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즐거운 MT -- >
기말고사가 끝이 나고 시작된 여름 방학과 함께 원장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나는 당연히 아침부터 환타지아로 출근을 했다.
기말고사가 끝났지만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펄펄 나던 나는 일찍부터 환타지아로 내려갔었다. 원장은 일찍 출근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싱글벙글하며 출근을 했고 다들 그런 원장을 보면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원장이 싱글벙글한 이유가 바로 세라장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침 구호를 외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싱글벙글하던 원장이 앞에서 외쳤다.
"다들 그 동안 맡은 일을 잘 해준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앞으로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주세요."
원장의 말이 끝나고 나자 넘버투가 앞으로 나섰다. 웬일인지 넘버투도 싱글벙글이었다.
'뭐야?'
/18 쪽148웃음도 전염이 되나?
"다들 아침구호 시작."
"절대 삽입하지 않는다."
"손님 말은 삽입하라는 것 외엔 모두 복종한다."
"다들 각자 자리로 돌아가세요."
구호를 끝내고 나도 내방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곧 발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뒤에서 원장이 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원장님 부르셨어요."
"영일군 잠시 나 좀 봐요."
"네"
방으로 들어가는 원장을 따라 나도 원장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원장이 소파를 손짓으로 가리켰고 나는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원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은 좀 전의 싱글벙글하던 표정과는 좀 다른 표정을 지으면 방 안으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마치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영일군한테 부탁이 있는데 들어 줄 수 있겠죠?"
'아니'들을 필요도 없이 못 들어주지.
그러나 난 힘이 없는 견습생일 뿐이었다.
"무슨 부탁이신데요. 어려운 일인가요?"
"아니 어렵진 않아요."
'설마'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여태껏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면서 시켰던 일들이 전부 내가 생각했던 수준을 넘어서는 일들이었으니까 아마 이번 일도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일중의 하나이겠지만 난 그걸 알면서도 거절할 수 없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습니다."
'그러니까'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영일군 우리 수진이 알죠?"
"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지. 제발 좀 나한테 아는 체 좀 하지 말라고 좀 해주면 좋겠는데...
"이번 여름 방학에 과에서 MT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MT 가는 게 어때서?
"MT요?"
"과에서 가는 거라고 하던데 영일군은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몇일 전 성기가 속리산이 어쩌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난 무조건 안 된다고 했었는데...
"아뇨 속리산으로 간다고 하던데요."
"거기에 영일군이 가 줬으면 해서 부탁하는 거예요."
"제가요?"
나는 MT를 갈 생각이 없었다. 환타지아 근무를 하기에도 바쁠텐데 거기를 뭐하러 가겠어. 거기다 가봐야 뻔 하지 술만 진탕 마시고 밤새 놀다가 다음날 억지로 일어나서 밥 해먹고 또 술 마시고 놀고 그런 일을 반복할 MT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거기다 우리과에는 내가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이 몇이 있어서 같이 MT를 가게 되면 꼬박 2박 3일을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할텐데 그것도 싫었다.
"왜요? 갈 생각이 없었나요?"
"네 전 별로."
"이번에는 경험 삼아 한번 가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에엑'그 딴 경험 따윈 필요 없다고....
"사실 수진이가 이번 MT를 꼭 가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영일군이라도 같이 가면은 좀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말이에요."
'뭐어라고?'
수진이가 가는데 나한테 같이 가라고... 원장이 드디어 미친 건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다니.... 여기서 물론 생선은 나고 고양이는 수진이다. 내 주위를 얼쩡대면서 기회만 노리고 있는 그애한테 나를 2박 3일이나 붙여 준다면.... 그 다음 일어날 일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역시나 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우리 수진이가 요즘 애들답지 않게 너무 순진해서 세상 돌아가는 걸 너무 몰라. 영일군이 같이 가서 돌봐준다면 내가 마음이 놓일 것 같네. 대신 휴가 수당은 두둑이 챙겨 줄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설마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나를 덮치기라도 하겠어?
그렇게 해서 나는 원하지 않았던 과 MT에 참가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던 일행들은 몇 명이 늦는 바람에 원하던 첫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기차표를 끊어 놓았던 것도 아니라서 뭐 열차를 놓쳤다고 하는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늦은 사람들 중에는 수진이도 있었다.
분명 자신이 자청해서 오고 싶어 했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뭔가 굉장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듯 보이던 수진이는 역에 도착해서 내 얼굴을 발견한 즉시 표정이 변해 버렸다.
"영일 오빠도 MT 가는 거였어요?"
"왜 나는 가면 안 돼?"
"아니요. 다들 오빠는 안 간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내가 안 가는 줄 알면서도 여기 참석하려고 했던 거야? 그래서 일부러 늦게 온 거야? 하지만 나는 잠시 후 수진이가 왜 MT에 오기 싫어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늦었다며 따끔하게 한마디 하던 과대표가 수진이에게는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것 같은 얼굴로 오는 게 힘들었으면 말로 하지 데리러 갔을 텐데 라는 말을 하면서 수진이가 들고 있던 짐을 자기 어깨에 메고 수진이의 손을 잡아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그러니까 저 과대푠가 뭔가 하는 놈이 수진이를 찍은 건가?
그러고 가만히 보면 수진이도 딸리는 인물은 아니다.
