니다. 그런데 원장님께서 원선생님께 여쭤보라고 하셔서요."
"무슨 문제덴 그래?"
"그게 영일이를 찾는 손님이 계십니다."
"지금 바쁘다고 했어?"
"네 그래도 영일이 지명하겠다고 하셔서?"
"그럼 처음부터 없다고 하지."
"그게 그만 제가 지금 대회 준비 때문에 연습 중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할 수 없지 영일아 넌 계속하고 있어"
"네"
넘버투는 방으로 들어왔던 떡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는 겨우 코팅제를 다 바라고 끈적거리는 손을 바라보다가 물에 씻고 있었다.
"벌컥"
넘버투가 거칠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왔다.
"영일아 너 네 방으로 가라"
"네?"
"지명 손님 받고 나중에 실기 연습하자."
'우와'누구야? 도대체 누군데 넘버투가 밀린 거지? 대단한데... 얼른 손을 씻고 사용했던 물건들을 대충 정리한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갔다.
'얼마만인지..'
내 방은 그 공기부터 틀린 것 같다.
넘버투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만 해도 살 것 같았다. 어떤 손님인지 오늘 서비스 끝내주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이비앙님, 류치네님, 해동풍님, 폭풍의 날개님, 성미카엘님, 챠베스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유진이는 영일이와 인연이 아닌듯 합니다... 그리고 넘버투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다 영일이가 대상을 타게 하기 위한 구박이라서... 그럼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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