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152화 (152/236)

< -- 2학년 2학기 -- >

"많이 기다렸어요?"

"조금요."

'피식'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달나라에 간다고 했는데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가 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나는 그녀에게 입술을 겹쳤다. 키가 작은 편이라 다리를 벌리고 한껏 허리를 굽히니 겨우 입술이 닿았다.

아마도 그녀는 발끝을 세우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것까지 확인 할 틈은 없었다.

"으음 으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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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에서 처럼 입술을 떼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옥탑방으로 가는 계단으로 가기 시작했다. 키스를 하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난 코스라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려야만 했다.

생각했던 만큼 무겁지 않기에 안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옥탑방 앞에 도착한 나는 놀라서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어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는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내 혀를 빨아대던 그녀도 반응 없는 나를 느낀 것인지 입술을 떼고는 내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백진아가 서 있었다.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있던 백진아는 나와 그녀를 바라보면서 원망의 눈길을 보내며 서 있었다.

놀란 그녀는 후다닥 내 품에서 내려서더니 뭔가 입안으로 중얼거리고 나서는 내가 잡을 새도 없이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무거워요."

"아 그래 이리 줘."

왠지 백진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 나와 백진아는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친한 것이라고 할까? 하지만 남녀 사이엔 우정 따윈 존재하는 것이 아닌지... 아무튼 요즘은 좀 애매모호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 같다.

백진아에게서 짐을 받아들고 열쇠를 백진아에게 내밀었다. 옥탑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백진아가 입을 열었다.

"오늘 모처럼만에 휴가라서 놀러왔어요. 전화도 없이 와서 놀랐죠?"

'놀라다 뿐이냐?'

십년감수했다. 특별히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백진아는 부엌으로 들어가 장봐온 물건들을 정리하더니 밥을 한다며 쌀을 씻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음식을 잘 못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능숙하게 쌀을 씻어 밥통에 넣고 찌개를 끓이기 위해 김치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있었다.

"도와줄까?"

"아니요 거기 앉아서 기다려요."

기다리라고 하니 기다려야지...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씻고 와도 돼?"

"네"

백진아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을 했고 나는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가니 김치찌개가 다 되어 가는지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밥도 딱 맞춰 다 되었다고 알려주었고 백진아는 찌개를 식탁중앙으로 옮겨두고는 밥통을 열어 밥을 펐다. 나는 수저를 챙겨서 식탁에 놓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

"와 맛있겠다."

먼저 식탁에 앉은 내가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했고 백진아는 밥을 퍼 와서 먼저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머지 한 공기를 자신의 앞에 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먹어요."

아까 장봐온 것을 보니 불고기랑 잡채를 할 수 있는 재료들도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얼른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을게."

생각 외로 김치찌개는 맛있었다. 약간 단것 같긴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만한 수준이었다. 백진아도 찌개를 먹어보더니 만족한 것인지 곧 밥을 먹기 시작했다. 별다른 대화 없이 우리는 밥만 열심히 먹었고 나는 더 먹으라는 백진아의 말에 두 번째 밥공기를 받아 먹고 있었다.

"커피 끓일까요?"

"아니 내가 끓일게 거실에 나가 앉아 있어."

밥도 해 줬는데 뒷정리까지 시키면 안 될 것 같아서 백진아를 거실로 내쫓아놓고는 설거지를 하고 물을 끓여 커피를 두잔 탔다. 밤이긴 하지만 잠을 못 잘 수도 있으니...

"커피 마셔."

TV를 보고 있던 백진아는 내가 테이블 위에 커피 잔을 내려놓자 내 쪽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커피를 한모금 마신 백진아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재미있는 프로라도 하는 거야?

TV에서는 한참 CF가 방영 중이었다. 다음엔 저 CF를 맡고 싶은 건가? 나는 백진아가 보고 있는 내용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 볼게요."

"어 어?"

TV 소리 때문에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잘 못 알아들었어. 뭐라고 했어?"

"이만 가야겠다고요."

"왜? 오늘 쉰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밥 먹고 커피도 마셨잖아요."

"... 그렇긴 하지만..."

자고 갈 줄 알았는데... 그냥 갈 거라고? 그렇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음에 연락할게요."

"그래 내가 아래층까지 데려다 줄게."

"아니 괜찮아요.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요."

백진아는 현관에서 따라 나가려는 나를 막더니 문을 닫고 가버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까 그 일 때문에 삐진 것 같은데... '혹시'백진아가 날 좋아하나? 그래서 질투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침대로 가서 누워 버렸다. 그리고는 잠이 들어버렸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라서 바로 환타지아로 출근했다. 아침구호를 외치고 나자 원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우리 환타지아에서 같이 근무하던 김현구 헤어디자이너가 이번에 환타지아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김현구 디자이너 앞으로 나오세요."

원장의 말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름이 불린 넘버쓰리는 앞으로 나가서 원장의 옆에 섰다.

"김현구 디자이너 인사하세요."

"섭섭하지만 이번에 환타지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쫓겨나는 건 아니고 잘 돼서 나가는 거니까 그렇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안 보셔도 됩니다.

헤어숍을 오픈하게 되어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몇 분이 저와 같이 환타지아를 떠나게 될 것 같고요. 여태껏 여러분들과 같이 환타지아에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가고 나서도 예전처럼 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끝낸 넘버쓰리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자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실내가 조용해 지자 넘버투가 입을 열었다.