나야 워낙 글래머스한 연예인들을 많이 봐와서 그렇지. 수진이 정도면 뭐 여신이라고 해도 뭐 약간 모자랄 정도였다. 키가 약간 작긴 하지만 그걸 커버할 만한 몸매 비율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지만 가슴이 일반인들에 비해 엄청 큰 편이니까.
평소에는 가슴이 드러나지 않는 옷을 주로 입는 편이라서 상체가 뚱뚱해 보이지만 타이트한 옷을 입으면 그 진가가 들어날 테니... 그러고 보면 그런 수진이를 밀어내고 있는 나는 뭐야?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 어쩌다보니 수진이랑 몇 번 자기는 했지만... 으잉 이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쩌다가 내가 수진이를 분석하고 있는 거지?
지금은 고양이한테서 생선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거기다 MT에서 하는 행동들은 공개적으로 되어 버릴 확률이 높으니까 아무래도 조심을 해야겠지.
라고 결심하며 나는 가능한 수진이와 멀리 떨어져서 일행을 따라가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이게 MT라고 말하기보다 짝짓기 행사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았다. 여자 몇이 있으면 그 옆엔 남자 몇이 있었고 아니면 아예 쌍쌍이 짝을 이뤄서 손을 잡고 가고 있었다.
'이상한데'내가 묻자 어이없다는 듯 수진이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오고 싶어서 왔죠."
'과대표랑 뭘 하고 싶어서 온 건 아니겠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아침에 나를 발견했을 때만해도 반가워하더니 그 사이 그 마음이 변한 거야?
과대표가 기차표를 일행들에게 나눠주었다. 일행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 플랫홈으로 걸어갔고 나도 수진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기차표를 받아 들고 곧 도착한다고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는 기차 플랫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창쪽으로 수진이를 밀어 넣고는 그 옆 자리에 앉았다. 수진이는 별 말 없이 내가 앉혀준 자리에 앉았고 나는 내 가방과 수진이 들고 온 가방을 좌석 위의 짐칸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과대표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나름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바로 옆의 좌석에 앉은 과대표가 나를 건너서 수진이에게 말을 걸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기차에 탔으면 기차주민 답게 눈이라도 붙이던지... 이건 뭐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그저 한번이라도 더 말을 걸기 위해 저 난리를 치니... 거기다 중요한 건 내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차가 달리고 있는 중에도 과대표의 끈질긴 집념 어린 행동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목을 축이기 위해 맥주 몇 캔을 마시더니 오히려 그 집적임이 더 심해져만 갔다. 그래도 맥주를 마시고 나니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과대표를 따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나오는 선배의 앞을 가로막고 물었다.
"선배 수진이한테 관심 있으세요?"
"관심 있어."
"제가 있는 데도요."
내 말에 피식 웃은 과대표가 내 가슴을 집게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면서 입을 열었다.
"너야 환타지아 직원이니까 원장 딸인 수진이를 건드릴 수 없을 거잖아. 너 그리고 백진아하고 사귀는 거 아니야?"
"네에에?"
너무 놀라 그만 말을 늘이고 말았다. 그런데 뭐라 백진아하고 사귄다고.... 사귀는 것까진 아닌데... 그런데 어쨌든 그걸 어떻게 안 거지?
"그리고 너 나 언제 봤다고 이런 걸 묻고 그러냐. 나 너랑 별로 안 친하거든. 그러지 말고 그만 수진이 옆자리나 내놓으시지."
과대표는 만인의 도우미 아니었냐?
거기다가 뭘 내놔? 아놔 미치겠네. 이거 또라이 아니야?
"나 수진이랑 친하거든요. 그리고 여친 없어요. 그러니 선배나 수진이한테서 신경 끄시죠."
"내가 신경을 끄던 말던 네가 상관할 일 아니거든."
더 이상 말을 섞어봐야 나만 손해다 싶은 생각에 나는 돌아서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수진이 옆에는 왠 놈팽이가 하나 앉아 있었다. '어'이건 또 뭐야?
가만히 보니 전역하고 얼마 안 되었다는 선배였다.
과대표야 그나마 내밀 명함이라도 있다 치지만 이 새끼는 뭐야?
나는 그 선배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선배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자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선배님 여긴 제 자리입니다. 이만 비켜주시죠."
"어 그래 난 네가 없어서 수진이가 심심할까봐 말동무 해주고 있었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자리를 비켜준 선배를 슬쩍 밀어 과대표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히고는 수진이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요."
'컥'난 진심 수진이가 존경스러워졌다. 혹시나 해서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일행이 자리한 좌석을 둘러보니 일행 중 반 이상이 남자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3이 남자였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여자의 비율이 훨씬 많은 과 특성상 이런 비율일 수가 없는데... 그래서 같이 온 남자들을 쭈욱 살펴보니 여자들은 신입생인데 반해 남자들은 대부분이 전역한 선배였다.
'뭐야 이건'한마디로 순진한 신입생 잡아먹기 인가?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블로우스트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글레이시아님, 비밀이야~님, 멍충대마왕님, 애독자C님, GODTOP님, superdumb님, 해동풍님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실 꿀보다 초콜렛을 더 좋아합니다.
아니 엄청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냥 표현상 여기서는 자꾸 꿀이 등장하게 되네요.
결혼은 우선 아주 뒤의 일이라서... 어떻게 될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MT 가서 겪는 일들입니다.
그럼 즐감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