"김현구 헤어디자이너의 빈 자리는 구현우 헤어디자이너가 채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견습생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아마도 구현우 디자이너가 예전에 환타지아에서 헤어디자이너로 근무한 사실을 모르는 직원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라서 당분간 적응이 힘들겠지만 서로 도와주도록 합시다."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견습생 중에 1번방 김대웅 군과 2번방 이태식군, 그리고 5번방 이대식군이 같이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견습생들은 모집 중이니 아마도 조만간 자리가 채워질거라 생각되고 그동안 바빠질테니 모두들 협조해서 근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웅군과 이태식군, 이대식군은 앞으로 나오세요."

앞으로 나온 세 명은 허리를 굽히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는 짧은 인사를 한 후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원장이 손짓하자 꼬붕이 앞으로 나갔다.

"구현우입니다. 28번방에서 견습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헤어디자이너로 승격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꼬붕이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다들 그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꼬붕이 넘버쓰리로 올라가면 28번방은 다시 비는 거잖아. 설마 나 다시 막내가 되는 거야?

환타지아 직원이 한꺼번에 네 명이나 빠져 나가게 되면 한동안 바빠질 테지만 그 사실보다 나는 꼬붕이 넘버쓰리로 올라간다는 것이 더 속이 상했다. 근무한지 일 년 쯤 되었기에 딱히 막내라고 부려먹거나 뭔가를 시킨다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쯤 되니까 나도 하루 빨리 헤어디자이너의 자리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견습생의 설움이랄 것은 없지만 대신 헤어디자이너들의 대우는 비교될 정도로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예약 손님이 없다면 기간에 상관없이 휴가를 갈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좋지만 헤어디자이너와 미용실간의 관계는 견습생과 다른 룰이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대우 또한 좋은 것은 당연했고... 아직도 나는 환타지아 근무 첫날 보았다. 원장이 머리를 만져주며 자신의 페니스를 물려주던 손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원장이 나를 불렀고 원장을 따라 원장방으로 들어갔다.

"영일군 지난번에 친구를 소개해 준 적이 있었지요?"

"네"

예전에 원수 같은 녀석을 한번 환타지아 데려왔던 기억이 났다.

"혹시 주위에 환타지아에 근무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으면 한번 데려오도록 하세요."

"네?"

"사실 환타지아는 한번도 모집공고를 내 본적이 없어요.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모집공고를 낸다고 해서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관심 있는 사람이 오게 되면 근무할 때도 만족도가 높아지니까.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개시켜주세요. 학생이라도 상관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여자는 안 된다는 거 기억하고."

"네"

나는 원장방을 나와서 평소에 환타지아에 근무하고 싶다고 했던 인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몇 명 그런 분위기를 보인 애들이 있긴 했는데... 그러고 보니 선배 중에서도 몇 명 있었고... 내가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쉽게 말을 걸지 못해서 그렇지 환타지아에 근무하는 것을 알고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꽤 되었다.

물론 그 중에 다수는 여자였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성기였지만 곧 고개를 저어버리고 다른 몇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내일 학교에 가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잠시 후 들어온 지명 손님으로 인해 더 이상 생각을 할 시간 없이 오전 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넘버쓰리는 오늘부터 근무를 하지 않고 나간 상태였고 견습생 세 명은 이번 달까지 근무를 한다고 했다. 사실 한 직장에 근무하던 직원을 세 명씩이나 데리고 나가는 것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세 명은 들어올 때도 같이 들어왔고 나중에라도 일이 생기면 같이 그만둘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못 박아둔 상태였다고 했다.

오전 근무가 끝이 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대기석에 여자 손님이 아닌 젊은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놀란 나는 옆에 있던 떡대를 붙잡고 물었다.

"저 사람들 뭐에요?"

"직원 뽑는다고 하니까 찾아온 거라는데."

"와 저렇게 많이 온 거예요?"

"환타지아 근무하려고 대기타고 있는 사람 많아."

'뭐야?'

그런데 왜 나한테 근무할 사람 있으면 알아오라고 한 거야?

이래가지고는 왔다고 해도 밀려나겠는데...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는 환타지아 무리들을 대기석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괜시리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야 너 갑자기 왜 목에 힘을 주냐?"

"제가 언제요?"

20번방 형의 말에 나는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칫'쓸데없이 눈은 좋아서 말이야.

그냥 못 본척하고 넘어가도 되겠구만...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고 환타지아로 돌아오자 대기석에 있던 남자들은 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원장이 손님이 없는 점심시간을 틈타서 면접을 보고 다시 돌려보낸 듯 했다. 오후 근무를 하기 위해 내방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언제 온 것인지 넘버투가 옆에 와서 물었다.

"오늘 시간 괜찮아?"

"네?"

"오늘 회식이야. 김선생이 쏜다는데."

"네 특별한 일은 없어요."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내 어깨를 두드린 넘버투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방으로 올라왔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현오님, 애독자C님, 블로우스트님, 멍충대마왕님, GODTOP님, 챠베스님, 해동풍님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거의 앞 스토리를 예상하고 계신 듯 하네요... 이건 뭐...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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